존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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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실력
3. 성격
4. 기타


1. 개요



드림 시어터의 베이시스트로 한국계 미국인이다.[1] 본명은 John Ro Myung으로 1967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동창인 존 페트루치버클리 음악대학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마이크 포트노이와 친교를 맺어 드림 시어터의 전신인 'Majesty'를 결성하였다. 존 명은 마이크 포트노이, 존 페트루치와 함께 드림 시어터 결성 원년멤버이다.
국내에서는 흔히 '존 명'이라고 부르지만, 미국인인 본인은 자신의 성씨 Myung을 [ˈmaɪ.əŋ](마이엉)이라고 발음한다.[2] My-ung으로 끊어서 읽었다고 보면 된다.
팬들 사이에서는 엘라스틴 머리, 늙지 않는 사람 등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존 명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엘라스틴 머릿결을 가지고 있으며 젊었을 때와 지금이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백인에 비해 아시아계 인종이 비교적 동안인 것은 일반적인 편이지만, 존 명은 그것을 감안해도 유별나게 동안인 편이라 서구권 팬들에게는 퍽이나 인상 깊은 듯하다. 한국 팬들에게는 1999년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을 위해 내한했을 때 무대에 올라 머리를 푼 순간부터 지금까지 머릿결 좋은 장발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으며,[3] 15살 때 같은 동네에 살던 존 페트루치가 밴드 만든다고 베이시스트를 찾고 있던 중, "바이올린이나 베이스 기타나 줄이 4개니깐,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베이스 연주를 시작한 걸로 알려져 있다. 그 후 베이스 연주와 락 음악에 심취하게 되어 베이스를 하겠다는 그의 말에 아버지는 베이스 기타를 창 밖으로 내던졌다고 한다. 베이스를 연주한 후 적성에 맞다고 느껴 다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게 되었다.
여담으로 소음을 싫어한다. 2000년 한국 음악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근황을 묻자 음악 이야기를 기대했던 인터뷰어의 의도와 달리 집 주변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대단히 마른 체구였으나, 6현 베이스를 연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팔굽혀펴기를 하루 50차례씩 하면서 체력을 기른 결과 악기를 장난감처럼 다루는 등발이 완성되었다.[4] 동료인 존 페트루치 역시 틈나는 대로 헬스장을 찾아 체력을 단련해 지금의 체격을 완성했다. 그냥 연주만해서 만든 체격이 아니다. 한 번의 무대에 3시간씩 연주를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영감을 주는 진보적인 베이시스트이자 철저한 기본과 루틴 반복을 강조하는 구도자로 많은 연주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프라이머스의 레스 클레이풀이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플리같이 선구적 연주자 하면 흔히 상상하는 괴짜 이미지가 아니라 과묵한 동양인 메탈 베이시스트라는, 뭐라 형언하기 힘든 무림 고수 같은 독특함 때문에 꽤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2. 실력



드림 시어터의 멤버답게 초절정의 연주 실력을 가지고 있다. 존 명은 메탈 베이스의 속도감과 강력함에 더해 수준 높은 기교와 폭넓은 이론 감각을 접목했다. 복잡한 드럼 리듬에 베이스 라인을 정교하게 짜 맞추는 스타일을 메탈 장르에 제시했다. 투 혹은 쓰리 핑거피킹을 주로 사용하고 슬랩, 태핑, 하모닉스도 가끔 사용한다. 또한 프렛리스 베이스나 12현 채프먼 스틱 연주를 메탈 음악에 시도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선구자 위치에 있는 베이시스트라 할수 있다.[5] 존 명 세대 이전에 프로그레시브 베이스의 테크닉 탐구는 러쉬의 게디 리와 예스의 크리스 스콰이어 등이 먼저 시도했던 것이고 존 명은 그 직계라 할수 있다. 다만 그는 로우 B 스트링을 쓰는 5현, 6현 베이스로 보다 헤비하고 육중한 메탈 사운드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선배격 뮤지션과 차이가 있다. 때문에 테크닉을 기반으로 현란한 연주를 내세우는 모던 헤비니스/프로그레시브 베이시스트들 대부분은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규정해도 대체로 맞다.
초기에는 4현 뮤직맨 스팅레이, 팬더 재즈베이스를 사용했다. 그 후 5현 베이스나 여러 모델을 사용하다가 야마하에서 엔도스먼트를 받아 시그니처 6현 베이스 RBX6JM을 주로 사용했고, 2007년 부터 뮤직맨 봉고 6현을 사용하고 있다. 6현 베이스 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에 하나다. 슬랩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하는 악기들의 현 간격이 좁은 편이다. 존 명이 사용하는 봉고 6현은 기존 양산형 6현 모델[6]과는 다른 커스텀 모델이며, 6현 사이즈의 바디에 5현 사이즈의 넥을 조립하여 극단적으로 좁은 현 간격[7]을 갖고 있다. 과거에 야마하를 엔도서로 두었을때도 일반적인 6현 베이스보다 좁은 현 간격[8]의 시그너처 모델을 사용했다. 2020년에는 뮤직맨에서 존 명의 봉고 시그너처를 출시하였다. 앞서 말한 커스텀 베이스처럼 5현 넥을 사용하는 6현 베이스인지라 슬랩을 배제한 핑거피킹에 특화되었으며 존 명 특유의 다이나믹한 피킹에 어울리는 강렬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온보드 이퀄라이저를 쓰지 않기 때문에 시그너처 모델에서도 이퀄라이저는 삭제되었으며[9], 마스터 볼륨과 5단 픽업 셀렉터만 장착되어 있다.

메탈 베이시스트인 만큼, 두툼하고 헤비한 톤도 특징. 기본적으로 야마하[10]뮤직맨[11] 베이스의 액티브 험버커 픽업의 괴물같은 출력과 하이 게인 앰프드라이브에서 나오는 강렬한 톤. 하지만 그가 만드는 톤은 이펙터 이전에 그가 장인처럼 갈고 닦은 핑거 피킹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듣다보면 한 곡에서 프렛리스 베이스 같은 부드러운 톤과 강력한 메탈톤이 모두 들리는데 어떻게 만드는 톤인가?' 하는 질문에 '전부 핑거 피킹의 강약으로 조절한거다' 하고 대답했었다. 악기와 장비의 교체도 있었고, 드림 시어터가 커리어 초창기에 비해서 점점 헤비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그에 맞춰 존 명의 톤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만 해외 베이스 포럼들을 보면 지금 그의 톤은 보통 메탈 베이시스트와 차별화 되는 점이 별로 없어 지루하다는 의견도 있다. 커리어 초창기의 투명한 느낌을 주는 톤을 더 좋아하는 팬들도 많다.
연습덕후로 알져져 있으며 드림시어터의 전 키보디스트 데렉 쉐레니언의 말로는 무대가 끝난 후에 '웜 다운' 연습을 하는 뮤지션은 존 명이 유일하다고 한다. 또, 존 페트루치와 버클리 음대에 다니던 때, 하루에 적어도 6-8시간(...) 연습하는걸 제안했다고 한다. 프로 현직에 있는 지금까지도 그정도 연습을 하는 걸로 유명하다. 또한 인터뷰에서 보면 레코딩 당시 절대 트랙을 잘라서 녹음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이어서 라이브와 같이 연주하여 원테이크로 녹음을 끝내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트랙을 잘라가며 녹음하면 아무래도 원테이크보다 부자연스럽고 매끄럽지가 않다고 한다.
괴물같은 테크닉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빌리 시언과 자주 비교되는 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연주를 들어보면 '테크니션'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을 찾기가 거의 힘들다는 것을 알수 있다. 드림 시어터의 전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가 최근 빌리 시언과 자주 협연을 하고 있는데, 둘의 스타일 차이가 정말 극명하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다. 존 명은 백 사운드를 받쳐주며 해당곡에 적절한 연주와 유려한 베이스 라인을 선보이는 편이고, 빌리 시언은 빵빵한 멜로디와 속주로 프론트에서 사운드를 잡아주는 편이다. 다만 존 명은 인터뷰에서 빌리 시언의 영향도 받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오버 드라이브 톤이 멋져서 한번 따라해 봤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단히 뛰어난 작사가이기도 하다. 보통 괴물같은 연주 실력에 감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간혹 놓치는 점이다. 팬들은 드림시어터 최고의 가사로 그가 작사한 곡을 자주 꼽는다. 그가 작사한 곡들은 시적인 추상과 은유로 가득차 있다. 아마 그의 성격이 많이 반영된 듯 하다. 5집 이후부터 작사에 참여 하는 일이 없었다. 팬들이 아쉬워하자 마이크 포트노이는 그의 가사에 맞추기 위해 곡을 수정해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작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11집 부터 다시 작사에 참여했다.[12] 그리고 드림시어터의 후기 명곡중 하나인 'Breaking all illusions'를 작사했고, 이 역시 아름다운 가사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3. 성격


성격은 굉장히 내성적이다. 강렬한 연주와 굉장히 대비될 정도.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 많은 곳에서는 말을 잘 안하려고하고 묵묵히 연주만 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2008년 내한공연 당시 공항에 마중 나온 팬들에게 다른 멤버들은 사진도 찍어주고 싸인까지 해주는 반면 존 명은 자신들을 보러 온 팬들을 보고 당황하고 수줍어 하며 재빨리 사라졌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미국 팬들 중에는 존 명이 벙어리인 줄 알고 있었다는 사람마저 존재한다.
어릴적에는 상당히 사납고 시끄러운 성격이었는데, 그래서 어머니가 내놓은 해결책이 바이올린 배우기(...). 그 결과 정말 조용해젔다.
물론 벙어리가 아닌 만큼, 교습용 DVD나 인터뷰 영상에서는 잘만 말한다. 너무나 또박또박 잘 말해서 보는 사람이 당황스러워질 정도. 과거에는 레슨도 했었는데 프로페서라고 불릴 정도로 분석적인 수업으로 유명했다.
인터뷰에서 '베이스 실력이 상당한데 왜 기타나 키보드처럼 전면에 나서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음역대가 달라서 그냥 쳐도 다 들리지 않나?'같은 이야기를 할 정도로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밴드 지향적이고 내성적이다.
헌데 한번은 무대에서 갑자기 같은 멤버(제임스 라브리에)를 향해 어깨돌진을 하는 기행을 선보였다. 팬들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명이 저렇게 빡친거야?" 하고 안절부절했지만,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몇 백 달러가 걸린 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멤버들은 내기를 했다곤 하지만 내성적인 존 명이 감히 그런 짓을 저지르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모양. 역시 몇백 달러씩이나 되는 큰 돈이 걸리면 사람이 변하는듯. 이 충격과 공포의 돌진은 이후 '명 태클'로 불리게 된다. 이 사건 이후 라브리에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분노의 게시글(물론 장난)도 가히 압권이다. 그래서 언사이클로피디아에선 그를 베이시스트겸 '''태클리스트''' 라고 소개한다(...).
오래된 영상이나 기행 등을 보면 젊었을 때는 마냥 수줍기만 한 성격은 아닌듯 하다. 1993년 도쿄 라이브 등을 보면 꽤 활발하게 돌아다니기도 한다. 또 외국 팬 사이트 등에서 믿기 힘든 일화가 소개 되어 있다. 드림시어터의 전신인 마제스티 시절, 당시 보컬이었던 '크리스 콜린스'가 라이브 공연중에 밴드 멤버를 소개하다가 존 명을 '한국의 정글에서 왔다'며 인종차별성 발언을 하자 엄청나게 격노했고 그에게 달려들고 고함치는걸 주변에서 뜯어 말려야 했다고 한다.[13]

4. 기타


  • 드림 시어터 외에도 king's x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Ty tabor, Dixie Dregs의 드러머 Rob morgenstein, 드림 시어터 시절의 키보디스트 Derek Sherinian과 함께 프로그래시브 록/재즈-펑션 슈퍼그룹인 "Platypus"를 결성해 활동했다. 이후 Ty tabor, Rob morgenstein와 함께 "The Jelly jam"이라는 3인조 프로그래시브 록 슈퍼그룹을 결성했다.
  • 존 명은 여성 헤비 메탈 밴드 'Meanstreak'의 베이시스트 Lisa Martens Pace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이 여성 메탈 밴드의 구성원 가운데 또 다른 두 명 역시 드림 시어터 멤버 존 페트루치, 마이크 포트노이와 결혼하였다.
  • 그래도 핏줄이 한국인지라 친척들 중 상당수가 한국에 거주해서 가끔 개인적으로 한국에 들른다고 한다. 다만 한국이 워낙 메탈의 불모지이다 보니 목격담은 별로 없다.
  • 뮤직 레이더가 선정한 베이시스트 TOP 25 중에서 1위로 선정되었다가 후에는 TOP 60 중 15위로 밀려났다. # 1위에 선정될 때가 마이크 포트노이의 밴드 탈퇴 문제로 한창 시끄러울 때라, 드림 시어터에 꽤 많은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진행된 통계라서 그렇다는 추측이 있다.
1위로 선정된 후 인터뷰를 가졌는데 이 인터뷰를 본 해외 팬들은 "존 명이 말을 하다니!!" 하며 놀라워했다.
  • 게다가 마이크 포트노이가 탈퇴한 후 새로 들어올 드러머와 관련된 라브리에의 인터뷰 중에서 존 명이 말문 터졌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 옛날 뮤직비디오나 사진들을 보면 꽤 한 미모 하셨다. 다른 멤버는 Images and Words 이후부터 다 우락부락하게 변한 데 비해 체구도 작고 피부도 고와서(...) 서양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동양 미소년의 느낌이다.
  • 그런데 의외로 간혹 재미있는 기행들을 벌이기도 했다. # (1위는 물론 명 태클 그러나 사진만 있다)

[1] 부모 다 한국인이지만 존 명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어는 조금밖에 못한다고 한다. 1993년 첫 내한 때 간단한 인사말을 한국어로 나눌 수 있었다고 하며, 부모의 한국어를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스피킹은 능숙하지 못해도 리스닝은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을 투어 스태프, 팬, 기자들에게 알려주었다. 사실 따로 한국어 교육을 받지 않은 한인 2세들의 한국어 실력이 일반적으로 저렇다.[2] 일단 국립국어원외래어 표기법에서 한국계 외국인의 성씨 표기에 관하여 따로 규정을 두지 않아 한글 표기 시에 현지 발음을 따르든 한국어 어원을 따르든 상관없다고 보고 있다(관련 답변).[3] 원래 성격이 매우 사나워서 어머니가 해결책으로 바이올린을 시켰다고 한다.[4] 사실 드림 시어터의 최초창기인 마제스티 시절 존 명뿐만 아니라 페트루치와 포트노이 역시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엄청나게 마른 체구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존 명은 거의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마른 체형이었다.[5] 참고로 채프먼 스틱 연주는 토니 레빈이 킹 크림슨에서 선보인 적도 있다. 다만 킹 크림슨은 '메탈' 범주에 있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존 명의 시도는 충분히 참신하다 할수 있다. 여담으로, 토니 레빈은 드림 시어터와 접점이 있다. 존 페트루치, 마이크 포트노이, 조던 루디스와 함께 리퀴드 텐션 익스페리먼트라는 프로젝트 활동을 한 바 있다.[6] 브리지 기준으로 현 간격 17.5 mm[7] 14 mm[8] 16.5 mm[9] 다만 프리앰프는 그대로 내장 돼 있고 9v 배터리가 2개 들어가는 점 역시 순정 봉고 모델과 동일하다. 이퀄라이저 기능만 제거된것.[10] 과거에 사용했다.[11] 2007년부터 정식 협찬을 받아 사용중이다.[12] 공교롭게도 마이크 포트노이 탈퇴 후에 작사를 다시 시작했다. 팬들이 꽤 미묘하게 느끼는 부분이다.[13] 그는 시카고 출신의 미국 토박이다. 그리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혈통에 대해 인식 하고있다. 자신의 미국인 정체성과 한국계 혈통을 싸잡아서 모욕한 것이니 격분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