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행무상

 

'''고사성어'''
'''諸'''
'''行'''
'''無'''
'''常'''
모두 제
행할 행
없을 무
항상 상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모든 현상은 시시각각으로 생성되고 소멸하며 항상 변천한다는 것으로 # 만물은 항상 돌고 변하여 잠시도 한 모양으로 머무르지 않으므로 인생은 덧없는 것이며, 한번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하게 마련이라는, 한 마디로 "'''이 세상에 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의미다.
불교에서 깨달음근원이 되는 말인데, "어차피 다 부질없다"는 허무주의라기보다는 "맹목적이고 극단적이지 말라"는 중도, 고정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가 더 강한 말이다.# 불교에서 번뇌는 집착과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치니, 뜻 자체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굉장히 똑같다. 좋은 때도 흘러가니 교만하지 말고, 나쁜 때 또한 흘러가니 절망하지 말라는 뜻처럼, 제행무상도 무엇이든 영원한 건 없다는 뜻.
석가모니 부처는 이 한 마디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도 내주었는데, 대반열반경에 등장하는 설산동자 반게살신(雪山童子 半偈殺身)[1] 대목이 그것이다. 싯다르타의 전생에 설산동자라는 이름으로 설산(히말라야)에서 명상에 잠겨 있던 어느 날 공중에서

諸行無常 是生滅法(재행무상 시생멸법)

모든 것은 무상하나니, 이것이 곧 생멸의 법칙이다.

라는 시구가 들려왔고, 설산동자는 이 말이 자신이 찾던 깨달음이라며 기뻐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사람은 없고 오직 나찰만이 험악한 얼굴로 서 있었다. 설산동자가 "방금 ‘제행무상 시생멸법’이라는 시구를 그대가 읊었는가?"라고 했고, 나찰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건 반쪽이고 뒷부분이 더 있을 거 같은데 나머지 부분도 들려달라"고 부탁했는데, 나찰은 "들려주고 싶지만 지금 나는 너무 배가 고파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소. 만일 그대의 뜨거운 피를 준다면 나머지 시구를 들려줄 수 있소."라고 했고, 설산동자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줄 테니 마지막 시구를 들려달라고 다시금 부탁했다. 이에 나찰이 뒷부분을 마저 읊었다.

生滅滅已 寂滅爲樂.(생멸멸기 적멸위락)

생멸이 끝나면 곧 고요한 열반의 경지이니, 그것이 극락이니라.

설산동자는 나찰과의 약속대로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서 몸을 던졌다. 그런데 나찰은 설산동자의 몸이 땅이 닿기 전에 인드라(제석천)로 변해서 설산동자의 몸을 받아서 땅에 내려놓았다. 경전에는 이때 여러 천신들이 모여 설산동자의 발에 절을 하면서 깨달음에 대한 구도의 정신과 서원을 찬탄하였다고 한다.#
같은 불교문화권임에도 한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 된 것과 달리[2] 일본에서는 일본산 게임이나 소설, 라이트노벨 등에서 번번이 등장하는데, 일본의 유명한 고전 헤이케모노가타리의 첫 구절 "기원정사의 종소리는 제행무상의 울림이요, 사라쌍수의 지는 잎은 성자필쇠의 이치러라"라는 구절로 유명한 고사인데,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면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태어난 것은 결국 죽는 것이니 내가 죽는다 해서 슬퍼하지 말고 내가 남긴 법에 따라 스스로를 진리의 등불이자 섬으로 삼아서 그에 의지해 살아가면 된다"고 아난다에게 설법했다는 열반경의 구절을 읊은 것이다. 애초에 헤이케모노가타리의 주제가 "'''이기든 지든 인간은 다 똑같이 부질없고 무상하다'''"는 것이니.

[1] 설산동자가 나머지 반의 게송(시)에 제 몸을 죽이다.[2] 뜻이 비슷한 인생무상으로 번역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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