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

 

1. 일상 용어
2. 철학 용어


1. 일상 용어


일상적으로 '''현상'''()은 '자연이나 사회의 어떤 상태'라는 정도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런 용례는 '고령화 현상'이라거나 '푄 현상' 등의 예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을 현상하다'라고 할 때의 '현상'(現像)과는 다른 한자를 쓴다.

2. 철학 용어


철학 용어로서의 '''현상'''(, phenomenon)은 일반적으로 ''''실재(reality)''''와 대비되어 쓰이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외부 세계에 보라색 공 하나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즉 '보라색 공이 실재한다'고 가정해보자. 다음은 해당 사례에 대한 직관적인 분석의 예시다.
  • 실체: 보라색 공
  • 현상:
    • (좁게 볼 경우): 시각을 통해 관측할 수 있는 공의 보라색,[1] 공의 둥그런 모양, 후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보라색 공의 냄새, 촉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보라색 공의 질감 등등
    • (넓게 볼 경우): 각종 관측·실험 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라색 공에 대한 데이터 일체
철학사에 걸쳐서 '현상' 개념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으며, 각 견해마다 '현상'이라는 말의 의미 또한 미묘하게 쓰이고는 했다. 이를테면 신유학 전통에서의 '체(體)'와 '용(用)' 개념은 흔히 서양 철학사에서의 '실재'와 '현상' 개념에 각각 대응하는 것으로 종종 해석되고는 하나 그 실제 여부는 논쟁거리다.

2.1. 소박 실재론


Naive Realism
사람이 감각하는 현상은 곧 고스란히 실재한다는 견해. 진지하게 주장하는 철학자가 있다기 보다는 현상 및 실재에 관한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견해를 가리킬 때 쓰이고는 하는 명칭이다.
따라서 철학적으로 약점이 많은 견해다. 단적으로 젓가락을 물 속에 담가서 젓가락이 구부러진 것으로 보일 경우, 위에서 정의한 소박 실재론에 따르면 젓가락은 물에 담그면 구부러진다는 것이 실재라는 귀결이 따라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귀결은 부조리해 보인다.

2.2. 서양 고대철학


『국가』로 대표되는 플라톤 중기 철학은 감각을 넘어선 실재가 있음을 옹호하고자 한 대표적인 입장이다. "이데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플라톤의 형상(είδος) 개념이 대표적. 플라톤의 '모상(ἰκών, φάντασμα)' 개념은 근대 철학사의 '관념' 개념으로 느슨하게 이어지며, 곧 '현상' 개념과도 느슨하게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서양 고대 철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통설 한 가지는[2] 합리주의자인 플라톤은 현상이 실재를 규명하는데 소용이 없다고 본 반면, 경험주의자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이 실재를 규명하는데 핵심적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2.3. 서양 근대철학


어떤 역사적 해석에 따르면 데카르트에 의한 '철학의 인식론적 전회'가 이루어지고,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해보는 회의주의가 철학의 방법으로 대두된 이후에야, 인간에게 지각되는 세계가 정말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유의미한 정도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일의성의 철학을 내세우는 스피노자와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근대 철학자들은 실재를 담보하기 위해 의 존재를 요청했다. 데카르트는 선하며 완전한 신이 세계의 실재성을 보장한다 주장했으며, 일반적으로 관념론자(idealist)[3]로 잘 알려진 버클리는 사실 유심론자(mentalist)일 뿐 관념론자는 아니었다. 버클리 역시 세계의 실재성을 담보하는 것이 신이라 주장했으며[4],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 또한 본질적으로는 대동소이했다.
실재론에 대한 회의를 품은 대표적인 철학자는 이며, 칸트는 흄의 회의를 계승해 관념론을 정립했다. 인간의 의식은 물자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오성은 오직 현상에 대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는 그의 사상은 근대적 실재론에 대한 결정적인 비판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예지계와 자유의지의 존재를 옹호했고, 인식의 근원을 신으로부터 분유되는 선험적 지식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온전한 관념론자는 아니었다.

2.4. 현상학


후설의 현상학에서 말하는 현상이란 전적으로 의식에 의해 지각된 현상을 뜻하는 것이다.

[1] 보라색을 구성하는 전자기파의 파장이 실재하는가 아닌가를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실재한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보라색이라는 감각 그 자체가 실재하는지를 묻는다면 반대로 다수가 고개를 저을 것이다. 보라색은 인간의 의식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보라색이란 하나의 현상이다. 이에 대해서, 보라색이라는 감각 자체도 뇌의 물리화학적 작용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반론이 제기된 바 있으나, 일단 근대철학적 용어로서의 현상에 대한 비판으로는 맥락이 어긋나는 지점이 있다.[2] 즉 학계에서는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가설이다.[3] 만약 관념론을 유물론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본다면 버클리는 관념론자지만, 일반적인 맥락에서 관념론에 대비되는 것은 유물론이 아니라 실재론이다.[4] 그러나 버클리는 소박 실재론을 옹호하고 근대적 실재/현상 이원론을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인간이 그의 능력을 발휘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형태로 자연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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