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보병사단/신병교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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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5보병사단 제35보병여단 예하 신병교육대 문서.
2. 상세
현재의 궁평리 신교대가 아닌 옛날 대광리 구 신교대의 경우엔 최악의 시설을 자랑했는데, 삼청교육대 시설로 이용된 역사가 있다. 구 신교대에 대하여 더 정확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여기로 들어가서 '슭의 말년휴가'를 보자 간략하게나마 5사단 구 신교대에 대하여 나온다.
사단버스 또는 전세버스로 이동하는 다른 사단과는 다르게 306보충대에서 신교대까지 기차로 이동하는 유일한 사단인데 보충대에서는 5사단이 가난해서라고 말하고, 실제 구 신교대에 도착하면 그 말이 수긍되지만, 사실 다른 사단의 신교대와는 다르게 기차역에서 신교대까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던 이유였다. [1]
1996년 7월 26일 수해가 발생했을 때 기간병 2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어 이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구신교대에 위치해있다. 이 수해로 무려 60여 명 가까운 사병(신병교육대 인원이 아닌 사단 전체인원)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사단 장병들이 1달 동안 검은 리본을 달고 다닌 바 있다 (5사단 사망자는 신교대 기간병 2명이고 대다수 사망자는 철원에서 발생했다. 사건 발생 열흘 후 시신 한 구가 발견되었지만 나머지 한 명은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2]
*그당시 전방철책 경계 임무를 36연대 3대대가 맡고 있었는데, 그지역 일대에 어마한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발생하여, 하루동안 철책 방어 병력을 철수 시켰다.(비사 아닌 비사) 그당시 지휘부 판단이 정확했다. 전 병력을 대대 op로 집결 시켜서 병사 안전을 도모했는데, 당시간대에 이웃 27연대에는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하여 수십명의 장병이 매몰 되었다. 그당시 해당부대 지휘관 판단은 이정도 폭우로는 북괴군도 간첩을 보낼수도 없고, 설사 보내다고 하더라도 수마에 휩쓸려 내려 갈것이다 라고 말했다.
구 신교대 부지는 현재 타 연대의 전투지원중대와 수색중대의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3] 기존 구 신교대에서 사용하던 기독교 교회 / 천주교 성당 / 불교 법당이 남아있는 관계로 부대 내에 종교시설이 없는 전방의 대대장병들이 주말마다 종교행사를 온다.[4] 특히 모 대대에서는 주말 휴가자와 종교행사자를 같은 버스에 태워서 보내기 때문에 휴가자가 대광리역에 내리면 다들 부러워한다.
구 신교대 시절은 훈련장소가 전부 부대 밖에 있어 훈련시 상당히 행군해야 했지만(2009년 말 신종 플루로 인해 부대 밖에서 하는 몇몇 훈련은 실시하지 않았다), 신 신교대의 경우는 훈련시설이 전부 내부에 있기 때문에 상당히 편해졌다.
1993년 최진영이 훈련을 받기도 했다. 2012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다녀갔다. 같은 해 가수 비가 훈련 후 조교를 지원하여 잠깐 근무했었다. 당시 초도물품과 식당에서 부식을 주는 병사 중에 비인 줄 모르는 훈련병들이 상당했다. 또한 훈련소 최초 4주 훈련 후 가족면회 시범 부대였다.
그러나 2012년 신교대가 다른 곳에 새롭게 신막사로 지어지게 되면서 현재는 중서부전선 부대 신교대중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막사의 경우 겉모습만 보면 대학교 캠퍼스 포스를 뿜어낸다. 그 유명한 망향비빔국수 본점[5] 바로 맞은편 건물이 신교대라 찾기에도 아주 쉽다. 다만 제2신병교육대대는 여전히 구막사이기에 제1신교대에서 5주 훈련을 받고 제2신교대로 갔을 때의 충격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다행히 2012년 12월부로 2대대는 일반 보병부대로 바뀌게 되면서 신교대에서 7주 훈련을 마치고 바로 자대로 이동하게 된다.
신막사답게 외관부터 매우 번쩍번쩍하다. 모든 생활관에 에어컨과 온돌 침상이 있고, 층별로 화장실, 샤워실이 2개씩 있다. 세탁실과 정수기도 있어 훈련병답지 않은 복지를 누릴수 있다. 다만 통제가 빡센 교관/조교를 만날 시 이용하기 매우 까다롭기도 하다. 겨울엔 매우 건조하여 취침수를 떠놓지 않으면 기침소리와 코골이의 하모니를 들을 수 있다.
모든 교장이 신교대 울타리 안에 있다. 한마디로 '''10분 안에 모든 교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셈'''. 사격장은 막사 바로 뒤에 있어서 몇몇 생활관에선 창문 열면 사격장이 보인다. 개인화기 훈련을 받는 중대라도 있는 날엔 막사 어디에서든 총소리를 들을 수 있다. 화생방, 경계 교장도 매우 가깝고, 가장 넓은 각개전투 교장도 군가 서너곡만 부르면 금방 도착한다. 그나마 수류탄 교장이 가장 먼 편인데, 이것도 거리가 멀다기보단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가기가 힘들다 뿐이지 그렇게 멀지도 않다. 수류탄 교장은 각개전투 교장 끝보다 조금 더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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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대광리 5사단 신병교육대 교육 수료 기념 도장.
그룹 2PM의 황찬성이 조교로 복무하였다. 19년도 6월 군번.
3. 코로나-19 군부대 집단 감염 사건
[1] 문제는 이게 장정 수송을 위한 특별 열차가 아닌 경원선 일반 열차의 몇 개 객차에 장정들을 태운다. 계급장도 없고 잘 맞지도 않는 군복을 입고, 혁대에 세면백을 끼운채로 의정부역에서 열맞춰서 구르다 보면, 힘든 것보다 무척 창피하다. 그 와중에, 이제 집 떠나온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지나가는 아줌마에게 집으로 전화해 달라고 부탁하는 장병도 있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3번 국도를 건넌 후 대광리 거리를 지나면 차탄천이 나온다. 차탄천 다리를 건너가면 구 신교대가 위치했다.[2] 신교대 앞에 있는 차탄천을 보면 그리 넓지 않다. 그 작은 하천이 범람해서 사람이 급류에 휩쓸려 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당시 폭우는 기록적인 것이어서 하류에 있는 모 부대는 차탄천과 300여 m 이상 떨어져 있고 제방 높이도 신교대 부근 보다 훨씬 높았지만 물이 넘쳐 위병소 앞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당시 지시 사항이 '비상 상황 발생 시 총기류 포기하고 몸만 빠져 나올 것'이었다. 산사태 나는데 괜히 총기 챙기다가 죽지 말라는 소리였다. 군인에게 총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했을 때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다.[3] 하지만, 지금은 다 이전했는지 빈터로 남아 있는데, 최근 구 신교대 부지에 국립연천현충원이 들어설 예정이다.[4] 사단 후방부대는 사단본부로 종교행사를 간다[5] 원래도 유명해서 TV에 자주 소개됐고 영화 강철비에도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