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보병사단
1. 개요
77th Infantry Division. 미합중국 육군의 보병 사단. 별명은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으로 사단 마크도 푸른 사다리꼴 배경에 그려진 금색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2. 1차 대전
뉴욕주의 예비군 사단[1] 으로 1차대전에 창설되어 백일 전투에서 활약했다.
제77사단의 여섯 중대가 아군에게 포격을 당하고 포위 당한 상태에서 6배가 넘는 독일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아 버텼다. 이들은 후에 Lost Battalion 이라고 불리게 된다.
3. 전간기
종전후엔 동원해제되어 전간기에는 서류상으로 존재한 전시동원용 페이퍼 부대였다. 주방위군과 비슷하게 지역에 기반을 가진 부대였다.
4. 2차 대전
4.1. 주요 행적
전시동원이 되면서 전국에서 장병을 충원하면서 지역구분은 무의미해졌다. 이런 예비군 부대들은 동원 편제가 될 때, 대개는 사단장 이하 각급 지휘관과 상급장교단은 정규군에서 충원되고 중-하급 장교, 사병들은 속성임관 장교(ROTC, OCS등)와 징집병들이 절대 다수였다. 77사단은 42년 3월에 동원, 44년 3월 파병되어 하와이 주둔군으로 지내다 7월에 괌 전투를 시작으로 레이테 섬 지상전과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77사단은 미 육군 제10군의 사단들중 가장 먼저 지상전에 투입된 부대로 3월 26일 오키나와 본섬의 서쪽 20km에 있던 게라마 열도의 10개 섬에 분산 상륙하여 상륙 예비거점을 확보했다. 그후 북쪽 도서 지역이었던 이에시마 섬에 상륙하여 전투를 치뤘고 4월 말에 본도에 상륙하여 제96보병사단을 교체하여 5월 말까지 전선 중앙에서 슈리 성으로 공세를 펼쳤다. 슈리 성을 확보한 후 전선 주변 후방의 잔적 소탕을 맡고 일부 분견대(1개 연대)는 96사단에 배속되어 군단 전투지경선에서 인접한 미 해병대 부대와의 접촉 유지를 전투종결까지 담당했다.
사단은 제2차 괌 전투(괌 탈환전, 1944년 7월)에서 첫 실전을 접했는데 당시 시점에서 사이판 전투가 끝난 지 얼마되지 않았고 그 전투에서 유명한 스미스 VS 스미스 사건으로 육군과 해병대(+해군)간의 갈등이 아직 치유되지 않았던 때였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하와이에 주둔했던 전구 전략예비부대에서 괌 현지의 제3상륙군단으로 배속된 77사단은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미 해병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미 해병대가 제77해병사단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영어 위키피디아#에서 오래전부터 출처 필요라고 적혀있었는데도 아직 추가가 되지 않는 것을 보아 신뢰가 가는 정보는 아니다.
괌 전투가 끝난 이후 몇달간 현지에 주둔한 사단은 11월 중순에 레이테 섬 전투의 후속 증원부대로 선정되어 레이테 섬으로 이동했고 현지의 제24군단에 배속되었다. 처음엔 레이테 섬의 미군 탈환지역의 후방 순찰과 중요 시설 경비 및 일본군 잔적 소탕을 담당했고 이어서 섬의 서해안쪽 일본군 배후지의 상륙임무를 받아 12월 8일 레이테 섬 일본군 사령부가 위치한 오르목 시의 남쪽 10km에 있는 이필이라는 해안 마을에 상륙했고 남쪽에서 올라오던 미군 제7보병사단과 접촉한후 북쪽으로 진격하여 오르목 시를 점령하고 후속 공격을 하는등 말 그대로 일본군의 뒷통수를 쳤고 레이테섬 전투 종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오르목시 점령 직후 사단은 휘하 부대를 나눠서 일부는 미군 제10군단이 교전중인 일본군의 전방 진지인 리몬 고지로 공격을 감행했다.
4.2. 2차대전 시점의 부대 편제
- 제77보병사단 사단본부
- 제305, 제306, 제307보병연대
- 제77보병사단 사단포병대/본부 포대
- 제304, 제305, 제306, 제902야전포병대대
- 제302전투공병대대, 제302의무대대
- 제77보병사단 사단전문부대 본부
- 제77사단 사단본부중대, 제777병기/정비중대, 제77병참중대, 제77통신중대, 헌병소대, 군악대
- 제77군단방첩분견대
5. 2차 대전 종전 후 해체
오키나와 전투 종결후 사단은 7월에 필리핀 중부의 세부 섬으로 철수하여 부대 재편과 휴식을 보내면서 몰락 작전을 준비했는데
곧 일본이 항복하면서 블랙리스트 작전이 발동되고 일본으로 수송되어 전후 일본 홋카이도에 진주하여 점령군으로 지내다 46년 3월 해체됨
6. 유명 인물
- 데스몬드 도스: 오키나와 전투에서 의무병으로 활약한 인물. 영화 핵소 리지의 주인공으로 소개된 실존 인물이다. 77사단 307연대 1대대 B중대 소속.
- 앤드류 브루스: 2차대전 중반부터 부대 동원해산(재직 기간: 1943년 5월 ~ 1946년 2월)까지 2차대전기 제77사단의 마지막 사단장을 맡았다. 직전 보직으로는 42년 3월부터 미국 육군 구축전차센터장(총감)으로 본토 근무를 지냈던 인물이다. 제77보병사단장으로 보직된후 종전까지 그는 사단과 함께했고 전후 사단이 해산한 후에는 46년 9월부터 주한 미군정의 제7보병사단장[3] 으로 배정되어 1947년 10월까지 지낸 후 비로소 본토로 순환배치되었다.
[1] 주방위군이 아닌 육군 예비군 부대[2] 43년 4월 부터 44년 5월까지 제7사단 참모장을 맡은 인물로 그후에 준장으로 승진하여 전후까지 사단 포병단장으로 지냈으나 46년에 전출되면서 전후 구조조정으로 대령으로 강등됨(Termination of Rank)[3] 주한 미군정이 선포될 당시의 사단장이었던 아치볼드 아놀드 소장은 하지 중장에 의해 군정장관으로 발탁되어 이임했으나 기록상으로는 그가 본토로 귀국하는 46년 9월까지 사단장 겸직이었다고 기재된 자료가 몇곳에 존재한다. 그 후에 기존에 사단의 부사단장이었던 조셉 레디 준장과 포병단장인 르로이 스튜어트 준장[2] 이 지휘권을 인수받았는데 이 2명도 46년 3월에 전출되었다. 그후 후임 포병단장이었던 윅스 준장이 사단장 대리로 지내다 브루스 소장이 부임했고 그때서야 같은 소장급 보직이었던 군정장관과 전술부대의 사단장 직은 별개로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