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족혁명당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2차 국공합작이 이뤄지자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있던 김구의 한국국민당과 조소앙의 한국독립당은 남경 근처의 우익 계열 독립 운동 세력들을 끌어모아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만들었다. 지청천은 "조선혁명당"을 창설, 김구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동년, 민족혁명당은 조선민족혁명당으로 개칭하였다. '''김원봉의 조선민족혁명당'''은 1938년, 남경, 한구, 무창 근처의 좌익 계열 독립 운동 세력을 연합하여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을 결성했는데, 이엔 김규광의 "조선 민족 해방자 동맹", 최창익의 "조선 청년 전위 동맹", 유자명의 "조선 혁명자 연맹"이 동참하였고 김원봉이 이끄는 군사 세력이던 조선의용대가 중핵이 되었다.
1939년, 김구와 김원봉은 연합 전선을 펼쳐보려 "전국 연합 진선 협회"를 꾸려 논의하였으나 역시 1935년과 같이 단일당을 형성하느냐 마느냐의 여부에 대한 견해차를 놓고 두 사람의 연합은 결렬되었다. 그러나 1942년 김원봉이 조선의용대 본대[1]를 데리고 합류하여 일부나마 임정에 입각하였다.


[1] 김원봉이 이끌고 있어서 본대라고 하기는 하는데, 절대 다수인 2지대 ~ 4지대가 모두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라는 이름으로 화북으로 떠나서 중국 공산당 산하의 팔로군에 합류하여 '조선의용군'으로 재탄생한다. 그래서 대략 100명 정도의 소수만 남은 조선의용대를 이끌고 합류한 김원봉은 임정 내에서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조선의용대, 김원봉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