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걸

 


<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대송의 황족
월문혜왕(越文惠王)
趙元傑 | 조원걸
'''

'''시호'''
문혜(文惠)
'''작위'''
월왕(越王)추봉
''''''
조(趙)
'''이름'''
원걸(元傑)
''''''
명철(明哲)
'''생몰'''
972년 ~ 1003년
<^|1>{{{#!wiki style="margin:0 -10px -5px;"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2e8b57> '''부황'''
태종(太宗) 조광의(趙光義)
'''형제'''
한공헌왕(漢恭獻王) 조원좌(趙元佐)
소성태자(昭成太子) 조원희(趙元僖)
진종(眞宗) 조항(趙恒)
상공정왕(商恭靖王) 조원분(趙元份)
진공의왕(鎭恭懿王) 조원악(趙元偓)
초공혜왕(楚恭惠王) 조원칭(趙元偁)
주공숙왕(周恭肅王) 조원엄(趙元儼)
숭왕(崇王) 조원억(趙元億)

1. 개요
2. 상세

[clearfix]

1. 개요


중국 북송시대의 황족으로 태종 조광의의 아들이다. 자는 명철(明哲).

2. 상세


본래의 이름은 조덕화(趙德和)였다가 조원걸로 이름을 고쳤다. 태종 재위기에 검교태보, 동평장사로 제수되고 익왕의 작위를 받았으며, 이후 단공 연간에는 시중과 성도윤, 검남동서천 절도사를 겸하였다.
이후 순화 5년(994년)에는 작위가 오왕으로 바뀌었으며, 지도 2년(996년)에는 양주 대도독의 지위에 올랐다. 태종 사후 진종이 즉위하면서 조원걸은 검교태위 겸 중서령, 서주 대도독 등의 관직을 지내고 작위가 연왕이 되었으며, 진종 함평 6년(1003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진종은 조원걸에게 태위와 상서령을 추증하고, 안왕으로 추봉하였으며, 문혜(文惠)의 시호를 내렸다. 사후 작위는 안왕(安王)→형왕(邢王)→진왕(陳王)을 거쳐 월왕(越王)이 되었다.
조원걸은 학문을 좋아하고 초서와 예서에 능하였다고 한다. 조원걸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서, 인종이 조윤언[1]의 아들인 조종망을 조원걸의 후사로 들였다.

[1] 조원걸의 형인 조원좌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