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악

 


<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대송의 황족
진공의왕(鎭恭懿王)
趙元偓 | 조원악
'''

'''시호'''
공의(恭懿)
'''작위'''
진왕(鎭王)추봉
''''''
조(趙)
'''이름'''
원악(元偓)
''''''
희도(希道)
'''생몰'''
977년 ~ 1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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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e8b57> '''부황'''
태종(太宗) 조광의(趙光義)
'''형제'''
한공헌왕(漢恭獻王) 조원좌(趙元佐)
소성태자(昭成太子) 조원희(趙元僖)
진종(眞宗) 조항(趙恒)
상공정왕(商恭靖王) 조원분(趙元份)
월문혜왕(越文惠王) 조원걸(趙元傑)
초공혜왕(楚恭惠王) 조원칭(趙元偁)
주공숙왕(周恭肅王) 조원엄(趙元儼)
숭왕(崇王) 조원억(趙元億)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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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북송시대의 황족으로, 제2대 황제인 태종 조광의의 아들이다. 자는 희도(希道).

2. 생애


조원악은 977년에 태종 조광의의 아들로 태어났다. 단공 원년(988년)에 서국공(徐國公)으로 책봉되고, 검교태보, 좌위상장군(左衞上將軍)으로 임명되었으며, 지도 2년(996년)에 홍주(洪州) 도독, 진남군(鎭南軍) 절도사로 임명되었다.
997년 태종이 세상을 떠나고 조원악의 셋째 형인 조항이 제3대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진종이다. 진종이 즉위한 뒤, 조원악은 동평장사가 더해지고 팽성군왕(彭城郡王)으로 책봉되었다. 이후 검교태부, 정난군, 창화군 절도사를 역임하고 영왕(寧王)으로 진봉되었으며, 검교태위 겸 시중, 호국진국군등 절도사를 지냈다. 진종이 즉위한 이래로 조원악은 종실의 자손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았고, 진종도 조원악을 신임하여, 중서령으로 삼고 상왕(相王)으로 봉작하였다.
대중상부 8년(1015년)에 영왕궁에서 일어난 화재로 인해, 조원악의 궁을 경룡문 바깥으로 옮겼다. 이후 천희 원년(1017년)에 서왕(徐王)으로 진봉되었고, 성덕군, 진녕군 절도사를 지냈다. 이듬해 조원악의 궁이 화재로 소실되자, 조원악은 이때의 일로 충격을 받아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진종이 조원악의 죽음을 슬퍼하여 5일 동안 폐조하였고, 조원악에게 태사(太師), 상서령, 등왕(鄧王)을 추증하고 공의(恭懿)라는 시호를 내렸다.
조원악은 풍채가 출중하였고 중후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음율에 정통하였다. 사후 조원악의 봉작은 밀왕(密王)→소왕(蘇王)→한왕(韓王)을 거쳐 진왕(鎭王)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