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칭

 


<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대송의 황족
초공혜왕(楚恭惠王)
趙元偁 | 조원칭
'''

'''시호'''
공혜(恭惠)
'''작위'''
초왕(楚王)추봉
''''''
조(趙)
'''이름'''
원칭(元偁)
''''''
영문(令聞)
'''생몰'''
981년 ~ 1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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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e8b57> '''부황'''
태종(太宗) 조광의(趙光義)
'''형제'''
한공헌왕(漢恭憲王) 조원좌(趙元佐)
소성태자(昭成太子) 조원희(趙元僖)
진종(眞宗) 조항(趙恒)
상공정왕(商恭靖王) 조원분(趙元份)
월문혜왕(越文惠王) 조원걸(趙元傑)
진공의왕(鎭恭懿王) 조원악(趙元偓)
주공숙왕(周恭肅王) 조원엄(趙元儼)
숭왕(崇王) 조원억(趙元億)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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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북송시대의 황족으로, 제2대 황제인 태종 조광의의 일곱째 아들이다. 자는 영문(令聞).

2. 생애


조원칭은 981년에 태종 조광의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다. 7살에 검교태보, 우위상장군, 경국공(涇國公)으로 제수되었고, 이후 태종의 재위기에 악주 도독, 무창군 절도사를 겸하였다. 997년 조원칭의 형인 진종이 즉위하자, 조원칭은 동평장사, 안정군왕이 되었고, 검교태부로 승진하였다. 1005년에는 작위가 서왕(舒王)으로 올라갔으며, 대중상부 연간에는 검교태위, 시중으로 임명되었다. 조원칭의 최종직위는 태보였다.
조원칭은 어릴 적부터 병이 많았고 결국 진종 대중상부 7년(1014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진종은 아우의 죽음을 슬퍼하여 5일 동안 폐조하고, 조원칭에게 태위, 상서령을 추증하고 조왕(曹王)으로 추봉하였으며 공혜(恭惠)라는 시호를 내렸다. 사후 작위는 화왕(華王), 채왕(蔡王)을 거쳐 초왕(楚王)이 되었다.
조원칭은 아들이 2명 있었는데, 아들들이 모두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 때문에, 한공헌왕 조원좌의 손자이자 평양의공왕(平陽懿恭王) 조윤승(趙允升)의 아들인 조종달(趙宗達)를 후사로 삼아 조원칭의 후사를 잇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