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프 플로랑 드 발리에르
1. 개요
Joseph-Florent de Vallière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군인. 프랑스 포병대장으로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에서 활약했다.
2. 일생
2.1. 초기 경력
조제프는 포병대 대장이자, 포평학교 총장으로서 프랑스 대포들의 선진화를 이끌어낸 장 플로랑 드 발리에르(1667~1759)의 아들이다. 그는 처음엔 루이 르 그랑데 대학에서 예수회와 함께 공부했고, 1731년 14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포병 및 공병학교에 입학했다.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이 한창이던 1734년, 그는 필립스부르크 요새 포위전에 참가했다. 이후 조세프는 부르고뉴의 포병대 대위에 임명되었고 1739년에는 지방 보급관으로 승진했다.
2.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1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벌어지자, 조제프는 보헤미아 전역에 참가하 프라하 공략전에 참가했다. 이후 1742년 오스트리아군의 반격에 밀려 패주하는 군대와 함께 프랑스로 귀환한 조세프는 프랑스 포병대의 중위로 임명되어 아버지의 지휘를 받았다. 1743년, 조제프는 성 루이 기사단에 들어갔고 6월 27일 데팅겐 전투에서 마인강 건너편 둔덕에 포대를 설치하고 포병대를 이끌고 영국-네덜란드-헤센 연합군을 향해 포격을 퍼부어 큰 피해를 입혔지만 아군이 패하는 걸 막지는 못했다.
1744년, 조제프는 라인강 방면 프랑스군에서 복무하며 포병대 중위 겸 보병대 준장을 맡았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프라이부르크 포위전을 감독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고령의 나이에 장대비를 맞다가 병에 걸리자, 조제프는 아버지를 대신해 포병대를 이끌어 프라이부르크 공략에 크게 기여했다. 1745년, 조제프는 플랑드르에서 행해진 모든 포위전에서 포병대 지휘를 맡았는데,특히 나무르 요새 포위전에서 훌륭한 기량을 발휘해 요새 수비대가 조기에 항복하게 만들었다.
1746년 10월 11일 로쿠스 전투에 참전한 그는 1747년에 소장으로 진급했으며 포병학교 총장직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는 플랑드르에서 활동해 베르겐 공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748년, 조제프는 마스트레히트 요새 포위전에 가담해 포병대를 진두지휘했으며 전쟁이 끝난뒤 중장으로 진급했다.
2.3. 7년 전쟁
1755년, 루이 15세는 공병 군단과 로얄 포병 군단을 재조직하고 조제프를 이 군단들의 총감독관으로 임명했다. 이후 1756년 7년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미노르카 섬 공략전에 투입되어 리슐리외 공작 루이 프랑수아 아르망 드 비뉴르 뒤 플레시스의 휘하에서 포병대를 이끌었으녀 세인트 필립스 요새 포위전에서 적의 거센 저항에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그들을 구하려고 이동하던 영국 함대가 미노르카 해전에서 패퇴했다는 소식을 접한 요새 수비대가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하면서 겨우 공략할 수 있었다. 1757년, 조제프는 데스트레 백작 루이 샤를 세자르 르 텔리어의 지휘하에 포병대장으로 임명되어 하노버 침공에 투입된 프랑스군과 함께했다. 7월 26일, 그는 하스텐벡 전투에서 포대를 훌륭하게 설치해 연합군을 격파하는 데 기여했다.
1758년 6월23일, 조제프는 크레펠트 전투에서 포병대를 지휘했지만 아군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이후 그는 여러 장성들 밑에서 포병대를 이끌다가 1759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베흐그 생 비녹스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1761년, 조제프는 프랑스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같은 해 스페인으로 파견되어 스페인군의 요새, 군수품, 대포 제작을 감독했다.
2.4. 이후의 삶
전쟁이 끝난 후에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의 밑에서 스페인 포병대를 훈련시키고 스페인에게 귀속된 나폴리 왕국의 포병들을 시찰하고 재조직하는 임무를 맡았던 그는 1771년 조국으로 귀환하여 포병 총 감독관이 되었다. 그 후 그는 1776년 1월 10일 파리에서 병사했다. 향년 5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