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1976)
1. 개요
전 한국프로야구 선수다.
2. 프로입단 전
신일고 시절에는 1학년 위의 선배들인 김재현, 조인성과 함께 팀 타선을 이끌었으며, 1993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결승전에서만 3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등 0.667, 6홈런 17타점이라는 맹활약으로 대회 MVP를 차지했고 그 해 이영민 타격상까지 수상했다.[2] 그리고 이 같은 활약에 힘입어 조현은 계약금 1억 800만 원, 연봉 1,200만 원 등 총액 1억 2,000만 원을 받고 LG 트윈스에 입단하게 된다.[3]
3. 프로야구
이미 앞서 고졸 신인 김재현의 맹활약을 지켜본 바 있는 구단과 팬들은 조현 역시 무리 없이 프로에 연착륙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조현은 데뷔 시즌인 1995년, 전반기에만 팀 내에서 가장 많은 9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기대를 충족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어퍼스윙이 높은 공에 대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노출되면서 슬럼프에 빠졌고, 결국 후반기에는 홈런을 한 개도 때려내지 못했다. 이듬해인 1996년에는 레벨스윙으로 변화를 시도했지만 스윙폼이 흔들려 혼란만 가중시키며 0.212의 타율에 4홈런 21타점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했고, 1996년 시즌이 끝난 후 동봉철과 송유석을 상대로 최훈재와 함께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해태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 채 1998년 시즌 후 군에 입대했다가 전역 후 방출당했다. 그리고 2002년, LG 시절 감독이었던 이광환 한화 이글스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에 입단해 기회를 노렸지만, 1군 6경기에 교체로 나와 1안타를 기록한 것이 전부였고 결국 은퇴했다.
4. 여담
- 2013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 당시 전직 야구선수 브로커가 조모 씨인 걸로 밝혀져 네티즌들은 용의자 중 조현이 승부조작에 가담하지 않았을까하고 의심했지만,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공교롭게도 자신과 동명이인인 조현도 같이 LG에서 뛴바 있다.
- 마구마구에서는 본명이 아닌 '조필현'이라는 이름으로 선수 카드가 등록되어 있다.
- 진짜로 조필현이라는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도 LG 트윈스 소속이긴 했다. 물론 가명처리가 돼서 '조영현'이라는 이름으로 선수 카드가 등록되어 있긴 하지만.
5. 관련 문서
[1] 실제로는 1975년생이라고 하는데 1974년생이라는 말도 있다. 중학교 시절 유급 때문에 나이가 바뀌게 된 것.[2] 사실 그 해 이영민 타격상 수상 예정자는 고교 최고 타율을 기록한 김재현이었으나, 김재현이 연세대학교와의 가계약을 파기하고 LG와 계약해 버린 것에 화가 난 대한야구협회에서 김재현의 수상 자격을 박탈한 것이다.[3] 조현이 받은 1억 2,000만 원은 당시 역대 타자 최고 계약금액이었다. 불과 몇 달 후 심재학, 김재걸 등이 이를 경신하긴 했지만.[4] 당시 멤버들로는 이호준, 김경태, 조인성, 신경현, 채종국, 김재현, 손인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