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군인)

 


'''조홍(趙洪)'''
[image]
'''생몰년도'''
1933-2018
'''복무'''
대한민국 육군
'''임관'''
육사 13기
'''최종계급'''
준장
'''최종보직'''
육군본부 헌병감
'''주요보직'''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장
1. 개요
2. 상세
3. 행적
4. 그 외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군인.

2. 상세


경상남도 함안군 출생이다. 육군사관학교 13기로 보직은 헌병. 12.12 군사반란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장직에 있었다. 사령관 장태완 소장의 직속 부하였으나 하나회 소속으로 반란에 가담하였다.

3. 행적


12.12 및 5.18 사건을 재수사하는 검찰의 소환 1호 조홍(趙洪)당시 수경사 헌병단장(대령)은 쿠데타 성공후 정.관계에그렇게 화려하게 데뷔하지는 않았지만 검찰의 사건기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검찰조사 결과 趙씨의 12.12 당시 역할은 전두환(全斗煥)보안사령관의 지시를 받고▶거사 직전 정병주 특전사령관과장태완 수경사령관,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 등 핵심지휘관의 격리▶윤성민(尹誠敏)육군참모차장등 육군 수뇌부와 張수경사령관등의 체포 및 무장해제 두가지로 나눠진다. 정병주, 장태완 사령관, 김진기 헌병감의 격리를 맡았다.
全씨는 12월7일 노태우(盧泰愚)당시 9사단장 등과 만나 「12월12일」을 거사일로 정한 뒤 거사 당일 예상되는 대응조치를 고려, 육군직할부대 핵심지휘관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방법으로 소속부대에서 격리시키기로 결정한뒤 이 작업을 허화평(許和平)보안사령관 비서실장과 趙씨에게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趙씨와許대령은 그때부터 鄭특전사령관 등을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로 『全씨가 저녁식사에 초대했다』며 거사 당일 서울마포구연희동의 모요정에 유인,1시간여동안 잡아두는데 성공했다. 趙씨는 거사가 거의 신군부측의 승리로 기울어질 무렵인 오후11시쯤 全씨로부터 당시 수경사로 지휘부를 이동해있던 육본 수뇌부 등의 무장을 해제하고 이들을 전원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고 작전에 돌입한다. 거사 다음날인 12월13일 오전3시40분쯤 趙씨의 명령을 받은 신윤희(申允熙)헌병단 부단장은 헌병단을 동원,수경사령관실에진입해 하소곤(河小坤)육본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해 부상을입히고 윤성민 육군참모차장,문홍구(文洪球)합참 대간첩대책본부장,張수경사령관,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 등을 무장해제시킨 뒤 이들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하는데 성공한다.[1]
헌병감에서 예편한 후 도로교통안전협회 감사와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를 대대적으로 숙청함에 따라 12.12 군사반란 재판을 피하고자 해외로 도피했다. 1995년에 미국으로 도주한 후 은둔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SBS 취재결과 '''1997년 이래로 군인 연금을 계속 수령한 것이 밝혀졌다.''' 더 웃긴건 조홍 전 헌병감이 국방부에 직접 매년마다 신상신고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조홍 전 준장이 죽은 후 국방부는 군인 연금 지급을 중단한다.

4. 그 외


미국이 보호하고 있었다는 가설이 돌았던 적이 있다. 이대로라면 조현천도 자살하지는 않았겠으나 불법체류자 문제를 고사하고서라도 무슨 수로든 은거하며 살아남아 대한민국 본토에 살아서 다시는 안 돌아올 확률이 높다.

[1] 출처: 중앙일보: 소환된 2人12.12당시 행적-前수경사 헌병단장 조홍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