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방위사령부
[clearfix]'''살아방패! 죽어충성!'''
'''시민을 보호하고, 서울을 굳게 지키자!'''
'''조국의 심장 수도서울의 방패'''
1. 개요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을 근거지로 하는 대한민국 육군 소속 군단급 기능/작전사령부. 애칭은 '''방패부대'''. 별칭은 '''충정대(忠正臺)'''.
1961년 6월 1일 창설되었으며, 2개의 사단과 1개의 여단을 예하에 두고 있다. 2020년 현재 사령관은 김도균 중장(육사44기)이다.
2. 역사
1961년 6월 1일, 5.16 군사정변 직후 서울을 장악한 정변세력의 보호를 목적으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현재 미군부대 위치 내)에서 정변에 참여한 몇몇 부대들(주로 30, 33사단 병력)의 일부를 모아 사단급(지휘관 계급 소장)으로 창설되었다. 이때는 임시 부대의 성격이 강했으므로 편제나 규모를 논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당시 정변에 동원된 30, 33사단에서 1개 대대씩 차출되어 수방사 30, 33경비대대가 되었다가 30, 33경비단으로 승격되었는데, 이들이 현 수방사의 핵심 직할부대인 제1경비단의 전신이다. 5.16 쿠데타 당시에 이미 수도권을 관할하던 위수부대인 제6군관구사령부(현 수도군단)가 존재해왔던 것을 고려하면, 수방사는 서울지역 위수부대로서의 역할보다는 당시의 군사정권의 친위대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런 역사 때문에 문민통제를 중시하는 일각에서는 수방사를 수도군단에 통폐합시키자는 개혁안을 주장하기도 한다.
1962년 용산구 후암동에서 중구 필동(현재 남산골한옥마을 위치)으로 이전했다.
1963년 '수도경비사령부(The Capital Garrison Command)'로 개칭되었다. 이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이름이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수경사가 더 익숙한 사람들도 많다.
1974년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이후 신임 청와대 경호처 경호실장 차지철이 수경사 예하에 대통령경호실 지원부대를 창설했다. 물론 편제상으로만 수경사고 지휘권은 자신이 가졌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이 부대들은 여전히 경호처장이 지휘한다.
1979년 12월 12일, 12.12 군사반란 당시 수경사의 전투병력 대부분을 지휘하던 장세동(경복궁 제30경비단장), 김진영(33경비단장), 조홍(군사경찰단장) 등은 '''직속상관인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배신하고 반란의 주축이 되었다.''' 게다가 당시 대통령경호실 소속 장교들도 모조리 하나회 소속이었기 때문에 경호부대도 반란에 가담하여 국무총리 공관을 불법적인 무력형태로 장악했다.[2] 말 그대로 수방사 최악의 흑역사. 장태완이 쫓겨난 이후 사령관직은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당시 노태우 소장이 꿰찼다.
1984년 군단급(지휘관 계급 중장)으로 증·창설되었으며 다시 '수도방위사령부'로 개칭되었다. 100, 60훈련단이 각각 52, 56사단(+ 지금은 폐지된 57사단)으로 수방사 예하로 증·창설되면서 17, 30사단이 담당했던 서울 강남, 강북지역 위수임무를 넘겨받았다. 이에 따라 사령부 관할 위수지역이 서울시 한강이북지역에서 서울시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사단뿐 아니라 몇몇 소규모 부대들도 이때 수방사 예하로 추가로 편입되었다.
1990년 60훈련단과 71방위사단이 각각 제60보병사단과 제71보병사단으로 증설·개편되며 수방사 예하로 편입되었다. 이로써 수방사 예하 향토사단(52, 56, 57사단)/동원사단(60, 71사단) 편제가 완성되었다.
1991년 사령부가 필동에서 현재의 남태령(국군수송사령부 옛 부지[3] )으로 이전하였으며, 필동에 있던 사령부 자리는 남산골한옥마을/한국의 집이 되었다.
1996년 33경비단이 경복궁에 주둔하던 30경비단을 흡수·통합하는 형식으로 제1경비단으로 통폐합되었고, 동시에 함께 있던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들도 현위치로 이전했다. 이들 부대가 주둔하던 경복궁 주둔지는 본래 왕실의 빈전(국상시 빈소)으로 쓰이던 태원전, 집옥재 권역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 및 총독 관저를 경비하는 일본군 부대가 주둔했다. 통폐합 이후 경복궁 주둔지는 철거되고 그 자리에 태원전 등 경복궁 전각이 복원되었는데 일제 및 군사정권 잔재 청산과 문화재 복원 등의 목적이 있었던 듯하다.
2002년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악대가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국 vs 독일 4강전의 국가 연주에 참여하였다. 이 때 수도방위사령부 군악대의 반주로 성악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바리톤 최현수가 애국가를, 독일 가수 안나 마리아 칸프만이 독일 국가를 불렀다.
2004년 육군본부 직할 제1113야전공병단이 수방사 직할로 편입되었고, 2007년 이름에서 '야전'이 빠져 그냥 제1113공병단이 되었다.
2011년 12월 57사단이 해체, 56사단으로 흡수되었으며 3야전군 직할 제1방공여단이 수방사 직할 제10방공단을 흡수하고 수방사 직할로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방공 임무 한정으로 실질적 관할구역이 경기도 일부 지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2016년 11월 30일 71사단이 해체되었다.
2018년 4월 60사단이 육군동원전력사령부로 예속변경되었다.
2.1. 수방사 창설 이전
물론 수방사 이전에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지키는 부대들은 당연히 존재했고, 첫 주자는 1948년 창설된 (구)수도경비사령부(지금의 수도사단)와 1949년 5월 12일 (구)수도사단으로 승격한 7여단(지금의 제7보병사단)이 있었다. 그러나 (구)수도사단이 그 명칭답게 경기도 동두천과 포천 전방 경계를 맡던 도중 한국전쟁이 발발했는데, 문제는 장비와 병력차로 동두천과 포천, 그리고 의정부에서도 속수무책으로 밀려 결국 경비할 수도까지 잃어버리자 (구)수도사단은 그나마 온전하게 남아있던 수도경비사령부에게 1연대와 수도사단 명칭을 넘겨주고 임시 해체되었고, 그 후 수도경비사령부는 지금의 수도사단이 되었다. 하지만 두 사단은 각각 강원도 화천군과 경기도 동북부 일대에 머무르게 되었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정확히는 1955년 전후)부터 수방사가 창설된 1961년까지는 영등포 주둔 제6군관구사령부 및 그 예하 사단들(30, 33사단(현 17사단))이 서울의 방어를 담당했다. 수방사 창설 이후에도 군단급으로 증설되기 전까지는 한강 이북 도심(청와대 포함)만 수경사(수방사)가 담당하고, 한강 이북 나머지 지역 및 한강 이남은 여전히 6관구사가 담당했다. 서울 도심은 수경사가, 외곽은 30, 33사단이 지켰다고 간주하면 쉽다.
지금은 30사단은 일개(?) 기계화보병사단으로, 33사단(현 17사단)은 인천지역 위수사단이 되었지만, 수방사가 없었던 당시에는 각각 서울 북부와 남부(+인천을 비롯한 경기 서남부권)를 관장하는 거대한 부대였다. 17사단의 모 예하부대가 아직도 서울시 내에 주둔하고 있는 것도 그 흔적이다. (더욱이 17사단은 51, 52사단의 아버지나 다름없다. 해당 항목으로.) 참고로 당시 서울지역 향토예비군 교육훈련은 30사단이 담당했다.
6관구사는 이후 경인지역방어사령부를 거쳐 오늘날 수도군단이 되었으므로, 따지고 보면 이름에 수도가 들어가는 세 부대(수도기계화보병사단, 수도군단, 수도방위사령부)가 돌아가면서 서울을 지켜온 셈이다. 현 수방사의 52, 제56보병사단, 수도군단의 17, 제55보병사단, 1군단의 30사단이 옛 제6군관구사령부를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3. 상세
애칭이 방패부대이고, 부대마크도 방패가 바탕이라 예하 사단 마크들도 방패 모양에 부대 넘버가 형상화된 모양으로 되어있다.[4] 참고로 마크가 상징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방패: 자유와 평화 수호의 상징.
- 황색: 평온, 평화를 의미하며 서울시민의 안녕과 질서를 상징. (다만 저시인성을 위해 전투복 부착마크는 녹색이다. )
- 삼각형: 수도 서울을 의미하는 삼각산(북한산)을 상징.
- 자색: 불의에 굴하지 않는 굳건한 정신과 뜨거운 정열을 의미
- 대검: 힘을 지닌 정의의 군대를 상징하며 어떠한 적도 한 칼에 분쇄하겠다는 의미.
- 백색: 국가 원수에 대한 충성, 시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의미.
서울에 있는 데다 역사적으로도 워낙 유명한 대형 상급부대라 위치를 숨기는 것이 사실상 무의미해 홈페이지가 2018년 폐쇄될 때까지 위치를 대놓고 공개했다. 서울 관악구 남태령역 앞, 남현동의 관악산 동쪽 기슭에 있다. 국군지휘통신사령부, 국군수송사령부도 인근에 있다.[6] 물론 서울 시내 및 근교에 흩어져 있는 예하 직할 부대들의 위치는 군사기밀...이긴 유명한 부대들은 그마저도 유명무실하다. 심하면 아파트로 둘러싸인 곳도 있으니... 배치 초기에는 주변이 숲이었는데, 시간이 지나 개발된 탓에 그렇게 된 곳도 있다.
안보지원사, 정보사 등도 마찬가지지만, 여기로 선발된 신병들은 '''사령부'''라는 이름 때문인지 수방사가 서울 시가지 어딘가에 있는 '큰 빌딩 하나'인 줄 알고 설레기도 한다(…). 아마도 수방사 소개 사진(당장 본 문서 상단의 사진 포함)에 으레 나오는 제1방공여단 빌딩 GOP 때문에 무의식 중에 생긴 착각일 듯. 실제로는 당연히 일반 군부대처럼 생겼고,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는 예하부대들도 다 마찬가지다.
당연하지만 본 문서는 사령부 자체 및 그 직할 부대를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다. 예하 사단들(52, 56)에 대해서는 해당 개별 문서들을 참고바람. 해당 사단들은 위치가 수도권일 뿐 여타 향토사단과 별 차이가 없다. 일반적인 군단 사령부와 예하 사단들의 관계라 생각하면 되며, 다만 군단급 사령부들 중에서는 수방사의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고 특이사항이 많다보니 문서가 유달리 길고 자세한 것뿐이다.
수방사의 정체성은 상당히 독특하다. 수방사의 규모나 임무를 보면 '''수도'''방위사령부라기보단 '''청와대'''방위사령부에 더 가까우며[7] , 애초에 창설 목적이 그거였으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서울의 규모에 비하면 수방사 병력은 의외로 적은 편인데, 적 주력이 서울시계에 진입해 수방사가 최전선에서 싸울 정도면 이미 서부전선(구 3야전군 지역)의 수많은 상비사단들이 모조리 뚫렸다는 것이기 때문. 그쯤 되면 수방사가 애초에 뭘 할 수가 없다.
때문에 수방사는 (대놓고 말하긴 껄끄럽지만) 야전 대비 보다는 '서울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상징성이 더 강하다. 육군의 부대들을 크게 전투부대와 기행부대로 나눈다고 할 때, 수방사는 일단 전투부대이긴 한데, 그렇다고 전투부대의 주임무인 '전쟁을 대비한 훈련'이 핵심이 아니라 특정지 방어 및 질서 유지, 유사시 서울시내 치안 확보 등 민사(civil affairs)스러운 작전 업무가 핵심이다. 이는 수방사의 3대 직할부대인 1경비단, 1방공여단, 군사경찰단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직할부대에 해당된다. 이러한 특징은 후술할 수방사의 독특한 복무환경에도 영향을 끼친다.
물론 그렇다고 수방사의 중요성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도를 지키는 부대는 언제나 정예로 인정받아왔으며, 더구나 한국은 수도가 휴전중인 적국과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로 더욱 중요하게 취급된다. 일단 편제상으로는 군단급이며 사령관 또한 군단장과 동일한 중장이지만, 지상작전사령부와는 독립되어 육군본부 직속으로 명령체계가 짜여 있어서 위수지역인 서울특별시에서의 작전권한을 독자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위상은 일반 야전군단보다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령관의 위신과 권한은 여타 군단장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 게다가 수방사는 유사시에 해공군 및 경찰 병력을 배속받을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인지 부대 명칭도 '육군수도방위사령부'가 아니라 '수도방위사령부'라 명명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수방사의 주요 임무중 하나가[8] 바로 예비군이다. 전방의 현역은 전쟁 시작과 동시에 증발하고 실제전력은 예비군이라는 식의 자조석인 말도 있을정도로 과장해서 말하면 진정한 국군의 주력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예비군 자원 대부분의 평시 관리와 전시 소집 및 전방 투입의 임무를 수방사가 맡고 있다. 물론 수방사만의 역할은 아니고 제2작전사령부, 육군동원전력사령부등과 권역을 나누어 함께하는 수준이지만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된 한국의 특성상 예비군 대부분은 수방사가 담당하며, 오히려 부대 규모에 비해서는[9] 더 많은 예비군을 관리하는 셈이다.
때문에 한미공조를 요하는 여타 부대들과는 달리 수방사는 육군미사일사령부, 제2작전사령부와 함께 대한민국이 직접 지휘권을 행사하는 몇 안되는 부대다. 전시에도 일반적인 경우에는 미군(연합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것.[10] 개전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털려버린 6.25 전쟁의 아픈 기억으로 인해 이후 국군이 수도 서울 절대 사수를 최우선 방침으로 정하면서 부대의 임무 중요성이 매우 커졌기 때문에, 수도방위사령관은 합참 작전본부장과 더불어 중장 보직 중에서도 손꼽히는 요직이다.[11] 김태영(육사 제29기), 한민구(육사 제31기)는 수도방위사령관을 거친 뒤에 국방부 장관까지 갔으며, 노태우(육사 제11기)는 아예 대통령까지 차지했다. 이는 수방사에 몸담는 장교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수방사의 이런 특이성은 양날의 검이기도 한데, 수방사령관은 군단장급 보직 중에서도 유달리 정치적인 측면이 강한 자리라 개인의 실력이나 인망 외에도 당시의 정치적 상황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당장 12.12 당시 전임 사령관과 후임 사령관의 엇갈린 운명만 봐도 그렇고, 애초에 12.12에 수방사 주력 직할부대들이 그렇게 많이 가담한 이유도 육군의 핵심 진급 코스라 하나회 멤버들이 바글바글댔기 때문이다. 현재도 이런 특징은 남아 있어서, 수방사령관은 군단장급 지휘관들 중에서도 특히 대통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며, 사령관의 거취나 인사가 종종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기도 한다.[12]
반면 수방사 예하 사단들은 하나같이 한직이다. 그래도 서울이랍시고 육사 출신이 사단장을 차지하는 일이 많지만, 향토사단장이나 동원사단장은 소장에서도 말석이다. 즉 수방사령관 대부분은 예하사단이 아닌 전방 상비사단장 출신이다. 우선 사단은 군단에 예속(隷屬)되어 있을 뿐 건제(建制)되지 않아서 그다지 긴밀한 관계는 아니기도 하고[13] ,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52·56사단은 감편 향토사단이라 인원이 매우 적고 영향력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이 나 두 사단이 완편되면 다른 얘기겠지만, 평시에는 '서울을 지킨다'는 임무에 좀 더 직결된 것은 수방사 직할부대들이지 두 사단이 아니다. 참고로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예비군이 충원되지 않은 평시에는 52·56 두 개 사단 병력을 합해도 1경비단 병력 될까말까다.
때문에 수방사는 여타 군단들과는 달리 예하사단보다는 직할부대의 비중이 매우 크고, 수방사에만 있는 특유의 직할부대들도 많다. 전군 유일의 여단급 방공부대인 제1방공여단, 전군 유일의 단급 군사경찰부대인 군사경찰단 등이 그 예 이며, 단급 경비부대를 두 개(제1경비단, 제55경비단)나 가진 군단급 제대도 수방사가 유일하다. 좀 뜬금없지만 수방사 군악대 또한 워낙 서울시내 각종 행사에 불려다니는 일이 많다보니 계룡대, 국방부, 육사 군악대와 함께 A급으로 분류되는 몇 안 되는 군악대다.
또한 장태완 前 수경사령관의 12.12 당시 전차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방사령관은 수도 서울에서 전투부대인 [14] , 보병, 군사경찰, 특공, 방공부대와 전투지원부대인 공병, 화생방[15] 부대를 바로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지휘관이며, 서울시내 전 예비군을 관할하는 제52보병사단과 제56보병사단 또한 수방사의 지휘를 받는다. 게다가 서울에서 국제적인 행사가 워낙 자주 열리다 보니 심심하면 행사에 병력이 차출되며 심지어 대통령경호실에도 병력이 파견된다. 과거 서울에서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이 열렸을 때, 21세기 들어서 2002년 한일 월드컵[16] 과 2010 G20 서울 정상회의,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이나 매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리는 현충일 행사도 이들이 활약한다. 따라서 수방사는 한국군 내 주요 부대 중에서도 핵심인 부대이며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휘관심이 가장 높은 부대다. 단 현재는 기갑전력은 타 부대로 배속되었다.
이런 다소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권한 집중 때문에, 과거에는 만약 수방사령관이 예하 사단장들과 작당하여 쿠데타라도 일으킨다면 수도군단 예하 보병사단들과 특전사 병력에 의해 어떻게 진압되더라도 수도 서울이 상당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았다.[17] 당연히 오늘날은 성범죄만 일으켜도 사단장조차 즉시 구속되는 17사단에서의 예만 봐도 이제는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물론 12.12때 처럼 기무사와 국정원이 한패이거나 또는 무력화된다면 안심할 수는 없다.
4. 편제
이하의 부대들과 별개로, 수도군수지원단(제1군수지원사령부), 국군서울지구병원(국군의무사령부)의 지원도 받는다.
4.1. 직할부대
사령부 영외에 독립적으로 주둔하는 부대는 ★로 표시.
일반적인 군단 및 군단급 육직 사령부의 본근대와 대동소이하다. 통신을 담당하는 부대가 정보통신단이라는 별개의 직할대로 존재하기 때문에 예하에 통신대는 없다.
'운전병의 묘지'라고 불린다. 화생방 부대 특성상 수방사예하 다른부대들과 달리 무조건 K-721제독차와 K-316화생방 정찰차같은 전투차량 운용이 강제화 되는데, 여긴 서울이다. 안그래도 일반 K711보다 차가 길고 무거운 제독차량과 화생방 정찰차를 운용해야 하는데 주둔지 바로 앞만 나가도 고가의 수입차들이 도로에 깔려있는데, 이 차들을 타고 서울시내까지 가야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도 방공여단에 배치된 중형면허 운전병들[18] 보다는 나은편이다.
- 제35특공대대
- 군수지원대대 ★
대에서 대대로 승격되었지만 여전히 군지대로 부르는 사람이 많다. 각 사단의 보급수송대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본부+보급중대, 수송중대, 정비중대로 구성되며, 과거에는 본부중대가 따로 있었으나 현재는 보급중대와 통합되었다. 서울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대형 군수지원부대다 보니 수방사 이외의 서울 소재 다양한 부대들에도 보급지원을 한다.(부식 수령일마다 공군같은 타 군을 포함한 근처 부대에서 새벽부터 부식수령차들이 엄청나게 온다.) 비교적 최근까지 구막사였지만 2014년 가을 으리으리한 신막사가 완공되었으나, 생활관에 에어컨이 없다. 영외부대긴 한데 사령부와 매우 가깝다. 종교행사도 사령부 내로 갈 정도. 한때 단급으로 승격 개편하는 것이 논의되고 있었으나, 2017년 이후의 비전투병과의 축소 탓에 흐지부지 되었다.
과거에는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 중 하나인 88지원대 인원이 면접 합격 후 자대배치 전 신원조회 대기기간동안 군지대에 일정기간 머물렀다가 가고는 했다. (군지대인원들의 부러움의 대상) 이유는 88이 편제상 군지대 예속이기 때문. 만약 신원조회에서 탈락하면 군지대가 그대로 자대가 된다.
참고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용산 미군기지와 해방촌 사이라는 기막힌 위치에 있었다. 위치도 위치에다 남산 기슭의 살짝 고지대에서 용산과 한강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환상적인 뷰를 자랑했다. 군지대가 현위치로 이전한 이후에도 한동안 부식 보급만은 해당 위치에서 이뤄졌다. 2020년 현재는 그마저도 과거의 일이 되었으므로 보안상 저촉되지 않아 서술하며, 해당 위치는 미군기지와 함께 용산공원의 일부가 될 예정이다.
과거에는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 중 하나인 88지원대 인원이 면접 합격 후 자대배치 전 신원조회 대기기간동안 군지대에 일정기간 머물렀다가 가고는 했다. (군지대인원들의 부러움의 대상) 이유는 88이 편제상 군지대 예속이기 때문. 만약 신원조회에서 탈락하면 군지대가 그대로 자대가 된다.
참고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용산 미군기지와 해방촌 사이라는 기막힌 위치에 있었다. 위치도 위치에다 남산 기슭의 살짝 고지대에서 용산과 한강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환상적인 뷰를 자랑했다. 군지대가 현위치로 이전한 이후에도 한동안 부식 보급만은 해당 위치에서 이뤄졌다. 2020년 현재는 그마저도 과거의 일이 되었으므로 보안상 저촉되지 않아 서술하며, 해당 위치는 미군기지와 함께 용산공원의 일부가 될 예정이다.
- 의무근무대
한때 육군군수사령부 예하 탄약창을 비롯한 각종 육직부대에서 오는 현역복무부적합자들을 관리하는 병역관리심사대가 함께 있었으나 부대 개편으로 인하여 현재는 병역관리심사대는 해체되었다.
- 군악대
규모(50인 이상)나 실력(전공자 이상) 면에서 소위 A급으로 분류되는 군악대들(국방부, 계룡대, 육사, 수방사) 중 하나다. 가끔씩 타 직할부대가 유격행군을 마치고 사령부로 들어오는 길에서 수고했다고 반기는 노래를 연주하기도 했다. 크라잉넛 멤버 전원이 수방사 군악대에서 복무했다. 또한 상암 윌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002월드컵 한국 vs 독일 4강전 경기에서 애국가와 독일 국가 연주에 참여하였다.
- 방패교육대(보충대)
영외부대였으나 보충대로 개편되면서 본부근무대 막사로 이전하였다. 이전하면서 본부근무대와 막사는 같이 쓰게되었다. 2020년 기준 본부근무대와 같이 막사를 쓰던 방패교육대도 없어졌다.
- 제1문서고관리대
육군본부가 대전 인근 계룡으로 내려가면서 서울에 있던 문서고를 수방사가 인수받게 된 것.
4.1.1.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 ★
당연하지만(?) 사령부 영외에 주둔한다.
4.2. 예하부대
5. 과거부대
2011년 12월 56사단으로 부대 통합 및 해체.
- 제60보병사단(권율부대)
2018년 4월 5일 육군동원전력사령부로 예속전환.
2016년 11월 30일 부대해체.
지금의 제1방공여단과 통합 및 해체.
2019년 현재 제1기갑여단에 예속.
지금의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 직할로 변경.
사령부 내 인쇄물을 담당하던 부대였으나 군 인쇄물의 민간 위탁(아웃소싱)으로 인해 부대해체. 해체 전엔 전 군에서 손꼽히는 가장 편한 부대 중 하나였다. 여성 군무원이 상당수 있었으며, 간부는 장교와 부사관 다 합쳐서 두 명에 불과했다. 간단하게 군무원 십수 명에 병사 2개 분대 그리고 장교, 부사관 끝. 병사들은 주로 작업이나 운행을 했으며, 인쇄 소요가 끊임없이 밀려들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훈련은 가라로 할 수밖엔 없었다. 덕분에 1년 중 제대로 된 훈련은 유격훈련 정도밖에 없었다.
6. 출신인물
6.1. 사령관
6.2. 장교
6.3. 병
7. 기타
7.1. 관악회관
7.2. 근무환경
수방사라 하면 땡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원화하기 힘들다.
애초에 수방사는 한 덩어리가 아닌, 여러 예하부대가 모여 구성된 거대한 집단이다.[20] 사령부 및 일부 직할부대는 남태령에 있지만, 그 외에 1경비단, 1방공여단, 공병단, 경호부대 등은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으며, 해당 부대들의 예하부대들이 또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하다못해 단본부는 남태령에 있는 군사경찰단도 예하부대는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다. 서울 시내만 해도 다양한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어떤 주둔지는 시가지에 있는 반면 어떤 주둔지는 산 위에 있기도 하고, 심지어 고층건물 옥상에 있는 주둔지도 있다. 각 부대들마다 임무도 완전히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므로 이걸 싸잡아 "수방사는 편하다/아니다"를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입대동기가 똑같이 수방사에 배치되었는데 누구는 육군 상위 1%의 꿀을 빨고 누구는 최전방 GOP에 준하는 빡센 군생활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한 울타리 안의 바로 옆 건물에 지내면서 천국과 지옥이 갈리는 경우(실제 사례다.)도 있을 정도로, 아무리 군생활이 케바케라지만 수방사는 좀 심한 편이다.
그래도 평균적으로는 괜찮은 자대임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서울'''이다. 괜히 서울이나 도심권 부대들이 위치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게 아니다.[21] 기약없는 황금마차를 기다린다든지 겨울에 배관이 얼어 물이 안 나온다든지 생활관에 고드름이 언다든지 할 일도 없고, 눈도 적게 오며 그나마도 덜 쌓인다. 서울의 GOP라 할 수 있는 경비단이나 방공여단 일부 산악진지를 제외하면[22] 지형도 평탄하다. 면회도 편하므로 곰신과 매주 면회하는 병사들도 많다. 또한 심리적으로도 도심에서 군생활한다는 것은 장병들의 심리에 큰 위안을 준다. 대부분의 수방사 직할부대는 담장 밖이 서울 시가지인데, 휘황찬란한 서울 야경과 끝도 없이 펼쳐진 격오지의 두메산골 중 어느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지는 자명하다. 물론 반대로 희망고문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지만, 신병들에게 자대를 서울과 오지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9할 이상은 서울을 택할 것이다.
흔히 몇몇 수도권 사단들(17사단, 51사단 등)이 꿈이니 환상이니 하는 별명으로 불리며 부대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수도권 전철역까지 직통이라는 둥 으스대는데, 수방사 병사들에겐 그저 가소로운 이야기다. 당장 사령부 정문 앞 지하철역에서 한 정거장 거리에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인 사당이 있고, 부대들이 서울시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보니 개중에는 황당한 곳에 있는 주둔지도 많다. 오히려 남태령에 있는 사령부 본부가 외진 축에 속할 정도.[23] 고층빌딩 옥상에서 근무서는 빌딩 GOP야 유명하고, 부대 정문 바로 앞에 클럽(…)이 있다거나, 심지어 모 직할부대에서는 '''부대 담장 옆 아파트'''에 살던 신병이 들어온 적도 있다. 입대 전에 다니던 모교가 자대에서 보이는 정도는 신기한 축에도 못 낄 정도. 비견될 만한 곳은 용산구의 국근단과 연합사, 이태원동 경리단길의 어원이 된 국군재정관리단 정도.
이렇게 도심에 있는 부대들은 대부분 원래는 한적한 곳에 부대를 만들었다가 이후 도시화가 진행돼서 그렇지만, 수방사는 원래 존재 목적 자체가 '''서울 방어'''이기 때문에 딱히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사령부는 서울의 중심인 중구에서 다소 외곽인 지금의 남태령으로 밀려난 것이다. 다만 원래 수방사 소속이 아니었던 제1방공여단이나 제1113공병단 본부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각각 과천시, 안양시)에 있다.
뭐니뭐니해도 서울권 부대의 최대 장점은 출타의 편리함이다. 전방부대의 경우 휴가를 나오면 이동에만 첫날과 마지막 날을 거의 날린다는 점을 고려해 보자. 즉 이는 반대로 말해 연고지 근처에서 복무하는 사람은 휴가가 공짜로 하루 더 늘어나는 셈이란 뜻인데,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산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엄청난 장점. 집이 서울이면 '출발일에 집에서 아침먹고, 집에서 저녁먹고 복귀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특히 이 장점은 기간이 짧고 위수지역 제한이 있는 외출·외박에서 극대화된다. 수방사 직할부대의 위수지역은 서울을 포함해 인천-수원-의정부를 둘러싼 반경까지다. 즉 쉽게 말해 서울 반경의 두 배 정도까지라고 보면 된다. 연고지가 수도권이면 외출/박만으로도 웬만큼 커버되고, 설령 지방 출신이라 집에 못 가더라도 신촌, 홍대, 이태원, 강남 등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놀 거리가 널려 있다.[24] 전방 격오지에서는 외출·외박 나와봤자 변변히 놀 거리도 없는데다 길에 깔린게 간부들이라 마음 편히 놀지도 못하고, 그나마도 군인 상대 바가지 물가에 두 번 우는 걸 고려하면 자대가 서울이라는 것은 거의 치트키 수준이다. 추가로 2019년 들어 병사들의 평일 외출 제도가 (비록 제한적이나마) 생김으로써 수방사를 비롯한 서울권 부대의 메리트는 더욱 커졌다.
또한 수방사는 법적으로는 전투부대지만[25] 실질적으로는 기능부대이므로 전방부대에 비해 '''훈련이 적고 유격·혹한기도 짧다(2박 3일).''' 심지어 아예 안 받는 직할부대도 있다. 그 외의 훈련들도 뭔가 전방부대와는 다른, 서울 시가전에 맞춰진 훈련 위주이며 그나마도 평시 업무량이 많다보니 훈련의 절대적인 양 자체가 전방 전투부대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적다.[26] 만약 수방사에서 전방부대와 비슷한 양의 훈련을 실시했다간 그 즉시 부대업무가 마비되고 말 것이다.[27]
그렇다고 장점만 있느냐면 물론 아니다. 수방사는 근본적으로 '''군사정권의 친위대'''로 출발한[28] 부대기 때문에 과거에는 군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고 하며[29] , 병영선진화가 많이 이뤄진 현재도 수방사의 양대 고참(?)급 부대인 제1경비단과 군사경찰단에는 그때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30] 그와 별개로 제1방공여단은 방공이라는 보직 특성(폐쇄적인 생활, 빡센 근무, 수많은 암기사항)상 특유의 내무부조리도 매우 심했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위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수방사는 명목상 중요한 임무를 띤 부대고, 그리고 그런 중요한 부대는 대체로 바쁘고 빡세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방사 예하 부대들은 허구헌날 스타나 고위공무원들이 들락거리며, 그렇다고 차라리 계룡대처럼 아예 발에 채이도록 상주하는 거면 그러려니 하겠으나 그것도 아니다. 게다가 서울시내 무슨 행사만 했다 하면 불려다니고, 툭하면 몰상식한 인간들이 수도권 비행금지구역에서 드론 같은 걸 띄워서 비상 걸리는 등 이래저래 성가신 일이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워낙 바쁘다보니 전투훈련을 거의 못한다는 장점(?)도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물론 이런 "내 군생활이 가장 힘든 법" 류의 이야기는 언제나 케바케다. 한 병사가 둘 이상의 부대 생활을 온전히 체험하며 비교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자연히 이 부대는 어떻다 카더라 식의 구전되는 썰만 계속 살을 붙여 연명하는 것이다. 군사정권의 친위대였니 어쩌니 해 봐야 냉정히 말해 이젠 그것도 수십 년 전의 이야기고, 오늘날의 부대 분위기를 결정짓는 것은 전후방을 막론하고 결국 그때그때의 간부와 선임들이다. 예를 들어 본근대나 군지대, 정보통신단 등은 그냥 평범한(?) 서울권 기행부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편 수방사 직할 부대와 달리 예하 사단들은 서울시계(市界)와 접한 경기도 근교도시에 주둔하는 경우가 많다. 즉 수방사 예하 향토사단은 타 향토사단과 다르게 자기 위수지역이 아닌 남의 부대 위수지역에 주둔하는 셈이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이들 사단이 창설된 게 비교적 최근인 80년대인데 이때쯤이면 이미 서울 시내에 사단 사령부가 들어갈 만한 부지가 남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있던 부대들도 서울 밖으로 옮기는 판에...
그 외에도 12.12 사태 이후 서울 시민 및 시·정부기관에서 서울시 내에 군부대가 주둔하는 것을 극히 꺼리게 된 것도 한 이유다. 그 흔적으로, 최근까지 수방사 예하 사단 소속 연대들이 서울시 내에 진입하는 모든 군 소속 차량들을 '''기무사'''에 보고해야 했다. '''훈련, 비훈련을 막론하고.''' 현재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두돈반 등 군용 표준차량의 서울시내 진입이 제한(가능은 하다.)되어 있기 때문에 수방사 직할부대의 차량들은 대부분 민수용 차량이며[31] , 특히 시내에 존재하는 부대들에는 기껏해야 레토나를 제외하면 대부분 민수차가 배치되어 있다. 운전병들에겐 축복받은 환경이자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는 특이한 환경이다.
그중에서 광명시는 경기도 도시 중에 수방사의 입김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다. 52사단 본부가 광명에 있는데, 정작 그곳을 책임위수지역으로 하고 있는 수도군단 예하 51사단은 광명시에 주둔부대가 없다. 수능 수험생 수송 작전에 수방사 군사경찰단이 철산역까지 출동하기도 했다. 고양시, 구리시, 안양시, 남양주시 등지에도 예하 부대가 많지만 수방사 예하가 아닌 다른 보병부대도 많은지라 광명시의 경우보단 덜하다고. 광명시와 다르게 해당 지역을 책임지는 사단의 본부나 예하부대가 있고 특히 고양이나 남양주 같은 곳은 다른 보병사단들도 많이 있는지라. 진짜 사나이에 나온 훈련 장면과 같이 과천시도 수방사의 입김을 받는 동네이기도 하다.
상기한 이유들로 수방사 예하 사단 장병들의 외박 허용구역(속칭 위수지역)은 대단히 넓다. 실제 모 부대에서 정식 통과된 출타사례를 보면, '''서울'''+구리+남양주+양주+고양+의정부+파주+부천+광명+과천+성남+하남+안양+용인+수원+시흥+의왕+군포+김포+인천 일부지역이 해당되었다. 집이 수도권(서울통근권)이면 외출/박만으로도 거의 커버된다는 소리. 심지어 위수지역 내가 아니라도 연가를 2~3일 같이 아주 짧게 쓰더라도 충분히 여유롭게 다녀올수 있다.
2019년 기준 외출·박 허용 지역은 자대 복귀 2시간 이내의 지역 중 서울·인천 및 서울과 직접 접해있는 경기도 전역[32] 이다.
7.2.1. 선발
의외일지 모르지만 수방사도 엄연히 선발하는 부대다.[33] 즉 '''뺑뺑이로 올 수 없다.''' 설령 본인이 면접을 보지 않았더라도 사령부에서 다른부대들 보다도 훨신앞서 선점을 한다. 사령부급 부대들(안보지원사, 정보사 등) 중에서도 가장 많은 병력을 선발한다. 물론 이는 사령부 직할부대 한정이고, 예하 사단들(52, 56)은 수방사와 별개로 일반 사단과 동일하게 뺑뺑이로 자대배치된다.
문제는 부대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주특기에 따라서도, 시기에 따라서도 선발 방식이 다르고, 무엇보다 2015년 현재 명확한 기준조차 알 수 없어서 콕 집어서 어떻다고 말할 수가 없다. 한 마디로 혼돈의 카오스. 예를 들어 같은 본근대라 해도 운전병과 행정병과 경비중대가 완전히 다른 과정으로 자대배치 받아 오게 된다.
일단 크게는 보병 자원(징집병)과 주특기병(운전병, 본부행정병, 화학병, 조리병 등의 모집병)으로 나뉘게 되며, 둘은 별개의 방식으로 선발된다.
- 보병 자원의 경우 2010년대 초까지는 (지금은 없어진) 306보충대에서 징집병들 중에서 입대 직후 신장(173cm), 안경 착용 여부, 문신 여부 등을 확인해 최종 배정 인원의 2배수로 뽑은 후 컴퓨터 추첨으로 대상자를 선정한 후 신원조회로 수방사 배속 여부를 최종 결정했다. 신원조회는 쉽게 말하면 사상검증이라고 보면되는데 대통령 직속 근위부대인만큼 3대까지 공산주의자가 없어야했다. 또한 컴퓨터 추첨으로 모여든 인원들 전원 체력테스트를 받아 통과된 인원들만 뽑기 때문에 이 인원들은 당연히 훈련소에서 체력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들은 상당수 일반 중대 전투병으로 가게 되지만 실제로는 군대가 다 그렇듯 자대에서 필요한 보직(행정병 등)으로 재배치받는 경우도 많으며, 몇몇 부대들은 처음부터 방교대에서 보병 자원을 행정병이나 공병 등으로 선발하기도 한다.
- 전투병이 아닌 논산 출신 주특기병은 이런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이것도 뺑뺑이는 아니고 선발이긴 한데 기준이 뭔지를 알 수가 없다는게 문제다. 160cm 초반의 운전병도 수방사로 가는 걸 보면 키는 아닌 게 확실하다(…). 이들은 면접이고 뭐고 없이 훈련소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발되며, 후반기교육 때 그 사실을 알게 된다.[34] 교육 시작 때 알려주기도, 수료 때 알려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다른 후방 상급부대처럼 집안 배경, 학력(학벌) 등을 보는 듯.
- 한편 방공 병과의 경우 세 가지로 나뉘는데, 기술행정병으로 입대 전부터 방공무기 관련 주특기에 합격한 채로 입대한 경우(이 경우 육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는다), 징집병으로 육군훈련소로 갔는데 방공여단 간부에게 면접을 봐서 합격하는 경우, 제2수송교육연대에서 운전병으로 제1방공여단에 배치받았는데 방공진지에 투입되는 경우로 나뉘어진다. 특히 방공진지에서 생활하는 병사들 중에 제2야수교 출신이 많은데 편제상으로는 오리콘, 발칸, 미스트랄 운전병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전역할 때까지 운전은 하지 않고 방공무기를 운용한다.
몇몇 주특기들은 모집 때부터 수방사 확정이다. 대표적인 것이 방공#오리콘포운용오리콘포운용으로, 이건 오리콘포를 운용하는 부대가 제1방공여단밖에 없어서. 제33군사경찰경호대 경호병도 처음부터 해당 주특기(321273)로 모집하니 조건에 부합한다면 지원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는 선발과정과는 별도로 가족친지까지 빡센 신원조회를 돌리며(경찰에 의뢰한다), 신원조회에서 탈락하면 아무리 훌륭한 병사라도 못 간다.
여담으로, 선발 면접 때 "편하다"/"빡세다"는 말은 걸러 듣는 게 좋다. 편하다고 꼬시는 대표적인 부대 중 하나가 '''제1방공여단'''(…). 반면 정말 편한 모 부대는 어중이떠중이를 막기 위해 면접 때 빡세다고 엄청나게 겁을 준다. 단 두 경비단들은 어중이떠중이들 받았다간 사고 우려가 있어서 (전방 GOP처럼 실탄 근무다.) 빡세다고 솔직히 말하는 편.
고참 부사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에는 지금보다 수방사 선발 기준이 훨씬 명확하고 빡셌다고(이는 기무사 등도 마찬가지) 하는데, 행보관급 이상의 부사관들이 병들을 까면서 "옛날 애들에 비하면 니들은 쓰레기 자원이야!"라고 갈구는 근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거에는 기준이 빡셌던 것은 사실이긴 하다만, 수방사의 시작은 '''군사정권의 친위대'''였다.[35] 당연히 선발기준도 빡세고 훈련도 빡셀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다. 가혹한 군기와 육군에서도 가장 늦게까지 사라지지 않았던 각종 병영부조리는 덤. 이건 자랑할 게 아니다.
7.2.2. 복장
대부분은 당연히 전투복이지만, 몇몇 부대/보직의 병사들에게는 특수한 복장이 지급된다. 이래저래 일반 육군 부대와는 다른 점이 많다. 군사경찰이나 군악대 제복 등은 다른 육군 부대와 비슷하다.
대표적인 것이 타군에는 군사경찰 특임대나 특수부대, 특공대 등에 지급되는 일명 흑복이라 불리는 대테러복으로, 수방사에서는 35특공, 33(33은 흑복/경호제복/사복 모두 소지), 청와대 외곽 경비를 맡은 1경비단 기동타격대 인원에게도 지급된다. 검은색이라 상당히 간지나지만 여름에 엄청나게 덥다.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도 특수 제복을 입지만 엄격한 보안이라 디자인이나 사진을 유출할 수 없다. [36] 민간에 사적으로 노출되는 것까지 금지는 아니지만(당장 면회만 가도 볼 수 있다.) 사진이라도 찍히면 골치아파지기 때문에 외부업무를 나갈 때는 전투복이나 사복을 입는다. 군악대와 의장대의 행사용 복장을 제외하면 병사가 '''상시''' 착용하는 복장 중에서는 아마도 전군에서 가장 화려한 옷 중 하나일 것이다.
국직부대 특수보직처럼 부대에서 맞춤정장이 보급나오는 곳도 있다. 병사들뿐 아니라 간부들도 입다보니, 사설 의류업체들 중에서 감사와 입찰을 거쳐 선정하므로 의외로 품질이 괜찮아서 사회에서 그대로 입어도 될 만하지만 그래봤자 싸구려 정장 수준이다. 물론 병사 입장에선 '''"사복 입고 군생활하는데, 심지어 그 사복을 부대에서 준다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역 시 반납해야 하지만 갖고가는 사람도 있다. 어차피 군용 물품도 아니라서 터치 하기도 애매하다.
국방부 및 국직부대, 육군본부 등과 더불에 육군 병에게 근무복이 지급되는 부대 중 하나이며 각종 행사 및 외출, 외박, 휴가시에는 전투복 대신 근무복을 입는다. 사령부 직할부대 및 경호실 지원부대 한정이며 예하 사단 병력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전투복처럼 개인별로 신품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부대 내에서 물려가면서 입고, 가끔 소모분 보충으로 부대 단위로 몇 벌씩 지급되는 것이라 상태가 은근히 안 좋은 물건이 다수 있다. 심지어 수량도 병사 전원에게 돌아갈 만큼 보유하고 있지 못해서 계급순으로 한 벌씩 차지하고 이등병들은 휴가 나갈 때 명찰을 바꿔 달아 가면서 돌려입는 경우도 있다. 사적으로 맞춰 입으려면 가능은 하다고 한다.
수방사 병에게 근무복이 지급되는 이유는 도심 지역에 위치한 부대라 대군 이미지 재고를 위함이라 하는데, 동/하근무복만 지급되고, 원래대로라면 여기 맞춰 착용해야 하는 단화와 근무복 점퍼는 지급되지 않아서 근무복에도 전투화와 전투복 야전상의를 착용해야 하는 영 좋지 않은 점도 있다. 이게 매우 어색한데, 그러잖아도 통이 큰 근무복 바지에 고무링 넣어서 입으면 참 보기가 거시기할 뿐더러(혹자는 알라딘이냐고도...) 여기에 전투복 야상까지 입으면 그야말로 패션 테러리스트가 따로 없다. 때문에 휴가중에 바지 통을 줄여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쨌든 전투복 입고 나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긴다.
1974년부터 1993년까지는 육군 근무복과는 별도로 짙은 갈색(동)/카키색(하) 상/하의로 된 '수경사(수방사) 근무복'이 따로 존재했는데 # 문민정부 출범 후 국회의 지적으로 폐지되고 이후부터는 육군 근무복을 입게 되었다. 다만 그 이후로도 "수방사는 옷이 많다는 속설"이 타 부대에 꽤 오래 퍼져 있었던 탓에, 훈련소에서 수방사 배정 자원의 보급품에 대한 차별이 일부 행해지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또한 70년대에는 독특한 패턴의 유신복이라는 군복도 지급되었다. 자세한 것은 유신복 문서로. #
16년 말 경에 사령부 근무복 제도를 폐지한다고 전량 수거하는 작업이 있었다. 근데 뭔가 흐지부지된 느낌이고, 최근에 봉천동에서 입고다니는 사람을 봄... 뭐지 이게
서울 및 수도권 방공작전을 하는 제1방공여단의 경우에는 얄짤없이 전투복을 입는다.
7.3. 방패지식인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운영하는 인트라넷 홈페이지. 복무 중인 장병들에거 여러 노하우와 전역 후의 지식들을 공유하는 곳. 여행,공부, 그림, 컴퓨터 등 여러 취미에 대한 지식도 많이 공유되었다. 전투기나 탱크의 설명도 있었는데 이것들은 전부 리그베다 위키(당시 기준)의 내용을 복붙한 내용이었다. 말기에는 애니에 관한 지식도 올라온 편.
하지만 2014년 봄에 수방사에서 직접 관리하던 서버가 국방메가센터로 통합되면서 홈페이지가 개편되고, 이전의 올라왔던 지식이 싹 날아갔다(...) 공군은 신체계 적용하면서 자료도 싹 옮겨온 것을 보면 아쉬울 따름. 사실 구 홈페이지 링크도 있긴 한데 들어가지질 않는다. 지식도 처음엔 올라오나 싶더니 몇 안 되는 지식도 다시 없어지고는 텅 빈 상태. 게다가 실명인증이 육군 간부와 병사만 가능해서 완전히 망했어요.
7.4. 사령부가
8. 사건사고
- 1979년 12월 12일 12.12 군사반란 당시 30, 33경비단과 헌병단, 경호부대가 사령부를 배신하고 쿠데타의 주축이 된 것이다.
- 2002년경 사령부 지역에서 경계병들이 어떤 민간인에게 총기를 피탈당한 일이 있었다. 그 민간인은 해병대 전역자였는데 해병부대 재직시 총탄을 절취하고 수방사쪽에 납품을 다니다가 경계상태가 비교적 덜한 당시 전차대대 및 (구)헌병단 경계구역쪽으로 침투하여 피탈함. 이들은 중랑구 모은행 총기은행 강도 사건에 해당 총기를 사용해 조롱감이 되기도 했다.
- 2015년 예하 52사단에서 예비군에 의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 항목으로.
- 2015년 연대 전술훈련 평가를 실시하면서 주둔지 침투훈련 종료를 선언하고 0000예비군훈련장 대대 철조망을 절단해서 침투한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훈련 종료후 연대 전장병이 모인 가운데 사령관이 해당 훈련 대대장들 감찰지시 및 징계를 하라는 전무후무한 지시도 내렸다.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면 당시 전술훈련평가관을 전역한 영관급으로 시행하다보니 훈련계획 및 시행이 매끄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훈련진행상에 무리가 있으므로 대대장 징계는 철회되고 해당 전술훈련평가관은 계약해지가 된다는 말이 있었으나 유야무야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방사 사건사고를 살펴보면 (2002년 총기피탈 및 2020년 주둔지 침투) 수방사가 과연 예하부대의 주둔지 경계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할 말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 2016년 11월 박근혜 퇴진시위에서 사복을 입은 편의조가 "마스폰"을 이용해 시민들을 채증했다. 촛불시민들을 불순세력으로 간주하고 대공 특수장비를 투입해서 채증과 감시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사복입은 편의조가 수방사에 파견나온 기무부대 요원들 소행일 가능성이 매우 커서 아직 더 밝혀야 할게 많다.
- 2017년 2월 16일 새벽 3시경 휴가를 나온 22살 황모 의경이 만취한 상태로 수방사 모 부대 앞에 내린 뒤 군인아파트가 자기 집이라며 위병소 앞에서 난동을 부렸다. 그런데 위병소 근무를 서던 병들은 암구어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간부다 싶어서 그를 들여보냈다. 황 의경은 부대를 거닐다 한 생활관에 들어와 잠들었고 옆에서 자던 병사가 신고하며 상황은 종료. 위병소 근무를 제대로 서지 않은 병사들, CCTV로 황모 의경을 확인한 병사가 당직사관에게 전화를 걸었음에도 잠들어 있던 당직사관 등 경계근무 관련 모든 점에서 취약성을 보여줬던 사건이다.
- 2020년 3월 16일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방공진지 울타리 부근에 땅을 파서 침투하였다가 붙잡혔다. 2020년 군부대 무단침입 사건 항목으로.
9. 여담
- 부대가인 '수방사가'가 군가 치고는 곡조와 박자가 상당히 어렵기로 유명하다. 방교대에 갓 전입온 신병들은 뭐가뭔지도 어리둥절한 채로 주야장천 교육받게 되는데, 일주일 남짓한 대기기간 중에도 곡을 다 못 외우고 자대까지 가서 마스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허나 정작 제1경비단이나 경호부대는 수방사가 대신 개별 부대가를 부른다.
- 옛날에 있었던 일화로 풍선부대라는 곳이 있다고한다 서울시내에 적기가 들어오기전에 풍선을 띄워서 적기가 못들어오도록 한다는 일화가.....라는데, 이는 방공단에서 실제로 운용하는 방공기구에 관한 회고에 군대 뻥이 섞여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 수방사는 국직 및 육직부대 출신 병사들의 현역복무 부적합심사를 담당한다. 육직, 국직부대 소속 현부심 대상 병력은 수방사로 보내도록 육군규정을 짜 놓았기 때문. 현부심 심사부대는 작전사[37] , 군단 단위로 짜여 있는데, 육직, 국직부대는 저 둘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므로 그 역할을 수방사가 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일개 병사의 부적격심사를 무려 국방부장관(...), 육군참모총장(...)이 해야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 과거 수도방위사령부라고 어느 쪽에 악센트를 두느냐에 따라 말장난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10. 타국의 사례
어느 나라나 한국의 수방사처럼 국가원수를 경호하는 호위부대나 수도권 지역을 방어하는 위수부대가 있기 마련이다.
10.1. 미국
Joint Force Headquarters National Capital Region이 존재한다. 한국이 육군본부 직할인 것과 달리 북부사령부 소속이다.
10.2. 중국
중부전구가 있다. 다만 병력이 30만이 되고 관할 구역이 수십만 제곱킬로미터라는 점에서 1:1대응은 곤란하고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산하의 베이징수도방위부대(北京卫戍区部队)가 보다 적절한 대응으로 보인다.
10.3. 영국
London District이 그나마 성격이 유사해보인다. 그나마라고 한 이유는 영국군 근위대문서 참조.
10.4. 일본
일본의 경우 수도 도쿄 '만' 지키는 부대는 별도로 없으며, 동부방면대가 수방사 + 수도군단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육상자위대라는 특성상 규모는 훨씬 작다. 그러나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당시 육상자위대 제1사단을 방면대에서 독립시켜 "수도방위집단"으로 개편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무산되었다.
[1] 진충보국 위충진명[2] 당시 총리공관 경호부대는 육군본부 산하의 헌병경호대였는데 진압군 측 장성인 김진기 헌병감의 지휘를 받았었다. 이때문에 총리공관에 머물던 전두환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오기도 하였지만 상술했듯이 대통령경호실 병력이 고명승 경호실 작전담당관의 명령으로 총리공관을 장악하며 전두환 체포는 실패로 돌아간다. [3] 수송사는 바로 옆에 새 부지를 마련해서 이전했다. 수송사 입장에서는 살던 집을 수방사한테 뻬앗기고 바로 옆 집으로 이사간 셈. 현재 수방사 영내에 있는 수송사 예하 모 전장이동통제대대가 그 흔적일지도.[4] 사실 수도권을 방어하는 부대의 마크 대부분이 방패를 바탕으로 한다. 수도군단, 17사단 등.[5] 2010년 당시 군 인트라넷 수방사 사이트에 따르면, 그 당시에도 '살아방패 죽어충성, 수도서울 절대사수' 기존 구호가 병행 사용되었다.[6] 한국어 위키백과의 수도방위사령부 문서에는 좌표까지 나와있으며 남태령역의 역주변 항목에도 수도방위사령부 본부가 있다고 나와있다.[7] 수방사가 창설된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 이남은 사실상 시골이었고, 강북에서도 사대문안, 넓게 잡아 성저십리까지만 진짜 서울 도심 취급받았다. 창설 당시 한강 이남의 서울(즉, 영등포)은 수경사가 아닌, 현재의 수도군단인 제6관구사령부 관할이었다.[8] 정확히는 수방사 예하 사단의 임무이지만 그런식으로 따지면 다른 작전사령부의 임무도 마찬가지다.[9] 수방사는 중장급, 2작사는 대장급이다.[10] 영화 감기를 보면 대통령 역을 맡았던 차인표가 "수도방위사령부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대통령 직권입니다. 맞습니까?"라고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11] 보통 중장 1차 보직으로 수방사령관, 2차 보직으로 합참 작전본부장 테크를 타면 어지간이 관운이 꼬이지 않은 한 대장 진급은 무난하다고 본다. 반대로 말하면, 수방사령관을 역임하고도 대장 진급에 실패하는 것이 이슈가 될 정도라는 것.[12] 대표적으로 2020년 현재 신임 사령관으로 임명된 김도균 중장 논란이 있다.[13] 쉽게 말해 그냥 '수방사 위수지역에 있어서 수방사 예속'인 것이지 그 외의 별 의미는 없다는 말. 예를 들어 56사단 출신에게 어느 부대 출신이냐고 물으면 '56사단 출신'이라 하지 절대로 '수방사 출신'이라 하지 않는다. 반면 수방사 직할부대 출신들은 반드시 '수방사 △△부대 출신'이라 답한다. 이는 다른 군단-사단 관계도 마찬가지라서, 심지어 수도군단의 밑에는 아예 군종이 다른 '''해병대 제2사단'''도 있다. 해당 해병들 중 도대체 누가 자신들이 수도군단 소속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대충 그런 식이라고 보면 된다.[14] 수방사 소속이었던 19 전차대대는 제8기동사단으로 전속되었다.[15] 제22화생방대대[16] 4강전인 독일전 참여. 수도방위사령부 군악대가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행사를 지원했다. 독일 국가(독일 가수 안나 마리아 칸프만이 부름.)와 한국 애국가(바리톤 최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부름.)를 연주 했다.[17] 윤필용 사건 배경 사건 중 하나가 보안사령관 김재규가 수경사령관 윤필용을 대통령 재가 없이 필요 이상으로 감시하다가 역관광 당한 일. 역으로 말해 대통령 재가가 있다면 매우 강도 높은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18] 보통 운행을 대형면허 운전병들이 나가기 때문에 운전을 할수있는 발칸포병(...)이 된다.[19] 고향 이름을 따 '남보령'이라 이름지은 첫째에 이어 둘째 이름은 사령부가 있는 ''''남태령'''(…)'이라 지으려다 아내의 만류로 관뒀다고 한다. 이외에도 SBS를 수방사의 약자라고 드립치는 등 자대에 대한 애정이 꽤나 있는 듯.[B] A B C D 권투 선수 다수가 수방사 출신이다. 1980년대 수경사에서는 일종의 권투부대를 운용하여, 프로 복서들이 군복무 중 권투를 병행하고, 복무 중 프로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수방사 체육단도 국군체육부대가 창설되면서 흡수되었다.[20] 미필들이 자주 하는 착각 중 하나가 '하나의 부대는 한 곳에 있다'는 것이며, 설령 미필이 아니라도 육·국직 사령부급 부대는 대개 비슷한 오해를 받는다. 가령 훈련소나 후반기학교를 수료할 때 군수사나 각 군지사로 배치되는 병사들은 대부분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사령부 본부(대부분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커녕 외진 산골짜기의 지옥 '''탄약창'''이나 '''탄약대대'''로 갈 확률이 높단 건 잘 모른다. 아니 애초에 그런 부대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수방사 또한 남태령에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사령부 주둔지보다 다른 곳에 주둔하는 병사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른다. 때문에 막상 군생활 중 남태령 근처에 가본 적도 없는 병사들조차 전역 후 수방사 나왔다고 하면 (상대가 수방사의 존재라도 아는 경우) 대개 "아 그 남태령에 있는 곳?"이라는 반응을 듣게 된다.[21] 일례로 인격자로 유명한 강건작 장군의 경우, 연합사 작전처장에서 동두천의 28사단장으로 영전할 때, 으레 장군이 보직이동하면 따라 전출가게 마련인 자신의 운전병을 연합사에 남도록 '배려'해 주었다. 장군운전병 입장에선 새 지휘관에게 다시 적응하는 것보다 기존 지휘관(그것도 강 장군같은 덕장이라면 더더욱)을 계속 모시는 것이 더 편할 것임이 명백함에도, 군생활을 서울에서 한다는 메리트가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크다는 뜻이다.[22]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경비단과 방공여단이 수방사에서 제일 빡세다고 말들하지만 그래도 최전방의 진짜 GP/GOP에 비할 바는 아니다. 당장 "1경비단 갈래, GOP 갈래?" 하면 후자를 택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23] 그래봤자 한정거장 거리의 사당역에서 환승하면 잠실과 강남의 번화가나 쇼핑몰까지 한달음이다.[24] 타지 출신 수방사 병사들은 서울의 친구나 친척 집에 사복을 맡겨 두고, 출타 나오자 마자 들러 옷부터 갈아입는 경우가 많다. 휴가복인 근무복도 군복은 군복이므로 행동에 제약이 많기 때문. 90년대 초,중반 군에 대한 반감이 심할때 병사들에게 사복(티셔츠, 남방, 청바지, 운동화 등)을 지참하라는 지시가 내려 사복을 병사개인이 소지한 적도 있었다. 외출, 외박, 휴가시 군복입고 서울시내 돌아다니는거 보기 싫다는...[25] 말이야 이렇지, 어지간히 FM 또라이가 아닌 한, 소속 간부들 중 수방사가 야전부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방 출신 간부들이 툭하면 "내가 야전에 있을 때는 말이야~"하는 것만 봐도 간부들이 수방사를 딱히 전투부대로 생각하지는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후술될 훈련양만 해도 절대로 전투부대 수준이 아니다. 아무튼 명목상으로는 엄연히 전투부대이지만 도심지역 부대 특성상 기행부대스러운 특성이 혼합되어 이렇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수방사는 전시에 서울지역 민사작전을 담당해서 중요임무 중에 비전투임무가 포함되어 있다.[26] 전방사단이면 허구헌날 하는 전준태나 국지도발훈련 같은 건 거의 못한다는 얘기다.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에는 계룡대, 연합사, 군수사와 함께 전군에서 가장 평온한 부대 중 하나였다는 신빙성 떨어지는 카더라도 있을 정도. 오히려 수방사 병사들이 북한의 도발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은 서울 시내의 대규모 집회나 시위,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민간인 거수자나 취객이다. 평시의 교육훈련도 이쪽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27] 단 이 모든 것은 군사경찰단만은 예외다! 수방사의 주 전투병력이기 때문. 유격도 4박 6일 풀코스로 받는다.[28] 수방사 창설 당시에도 수도권 지역(당시 서울 포함)을 관할했던 위수부대인 제6군관구사령부(현 수도군단)가 이미 있었다. 이런 역사적 문제 때문에 문민통제에 민감한 성향의 일부 사람들은 수도방위사령부를 수도군단에 통폐합하는 식으로 해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거의 국방개혁 안에서도 이런 통폐합 안이 검토된 바가 있다.[29] 90년대 초반에 모 경비단에서 전역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자기 군 복무 기간 동안 순수 구타로 2명이나 숨진 것을 봤다고 하며, 88년 군번 군수지원대 전역자의 증언으로는 당시 구타 당하다가 죽는 사람 많이 봤다고 한다. 물론 훈련 중 사망 처리.. 당연하지만 이건 절대 자랑할 것이 못 된다! 나라 지키라고 보냈더니 아군한테 맞아 죽는 부대가 제대로 된 부대일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 초까지도 예하부대에는 대대집합이 남아 있을 정도로 병영문화적으로 후진적인 부대였다.[30] 2010년대에 수방사 예하의 모 편한 부대로 배치된 어느 운전병이 사령부로 운행을 나갔다가 군사경찰단 수송부 근처를 지날 일이 있었는데, 군사경찰단에 배치된 동기가 지나가길래 반가운 마음에 무심코 불렀다가 하늘이 떠나가라 관등성명을 외치는 걸 보고 놀라기도 하고 매우 미안했다고.[31] 이는 전투차량들은 환경규제를 전혀 만족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그로인한 어마어마한 매연, 소음 그리고 군용차량 특유의 도색(...)으로 인해 민원이 빗발치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시내 특성상 운용난이도가 수직으로 급상승 하기 때문이다. K711이나 K511을 끌고 도로에 나왔는데 주변에 '''롤스로이스, 벤츠, 아우디, 페라리, 람보르기니'''등 초고가 수입차들이 쫙 깔려있다고 생각해 보자.(...) 사령부가 위치한 남태령 부근 등 외곽지역만 해도 도로에 고가의 수입차들이 즐비하다. 운전병과 선탑자든 민간차량 차주든 서로 불편하고 살떨리는 상황이다.(...) 때문에 K808등을 이용한 대규모 영외기동훈련의 경우 보통 밤에 한다.리멤버 1.21훈련[32] 화성, 평택, 양평 제외[33] 사실 웬만한 육직, 국직부대들과 사단급 이상 사령부들은 '선발권 부대'들이다. 물론 탄약창 등과 같은 일부 예하부대는 제외.[34] 후반기교육 부대에서 어느 병사가 마음에 들어 해당 부대 기간병(조교, 훈련반장 등)으로 자체선발하고자 했는데 수방사 사전 선발자원임이 드러나 무산되는 일이 왕왕 있다.[35] 다분히 서울지역 위수부대로 시작했다고 보기 힘든게, 서울을 책임졌던 위수부대의 계보가 6.25 전쟁으로 단절, 재창설되었기 때문. 수방사 창설 당시에도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관할했던 위수부대인 제6관구사령부(현 수도군단)가 이미 있었다.[36] 참고로 사진 주소를 보면 알겠지만 해당 사진이 올라온 곳은 유용원의 군사세계다.[37] 2작사예하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