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경찰단(수도방위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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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도방위사령부 직할의 대한민국 국군 군사경찰 상당수가 모인 육군 군사경찰부대이자, 대한민국 육군 최초의 단급 군사경찰부대. 명칭만 단이 붙고 실 규모는 그닥 크지는 않은 작전사령부 군단 예하 군사경찰단과는 달리 정말로 규모와 인원수가 단급인, 육군의 규모가 가장 큰 현실에서 사실상 전군 최대의 군사경찰부대다.
2. 상세
서울에서 무슨 큰 행사가 있다 싶으면 차출되는것이 일상화된 곳이다.[1] 주로 동원되는 행사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로 대표적인 것이 현충일 행사다. 군사경찰의 임무엔 지휘관 경호가 있는데 대통령은 국가원수요, 모든 군인의 상관이니 대통령이 무사히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외곽 경호를 서며 인원통제도 할 겸 동원된다. 다행스럽게도 그나마 수방사에서 맡는 행사가 줄어든 편인데 예전엔 겨울 학군교라고 하여 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매년 2월 열리던 대통령이 참석하는 학군장교 임관식에도 동원되었다. 매년 임관하는 학군장교가 약 5천명 정도 되고 임시 주차장에 임관장교의 가족이나 관계자들이 모여 그 좁은 문무대와 종합행정학교에 대략 5만명은 몰려들었다. 2011년부터는 계룡대 통합임관식으로 전환되었고 또한 문무대가 성남을 떠났기에 학군교랑 얽힐 일은 없어졌다.매년 동원되는 대행사는 국군의 날기념식과 현충일 행사, 신정 행사이다. 이 행사들은 매년 기념하고 있지만 국군의 날은 5년에 한 번 대통령이 취임한 연도에 대형 기념식을 연다. 각설하고 특히 국군의 날 행사는 규모가 규모니 준비기간도 길며 수방사로도 통제가 힘들어 일부 사단 군사경찰대가 지원을 오고, 타군 군사경찰도 온다. 행사 준비 기간이 기니 사열이 정말 끔찍한데 국방부,육본,수방사,군사경찰단,소속대대 순으로 사열과 검열을 받으며 쉴틈없이 행사복과 전투화를 정비하고 제식 훈련을 하루종일 하는 등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국가장 안장식은 전 현직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국가규모로 추앙받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서울 현충원에 안장이 결정되면 동원된다. 그나마 예측이 가능한 국군의 날과는 달리 안장식은 당연히 예기치않게 찾아온다. 새벽부터 밤까지 모든 안장식 참배객들이 나갈 때까지 인원 통제를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서울 현충원은 대규모 묘역을 조성할 공간이 모자라 09년 국장과 15년 국가장 때도 비판을 받은 바가 있어 앞으로 서울 현충원에서 안장식이 진행될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는 전직 대통령 칭호론 불리더라도 더는 예우를 받지 못하기에 세상을 떠나도 국가장은 치룰 수 없다. 그 밖에도 다른 국가원수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도 동원되며 일부 위너들은 학군단장 이취임식의 초병이나 장군들의 장례식도 동원되기도 한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군기단(기수단)으로 쓰거나 의장대 대용 혹은 예도대로 동원하는 일도 꽤나 있다.
이렇게 내보낼 건 다 내보내면서도 본부에 있는 수방사 직할단 중 가장 가용인원이 많아서 크고 작은 작업에 불려나가는 경우도 잦다. 그래서 종합 행정학교에 있는 강의실 의자에는 수방사는 군사경찰의 무덤이니 가지말라는 이라는 글귀가 가득하다. 그리고 서울 각지에서 검문소를 운영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마다 생활관 내 모든 물품을 들고 검문소에 가서 다시 세팅하는 것을 군생활동안 반복한다. 게다가 전투장구류 뿐 아니라 군사경찰장구류를 들고 이동해야되기에 짐이 많다. 이 검문소 이동은 군사경찰단이 가지고 있는 모든 트럭과 버스가 차출되어 한번에 대규모로 이동하는데 하필이면 출근시간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그날 한정으로 사당역 주변의 교통혼잡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다른 대대와 생활관을 교대할때 없어지는 장비 가 많아 보급병은 항상 이맘때쯤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수방사 검문소는 주로 탈영병 검거나 간첩 등 수상자 검문 등이 주요 임무이지만 서울 시계내로 군 병력/차량 진입을 통제하는 역할도 한다. 웬만한 주요 도로와 다리에는 거의 모두 검문소를 설치해 두었기 때문에 예를 들어 한강에서 투신#s-1할 경우 제일 먼저 움직이는 것은 경찰도 소방서도 아닌 수방사 예하 군사경찰들이다. 그래서 사람 구하는 경우도 많지만 드물게 물귀신 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구조사례1, 구조사례2
여담으로 투신 시도자 발견시 즉각 출동하는 것은 맞지만 우선 설득이 원칙이며 설득과 동시에 관계기관(수난구조대, 경찰, 소방서 등)에 신고하는 것이 최우선 사항으로 정해져 있다. 물론 관계기관 신고는 투신자 발견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급박한 상황에 의협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이런 경우는 반드시 전문가에게 맡기자. 그러는 편이 투신자와 장병 본인 피차 생존율이 높다.
사실 수많은 직할단 중 가장 큰 부대는 제1경비단이지만 경비단은 절대 외부 업무에 차출되지 못하므로 활동은 군사경찰단이 가장 많다. 육군 기준 약 6000명인 군사경찰 중 1,000명 가량이 배치되어 있는데[2] , 이는 보병 연대급 규모로 지원부대인 군사경찰대가 사단 내에서 아무리 많아봤자 50~70명 정도라는 걸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게 많은 편. 이게 다 서울 환경이 워낙 특이하다보니 시가전이랑 도로 통제가 매우 중요해서 이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규모와 기동성, 유사시에도 근무지를 벗어나지 않는 특성 덕분에 수방사의 주 전투병력이기도 하며 수방사 군사경찰단에 들어온 병들은 그냥 자신들을 우스갯소리로 헌보병이라고 여기고 산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전투+군사경찰훈련을 견뎌내기에도 편하다고. 일반 근무군사경찰은 보통 전투대대라 불리는 주둔지-검문소 대대나 사령부 바깥에 있는 독립 군사경찰대로 배치된다. 검문소 생활은 소수의 인원(보통 두분대)+상대적으로 널널한 환경(타 격오지와 다른 서울도심) 때문에 큰 사건 안 터지고 간부만 좋으면 매우 살만 하다. 다만 주둔지로 돌아가면 검문소에서 전입온 신병들은 선임들이 10배 증가하는 마법을 경험한다. 또한 사람 많다고 만만한게 군사경찰단이라 별 작업에 다 동원된다.
독립 군사경찰대는 전투대대에서 처리하긴 곤란한 자잘한 일을 맡는다. 사실 가장 많이 하는 건 순찰. 전투대대로 가게 되면 해당 대가 바쁘지 않은 이상 순찰 갈 일이 없고 이래서 순찰 중 전투대대원을 잡는 뒷목잡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독립부대란 이점때문에 본부 근무에 시달릴 일이 없으니 파라다이스 소리를 들었다곤 하지만 그건 옛말이고, 대대에서 대가 되는 파격적인 인원 감축으로 헬게이트가 된지 오래. 이때문에 본부를 지원하려고 있는 독립대가 인원이 필요한 업무에선 본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상한 상황. 단본부는 정말 2년 동안 교육,훈련, 체육대회 포함해서 스무번 가면 많이 가는 것이고 군수지원대대에 사격훈련하러 혹은 물자 타러 갈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운전병과 행정계원은 단 본부대가 아닌 이곳으로 배치되면 군사경찰들과 섞여서 살게 된다. 규모가 작으니 배치 인원도 적고 아저씨란 개념도 당연히 없다. 일반군사경찰은 재수가 없으면 군사경찰 기수 동기없이 배치되기도 하기에 같이 전입온 행정병이나 운전병과 전입 동기를 맺거나 혹은 그마저도 없으면 입대일이 비슷한 먼저 전입 온 다른 병과의 병과 동기를 맺어주기도 한다. 종교활동은 당연히 힘들다. 외부 목사님(군종 장교는 아니나 학군 3기 출신이라 군과 무관한 인물은 아니었다)이 개척한 개신교 활동만 가능. 다른 종교 활동은 사령부로 가야하는데 주말에 사령부를 군복 입고 가기가 귀찮으니 병은 좀 더 쉬려고, 대는 인솔 간부 뽑기랑 배차가 힘들어 다들 포기한다.
특수임무대와 기동군사경찰은 특경중대로 편성된다. 기초적인 체력과 무술실력을 심사해서 들어오는 이들이기에 군사경찰단 내에서는 체력으로 이길수가 없다. 이들 중 기동군사경찰은 검문소에도 기동대로 둘씩 짝지어 차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검문소 내의 일반군사경찰과는 아저씨 관계를 맺으며 인원이 적지 않은 이상 근무에도 투입되지 않아 압도적인 편함을 누린다.
제33군사경찰경호대는 단 내에 있지도 않지만 일단 군사경찰단 소속으로 처리는 되기에 33과 다른 대대간에는 간부들이 이동할 때가 있으며 아주 가끔씩 일반 군사경찰들 중에 33으로 데려갈 병이 있는지 면접을 보기도 한다. 이름만 걸어놓고 남남인 것 처럼 살지는 않는다.
군사경찰 장교에겐 수방사 군사경찰단장(육군 대령이다. 육군 군사경찰 병과장은 준장, 국방부 조사본부장은 소장)은 별이 되는 주요 코스다. 전군 유일의 단급 군사경찰부대를 지휘하는데다 수방사 내에서도 역할이 큰 직할단장이라 사령부 내 영향력도 센 편이기 때문이다.
군사경찰은 비전투병과답게 숫자가 적으며 별로 올라갈 수 있는 장교도 매우 적다보니 진급 경쟁도 치열하다. 다만 군사경찰단이 저놈의 군기 때문에 허구한날 사고가 터졌는지라 마냥 좋아할만한 보직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단장이 부조리 잡겠다고 구타 사건이 터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영창 전출 콤보를 선사한 적도 있다. 물론 현재는 구타 및 가혹행위가 줄었다고 한다. 어쨌든 병이나 간부나 한 때는 지옥같은 부대였다.
과거 2011년까지 영창이 지하(정확히는 반지하)에 있었는데 2010년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되어 영창을 이전했다. 이후 비워진 영창을 막사 리모델링때 식당으로 활용했다.
3. 편제
- 본부대
- 제33군사경찰경호대[3]
- 특별경호중대
- 제3군사경찰대대
- 제5군사경찰대대
- 제7군사경찰대
4. 출신인물
4.1. 단장
4.2. 장교/부사관
4.3. 병
5. 사건사고
6. 여담
12.12 군사반란에 적극 참여한 흑역사가 있다. 당시 단장이었던 조홍과 부단장이었던 신윤희가 아예 세트로 하나회 소속이었으며,직속상관인 수경사령관 장태완 소장을 체포하는데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