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혁

 

[image]
'''이름 '''
주세혁(朱世爀, Joo Saehyuk)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80년 1월 20일(44세), 서울특별시
'''학력'''
금호초등학교
대광중학교
대광고등학교
한남대학교 무역학과 학사
'''종목'''
탁구
'''신체'''
180cm, 68kg
'''그립'''
오른손, 쉐이크핸드
'''특기'''
커트 디펜딩
1. 소개
2. 플레이 스타일
3. 수상 기록
4. 기타


1. 소개


한국마사회 소속 탁구선수이다. 8살 때부터 탁구를 시작했으며, 2001년 부터 역동적인 수비 폼으로 주목을 받게된다. 2003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남자 탁구선수로는 최초로 결승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세계선수권은 올림픽과는 달리 중국 선수가 5명까지 출전하기 때문에 사실상 올림픽보다도 입상하기 더 힘든 대회라는 점에서, 주세혁의 준우승은 한국 남자탁구 역사에 남는 쾌거라 할 수 있다. 2003 세계선수권 결승은 오스트리아의 베르나 쉴라거와 주세혁의 대결로 펼쳐졌는데, 중국 선수가 모두 탈락한 마지막 세계선수권대회로 남아 있다. 쉴라거는 준결승에서 왕리친을, 주세혁은 8강에서 마린을 꺾고 올라갔다. 우승자인 베르나 쉴라거는 넌 차이니즈 선수로는 마지막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이다. 격년제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은 2005년부터 모든 대회의 남자단식 우승과 준우승을 휩쓸고 있다.
당시 주세혁의 결승 진출은 세계 탁구계에 큰 충격이었는데, 1980년대 이후 세계 정상급 레벨에서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수비 전형 선수가 가장 권위 있는 대회에서 입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수비 전형 선수들과 달랐던 점은, 주세혁은 강력한 수비력과 더불어 간간히 나오는 포어핸드 드라이브의 완성도가 공격형 선수 못지 않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연속된 커트 이후 순간적으로 나오는 드라이브를 통해 득점을 내는 것이 중요한 공격 루트였다. 중국도 주세혁의 커트 기술만큼은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했으며, 비록 우승 경력은 많지 않으나 꾸준히 세계 랭킹 20위 안에 들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본인의 최고 랭킹인 세계랭킹 5위까지 오르며 한국의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 2017년 은퇴 전까지 세계 최고의 수비형 탁구 선수라는 호칭은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2000년대 한국 탁구를 이끌어오던 오상은유승민이 차례로 은퇴하고 나서도 비교적 많은 나이까지 큰형의 역할을 맡아오다가 국가대표로써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게 된다. 탁구공이 플라스틱 재질인 ABS 볼로 바뀌면서, 많은 회전을 통한 커트로 승부하는 주세혁에게는 매우 불리해졌고, 실제로 볼 재질 변경 이후 성적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수비전형으로 세계 무대에서 TOP-20의 최정상급 기량을 15여년 간 유지한 것 만으로도 그의 꾸준함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비록 우승 경력이 많지 않지만, 그것은 2000년대 중국의 3인방(왕리친, 왕하오, 마린), 2010년대의 3인방(마룽, 장지커, 쉬신)과 끊임 없이 전면대결을 펼쳐야만 했던 그에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1990년대 공링후이나 류궈량의 경우는 모든 무대를 완벽히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공링후이와 류궈량은 세계선수권을 1번씩 우승했을 뿐이지만, 2000년대 들어와 왕리친(3회), 장지커(2회), 마룽(2회)와 같이 중국선수들의 지배력이 훨씬 강화되면서, 주세혁과 같이 중국인이 아닌 선수들의 메이저대회 입상은 더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2년 베체트병[1]을 선고받으면서도 꾸준히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다는 점은 그의 정신력과 기량이 매우 대단하다는 점을 나타낸다.
유승민만큼 강력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지만, 언제나 꾸준히 국가대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이다.
최근에는 은퇴후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한국마사회 남자 탁구단의 창단 멤버로서 현역복귀를 선언했다.

2. 플레이 스타일


커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어떠한 종류의 공이 와도 강한 백스핀과 함께 양 끝으로 보내준다.
커트의 회전수를 높이기 위해 팔이 그리는 반경이 크고, 또한 공격하는 쪽의 공을 계속해서 받아내야하기 때문에, 항상 뒤에서 대기하며, 따라서 좌우앞뒤로 움직이는 양이 많아, 풋워크가 상당히 빠르다. 그리고 이 모습을 탁구좀 친다, 혹은 그냥 일반인이 봐도 '''화려하다'''라는 느낌이 강하다. 탁구를 모르는 일반인이 주세혁의 탁구 경기를 보고 주세혁 라켓을 사든다음 탁구클럽에 간뒤 관장분에게 수비탁구를 알려달라고 할 정도였다.[2]
수비 선수의 주요득점원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1. 서브 후 기습 3구 공격
2. 포핸드 핌플 인 러버와 백핸드 롱 핌플에서 나오는 커트의 구질과 회전량 변화로 상대방의 실수 유도
3. 커트 중 기회를 살려 역습
주세혁 선수는 이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 주었다. 특히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부각되는 것은 3번으로, 큰 체격과 잘 다져진 기술로 역습이나 드라이브전을 벌일 때 상대에게 위협이 되었다. 선수들이 공격을 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주세혁 선수의 훈련비중은 그 중에서도 상당한 편이다. 수비 선수도 결국 주동적인 득점을 위해서는 공격이라는 것을 직접 보여준 플레이어. 단지 전성기의 커트 수비의 안정성만 따진다면 주세혁 외에 꼽을 만한 이가 몇 있을 지도 모르나 플라스틱 볼 시대에 공수를 겸한 복합적 플레이로 주세혁만큼 한 선수가 있느냐 하면 생각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 최고의 디펜더인만큼 세계급 공격형 선수와 붙으면 명경기를 찍어내는걸로 유명하다. 심지어 다소 재미없는 선수인 마룽과의 게임 조차도 '''우직하게 공격해오는 창''' VS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방패'''의 경기를 만들어내어, 손에 땀을 쥐게하는 경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다만 전적상으론 그렇게 좋지 않은데, 17전 2승 15패라는, 전적만 봤을때는 사실상 탈탈 털린거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준다.[3] 실제 경기가 듀스까지 끌고가는 2점 차이의 아슬아슬한 승부이면서, 역전패도 상당히 많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 마룽선수와 경기한 영상이다. 이 경기에서도 2점차 승부가 많이 나온다.

실력에 비해서 상복은 별로 없다. 올림픽 같은 경우도 2012 런던 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뿐이고, 세계대회에서도 은메달 이상을 받은 대회가 없다. 본인의 인터뷰에서 가장 아쉬웠던 시기를 꼽으라 하면 2003년 세계선수권대회라 답한 바 있다.[4] 주세혁은 결국 2016년 ITTF 월드투어 크로아티아에 와서야 한국팀 후배 정영식을 결승에서 꺾고 단식 우승을 거머쥐었다. 대신 국내대회에서는 우승을 쓸고 다닌 것을 볼 수 있다.

3. 수상 기록


올림픽
은메달
2012 런던
단체전
세계선수권
은메달
2003 파리
단식
세계 팀선수권
은메달
2006 브레멘
단체전
은메달
2008 광저우
단체전
동메달
2001 오사카
단체전
동메달
2004 도하
단체전
동메달
2010 모스코바
단체전
동메달
2012 도르트문트
단체전
동메달
2016 쿠알라룸푸르
단체전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06 도하
단체전
은메달
2010 광저우
단체전
은메달
2014 인천
단체전
동메달
2010 광저우
남자 복식
동메달
2010 광저우
단식
동메달
2014 인천
단식
월드컵(단식)
동메달
2011 파리
단식
유니버시아드
은메달
2001 베이징
남자 복식
동메달
2001 베이징
단체전
주니어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1997 파나지
단체전
동메달
1997 파나지
단식

4. 기타


  • 초등학교 때 수비선수를 맡게 된 이유는 당시의 주세혁은 체력이나 집중력 등 능력이 평범한 선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격전형은 운동신경이 좋은 기민한 동료들에게 넘어가 버렸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 후에 포텐셜이 터지며 최고의 수비수가 되었다.
  • ITTF의 인터뷰에 따르면 좋아하는 밴드는 퀸이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즐겨듣는다고 한다. 또한 홍콩의 비욘드라는 밴드도 듣는다고 한다.
  • 커트 비결은 하루 30분씩 공 없이 연습한 결과라고 한다.
  • 플라스틱 공으로 바뀌면서 손해를 많이본 케이스이다. 플라스틱 공은 종전의 셀룰로이드 공에 비해 표면이 매끈하기 때문에 스핀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높은 회전수로 압도하는 주세혁 선수에겐 상당히 안좋은 변화이다. 이 변화가 준 영향으로, 서효원 선수와 함께 출전한 대회에서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에게 진땀승을 거두었다. 물론 둘다 결과적으로는 이겼지만, 찜찜할 수 밖에 없는 경기이다.
[1] 구강을 비롯한 점막에 궤양이 지속적으로 생기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유전적 원인을 가지고 있으며, 완치는 불가능하다[2] 물론 탁구클럽 관장분들은 이런분들이 오면 "수비탁구를 배우시려면 우선 공격이 돼야 하는데요"라는 답변을 해주신다. 실제로 주세혁 선수도 기회가 오면 드라이브를 몰아쳐 공수를 전환하기도 하고, 풋워크나 기술들이 안정이 되지 않으면 수비탁구를 배울 수 없는것도 사실이다. 뭐든지 순서가 중요한 법이다.[3] 이는 중국 선수들이 대체적으로 디펜더에게 강해서 그렇다고 보는것이 맞을것이다. 마룽 이전 대표였던 왕하오에게는 11전 '''전패'''를 기록하기도 했다.[4] 당시 대만의 고수 츄앙치유엔도 그렇지만 8강전에선 중국의 최고수 중 하나이자 유력한 우승후보인 마린을 풀세트 혈전 끝에 4:3으로 꺾고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오스트리아의 명장인 베르너 슐라거로, 강자임엔 분명하지만 주세혁이 꺾고 온 상대들을 고려하면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였다. 그러나 슐라거의 영리한 플레이에 2:4로 석패하여 금메달을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