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닌 덴노

 


'''한풍 시호[1]'''
준닌 덴노(淳仁天皇, 순인 천황)
'''별호'''
폐제(廃帝), 아와지 폐제(淡路廃帝)
''''''
오이(大炊)
'''능호'''
아와지노능(淡路陵)
'''생몰'''
733년 ~ 765년 11월 20일
'''재위'''
758년 9월 7일 ~ 764년 11월 6일
'''연호'''
천평보자(天平宝字)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4. 기타


1. 개요


일본의 제47대 천황. 이름은 오이(大炊).

2. 생애


덴무 덴노의 아들 토네리 친왕[2]의 7남이었기에 천황의 자리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상황 쇼무 덴노가 추천한 태자 후나도 왕이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폐위되자 당시의 권력자 후지와라노 나카마로의 강력한 추천으로 황태자가 되었다.
이후 758년 어머니의 병을 간호하기 위해 코켄 덴노가 양위하면서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코켄 상황의 어머니 코묘 황후가 사망하자 준닌 덴노와 코켄 상황 및 도쿄와의 불화가 표출되면서 권력 투쟁이 심해졌고,결국 권력은 코켄 상황이 잡게 되었다.
762년 코켄 상황은 스스로 '국가대사상벌권'을 행사하면서 준닌 덴노로부터 천황 지위를 박탈할려는 선언을 하였고, 그 일로 인하여 764년 준닌 덴노는 후지와라노 나카마로의 난으로 국면을 타개하려 하였지만 발각되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후지와라노 나카마로가 죽음을 맞자 지지자들을 잃은 준닌은 폐위되었고, 어머니 다이마노 야마시로(当麻山背)와 함께 유폐되어 버렸다. 그는 도주를 시도하였지만 붙잡혔고, 유배지에서 3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준닌의 폐위 이후 코켄 상황은 다시 쇼토쿠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사실 '준닌(淳仁)'이란 시호는 먼 훗날 메이지 덴노 때 받은 것이며, 당시에는 '아와지 폐제'로 불렸다.

3. 가족관계


  • 조부 : 덴무 덴노(天武天皇, 631?~686)
  • 조모 : 비妃 니이타베노 황녀(新田部皇女, ?~699)
  • 아버지 : 토네리 친왕(舎人親王, 676~735)
  • 어머니 : 대부인 타이마노 야마시로(当麻山背)
  • 부인夫人 : 아와타노 모로네(粟田諸姉)
  • 생모 ???
    • 딸 : 아베 내친왕(安倍内親王)
황후에 대한 기록이 없는 천황이다.

4. 기타


참고로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이 바로 이 천황 시기이다.
[1] 중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2] 덴무 덴노의 명에 따라 일본서기를 만든 인물로, 준닌 덴노가 생부라서 추존하려 했으나 코켄 덴노의 반대로 추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