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中環杯世界圍棋錦標賽 / The CMC Cup World Go Championship
2000년대 잠시 시행되었다가 폐지된 대만의 국제 바둑 기전
대만에서 만든 최초의 국제 바둑 기전. 저우쥔쉰 九단이 대만 내에서 성적이 나자 대만기원에서도 "우리도 세계기전 하나 열어봐야겠다!"며 야심차게 준비한 대회였다. 대만의 중환그룹과 '''미국기업인 JP모건 체이스'''를 후원사로 열었다. 그래서 '''사상 최초의 미국기업 후원 바둑 기전'''이라는 타이틀까지 받았다. 중환그룹과 JP모건의 상금 출자 비중은 2:1. 그래서 중환배로 이름이 결정되었다. 5:5로 상금 출자했으면 중환-JP모건배였을텐데, 2:1이라 그냥 중환배가 되었다.
대만 국적 기사 5인, 한국, 일본, 중국 국적의 기사 3인씩, 그리고 유럽/미국 대표 1인씩을 초청하여 열기로 한 기전이다. 그맇지만 실제론 반쪽짜리 대회로 남게됐는데, 그 이유는 중국 기사들이 정작 본 대회에 한명도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외적으로 밝힌 이유는 수속 등의 준비 일정이 맞지않아서라고 밝혔지만, 실제론 중국과 대만의 의전같은 민감한 양안문제가 붉어져 불참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과 일본 출전 기사들이 한 명씩 더 출전하게 되었다. 2회 대회부터는 세계대회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아예 유럽, 미국 대표도 제외하고 그 자리에 자국기사에게 쿼터를 줘 무려 6명의 대만기사가 참가했다.
저우쥔쉰의 LG배 우승을 계기로 바둑열기에 불을 붙이고자 야심차게 대회를 개최한 대만 바둑계였지만, 대만기원 내부에 내홍과 자국 선수들의 부진, 중국기사들의 불참, 적은 상금등으로 사실상 마이너급 대회로 격하됐고, 결국 3회 대회를 끝으로 폐지되고 만다. 중국기사들의 불참으로 한국기사들의 잔치가 되고 말았는데, '''우승 독식을 넘어 3회 대회의 경우 준결승 네자리를 모두 한국기사가 채워버리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대만에서 야심차게 열었는데 대만 기사는 한 번도 우승 못 하여 중환그룹이 발을 뺄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그 와중에 공동 출자사인 JP모건 체이스가 2007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비용을 급히 줄여야 하게 되자 JP모건이 발을 먼저 빼면서 결국 대회가 폐지되었다.
[image]
사진 왼쪽은 1회 대회 우승자인 박영훈 九단. 대국자는 준우승자인 왕리청 九단이다.
- 주관: 대만기원
- 주최: 대만기원
- 후원: 중환그룹, JP모건 체이스
- 상금: 우승 200만 신 대만 달러, 준우승 70만 신 대만 달러
- 방식: 본선 16강 초청, 단판 토너먼트, 결승 단판 승부
- 규정: 각자 생각시간 3시간(1~2회), 150분(3회), 1분 초읽기 5회, 덤 일본룰 6집반
1. 개요
2000년대 잠시 시행되었다가 폐지된 대만의 국제 바둑 기전
2. 상세
대만에서 만든 최초의 국제 바둑 기전. 저우쥔쉰 九단이 대만 내에서 성적이 나자 대만기원에서도 "우리도 세계기전 하나 열어봐야겠다!"며 야심차게 준비한 대회였다. 대만의 중환그룹과 '''미국기업인 JP모건 체이스'''를 후원사로 열었다. 그래서 '''사상 최초의 미국기업 후원 바둑 기전'''이라는 타이틀까지 받았다. 중환그룹과 JP모건의 상금 출자 비중은 2:1. 그래서 중환배로 이름이 결정되었다. 5:5로 상금 출자했으면 중환-JP모건배였을텐데, 2:1이라 그냥 중환배가 되었다.
대만 국적 기사 5인, 한국, 일본, 중국 국적의 기사 3인씩, 그리고 유럽/미국 대표 1인씩을 초청하여 열기로 한 기전이다. 그맇지만 실제론 반쪽짜리 대회로 남게됐는데, 그 이유는 중국 기사들이 정작 본 대회에 한명도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외적으로 밝힌 이유는 수속 등의 준비 일정이 맞지않아서라고 밝혔지만, 실제론 중국과 대만의 의전같은 민감한 양안문제가 붉어져 불참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과 일본 출전 기사들이 한 명씩 더 출전하게 되었다. 2회 대회부터는 세계대회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아예 유럽, 미국 대표도 제외하고 그 자리에 자국기사에게 쿼터를 줘 무려 6명의 대만기사가 참가했다.
저우쥔쉰의 LG배 우승을 계기로 바둑열기에 불을 붙이고자 야심차게 대회를 개최한 대만 바둑계였지만, 대만기원 내부에 내홍과 자국 선수들의 부진, 중국기사들의 불참, 적은 상금등으로 사실상 마이너급 대회로 격하됐고, 결국 3회 대회를 끝으로 폐지되고 만다. 중국기사들의 불참으로 한국기사들의 잔치가 되고 말았는데, '''우승 독식을 넘어 3회 대회의 경우 준결승 네자리를 모두 한국기사가 채워버리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대만에서 야심차게 열었는데 대만 기사는 한 번도 우승 못 하여 중환그룹이 발을 뺄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그 와중에 공동 출자사인 JP모건 체이스가 2007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비용을 급히 줄여야 하게 되자 JP모건이 발을 먼저 빼면서 결국 대회가 폐지되었다.
[image]
사진 왼쪽은 1회 대회 우승자인 박영훈 九단. 대국자는 준우승자인 왕리청 九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