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왕

 


'''초(楚)나라 17대 국군
1대 왕
분모
蚡冒
'''
'''시호'''
여왕(厲王)
''''''
미(羋)
''''''
웅(熊)
''''''
순(眴)
'''아버지'''
초소오(楚霄敖) 웅감(熊坎)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741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757년 ~ 기원전 741년
1. 개요
2. 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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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나라의 제17대 군주. 1대 왕. 소오의 장남. 초무왕 웅철의 형. 청화간(清華簡)의 내용 중에 초나라의 역사를 담은 문헌인 계년(繫年)에는 분모 웅수(焚冒 熊帥)라고 기록되어 있다.
초나라 군주 분모는 초여왕이라고도 불리는데, 생전에 분모는 단 한번도 칭왕한 적이 없다. 이 사람이 칭왕을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왕이 된 이유는 바로 초무왕이 왕이 된 뒤, 그를 비하하기 위해 厲(갈 려)라는 시호를 주고, 왕의 직위는 그냥 준 것으로 보인다[1]. 그리고 왕이 된 적이 없는 점에 착안하여 그의 왕호인 분모(蚡冒)라고도 불린다.[2]

2. 치세


소오 6년(기원전 758년), 아버지 소오가 6년 동안 초나라의 군주로 재위하다가 죽고, 장남인 분모 웅순이 뒤를 이어서 초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초여왕(분모)은 재위 초기, 개간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병사를 훈련시키는 등 국력 강화에 힘써서 초나라의 힘은 날로 강해져갔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초여왕은 백성들을 압박하여 경고하는 공포 정치를 시행했기 때문에, 점점 민심을 잃어갔다. 변화(卞和)라는 인물이 초여왕에게 옥의 원석을 가지고 바쳤을 때, 변화가 자신에게 사기를 쳤다면서, 변화의 왼쪽 다리에 월형을 가한 것도 그 예라 보면 되겠다.[3]
초여왕(분모) 17년(기원전 741년), 아우 웅철(熊徹)이 병사를 일으켜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니 그가 초무왕이다.
[1] 厲(갈 려)자는 殺戮無辜曰厲. 즉 무고한 자를 살해했다는 의미니 악시다. 단 수양제해릉양왕의 煬(쬘 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煬(쬘 양)이 왜 나쁜지는 시법 항목 참조.[2] 왕으로 지칭을 하지 않는 이유는 분모가 칭왕을 안 해서다.[3] 이것이 화씨지벽 고사의 첫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