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권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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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복서.
북한이탈주민 출신이며 MBC 무한도전 출연으로 유명해졌다. WBA 여자 슈퍼페더급 챔피언이다.
2. 생애
평양에서 태어났다. 북한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던 아버지 덕분에 북한 기준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원래는 운동선수가 아니었고 아코디언을 배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혀 자신이 운동에 소질이 있는 것을 모르고 살던 것은 아니고, 원래부터 운동에 관심이 컸지만 부모의 의지로 예능 쪽을 배우고 있었던 모양. 이렇게 생활하다 남다른 피지컬을 눈여겨 본 김철주사범대학 총감독의 눈에 띄어 복싱 선수로 뛰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부모의 반대가 있어 아코디언을 가지고 다니면서 체육관에서 몰래 운동을 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고, 처음에는 강한 반대가 있었으나 코치가 들고 온 스파링 결과도 있고 해서 올림픽 금메달을 딸 자신이 있으면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본격적으로 복싱에 매진하게 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그 즈음 최현미에게 축구를 권유해 온 감독도 있었는데, 이때 올림픽 최현미는 선수촌을 방문했다가 얼결에 국가대표 복서와 스파링을 가졌고 이걸로 북한 유소년 복싱 국가대표까지 됐었다고 한다. 여성으로서 172cm까지 자랄 만한 피지컬이 북한에 흔치는 않았을 것이니 있었을 법한 일이다.[4]
이후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20명의 북한 선수들과 합숙을 하며 피터지는 경쟁을 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스파링을 해서 1위부터 20위까지 랭킹을 매기며 성적이 좋지 않은 선수는 퇴출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대신 잘 살아남으면 당국으로부터 월급과 쌀 배급도 받았고, 여자 축구와 여자 복싱 등 여성 스포츠 인기가 상당한 북한이었기 때문에 권투에만 충분히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3년 겨울에 아버지의 치밀한 준비와 주도로 온 가족이 함께 북한을 탈출하게 된다. 당시 아버지가 보안상의 이유로 탈북 사실을 최현미에게 전혀 알리지 않고 중국 여행을 가는 것으로 포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탈북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남조선과 한국이 같은 나라인 줄 모르고 한국이라는 또 다른 나라에 간다니 기대된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아무튼 탈출 후 중국을 거쳐 베트남의 한 숙박시설에서 오랜 기간 머물었는데, 혹시 모르니 방도 다 따로따로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상태로 몇 개월을 버텼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국정원이 유복한 집안을 이끌던 아버지의 탈북 동기를 의심하여 조사를 강도높게 하는 바람에 오래 걸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최현미에게 나중에 설명한 탈출 이유는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였다고. 헌데 최현미의 집은 할아버지가 중앙당 소속이었고 아버지와 형제들도 무역업에 종사할 정도의 명문가였다. 가족이 평양에 거주하고 폐쇄적인 북한에서 무역업에 종사할 정도면 절대 보통 집안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큰아버지가 숙청을 당했다고 하니 결국 신변의 위협때문에 탈출을 기도했을 확률이 높으며 최현미 본인도 그런 식으로 회고하고 있다. 탈북 과정에서 국정원의 조사를 몇 개월이나 받았다고 하는 것도 이 부분과 부합한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으로 입국하여 당분간 평범하게 생활을 했으나, 새로 다니게 된 학교의 급우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았고, 가족 부양때문에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고 나니 본인이 성공하여 집안을 일으켜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추어 복싱 선수 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체육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여기서도 승승장구해 16세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지만[5] , 학교 선배들의 군기교육과 텃세, 질투 등으로 체육고 생활을 계속하지 못하고 일반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후 생활고때문에 경기를 갖기 어렵게 되자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는 일명 '헝그리 복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나서 프로로 전향하려는 생각이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복싱의 정식종목 도입이 취소되자 프로진출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이후 2012년 올림픽에서 여자 복싱이 생기고, 2016년 올림픽에서는 프로 선수들의 출전도 허용되면서 올림픽 도전을 다시 고려한 것으로 보이나, 출전은 하지 않았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에도 관심이 있다고 하며, 최현미의 나이를 감안하면 이게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지만, 이 대회가 언제 열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애매해진 상태.
프로 준비과정에서는 복싱 레전드 장정구의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2008년 마침내 WBA 세계 챔피언이 되며 프로복서로 데뷔했다. 이후 방송에서 밝히길, 남한 생활 적응 과정에서 "너는 세계 챔피언이 될 거다"라며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장정구를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전문 트레이너로는 이용훈 관장의 코치를 가장 많이 받았다. 최현미 선수가 탈북한 뒤로 다시 복싱을 하려고 할때 장정구가 도움을 주거나 잠시 코치를 봐준 것은 맞긴하지만 장정구는 생계를 위해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코치를 해주지 못했다. 그 후에 코치를 해준 것이 바로 후배인 이용훈 관장. 하지만 이후에도 복싱 혹은 그 외적인 일로도 장정구는 최현미 선수에게 도움을 주면서 은사로서의 위치는 틀림이 없다.
최현미 본인은 이미 탈북은 오래전 일이고 탈북으로 시선을 끌기보다는 복싱선수 최현미로 인정을 받고 싶은데 자꾸만 탈북 얘기만 거론되어서 아쉽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질문이 나오면 탈북 상황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도 해주고 탈북은 물론 복싱을 시작하고 세계 챔피언으로 롱런하기까지 항상 필수적 역할을 해온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도 틈날 때마다 강조하는 걸 보면 탈북 관련 얘기를 하기 싫다기보다는 복싱 선수로서 어필할 기회를 더 가지고 싶기에 나오는 아쉬움인 듯.
3. 프로복싱 커리어
- Ring Magazine 선정 2020년 9월 1일자 여자 주니어 라이트급 3위
이후 2010년 덴쿠 쓰바사와의 2차 방어전을 앞두고, 무한도전 복싱 특집에 출연하면서 크게 이름을 알리게 된다. 2차 방어전의 결과는 10라운드 판정승. 이후에도 지원이 중간중간에 끊겨 방어전을 치르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WBA 페더급 7차 방어전까지 성공한 뒤 페더급에서 체급을 올렸고,,[6] 슈퍼페더급에서도 챔피언 자리에 올라 2019년 7차 방어전에 성공하기에 이른다. 이후 전 세계를 강타한 COVID-19의 영향으로 올해 2월에 WBA랑 IBF의 통합 타이틀 매치가 취소되었고, 대신 방송 출연 및 유튜브 활동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데뷔 이후 2020년 현재까지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으며, 국내 현역 유일의 2체급 석권 복싱 챔피언이다.[7] 수퍼 페더급 방어전을 한 번 더 성공하면 추가 승급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한편 마이너 기구라고 할 수 있는 WBF에서도 2016년 수퍼 페더급 챔피언에 올라 WBA-WBF 통합 챔피언인 적도 있었다. 이후 WBF홈페이지에는 여자 수퍼페더급 챔피언으로 다른 사람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WBF타이틀은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특기할 만한 부분은, 커리어 내내 한국에서만 경기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복싱에서 원정경기의 부담이 엄청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스폰서 문제도 있었겠지만, 아시아권 원정조차 없다는 것은 살짝 아쉽게 느껴진다. 다만 비슷한 커리어를 가진 타국 여성 챔피언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아서, 링 매거진이나 BoxRec 등의 랭크에서 최현미와 비슷하거나 상위에 있는 동체급 선수들의 전적을 살펴봐도 무패인 경우는 대부분 원정이 없고 (...) 패전 기록이 있는 선수들은 그 패배를 대부분 원정경기에서 당했다.[8]
최현미 선수에 대해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록상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여자 프로 복싱을 객관적으로 인지해야할 필요도 분명히 있다. 남자 프로 복싱에 비해 여자 프로 복싱은 그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신체적인 차이에서 발생되는 남녀간의 실력차이가 큰 원인이겠지만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메이웨더나 파퀴아오 같은 엄청난 파이트머니를 받는 유명 프로 복서는 여자 프로 복싱에서 기대할 수 없다. 관심도 적을 뿐더러 흥행이 쉽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복싱팬들에겐 관심밖의 종목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에 남자 프로 복싱보다도 판정에 대한 어드밴티지도 극심해서 가뜩이나 KO율도 낮은 여자 프로 복싱은 공정한 판정을 기대하기가 더 어렵다.
여자 복싱의 경우 마이너 격투기단체 수준과 비등한 수준이기 때문에 너무 "세계챔피언"이라는 타이틀만 보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과거 국내 프로복싱 전성기 시절 남자 선수들이 유망주 시절부터 노력해 신인왕-한국챔피언-동양챔피언-세계랭커진입-세계타이틀도전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경쟁을 했던 것에 비해 여자 세계 챔피언은 그 과정 자체가 너무 간략하다. 3,4전만에 세계챔피언 도전이 가능하고, 최현미 선수의 경우도 데뷔전에 세계챔피언 결정전을 치뤄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나마 엄청나게 난립했던 여성 프로 복싱 마이너 기구보다야 WBA나 WBC같은 메이저 기구들이 사정이 좀 낫긴 해서 마이너 기구 선수들의 경우 태국 등 동남아 선수들과 주구장창 붙었던 것과 달리 최현미 선수는 신체적으로 우월한 서구권, 북미, 남미 선수들과 여러번 겨뤘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워낙 선수층이 얇고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에 남자 프로 복싱과 대등하게 평가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무패 챔피언의 두체급 석권으로 좋은 커리어를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벌어질 제3국에서의 통합 타이틀전이나 향후의 경기들이 진정으로 실력을 평가받아야 할 단계일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에서 원정경기를 해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여성 선수들이 그렇듯 KO율이 높지는 않다. 2020년 12월 21일 현재 18승 중 4KO.
4. 플레이 스타일
겉보기에는 인상적인 피지컬로 골로프킨마냥 강인한 인파이팅을 펼칠 것만 같지만 실제로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며, 본인 스스로도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를 가까운 스타일로 꼽고 있다. 그렇게 플레이해야 롱런도 가능하고 얼굴도 덜 상한다고.. 아마추어 시절에는 상대를 대부분 KO로 눕힐 정도로 펀치력이 좋았다고는 하지만, 프로 데뷔 이후에는 평범한 여성 선수들과 비슷한 KO율을 보여주고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르쳐온 전문 트레이너 이용훈 관장의 영향이 큰 듯하다. 이용훈 관장의 경우 세계챔피언까진 오르지 못했으나 랭킹 1위까지 올랐던 선수였는데 테크닉을 지향한 타입이었기에 본인의 타입대로 훈련을 시켰을테니 영향이 적지 않았을 듯.
5. 방송 출연
- 무한도전 - 2010년 1월 23일, 2010년 1월 30일
한창 어려웠을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의 사연을 보면 최현미 선수는 물론이고 상대 선수였던 일본의 츠바사 덴쿠도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츠바사 덴쿠는 아버지를 위해서 권투 챔피언을 따내겠다고 했는데, 정작 아버지는 자기 딸이 권투 선수로 뛰면서 몸을 다치는 것이 싫어서 딸의 경기를 관람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모처럼 딸의 경기를 보겠다고 결심한 날에 급작스럽게 지병으로 쓰러져서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어서 그녀도 챔피언 타이틀이 절실했다고 한다. 게다가 생활고로 인해 제대로 된 훈련이 힘들었던 최현미 선수 못지 않게, 츠바사 선수도 돈이 없어서 일반 가정집에 링 하나만 설치해서 훈련을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던지라, 방송이 끝나고 나서 두 선수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
- 이제 만나러 갑니다
- 모란봉클럽
- 위대한 운동장 - SKY 머슬 - 2020년 3월 16일 최현미 편.
-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 2020년 2월 12일 최현미 편.
- 집사부일체 - 2020년 8월 16일 최현미 편.
- 런웨이
6. 여담
유정호와 한판 붙으러 했지만 유정호가 쫄은 나머지 유정호가 도주했다 하지만 결국 유정호와 한판 붙었고 결과는 유정호 패배https://youtu.be/iAUw0JTDPWs(참고링크)
6.1. 데뷔전 전적 조작
과거 데뷔전으로 알려진 2008년 6월 26일에 중국 윈난에서 벌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던 장쥐안쥐안과의 범아시아권투협회(PABA)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 매치가 실제로는 없었던 경기였다. (관련기사) 이게 기권승, 부전승 따위도 아니고 3라운드 TKO라고 비교적 구체적으로 (...) 조작됐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아버지 최영춘의 해명에 따르면 해당 대전을 기획했던 심양섭(당시 WBA 부회장[9] 겸 PABA회장)의 비즈니스에 따랐으며 조작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당사자 심양섭의 해명으로는 최현미가 탈북 선수라 북한측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아 경기를 하지 않았다고 하며, 최영춘 역시 경기장 인근에 탈북자를 단속하는 북한 보위부가 배치됐다는 얘기를 듣고 경기를 포기했다고 해명하였다. 이를 최대한 최현미 측에 유리하게 해석해보면 경기는 추진 상태였으나 신변 관련 위협으로 취소되었고, 이걸 심양섭이 그대로 WBA 타이틀매치를 추진하는 데에 사용하되 자세한 내용은 최현미 측과 공유하지 않았다는 정도의 스토리가 되겠으나, 실제로 얼마만큼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는 지금 상황에서는 확실히 알 도리가 없다.
어쨌든 최현미가 WBA 타이틀매치에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가 바로 그 유령 경기였기 때문에 챔피언 자격이 박탈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으나 결국 유야무야되었다. 당시 심양섭 회장의 해명은 아마추어 당시의 실력이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에 챔피언 도전에 결격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후 수퍼 페더급으로 체급을 올릴 때까지 별 말 없이 챔피언 자격을 유지했던 걸로 봐서 박탈 사유까진 되지 않은 모양. 심양섭이 당시 PABA 회장 및 WBA부회장을 겸직하고 있었다는 현실적인 영향도 없지 않았을 듯.
해당 논란이 불거진 이후 공식 전적에서는 이 경기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프로 데뷔전에서 챔피언이 된 셈.
6.2. 1차 방어전 상대 자격미달 논란
2014년 5월 수퍼 페더급 1차 방어전 상대로 8회 TKO 승리를 거두었던 통마니트 시리완(태국)의 자격 시비도 겪은 적이 있다. 조사결과 이미 프로 18전을 했다고 제출한 시리완의 프로 통산 전적이 1전밖에 안 되었으며 관광비자로 입국해 경기를 가졌다는 것.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최현미의 유령 데뷔전 상황과 비슷한데, 이것도 역시 유야무야되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2015년 대구 서구 국민체육센터 특설링에서 다시 한 번 경기를 가졌고 최현미가 KO승을 거두었는데, 이 경기는 논 타이틀 매치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경기 소식 및 포스터)
6.3. 무승부 전적 누락
방송에 나올 때마다 전적이 오락가락하는 면이 있다. 분명 2009년 여자 페더급 세계 챔피언 1차 방어전에서 한국의 김효민 선수와 무승부를 기록한 적이 있는데도[10] 이 부분이 잘 언급되지 않고 'xx전 전승' 정도로 표기되곤 한다. 패한 적은 없으니 무패인 건 맞지만 무승부가 끼어 있으니 전승이라고 할 수는 없다. 비록 한국 복싱의 기록 관리 상태가 열악하기 짝이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 타이틀매치 전적까지 누락시키면 곤란한 일이다. 예능 방송용 멘트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사실 관계를 왜곡해서는 안 될 것이다.
[1] 가족 단위로 북한을 탈출하였으나 현 가족사항에 대해서 자세하게 공개된 적은 없다.[2]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고정 출연한 경력이 있으며 방송인으로 활동하였다. 최현미와 같은 방송에 출연한 적도 있다.[3] BoxRec 기준, 2020년 8월 25일 확인.[4] 사실 고난의 행군인수 북한에는 남성도 172cm는 어렵다. 최현미는 북한에서는 거구인 셈이었다.[5] 북한에서 당의 지원을 받으며 치열한 생존경쟁을 거쳤기에 한국에서는 적수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성인 챔피언이 된 이후로도 여자 선수와 스파링을 해보는 게 소원이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이는 곧 웬만한 국내 여성 선수는 연습 상대조차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6] 이후 타이틀을 반납했다는 언급을 잘 안 해서 최현미가 두 체급의 챔피언을 동시 보유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WBA의 체급별 랭킹 페이지를 보면 2020년 8월 25일 현재 페더급 챔피언은 Jelena Mrdjenovich로 나와 있으며 2016년에 타이틀을 획득했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페더급 타이틀은 체급을 올릴 때 반납한 것으로 보인다.[7] 두 체급은 커녕 대한민국 내에 남녀 통틀어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이 오랫동안 전혀 없는 줄 알고 있었던 사람도 많다. 한국 내 복싱 인기가 얼마나 침체인지 느낄 수 있는 부분.[8] 남자 복싱의 인기에 가려져 복싱인기가 높은 해외에서도 2010년대에 들어와서야 여자 복싱이 어느정도 자리잡을수 있는 환경이 되기도 했고, TKO는 몰라도 녹아웃 KO까지는 잘 안 나오는 여성 복싱 자체의 특성상 원정이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도 하다.[9] 비 남미권 인사가 부회장에 오른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10] 무승부이므로 타이틀 방어는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