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

 



1. 개요
2. 명칭
3. 역사
4. 현황
4.1. 한국 내 탈북자 현황, 한국 정부의 대응
4.1.1. 대한민국에서의 법적 지위
4.1.2. 북한이탈주민의 대한민국 국회 입성
4.2. 북한의 대응
4.3. 중국 내 탈북자
4.3.1. 중국 체류 탈북자 규모
4.4. 기타 국가
5. 탈북 방법
6. 한국 사회에서 적응 문제
6.1. 일반 국민의 차별
6.2. 남한 측의 악용
6.3. 정치적 문제
6.3.1. 정치 극단주의
6.3.1.1. 망명 논란
6.3.2. 정치적 거짓 증언 논란
6.4. 문화적 문제
6.4.2. 증언에 대한 오해
6.4.3. 북한 사회 이해의 어려움
6.5. 사회 제도적 적응 문제
6.5.1. 일부 탈북자의 일탈
6.5.2. 탈북 청소년 문제
6.5.3. 사회적 지위 하락
6.5.4. 난민 신청을 통한 해외 이민
6.5.5. 기타
7.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해외방문시 주의사항
7.1. 이유
7.2. 국외여행시 유의사항
7.3. 진로선택시 유의사항
8.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가 받는 혜택
9. 가짜 북한이탈주민
9.1. 북한 간첩
9.2. 중국 조선족의 경우
10. 조선적 (재일교포)
11. 조선 교포
12. 북한 화교
13. 기타
14. 다른 분단국가의 난민
15. 유명 인물
16. 탈북자 소재 매체
16.1. 영화
16.2. 드라마
16.3. 예능
16.4. 만화
16.5. 게임
17. 관련 문서


1. 개요


  • 한국어: 북한이탈주민, 탈북자, 탈북민, 새터민[1], 북향민
  • 한자: 北韓離脫住民, 脫北者
  • 영어: North Korean defectors[2]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북한 지역에서 살다가 이탈하여 남한 혹은 제3국행을 택한 북한 주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2. 명칭


과거 냉전 시기에는 '''귀순 용사'''라는 표현을 쓰다가, 1990년대 이후로는 탈북했다고 해서 '''탈북자'''가 일반화되었다. 참여정부 시기 '''새터민'''이라는 표현을 법제화했으나, 여전히 탈북자가 가장 많이 쓰이는 편이다. 또한 탈북자 당사자들이 새터민이라는 표현 자체에 혼란과 거부감을 느끼고 있어 정부 차원에서도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1997년 제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다. 해당 법에서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이하 "북한"이라 한다)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흔히 북한이탈주민을 지칭함에 있어서 '탈북자', '탈북민', '새터민', '북한이탈주민' 등이 혼용되고 있다. 통일부를 기준으로 2005년까지는 관습적으로 '탈북자'로 지칭하다가 탈북자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다는 이유로 2005년부터 '''새터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밝은 어감의 단어를 골랐다고 하지만 정작 북한이탈주민들 내에서는 '새터'라는 단어가 오히려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인하며 차별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로[3] 반발이 심했다.#
결국 2008년부터는 법률 용어인 '북한이탈주민'을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4] 다만 북한이탈주민의 단어 길이가 길다보니 약칭으로는 '탈북민'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는데,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자' 라는 표현을 비하 의도로 인식하면서[5] 이를 공식명칭에 들어있는 民으로 대체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새터민'이라는 단어가 뭔가 있어보여서(...) 조금 관심 있는 일반인은 물론 심지어 북한 관련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남발되는 경향이 있으나, 이런 이력 때문에 어지간하면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 물론 북한이탈주민들 중에서도 스스로를 새터민이라고 지칭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으나, 어찌되었건 북한이탈주민 내에서 여론이 워낙 안좋아 사장된 단어이니 상대가 대놓고 원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먼저 쓸 필요는 없다.

3. 역사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들의 역사는 분단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해방 후 한국전쟁 이전에 존재했던 38선을 지금의 북중국경을 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넘어서 대한민국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이순재, 송해와 같은 실향민의 범주에 들어간다. 탈북민들이 북한 함흥 이북의 함경도[6] 출신이 많다면 실향민들은 평양, 함흥 이남 지역 출신들이 많다. 탈북에 비해 소수긴 하지만 반대로 공산주의 사상을 쫓아 월북한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1945년 일본에서 귀국한 남한 출신들이 중국 공산당이 땅을 준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으로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거기다 50년대 대약진운동 60~70년대 문화대혁명 같은 마오쩌둥의 삽질로 탈중해서 북한으로 도망치는 중국 조선족 청년들이 많았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중 국경지대의 조선족들이 생필품을 얻으러 북한에 넘어오던 시절이었으니..하지만 79년부터 덩샤오핑이 시작한 개혁개방의 효과가 84년경에는 북중국경에까지 미치면서 처지가 역전되었다.
허나 우리가 알고 있는 탈북이 시작된 것은 1994년 김일성이 죽고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북한 경제가 붕괴된 때부터다. 1995~2000년까지는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사실상 묵인했지만 2000년대 초반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면서 중국 대륙에 살던 탈북자들이 북송을 피해 한국으로 매년 1000명 이상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 귀순에 성공한 사람들을 2005년경부터 새터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참고로 6.25 전쟁 휴전 이전에 월남한 북한 사람들은 실향민이라고 부른다.

4. 현황



4.1. 한국 내 탈북자 현황, 한국 정부의 대응


2019년 12월 기준 한국으로 입국한 누적 탈북자들의 수는 대략 3만 3천명에 해당한다.[7] 이들 중 절대다수는 21세기에 입국한 사람들이다. 1998년까지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매년 많아야 수십 명 수준에 그쳤지만 1999년에 최초로 한 해 입국자 수가 100명을 돌파했고, 2002년에는 1,142명이 입국했다. 이후 2008, 2009년 입국자 수가 3,000명 수준까지 육박한 적이 있었으나, 북한과 중국 공안의 단속 강화 등으로 2012, 2013년에는 1500명대에서 정체 상태에 있다. 이 이후로는 꾸준히 그 수가 감소하여, 2019년에는 1,000명을 간신히 넘겼다. 가장 대표적인 탈북자의 감소 이유로는 감시의 강화가 꼽히고 있으며, 게다가 2020년에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쪽에서 디지털 장비를 동원해 북중국경 감시를 강화하고 자국내 이동에도 여러 제한을 두면서, 주성하 기자의 유튜브에 따르면 한달동안 하나원 입소자가 3명밖에 안될 정도라고 한다.[8]
2016년 두만강 유역 대홍수두만강 가의 탈북 기도자의 은신처로 사용되던 마을이 감시가 가능하도록 위치가 옮겨졌으며, 2010년대 후반 들어 중국도 국경 전 지역에 거쳐서 자동화된 감시 시스템을 완성하였다. 북한도 이 수준은 못해도 감시 초소를 늘리고, 국경 경비를 강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가 유행한 이후로는 남한으로 입국하는 탈북자가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물론 동남아까지 이동 통제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2020년 상반기 남한 입국 탈북자가 147명으로, 2020년 탈북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기다리며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3월까지 탈북자의 출신지역은 다음과 같다. 출처는 통일부 북한이탈주민 통계.
'''구분'''
'''남'''
'''여'''
'''합계(명)'''
강원
220
374
594
남포
72
87
159
양강
1,526
4,390
5,916
자강
75
163
238
평남
450
646
1,096
평북
371
502
873
평양
439
331
770
함남
772
2,085
2,857
함북
4,834
14,926
19,760
황남
269
202
471
황북
183
282
465
개성
46
33
79
기타(재외 등[9])
97
126
223

9,354
24,147
33,501
2000년대 초중반부터 남성 탈북민보다 여성 탈북민이 늘어나, 현재 거의 3:7의 비율로 여성이 많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의 설문 등을 바탕으로 보면 2010년대 초반 이후로 양강도 출신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으며, 그 전에는 함경북도 출신이 주류였다. 그 중에서도 북중 국경에 가까운 지역일수록 탈북민이 많다. 함경북도의 어떤 마을은 주민의 절반이 탈북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지만, 자강도는 인구가 2008년 129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71만명인 양강도는 물론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개성 31만명의 인구를 감안하면 탈북자가 인구에 비해 유달리 적다. 개성 수준으로 탈북하면 300명은 넘어야 한다. 구체적인 원인은 오리무중이나, 군인이 많고 출입이 어려운 특성이 작용한 듯하다. 양강도와 함경북도는 북한 인구의 13% 정도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전체 탈북자의 76.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탈북민들이 북한 전체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이곳은 사투리부터가 북한에 관심없는 일반적인 한국 사람에게는 사랑의 불시착 같은 드라마 이전에는 생소한 곳[10]이었고, 황해도 같은 곡창지대의 특성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교류도 다른 지방보다 많은 곳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에는 생계형 탈북이 주를 이루었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는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거의 벗어난 대신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한국 문물이 북한에 유입되자 정치적 동기, 자아 실현 등의 이유로 탈북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통제가 강화되어 하류층 탈북민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상류층의 탈북이 늘어났는데 이들의 특징은 자신은 안 오고 자식만 탈북시킨다는 점이다. 이렇게 탈북한 북한 상류층 자제는 오히려 북한에서 송금을 받아 남한에서 생활을 하며 상위 명문대를 다닌다. 평양 출신의 경우 말투도 남한과 다를 게 없어서 본인이 밝히지 않는 이상 잘 드러나지도 않으며 북한에서도 잘나가는 집안 출신이 많은 만큼 생계의 걱정 없이 유복하게 생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방학 중에 중국으로 가서 가족과 만나거나 휴대전화로 연락을 한다고 한다. 다만 서울대 통화평화연구원의 '북한사회변동조사'라는 설문 자료에서는 북한 사회를 상층 20%, 중층 30%, 하층 50% 가량으로 구분할 때 2012년 이후에도 탈북자의 주관적 계층 인식이 상층이 10%, 중층 60%, 하층 30% 선에서 변동만 보인다는 자료가 있다. 그나마 중층이 증가하는 편이라고 한다. 이것은 북한의 시장화로 중하류층도 겉으로 보이는 생활이 개선된 모습을 보고 과거의 기준으로 북한을 판단하여 하류층이 줄어들었다는 판단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2015~2016년경에는 보수 정권이 집권하여 지위가 높은 인물들의 탈북이 주목 받았다.[11] 대표적으로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과 주영 북한 대사 차석으로 지냈던 태영호의 탈북이 대표적인 예이다.[12] 2020년에는 주 이탈리아 대사 대리였던 조성길이 탈북하여서 한국에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2015년 7월 4일 동해에서 표류 중이던 북한 어민들 5명 중 3명이 귀순의사를 밝히자 북한은 이들 5명 전원의 송환을 주장했다. 정부는 물론 귀순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전해 사실상 이들의 귀순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이번엔 귀순의사를 밝힌 어민들의 인적사항을 요구했다고 한다. #
하나원 설립 이전에는 탈북자를 위한 별도의 교육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정보기관에서 심문 과정을 거친 뒤, 그 기관에서 알아서 남한 사회 구경 몇 번 시켜주고 지원금 통장과 임대 아파트 입주권 하나 주고 내보내는 식으로 정착시켰다. 일례로 1987년 김만철 일가족들이 탈북했을 당시에는 롯데백화점 본점이나 남산, 63빌딩 등 서울을 구경하는 정도였다고. 참고로 김만철씨 일가는 꽤 많았던 지원금을 사기당해 싸그리 날려먹고 컨테이너에서 거주하면서 인형 눈 붙이는 부업으로 연명하고 있다. 김만철 씨는 비교적 최근까지 사이비 종교인 영생교에 심취해 있었다. 다만 막내아들 김광호 씨가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으로 유학가서 우주공학을 전공한 후 대한민국으로 돌아와서 서울대학교 천체물리학과[13] 석사학위를 받고 일본여성과 결혼했으며,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국내 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김만철의 근황.
고난의 행군 이후 탈북자가 급증하자, 정부는 1999년에 탈북자 전문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세웠다. 탈북자들은 입국하면 하나원에서 3개월간의 사회적응교육을 마친 뒤에 정착한다. 다만 하나원에 입소하기 전에 정부 합동심문반[14]이 탈북자들의 이력을 조사하는 절차를 거친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간첩을 색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탈북 루트, 남한 귀순 이유를 물어보며 동향 사람과 대질 신문같은 것도 있다. 가령 '누구 집 개가 몇 마리인지' 같은 동네 사람들만 아는 정보를 추궁. 여성의 경우 나긋나긋한 국정원 남직원으로 인해 컬쳐 쇼크를 느낀다고도 한다.[15](...) 1980년대 남영동, 남산, 서빙고를 떠올려본다면 그야말로 상전벽해.
보편적인 이민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엘리트 출신이 여기서도 적응을 잘한다고 한다. 1980년대 동구권에서 유학한 엘리트라든지 아님 북한의 유수의 대학 출신들. 아무리 폐쇄적인 나라라고 해도 바깥 세상에 더욱 잘 알고 교육이 뒷받침되기 때문. 사실 최근의 탈북자 사회 부적응 문제는 이런 엘리트층이 아닌 일반 주민들이, 특히 현재보다도 정보 유통이 잘 되지 않으며[16] 시장화가 더딘 시절 대거 탈북하여 한국에 입국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 이들 중 북한에서부터 달러 등 외화를 많이 소지하고 있던 사람들도 많아서 그 돈을 그대로 남한에서 사용하며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유층이나 못해도 중산층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북의 외교관, 무역일꾼 중에 외화벌이 사업으로 벌어들인 거액의 달러를 들고 넘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해외에서 우리 정보기관에 접촉해서 정보를 넘겨주는 대가로, 보통 자신이 관리하던 달러에 대해서 일체의 조사를 하지 말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부연 하면 북한의 해외 비자금중 일부는 마약, 위조지폐, 밀수 등 범죄행위로 번 것이다. 이들은 이런 출처가 불분명한 돈을 들고 올테니 묵인해달라는 것이다. 놔두면 어차피 북한 정권으로 들어갈 돈이니 그냥 넘어가는 듯하다. 심지어 북한의 상류층, 엘리트층에는 자녀의 교육 문제 때문에 탈북해서 대한민국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17]
수적으론 많지 않지만 북한군 현역 군인, 특히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장교의 경우엔 특별임관을 통해 한국군 장교로 복무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군 공군 조종사 출신인 이웅평 대령이나 이철수 대령, 북한 민경대대 참모장 출신인 신중철 예비역 대령#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동안 망명정부 세우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고위 탈북자 중심으로 미국에서 세우는 것이 결정되었으며, # 북한 급변 사태를 대비해서 10만 탈북촌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다만 이후 소식은 딱히 알려진게 없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인도주의와 동포애 차원에서 간첩[18]만 아니면 북한이탈주민은 다소 예산에 부담이 되더라도 모두 받아준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법적 지위를 다룬 문단에서 보듯 대한민국 정부는 자국민으로 간주한다.
또한, 서강대학교 기준으로 새터민에게는 학비가 전액 무료이다. 대학교까지 4년 다니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새터민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적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탈북자 중에서 국회의원도 배출했다. 2012년에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출마해서 당선된 조명철 의원김일성종합대학에서 [19]교원을 하다가 1994년에 탈북했다. 개성공단에 국회의원들이 방문할 일이 생겼는데 탈북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유일하게 거절당했다.
하지만 자력으로 들어오는 새터민을 받아준다 뿐이지 절대로 정부가 나서서 새터민을 구출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를 밀입국자로 규정한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어필한 적은 없으며 물 밑에서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용한 외교'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헌법상 대부분의 탈북자들[20]이 한국 국적자로 간주되지만 문제는 이들이 한국 국적자임을 입증할 서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증이 불가능하면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당사국 마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타국 정부에 요청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우리한테로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방법뿐이다.
다만 황당한 것은 한때 대한민국 국적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존재하는 사람마저 내버려 둔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1998년에는 국군 포로 장무환, 2002년 납북 어부 이재근이 전화로 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전화를 받은 대사관 직원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차라리 밀항을 해라"''' 등의 폭언을 한 전화 녹음이 언론에 공개된 적도 있다. 물론 이때 외교부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당연히 이 영사의 행위는 무례한 것을 넘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새터민의 현황은 탈북자 글로벌 카페,새터민정거장, 새터민 라운지 등등 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탈북자 중 위장 탈북자나 간첩이 있을 수도 있기에 감시도 꾸준히 이루어진다고 한다. 전술한 돈을 바치고 나와 탈북에 성공한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탈북자끼리 모여서 사업을 벌이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통일부에서는 같은 고향 출신 탈북자들끼리 같이 사업하다가 사기당하는 경우도 높고, 사기 당하지 않아도 채무관계나 사업 시 의견 충돌 및 이견 때문에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통일부 유튜브에서 이런 것을 교육한다. 단, 탈북자들 중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사원이 되거나 공무원, 군인과 같은 공공기관에 취업하는 사례, 창업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경제활동이 증가추세나 아직 까지는 일반 국민에 비하면 드문 편이다.
한 탈북자가 말하길 "자신은 나이든 남자 탈북자들 중 꽤 드물게 남한에서 자격증도 여러 개 따고 취직하여 성공한 사람이라면서 같은 기수로 남자 하나원을 수료한 10여명의 비슷한 나이대의 친하게 지내던 이들 중 두 사람은 자살하고 나머지는 죄다 실업자에 알콜 중독, 정신 이상으로 인한 치료, 한 사람은 교회에 광적으로 빠져들어서 다른 탈북자에게 강요하다가 그만 싸움이 벌어져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특히 나이든 남자 탈북자 동료들 가운데 자신만이 성공했다고 아쉬워하면서, 나이든 남자 탈북자들은 여성이나 젋은 남자 탈북자에 비해 적응을 못해 처지가 힘들다고 증언했다. 이렇듯 시장경제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가 많다. 이 걸 가볍게 보면 안 되는 이유가 탈북민들이 통일의 바로미터이듯 통일 이후 발생하는 위화감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탈북민의 부적응이 잘못하면 치안이나 경제적인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태국 주재 한국 대사관 직원들이 탈북자들에게 폭언을 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기사가 나가자 외교부에서는 탈북자들의 주장이 과장되었음을 주장했으며, 해당 언론사에 직접 구두로 항의했다. 관련기사 #
그리고 남한 지역에서 적응에 실패하는 등 여타 이유 등으로 다시 북한 지역으로 되돌아가는 일부 경우도 있는데, 김정은 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탈북자를 막기 위한 광고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경우 가족을 인질 삼아 협박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전원 최종적으로는 자신과 가족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관련기사
더불어 탈북자 중에서도 사기꾼이자 북한에서 범죄를 일으킨 사람도 종종 보여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부분은 탈북민의 적응 문제를 다룬 문단에서 다룬다.
물론 경제적 여건이 약간 어렵기는 하지만, 이런 저런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탈북자가 전체중 확실한 다수를 차지한다. 탈북자가 없는 것 같아도 우리 주변에 은근히 많이 있으며, 가게에서 단골 손님인 사람이 친해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탈북자라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북한에 비하면 생활 여건이 엄청나게 좋다고 한다. 물론 이는 당연한 이야기다. 특히 남한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대경제 성장을 이루어 70년대 이후 북한 경제와 엄청난 격차가 벌어졌으며, 명실공히한 선진국으로써 소득면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에 반해 북한은 고난의 행군기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직 탈북민에 관한 차별, 부적응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으나, 한국에 정착하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다수다. 통일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74.2%가 한국 생활에 만족한다. 경제활동참여율은 2018년 이후 일반국민과의 차이가 1%대로 줄어들었고, 고용률과 실업률 지표도 2010년대 초반에 비하면 개선된 편이다. 임금 격차도 아직은 2019년 기준 일반국민의 임금이 260만원 대이지만 탈북민이 200만원 대라 60만원 대인데, 2011년에 일반국민이 200만원인데 차이가 80만원이 나던 시대보다는 개선된 편이다. # 한국 정착 탈북자의 성비는 2019년 기준 남성 28%, 여성 72% 정도 되는데#, 여성이 220만원, 남성이 324만원을 받는 남한에 이 성비를 대입하면 250만원 가량이 되어 성별이 같을 경우 남한이 25% 가량 높다. 참고로 2019년 독일 기준 서독 출신이 성별, 직업, 경력을 유사하게 맞출 경우 동독 출신보다 17% 정도 높다. # 경제활동참여율도 2019년 한국은 남성 73.5%, 여성 53.5%에 전체 63.3%인 격이라 같은 기간 62.1%인 탈북민과 비교하면 성별 비중을 유사하게 맞춘 집단에서는 탈북민 쪽이 경제활동참여율이 높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에 대한 연구 같은 건 부족하지만 돈을 벌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모양이다.
탈북민들이 대체로 대한민국에 호의적인 편[21]이고, 한국 사회에서도 북한을 대한민국의 일부로 여기는 교육의 여파가 남아있어 조선족, 고려인 등 재외동포에 비하면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반감이 적은 편이다. # 다만 복지 혜택에 대해서는 부정적 정서도 존재해 정부가 탈북민의 자립 능력을 효율적으로 키우고, 공정성을 더 세심히 고려하는 등 이를 반영한 정책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4.1.1. 대한민국에서의 법적 지위


탈북자는 북한의 통치가 미치는 지역주소를 두고 거주하다가 탈출하여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으려는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의 '''주민'''으로 정의되어 있다.[22] 그 근거는 '''대한민국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와 북한이탈주민의보호및정착지원에관한법률[23] 제1조 등에 따른다.
즉 대한민국 헌법 제 3조, 북한이탈주민법 제 1조에 의해 북한 주민들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는 것이다. 다만 반국가단체의 불법 통치하에 있어서 대한민국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
또한 대한민국 국적법 제 2조 1항에 따르면 부모 중 한명이라도 대한민국 국민인 경우에는 자녀도 대한민국 국적자이다. 이에 따라 탈북민의 자녀중국에서 출생하거나 또는 중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에도, 한국에 와서 탈북민 부 또는 모의 자녀임이 확인되면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는다. 이런 경우 북한 '국적'은 가지고 있는데 생계기반이나 직계가족이 북한에 있는 건 아닌 사람이 가끔 있는데, 이럴 경우엔 한국 국적자로 등록은 되더라도 북한이탈주민법에 의한 보호대상자가 아니여서 정착지원은 받을 수 없다.
과거에 주 캐나다 '''한국 대사관'''이 북한이탈주민이라고 무조건 대한민국 국적자인 것은 아니라는 잘못된 정보를 넘기는 바람에, 전세계 법원이 그런 줄 알고 있었다. 주 호주 한국 대사관이 올바른 정보를 넘기자 해외에서 한동안 어느 쪽이 맞는 정보인지 몰라 난리가 났었다. 이후 2014년 영국 상급 난민 법원의 판결 이후 전세계적으로 정리가 끝났다. [2014] UKUT 391 (IAC) - '''All North Korean citizens are also citizens of South Korea. (모든 북한 시민은 한국 시민이기도 하다.)'''
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당시 탈북자의 대한민국 국적을 부정하고 강제북송한 사례가 발생했는데, 이 경우는 대한민국 해군에 나포된 2명이 흉악범죄를 저지른 중대 범죄자로, 보호 대상이 아니며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위법한 판단으로서 국제 인권단체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

4.1.2. 북한이탈주민의 대한민국 국회 입성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탈북민 최초로 국회에 입성한 사람은 김형덕 現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이다. 16대 국회에서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정책비서관'''으로 공채를 통해 발탁됐으며, 2001년 탈북자를 위해 만들었던 정책 보고서가 2004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로 법제화됐으며 지금껏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한다.[24]
2012년 대한민국 19대 총선에서 '''북한이탈주민 최초'''로 조명철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20년 대한민국 21대 총선에서는 북한이탈주민 '''2명'''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평양 출신 주 영국 북한대사로 있던 태영호(태구민)는 강남구 갑 지역구에서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는데, '''북한이탈주민 최초'''로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로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그리고 회령시 출신의 지성호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로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토마스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같은해 4월 17일, 한국에서 태영호(태구민)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와 북한 인권운동가 지성호탈북민 2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소식은 “북한 수뇌부에 근심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입법부인 국회에 들어가면 정치인으로서 목표를 위해 더 활발히 활동하는데, 태 전 공사는 자신의 목표가 북한 정권의 붕괴와 체제 전환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에 북한 정권으로서는 이에 대해 우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퀸타나 보고관은 엘리트 출신이든 아니든 '''출신 여부'''[25]에 상관없이 탈북민이 투표를 통해 당선됐다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 제도의 우수성을 북한에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는 미래 통일한반도가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
또한 미국의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두 탈북민의 당선이 남북한 모두에 “고무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3만 5천여 명의 한국 내 탈북민 가운데 국회의원이 총 3명이 나온 것은 북한인들을 자신의 형제자매로 보는 한국인들의 개방성, 한국의 자유롭고 열린 선거제도의 모습을 북한에 보여주는 매우 긍정적인 모습이란 것이다.

4.2. 북한의 대응


【보위부원이 여성 북송 탈북자에게 발길질을 하는 모습. 클릭 시 펼쳐볼 수 있다. 잔인한 것을 못보는 분들은 열람에 주의바란다.】
[image]
2002~2003년경 보위부 지하 고문실에서 촬영된 영상의 일부라고 전해진다. 북송 탈북자에 대한 취조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의뢰하며 보위부원에게 돈을 주니 이런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의 여파가 남아있던 시기로, 굶주림때문에 생존을 위해 북한을 떠나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여성이 구타 당하는 사진이라고 한다. 이를 처음 공개한 대북인권단체 '북한정의연대'의 사무총장의 언급으로는 북한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이보다 더하다고 한다. #

2002~2003년경 보위부 지하 고문실에서 촬영된 영상의 일부라고 전해진다. 북송 탈북자에 대한 취조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의뢰하며 보위부원에게 돈을 주니 이런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의 여파가 남아있던 시기로, 굶주림때문에 생존을 위해 북한을 떠나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여성이 구타 당하는 사진이라고 한다. 이를 처음 공개한 대북인권단체 '북한정의연대'의 사무총장의 언급으로는 북한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이보다 더하다고 한다. # }}}
북한의 탈북자에 대한 대응은 시기마다 조금씩 다른데 처음에는 북송된 탈북자를 정치범으로 보아 정치범수용소로 보내버렸다. 하지만 워낙 탈북자의 수가 많으니 나중에는 탈북자를 분류하여 한국으로 가려다 혹은 기독교를 접하고 북송된 사람들은 정치범으로 취급하지만 먹을 것을 위한 단순 탈북인 경우에는 약간의 강제노동 후 다시 풀어주었다. 탈북자는 단순 방면, 노동단련형, 감옥행을 당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그나마 탈북자들에게 관대했던[26] 김정일 시대까지의 이야기로 김정은이 집권한 뒤 무조건 사형이나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직행 코스를 타게 된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는 2011년 12월 이전 탈북하여 그 이후 중국에서 떠돌다가 국내로 들어온 사람이 절대다수에 속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탈북자를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탈북에 대한 북한 당국의 단속이 심해졌다고 한다.[27] 이러한 단속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남한에 가족이 있는 탈북자들까지 수십 명이 잡혀 북송될 위기에 처하고 이들에 대한 구명 운동이 확산되면서 탈북자 문제가 국제이슈화 되고 있다. 모 국회의원은 단식투쟁을 하고 있고 '크로싱'에 출연했었던 배우 차인표 등은 적극적으로 가두시위를 벌이는 등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확산 중. 하지만 북한에 대해 확실한 주도권을 인정받지 못한 현재의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붕괴될 경우 자칫 중국 대륙과 서방 세력간 완충지대의 소멸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28]
하지만 중국이 까이고 비판받는 이유는 하필이면 닥치고 강제북송을 한다는 것이다. 원래 밀입국자들은 본국으로 추방시키거나 혹은 현행법으로 처벌하는데 중국 입장에서도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다시 보내지면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을 알면서도 북송을 고수하는 것이다. 차라리 '''탈북자들 입장에서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처럼 오히려 몽골 사막 한가운데에 유기되는게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말이다.[29] 거기다 중국의 국력으로 보나 뭘보나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추방하던지 필리핀 같은 제3국으로 추방하든지 아니면 백번양보해서 최소한 '''체포한 탈북자들을 한국 대사관에 그냥 알아서 하라면서 던져 놓을 수도 있다.''' 만약 한국 대사관이 중국 공안이 그냥 무책임하게 던져놓은 탈북자들을 쫓아내면 한국 대사관이 오히려 비난을 피할수가 없어 중국입장에서도 인권문제로 욕을 혼자 바가지로 먹을 일도 없기 때문. 아니 애초에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이탈주민들의 인권을 외면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어긋나는 행위다.
의도는 좋았다고 하더라도 당사자들에게는 도움은커녕 오히려 더 방해만 되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리고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위의 탈북자들은 결국 북송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의 탈북을 도와준 사람들의 가족까지 가차없이 잡아가고 있다고 하니 피해 인원은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라오스까지 탈출한 청소년 9명을 친북 성향의 라오스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 중국의 묵인 속에 평양으로 끌고 갔다가 뒤늦게 들통나는 등 해외로 나간 탈북자들까지 잡아들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하지만 이렇게 공론화한 시점에서 해당 탈북자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 탈북자 중 최소한 2명은 구할 수 있었음에도 이들의 생명을 무시하고 언플을 벌이다 탈북자 모두를 사실상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특히 외교부의 '그들은 북한 사람인데 어떻게 한국인이라는 신원확인서에 도장을 찍어주느냐'는 발언이 있었다. 외교부가 그 사람들을 북한 사람으로 보았다는 것인데 그러면 찍어 줄 수 있었다. 아니, '''찍어 줘야 했다.''' 위에서 봤듯이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 주민도 남한 국민으로 인정되기 때문. 이거는 대한민국 국적자를 보호해야 할 외교부대한민국 정부직무유기에 해당된다. 북한사람으로 간주한다면 무조건 신원보증을 해야한다. 심지어 대상자가 범죄자용의자라고 할 지라도.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하면서 남과 북이 모두 주장하던 '우리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국가'라는 논리는 국제적으로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 남북 모두와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는 동시수교국이 158개국에 달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서 규정한 한반도의 모든 지역이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개념은 국내에서나 통용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영토와 국적의 차이다. 국제적으로는 남과 북 모두가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누가 한국 국적자인지는 한국의 국내법이 정한다.[30] 한민족부모를 둔 북한의 국민대한민국 헌법 제3조와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라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것에 기반해서 대한민국 정부는 탈북자가 북한 국민이란게 사실만 증명이 되면 받아들이고 있다. 즉 제3국의 시선으로 볼때 탈북자는 북한 국적과 한국 국적을 모두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급격한 남한 내 탈북자의 증가로 이제 북한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들은 탈북 후에도 여전히 북한에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북한 체제 위협 요인으로 상존하고 있다.[31] 이미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들이 자금을 축적한 후 브로커를 통해 아직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꺼내오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최근의 남한 입국자들 상당수는 이런 경우다.
2020년 들어서 김정은 정권은 탈북자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그 친인척까지 삼엄한 감시를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무렵에 탈북자는 적이라는 선전을 하고 있었음이 관영매체를 통해 보도가 되었다. '비법월경행위'라면서 코로나19라는 구실과 함께 탈북을 아예 뿌리채 뽑아버리려고 한다는 보도도 있다. # 송금도 막고자 하며, 연락도 안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

4.3. 중국 내 탈북자


북한은 탈북자가 발생하면 대부분 국가정보원에 의한 '납치'라고 주장한다. 다만 남한과는 별개로 실제로 비자발적인 탈북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국경의 젊은 북한 여성에게 접근한 브로커가 "중국에서 몇 달만 일하면 떼돈 벌 수 있다"고 꼬드겨서 압록강을 넘었더니 연변의 조선족에게 팔려갔다면 양반이고 중국 헤이룽장성이나 저멀리 산둥성 깡촌에도 팔려가 한족과 강제 결혼을 하는 식이다. 국경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단속이 느슨한 한족 마을들의 경우 탈북여성이 팔려오면 온 동네 사람들이 구경오고 탈북여성이 도망치면 온 동네가 합심해서 잡으러 다닌다.[32]
이런 수요가 많기 때문에 탈북이 절정을 이루던 10~20년 전에는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는 북한 여자들을 잡아 팔려는 조선족이나 한족들이 주요 길목에 매복하는 경우도 많았고, 잡으면 등급에 따라 꽤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다. 젊고 키가 크고 예쁘면 양극단으로 판매처가 나뉘는데, 조금 경제력이 되는 집으로 팔리거나 최악의 경우 노래방 마시지 음란채팅 등으로 팔려가 성매매를 하게 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북송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주 어리면 자식이 없는 중국 가정으로 팔리는 경우가 있고, 어정쩡하게 어린 경우나 체격이 왜소한 경우 거의 팔리지 않아서 한국 종교단체에 땡처리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 자의반 타의반 와서 성매매를 하거나 한국 남성과 결혼하는 수많은 중국 한족 여성들과 오버랩되는 부분. 숫자로 따지면 중국여성쪽이 비교도 안되게 많다.[33] 당연히 이런 케이스로 탈북한 분들은 중공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운 좋아야 한국이나 제 3국에 도착하는데, 운 나쁘면 성노예로 살게된다.
그러나 종교단체에 팔려도 조선족 전도사 잘못 만나면 구타와 성적학대를 당하기도 한다. 북미지역과 남한 교회의 모금으로 이런 이중생활을 하던 조선족 전도사가 중국 정부의 박해 가능성이 있다며 북미지역 교회들의 도움으로 가족들과 난민으로 이민간 경우까지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미국 시민권과 캐나다 국적을 취득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해외여행을 가기에는 유리해진다.
흔치 않은 경우지만 중국 대륙 내에서 중국 위조 여권이나 일본 여권, 중화민국 여권, 한국 여권, 홍콩 여권, 마카오 여권의 위조여권[34]을 제작하는 것이 꽤 쉽기 때문에 남한의 탈북민 정착정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부 탈북자들은 중국 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와 눌러 살다가 불법체류자 단속 때 적발되어 한국 국적이 부여되기도 한다.[35] 심지어는 여느 조선족 마냥 중국 여권을 들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중국에 있는 가족(중국 현지에서 혼인을 통해 생긴 가족)에게 송금을 하거나 그 상태(위조여권)로 한국과 중국을 드나들다가 적발되기도 한다. 일단 중국에서 걸리지 않는 이상 별 탈 없이 넘어가기는 하는 듯하다. 하지만 공작원도 아닌 일개 탈북자가 국내에 잠입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은 남한보다 중국에 훨씬 많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고생하다가 중국이 더 자유롭고 돈 벌기 쉽다는 소리를 듣고 일단 중국에서 돈 벌고 북한으로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중국에 가서 북한보다 훨씬 발전한 생활상을 보고 북한으로 안 돌아가고 눌러앉아 산다고 한다. 물론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이미 북한 내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진 바람에 못 돌아가게 된 경우도 있다.
다만 중국 공안의 감시가 심하기 때문에 더 자유로운 생활을 원하는 탈북자들은 남쪽으로 쭉 내려가 그들을 난민으로 받아주는 동남아 중립국으로 도피한다. 대사관 경로는 최근 들어 중국 공안의 감시가 심해져서 성공이 어렵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 공안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를 끌어내기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대사관은 국제법에 따르면 대사관이 대표하는 나라의 영토로 취급되지는 않으나 그에 준해 영토 소유국의 사법권을 적용하지 않는 지역이다. 한마디로 '''원래는 중국 공안이 대사관의 양해 없이 절대로 들어오면 안되는 곳'''인데 이런 곳을 마음대로 들어와서 사람까지 끌어낸 것. 최근에는 국제적 비난이 심해지면서 이런 짓까지는 안 하고 대신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진입 자체를 못하게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당장 베이징 시내를 돌아보면 막말로 거진 100m 간격으로 공안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테러 등의 여러 가지 문제로 비단 대사관 뿐만 아니라 시내 전체가 공안 감시가 심하다.
명백한 인신매매이지만 탈북이기도 하고, 이렇게 납치된 경우와 조금이라도 나은 삶과 가족을 위해 자발적으로 브로커를 찾아가 자신을 판 돈 중 일부를 가족들에게 보내는 여성들은 북한으로 돌아가기도 어렵고 신분이 없어서 항상 불안하게 살다 중국 호적을 구입하거나 여권을 위조해 남한에 오는 경우도 있지만 호적이나 여권을 만들려면 거액이 필요해서 대부분은 동남아나 몽골 루트를 통해 재차 남한으로 도망친다. 특히 함경북도 청진시, 회령시, 무산군, 온성군, 함경남도 혜산시 출신들에게 이런 경우가 흔하다. 국내 입국 탈북자들 중 함경북도 출신 여성이 70%가까이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국정원에 의한 유인랍치"라는 주장이 북한 내부적으로 통하는 이유는 이렇듯 (국가정보원 개입 여부와는 별개로) 실제 탈북과정에서 인신매매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배후만 국가정보원이라고 갖다붙이면 실체를 파악할 방도가 없으니 말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중국 숨어사는 북한 여성 20%가 온라인 성매매 내몰려있다고 보도했다. #

4.3.1. 중국 체류 탈북자 규모


보수 정권이 집권하던 시기에 논란이 된 내용.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에 체류하는 탈북자 숫자는 1~3만명 수준'''이다. 중국 등 제3국에 체류하는 탈북자 숫자에 관한 통계는 제각각이라고 알려졌는데 이에 관해서 어이없는 해프닝이 있다. 법륜이 주도하는 '좋은 벗들'이라는 시민단체가 2000년대 초반 부정확한 자료에 근거해서 중국에 숨어사는 탈북자가 "최대 3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활동하는 NGO 활동가들, 러시아 출신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36], 중국 정부, 로빈슨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 등은 황당하게 과장된 수치라고 비난하였다.
문제는 한국 및 외국의 많은 언론에서는 여기에 낚여서 (혹은 과장인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마치 탈북자가 수십만 명이라도 되는냥 언론기사에 그대로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낭설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최소 1만 명, 최대 5만 명 수준으로 언급하고 있다. 처음 30만 명이라고 주장한 '좋은벗들' 단체 대표조차 2000년대 중반에 '다시 계산해 봤더니 3~5만 명이더라' 라고 번복함으로서 스스로 신빙성에 먹칠을 했다. 직후 이전에 통계를 낸 것보다 감소한 수치라고 말을 바꿨지만 이미 신뢰도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
앞서 언급한 현지 NGO 전문가들은 인구, 현지공안 통계, 북송규모 등을 이유로 2만명도 넘기 힘들다고 말한다. 가장 과학적인 추산 방법을 사용하는 존스홉킨스 대학 로빈슨 교수팀은 현재 탈북자를 1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참고로 탈북자중에 여성이 70%라는 기사가 있는데, 탈북자가 상당히 많았다고 주장되는 2000년대 초반에는 성비가 반반이었으며 탈북자가 많이 감소하면서 70%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탈북자 수십만명설을 오랜 기간 집요하게 보도하면서 북한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주장하던 조중동과 주요 보수 매체들은 제대로 된 정정 기사를 단 한번도 낸 적이 없다. 다행히 꾸준히 신빙성있는 여러 자료들의 언론 보도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이 없다.

4.4. 기타 국가


일본에도 탈북자가 있는데, 재일교포 북송 당시 일본인 처와 함께 온 재일조선인들의 후예들이 대부분이다. 1000명 정도로 추정한다. 일본으로 간 북한이탈주민 다카야스 고쿄 얘기.[37]
미국, 캐나다, 영국 등지에도 중국이나 한국에 비해 수는 극히 적지만 몇몇 북한이탈주민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5. 탈북 방법



드물게는 '''북한에서 공군 훈련 중인 파일럿이 전투기를 이끌고 탈북한 사례'''로 1950년 4월 이건순 중위, 1953년 노금석 상위, 1955년 이운용 상위, 이인선 소위, 1960년 정낙현 소좌, 1983년 이웅평 상위, 1996년 이철수 대위. 아무래도 민방위 사이렌이 울렸던 이웅평 상위의 사례가 가장 유명하다.
또한 실수로 넘어와서 돌아가지 못한 사례도 있는데, 요즘에는 돌려보내주지만 과거에는 자국 체제 선전을 하기 위해 써먹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렇게 되지 않았다. 북한의 박순국 소좌의 경우 실수로 남측에 넘어왔지만 귀순으로 선전하였고 본인은 고향에 남은 가족들이 겪을 고초 생각에 우울증에 빠져 과음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1976년 사망했다.
또는 '''배를 타고 남한으로 내려오는''' 김만철같은 사례도 있다. 보통은 중국-북한간 국경을 넘어서 대사관 등의 건물로 넘어오는 루트를 이용한다. 김신조 같이 남한에 내려온 공작원이 자수하고 귀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위해서 '''국경수비대한테 뇌물을 주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 돈'''으로 500만원 상당이기도 했으나 김정은 정권의 극심한 단속으로 필요한 돈의 액수가 올라가기도 한다.
다만 배 타고 내려오는 방법은 아직도 행해지고 있는 탈북 방법이다. 2002년에는 남북 분단으로 인해 실향민이 된 순종식씨가 선박 기관장을 납치해서 본인과 일가족을 포함해 무려 21명이 동시에 탈북한 사례가 있었으며 2009년에는 7명이 조그만 고깃배를 타고 서해로 남하하여 집단 귀순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2010년에는 한 40대 남성이 스티로폼으로 조잡한 뗏목을 만들어서 필사적으로 남하해서 귀순한 사례도 있다. 물론 이것도 나름 위험부담이 존재한다. 배를 잘못 몰거나 바람 등의 영향에 의해 망망대해를 표류하게 되면 그 사이 지참한 식량이 모두 고갈되어 굶어죽게 되고 유령선으로 바다를 떠돌다가 결국 일본이나 대만 같은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2000년대 이후 중국 국경의 두만강을 이용한 탈북을 막기 위해 국경수비대에게 탈북자를 신고하거나 붙잡으면 지금까지 받은 뇌물을 눈감아 준다든가, 심지어 화선입당이라 하여 현지에서 바로 조선로동당에 입당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 방식은 의외로 성공을 거두어 탈북자들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주고 있는데, 북한에서 김정은의 실질적 추종세력인 조선로동당에 입당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출세를 보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육로를 통해 휴전선을 직접 넘어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민간인은 거의 없고 주로 북한 군인들이 이 경로를 통해서 남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다른 방법에 비해서 실패율이 대단히 높아서 선호되지는 않는 방법. 남북한 병력의 상당수가 휴전선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에 적발되어 사살당하거나 지뢰를 밟고 폭사당하거나 고압전기 철조망에 걸려서 감전사 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 휴전선을 넘어서 탈북에 성공한 군인들의 수기를 읽어보면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 목숨을 거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1997년 경 뗏목도 아니고 스스로 만든 조잡한 구명조끼에 의지해서 임진강으로 떠내려온 사례라든가... 그러나 휴전선도 의외로 구멍이 있는 편이어서 1996년에 민간인 여성이 비무장지대를 맨몸으로 건너 남쪽의 3단 철책선 중 2개를 넘어 마지막 철책선에서 발견된 사례도 있고, 2014년 초에 방영된 탈북 다큐멘터리에서는 '''술에 취한 상태로''' 지뢰도 다 피해서 1시간 만에 탈북한 사례도 나왔다.
요즘은 중국의 한국대사관 진입이 어렵다. 그래서 제3국의 한국대사관을 노리는 경우가 있는데, 탈북자를 인도적으로 대우해주는 일부 동남아 국가에 밀입국을 시도하게 된다. 예를 들면 태국, 싱가포르 등이 있으며 최근 홍콩도 새로운 탈북 루트가 되고 있다. 영국령 시절은 경계가 삼엄해 광동 성에서 해관을 넘기 힘들었었기 때문에 사례가 없었고 중국 반환 후에는 더 경계가 강화되어 선호하는 루트는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태국도 북송 위협이 은근히 생기고, 베트남도 북송은 안해도 특무들이 많이 나가 활동하며 중국 정부의 단속이 강화되어 위험해지고 있기 때문에, 홍콩에 국제대회 등의 자격으로 비자를 받은 후 한국 총영사관에 진입하는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수학경시대회에 참가하던 고교생 1명[38]이 이렇게 빠져나왔고[39] 홍콩 경찰의 보호를 받다 한국으로 들어왔다.
최근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유입되는 경로는 탈북→중국에서 공안 감시 피하면서 돈을 번다→브로커들에게 돈을 주어 탈북자를 수용하는 동남아 국가로 도피→남한 입국의 경로인데 브로커들이 많은 돈을 요구하여 금전적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기차에서 중국 공안 감시를 피해야 한다거나 밤 중에 강과 밀림을 건너야 하는 등 고생이 심하다. 보통 양심적이거나, 장기적으로 장사하려는 브로커들은 대략 200만원 정도를 수당으로 받는데 탈북 루트에 속한 국가들이 하나같이 북한과 한 패거리인 데다 북한을 위해 그들 자체적으로도 탈북자들을 적극적으로 잡아들이고 있다보니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게다가 장성택 처형 직후에는 하도 감시가 살벌해서 천만원까지도 올랐었다고 한다. 물론, 북한이나 중국이 싫어서 탈북자 색출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몽골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일본등이다.
몽골도 탈북자가 자수하면 남한으로도 보내주기 때문에 탈북 루트로 간혹 이용되기도 하지만, 문제는 '''중국-몽골 국경지역이 고비 사막 지대라는 것이다.''' 탈북을 다룬 영화 크로싱에서도 몽골 루트가 등장하는데, 경비대에게 며칠 안에 '발견'되지 않으면 탈북은커녕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말라죽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글을 통과하는 동남아 루트가 더 메이저하다. 만일 몽골에 도착하면 몽골 이민국 직원들이 주 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에 인수인계를 하고, 현지 대사관에서 이들은 머물다가 서울이나 부산으로 귀국한다. 물론 국가정보원 조사도 받고, 하나원 연수 기간도 있다.
러시아는 과거에는 탈북자 문제에 방관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의 장기집권이 가시화되면서 점점 탈북자 색출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북한러시아가 인접한 지역이 북한에서도 사실상 특수계층만 들어갈 수 있는 나선시 뿐이고, 여기는 두만강 하류 끝으로 강 폭이 넓어 쉽게 건너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탈북 루트로 지정하기 어려워서 잘 가지 않는다. 물론 동남아몽골에 갈 때처럼 중국을 통해서 가는 것도 이론상 되지만 러시아에는 탈북자를 색출하기 위한 북한의 공작원들이 연해주에 많이 잠입한 상황이라서 감시를 피하려고 탈북 루트를 그쪽으로 잡았다가 불귀의 객이 되는 수도 있으므로 이쪽으로는 잘 가지 않는다.[40]
대신 싱가포르태국은 주권 국가라 북한 특무가 나대지 못 하고 북송도 안해서 많이 고른다. 물론 태국은 특무들이 좀 나가있어 위험하다. 싱가포르도 소국[41]에 친중성향[42]이 있지만 중국에 큰 소리는 칠 줄 아는 나라라 싱가포르 경찰이 보호하며 북한과는 관계가 나빠져서[43] 북송은 커녕 특무를 발견하면 즉시 경찰들이 체포해 간다. 중국과의 관계도 남중국해 문제로 나빠진 편이라 더욱 안전하다. 거리가 먼 문제와 자금 문제만 아니면 나름 좋은 루트다.
말레이시아홍콩도 새로운 루트로 떠오르는데, 말레이시아는 중국을 싫어하는데다 '''김정은자국 수도에서 자기 이복형을 죽이는 바람에''' 말레이시아북한 사이의 관계가 급격히 나빠졌다. 그래서 탈북자가 말레이시아 국경을 넘어오면 최대한 보호하다 바로 한국으로 보내 주거나 망명시켜준다.[44]
그리고 홍콩은 소속만 중국 영토이지 1국가 2체제로 홍콩 정부가 통치하며 홍콩과 베이징의 관계도 나쁜 편이라 홍콩 경찰은 탈북자를 보호한다. 이웃 마카오와 달리 북한인은 아예 들어오지도 못 하게 입국을 제한해 특무에게 당할 위험도 없다. 그리고 중국 중앙정부 역시 괜히 홍콩에서까지 시끄럽게는 하기 싫어 일본이나 싱가포르 등 제3국[45]을 거쳐 한국으로 보내 준다.
일본은 탈북자가 들어오면 절대로 북한한테 내주지 않으며 남한 측에 인계한다. 탈북자를 데려가려고 특무가 접근하면 그 특무를 체포해서 중형을 때려버린다. 알다시피 일본 역시 중국 못지 않게 법이 쎈 나라이다. 일본은 안 그래도 북한과 사이가 나쁜 나라인 데다가 걸핏하면 자국민을 납치해가는 통에 엄청나게 골치를 썩었던 나라이다. 이 때문에 납북 일본인에 대한 복수의 의미에서 탈북자가 일본에 오면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탈북자를 보호해버리고 이 탈북자에게 접근하는 조총련이나 특무 등은 가차없이 체포해서 징역을 아~주 오래 살려 놓는다. 참고로 일본은 주일미군이 있으며 미국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중국 상대로는 자기 할 말 다 하는 나라이며 중국 눈치를 전혀 안 본다. 탈북민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일본 국적자가 탈북민을 보호자 자격으로 받아들이면, 일본에서 난민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다만 체류 허용 외에는 지원이라고 할만한 것이 딱히 없으며 전부 일본인 보호자와 탈북자 본인이 알아서 일본에 적응해야 한다. 다만 2019년 이후부터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한시적으로 탈북자를 받아주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6. 한국 사회에서 적응 문제


우선 모든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부적응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대부분은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걸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소수자라 탈북자들이 조금만 거슬리는 일을 해도 탈북자라 그렇다는 말을 듣기 쉽다. 특히 정치적 문제에 휩쓸리는 경우가 흔하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탈북자들은 남한 생활에 대체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의 75% 가량으로, 경제적 적응도와 문화적 적응도가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9년 기준 주된 이유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어서(30.5%), 일한만큼 소득을 얻을 수 있어서(25.2%), 북한보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21.9%),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어서(7.5%),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7.3%)라고 한다.#
물로 불만족, 부적응도 문제가 된다. 2019년 남북하나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남한 생활에서 불만족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해서(27.6%),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19%),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남한사회의 차별·편견 때문에(15.4%), 경제적으로 어려워서(13.5%), 남한 사회에 적응이 어려워서(4.7%)를 들었다. #
2001년의 조사에서는 탈북자들은 통일 후 무엇이 어려울 것이냐는 질문에 “가치관, 사고방식, 생활 습관 등의 문화의 차이”(28.3%), “상호 이해의 부족, 편견 등으로 인한 화합의 부족”(25.0%), “정치 이념, 사상, 제도의 차이”(10.9%), “언어의 차이”(10.0%)를 들었다. 최근의 탈북자들은 한류를 접한 경우가 많아 문화적 부분에서는 달라진 경우도 있지만[46], 그래도 발전된 경제에서 비롯한[47] 각종 문화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 김일성 일가를 찬양하는 식의 정치적 세뇌가 남쪽에서 유지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48]은 편견에 가깝고, 의사소통 방식 같은 것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6.1. 일반 국민의 차별


탈북민들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출신 하나로 차별을 겪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일단 2019년 기준 17.2%가 지난 1년 동안 차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하여 과거에 비하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49] 그러나 청소년을 중심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여전하고, 정착 불만족 원인 중 2~4위의 문제가 된다.
아직까지도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이질감 문제가 존재한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있던 문제이다. 1990년대탈북하여 그럭저럭 한국에서 잘 정착한 김용이 쓴 글을 보면 저녁에 지하철을 탔더니만 술 취한 사람이 바닥에 드러누워 잠 자는 걸 보고 어느 아이가 엄마에게 "저 사람 왜 그래?"라고 물어보자 "북한에서 온 거지일 거야"라는 답변을 하는 바람에 엄청 분노했었다는 글까지 남길 정도이다. 이 일화는 IMF 이전 이야기지만 IMF 이후 '남한 거지'들도 당시 넘쳐나게 됨으로서 남한인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에 거지를 북한 주민으로 보거나 몰지각한 새터민 거지 운운하는 행위는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거의 들을 수 없는 얘기이나, 세금만 먹는다든지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든지 심하게는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민족의 반역자라든지 혐오하거나 비하하는 이들이야 존재한다.
정착 초기 탈북자를 중심으로 경제 관념이 남한식 제도와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50][51], 정착 초기 남성 탈북자의 남존여비적 사고[52] 등 거부감을 주는 요소를 가진 경우도 있으나 부당한 차별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확한 것을 지적하면 지적당하는 입장에서도 문제가 없으나, 북한 정권의 만행에 분개하는 사람에게 빨갱이 같은 말을 하는 경우 억울함을 갖게 될 수 있다.
일반 국민이 탈북민에 대해 가지는 대표적인 편견이 그들이 북한 체제를 진심으로 추종하고, 남한에 적대적일 것이라는 오해다. 김만철 일가의 사례처럼, 진짜 북한 체제에 충성하려면 자기들 표현으로 '세상에 부럼이 없다'는 북한을 떠나면 안된다. 특히 적의 땅인 남한에 들어오는 것은 북한이 사상적으로 싫어하는 행위다. 북한의 대응에 대한 문단에서도 보다시피 탈북은 북한 당국이 자신의 체제 유지에 유해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탈북민들은 북한의 공개 처형, 인권 유린, 낮은 생활 수준[53] 같은 실상을 고스란히 국제 사회에 알려주고, 자신의 가족에게 송금을 하여 대한민국이 이만큼 잘산다는 것을 보여주어 북한 정권이 좋게 여길리 만무하다.
'조국을 배반하지 말라'며 탈북을 방지하는 교육이 북한 내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질 정도다. 2012년 총선에도 이미 북한에 반대한다는 이유 하나를 가지고 87.2%가 보수정당에 투표를 했을 정도로 북한 정권에 대한 적개심이 크다. 30대 이하는 일반 국민과 투표율이 거의 비슷하지만, 그래도 너무 보수적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 문제 같은 다른 현안에 대해서는 유지가 54%로, 폐지인 32%보다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그냥 북한 정권의 만행엔 강경하며 주민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가능성도 있다. #[54] 19대 대선에서는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들도 우리는 누구보다 김정은을 싫어한다, 김일성 왕조를 싫어한다면서도 국익에 도움이 되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
북한의 세뇌 교육이라는 것도 거짓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 외부 정보만 접하게 해주면 충분히 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해가 어렵다면 영화 트루먼쇼[55]를 생각하면 된다. 중국처럼 가치관의 차이를 포장하는 식이 아니라, 김일성 항일 운동 과장 등 명백한 거짓을 가지고 우상화를 시켜 허점이 많다. 북한이야 지도부의 목숨이 달릴 수도 있어 우상화에 열심이지만, 경제 격차가 심해 도저히 좋은 시나리오를 쓸 수 없는 것이다. 북한식 사고 방식을 가져도 북한식으로 북한 정권을 비판하며, 최근에는 한류 등의 영향으로 이런 구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탈북하는 탈북자도 줄어드는 추세다. 신천지 같은 사이비 종교도 교리의 모순을 알려주려고 하면 길어야 3일이면 저항을 거부하고 들어준다고 하며, 김신조김현희 등 진짜 간첩도 대부분 전향을 한 실정이다. 북한 주민들이 그렇게 세뇌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연기를 하는 것[56]을 진심으로 오해했다던가, 인터넷도 금지하는 정보 차단 정책으로 세뇌된 사실을 반박할 만한 정보를 얻지 못해서일뿐이다.
외부 정보를 충분히 알려주고도 북한 정권의 만행을 미워할 수준의 전향을 하지 않는 경우는 10% 미만의 고지식한 사람, 통일되면 극심한 불이익을 겪을 북한의 지도층뿐이다. 아직도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자신들이 그렇게 차별하라던 재일교포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고, 자신들의 선전이 기독교 같은 금지된 종교에서 따온 경우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한국전쟁이 북침이라는 주장도 개전 3일 만에 서울을 인민군이 점령하는 등 모순점을 알려주면 거짓임을 깨닫는다. [57]
2000년대~2010년대 초중반의 탈북자들은 초기에는 김정일을 존경하는 등 북한식 정치사상을 가진 경우도 있었으나, 정착 과정에서 이것이 북한 정권에 대한 적개심으로 바뀌는 양상을 보였다. 2014년 기준 중국으로 나온 탈북자가 아닌 북한 주민들도 70% 가량이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등, 외부 문물을 접한 경우 정치 사상이 유연하게 바뀐다. 주체사상을 지지하는 경우도 많긴 한데, 듣기는 좋으나 실천은 어렵다는 의견도 동시에 나온다. #
최근에 탈북한 사람들은 2018년 탈북자 기준으로 64%가 경제난의 원인을 김정은으로 꼽는등, 이제는 탈북민의 양상도 바뀌는 추세다. 특히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군사비를 과다 지출하는 등 지도자의 잘못된 정책이 경제난의 이유라고 생각하는 탈북민이 전체 응답자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남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이 아닌, 북한에서 나온지 1~2년 된 사람의 의견이다.[58] 이들은 북한의 발전을 위해 협조해야 하는 국가 중 3위로 미국을 꼽을 정도로, 아직은 그 선택 비율이 4%에서 14%가 된 것에 불과하지만, 기존의 서구 세계에 대한 적개심도 변화의 양상이 감지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2018년처럼 남한에서도 김정은이 베트남식 개방을 하지 않을까 하는 시각이 생기면 그때는 일부 김정은 지지 여론이 생긴다. 2010년대 중후반에는 젊은 세대에서 북한에서 김정은을 지지했다는 여론이 중장년층보다 높은데, 자신들이 원하는 개혁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젊은 세대가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더 강하고, 사고가 더 유연하여 진실을 알면 한국 정치권에 어울리는 사고는 젊은 세대가 더 잘한다. 그러니까 이런 지지는 남쪽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목숨바쳐 수령을 지지하는 것보다는 '김정은이 경제 성과를 내면 찬성한다는 조건'하의 지지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한국 정착 후에도 탈북자도 주변 사람에 따라 정치 성향이 바뀌어, 진보 성향의 탈북자도 있어 이런 일이 가능하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는 김정은이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다시 김정은에 대한 실망감이 늘고 있다. ##
일반적으로 탈북민들은 남북통일과 같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 의사를 드러낸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매년 직전년도에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90% 가량이 통일이 매우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지속된 일관된 흐름이다. # 오히려 북한이 짝사랑에 가까운 식으로 통일을 지지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하는 지적도 있을 정도다. 2020년 조사에서는 강한 지지가 감소했으나 지지 여론은 여전히 90%이상이다. 한국적 생활방식에는 완전한 적응에는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도 많은데, 국가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적개심이 크지 않다. 배고파 온 경우를 포함해서 북한 체제가 싫어서 대한민국 체제를 골랐다는 말을 한다. 한국에 어느 정도 정착한 탈북자를 대상으로 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며, 통일의 효과나 편익에 대해 일반 남한 주민에 비해 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
그밖에도 탈북민들이 무언가 교육 수준이 낮을것이라는 인상도 있는데, 정착 초기를 중심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없진 않아도 교육열 같은 부분은 나쁘지 않다. 청소년 중 4년제 대학 진학을 원하는 비율은 64%로, 한국 일반 국민과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자녀 교육도 관심이 많다. 다만 일자리가 자녀를 돌보기 힘든 경우에 신경을 못쓰는 경우, 교사가 교육에 큰 책임을 졌던 옛날식 사고[59]가 존재할 뿐이다. 그래도 한의사, 기술자, 사장 등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 링크에 나오는 대북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는 탈북자를 묘사한다.#
탈북민이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일반 국민보다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도 있다. 강력 범죄율이 2~3배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가정을 해도 범죄를 저지르기 보다는 범죄를 당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저 강력 범죄율은 9년간 통계의 합계를 1년에 발생한 것으로 여겨 1년과 비교했다는 지적이 있으며, 여성이 3:7 정도의 비율로 많은 탈북자 특성상 강력 범죄는 적을 수도 있다.
간혹 탈북자들의 범죄는 잘 보도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국 정착 탈북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법 앞에 평등하며 의무도 동시에 지닌다. 탈북자 마약 범죄, 탈북자 월북 같은 것도 한국 언론에 여과 없이 보도되며, 이런 언론은 탈북자 정착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심지어 SBS 같은 경우 '어서오시라요'라는 다큐에서 한 탈북자가 통일을 반대한다면서 한국 사회 적응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논란이 생긴적 있었다. ## 사실 남북한 사람들의 상호 이해가 낮다는 이유 등을 들었다면 논란이 안되었을 것이나, '왜 우리 자원을 남한한테 싸게 줘야 해요?'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인 것이다. 이것이 소수라는 것을 명시하지 않아 상당수의 탈북자가 저런다는 오해가 생기기도 하였다. 앞서 언급된 설문조사에서 6%가 통일이 나에게 이익이 안된다고 했고, 2018년 서울대의 '통일과 평화'라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나는 남한에서 잘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보겠다”는 의견에 85.6%가 동의하였고(‘매우 동의’ 58.5%, ‘다소 동의’ 27.1%), 3%만이 동의하지 않았다.[60] 이런 점을 감안하면 꽤 특이한 경우라는 것이다.
범죄 피해를 당하는 사례는 많다고 알려져 있다.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통일부에 따르면 일반 범죄는 5배, 사기는 일반 국민의 40배라고 전한다.# 언어나 문화가 어느 정도는 통해 사기의 메시지를 파악할 수는 있어 속기는 쉬우나, 허위 매물 등의 사기 수법에는 익숙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심지어 한국 물정에 어둡다는 것을 이용하여 이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려는 경우도 있다. 사회 초년생이 법이나 상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61] 아래에 설명하지만, 한국에서의 이들에 대한 차별이 탈북민의 범죄율을 높인다는 분석도 있다.

6.2. 남한 측의 악용


'''탈북자 1명당 30만 원…정보 팔아먹은 통일부 직원'''
2017년 9월에 통일부 소속 6급 공무원이 탈북 브로커에게 탈북자 48명의 이름, 연락처, 주소 등을 1명당 30만 원에 팔아넘기고 1,475만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되었다. 당연히 해당 공무원은 직위해제되고 징계위에 회부되었다고. 발각된 경위가 참 아이러니한데 이 사람한테 개인정보를 산 탈북 브로커가 이 정보를 탈북자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데 썼다. 그러다 한 탈북자의 신고로 붙잡혀 조사를 받던 중 실토하여 드러나서 덜미를 잡혔다고 한다. 문제의 공무원은 과거 하나원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탈북자 정보에 접근하기 쉬웠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탈북자 정보는 과거 북한에서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국가 보안사항이라는 점. 더구나 개인 착복 등의 비리문제도 얽혀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다. 잘못하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될 수 있다.

6.3. 정치적 문제


의외로 이 부분에 대한 개인적인 부적응은 문화적 문제보다는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느끼기에 가장 심한 거부감을 주는 요소고, 탈북 극초기의 탈북민이나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탈북한 경우, 나이든 탈북자의 경우 이런 탈북자도 존재 하였다. 간혹 남측 국민들이 남조선이나 인민 같은 말을 싫어한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상황에 따라 친인척의 보호를 위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김정은의 욕을 잘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보고 진심으로 북한 정치 사상에 충성한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김씨 일가를 비판하는 경우는 안전이 보장된 경우, 북한의 해방을 통해 이웃을 구제하겠다는 신념을 가진 경우 등이 있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아마 한국 고령층과 비슷한 사고 방식을 가진 경우가 많은 것이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 유능한 리더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사고, 남쪽에서 보면 의견이 갈릴 수 있는 현안에도 정해진 정답을 찾으려는 태도 등을 들 수 있다. 투쟁의 대상이 미제가 아니라 김정은이 된다는 것이며, 한국 보수층에서 능력있는 사람을 추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탈북민 사회를 연구해 온 이화여대 현인애 박사에 따르면, 20대 이상의 젊은 세대도 대화와 토론이 정답이라고 여기지만, 심정적인 적응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한다. 독단적인 결정의 개념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 갈등 요소가 아닐 수도 있지만 차이가 있는 부문으로는 투표율이 높고,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며, 강한 법 질서를 선호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
일부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던 시절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찬양 습관이 심신에 배이는 바람에 갓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했을 때 그야말로 비난과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특히 남한을 '''남조선'''이라고 한다거나 국민을 '''인민'''이라고 한다거나[62] 김일성, 김정일을 '''어버이 수령님'''이라고 부르다가 일부 남한 주민들로부터 비난과 곤욕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북한에서 살던 습관이 남아 있고 남한 생활이 익숙하지 못한 것 때문에 일부 남한 주민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아 사회적응이 쉽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북한에는 있지도 않았던 표현의 자유, 주거 자유, 선택 자유, 의식의 자유에 익숙하지 않아서 애를 먹기도 하였다. 일부에서는 문화어나 지역 방언[63]을 쓰는 바람에 언어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일부 탈북자들은 ''''남한에서는 계급사회 같은 게 없습니까?''''[64]라고 남한 주민에게 뜻밖의 질문을 던지기도 하여 당혹감을 낳는 사례도 있었다. 물론 한국도 양극화와 같은 일종의 물질적 계층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으로 위계화되어 사실상 계급 내 이동이 차단된 북한과 달리,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선진사회에서는 경제력, 권력, 명예, 직업 등의 다양한 요인에 의해 사회적 위상이 결정되는 계층개념이다. 거기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층이동이 어려워질 경우 이에 대한 비판여론이 나오고 이를 대변하는 이익단체와 정당이 권력을 가진 자들을 압박하여 문제점을 완화시킬 수 있다. 북한의 계급은 오히려 근대 이전 사회의 신분개념과 유사하다.
게다가 북한의 주적인 미국 문화 및 일본 문화에 대한 접근이 자유롭고 익숙해진 남한의 풍습에도 익숙하지 못하여서 남한에 존재하는 미국 문화일본 문화를 처음 접하기만 해도 ''''어째서 적국의 문화를 접하는 건가요? 북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은 우리 인민의 주적입니다'''' 라고 얘기했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이질감을 느낀 남한 주민들에게서 기피당하는 일도 있었다.[65]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유아기부터 지속적으로 미국일본혐오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세뇌교육을 받아온 영향이 가장 크다. 애초에 김일성 찬양과 우상화의 뿌리는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의 항미 정신과, 항일 정신...' 이런 게 대부분이다. 외교적으로도 아직 북한과 미수교 상태로 있고, 북한에서도 주적 및 적성국가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원주민이 미국 문화일본 문화를 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이유도 있다. 이것도 갓 탈북해서 아직 남한 사회에 익숙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한 탈북자들 입장에서 나온 것이며 남한 사회에도 익숙해져서 미국 문화일본 문화를 접하면서 적대적 성향이 사라졌던 베테랑 탈북자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말이다. 한류가 생활 양식까지 바꿀 정도로 심히 퍼진 2010년대 중반 이후에도 이것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친교국인 중국 문화나 러시아 문화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이고 호감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경우 오래전부터 북한의 우방이자 우호국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중국 문화는 쉽게 접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러시아 문화의 경우 소련 시절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던 시절부터 유입되었기 때문에 익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한국 문화는 꽤 많이 돌았다. 2011년에도 탈북자 중 이미 남한 문화가 친숙했었다는 응답이 74.3%, 그렇지 않았다는 응답이 7.6%였다는 설문조사가 있다. 이 친숙하다는 응답은 2014년 이후로는 90% 이상을 유지 중이다. # 큰 경제적 사건이 없는 한 말그대로 자유를 찾아 탈북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갈수록 증가하며, 이제는 북한이 너무 부패해서 탈북한다는 등 외부 영향이 북한에도 스며드는 추세다.
정확히는 탈북자들은 한국이 잘 살면 중국만큼 잘 살겠거니 생각 했었다. 한국중국보다 잘 사는 것에 놀란다고. 다만 2010년대 후반 들어선 주성하 기자 같은 탈북민이 북한이 무너지면 한국이 잘 살아 남한 편에 붙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런 추세도 바뀐다는 말도 있다. 오히려 한국 드라마만으로 남한을 접하다 저곳만 가면 궁전같은 집에서 살 수 있다, 돈 버는 것은 아주 손 쉽다는 등의 환상이 깨지면서 갈등을 겪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보통 탈북자들의 이러한 북한식 정치사고는 진정한 남한의 생활상, 역사적 진실을 접하면서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특히 생계형 탈북자들도 '우리가 그렇게 가난하게 살게 된 건 다 우리가 그토록 찬양했던 김일성 일가 때문이다' 라고 모두 배우거나 접하면서 남한 사회로 입성하기 때문.
이들의 북한 체제와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분노와 혐오는 일반 남한 주민들이 장난스럽게 놀리는 것 이상으로 진지하고 무서울 정도로 높다. 특히 요즘 방송이나 언론에 나오는 탈북자들이 갖고 있는 반북 감정은 대한민국 극단주의 보수단체만큼 강한 경우도 있고, 이 탈북자들이 종북주의자들을 비롯한 한국의 극좌들과 서로 싸우고 대립하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대북전단이나 신은미 사건, 황선 사건 등이 일어날 때도 탈북자들은 보수의 입장을 지지했다. 북한의 잔인한 체제를 직접 겪은 데다 그 진실과 원흉을 모두 알게 된 사람들이니...과거 냉전 시절 탈북했던 귀순용사들 역시 김일성에 대한 배신감을 갖고 대한민국으로 도망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66]
일부 탈북자들은 남한 생활이 북한에 있을 때와 다를 바가 없다거나 아예 생활에도 익숙하지도 못하고 사람들과의 소통도 장애를 겪었다는 이유로 '''월북''' 및 '''재입북'''을 하게 되었다가 얼마 가지 않아 이용가치가 떨어지자 김정은의 명령으로 관리소행 편도 열차에 강제로 타게 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런 재월북은 매우 드문 편.

6.3.1. 정치 극단주의


남조선에 오셨으면 남조선 인민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자유'와 '민주'에 대해 심도있게 공부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북조선 멘탈리티에서 편만 바꾼다고 자유민주주의자가 되는 거 아니거든요.'''

- 진중권이 탈북자 정성산에게 날린 트윗 중

우파적인 극단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유명하다. 간혹 김련희[67] 같이 북한 체제를 열렬히 찬양하는 반대의 노선을 타는 경우도 있으나, 우파적 극단주의자에 비해서는 영향력과 수가 적다. 탈북자 중 정치 유튜버를 하는 경우 보수 진영은 강철환, 정성산, 이애란 등 다양하지만 반대쪽에서 이름이 알려진 유튜브는 '왈가왈북'이라는 유튜브밖에 없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성장한 탈북자들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진중권의 저 멘트는 그런 점을 꼬집은 것이다. 진중권은 명백한 좌파 지식인이지만, 학생운동 시절부터 북한 정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인물이다. 애초에 조국, 이진경(본명 박태호)과 함께 <주체사상비판>을 출판해서 친북주사파들을 무참하게 썰어버리면서부터 운동권에서 명성을 얻은게 진중권이다. 그러니 정성산은 엉뚱한 상대를 건든 것이다.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것은 진보=좌파=종북이라는 엉터리 논리가 대한민국의 보수우익들 그리고 탈북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실제와는 거리가 먼 이상한 선입견 때문에 북한 정권에 비판적인 진중권 같은 '''반북좌파'''을 종북이라고 공격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진보좌파세력들이 결집했던 민주노동당이 분열한 것도 2006년 북한 핵실험을 두고 북의 핵개발을 비판하는 노회찬, 심상정 등의 PD계열과 종북노선을 고수하는 NL주사파들간의 대립 때문이다. 특히 NL계 간부가 북한에 민주노동당 내부자료를 넘겼다는 일심회 사건까지 터지면서 문제가 커졌고, 이때 생긴 감정의 골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좌파라고 다 친북, 종북인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파라고 해서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친화적인 것도 아니다.
북한이탈주민 출신 인사들이 극우 단체들의 정치적 선전에 이용당해서, 혹은 자발적으로 주동세력이 되어 국내에 정치적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중도개혁 혹은 진보좌파 인사/단체와 이들의 활동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에 다각도로 이용되고 있다. 북한은 극도로 폐쇄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의 경험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탈북자들의 발언은 교차검증을 통해 사실을 규명하기가 상대적으로 곤란하기 때문에 '아니면 말고' 식의 자극적인 선동에 잘 써먹을 수 있다. 이러한 악용의 대표적인 예가 노골적으로 극우성향을 띄는 종편 TV조선채널A로, 해당 방송들의 5.18 광주폭동설에 대한 탈북자들의 주장들이 나왔다. 당시 광주에 투입되었다고 주장하는 탈북자들의 주장을 제시하며 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선동에 의한 폭동으로 매도하기 위한 것. 하지만 오히려 이게 논란이 되자 오히려 다른 탈북자들이 5.18 때 간첩이 개입하지 않았다며 왜 그런 유언비어가 떠도는지를 증언했다.
극우 사이트 일베저장소를 인증하는 탈북자들이 있고, 특히 탈북자 출신 영화감독 정성산[68]은 일베사이트에서 쓰이고 있는 지역비하로 전라도를 비하하는 '7시', '전라도는 다른 나라' 등등의 발언을 트위터를 통해서 쓰는 등 극단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사실 탈북자 중에는 정치적 면에서 극단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자들만 해도 꽤 있다는 것이다.
일부 탈북자들이 남한 내부의 정치적 대립과 연관되는 경우는 두가지 정도의 이유를 들 수 있다.
북한 사회에 대한 회의감, 자유에 대한 갈망 등의 이유로 탈북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비교적 '순수한 동기'라고 할 수 있는데, 남한까지 찾아온 정도의 탈북자는 자신을 탄압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북한 정권에 대한 증오로 인해 대부분 자연스레 반북 성향을 띄게 된다. 그리고 한국의 주요 정치세력 중 이런 성향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이다. 보수 세력은 북한과의 대화나 유화책 등을 주장하는 한국의 진보·좌파 세력과 대립하는 관계이기에 자연히 이들도 감정적으로 반발하게 되는 것이다. 비인간적이고 낙후한 북한 체제에서 잔혹한 탄압을 받던 탈북자들 입장에서는 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남북경협까지는 찬성할 수 있겠지만[69], "미국이 북한 정권의 체제 안정을 보장해줘야 한다. " 같은 주장을 접하면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다만 탈북자들의 정치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존 한국 정치 세력 중 진보에 가까운 면도 있다. 서울대 이석배 교수 등이 탈북민과 일반 국민에게 돈을 주고 익명의 상대방과 돈을 나눌 수 있다고 했을 때, 탈북민은 딱 절반을 나누었지만, 남한 대학생은 20%만 주었다는 것이다. 남한 정착 5년이 지나도 비슷한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통일이 되면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대통령 후보와 정당에 투표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 대북지원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도 2019~2020년 탈북자 기준 65.1%가 찬성하였다. # 그래서 탈북자의 보수관을 반북을 하는 정치세력은 보수가 압도적이어서 그렇다든가, 보수 측의 탈북민 이용 시도가 강해서 그렇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탈북민 주승현 박사는 "이들(진보적 탈북청년들)은 극우보수가 탈북민들을 이용하는 걸 알고 있고, 이용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라고 주장한다. #
물론 이런 문제는 시간이 지나 남한 사회와 민주주의 체제에 동화되어 나가면서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원리를 체득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서로 간에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감정적인 반발 대신에 생산적인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출세나 돈을 목적으로 남한 사회의 갈등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경우다. 이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남한 사회 내부의 갈등 및 권력관계를 포착하여 그것에 편승함으로써 쉽게 이익을 보고 자신의 불안한 지위를 강화시키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70]
첨예한 대립이 오래동안 지속된 두 세력의 중 하나의 진영에서 반대편의 진영으로 옮기게 되면 어떤 경우에도 상당한 리스크를 동반하게 된다. 이전에 몸담았던 곳에서는 용서하지 못할 배신자 취급을 받게 되며, 새로 몸담게 된 곳에서도 불순한 의도로 넘어온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한 혐의가 풀린다고 할지라도 "배신자", "자기 주변을 내팽개치고 혼자 도망온 사람"으로 비치는 등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할 수도 있으며, 실제로는 주변에서 그리 생각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가 자격지심으로 인해 편집증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새로운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을 보인다.
이 때문에 한 번 편을 바꾸고 떠나온 사람은 새로 몸담은 곳에서 자신이 "보호 받고 대접 받을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람이며, 이곳에 절대 충성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전에 몸담았던 곳에 대해 아무래도 과장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정도로 무지막지한 비난을 쏟아내면서, 동시에 새로 넘어온 곳의 기득권 세력과 그 체제에 대해서는 과잉 충성에 가까운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양 진영이 소위 '''적대적 공생'''의 형태로 굴러가고 있을 경우 이러한 경향은 극대화 된다.
두 진영 사이에 적대적인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동안 형성된 주류기득권 세력은 상대방을 파괴할려는 강경성향을 띄게 된다. 당연히 상대 진영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온건한 화해정책은 비굴한 타협, 배신이라고 믿으며 자신들이 먹어치우지 못할 바에는 적대적 관계가 유지되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진영 내부적으로도 이런 외부의 적이 있어야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명분이 된다. 이렇기 때문에 양 진영 모두에 강경파가 득세해서 대결을 부추기는 적대적 공생 구조가 형성된다.그런데 만일 이런 적대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온건한 화해무드가 불어온다면? 당연히 주류기득권세력들은 어떻게든 적대적 관계를 복원할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탈북자 같은 전향자들은 써먹기 좋은 도구이다. 이런 경향은 단지 체제뿐 아니라 종교, 정치 집단 간의 사례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과거 극좌 운동을 하다가 극우로 전향한 뉴라이트 인사들이 진보 좌파 진영을 향해서 초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전향자들 일수록 자신들에 씌어진 과거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 더더욱 오버한다는 시각도 있고, 북한식 '정답'을 찾는 사고 방식은 버릴 수 없어서 저렇다는 말도 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여 건전하게 정착한 많은 탈북자들의 경우 이런 움직임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기자 주성하5.18 민주화운동 왜곡사태 등을 빗대어 "아마 이런 일이 몇 번만 더 계속된다면 정말 한국 사회가 탈북자들을 '거짓말쟁이에 쓰레기'라고 낙인 찍을 것 같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탈북자 사회 스스로가 자정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탈북자 개개인의 책임이 아닐까 생각한다."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새코리아청년네트워크 대표 강룡 씨도 극우화되는 탈북자들과 함께, 방송에서 탈북자들이 북한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기도 했다. 첨부된 인터뷰 링크에 따르면, 북한에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개개인이 얻은 타 지역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6.3.1.1. 망명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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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단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탈북자들이 집단으로 해외 망명하겠다"고 했다. 탈북자집단망명추진위원회는 5월 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 후보가 당선될 시 탈북자 3000명이 집단 망명을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 위원회 측은 “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방문하겠다’, ‘보수를 촛불로 불태우겠다’고 발언한 것과, 이해찬 민주당 의원이 ‘보수를 궤멸시키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
이들은 “노무현 정부 당시 고무보트를 타고 탈북한 22명의 북한 주민을 정부가 강제로 북송시켜 처형당하게 했다”며 “노무현 정부가 중국 공안과 북한 보위부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탈북자들을 대거 검거해 북송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 참고로 이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탈북자들에게 안성 하나원을 거주지로 해서 일괄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기 때문에 신분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문제는 주성하 기자가 계속 지적하면서 나중에 탈북자들에게 1회에 한하여 주민번호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걸로 해결되었다. 그외에 탈북자 1000여명이 북한 보위부에 납치됐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러나 정작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이 기자회견을 주도한 탈북자 출신 박사 1호 이애란(요리연구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정규재TV 같은 보수우익 매체에 출연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잘살고 있다. 이애란의 그것이 알고 싶다 정말로 시도해봤는지는 알수 없지만 외국에 망명 신청을 한다고 해도 외국 정부측에 한국에서 탄압을 받았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했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정식으로 하고도 멀쩡했으니 증명받기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6.3.2. 정치적 거짓 증언 논란


탈북자들은 탈북하여 생계를 잇기 위해, 또는 수요가 많아서 강연회나 탈북 이야기를 쓴 자서전을 내고는 하는데, 교차 검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아 허위 증언들이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탈북한 북한인 신동혁 씨는 UN이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도록 기여했지만 그의 자서전격 책인 ‘14호 수용소 탈출'의 내용 중 일부가 허위라고 고백했다.#
게다가 2020년도에는 태영호지성호가 주장한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 대두되었는데, 특히 지성호는 김정은이 사망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지성호는 평양에 가본 적이 없는 꽃제비 출신으로 김정은은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물론 탈북민 증언 전체를 모두 거짓으로 모는것도 조심해야 하며, 특히 정치적 성향과 다른 말을 한다고 다 거짓으로 몰고가는 것은 위험할 것이다. 극단적인 종북주의자들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북한 인권 문제를 가짜뉴스로 여기고, 극단적인 극우주의자들은 북한이 그래도 사람은 사는 곳이라는 주장을 두고 빨갱이의 거짓말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김정은 시대의 탈북민들이 예쁜 여성을 뽑는 기관을 남한이 아는 기쁨조로 알고 증언하는 것도 기쁨조의 존재를 인정한다면서 거짓말로 몰고 가는 경우도 있다.

6.4. 문화적 문제


실질적으로 탈북민들은 주관적으로 문화적 문제를 정치적 문제보다 적응에 어려운 요소로 꼽는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아직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심지어 문화어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북한을 연구한다는 사람도 북한 사람들은 'ㅓ'를 'ㅗ'처럼 발음한다고 믿었다가, 국립국어원에서 더 많은 탈북민을 조사하니 반대에 가깝다는 조사가 나와 기존에 알려진 사실도 수정되기도 할 정도로 전문가 사이에서도 자료 부족으로 탈북민, 북한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다.
몇 가지 제시된 문제를 꼽으면 아래와 같다.

6.4.1. 완곡어법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요소로 완곡어법을 들 수 있다. 직장에서 이런 화법이 쓰이는 경우도 많아 탈북민을 고용한 회사에서는 탈북민들이 솔직함을 중시한다는 것을 모르고 탈북민들이 예의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반면 탈북민들이 이런 화법을 보고 예의를 차린다는 의도를 몰라 가식적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탈북민들은 이런 화법을 적응을 위해 배우고 싶어하여, 완곡한 거절 방법 등을 알려주면 좋아하기도 한다.
북한 자체가 직설적으로 말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있다는 말도 있는데[71], 특히 탈북자의 고향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함경도는 북한 내에서도 직설적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다. 물론 지역에 관한 평가가 다 그렇듯 개인차가 있으며, 함경도에 대한 평가는 남한에서 경상도가 듣는 평가와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을 진짜 밥을 먹자는 말로 받아들인다든가,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는 사장의 예의 상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진짜로 예고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외에도 불만사항 같은 것도 솔직하게 표현하여, 왜 저렇게 예의가 없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한국인들이 자본주의의 상징격인 미국인들도 솔직하다고 평하는 경우가 있는 것, 남한 안에서도 직설적인 지역과 완곡어법을 쓰는 지역이 구분된다는 평, 북한 안에서도 평양과 같은 곳에서는 '예의'를 중시한다는 경향도 있었다는 주장#을 감안하면 사회주의식 세뇌라기 보다는 지역적 기질이 반영된 면이 있다. 2010년대 후반 들어 탈북민들이 유튜버를 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종종 시청자들이 이런 직설적 화법을 두고 당혹스러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화법을 두고 돌려말하지 않아 시원하다는 평도 있는데, 예민한 사항에서도 불만을 너무 솔직하게 말을 하여 비난을 듣는 경우가 있다. 일반 국민 중 많은 사람이 불만이 매우 클 때야 불만을 직설적으로 털어놓지만, 자신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많지 않아도 불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점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것을 '이게 싫었다'라고 표현하는 식으로 말이다. 북한에서는 며느리의 출신 지역을 비난해도 그 출신 지역 사람들은 웃어넘긴다는 말이 있는 등, 저런 말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남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여기서 책으로 보고 안 것과 직접 경험한 것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등, 간접적인 경험도 직접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남한 주민들이 탈북민들의 증언을 들으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오죽하면 질문 끝에 꼭 '직접 봤느냐'라는 식으로 확인하라는 조언도 있을 정도다. # 사기를 치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화법 상의 문제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6.4.2. 증언에 대한 오해


어떤 탈북자의 발언은 불분명한 걸 싫어하는 지역적 기질을 바탕으로한 발언을 허위 증언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더구나 언론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는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는 정보는 차단을 강요당하니 이에 대해선 부정확할 수 있는 기억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부정확함을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북한은 이동의 자유가 극히 제한되어있고, 시대에 따라 의외의 변화도 자주 일어나는 곳이라 지역이나 시대, 계층마다 경험이 상당히 다르다. 언론의 자유가 없기도 하여 이러한 계층들은 다른 지방의 소식, 다른 계층의 사정에 어두운 경우가 많다. 이렇기 때문에 한 탈북민이 사실을 말해도 그동안 탈북이 흔했던 2000년대 중후반이나 2010년대 초반, 지역적으로는 함경도 북부의 북한 관련 증언에 익숙한 남한 사람이 믿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탈북민 끼리도 앞서 언급했듯 사실이라도 못 믿겠는 증언도 있을 정도다.
예를 들자면 사투리에 대한 언급에서 이런 경향이 있는데, 어떤 말은 북한에 없다고 주장해도 다른 지역에서는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합네다'라는 말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한국 전쟁 당시의 평안도나 황해도 출신 실향민의 말투다. '~합네다'라는 말을 안 쓰는 함경도 사람을 보고 이런 말이 나왔다는 말은 오해다. 실향민의 수가 1세대만 60여만명에서 많게는 139만명# 정도로 추산되니 한국전쟁 직후 2천만명이던 남한의 인구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3만명을 좀 넘는다는 지금 탈북자보다 강했다. 평안도 출신 실향민 작가 황순원이 이런 표현을 자신의 소설에서 썼고, 이민복 씨 같은 황해도 출신 탈북자, 정유나 씨 같은 평안도(자강도) 출신, 다른 평안도(평안남도) 출신인 강은정 씨가 이런 말투를 언급한다. 문화어 보급으로 사라져 가는 말투 일 수는 있으나, 이런 말투를 쓴 적이 아예 없지는 않다.
정치의식의 편차도 꽤 크다. 2010년대 중후반 이후 함경도 국경지대 같은 곳에서는 '파리보다 파리채가 더 많다'면서 정치에 대한 불만이 눈에 띄다가도, 다른 곳에서는 오직 수령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기기도 2010년대 초반까지는 CD, DVD플레이어를 쓰다가 그 이후부터는 USB나 SD카드가 대세다. 그동안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알려진 생활 문화도 2010년대 후반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을 주고 자식도 돌보는 경우가 생겨난다는 말이 있다. 자본주의화도 진행 중이라 강나라 같이 2010년대 중반 이후에 탈북한 사람은 노래방 사장이 된다, 집을 산다는 말을 언급하기도 한다.

6.4.3. 북한 사회 이해의 어려움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터넷이 금지된 나라[72]며, 평양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2010년대 중반까지 TV채널이 한 가지였다. 언론은 정부의 홍보 기능만 하며, 그 정도는 중국 이상이다. 도를 넘어갈 때도 허가가 필요하다. 법이 상황에 따라 유명무실하기도 하며, 외부 정보 유입은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독재가 사라진 6월 항쟁이 1987년의 오래전 일이라, 이제 일반 남한 사람들은 법치나 민주적 의사 결정이 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탈북민의 유튜브, 탈북민을 다루는 신문 기사를 보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댓글이 많다. 나무위키에도 이것을 이해 못하고 북한 사람들, 북한 출신의 생각을 너무 관념적으로 다루는 서술이 종종 있다. 예를 들면 북한을 동독과 비슷하게 여기는 등의 사례 말이다. 동독은 정말 어느 정도 잘 살고, 원형의 사회주의 이념도 실현되어 나름 체제에 자부심을 가진 경우도 있지만, 북한은 고위 간부까지[73] 외부 사정을 모르고 그냥 속아서 체제에 자부심을 가지거나, 고위층은 이 체제가 끝나면 자신이 처벌받거나 지위가 추락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도 외부 세계를 직접 경험하는 무역 간부, 외교관, 유학생 같은 사람은 상당한 자괴감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자식을 인질로 잡는 제도 등으로 그걸 잘 못드러낼 뿐이다.
인터넷이 없는 세계는 이제 상상하기 힘든 것이 되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북한에 인트라넷 같은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든가, 심지어는 북한 사람들이 외부 소식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북한 사람들이 남한 정치제도를 이해하면서 북한을 찬양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북한 선전매체가 남한 소식을 잘 아는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북한의 매체는 외부용과 내부용이 분리되어 있다.
태영호 같은 고위층 출신도 주변에 삼권분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하였고, 북한의 모든 정보는 이처럼 민주화된 사회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그들을 통제하는 외부 물정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에 의해 통제 시도가 이루어진다. 어느 나라나 정치범수용소가 있거나, 대다수의 남한 사람들이 미제 등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하며, 가택에 대한 임의적인 수색이 국제 기준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진심으로 믿게 되는 것이다. 보고 듣는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트라넷조차도 2010년대 후반에도 직접 써 본 비율이 탈북민 기준 10%를 넘지 못한다. 휴대전화만 그나마 보급이 되어 있으나, 도청 대상이다. 정부 수립 때부터 자유 진영과 단절된 세계였고, 지금의 북한은 그냥 사람을 속이기 위한 세트장과 같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다만 이런 지시를 순순히 따르기만 하다가는 굶어죽으니 알음알음 CD, 최근에는 USB 같은 것이 퍼지는 것이다. 그것도 요새는 단속을 피해 점조직식 네트워크로 퍼진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은 법 자체가 정당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무역 등의 경제 활동이 경우에 따라 금지되거나, 외부 소식을 접하려는 노력 등을 통제하기도 한다. 사실 법부터 집행이 자의적인 경우도 많고, 뇌물로 처벌이 잘 안되는 경우도 있지만, 있고 없고 정도의 차이는 존재한다. 남한에서 합법이며, 심지어 헌법에 의해 보장되며 지켜지는 것이 북한에선 불법이거나, 위헌이어도 그냥 무시된다는[74] 것이다. 그래서 '북한 기준' 법을 어기는 것이나 그냥 단속되는 것을 보고 불법을 조장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75] 물론 남한에서도 불법인 강도, 살인 같은 것을 미화하면 안되겠지만, 무역 같은 것을 남한식으로는 정당하게 했는데도 불법이라고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한다. 북한 여권도 남한 같으면 당연히 일반인이 받을 수 있는 것을, 북한에서는 일반인은 아예 그 용도를 모르거나 뇌물을 줘야만 받을 수 있기도 한다.[76]

6.5. 사회 제도적 적응 문제


오늘날의 북한은 배급도 끊기고 사회주의의 인민생활보장제도도 무너진 건 사실이지만, 명목상으로는 무상 의료와 교육을 주장하며 직장도 맘에 안 들어서 그렇지 국가에서 배정하기 때문에 취업률이 100% 에 가깝다.
한국 사회에서는 본인이 노력해서 돈을 벌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새터민들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많다. 사실 탈북민들이 가장 정착에 만족하는 이유 중 하나가 노력한만큼 돈을 번다는 것이지만, 걱정거리도 된다. 또한 새터민들이 '''법치주의법의 지배의 원리'''[77]나 '''한국식 상거래''' 등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결국 하류층으로 전락하고 온갖 물의를 일으키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78] 흔히 탈북자들이 처벌이 강하다는 북한 이미지와 다르게 한국 법은 세다는 언급을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체제에 도전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은 매우 강하지만, 이런 곳에 공권력이 동원되니 다른 쪽이 약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다만 이는 한국의 사회적 약자들이나 다문화가정 출신들도 큰 차이가 없다. 당장 뉴스에 잊을 만하면 나오는 묻지마 범죄자들이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살았는가를 생각해 보자. 최근 들어 유럽 각국의 사회 문제로 떠오른 유럽 난민 사태도 이런 경우이다. 시리아이라크, 에리트레아내전으로 엉망이 되었거나, 치안이 막장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자기나라 경험을 잊지 못해서 망명지에서도 무기를 휴대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다가 범죄자로 전락하는 일이 잦은 편이다. 일종의 PTSD를 겪고 있는 것이다.

6.5.1. 일부 탈북자의 일탈


탈북의 이유 또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폐쇄적인 독재국가에서 탈출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정해져 있다.
  • 자유를 갈망하는 사상범
  • 희생될 위기에 처한 숙청의 피해자 혹은 권력 투쟁의 패배자
  • 생존의 위기에 처한 경제적 난민
  • 어느 사회에서나 처벌될만한 범죄자
  • 탈출을 위장하여 잠입을 시도하는 간첩
그래도 북한 체제가 그럭저럭 굴러가던 1990년대 초반[79]까지는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구 공산권 붕괴로 국제경제체제에서 고립되고, 김일성 사망과 대홍수, 고난의 행군으로 배급시스템이 무너진 1990년대 후반부터는 세번째 경우가 대부분이며, 불편한 진실이지만 북에서 살인, 강절도,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른 후에 처벌을 피하기 위해 탈북한 사람들도 극소수 존재한다.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을 보면 범인 윤태식은 자기 아내를 죽인 후에, 북한 대사관을 찾아가서 월북을 시도했었다. 실제 최근까지도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월북을 시도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남쪽에서도 이런데, 헬게이트 북한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당연히 있을 것이다.
물론 탈북자를 전부 범죄자로 모는 행태는 절대 삼가야 한다. 계속 반복되지만 실제 탈북자들의 절대 다수는 먹고 살기 힘들고 북한 체제에는 도저히 희망이 없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목숨 걸고 탈출하는 사람들이다. [80] 그리고 이런류 범죄자들은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남한에서도 같은 탈북자를 등쳐먹는 식의 범죄를 저지르다가 처벌되곤 한다. 실제로 탈북자들에게서 거액의 투자금을 받아서 도망친 뒤 '''재입북'''한 인간도 있을 정도다. 예를 들어 이정연은 자신의 북한군 장교 근무 시절의 이야기를 모아서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를 출판해서 큰 돈을 벌고 매우 유명해졌는데, 이후 40억 가까운 돈을 사기쳐서 중국으로 달아났다. 이정연은 한동안 반공보수 집회에서 고정적으로 나와서 연설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던지라, 반공보수단체들이나 책을 낸 출판사 플래닛미디어는 피해자들에게 항의와 욕설에 한동안 시달리기도 했다.
사실 탈북자들의 범죄율도 결코 낮지 않다. 경찰대학 부설 치안정책연구소가 2008년 내놓은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효율적 지원방안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7년 1월까지 전체 탈북자 8,835명 가운데 20%에 달하는 1,687명이 범죄를 저질렀고 이 가운데 강력 범죄자는 살인 5명, 폭력 603명, 강간 12명, 사기 36명 등 899명으로 전체의 53.2%를 차지했다. 강력범죄율은 10% 가량으로 한국인의 평균 강력범죄율인 4.3%보다 2배 이상 높다. 탈북자들의 재범 비율 역시 우리나라 전체 재범 비율보다 2~5배 높다고 한다.출처 기사
단,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과 평화'라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위의 수치는 1998년부터 2007년 1월까지의 범죄 발생 건수가 1년 안에 발생한 것처럼 계산되어 범죄율이 과장되었다고 통일부와 경찰청이 이의를 제기하였다고 한다. 저 주장대로라면 9년 간 통계를 합쳐 1년과 비교해도[81] 2배가 높다는 뜻이므로 생각보다 범죄율이 낮을 수 있다. 범죄를 당한, 범죄 피해율은 한국 평균의 5배 정도인 23.4% 였다고 한다. 이 논문은 이의가 있다고 소개하고 높다는 가정 하에 탈북자의 범죄율이 높을 수 있는 원인을 분석한다. 탈북자의 범죄율이 높은 이유는 상대적 박탈감, 가족과의 이별, 한국 사회의 이방인 취급, 노동시장에서 겪는 차별 대우와 이에 따른 가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또래와의 일탈이 있다고 이 논문은 분석하였다. 위의 논문을 인용하자면 마약범죄와 성매매에도 쉽게 빠져드는데, 이미 북한에도 마약이 상당히 퍼져있다는 것과 여성탈북자들이 대부분 중국을 경유하면서 인신매매와 성매매에 쉽게 노출이 된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약의 경우 약용으로 쓰려다가 적발된 경우가 있다. 다른 범죄 관련 주장에는 이의가 있지만, 이건 정말로 2019년 기준 일반 국민보다 7.5배의 비율로 마약사범이 많다는 통계가 있다. 하나원에서는 눈에 띄는 마약 중독 증세를 보이는 탈북자는 없어 안심하였지만 이런 것으로 보인다. # 2015년 이후 교도소 수감 탈북민의 3분의 1이 마약사범이라고 한다. 그냥 남한을 생각하면 순수 쾌락목적이 아니면 마약을 투약할 수 없고, 언론에서도 마약 투약 원인을 취재하지 않으면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북한의 의료사정이 상상 이상으로 열악하여 약을 이렇게 구하기도 한다. 왜 마약을 구하려고 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는 없으나 이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증언이 있다. 수사 과정에서 약으로 알았다는 증언이 종종 있다고 한다. #
북한에는 의약품이 부족하니 개인이 키울 수 있는 아편을 쓰는 경우도 있고, 에너지 드링크나 커피 같은 것이 보편화되지 않아 심각성을 모르고 필로폰을 쓰는 경우가 있다. 필로폰은 개발 당시 자양강장제 등으로 쓰였다가 부작용이 극심해 각국에서 마약으로 지정된 약물인데, 북한에서는 그 부작용이 진짜로 심각한 것인줄[82] 모르고 그냥 쓰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통편이라는 아편 성분 약도 한국에서 불법인데, 이를 반입하다가 마약 사범으로 붙잡힌 경우가 있다. 이런 마약 성분에 내성이 생기다보니 한국 약이 듣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의약품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어 문제가 된다고 한다. ##
2020년 7월 한강 하구를 통해 개성으로 월북한 탈북민이 성폭행 혐의를 받았고, 북에서는 성폭행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탈북자와 북한 전반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하고 있다. 일단 사람의 됨됨이를 따지면 탈북자끼리도 그를 비난한다. 성범죄 뿐 아니라 동료 탈북자가 차를 빌려주었더니 팔아버리고 도망갔다는 신고도 하였으며, 월북도 신고했다는 주장이 있다. # 탈북민끼리도 바보 같다는 여론이 있다는 기사도 있다. 물론 사법체계가 고무줄처럼 느슨하고, 권력형 성범죄[83]가 많다는 것은 휴먼라이츠워치라는 국제인권단체에게서도 지적된 사실이지만, '성폭행'은 아동 대상인 경우 주민의 비난을 감안하여 무기징역도 선고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강간 같은 건 북한에서도 형법 상의 범죄다. 대검찰청은 북한은 음란물을 보기만 해도 처벌한다는 글을 올린 적도 있다. #
가정폭력에 따른 처벌은 2019년의 것[84]이 처음으로 추정되고, '성추행'은 가볍게 여기는 정황[85]이 있다. 당국이 공개한 강간 처벌 건수가 1년에 10건도 안되는데, 휴먼라이츠워치의 보고서에서는 이 수치를 보고 당국자들이 북한을 '지상락원'이라고 여기는 태도가 있으며, 오히려 대응에 실패한 것이 아니냐면서 지적하고, 좀 더 신뢰도 높은 자료를 공개하라고 촉구한다. 2010년대 이후로는 경찰 체계가 느슨하여 처벌하려고 해도 못 잡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즉 북한이 범죄율이 낮은 게 아니라, 민생 치안에 동원할 경찰 행정 여력이 없기 때문에 수치가 낮은 것이다. 물론 범죄는 단호히 예방해야 하지만, 저런 연구와 보고서에서 범죄 예방을 위해 대한민국에 요구하는 내용은 '모든 탈북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라'가 아니라 탈북민에 대한 부당한 편견은 없애고, 성 관련 문제는 주민들에게 전달될 가능성 있는 매체를 통해 그 심각성을 알려주는 정보를 제공하고, 효과적인 교육을 시키며, 안일한 북한 정부에 압력을 넣으라는 것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6.5.2. 탈북 청소년 문제


탈북자의 한국 사회 부적응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탈북 청소년의 학교 부적응 문제 또한 고려해야 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86] 탈북자의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교육부를 중심으로 탈북 청소년에 대한 교육지원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87]
이러한 정책적 지원에 결과, 2008년 기준 10.8%에 달하던 탈북청소년의 학업중단률은많이 낮아져서 2015년 기준 한국 학생에 비해 2배 정도 수준까지 낮아졌다.탈북 청소년의 학업 중단율 낮아짐 2019년에는 3% 가량으로, 한국 학생의 0.94%보다 3배 정도 수준을 기록했다.#최근에는 학생들의 학업 적응 뿐만 아니라, 진로 탐색이나 사회 적응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시도들이 존재한다.
탈북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학교라는 환경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단은 신변안전상의 이유로 탈북자 출신이라는 사실은 숨기는데, 한번 어떤 이유로든 탈북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주변 학우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사실 숨긴다고 오래 숨길 수도 없다. 북한 특유의 말투와 또래 문화를 쉽게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중국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특히, 북한에서 보이는 도발이나 사회, 정치적 문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 '너희 나라는 맨날 왜 그러냐?' 는 부당한 비난을 받고 심지어 '너 간첩이지'에서 '빨갱이'라는 욕까지 듣는다(2012년 1월 기사). '너희 나라'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그냥 한국어 쓰는 외국인 취급이다. 참고로 한국 정부는 헌법으로 한반도에서 유일한 정부임을 자처하며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다. 나라가 아니다.[88]
애들한테 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애시당초 집단괴롭힘에 합당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 트집거리 잡을 게 하나라도 생기면 즉시 그 대상이 된다. 결국 탈북 청소년도 엄연히 감수성이 있는데 이런 차별은 성인보다 더 뼈아프게 느껴질 것은 자명한 일. 게다가 지속적으로 계속 감정적인 차별에 시달리며 성장할 경우 이들이 갖게 될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반감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일반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에는 탈북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에 진학하기도 하고, 검정고시를 통해서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기도 한다. 다만 어린 시절에 한국 일반 학교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지속적으로 탈북청소년들의 사회적응이라는 측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의 적응에 국가와 민간 양측이 별도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탈북 청소년을 다문화 가정 범주에 넣어서 다루는 것이 전부이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에서 탈북 청소년까지 지원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혼혈도 아니고, 타 문화권 출신도 아닌데[89] 다문화 취급하는 것 자체가 개판이지만, 정말 현실은 시궁창인 것은 탈북 청소년한테 그나마 이 정도 관심이라도 보여주는 단체는 이들뿐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탈북자 출신 영화 감독이자 일베 이용자(...)로 유명한 정성산이자스민 전 의원 관련 혐오발언을 참고할 만 하다. 70년 가까운 분단기간동안의 이질화로 '언어만 통하는 타 문화권'이 된 남북간의 차이와, 이로 인하여 다문화 지원 단체에서 탈북 청소년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 현실에도 불구하고 유명 탈북자가 도리어 다문화 수용을 조롱한 것. 조금 비꼬아서 말하자면 정성상은 필리핀 출신인 이자스민을 '이방인'으로 보고 배척하여 조롱했지만, 사실 적잖은 한국 사회 구성원의 시선으로 보면 정성산 역시 '이방인'이기는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점은 정성산의 지역차별 조장 발언(소위 '칠시민국' 발언)등과 함께 탈북자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악화시키는 일부 탈북자의 잘못된 행태의 사례로도 볼 만 하다. 비유하자면 상황이 나빠져서 친척집에 신세지러 온 사람이 친척의 부인을 보고서는 '우리 집안 사람도 아닌데 왜 우리 집안 일에 끼어들게 하냐'고 욕하고 친척 형제간의 싸움에 끼어들어 한 쪽 편을 들며 다른 쪽을 '저런 놈은 우리 집안 사람도 아니니 쫓아내자'고 욕하는 격이다.(...) 과연 집주인은 누굴 쫓아내고 싶어질까?(...) 좋든 싫든 옳든 그르든 오랜 분단으로 인해 남북한간에 심한 문화적 이질화가 발생한 것이 현실이고, 이로 인하여 북한이탈주민이 남한 사회 내에서 이방인과 같은 처지가 된 것 역시 현실인데, 이런 현실을 차근차근 이해와 적응을 통해 극복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 딴에) 주류로 보이는 세력에게 영합하여 그 세력과 갈등하는 다른 세력을 덮어놓고 배척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한국 사회에 있어서도 좋지 못한 일이지만 해당 탈북자들 자신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예를 들어 정성산의 칠시민국 발언을 보더라도, 어지간히 뼛속까지 지역감정에 찌든 인간이 아닌 이상 일반적인 한국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전라도든 경상도든 지금까지 살 비비며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인데, 새로 들어온 사람이 지금까지 같이 살던 사람을 욕하면 '와 우리편 생겼다!' 라고 기뻐할까? 아니면 '얘는 뭔데 내 이웃을 욕하냐?' 고 기분나빠할까?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 교육부를 중심으로 탈북 학생들의 경우 다문화 학생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교육 지원 및 학비지원, 대학(정원 외)특례 입학 등의 지원들이 존재한다. 탈북 청소년이 받는 혜택 여기서, 한국 사회에 적응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탈북자임을 숨겨야 하는데, 국가의 교육지원 정책의 수혜를 받기 위해서는 탈북자 출신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공개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특히 탈북 청소년들은 남한의 학교 수업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북한의 수업 내용은 수학, 과학 과목 정도를 제외하면[90] 대부분이 김일성 찬양에 맞춰진, 즉 거의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세뇌뿐이기 때문이다.
외국어 공부는 적어도 2010년대 이전 김정일 시대에는 평양의 선택받은 학생들이 아니면 북한 당국에서 의도적으로 못하게 하는 경우도 많고. 특히 영어중국어는 개인이 공부하다가 걸리면 탈북하려는 걸로 간주하고 심문하였다. 김정은 시대에는 이제 영국식 영어를 가르쳐 준다고 하지만, 특수한 학교가 아닌 한 영국식 영어에 'student'같은 기초적인 것만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여전히 힘들어한다. # '따지지 말고 그냥 믿어야 하는' 환경에서 가치관이 형성된 채 평생을 살던 이들이 갑자기 이성논리로 따지며 탐구하는 남한의 수업을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물론 장기간의 탈북과정을 거치면서 장시간의 교육 단절로 인한 것도 있다. 짧게 걸리면 한두달 내로 남한으로 들어오기도 하지만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허다. 그 기간에 공부가 불가능한 것은 당연하다.
북한이 남한과 사이가 안 좋고 막 나가는 위협을 계속할 때는, 상술된 "니네 나라는 맨날 왜 그러냐"[91]는 분위기는 점점 강해지고 탈북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입지가 좁아지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에 대한 반감과 혐오감을 죄 없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푸는 것. 이렇다 보니 탈북 청소년의 37% 부적응 감정적인 고립이 실제로 어떤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
그래서 위의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인진 몰라도 남한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북한이탈주민들 중에서도 남한이 아닌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주목받는다. 2016년 김수암 등의 조사에서는 16.7%가 그렇다고 하고, 82.7%가 아니라고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 때문에 언론이나 학계에서 주목받는다. 하지만 후술하듯이, 그나마 북한이탈주민을 동포로써 맞아주는 한국 밖의 나라에서 북한이탈주민은 그냥 흔하디 널린 그 나라말 못하는 외국 난민1 수준이기에, 적응은 더더욱 쉽지 않다.

6.5.3. 사회적 지위 하락


다만, 북한 내에서 대학이나 고등전문학교와 같은 곳에서 고등교육까지 받고 북한 사회의 주류에 있었던 이들이 오히려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은 20년이 넘게 북한 정권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를 강제로 주입받고, 북한 내에서 주류 사회에 편입되었다는 것인데, 이들이 완전히 체제가 다른 사회에서 새로운 생활 방식을 익히는 것은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던 사고 체계를 뜯어 고쳐야 하는 것이라서 오히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보다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외부 정보나 북한 선전의 진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계층도 북한의 주류 계층이기에 이들의 적응이 쉽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해경에 구출된 북한 주민 5명 중 노동당원은 모두 귀순, 비당원은 북한 잔류를 고른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
그런데 북한 내에서 중산층 이상의 지위에 있던 이들도 북한 내에서 가졌던 사회적 지위를 남한으로 탈북해 온다 해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어서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상당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제도적 적응과는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 북한에서 이공계 분야 최고의 대학인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정부 기관에서 기술관료로 근무하다 남한으로 탈북하여 민간 건물에서 설비기사를 하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자살한 사례도 있다. 이외에도 북한에서 교원대학을 졸업하고 중등교원으로 근무하다 탈북하였는데, 식당 종업원이나 건물 청소부 등을 전전하다 범죄를 저지른 사례도 있다. [92] 실제로 한국은행 국장급인 북한의 중앙은행 조직부장 탈북자가 모 대형 할인 마트에서 계산원을 하는 안습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태영호도 국정원 자문을 그만두고, 책을 출간한 뒤 빵집, 세탁소를 운영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 있다. #
이런 문제들이 북한에서의 학력을 인정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문제라는 말도 있는데, 하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 합심센터에서 탈북자들의 학력을 검증하고, 등재하는 과정이 있다. 만일, 학력 증명 서류의 원본이 있는 경우에는 즉시 인정[93]되며, 정황적 증거[94]를 제시하는 경우 검증을 통해 학력을 인정한다. 물론, 법조인[95], 의사, 교원 등과 같은 전문직이나 국가 공인 자격의 경우도 검증을 통해 자격이나 면허를 인정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며, 실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의사, 교사, 약사, 안경사, 조리사 등의 자격이 무시험 검정으로 주어진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에선 북한의 교육이 김부자 우상화에 집중되어 있다는 편견이 흔히 있으나, 김부자 우상화 교육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교과 교육이 소홀히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 '''한 학생의 학력을 평가하는 데 김부자 관련 요소가 쓸데없이 끼어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대학에선 편견과는 달리 결코 북한 내부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만 통용되는 학문, 학설만을 국한해서 가르치지 않으며, 오히려 폭넓은 학문 분야를 접하게 한다. 실제로 북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의 경우엔 사고방식이 경직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력이나 지적 측면이 절대 뒤떨어지진 않는다. 윗 문단의 문제는 단순한 학력의 인정 여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북한 내에서 대학 졸업자에게 보장되는 사회적 지위와 그 탈북자가 대한민국 내에서 갖게 되는 한계적 사회적 지위 간의 불일치 문제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탈북자들을 재교육하고 배출할 때 북한 내에서 지녔던 학력에 상응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같은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단 수적으로도 탈북자들의 상당수가 생계형 탈북자가 많기 때문에 탈북자 교육 및 지원 정책이 이들 위주로만 맞추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라, 출신 계층별 교육 체제, 지원 체제 등을 확충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다.
여담으로 한국에서 중산층 이상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직업군 중에서, 탈북자가 제일 많은 분야는 군인과 공무원이지만 군인 출신 중에서는 아직 장성이 없고 공무원은 거의 다 특채로 고시 출신은 없다. 그나마 군인은 인민군 복무 중에 탈북하여 그대로 계급을 인정받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10대에 탈북한 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군필 탈북자들은 나이 때문에 국군에서 직업군인으로 재복무가 어렵다.

6.5.4. 난민 신청을 통한 해외 이민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탈북자들은 한국을 떠나 이민을 가기도 한다. 여기서 해외 이민을 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워킹홀리데이, 어학연수, 유학, 취업, 기술, 결혼, 자영업, 투자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이용하여 '''정상적인 루트'''로 이민을 간다면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한국을 거치지 않고 타국에서 난민 신청을 시작하는 경우도 역시 정상적인 루트에 포함된다.
다만 '''한국 국적'''이 없고 한국에 간 적이 없다고 거짓 증언하면서 정치적 난민 신청을 통해 영국, 캐나다, 미국, 유럽 등으로 이주를 시도하는 경우엔 문제가 된다.
2000년대 중후반 ~2010년대 초반에는 탈북자들 사이에서 북미, 서유럽 등에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이 늘었고 초기에는 영국, 캐나다 등이 탈북자를 수백명씩 받아 주었다. 하지만 갑자기 급증하는 탈북자를 이상하게 여긴 각국 정부들이 정밀 심사를 하고 한국 정부에 신원 및 지문 조회를 요청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던 탈북자들에 대해선 난민 지위를 거의 인정하지 않게 됐다.
단적인 예로 2014년 캐나다에 난민을 신청한 탈북민 617명 중 단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한국으로 강제추방되었다. 그리고 2017년에, 난민 신청이 통과되었거나 이후 영주권 취득을 한 탈북자들도 무더기로 취소되면서 추방 위기에 몰려있는 것이 현실이다.#[96] 한국 국적이 없다고 말해야 하니 당연히 탈북 과정에 대해서도 난민 심사 시에 거짓 증언을 하게 되어 버려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시기에 난민 심사가 허술했던 독일에선 탈북자를 난민으로 받아준다는 걸 알아챈 일부 중국 조선족들이 탈북자 행세를 하면서 북한 애국가와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암기해서 독일 난민심사를 통과하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다. 현재에도 영국에는 탈북자라고 거짓 행세하여 난민 인정을 받고 거주하는 중국 조선족 출신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 난민심사 통과 후 새로운 신분이 확정되기 전에 중국 여권을 들고 중국에 드나들던 몇몇 조선족들 때문에 들통이 났고, 이후 독일도 심사가 엄격해졌다. 중국 공안의 단속과 북송에 대한 공포로 난민신청을 했다는 사람들이 새 신분이 나오기도 전에 자유롭게 중국을 드나들다 독일 당국에 적발된 것이다.
200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 한국에 들어와 정착했던 탈북자들 사이에서 미국 캐나다호주, 유럽으로 가려는 바람이 불었고 이로인해 연간10명도 안되던 탈북자들이 갑자기 폭증하자 이들 국가에선 탈북자들에 대한 엄격한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한국을 거치지 않고 입국한 탈북자들은 난민 허가가 전혀 문제없이 잘 이루어진다. 그러나 해외 정부 측에서 한국에 신원 및 지문 조회를 요청해 실제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던 이들에 대해선 이미 체류허가가 난 탈북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냥 그대로 두고 받아주었지만, 심사가 엄격해진 이후부터의 난민 신청자들은 대부분 거부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 조선족이 탈북자로 속여 유럽으로 들어오던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97] 현재 유럽은 브렉시트와 시리아 난민 문제로 반 외국인 정서가 팽배해서 골치아팠는데 잘됐다 싶었는지 걸리는 족족 추방조치. 이런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자 화가 난 영국캐나다 정부는 자국 의회와 인권단체의 권고를 무력화하기 위해 한국을 안전 국가로 지정한 것이다.
미국에 가면 더 돈 많이 벌고 좋아진다고 여기는 탈북자도 많아졌다. 물론 탈북 상태에서 미국으로 가는 것은 가능은 한데 대부분의 정보가 카더라 통신에 불과하다. 미국이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을 환영할 리는 없고 한국, 유럽과 달리 정착연금도 거의 없기 때문에 극단적인 최후를 겪는 일도 있다.
게다가 다른것을 다 떠나서, '''한국에서 적응을 못할 정도면 외국에서는 그 이상으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남북한간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북한이탈주민 역시 법적으로 엄연한 한국인이고, 따라서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탈북자가 한국에서 살 권리를 보장하며 정착과 적응을 위한 지원까지 제공하는 것.
하지만 북한과 '특수한 관계'가 아닌 타국의 입장에서 탈북자는 아무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그저 '귀찮은 난민'일 뿐이고, 따라서 정착 지원은 커녕 상응하는 이유가 없는 한 딱히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은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게다가 돌려보내면 목숨의 위협을 받게되고, 그렇다고 대신 받아줄 나라도 딱히 없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탈북자의 경우는 '이미 탈북민들은 대한민국 국적자이고, 대한민국은 탈북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우리가 받지 않더라도 인도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이라는 변명거리까지 있다.
즉 탈북자의 정착이 거의 제한없이 허용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과 유럽은 정착이 허용될 가능성도 아주 낮고, 설령 정착한다 해도 적응을 위한 지원 역시 한국보다 훨씬 적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게다가 언어의 문제까지 있으니 탈북자의 입장에서는 외국에 정착하여 적응하는 것은 한국에서 정착하여 적응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도 결국에는 외국 내 한국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6.5.5. 기타


탈북 후 치료받고 북으로 보내달라?
치료목적으로 탈북하는 경우가 나온다고 한다.

7.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해외방문시 주의사항


이하 이 문단의 내용은 이미 북한 및 중국의 통제 범위에서 탈출해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았거나 제3국에서 난민 자격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내용이다.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은 '''북송되고 싶지 않다면 중국 대륙, 러시아 포함 친북 국가[98]로의 경유나 여행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99][100]

7.1. 이유


중국으로 여행갈 정도면 한국에 많이 적응했기 때문에 별 지장이 없어보일 수도 있지만 '''북송시키는 것이 목적인 공안이나 북한에서 파견나온 보위부 등의 무시무시한 존재를 만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 탈북 실황 프로그램에서 남한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탈북하던 탈북자중국에서 공안에게 북송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공안이 남한인에게 접근한 것도 '''탈북자 출신 남한인 아니냐'''는 생각에서이다.[101] 이미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상태인데 뭐가 문제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거 안 따지고 북한으로 보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법 상으로도, 심지어 중국 법으로도 엄연히 불법이지만 중국의 인권수준은 전세계 통들어 최하위 수준이다.[102]
결국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북한이탈주민들이 중국을 방문했다가 북한 보위부원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7.2. 국외여행시 유의사항


미주, 유럽, 오세아니아 등의 먼 곳으로 가는 장거리 항공편을 알아보면 중국에서 환승하거나 중국 국적 항공사[103]를 이용하는 여정이 제일 저렴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 대륙을 경유하는 방법은 평생 생각조차 하지 말 것. 돈 몇 푼 아끼려다 목숨 잃는다.'''[104]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상태로 중국으로 여행 혹은 환승 목적으로 떠난 탈북자가 중국 공안원이나 북한 보위부에 잡혀 북송되는 사건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105] 물론 '''러시아, 벨라루스, 시리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베네수엘라, 팔레스타인, 캄보디아, 쿠바'''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미국, 캐나다, 중남미 방면은 일본 경유가 더 저렴한 편[106]이고 중화항공이나 에바항공과 같은 중화민국 국적 항공사를 이용해서 타이베이를 거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107] 그러나 유럽이나 호주, 뉴질랜드 방면의 경우 일본보다는 중국 경유가 더 저렴한 편이라서 특히 조심해야 한다.
많이 비싸더라도 서울이나 부산에서 출발하는 대한민국 국적기의 직항노선들을 이용하거나, 중국과 북한의 탈북자 체포에 협조하지 않는 국가들의 항공사를 이용하자. 특히 외항사를 이용할 경우 중국 항공사보다는 비쌀지언정 그래도 대한민국 국적기보다는 저렴하며,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항공권을 푼다.
'''북한이탈주민이 이용해도 안전한 항공사와 루트'''
목적지
경유/도착 국가
이용 항공사
경유/도착 공항
미주[108]
미국[109]
델타 항공
시애틀
미니애폴리스
디트로이트
애틀랜타
유나이티드 항공
샌프란시스코
아메리칸 항공
댈러스
캐나다
에어 캐나다
밴쿠버
토론토
일본
일본항공
도쿄(하네다)[G]
도쿄(나리타)[P]
전일본공수
도쿄(하네다)[G]
중화민국(대만)
중화항공
타이베이(타오위안)[T]
에바항공
타이베이(타오위안)[T]
오세아니아[110]
태국
타이항공
방콕(수완나품)
싱가포르
싱가포르항공
싱가포르(창이)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항공
쿠알라룸푸르
일본
일본항공
도쿄(하네다)[G]
도쿄(나리타)[P]
전일본공수
도쿄(하네다)[G]
중화민국(대만)
중화항공
타이베이(타오위안)[T]
에바항공
타이베이(타오위안)[T]
뉴질랜드
에어 뉴질랜드
오클랜드
유럽, 중동
브라질, 아르헨티나
싱가포르
싱가포르항공
싱가포르(창이)
인도
에어 인디아
뉴델리
네덜란드
KLM 네덜란드 항공
암스테르담(스키폴)
영국
영국항공
런던(히드로)
프랑스
에어 프랑스
파리(샤를 드골)
독일
루프트한자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뮌헨
핀란드
핀에어[111]
헬싱키(반타)
폴란드
LOT 폴란드 항공
바르샤바(쇼팽), 부다패스트
터키[B]
터키항공
이스탄불
카타르[*B ]
카타르 항공
도하(하마드)
아랍에미리트[*B ]
에티하드 항공
아부다비
에미레이트 항공
두바이
'''북한이탈주민이 이용했다가는 북송될 수 있는 항공사와 루트'''
목적지
경유/도착 국가
이용 항공사
경유/도착 공항
'''전체'''
중국
중국국제항공[112]
베이징(수도)
연길(조양천)
톈진(빈하이)
청두(솽류)
충칭(장베이)
항저우(샤오산)
허페이(신차오)
원저우(용창)
중국남방항공
베이징(수도)
상하이(푸둥)
광저우(바이윈)
연길(조양천)
창춘(룽자)
다롄(저우수이쯔)
하얼빈(타이핑)
무단장(하이랑)
선양(타오셴)
정저우(신정)
우한(톈허)
자무쓰(둥자오)
하이커우(메이란)
창사(황화)
난닝(우수)
우루무치(디워푸)
선전(바오안)
중국동방항공
상하이(훙차오)
상하이(푸둥)
칭다오(류팅)
난징(루커우)
창사(황화)
쿤밍(창슈이)
옌타이(펑라이)
구이린(량장)
우시(순안 석방)
연길(조양천)
옌청(난양)
지난(야오창)
상하이항공
상하이(훙차오)
상하이(푸둥)
장자제(허화)
춘추항공
상하이(푸둥)
스자장(정딩)
양저우(타이저우)
선전항공
선전(바오안)
쓰촨항공
청두(솽류)
산동항공
칭다오(류팅)
지난(야오창)
톈진항공
톈진(빈하이)
칭다오항공
칭다오(류팅)
러시아
아에로플로트
모스크바(셰레메티예보)
오로라 항공
블라디보스토크
유즈노사할린스크
이르쿠츠크
S7 항공
블라디보스토크
노보시비르스크
이르쿠츠크
야쿠티아 항공
야쿠츠크
  • 유럽 대륙은 항공권 값은 비싸더라도, 일단 한 도시로만 입성하면 도시간 이동은 타 대륙에 비해 저렴하고 수월하게 할 수 있다.[113] 따라서 돈이 더 들더라도 서울이나 부산[114]에서 직항편이 있는 KLM 네덜란드 항공이나 에어 프랑스, 터키항공 또는 루프트한자, 핀에어[115]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 굳이 환승을 해야 한다면, 특히 직항편이 없는 동유럽 국가들로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LOT 폴란드 항공, 에티하드 항공, 에미레이트 항공이나 카타르 항공, 터키 항공을 이용하여 폴란드바르샤바, 아랍 에미리트아부다비두바이, 카타르도하,[B] 혹은 터키이스탄불에서 환승하는 것이 좋다.

7.3. 진로선택시 유의사항


대학에 진학할 때 중국어학부 / 중문과나 중국 관련 학과 쪽으로 진학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반만 맞는 이야기이다. 정확히는 2000년대 이후 출생한 어린 세대의 오해다. 1970년대1980년대 출생한 기성세대에게 중화민국의 존재감이 꽤 강한데 비해 1990년대 출생한 20대나 2000년대 이후 출생한 대부분의 어린 세대에겐 '''자유중국'''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다.
대한민국은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이후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교류가 압도적으로 많이 늘어나서 중화권=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인식이 생겨서 그렇게 된 것이지, 사실 '''중국어 화자를 만나고 중화권의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지역은 중국 본토만 있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중국으로 가는 건 위험하지만 대만싱가포르로 가는 것은 문제가 없다'''. 중국말 쓰는 동네이니 당연히 공안이 북송하지 않느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대만중화민국이라는 별도의 행정부가 있어 공안 대신 법무부 사법조사국[116]내무부 경정서[117]가 치안을 유지한다. 이 둘은 신해혁명 이후인 1911년부터 업무를 개시한 유서깊은 기관이다.
싱가포르중국인 혈통이 70%인 사실상 중국계 국가로 도시 국가이지만 친서방 국가[118]다. 싱가포르 경찰 역시 탈북자 발생 시 보호하다 한국으로 보내주거나 망명을 받아 준다. 북한인의 입국도 금지된 나라인 만큼 북송 걱정이 없으며 최근 은근히 특무가 많아진 태국이나 특무 천국인 베트남보다 더 낫다.
물론 위의 경우에도 중국에는 아예 얼씬도 하지 말자.[119] 러시아, 벨라루스, 쿠바, 베네수엘라,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도 마찬가지다. 중동 같은 경우 친북 성향 국가인 팔레스타인, 시리아로의 여행은 될 수 있는 한 삼가자.[120] 특히 쿠바, 시리아는 현재 북한과만 국교가 맺어져있고, 대한민국과는 국교를 맺지않고 있는 미수교 국가다.

8.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가 받는 혜택'''


다음은 2017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북한이탈주민이 받고 있는 혜택이다.남북하나재단의 북한이탈주민 지원제도
[image]
2015년 기준으로 탈북자가 추가로 받는 혜택은 다음과 같다.2015년 추가된 탈북자 혜택
  • 경제 혜택: 미래행복통장은 근로소득의 30%, 최저 10만원부터 최고 50만원까지, 최고 2400만원, 취업 장려금 지급조건이 거주지 보호기간 5년인데 출산여성인 경우 2년 연장.
  • 교육 혜택: 하나둘 학교의 입학연령을 19세에서 24세로 상향.
2016년 기준으로 탈북자가 추가로 받는 혜택은 다음과 같다.2016년 추가된 탈북자 혜택
  • 경제 혜택: 영농정착 지원, 세무 이용료 지원.
  • 주거 혜택: 주택미배정자 쉼터 지원.
  • 의료 혜택: 보청기 지원.
  • 교육 혜택: 법률구조공단의 법문화 교육, 탈북아동청소년 학습 지원, 탈북아동청소년 화상영어교육 지원.
  • 기타 혜택: 정착지원 전문관리사 교육생 모집, 북한이탈주민 자활사업단 운영기관 모집, 늘푸른 착한엄마센터 공동운영기관 모집.
2017년 기준으로 탈북자가 추가로 받는 혜택은 다음과 같다.2017년 추가된 탈북자 혜택
  • 채용 혜택: 남북하나재단의 임직원들 20%를 북한이탈주민 출신으로 채용.
  • 의료 혜택: 병원 입원 시 3일 이상 입원, 본인 부담금이 30만 원, 260달러 이상일 때 지원, 치과 틀니 구입 시 100만원, 854달러까지 지원, 북한이탈주민의 출산 시 본인이 부담한 금액의 30% 지원에서 50% 지원, 불임여성의 경우 1인 1회 본인부담금의 50%, 최대 200만원, 1700달러까지 지원, 국립중앙의료원이나 서울의료원 등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의 입원해서 치료받을 때 본인부담금의 80%를 지원.
탈북 유투버에 의하면 탈북할때 들고 오는 게 많으면 많을 수록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한다고 한다. 가장 큰 보상을 받은 사람은 MiG-19 전투기를 몰고 탈북한 이웅평 상위라고 하는데, 탈북 당시 기준 15억원 (현재 가치 약 55억원) 상당의 보상을 받았다고 한다. 황장엽이나 태구민 같은 북한 고위층이 탈북/망명하는 경우는 그 존재 자체로 상당한 보상을 받았다. 비행기 같은 엄청난 물건이 아니라, AK 소총을 들고 휴전선을 넘은 탈북 병사도 소총 뿐만 아니라 총알 한발 한발에 모두 가치를 매겨 보상을 받았다고 한다.[121] 북한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나, 책, 그외 사소한 물건들도 대부분 보상 대상에 포함된다고 한다. 다만 탈북 과정에서 힘들고 험난한데 반해, 이런 물건은 대부분 탈북에는 하등에 도움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탈북자는 소지품을 죄다 버리게 되고, 맨몸으로 탈북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9. 가짜 북한이탈주민



9.1. 북한 간첩


북한에서 탈북을 역이용하여 공작원을 북한이탈주민으로 위장해 남한으로 내려보내기도 한다. 이는 체제선전용으로 활용하는 것인데 몰래 남조선에 내려갔더니 거긴 더한 헬게이트라서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다시 따뜻한 수령동지의 품 안으로 돌아왔다는 거짓 시나리오로 엄선된 인원들이 탈북과 비슷한 방법으로 실제로는 남파공작원의 형태로 내려왔다가 재월북의 형태로 복귀하는 것이다.
때문에 뉴스에 탈북 후 재월북 기사가 나면 거의 대부분 공작원 짓이며 진짜 북한이탈주민이 재월북을 하면 100퍼센트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각종 종교 또는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물질보다 신념을 우선시할 수 있는 동물이므로 이러한 공작원의 활동은 충분히 존재 가능한 사건이다. 그러나 '따뜻한 남쪽 나라의 문물을 보면 독재에 세뇌된 동포의 가슴이 녹아내려 자연스럽게 자유대한에 귀의할 것이다.'라는 과거 반공주의 시대 논리에 알게 모르게 익숙해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러한 월북사태는 배신감과 함께 모종의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탈북자들을 받지 말자는 일부의 주장도 있으나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 그리고 대한민국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북한주민들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출입국관리청에서 입국 금지를 시킬 수 없다. 심지어 범죄자용의자라도 출입국심사관체포한 후 대한민국 경찰청이나 각 도의 경찰청 소속 경찰, 대한민국 검찰청이나 각 도의 검찰청 소속 검사들에게 인수인계를 해야된다. 그래서 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에서 문재인 정부의 행태에 대한 국민들이나 외신에서 비판을 한 것이다.
웃기는 건, 그런 생각이 꼭 틀린 건 아닌지 이렇게 위장 탈북한 공작원이 남한의 실상을 알고 진짜로 탈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122] 물론 국정원도 바보가 아닌지라 거의 대부분은 걸러진다. 다만 돌려보내면 가능성은 낮지만 자의로 감행하느냐 여부와 무관하게 또 간첩질을 할 수도 있고, 딱히 공작활동한 것도 없으니 그냥 간첩죄로 몇 년 때려서 교도소에 보내버리거나 아니면 전향하는 대신 신변과 생활을 보장해준다는 조건으로 사법거래 용도로 남한 기관 쪽에서 재활용하는 수도 있다.[123] 이 정도 간첩죄는 그냥 쇼하는 거지, 기밀 유출 의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형량이 엄하게 떨어질 가능성도 낮다. 대부분 탈북하는 간첩들은 고령 간첩들이며 이후로 북한은 젊은 청년 중심으로 간첩 보낸다고 한다.

9.2. 중국 조선족의 경우


한국과 중국간 임금 격차가 현재보다 휠씬 더 벌어지던 10~20년전 지금은 너무 쉽게 발급돼서 한국 노동시장을 교란하는 F4나 H2비자가 중국 조선족들에게 적용이 사실상 안되던 2012년 이전과 정착금을 몇천씩 일시금으로 주던 2004년 이전부터 중국 조선족들이 말투가 전혀 차이가 없다보니 탈북자에게 지원되는 정착금이나 한국 국적 등을 노리고 탈북자로 위장하여 입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탈북민들이 중국 조선족들을 곱게 볼래야 곱게 볼 수가 없다. 특히 이들이 중국 대륙에 있을 때 조선족들이 공안에 신고해야 북송하게 만드는 것과 성노예, 섬노예와 같은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것의 피해자거나 당했다는 것을 듣기 때문에 애초에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 나쁘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이 탈북민들의 지원금을 가로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인식이 더 나빠진다. 실제로 탈북민이 김정은을 비롯한 김씨조선, 조선로동당, 조선인민군과 같은 북한정권이나 중국을 비판할 때 조선족악플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국정원도 놀고만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이제는 비교적 손쉽게 조선족을 구분해 낸다고 한다. 일단, 북한의 어느 지역에서 살았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그 지역의 학교, 병원, 역 같은 기본 상식도 모르기 때문이다.[124] 또는 지역과 맞지 않는 사투리를 구사한다든지,[125] 학교 교가나 북한 군가를 못부른다던지 하는 다양한 이유로 발각이 된다. 또한, 3만명이 넘는 기존 탈북자와 어떻게든 인맥이 연결되기 마련인데, 조선족은 그런 게 없다. 그렇게 조선족으로 판명이 나면 즉시 중국으로 '''추방'''해 버린다고 한다.

10. 조선적 (재일교포)




11. 조선 교포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이씨조선이 아니라 북한이다. 즉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의 교포들이다. 보통은 줄여서 조교(朝僑)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마치 중국 조선족처럼 살고 있는데 북한 국적이다. 주로 중국에서 조선족에게 중국 국적을 줄 때 그것을 받지 않고 북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그 자손들이다.[126] 그러나 중국에서 대를 이어 체류해 북한 내에 호적이 없다. 즉 법적으로 중국인은 아니지만 중국에 합법적으로 계속 거주할 수 있으며 '북송'을 당하지 않는 북한 국적자들이다. 중국은 귀화 제도 자체가 없기에 조선 교포들은 중국 국적을 얻기가 어렵다.[127]
이들도 일단은 북한 국적이기에, 서류 등을 통해 국적을 증명하고 정식으로 국정원 심사를 받을 기회가 주어져서 간첩 심사 등을 통과한다면, 대한민국 헌법 제 3조에 의해 한국 국적을 인정받고 한국에 거주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실상 중국에서 중국 조선족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는 조선 교포가 한국에 와서 정착을 신청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이를 대비하여 만들어진 법적 제도가 거의 없다. 그래서 국정원 심사를 받아보기도 전에 중국으로 돌려보내지거나 한국에서 무국적자로 대우받는다고 한다.[128]
이들 중에서 아주 드물게 한국 국적을 인정받고 한국에 정착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 의미의 탈북민과 동급의 대우나 정착금 및 주거 지원 등을 해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12. 북한 화교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국 국적화교들이다.[129]
간혹 북한 화교들이 자신도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사실상 문화적으로 북한 사람이나 다름없고, 탈북하여 한국에 왔으므로, 일반 탈북민과 똑같이 인정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북한 화교들은 중국 국적중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들은 중국에 호적이 없기 때문에 중국에서 장기 거주하려면 별도의 공민증을 취득해야 하는데 3년 이상 거주, 경제적 능력 등 요건이 까다롭다. 즉 중국 국적인데 중국에서 완전한 중국인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 국적이 아니어서 일반적인 탈북민과 똑같이 대우하기도 애매했고 무엇보다 중국 정부와의 대립이 있을 수 있기에 대놓고 공식적으로 받아주겠다고 선언하기도 어렵다.
처음에는 오랫동안 중국 국적이기에 탈북민으로 받아주지 않았으며, 중국 대사관 측에서도 이들은 호적이 없으므로 신원 확인이 안된다고 하여 한국에서 무국적자로 대우받았다. 이후 국정원 심사를 통과해서 일반 탈북민들과 비슷한 탈북 이유와 비슷한 탈북 과정을 겪은 경우에 한하여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받아주도록 바뀌었다. 다만 이만갑, 배나TV에 고정 출연한 경력이 있는 북한 화교 3세 여성의 말에 따르면 한국 국적은 받았지만 다른 탈북민처럼 임대아파트 우선권, 정착금 같은 지원은 없었다고 한다.

13. 기타


  • 자기 의사와 상관 없이 탈북(...)된 사례도 있다. 김련희 문서 참고. 생일날 밥 사먹으려고 국경을 넘었는데 그날 김정일이 열차 타고 중국에 오는 바람에 경계가 삼엄해져 돌아갈 수 없게 된 나머지[130], 탈북하게 된 북한군 이야기라던가. 그래도 이런 해프닝성 탈북이야 별로 주목을 받지 않는 편. 본의 아닌 탈북으로 인해 고통받는 처지가 된 북한인을 다룬 영화가 그물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본래 평범한 북한인 어부였는데, 하필이면 배가 고장나서 남한 방향으로 떠내려가는데다, 보초를 서던 북한군한테 도와달라고 소리치는데도 졸병들이 이를 씹은 바람에(...), 본의 아닌 탈북을 한 것으로 나온다. 때문에 남한 땅에 도달한 후에 자기를 구해준 국정원 측으로부터 귀순 제안을 받지만, 북한에 처자식이 있어서 이를 한사코 거부한다. 참 병맛나는 건, 그래서 귀순을 거부하고 결국 북한으로 돌아가지만, 정작 거기서는 자기들이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남한 땅엔 왜 갔냐면서 주인공을 쪼인트깠다는 거다(...). 현실에서도 이런 이들이 북한에 가족이라도 있으면, 가족들에게 불똥이 튈까봐서 귀순을 한사코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 심히 안습한 사례로, 영화 그물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북한 해군의 장교 한 사람이 배고파서 고기를 잡으러(...) 어선을 타고 먼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에 휩쓸려서 대한민국 해군에 구조된 경우가 있는데, 이 장교는 탈북할 의사가 없었기에 비무장지대를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빈곤함 문서에도 나와있는 사례이다. 문서를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이쪽도 심히 비참하다.
  • 엄밀히 따지면 '탈북'은 아니지만 가끔 사망한 북한군이나 북한 주민들의 시신이 바다나 강을 통해 한국으로 떠내려 오기도 하는데, 이 경우 남한에서 혐의점[131]을 조사한 뒤에 북한 측에 시신을 인계했다.
  • 이와 다른 케이스로, 중국의 탈북 브로커들이 돈 벌 수 있다고 사람을 속여 강제로 데려온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는 있다. 해당 보도를 다룬 언론사와 기자의 경력을 보면 가려들을 필요는 있겠지만. 일부 종북주의자들은 이런 사례를 과장하면서 사기 혹은 강제로 이뤄진 탈북이 일반적이고, 이게 기획 탈북이라는 개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기획탈북 자체가 언론에 탈북과정 등을 노출시켜 후원을 더 받으려고 하는 짓이기 때문에 오히려 강제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욕먹긴 하는데 탈북 루트 및 탈북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해서 다른 탈북자들을 탈북을 못하게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 탈북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 탈북자들이 하나원에서 남한 정착 교육을 받을 때는 종교 교육도 함께 받게 되는데 불교, 천주교, 개신교 3가지 종교 중에 선택하여 예배에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중 대부분이 가톨릭 아니면 개신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대부분 개신교 예배를 선택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일단 예배에 참가하면 간식을 많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신문 보도에서 인용한 <2016 북한종교자유백서>에 따르면 이들이 종교적 영향을 받는 주된 요인은 북한에서부터 비밀리에 시작된 종교적 접근과 탈북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종교인 및 단체로부터 받는 지원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특히 중국과 제3국에서 북한주민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지하교회를 운영하며 종교 교육과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목사들로부터 종교를 접하다 보니 이미 하나원에서 종교 교육을 받기도 전에 개신교에 심취해 있는 경우가 많고 기독교 단체의 도움을 받아 탈북해 남한으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자신들의 목숨을 살렸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고. 탈북자 출신의 기자인 주성하는 탈북자들 대부분이 개신교를 믿게 되는 이러한 경향에 대해 우선적으로 탈북자들의 탈북 지원은 물론 탈북 이후 남한 정착까지 돕는 단체들 대부분이 개신교와 닿아있는 데다 하나원에서 교육 받으면서 개신교가 퍼붓는 막대한 물량 공세(...)에 개신교에 대해 돈 많은 종교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개신교를 택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난다고 해석했고, "기독교는 평양을 제2의 예루살렘으로 만들려는 꿈을 꾸고 벼르고 있는 듯 하다"고 평했다. 물론 이것과는 별개로 개신교/대한민국 항목에서 볼 수 있듯 한국 개신교 역사는 평양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고 1907 평양 대부흥등의 표현이 자주 돌아다니긴 한다.
  • 한국의 난민 인정율이 낮다는 국제 인권단체들의 지적에 반박하는 근거 중 하나가 북한이탈주민의 존재이다. 한국은 북한이탈주민을 무조건 (거주 의사만 있다면) 수용하고 있는데, 한국은 북한 국적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북한이탈주민은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으나 국제법적으로는 난민의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난민 인정율은 최고가 3.4%고 1%가 안 되는 해도 수두룩하지만 북한이탈주민을 난민으로 포함하면 14% 정도가 된다. 하지만 세계의 난민 인정률이 28%, OECD 국가로 한정하면 24%이기 때문에 북한이탈주민을 고려해도 난민 인정률은 세계 평균보다 낮다. 근거 자료
  • 그런데 탈북자 중에 방송에도 참여하는 등 인지도가 높았던 여성인 임지현이 돌연 다시 재입북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그 바람에 탈북자에 대한 한국 내의 시각이 무척 부정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강화도로 월북한 성범죄 혐의자도 있었으나, 상당수의 탈북민들은 이제 유튜브로 자신들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나선 형편이다.
  •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만 해도 탈북민에 대한 적대감정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이 나름 정착을 잘하고, 상당수 탈북민이 대한민국에 긍정적 태도를 보여 마냥 악화되지도 않는 상황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2010년대 중반보다 개선 중이다. 탈북민들이 연예계에 진출하기도 하고, 언론계에도 유명한 사람이 있으며, 2020년 들어 정치권에서는 보수정당의 탈북민 국회의원들이 북한을 강하게 비판하고, 보수층이 보기엔 일을 열심히 하기도 하여 보수의 지지를 얻는다. 이들은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는 논리를 내세워 통일과 관련된 정치 활동을 한다. 대신 여권의 탈북민 인식은 2019년 초반까지는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좋아져 갔으나, 2020년 초의 보수 탈북 정치인의 대두로 그리 좋아지지 않거나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 전통적으로 탈북자는 중도우파~극우 정치세력 쪽에서 많은 지원을 해 주는 경향이 있었으나[132], 2019년경까지는 그쪽에서도 딱히 큰 관심을 가져 주지는 않았다. 북한을 비판할 때 소재 내지 도구로 사용하는 정도. 갑자기 2020년 총선에서 보수 정당이 탈북민을 2명 공천하는 일이 벌어져서 상황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다. 종북 쪽에서는 당연히 탈북자를 배신자 취급한다. 그동안은 탈북자에 관련된 이슈가 반북 vs 친북 같은 식으로 이해되곤 하였으나, 이제는 그런 것과 관련없이 탈북자의 소수자화로 이해되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이 관점에서는 통일이 돼도 그렇고, 통일이 안 돼도 심각한 인권침해가 생겨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경계스럽다. 통일 이후를 다룬 모 네이버 웹툰에서도 북한 출신 주민들의 이등시민화를 묘사하고 있다. 다만 2020년대 들어선 탈북민들이 적응은 잘해가고 있으나 통일에 대한 신중론도 부상하여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 북한의 정세도 남북정상회담, 연락사무소 폭파, 코로나19 같은 사태가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여 전망이 힘든 상황이다.
  • 위에서 언급했지만, 탈북자들 중 북한에 남은 가족들과 연락이 될 경우[133] 번 돈을 브로커를 통해서 북한의 가족들에게 송금해주는 경우가 있다. 일부 탈북자 가족들은 이렇게 송금한 돈으로 북한에서 제법 윤택한 생활이 가능해서 다른 북한 주민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백두혈통과 연결된 특권층들을 '백두산 줄기'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 '한라산 줄기'(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의 가족들), '후지산 줄기'(일본에 정착한 탈북자, 혹은 재일 조선인의 가족들)[134]라고 해서 일종의 특권층 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탈북자들이 보내 준 돈들이 장마당 등을 통해 북한 사회에서 유통되면서 북한 내 자본주의 경제를 돌아가게 한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 그런데 이런 송금 행위는 경우에 따라선 한국의 현행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제대로 허가를 받지 않은 대북 송금은 자칫하면 남북 교류협력법이나 국가보안법[135]을 위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에도 걸릴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생활비처럼 단순히 친지들에 대한 송금일 경우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묵인하고 있는 것이다. #

14. 다른 분단국가의 난민


독일이 분단되어 있던 시절에는 대부분이 공산주의 체제인 동독에서 자본주의 체제인 서독으로 넘어갔다. 독일어로는 '레푸블리크플루흐트(Republikflucht, '탈공화국')'라고 한다.[136] 게다가 동독의 주변국들이 사실상 우회 탈동을 묵인하여 탈동이 너무나도 쉬웠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그 규모가 탈북자에 비해 무려 75배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겪은 독일인들의 슬픔을 스페인가수 라 오레하 데 반 고흐Dia Cero라는 노래로 표현했다.
북한에서 보통 사람들이 공식적인 방법으로 중국으로 가기 힘든데 반해 동독에서는 그냥 휴가를 간다고 하면 별 어려움 없이 체코슬로바키아로 갈 수 있었다. 여기서 중립국 오스트리아로 가는데,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이기에 1957년 체코슬로바키아와 국경을 개방했다. 때문에 오스트리아로 우르르르 몰려갔다가(오스트리아는 독일인들의 국가이다) 언어가 같은 오스트리아에서 신원을 확인하고 서독으로 넘어갔다. 물론 베를린 장벽이 생기기 전에는 우회하지 않고 직접 넘어갔다.
대만에서는 중국 대륙에서 넘어온 사람들에게 한동안 반공의사라고 대접하기도 했지만 지금 중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괄목한 성장을 했기 때문에 굳이 중국 대륙인들이 탈북하듯이 대만으로 올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그냥 대만으로 여행오는 중국 대륙인들이 많고 이들은 물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 또한 대만 정부는 귀순자에 대한 정착 지원이나 혜택 등을 일절 베풀지 않고 있다. 다만 현재는 분단국가로서 서로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중국 대륙인이 대만에 호적을 개설하면 대만 국적을 얻을 수 있는데 대만의 정치 상황에 따라 쉽게 개설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1992년 양안 컨센서스 이후 중국 → 대만으로 이민 온 사람이 2015년 기준으로는 거의 50만 명에 달한다.[137] 일반적인 중국 → 대만 이민은 경제적 목적(취업) 등을 위해 대만에 왔다가 눌러살게 된 경우(의외로 상당하다), 대만인과 결혼하는 케이스(이것도 많다) 등이 있다. 대만에서는 이들을 신세대 외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탈북처럼 중국 → 대만으로 망명가는 케이스는 아직 가끔씩 볼 수 있는데, 중국의 민주화 인사, 파룬궁 등 반체제 난민[138]들이 있다. 홍콩중국에 반환되기 이전까지는 같은 이유로 홍콩으로 망명가는 중국인들도 좀 있었다.
베트남이 분단된 시절, 북베트남에서 자유를 찾아 탈북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제네바 협정으로 분단이 확정된 1954년, 북베트남이 한참 토지개혁과 종교탄압을 할때 지주나 종교인들이 남베트남으로 피난왔었다.
키프로스도 2008년 이전까지는 북키프로스에서 남키프로스로 탈북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15. 유명 인물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 고영환 - 북한의 전 외교관. 프랑스어 능통자로 김일성의 프랑스어 통역을 맡기도 했고, 1980년대 내내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국가에서 근무하였다. 자이르 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도중, 기관원들과의 마찰로 반동으로 몰릴 위기에 처하자 1991년 5월 탈북해서 한국에 입국하였다.[139] 최초의 외교관 탈북자로, 구 공산권이 무너지고 소련이 흔들리던 시점이라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정부에서 북한 문제 전문가로 활동해왔다.아무래도 정보기관 소속이라 최초 입국 때의 주목에 비해서 언론 노출은 줄어들었지만 간간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경력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짜배기 북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의 탈북 스토리를 알고 싶다면 본인의 저서인 '평양25시'를 참고하자.
  • 강명도 - 김일성의 10촌 친척으로 강성산 전 정무원 총리의 사위이자, 김정일 유모이던 강보비의 조카. 1994년 탈북하였다. 현재 직함은 경민대학교 효충인성교육원 교수.[140] 북한 내 최고위층 출신이라는 거 하나로 2010년 이후로 보수종편에 단골 출연인사가 된 인물이다.
  • 김길선 -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의 북한 기자, 1997년 탈북.
  • 김련희 - 현재 북송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인물.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 김주성 - 재일교포이면서 동시에 탈북민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재일한국인 3세이며 일본에서 태어나 살다가 16살 때 경상도 출신 조부모를 따라 북한으로 이주했다. 북한에 있을 때 소설가, 배구선수, 대학교 교양체육 강사, 국가과학원[141] 소속 연구원[142] 겸 번역가[143], 가로등 소등 용역[144] 등의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고난의 행군과 일본인 납치자문제로 일본의 대북제재에 따른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2007년과 2008년에 두 번에 걸쳐서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했다.
  • 김현식 - 김형직사범대학 러시아어과 교수 출신으로, 김일성, 김평일, 김정일, 황장엽 등 이름만 대도 알 만한 북한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러시아어 전속 통역을 했던 인물이며, 김평일, 김정일 등에게 직접 러시아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특히 김평일을 비롯한 김경애 계열의 러시아어 공부를 돌보아줬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 실력이 너무 뛰어나 그대로 두는 것이 마땅하다는 김정일의 평을 받을 만큼 북한의 러시아어 최고 권위자였다[145]. 1990년대 초 소련에서 한국어ㆍ조선어 열풍이 불게 되자 많은 러시아인들이 한국과 북한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는데, 김현식은 소련에서 연수를 온 한국어 교수진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많은 소련 교수진이 조선로동당에 김현식 교수를 소련으로 파견해줄 것으로 요청했고, 김정일이 이를 받아들여 모스크바대학 교환교수로 파견되게 되었다. 여기서 한 브로커를 통해 미국에 거주 중이던 흥남 철수 때 헤어진 누나를 만나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서유럽권 대한민국 대사관을 통해 탈북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정보대학원 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예일대학교 교수로 있다.
  • 김혜영 - 대한민국의 배우 겸 가수로 활동했다. 결혼 후 내조를 위해 은퇴하였다.
  • 박상학 -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북한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으나 공개적인 삐라살포와 공금횡령 등으로 수차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 박성진 - 2006년 몽골을 통해 탈북한 소해금 연주가. 남한에서 장윤정 앨범에 참여하는 등 소해금 연주로 유명한 탈북자. 서양 명곡을 편곡해 소해금으로 연주한 음반도 발매되어 있다.
  • 박인숙 - 2006년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탈북. 이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다 재입북하여 김정은 정권 유지수단 밎 탈북자를 막기 위한 선전에 출연 중. 사실 그 전에도 일부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갔는데, 되돌아왔다고 대놓고 광고하는 건 2번째라고. 재입북한 이유는 아들이 평양음악학교 교사였는데 그녀의 탈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소식과[146] 남한 생활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의 인생 역경에 대해서는 기사 참조. 그녀를 아는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남조선 바람이 좋으니 칠십 넘은 노인이 당 간부들보다 살이 찌고 혈색도 좋아져서 온 것에 깜짝 놀라고 있다\'고 한다. 이후 소식이 없다가 2013년 12월 21일에 다른 재입북자인 최계순(2011년 12월 탈북)과 함께 다시 출현하여 남한의 사회가 냉혹하다며 비판했다. 일단 자신은 평양에서 잘 지내고 있다곤 밝혔지만 여생을 마칠 때까지 안전할지는 보장이 없다. 한국의 탈북자들도 이 노인이 재입북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만큼은 동정해주는 편이다.
  • 박진희[147] - 북한 전문 KBS 기자. 탈북자 출신의 최초 방송 기자이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2008년 탈북하였다. 일본에서 회계쪽 일을 하다가 2014년 KBS에 입사하였다.관련기사
  • 북시탈tv - 평양 출신, 함흥 출신의 유튜버. 둘 다 군인 시절 비무장지대를 직접 통과하여 탈북한 이력이 있다.
  • 신동혁 - 북창 수용소 출신 탈북자. 다른 탈북자들과는 달리 아예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탈북에 성공했다고 알려져있으나, 거짓말인게 들통났다.
  • 신중철 - 북한의 고급장교 교육기관인 김일성군사대학 출신이었고 군관계 비밀을 많이 알고 있어 1983년 신중철의 귀순후 북측은 모든 암구어, 경비체계를 바꾸어야 하였다고 한다. 이후 육군소령으로 특별 임관하였으나, 2001년 잘 알고 지내던 여자와 함께 부인과 자신을 한국에 둔 채로 중국으로 떠나 행방이 묘연해졌다.관련기사
  • 안명철 - 정치범 수용소 경비대원이었으나 탈북하여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를 알림.
  • 안찬일 - 탈북자 최초의 박사다.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탈북인총연맹 총재 출신이며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이다.
  • 유태준 - 1998년 11월에 아들과 함께 탈북해 12월 귀순했다. 2000년 2월에는 동생과 어머니도 탈북했는데, 같은 해 6월 유태준은 북한에 남아 있는 아내를 데려오겠다며 재입북했다. 이후 그에 대한 소식이 끊기면서 북한 당국에 체포돼 공개처형됐다는 설이 돌기도 했지만, 2001년 6월 평양방송에서 기자회견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2001년 1월 아내를 만나려다 장모의 신고로 체포돼 3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었는데, 같은 해 11월 감옥에서 탈옥한데 이어 재탈북에 성공했다.[148] 탈북자 중 재입북한 첫 사례이면서 또한 재탈북에 성공한 첫 사례로 재탈북 이후 한국판 빠삐용으로 보도되면서 근성의 대명사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이후 망상장애에 시달리면서 행보는 영 그렇지 못했다. 2004년 7월 김정일을 찬양하며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피켓 시위를 하다가 이를 제지하는 경찰을 폭행하며 입건됐고, 같은 해 10월에는 아들의 양육 문제를 두고 동생과 말다툼하다가 동생을 흉기로 찌르면서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3년과 치료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복역을 마치고 치료감호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망상장애가 계속되면서[149] 2016년 3월부터 나주의 한 정신병원에서 보호 관찰을 받았는데, 2017년 8월 1일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 2달 넘게 그의 행방을 찾지 못해 다시 월북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지만, 10월 중순 인천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 이경희 - 前 리듬체조 선수, 현직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
  • 이애란 - 요리 연구가. 탈북 여성 1호 박사로 유명해졌으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극우활동으로 매스컴에 자주 나오고 있다. 이화여대 대학원 식품영양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이용운씨와 그 가족들 - 1996년 SBS가 탈북의 전과정을 취재보도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 이정열 - 2016년 7월, 18살 나이로 홍콩홍콩과기대에서 열린 제 57회 국제 수학올림피아드(IMO)에 참가했다가 대표팀에서 몰래 빠져나온뒤 홍콩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해 탈북했다. 북한 영재 교육기관인 평양 제1중학교 출신으로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에서 3차례나 은메달을 수상했던 수재지만, 북한의 미래에 한계를 느껴[150]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1년간 재학한 후 2018년 3월부터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해 공부 중이다. 자세한 탈북 내용
  • 이철수 - 1996년 이웅평과 마찬가지로 미그기를 몰고 귀순하여 그해 12월 1일부로 공군 소령으로 특별임관후 공군본부에서 교관으로 지냈으며, 현재 공군 대령으로 지내고 있다.
  • 이철호 - 2008년 노크귀순으로 유명했던 인물. 2015년에 아내를 폭행하고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되어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 이한영 -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로 본명은 리일남이며 남한에 귀순한 후 개명하였다. 1997년 북한의 공작원에게 암살되었다. 어머니인 성혜랑과 동생인 이남옥은 1996년 서방으로 망명하였다. 참고로 이한영이 탈북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김일성의 서자인 김현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린 것. 이한영은 1997년 북한 공작원에게 피살되었으며 한국에서 공작원을 잡는데 실패했다. 현재는 이 공작원을 잡는다고 해도 공소시효가 지나[151] 처벌이 불가능하다.
  • 이현서[152] - "7개 이름을 가진 여자애(The girl with seven names)"(영문판)의 저자로 TED talk 에 출연해서 유명해졌다.
  • 장영진 - 자전소설 '붉은 넥타이'를 낸 작가. 특이하게도 남성 동성애자(=게이)다. 탈북한 이유 역시 자신의 성적 지향과 이를 감추면서 이어온 북한에서의 삶 사이의 괴리를 견디지 못해서였다.#
  • 장정혁 - 격투기 선수
  • 장진성 - 탈북 시인. 시집인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를 발표하여 많은 화제가 되었다.
  • 전철우 - 김책공대 출신으로 1990년에 동독 드레스덴대 유학생으로 있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현장 분위기를 잘 타서 탈북에 성공했다. ㅎㄷㄷ. 탈북 후에 한양대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탈북대학생으로 유명했다. 1990년대에는 코미디, 버라이어티 등 방송에 많이 출연. 중간에 사기를 당하여 정착금을 잃기도 하였으나, 평양냉면으로 시작한 음식점 프랜차이즈 사업에 성공하였다. 현재는 음식점은 접고 인터넷 판매만 하는데, 품질 관리를 잘 해서 맛이 괜찮은 편이라 상당히 잘 된다. #
  • 전혜성 - 2014년 1월 탈북. 대한민국에서 방송인으로 사용한 예명은 임지현. 대한민국에서 방송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으나 2017년 6월 돌연 재입북했다. 사실상 국내에서 탈북자에 대한 이미지를 망친 여성이다. 그런데 전혜성이 애초에 간첩이나 자진월북이 아니라, 그녀의 중국인 남편에게 속아 중국에서 북한 보위부에게 기획 납치를 당하여 강제로 북한으로 끌려간 것이라는 탈북민 지인의 주장도 있다. #
  • 조명철 - 탈북자 최초 국회의원이다. 19대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재북당시 김일성 대학 교원.
  • 최성국 - 탈북자 출신 최초의 웹툰 작가. 북한의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에서 외화벌이 애니메이션 제작 경력을 살려 네이버 웹툰 <로동심문>으로 등단했다. 인터넷방송 배나TV에서 <몰랐수다 북한수다> <최성국의 북한그림판>에서 방송활동을 했었고 특히 탈북자출신 웹툰 작가로서 해외언론에서도 주목하여 UN 총회에도 참석/발표하였다. 최근에는 유튜브의 TNJ TV(The gate of truth and justice)라는 친박계열 채널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 최진이 - 1991년 김형직사범대학 출신으로 1990년대 초~중반 북한 문학계의 신예로 촉망받았으나, 1994년 원자력 전문가와 결혼 후 아들의 사업실패 때문에 청진으로 추방됐고, 가난에 시달리다 1998년 중국을 거쳐 1999년 탈북에 성공했다. 2001년부터 2년 간 이화여대 여성학 석사과정을 밟으며 월간 <어린이세계> 등지에 칼럼 등을 연재했고, 2001년 <북한 어린이들은 어떤 놀이를 할까>, 2006년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 등을 냈다.
  • 태영호[153] - 주 영국 북한대사관 1등공사. 대사관내 모든 직원들의 당생활을 책임지는 당비서를 겸하였으므로, 행정서열보다 당서열을 우선하는 북한식으로 생각하면 대사보다 더 높은 권력자였다. 탈북 후 미래통합당에 입당해 2020년 21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구 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탈북민 최초로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게다가 그 지역은 서울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강남구 갑이다.

16. 탈북자 소재 매체



16.1. 영화



16.2. 드라마



16.3. 예능



16.4. 만화



16.5. 게임


  • 레인보우 식스 시즈 - 화철경(비질)[154]
  • 동무 려권내라우 - 주인공[155]

17. 관련 문서


[1]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뜻.[2] defect는 명사로서 쓰일 때는 '결점'이라는 뜻이 있지만 동사로서 쓰일 때는 (정당, 국가 등을) '버리다, 떠나다'라는 뜻이 있다.[3] 남한 내에서도 터전을 옮긴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왜 굳이 북한 출신들만 '새터' 운운이냐는 것.[4]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다소의 논란이 있는데, 법적으로 북한이탈주민의 요건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꽃제비처럼 북한에 집도 직장도 가족도 없거나(혹은 공민 등록도 안 되어 있거나) 한국 외 다른 국적을 취득한 경우에는 공식적으로는 '북한이탈주민'에서 제외된다. 물론 전자의 경우는 여러 경로로 북한이탈주민임이 확인되면 받아준다.[5] 者의 훈이 '놈'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로 이 때문에 '장애자'->'장애인' 등의 '순화' 사업이 벌어졌다.[6] 이북5도 위원회 기준. 쉽게 말하자면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량강도자강도가 없는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행정구역을 말한다.[7] 누적은 3만 3천여명이지만 사망자, 이민자 등을 제외하면 2020년 현재, 한국에서 거주중인 탈북민은 2만 7천여명정도로 추산된다.[8] 다만 이는 질병으로 인한 일시적인 조치에 가까운 만큼, 코로나19가 종식되면 탈북자 수는 다시 예년처럼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9] 재일교포, 국군포로 같은 경우를 말한다.[10] 한국 국어 교과서에 실렸거나 대중매체에서 다루는 이북 사투리는 평안도나 '~했지비'로 끝나는 함경남도 근방의 사투리가 주를 이루었다. 탈북민이 드물던 90년대 초반 이전 북한말이라면 사람들은 오데로 갔나라는 노래에 나오는 평안도 사투리를 떠올렸고, 이 영향이 지금도 있다.[11] 특히 일부 특권층 가운데 한국의 상황을 알고 눈을 뜬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이라도 탈북시키려는 일도 있다한다.[12] 해외에 파견된 북한지역 출신 노동자들도 기회가 되면 탈북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13] 現 물리천문학부 천문전공[14] 국가정보원을 주축으로 통일부, 경찰 등 주요기관의 대북전문가들이 참여한다.[15] 국가보안법 사범, 내란죄, 외환죄 용의자를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서 부드러울 경우가 높다. 그렇다고 허술한 건 아니다.[16] 특히 태영호 같은 경우 10년 넘게 한국 매체를 접하기도 하여 적응이 빨랐다.[17] 태영호의 '3층 서기실의 비밀'에서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외국어대학 출신 탈북자들이 생각보다 많고 이들 중 상당수가 중산층보다 잘 산다고 언급하였다.[18] 간첩이라도 전향하거나 고급정보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사법거래로 살아날 가능성이 높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국가보안법과 형법에 의거하여 처벌한다.[19] 북한에서 교수는 박사학위를 지도하고 심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자에게 교수학직을 수여한다. 조명철은 북한에서 박사학위는 못받았고, 본인이 준박사학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것조차도 확인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20] 제 3국으로 이민 간 탈북민들은 제 3국의 국적이나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간주된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와 같은 대도시에 위치한 제 3국 외교공관에 들어간 후 해당 국가에 이민간 자들과 홍콩이나 마카오, 중화민국으로 간 자들이 그 예시이다.[21] 탈북민은 자신을 대한민국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과반수며, 스스로를 북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도 한국에 크게 적대적이지는 않다. 북한은 한국과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그 주민을 별개로 취급하여 탈북 후에도 북한 정권의 만행을 미워할망정 이 논리에 익숙하며, 어쨌든 복지 제도나 기술이나 경제 등이 발전한 모습을 찾기 쉽기 때문이다.[22] 그래서 북한지역 내 학력은 국내학력과 동등하게 취급된다.[23] 약칭 북한이탈주민법[24] 1993년 탈북했다.# 조부가 조만식의 조선민주당에서 활동했으며 6.25 전쟁때 한국군 측에 섰기 때문에 북한에서 치안대 가족으로 많은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개성공단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이다.#[25] 지성호 당선인은 꽃제비 출신이며, 사고로 한 손과 한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다. 즉 북한에서 엘리트와는 거리가 한참 먼 계층이지만 남한에서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26] 정확히 말하면 관대했다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27] 탈북자 사살은 공포정치를 위한 초석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직접 죽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단순히 위협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며, 하물며 생존 요건이 부족한 탈북자는 죽이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28] 물론 중국에 북한을 넘긴다는 시나리오도 있긴 하나 별로 현실성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 근처에는 미국의 제7함대가 주둔하고 있기도 하고..물론 사실 북중병합이 이루어진다는 건 사실상 미국의 영향력이 동아시아에서 거의 소멸했다는 걸 뜻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누구보다도 당사자인 대한민국이 반대하고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연합이나 유럽NATO회원국들과 같은 친서방 국가들인도반중 감정을 가진 국가들이 반대한다. 미국입장에서는 경쟁자가 김정은과 같은 북한정권을 비호하는 것도 모자라서 한반도를 탐내는 것이니 당연히 반대한다. 그리고 한국일본 중 한 곳을 포기한다는 것은 미국에게 있어서 초강대국의 지위를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29] 정치범수용소는 자살도 못하게 철저히 감시하며 지옥과 같은 고통을 주는 진짜 생지옥이고 사형은 뭐... 어찌보면 정치범수용소보다는 오히려 나을수도 있겠으나 이 조차도 중간에 폭력과 고문이 따르는 등 과정이 곱지 않다.[30] 이것은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혈통에 상관없이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모든 이들에게 미국 국적을 부여한다.(속지주의) 원정출산은 이런 미국 국내법을 노린 것.[31] 탈북민들의 고향이 중국에 인접한 함경도 북부 지역이 많아 차이나모바일, 차이나텔레콤, 차이나유니콤과 같은 중국 대륙의 통신 서비스를 통해 본국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를 하며, 이들도 탈북한다. 통일 이후 인프라, 재정 및 경제 관련 사안에 대해 이들이 고향인 함경북도함경남도를 대변할 가능성이 높다. 평안도와 함경도의 지역감정이 강한 상황을 조율해야되는 대한민국 정부에 큰 영향력을 끼친다.[32] 실제로 BBC에서도 탈북민들의 성노예에 대해 다루었다.[33] 애당초 이쪽은 체류가 합법[34] 단 해당 국가들의 여권을 위조하는 것은 어렵고 전자여권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발각될 위험이 크다. 그런데 탈북민에게서 태어난 한중혼혈인 자녀에게는 중국 여권으로 출국이 가능하지만 중국 대륙인인 부모 중 한 명이 허락할 리가 만무하고 발급관청인 공안에서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일단 공항이나 항구에서 통과한다면 중국국제항공, 중국동방항공, 중국남방항공, 중국해남항공, 상하이항공, 톈진항공, 샤먼항공, 길상항공, 쓰촨항공, 선전항공, 오케이 항공, 춘추항공과 같은 중국대륙 국적의 항공사의 항공기나 해운사의 선박을 탑승한다고 할 지라도 한국에 오는 것은 100% 성공했다고 봐야한다. 왜냐하면 한국행일 경우 출입국관리청, 관세청, 경찰청, 각 시·도 경찰의 관할권에 있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35] 국가정보원 조사 이후 공작원이 아니라고 확실히 판명되는 경우에는 한국 여권이든, 외국 여권이든 웬만해서는 처벌을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 통일부 유튜브에도 이러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온다. 그 영상에서는 중국 대륙인과의 혼혈인 경우에 중국대륙 여권이 나오는 경우에도 부모 중 한 명이 한국 국적자인 탈북민들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이 부여된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 내 어디서든 정주할 권리가 있다.[36] 버락 오바마미국 대통령이 재임시에 직접 조언을 요청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북한 전문가다.[37] 이 사람은 할머니가 일본인이었고 할아버지가 재일 조선인으로 함경북도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운동을 잘 했지만 일본계 한국인이란 혈통 때문에 차별을 받았고 19세 때 탈북하여 일본으로 갔고 현재는 일본인으로 귀화했다.[38] 홍콩과기대에서 개최되었던 시험으로, 많은 한국 학생들이 북한 학생들을 목격하였고, 북한 학생을 못 찾았다는 말에 '탈북이냐 ㅋㅋㅋ' 하고 웃다가 이 사실이 알려지고 꽤 놀라워했다. 보복성 납치라도 있을까봐 걱정했다고[39] 학교를 빠져나와서 주거비가 가장 싼 곳에 며칠 있다가 바로 한국 대사관으로 갔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 때문에 센트럴 근처를 지나던 보통 사람들/한국인들이 불시에 경찰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40] 애초에 러시아치안이 열악한데다 외교관 조차도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영토가 넓기 때문에 경찰이 단속하기 어렵다. 게다가 중국과 달리 도로가 열악하다.[41] 말이 소국이지 남아공이나 이집트보다 경제규모(2019년 기준)가 크고, 말레이시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말레이시아의 인구가 약 3277만 2100명이고, 싱가포르의 인구는 고작 약 563만 2100명이다. 이전에는 말레이시아보다 경제규모가 더 컸다. 즉 중공이 함부로 건들 수 없는 강소국이다. 게다가 싱가포르에는 미군기지영국군 기지가 있다.[42] 이 친중성향은 엄밀히 중화민국, 홍콩, 마카오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을 의미한다. 애초에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푸젠성, 광동성, 하이난 성, 타이완 성 출신들이 대부분이지만 반중감정이 높고, 친미, 친영과 같은 친서방 성향이 강하다. 다른 말레이계, 인도계영국계 출신의 싱가포르인들이나 거주자들은 이러한 친중감정조차 없다. 그리고 애초에 싱가포르에는 미군영국군의 기지가 있고,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와 방위보장조약을 체결하였고, 영국, 호주, 뉴질랜드, 중화민국, 홍콩과 같은 친서방 세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이다.[43] 2016년 무비자협정을 일방 파기하고 북한인 입국을 정식 금지했다.[44] 제 아무리 말레이시아 이민국이 폐쇄적이고, 말레이시아외교정책제노포비아 논란이 있지만 말레이시아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반중감정이 심한 것도 있지만[45] 타이완 섬중공 입장에서는 자기 영토로 보기 때문에 경유하지 못한다.[46] 생일 케이크를 먹는 문화가 한국에서 수입된다든가, 한국 남편이 아내에게 잘 대해준다는 소문이 도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47] 가설 중 한가지다. 이외에도 남북이 서로를 정확히 알 기회가 적다보니 서로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시각이 있다.[48] 이런 식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 이미 반박 자료가 많아 진실을 깨닫기 쉽다. 다만 북한군의 정신력이 뛰어나다는 등의 생각은 버리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타우러스 미사일, 아파치 헬기 같은 국군의 강력한 무기나 전쟁 시 잃을 것이 극심한 국군의 심리 등은 북한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알아도 고집을 피운다기 보단, 북한군은 잘 알아도 국군에 대해 모르니 저런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49] 남북하나재단 조사. 2014년에 조사했을 때는 25.3%였다. [50] 이것을 경제관념이 뒤떨어진다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북한 자체도 생존이 쉬운 곳이 아니라, 이곳의 주민들은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을 터득했다. 생존을 위협하는 정치적 탄압이 심하다보니 이를 피하는 기법을 체득하고 사는 대신, 자유로울 경우 돈을 버는 제도에 익숙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즉 경제관념이 틀린 것이 아닌,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수탈을 피해 은행을 믿지 않는 것이 한 예이다. 그런데 그것이 남한에서 쓸모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가 된다.[51] 잘 사는 사람은 해외 시장 진출을 노리는 사장이 되기도 하는 등, 남한식 시장경제에 대한 적응도는 개인 차가 존재한다. 오래 살수록 나은 편이다. 북한 자체에서도 시장화가 진행중이라 탈북 시기에 따라 초창기의 적응도가 다른 경우도 있다. 여기에 한국의 차별로 경력을 쌓지 못하는 것이 다시 경제관념을 뒤떨어지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52] 이것은 한국 문물을 많이 접한 사람의 경우에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다만 한국 문물을 제대로 접하지 못해 성관념이 뒤떨어진 경우나 간혹 선천적 성격 상 문제가 있는 경우 문제가 되기도 한다.[53] 2010년대 이후에 몇몇 탈북한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일반적인 남한 사람들은 북한이 생각보다는 잘 산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아예 안 믿으려는 경우가 있다. 특히 2018~2019년에 탈북한 경우 고리대나 주택담보대출, 사교육, 결혼식당(예식장) 같은 것을 언급하여 일반적인 북한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90년대 중후반 기근기인 고난의 행군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고, 북한이 잘 산다는 주장을 경제 활동을 방해하는 정부에 맞서 주민들이 대처를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북한 정권의 만행을 옹호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 입장에서는 이런 것도 싫어한다. 이런 이야기는 자신이 말하는 사회주의에 반하는 것인데, 이를 주민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54] 이런 점 때문에 탈북자의 보수 성향이 보수 정치 세력이 탈북자를 체제 승리의 산물로 여겨, 진보보다 우대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보수 정당에서는 탈북자에게 정치적 발언을 보장해주는 등 의도는 몰라도 혜택은 주었다는 것이다.[55] 실제로 구글을 이끌었던 엔지니어 에릭 슈밋의 딸이 방북 후 북한을 두고 이 영화에 비유했다.[56] 회사에서 상사에게 충성하는 척 하거나, 군대에서 병사가 제설이나 웃음벨 같은 정책을 보고 좋다고 발언하는 경우와 비슷하다.[57] 이는 남쪽도 별다르지 않다. 이승만의 비리와 학살, 박정희의 자유 탄압과 영구집권기도, 전두환의 학살, 이명박의 국가적 사기,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친위쿠데타 기도 등의 사실을 듣고도 해방 직후부터 행해진 친일 잔당들의 반공교육, 무지 때문에 전혀 믿지 않고 오로지 반공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이 존재한다. 반대로 진보 쪽에서 보수는 통일을 이유없이 반대한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멸공통일' 같은 것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 7.4 남북 공동 성명이 박정희 시대에 있던 일이고, 북한 인권은 식량 분야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보수 쪽에서 행동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58]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자료인데, 이 기관이 이러한 탈북자를 대상으로 조사하기 때문이다.[59] 경제가 여유롭지 못했던 시절의 한국과 양상이 비슷하다. 한국은 부유해지자 부모가 자녀교육에 많은 투자가 가능해진 것이다.[60] 이 논문에는 비슷한 응답이 여러 개 나온다. “나는 남한사회에서 고유하게 발전된 생활양식을 받아들이겠다”는 의견에 80%가 동의하였고(‘매우 동의’ 44.1%, ‘다소 동의’ 35.8%), 동의하지 않은 응답자는 2.4%이었다. 또한 자녀들에게 남한의 문화를 받아들이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87.3%(매우동의: 65.6% + 다소 동의: 21.7%)가 동의하였고, 2.3%만이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남한사회에 대한 지식들을 즐거운 기분으로 배우려고 한다”는 의견에 85.6%가 동의하였고(매우동의: 55.2% + 다소 동의: 30.4%), 0.3% 의 응답자만이 동의하지 않았다. #[61] 가해자가 주로 탈북자로 잡힌 조사도 있으나, 일반 한국인을 시작으로 탈북자끼리 사기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이에 가담하다 가해자로 잡힌 경우가 있다고 한다. # 2019년엔 대놓고 탈북자 대상 폰지 사기를 친 경우도 있다. #[62] 인민을 언급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는 항목을 참고하라.다만 대한민국 정부수립 당시 일부 인사는 국민 대신 인민이란 말을 지지하기도 했다.[63] 개성 쪽은 그나마 표준어와 발음이나 억양은 비슷하다. 다만 문화어 어휘를 쓰면 이상한 취급을 받을 수 있다.[64] 북한에서 존재하는 동요계층, 적대계층 등을 말한다.[65] 일본이든 미국이든, 정치와 문화는 구분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66] 여담으로 일부 탈북자들은(특히 일반주민 출신) 김일성에 대해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이유가 '''김일성 시절 때는 북한이 잘 살고 굶어 죽지 않아서'''라고 한다. 이는 북한주민들의 생각하고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일부는 김일성은 나쁘지 않게 보지만 김정일이나 김정은에 대해선 좋은거 하나 없이 나쁘게 본다.[67] 문재인 정부도 그녀의 북한 송환 요구를 받아주지 못하고 있다.[68] 요덕 스토리 제작자로, 2013년 기준으로 땡큐 코리아 모노콘서트를 관공서, 군부대를 돌며 순회공연하고 있다.[69] 이 주장은 의외로 탈북자 사이의 지지가 높다. 저런 경협의 혜택이 북한 정권에게 간다고 믿어서 반대하는 것이다.[70] 사실 이것은 분야와 진영과 상관없이 자주 발생하는 문제이다.[71] 이것이 평안도처럼 안 그런 지역이 있다는 증언이 있다. 80년대 북한 문헌을 인용한 1991년의 논문에서는 북한 표준인 문화어의 규범에도 '말법을 바꾸는 수법'이라고 하는 '갔다 오너라'를 '갔다 오겠니'라고 하는 등의 예절이 있다고 언급한다. # 김길선 기자는 평안도 사람은 불만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 함경도 출신 배우 김아라 씨는 평양 사람이 내숭을 떤다는 말을 들었다고도 했다.[72] 기능적으로 국가처럼 운영된다는 뜻에서 이렇게 썼다.[73] 북한 체제 선전의 대표로 알려진 현송월이 KTX를 타고 놀라는 장면이 보도된 적이 있으며, 외교관 출신 탈북자 태영호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2~3인자도 외부 정보를 볼 기회가 차단된다고 주장했다.[74] 여행증 제도 같은 예가 있다.[75] 역으로 탈북자 중 고령층은 이를 잘 모르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박근혜 탄핵을 남침 등을 막을 '대안'이 없어서 반대한다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탄핵을 하면 국정 운영을 어떻게 할 지가 이미 법으로 정해져 있으며, 이는 사법부의 독립으로 그 위반을 통제하여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 것이다. #[76] 80년대 이전에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개인의 해외 여행이나 무역이 금지였다.[77]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의 사회보장 시스템이 붕괴되고 치안도 급속히 나빠지면서 일부 지역(평양, 개성)을 제외하면 말 그대로 헬게이트가 된지라 남한에 와서도 칼을 휴대하는 탈북자가 많다. 당연히 툭하면 칼부림 난다(...) '''물론 한국에서 칼을 휴대할 필요는 없다.'''[78] 2011년경 기준, 탈북민이 모여사는 곳의 한 지구대에서는 일반 주민에 비해 112신고가 오히려 적다는 언급을 하였다. # 다만 구체적인 범죄율 통계는 구하기가 어렵다.[79] 이 시기 북한은 풍족하진 않더라도 모든 주민들에게 의식주, 교육, 보건의료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면서 최소한 제3세계에선 괜찮은 수준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대한민국보다는 십수년 뒤쳐진 수준이었지만.[80] 2000년대 이후론 북한에서도 귀찮은지, 월북자들은 다시 남한으로 송환해버린다. 심지어 두만강을 건너서 넘어간 월북자한테 북한 보위부 간부가 차비하라면서 100달러 줘서 다시 중국으로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81] 한 해에만 집중적으로 탈북자가 들어왔다면 이렇게 비교해도 된다. 98년부터 2007년 1월까지의 탈북자와 한 해의 탈북자의 수가 거의 같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가장 많은 2006년에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가 2026명이고 2002년 이후 일관되게 1000명 이상이 입국하여 이 가정을 할 수 없다. 집중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연도가 있었다면 다른 연도에는 적었어야 범죄 발생 건수가 통계와 일치한다.[82] 2010년대 들어 북한 당국의 단속의지는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을 보편적인 상식에 비추어봐도 심각해서 잡는 것을 모른다는 말도 있다.[83] 상당히 수준이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일가가 정권 유지를 위해 자신을 위한 계층의 일탈은 무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84] 15년 유기형이었다고 전해진다. 형법에 규정된 최고형보다 형량이 높았다고 한다.[85] 한국에서 성희롱이 법제화된 것이 1999년이다. 정보 유입이 어려운 북한에서 성추행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이론 상 가능할 것이다. 보고서에서도 도시 지역, 국경 지역으로 갈수록 외부 정보를 접하기 쉬워 성관념이 농어촌보다는 선진적이라고 한다.[86] 1990년대 후반 매년 탈북자의 규모가 100여명에 불과했으나, 2000년대 초반 이후 매년 1000여명을 넘어서고 있는 수준[87] 담당 부처는 통일부, 교육부가 있으며 실무 기관으로는 남북하나재단과 한국교육개발원에 탈북 청소년 교육지원센터가 존재한다.[88] 현실적이지 않고,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듯한 이중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태도는 이러하다.[89] 정치적 견해에 따라 갈리는 문제다. 북한과 같은 민족으로 묶이는 것에 혐오감마저 느끼는 사람도 있고, 같은 민족이라 잘 대해줘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 건 사실이다.[90] 실제로 탈북자 중에는 북한에서 수학교사로 일하다가 남한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학원 강사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실제로 수학 과목의 경우에는 북한의 초등학교 수학이 한국의 초등학교 수학보다 더 높은 수준까지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91] 그런데 북한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니 니네 나라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다.[92] 박인숙과 같은 대부분의 재입북 사례가 이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93] 이 사실이 현재는 북한 내의 탈북 고려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어, 탈북 시 학력 증빙 서류를 철저히 챙겨서 탈북을 한다고 한다. 실제로 주성하도 김일성종합대학의 졸업장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자가 될 수 있었다.[94] 국정원 DB에는 북한의 소학교 단위까지 상세한 정보가 있다.[95] 다만 아직까지 실제 사례는 없다.[96] 탈북 후 한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캐나다로 가는 경우는 제외하고, 대부분 한국으로 왔다가 적응 실패로 캐나다로 가서 탈북을 사유로 난민 신청을 한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은 전원 취소 예정이다. 쟁점은 탈북 후 한국을 거쳤는지 여부인데, 캐나다대한민국을 난민 발생 가능성이 없는 안전국가로 분류한터라, 해당 국적 보유자의 난민 신청은 절대로 받아주지 않는다. 북한 국적 보유시에는 통과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심사는 거칠 수 있는 것이 차이점. 탈북 후 대한민국을 거쳤다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게 된 것으로 보고, 난민 신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캐나다의 입장인데, 문제는 이 취소된 탈북자들 99%가 탈북 후 남한을 거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허위사실로 자격을 얻었기에 전원 취소 후 강제 추방. 물론 북한이 아닌 한국으로의 추방이다.[97] 오죽하면 유럽호주나 여러 나라에선 한국인이거나 탈북자라면 역사 시험 및 지리 및 사회 문제로 입국 검사까지 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들이 가짜로 들어오는 게 많기 때문이다. 적발된 중국인들은 "유럽이 근대에 중국을 털어먹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주장했지만, 그게 먹힐 리 없으니. 물론 유럽 나라들은 적발된 중국인들에게 정착연금으로 써먹은 돈을 다 토해내게 만든 다음 강제추방했다. 돈 없다고 하면 교도소로 보내 일하게 만들었다. 중국은 이에 대하여 입을 다물었다.[98] 중국 본토, 러시아, 벨라루스,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쿠바, 시리아, 팔레스타인, 베네수엘라[99] 그러나 중국 본토 중 중화인민공화국만 해당하고, 별개의 국가 취급을 받는 중화민국(대만)은 상관없다.[100] 중국령인 홍콩, 마카오도 조심하는것이 좋다.[101] 물론 공안은 토종 남한인임을 확인해 넘어갔고 위기에 처한 탈북자들도 어찌어찌해서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탈북에 성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상태다.[102] 경제가 성장했느니 뭐니 하지만 중국은 엄연히 공산주의 국가다. 자국민조차 인권 개념이 없다시피 한 곳이 중국이다.[103] 중국국제항공, 중국동방항공, 중국남방항공, 중국해남항공, 샤먼항공, 쓰촨항공, 톈진항공, 선전항공, 상하이항공, 길상항공, 춘추항공, 오케이 항공, 산동항공.[104] 특히 최대 적국인 한국으로까지 갔던 탈북자라 아예 배반자 취급되어 무조건 완전통제구역 확정.[105] 물론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를 중국 공안당국이 쉽게 북송시키지는 못한다. 실제로 북송시키면 그 즉시 대한민국과 중국 사이의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전술했듯이 공안이 대한민국 국적자인 탈북자를 실제로 북송시킨 사례가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중국은 북한 보위부원들이 중국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막지 않기 때문에, 이 놈들한테 직접 잡히는 경우에는 뒷일을 장담할 수 없다.[106] 특히 미국이나 캐나다 너머 중남미까지 간다면 서울에서도 미국 경유 표가 제일 싸게 풀리고 부산에서도 도쿄, 오사카 및 미국이나 캐나다 경유가 아니면 항공료가 비싸게 나오는 경향이 많다. 물론 저 표값에 미국 비자 비용 14$는 제외지만 그걸 더하고도 유럽 경유보다 싸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107] 미국, 캐나다행은 북극항로를 타도 중국 대륙영공을 통과하지 않는다. 그러니 중국 대륙영공 폐쇄는 의미가 없다.[108] 북미브라질아르헨티나를 제외한 중남미 대륙 전체[109] 미국 입국 또는 경유 시 ESTA가 필요하다.[G] A B C D 서울(김포)에서 출발할 경우[P] A B 부산(김해)에서 출발할 경우[T] A B C D 도쿄(하네다)와 달리 쑹산 국제공항은 장거리 미주 노선이 없다.[110] 호주뉴질랜드[111] 브라질, 아르헨티나행은 이용 불가.[B] A B 중동 국적기를 탑승할 때에는 이코노미보단 비즈니스 발권을 추천한다. 비행시간이 매우 길어지기 때문에 이코노미 클래스로 탑승하면 매우 힘들며, 서비스, 좌석도 국적기 비즈니스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항공권 가격도 170~180만원 사이에 형성되어 있고 스카이패스 또는 아시아나클럽에 마일리지 적립도 가능하며 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마일리지도 많이 쌓인다. 단, 북니코시아를 경유하는 항공편은 추천하지 않는다.[112] 단, CA907/908편의 마드리드 ~ 상파울루 구간 같은, 친북국가에 입성하지 않는 이원구간만 이동할 경우 이용해도 상관없다.[113] 심지어 솅겐 조약 가입국이 아닌 유럽연합 회원국인 아일랜드영국, 터키라도 적용된다.[114] 핀에어부산착발 직항노선의 취항이 성공하면 타 유럽의 국적사들인 KLM 네덜란드 항공, 터키항공, 에어 프랑스, 영국항공, 알리탈리아, 루프트한자가 직항노선을 개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해신공항이 개항된다면 그러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당연히 국적기인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부산제 2 허브공항으로 지정하거나 유럽착발 직항노선을 개설할 가능성이 높다.[115] 서울 뿐 아니라 2021년 3월부터는 부산에도 들어올 예정이다.[116] 미국 FBI에 해당하며 한국에 신설 예정인 국가수사본부와도 같다.[117] 한국의 경찰청에 해당한다.[118] 말로는 중립국을 표방하고 있지만 미국 해군, 미국 공군주둔하고 있고, 영국군도 같이 주둔하고 있어 미국, 영국의 동맹국이나 마찬가지다.[119] 만일 탈북민이 중국 본토에서 제3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한국에 왔다면 100퍼센트 가짜 탈북민이다.[120] 이 중 시리아는 어차피 내전으로 인해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된 상태라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이상 갈 수 없는 국가다.[121] 소총이나 총알에 딱히 가치가 있는 건 아니고, 지원금을 조금이라도 더 얹어주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122] 이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북한지역이 지옥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고, 대한민국선진국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공작원들은 오해와 다르게 엘리트에 속하는 편이다.[123] 이웅평 소령이 대표적 사례. 물론 이건 진짜 탈북이긴 하지만.[124] 한 탈북자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살던 지역의 100여개에 달하는 건물을 대부분 맞추고 나서야 '탈북자 맞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실제 살던 사람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니지만, 조선족에게는 엄청나게 어려운 관문이다.[125] 한국의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사투리가 다 다르듯이, 북한 역시 평안도/함경도/황해도의 사투리가 다 다르다. 그리고, 사투리라는 건 연습한다고 쉽게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쉽게 발각된다.[126] 간혹 아버지는 북한 사람이고, 어머니는 중국인이었는데 아버지를 따라 북한 국적을 받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는 드물게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었으나 자신의 정체성은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기에 북한 국적으로 귀화한 정수일과 같은 사례도 있다.[127] 중국은 조상 중에 중국인이 있거나,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특별한 경우에만 외국인의 귀화를 허용한다. 조선 교포와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중국 국적을 가질 수 있다.[128] 중국 국적자도 아니고, 한국에서 북한을 국가 또는 합법적 정부로 인정하는 것도 아니어서 한국에 북한 대사관이 없으니 무국적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129] 한국 화교들은 대만 국적이지만, 북한 화교들은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이다. 중국 국적 & 대만 국적을 유지하는 해외 이민자를 화교라고 부른다. 만약 타국 국적으로 귀화했다면 그때부터는 화교가 아닌 '화인'이다.[130] 김정일은 심각한 비행공포증이 있어서, 비행기 대신 기차를 자주 애용했다. 그래서 이런 억울한 피해자(...)들이 종종 발생했던 거다. [131] 간첩이 침투하다가 사고로 죽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고사한 간첩의 시신이 발견된 사례들이 있다.[132] '자유를 찾아 온 투사'라고 칭찬하곤 했다.[133] 탈북자의 한국행이 발각되지 않아 가족이 수용소 행 등 크게 처벌받지 않은 경우이다. 북한에서 생계를 위한 중국으로의 탈북은 한국으로의 탈북보다 처벌수위가 훨씬 약하다. 북한의 국경 경비대도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뇌물을 뜯으려고 잡으러 다닐 정도. 물론 재수없이 단속강화기간에 걸리면 짤없다.[134] 다만 재일교포에 대한 북한에서의 대접이 나쁘고 혈연적으로도 거의 단절되어 가는데다 조총련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후지산 줄기'는 여러모로 전망이 좋지 않다.[135] 제5조(자진지원·금품수수), 제8조(회합·통신등) [136] 동독에서는 여타 공산권 국가들처럼 자국을 부를 때 공화국이라 불렀다. 이는 현재 북한도 마찬가지.[137] 대만 인구의 1%를 넘으며 대만 원주민보다도 숫자가 많다.(...)[138] 중국 민주화 인사나 파룬궁은 대한민국에도 꽤 많은 수가 난민법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되어 들어와 살고 있다.[139] 태영호와 달리 단신으로 망명했다. 도저히 가족을 챙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 이 때문에 본인도 매우 괴로웠는지 군인들이 "어머니!" 하고 외치는 걸 보면 눈물만 하염없이 흘린다고 한다.[140] 효충인성교육원은 다른 학교의 평생교육원/산업교육원 정도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정식교수라고 보긴 힘들다.[141] 북한에 있는 국립 과학 연구소.[142] 여담으로 이때 당시에 연구소 컴퓨터실을 불법으로 개조해서 PC방 사장 노릇도 했다고 한다(...).[143] 주로 학술서적을 번역했다고.[144] 북한은 가로등을 자동적으로 껐다켰다 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수동으로 일일이 끄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남한 사람들이 보기엔 이런 황당무계한 직업도 있다(...).[145] 저서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을 보면, 자신의 출신 성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의 배려로 김형직사범대학의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어 통역을 잘 했다고 김정일이 직접 선물을 보내줄 정도였다고 한다. 해당 도서에는 김정일종합대학 설립 계획 등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있으니 참고.[146] 북한 측에서 "당장 안 돌아오면 당신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는 소문이 있다.[147] 배우 박진희와는 동명이인이다.[148] 다만 그의 증언에 따르면 수용소에 수감됐다가 탈출했다는데, 수용소 감시가 상당히 철저하다는 걸 감안하면 수용소 탈출만으로도 기적과 같은 일인지라 그의 재탈북 경위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유태준은 이에 대해 처음 수감됐을 때는 고문을 엄청 받았지만 이후 두 차례 기자회견을 하면서 감시가 소홀해졌다고 주장했다.[149] 유태준이 도주하기 전인 2017년 7월에 주권방송에서 인터뷰를 했었는데, 자신은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국정원이 이를 지속적으로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감옥에 수감된 것도 국정원 때문이라며, 살인미수를 저질렀던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도 않았다.[150] 공부를 아무리 잘 해봤자 결국 핵이나 만드는데 끌려갈것이라고..[151]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2007년 개정 이전까지 15년이었고 1997년에 사건이 벌어졌으니 2012년 기준으로 공작원이 잡히지 않았다면 나중에 잡아들인다고 해도 이제는 이한영 살인 혐의로는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152] 해당 링크 하고는 동명이인이다.[153] 탈북 후 사용한 주민등록상 이름은 ‘태구민’이었으나, 본명인 태영호로 개명했다.[154] 북한이탈주민 출신으로 추정되는 제707특수임무대대원. 어린시절의 탈북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탓인지 상당히 어둡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 되었다.[155]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탈북 엔딩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