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린 그리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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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카롤린 루이즈 마르그리트 그리말디
(Caroline Louise Marguerite Grimaldi)
'''출생'''
1957년 1월 23일 (67세)
모나코 모나코 대공궁
'''배우자'''
필리프 주노 (1978년 결혼 / 1980년 이혼)
스테파노 카시라기 (1983년 결혼 / 1990년 사망)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999년 결혼)
'''자녀'''
안드레아, 샤를로트, 피에르, 알렉산드라
'''아버지'''
레니에 3세
'''어머니'''
그레이스 켈리
'''형제'''
알베르 2세, 스테파니
1. 소개
2. 생애
2.1. 3번의 결혼과 2번의 이혼


1. 소개


카롤린 공녀는 모나코의 레니에 3세와 그레이스 켈리의 1남 2녀중 맏딸이며, 본명은 카롤린 루이즈 마르그리트 그리말디(Caroline Louise Marguerite Grimaldi)이다.
현재 모나코의 공작인 알베르 2세의 큰누나이자 모나코의 공위 계승 순위 3위다. 더불어 하노버의 명목상 왕비이기도 하다.

2. 생애



2.1. 3번의 결혼과 2번의 이혼


어머니인 그레이스 켈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살 때 17살 연상인 필리프 주노와 기어이 결혼했지만 어머니의 염려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주노가 바람을 피우자 카롤린 공녀 역시 맞바람을 피우다 결국 이혼에 이르렀다.
그 후에 이탈리아 석유 재벌가의 막내아들인 3살 연하남 스테파노 카시라기와 속도위반으로 두 번째 결혼을 하여 2남 1녀를 낳았다.[1] 자녀들을 키우며 카시라기와 행복하게 잘 살았으나[2] 불행히도 카시라기가 요트 사고로 사망해 사별했다.
그 이후에 육아에 전념하며 조용히 사는 듯했으나 3살 연상의 '''친구 남편'''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3]빼앗아 세번째로 또 '''속도위반'''으로 결혼했다. 1999년에 불혹을 넘겨 넷째 자녀인 알렉산드라를 낳고 겉으로나마 평화로운 결혼생활을 하는 듯 했으나, 아우구스트는 폭행 관련으로 구설수에 자주 올랐으며## 2009년 6월부터 지금까지 별거중이다. 사실상 이혼 상태라 봐도 무방할 정도. 게다가 아우구스트는 폭행도 모자라 태국 푸껫 해변에서 젊은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 기사 스크랩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나코 공국보다 없어진 왕실인 하노버 집안의 격이 더 높아서(...)[4]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의 결혼으로 유럽 대륙 정식 왕족 반열로 대우받고 있다. 그래서 인지 카롤린 공녀로선 굳이 이혼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참고로 기존에는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를 하노버 공작이라고 지칭하고 있었으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하노버 공작이 아니다. 하노버의 국왕이다.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 가문처럼 왕정이 폐지된 이후 바이에른 공작을 칭하는 가문도 있지만 하노버 왕가나 호엔촐레른 왕가는 Prinz를 칭한다. 실제로 구글 등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를 검색하면 Ernst August '''Prinz von Hannover''', Herzog zu Braunschweig und Lüneburg, Königlicher Prinz von Großbritannien und Irland이라고 나오는데 '''Prinz''' von Hannover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노버의 '''왕자'''라고 하고 있다. 즉, 공작이 아니라 왕자 혹은 왕손인 셈.[5] 애초에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 즉, 하노버 공국이자 선제후국은 하노버 왕국으로 승격한 것이기에 하노버 공작위는 없어진 것이다. 물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겐 독일 제국의 멸망 전까지 남아있던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공작위가 남아있기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공작이라고 칭할 수도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서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하노버) 공작이 아니다.
[1] 안드레아(1984년생), 샤를로트(1986년생), 피에르(1987년생)이다. 알베르 2세가 미혼일 땐 안드레아가 공위계승권에 가까웠고 한때 외모도 출중해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샤를로트 역시 아름다운 외모에 뛰어난 패션감각을 지녀서 예전부터 인기 많은 셀렙이었으며, 할머니 그레이스 켈리의 재림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2] 실제로 카시라기는 카롤린 공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자였으며, 이 당시 카롤린 공녀의 모습을 보면 정말 행복하고 안정된 모습이었다.[3] 명목상의 하노버 국왕 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자 6대 컴벌랜드와 테비오트데일의 공작(1799)이다. 참고로 후자는 1918년의 작위몰수법으로 몰수되었다.[4] 하노버의 왕족들은 Royal Highness를 존칭으로 사용하는데 모나코의 공족들은 Royal Highness보다 격이 낮은 Serene Highness를 존칭으로 사용한다.[5] 현재 하노버 왕국은 멸망된 상태이기에 하노버의 국왕은 없다. 따라서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하노버의 왕손이 맞지만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왕위요구자이기에 하노버 국왕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