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헤스콕
1. 개요
'''Carlos Norman Hathcock II'''(1942년 5월 20일 ~ 1999년 2월 22일)
미국 해병대 미군 군사경찰 부사관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한 미 해병대의 전설적인 저격수다. 베트남전 당시에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1] 미 해병대 최고의 저격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기록은 금방 경신되었다.[2] 그러나, 그가 먼저 유명세를 탔고, 그가 수행한 임무의 중요도나 난이도가 높았기 때문에 미 해병대의 전설로 남았다. 또한, 1967년 당시 그가 세운 2,286m 저격은 2004년 이라크전 당시 미 육군 제75레인저 연대 2대대 저격수, 브레인 크레머(Brian Kremer) 육군 병장(SGT)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세계 최고기록으로 남아 있었다.[3] (2019년 현재는 기록이 계속 경신되어 거리기준 세계 7위 참고)
저격술에서 가장 어렵다고 하는 역저격(hunter-killer)[4] 에 누구보다도 뛰어나 '''공식기록인 93명의 반 가까이를 적 저격수 사살로 채웠다'''[5] 는 놀라운 기록의 소유자다.
2. 생애
미국 아칸소 주 리틀록에서 태어난 헤스콕은 생계를 위해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22구경 소총으로 사냥을 하며 사격술을 익혔다. 어려서부터 해병이 되기를 꿈꿨던 그는 1959년 만 17세의 나이로 해병대에 지원 입대했고 1962년에는 결혼을 했다. 어려서부터 생계형 사냥꾼이었던 그는 곧 해병대 사격대회의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1966년 '''미군 군사경찰'''로 베트남에 파병되었는데, 사격 챔피언이었던 그는 미 해병대 제1해병사단 직할 저격소대 저격수로 차출되어 나중에는 저격소대장직을 맡았다.
2.1.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 중 그의 공식 사살전과는 93명으로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저격수 중 4위에 해당한다. 미국 사살판정기준이 별도의 장교가 사살을 직접 확인해야지만 인정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실제 사살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아, 총 전과는 300명을 넘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물론, 다른 저격수들도 공식기록보다 비공식 기록이 휠씬 더 높다) 알려진 활약상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 3박 4일에 걸쳐 엄중한 경계하에 있는 월맹군 작전기지에 침투해 장군을 암살했다. 이때 1500m를 포복전진만으로 이동해 돌파하였으며 적의 사령부에서 635m 밖까지 접근해 기지 밖으로 나오던 장군을 저격했다. 당시 헤스콕은 3일동안 작은 수통의 물만을 마셨으며 대소변은 모두 바지 속에 흘렸고 포복 전진의 반복과 벌레, 그리고 정글뱀에 물린 것 때문에 신체 전체에 물집과 욕창이 생겼다. 게다가 암살 이후 비상사태로 돌입한 월맹군 추격대를 모두 따돌리고 빠져나왔다.
- 다수 미 해병을 저격하여 코브라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월맹군 저격수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고, 임무 수행 중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적 저격수 코브라를 발견하고 먼저 방아쇠를 당겨 사살한 적도 있다. 이때 적 저격수의 조준경에 정확히 구멍을 내는 헤드샷을 쏘았는데, 실전에서는 현재까지 기록으로 남은 유일한 성공사례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톰 베린저의 스나이퍼 등 저격수가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이 상황이 자주 나오는데 모두 헤스콕의 이 유일한 사례를 모티브로 따온 것이다. Mythbusters에서도 한 번은 불가능이라고 했다가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성공했을 정도.[6]
- 헤스콕이 세웠던 세계 최장거리 저격기록(약 2,300m)은 대물저격총이 아니라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으로 세운 기록이며, 35년이나 흘러서야 갱신되었다. 그밖에도 물위를 달리는 고속보트 위에서 대략 700m 거리밖의 베트콩을 저격하는 곡예에 가까운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7]
그 때문에 베트콩들은 헤스콕을 "Lông Trắng", 하얀 깃털(white feather)이라고 부르며 두려워 했다. 이 별명은 위의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헤스콕이 부니 햇에 흰 깃털을 달고 다녀서인데, 이는 곧 유행이 되어 미 해병대 저격수들은 모두 모자에 흰 깃털을 달고 다녔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월맹군은 헤스콕의 목에 개인으로서는 최고금액인 미화 3만달러의 현상금이 걸기까지 했다.
2.2. 사고
1969년 9월 16일 광남성 쭈라이 북서부에 위치한 발디 착륙지점(LZ) 북부의 1번 국도에서 LVT-5 상륙장갑차를 타고 이동 중, 탑승한 상륙장갑차가 지뢰를 밟아 차량이 불타기 시작하자 부상을 입은 몸으로 탑승한 동료 전원을 끌어냈으나 자신은 큰 화상을 입었고 특히 손을 심하게 다쳐 죽음의 고비에 몰리기도 했다.[8] 이때의 공로로 퍼플 하트 훈장을 수훈했고, 30년 후에 다시 은성훈장을 수훈했다.
이후 강한 정신력으로 재활에 성공한 다음 미 해병대 저격학교 교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그러나 1975년부터는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해서 화상 후유증으로 중추신경계에 이상을 유발하는 다발성 경화증(MS) 진단을 받았고, 이후 평생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화상의 후유증은 점점 악화되어 1979년 복무 20년을 채우기 55일 전에 해병대 중사(GySgt., E7)로 의병전역했다. 방출은 헤스콕을 위한 일이였는데, 건강 문제로 은퇴하면 100% 장애연금을 받게 되나, 반대로 20년을 채운 후 정상 은퇴할 경우에는 최종 월급의 50% 밖에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2.3. 퇴역 후
1979년 의병전역 후 헤스콕은 군이 자신을 쫓아낸 듯한 느낌이 들어 한동안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상어 낚시를 하며 우울증을 극복했고, 경찰이나 네이비 씰 6팀과 같은 군 부대에서 민간인 사격교관으로 근무하다, 1999년에 후유증인 다발성 경화증이 악화되어 만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기타
- 헤스콕의 전설적인 업적을 따, 그린베레와 SEAL이 M14 소총을 개량해서 만든 지정 사수 소총인 M25에 헤스콕의 별명인 '하얀 깃털'을 헌정하기도 했다.
- 영화 로보캅2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적 저격수의 조준경을 뚫고 사살하는 장면이 카를로스 헤스콕의 사례를 따온 것이다. <스나이퍼>의 주인공 토마스 베켓 중사의 베트남 전쟁 경력이 헤스콕의 경력과 유사하다. 소설 <탄착점>, 영화 <더블 타겟>의 밥 리 스웨거는 헤스콕을 에피소드를 차용하고 있다. 물론 탄착점에서는 '칼 히치콕'이라는, 카를로스 헤스콕을 오마쥬하는게 분명한 베트남 전쟁 최고의 저격수가 언급된다. 주인공 밥 리 스웨거는 칼 히치콕의 뒤를 잇는 2위다.
[1] 제2차 세계 대전까지 포함시키면 시모 헤위헤, 바실리 자이체프, 류드밀라 파블리첸코, 마테우스 헤체나우어 같은 대단한 사람들도 있다.[2] 베트남 전쟁 중 미 해병대 최고의 저격수는 척 마휘니(Chuck Mawhinney) 해병대 병장(Sgt.)으로 공식 기록 상 103명을 사살했다. 참고로 베트남 전쟁 중 미군 최고의 저격수는 아델버트 월드론(Adelbert Waldron) 육군 하사로 공식 기록 상 109명을 사살했다.[3] 후술하겠지만, 이 때 사용한 총은 놀랍게도 저격총이 아니라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었다.[4] 먼저 쏜 쪽에서는 이미 차탄사격에 필요한 정보들(적의 위치, 탄착위치)을 이미 획득한 상태지만, 저격을 받은 쪽은 적 저격수의 위치나 거리정보 등에 대한 정보획득 시간이 필요하고, 적이 어디 있는지 또 봐야 하는데 섬광도 안 터지고 위장을 해서 안보이고, 또 해당 정보들을 얻기 위해 머리를 내밀거나 해야 하기에 찾다간 머리에 바람구멍이 날 수 있다. [5] 93명이라는 기록은 저격수의 사살확인은 장교가 확인을 해야 인정되는 규정하에서 확인된 것이다. 비공식 사살수는 300명 가까이 될 것이라는 말도 있다.[6] 처음 시도 때에는 렌즈가 크고 두꺼운데다가 여러 개가 조합되는 방식의 현대식 스코프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총탄이 렌즈를 전부 통과하지 못했다. 두 번째 시도때에는 베트남전 당시의 스코프를 사용해 간신히 성공했다.[7] 이동하는 물체 위에 타서 뭘 사격해서 맞추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이동하는 표적을 쏠 때는 리드샷이라고 해서 탄자가 날아갈 동안 목표가 이동할 지점을 미리 예정 조준해서 사격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이동하는 상황이라면 네거티브 리드샷이라고 해서 내가 움직이는 속도만큼을 빼고 조준해야 하는데, 이동하는 물체에 타고 내가 움직이는 중에 표적도 이동하는 중이라면 더더욱 어렵다.[8] 심지어 이식할 피부 조직이 부족하여 온갖 동물들의 피부 조직까지 동원해야 될 수준이었다. 이식한 피부도 건조해지면 바로 갈라지고 피가 흘러나왔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 특히나 조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