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 육군 특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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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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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오프레소 리베르 (De Oppresso Liber) :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 그린 베레의 공식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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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리 죽여라, 심판은 신에게 맡기고! (KILL 'EM ALL, Let GOD sort 'em out!)'''[1]
미 육군 소속의 '''티어 2(tier 2)''' 특수부대. 공식적인 명칭은 '''Special Forces'''이며 미국에서는 보통 '''US Army Special Forces'''라고 부른다.[4] 한국에서는 흔히 '''미 육군 특전사'''이라고 부른다. '''그린 베레 (Green Berets)'''는 별칭이며 대중적으로는 이 별칭이 유명하다. 미국 통합특수작전사령부(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 예하의 육군 특수작전사령부(Army Special Operations Command)소속으로, '제1 특수부대 사령부(1st Special Forces Command(Airborne)'를 중심으로 7개(현역 5/주방위군 2)의 특전단(Special Forces Group)으로 구성되어 있다.[image]
이다. (IF YOU KILL FOR MONEY, YOUR A MERCENERY.)만약 네가 재미를 위해 사람을 죽인다면 넌 새디스트다. (IF YOU KILL FOR FUN, YOUR A SADIST.)
'''만약 둘 다라면 너는 그린 베레다. (IF YOU KILL FOR BOTH YOUR IN GREEN BERET)''' [3]
유의할 점은 이런 육군 특전부대(그린 베레)라는 특정부대(고유명사)를 말하는게 아니라 보편적인 보통명사로서의 특수부대를 뜻하는 용어는 알파벳 소문자만으로 표기되는 'special operation forces' 혹은 이를 줄여서 'special forces'이다.[5] 대문자로 시작해 'Special Forces'라고 하면 그린 베레라는 특정 부대를 말하는 거지만, 'special operation forces'라고 하면 그린 베레, 네이비 실, SAS 등 모든 특수부대들이 다 해당되는 거다. 종종 외국 기사 등에 'Special Forces'라고 대문자로 시작해 표기하는 원문을 미 육군 특전부대나 그린 베레라는 특정부대 이름으로 제대로 번역하지 않고 마치 보통명사인 듯이 그냥 '특수부대'라고만 번역하는 오류를 자주 저지른다.[6][7]
대표적인 별명은 '조용한 프로들(Quiet Professionals)'이다. 과거 월남전 시절엔 '뱀 먹는 사나이들(Snake Eaters)'이란 별명으로도 유명했었다.[8] 요즘엔 중동 현지에서 수염을 덮수룩하게 기른 채로 작전하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가 되면서 '수염난 녀석들(Bearded Bastards)'이란 별명으로도 불린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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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해군 원자력 잠수함을 통해 침투하는 훈련을 하는 그린 베레 제7특전단
미 육군 특전사의 역사는 1952년 6월 19일에 창설된 육군 제10특전단[9] 으로부터 시작된다. 특전사 창설 멤버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동남아시아의 적 후방에서 각종 특수작전을 펼쳤던 전략 사무국(OSS -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제5307 "메릴즈 머라우더" 혼성부대 (5307th Composite Unit, Merrill's Marauders), 제 8군 휘하의 알라모 수색대(Alamo Scout), 유럽 전선의 미군-캐나다군 합동부대였던 제1 특수작전부대(1st Special Service Forces) 등의 각종 초창기 특수부대들[10] 에서 복무했던 출신들이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40~50년대에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공산 게릴라들의 저강도 분쟁의 영향력을 살펴본 미 육군이 '우리도 적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고 게릴라를 양성할 상설 특수부대가 필요하다' 라는 판단하에, OSS 등 위에 언급된 부대들 출신 대원들을 소집해서 1952년에 육군 특전사을 창설한 것이다.
1954년부터 부대내에서 자체적으로 녹색 베레모를 써왔지만 정식 복제로 인가된 건 1962년에 존 F. 케네디 미합중국 대통령에 의해서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노스캐롤라이나의 포트 브래그에 있는 육군 특전사을 방문했을 때 육군 특전사의 윌리엄 P. 야보로 준장[11] 은 정모가 아닌 그린 베레를 쓰고 브리핑을 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 모자 멋지군요."고 하자 야보로 준장은 "저와 전 대원들이 오랫동안 내부적으로 이 모자를 써왔지만, 외부에선 육군 규정 때문에 마음대로 못 씁니다."라고 대답했다. 백악관은 이듬해 대통령 특명으로 그린 베레의 공식 착용을 허용했고, 이 때부터 그린 베레는 미 육군 특전사의 상징이자 별명이 됐다.관련 기사 또한 베트남 전쟁에 투입된 미합중국 해군의 특수부대인 네이비 씰이나 특수부대에 준하는 대우늘 암묵적으로 받아 온 메콩 강의 강상 경비정 승조원들 등이 각자 여러 색상의 베레를 쓰는 유행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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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보로 준장과 케네디 대통령
이 외에도 케네디 대통령은 특수부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적극 지원해줬기 때문에 이런 케네디의 업적을 기리고자 케네디 사후인 1982년에 기존의 '육군 특수전학교'(U.S. Army Special Warfare School)라는 원래 명칭을 '존 F. 케네디 특수전학교' (John F. Kennedy Special Warfare Center and School)로 변경하였다.
1962년에 교환장교로 영국 SAS에 2년간 파견을 다녀온 그린 베레 장교인 찰스 베크위스[12] 소령이 SAS의 강도 높은 훈련과 체계, 기술, 경험 등을 부대에 피드백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고, 특히 기존의 특수전교육을 더욱 현대적인 교육과정(Q-Course로 불리움)으로 업데이트시키는 데에 기여를 하게 된다. 이후 그린 베레는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대활약을 하게 된다. 당시 전투 경험을 살펴보면 클레이모어를 매우 애용한 모양이다.[13]
베트남전 당시에는 북베트남 영토나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중부고원지대로 잠입해 정찰을 하거나 게릴라전을 펼치기도 하고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 사는 소수민족 '몽족'을 포섭해 군인으로 훈련시켜 한때 1만명에 달하는 전투부대를 만들기도 했고, 중부고원지대 쪽에 거주하는 라데족과 참족을 비롯한 몬타냐드(Montagnard)로 불리는 산악부족들을 포섭하여 군대를 조직했다.[14] 남베트남군의 고문관 역할도 담당하는 등 많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전쟁 말기에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붕괴시키기 위한 일명 '피닉스 작전'[15] 에서 베트콩 용의자에 대한 체포와 암살임무 과정에서 인권유린 혐의로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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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녹색(그린) 베레를 쓴 특전대원들. 좌측의 빨간색 베레모는 공군 특수부대 CCT[16]
게다가 특수부대에 대한 군내의 이해도가 낮았던 시절, 일반 육군 지휘관들 입장에서 이들은 명령계통이 애매해서 육군 소속이면서도 작전은 CIA와 더 많이 하고 겉으론 군기도 빠져 보이고 숫자도 적은데 온갖 특이한 짓들만 하면서 첨단장비와 예산을 잔뜩 타가는 등 싫어할만한 구석이 많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베트남전 당시 적잖은 그레베레 대원들이 '카우보이'식의 돌출행동을 벌여 지휘관들의 분노를 사고 만다.[17] 그린 베레의 효용성은 분명 베트남전 당시에 실적으로 보여줬지만, 이처럼 육군 수뇌부에게 밉보인데다 도덕과 인권을 중시한 지미 카터 정권의 등장과 맞물려 그린 베레는 모진 수난을 당하게 된다. 이른바 '할로윈의 대학살'이라 불리는 대규모 감축으로 전성기 때의 20%도 안되는 2천명 이하의 병력으로 축소된 것이다.[18][19]
한편 베트남전의 활약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린 베레 'A 분견대(Det.A)'는 동서로 분단된 베를린에 주둔하면서 CIA, 서독 연방정보부와 협조하여 유사시 소련/동독군에 서베를린이 점령되었을 경우 민간인으로 위장하고 잔류하며 소련/동독 점령군에 대한 정탐, 테러, 비정규전을[20] 맡고 있었다. 민간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A 분견대의 대원들 상당수는 독일 및 동유럽계 혈통이었고, 심지어는 나치 독일군 출신으로 미국에 귀화한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자료1자료2
한동안 우울한 시절을 보내던 그린 베레는 1980년대 힘의 외교를 주창한 레이건 정권이 들어서면서 부활한다. 그레나다 침공과 파나마 침공 및 중남미 각지에서의 비밀작전을 수행하였고 그 후로도 꾸준히 활약을 해왔다. 특히 9.11 테러 직후 그린 베레 제 5특전단은 아프간으로 CIA 작전부대와 함께 잠입하여 북부동맹군을 훈련시킨 뒤 항폭지원을 받아 탈레반군을 상대하였는데, 불과 1개월만에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라크 침공 당시에도 제 5특전단의 작전팀이 이라크 북,서부 지역을 순식간에 장악했고 이라크 육군 3성 장군을 생포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아프간과 이라크의 특수부대 훈련을 담당하며 반군 게릴라 토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5년도 즈음에 나온 이야기로는, 그렇잖아도 각종 업무가 잔뜩 있어서 스트레스와 육체피로도 극심한데, 몇년째 임무가 늘어나기만 해서 부담이 막대하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에 제작된 아프간, 이라크전 관련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 꼭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나오는 등 꽤나 희생이 큰 듯 하다.[21]
2006년 이라크에서 작전중인 제5특전단 소속 작전팀의 영상. 그들이 훈련시킨 이라크 정부군 코만도 부대도 함께 보인다.
2006년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취재팀이 아프가니스탄 소재의 그린 베레 작전팀과 동행하며 이들의 생생한 생활상과 활약을 다큐멘터리로 취재하기도 했다. 마지막엔 '''폭발물 공격을 받아 두 명이 전사하고 취재팀도 실려 나오는''' 것으로 끝났다. 그 중 한명은 제82공수사단 정보대대 소속이자 그린 베레 제 3특전단에 서포트 유닛으로 배속되어 작전 중이던 한국계 미국인 Kyu H. Chay(한국이름 최규혁) 중사(Staff Sergeant, E-6)였다. 그리고 해당 다큐멘터리가 편집되는 동안 2명이 더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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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 육군 특전사. 네번째 단체사진 앞줄 가운데 왼쪽에 있는 대원이 IED에 폭사한 한국계 대원 "최규혁" 중사(Staff Sergeant, E-6)이다.
2017년 10월 4일, 니제르 군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미 육군 제3특전단 특전대원들이 IS를 추종하는 현지 무장세력의 매복에 걸려 그린 베레 특전요원 3명과 마룬베레 지원요원 1명이 전사했다.기사, 무장세력은 2018년 3월 4일, 전사한 특전대원에게서 수거한 헬멧캠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하였다. 관련 다큐 실제 영상은 헬멧캠 당사자가 총 맞고 죽어가는 장면이 나오니 주의하자. 매복에 걸린 상황에서 빠르게 이탈하지 않고 차량과 느리게 이동하다 당하는 부분이라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불분명. 조사결과[22][23]
2001년 테러와의 전쟁 시작이후 현재까지 미군 최고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 수훈자가 3명이나 나왔다[24] .(네이비씰도 무려 4명이나 받았다.)
3. 임무 및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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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 내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예산도 많이 차지하며, 가장 많은 임무를 수행한 부대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참가한 전쟁에는 모두 참가했으며, 특전단마다 지역 관할이 나뉘어져 각종 공식/비공식으로 거의 왠만한 분쟁에는 다 참가하였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점은 세계경찰을 표방하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수행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부대가 그린베레이기 때문인데, 냉전시대에는 소련, 오늘 날에는 중국과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미국의 외교 정책상 전세계의 각종 분쟁에는 항상 정보기관인 CIA와 그린베레가 비밀스럽게 투입되어 미국의 국익을 위해 대리전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제75레인저연대나 네이비 씰 같은 특수부대가 (영화로 촬영하기에도 좋은) 짧은 기간 파병되어 '''단기''' 타격임무에 가까운 작전을 많이 하는 데 반해, 그린 베레는 분쟁지역이나 적 후방에 상대적으로 '''장기간''' 머무르며 직접 타격임무 이외에도 게릴라전, 적국 내의 반정부 세력에 대한 훈련 지도와 게릴라 양성, 적 후방의 각종 시설물에 대한 사보타주, 민사심리전, 적지 특수 정찰과 정보수집 등 각종 비정규전도 수행한다. 따라서 적군과 직접 마주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할 수 밖에 없으므로 직접 타격작전 또한 상당히 많이 수행한다. 다만 직접전투 이외에도 임무가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는 경향이 크다.
미국의 전장환경은 자국이 아닌 해외 타국인데다가, 타국의 적진 후방 등에서 주로 활동하므로 타국 민간인들과 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추가적인 외국어 교육을 실시하며 작전 시 해당 지역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원이 반드시 동행한다. 선발 심사과정에는 대부분 수년간 군생활을 해온 베테랑 부사관 계급 위주로 지원자를 받아서[25] 선발과정만 해도 몇 달이나 되며, 힘들게 뽑혀도 실전 투입이 가능해질 때까지 각종 훈련만 2년 가까이 받는다. 부대 특성상 전투력도 전투력이지만, 오랜 군생활에서 나오는 기술과 노련미, 상황 판단력 등을 중요시한다. 1990년대 이후로는 그때까지의 그린 베레의 작전 비중과 훈련이 지나치게 게릴라전에 편중되어 있다는 지적을 수용하고, 테러리즘이 급증한 국제정세에 발맞춰 이전보다 직접 타격, 대테러전, 해외 평화유지 임무 등에도 비중을 대폭 높이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이런 임무 성격 때문에 세계 특수부대의 교사라고 불릴 만큼 여러 우방국의 특수부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해왔다. 대한민국 육군 특전사 역시 이 부대를 모델로 창설되었으며 그 후로도 꾸준히 연합훈련과 위탁교육 등을 통해 교류하고 있다. 그리고 창설 초창기부터 특전사의 각 여단들마다 그린 베레 간부가 연락관이란 직책을 가지고 상주 근무하며 양부대간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시키고 있다.
대부분 학사 학위 이상의 학력[26] 과 외국어 교육을 필수로 하는 임무 특성상, CIA 산하의 CIA SAD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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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베레 제1특전단의 한국 파견 분견대[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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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베레 제1특전단과 연합 훈련 중인 한국 특전사 3공수특전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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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베레와 한국 특전사. 2017년 계룡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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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군 특수전전단과 함께 훈련 중인 그린 베레와 네이비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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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 파견간 한국 해병수색대의 핵심 간부진과 그린 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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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찰특공대 창설식에서의 그린 베레.
2018년엔 한미 연합훈련 중이던 한국 특전사 7 여단 대원들과 미 육군 그린 베레 제1 특전단 대원들이 마침 훈련지 근처에서 응급상황이던 주민을 함께 구조해서 살려냈는데 이 사실이 한국과 미국 언론들에 소개되고 대원들이 공로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링크
2019년 한국 특전사 7여단과 그린베레 팀원들이 적진에 침투하여 Sotac및 적군 사살후 요인 생포하여 철수하는 훈련 영상이 공개 되었다.
4. 선발 과정 및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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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의 미 육군 존F.케네디 특수전학교(USAJFKSWCS)에서 교육을 실시하며 지원자들은 현역에서 최소 2년이상 복무자여야 하고 공수교육(Airborne)을 '''이미 수료한사람'''이어야 한다. 지원자들이 주로 제82공수사단, 제101공수사단, 제75레인저연대에서 수년간 복무한 베테랑들이 많다. 특전단 선발과정에 지원하기 위한 자격요건 중 공수교육 수료는 '''의무적'''이다.
- 특전사 예비과정(SFPC:Special Forces Preparation and Conditioning)
30일간 진행되는 예비과정이다. 체력단련과 독도법을 배운다.
- 특전사 선발과정(SFAS:Special Forces Assessment and Selection)
24일간 진행되는 과정이다. 교육생은 혼자서 도움없이 독도법으로 12마일(19km)을 시간 내에 돌파해야 하며, 각 통과지점마다 시간제한이 있으며 훈련교관이 군장무게를 확인한다. 이외에도 장애물코스 달리기, 팀을 이루어 전신주와 지프트럭 옮기기[28] , 체력 테스트, 수영(Swim) 능력 평가, IQ 테스트, 기초 언어 습득 능력 테스트 등을 실시한다. 마지막에는 32마일(51km) 무장 행군이 있다.
특전사 자격과정인 'Q코스'(SFQC:Special Forces Qualification Course)는 총 6단계(Phase)로 나뉘어 진다. 각 단계(Phase)를 통과할때마다 약 1~2주씩의 휴식기간을 가진다.- Phase I(1단계) - Course Orientation and History
7주간 진행되는 말 그대로 오리엔테이션 과정이다. 비정규전에 대한 역사와 소개, 그린 베레에 대한 소개와 부대 편제, 공수작전 보충교육, 그린 베레의 작전 계획과정의 이해, 작전환경과 지역에 대한 이해 총 5가지의 작은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 Phase II(2단계) - Language and Culture
18주 ~ 24주간동안 진행되는 언어 교육 과정이다. 언어의 종류에 따라 18주 과정과 24주 과정으로 카테고리가 나뉜다. 프랑스어와 바하사 인도네시아어, 스페인어는 18주 과정이고 아랍어, 만다린 중국어, 체코어, 다리어(아프가니스탄), 헝가리어, 한국어, 파슈토어(파키스탄), 페르시아어(이란), 폴란드어, 러시아어, 타갈로그어(필리핀), 태국어, 터키어, 우르드어(파키스탄) 등은 24주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는 3가지 기본적인 언어 스킬인 말하기, 듣기, 읽기를 배우고 테스트를 받게된다. 이외에도 자신이 배치될 특전단의 관할 지역 국가의 사회구조, 경제, 정치, 치안상태, 사회 인프라, 기술, 문화, 지역적 연구 또한 배우게 된다. 물론 이 단계에서 강화된 체력 훈련 프로그램도 함께 시작된다.
- Phase III(3단계) - Small Unit Tactics & SERE
13주간 진행되는 과정으로 소부대 전술과 생존교육을 배운다. SF ODA에서 구사하는 소부대 전술과 사격교육 심화반, 시가전, 특전사의 임무 및 분석, 위험지역 이용, 군 의사 결정과정 등을 배운다. 또한 SERE Level C (생존교육 레벨 C)에서 생존, 도피, 저항훈련을 배우게 된다.
- Phase IV(4단계) - MOS Training
14주 ~ 50주간 진행되는 주특기 교육과정이다. 18A(팀장), 18B(화기부사관), 18C(공병부사관), 18E(통신부사관)의 경우에는 14주간 진행된다. 18D(의무부사관)의 경우에는 교육기간이 무려 50주(약 1년)나 되는데, 먼저 36주(9개월)간의 '특수전 메딕 과정'(SOCM:Special Ops Combat Medic Course)[29] 을 수료하고나서 추가로 16주간의 특전사 의무 부사관 과정(SFMS:Special Forces Medical Sergeant Course)을 수료해야하며 여기에는 한달가량 실제로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 Phase V(5단계) - UW Culex (Robin Sage)
4주간 진행되는 비정규전 모의 실전 테스트 과정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50,000 스퀘어 마일(130,000 ㎢) 크기의 지역에 현지거주민들과 퇴역 그린 베레대원들이 자원하여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의 모의 세트장을 만든다음, Q코스 교육생들로 하여금 이때까지 배운 모든 것을 활용하여 이 지역을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교육생들은 12명의 팀을 이루어 공수로 침투하여 반군 게릴라(연기자)들과 접촉하여 무기, 폭발물, 의료, 통신, 군사고문 등을 지원하게 된다. 훈련은 실제 작전과 거의 흡사하게 진행되는데, 2002년에는 지역을 순찰돌던 현지 보안관이 Q코스 교육생을 범죄자로 오인하고 사살하고 민간인 지원자를 감금한 사건도 있었다.
- Phase VI(6단계) - Graduation
1주일간 진행되는 Q코스의 졸업식이다. '스페셜포스(Special Forces)' 탭과 그린 베레를 수여받게 된다. 졸업식장에서 '발라드 오브 그린 베레' 노래가 울려퍼진다. 이후에 각 특전단의 자대로 배치되어 거기서 또 자체 훈련 싸이클이 시작된다.
- Special Forces Advanced Urban Combat (SFAUC)
4주동안 슈팅하우스에서 실시하는 CQB를 비롯한 시가전에서 필요한 집중적인 전술 사격 훈련으로 모든 그린 베레 대원들이 의무적으로 받는다.
- Military Free Fall Parachustist Course (MFFPC)
5주간의 고공강하(HALO) 교육. 과거엔 그린 베레 대원들 중에서도 고공팀만 우선적으로 받고 다른 대원들은 복무중에 티오가 나면 받는 형식이었으나, 2010년대 중반경부터는 필수교육으로 개정되어서 그후론 모든 그린 베레 대원들이 Q코스 졸업 후에 받는다.
이후에도 특전단 자대에 가서 자체적인 훈련 싸이클에 돌입하게 된다. 각 특전단마다 자체적으로 교육과정 학교를 만들어서 가르치는 교육들도 있고, 복무하면서 JFK육군특수전학교에 가서 받고 오는 교육과정도 있다. 아래는 JFK육군특수전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들이다.- Special Forces Sniper Course (SFSC)
8주간 진행되는 특전사 저격수 교육. 레벨2 과정도 별도로 있다.
- Military Free Fall Jumpmaster Course (MFFJM)
3주간의 과정으로 고공강하를 50회 이상해야 교육과정에 지원이 가능하다.
- Free Fall Advanced Tactical Infiltration Course (ATIC)
3주간의 과정으로 위의 MFFJM 교육이수자중 고공강하를 100회 이상해야 교육지원이 가능하다.
- Military Free Fall Instructor Course (MFFIC)
8주 과정으로 고공강하 교관 지망생을 위한 교육.
- Special Forces Combat Diver Qualification Course (CDQC)
7주간의 컴뱃 스쿠버 다이버 교육으로 수료 후 Special Operations Diver Badge 뱃지를 받는다.
- Combat Diver Supervisor Course
3주간의 업그레이드된 심화과정으로 앞의 컴뱃 스쿠버 다이버 이수자만 지원가능. 교육 수료 후 Special Operations Diving Supervisor Badge 뱃지를 받는다.
- Diving Medical Technician Course (DMT)
3주간의 과정으로 기존 컴뱃 스쿠버 다이버(7주) 수료 후 주특기가 18D(의무부사관)인 사람이 배우는 수중 의무 교육관련 교육.
- Special Forces Intelligence Sergeant Course (SFISC)
14주간의 정보 주특기 교육.
- Winter Warfare, Mountain and Cold Weather Operations
산악 교육 과정으로 여름, 겨울 2가지로 나뉘며 각각 2주~3주.
- SF Senior Mountaineering Course
6주간의 산악 심화교육과정.
- SF Master Mountaineering Course
4주간의 더욱 심화된 산악교육과정.
- Advanced Special Operations Techniques Course (ASOTC)
14주간의 과정으로 Q코스에서 배웠던 각종 특수전 교육의 심화과정.
- Advanced Special Operations Managers Course (ASOMC)
바로 위의 ASOTC 이수자 중 실시하는 3주간의 매니저과정.
- Advanced Language Training
Q코스에서 배운 언어의 심화과정.
- Special Forces Technical Surveillance (SFTSC)
12주간의 과정으로 각종 전자 장비를 통한 감시 정찰 기술을 배우게 된다.
- Special Operations Analytics and Intelligence Course (SOAIC)
5주간의 과정으로 정보 수집 관련 교육이다.
- Special Forces Network Development Course (NDC)(4주)
- UW Operational Design Course
4주간의 과정으로 비정규전 계획 세우기 마스터 과정
- SF Advanced Targeting Reconnaissance Target Analysis Exploitation Techniques (SFARTAETC)
9주간의 과정으로 CRF특임대를 위한 훈련이다.
- SOF Digital Targeting Training
- SF Physical Surveillance Course(8주)
- SOF Sensitive Site Exploitation, Technical Exploitation Course(3주)
- SOF Sensitive Site Exploitation, Operator Advanced Course(3주)
5. 부대 편성
5.1. 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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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분견대(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Alpha , 줄여서 SFOD-A, ODA 또는, '''A-팀''')는 지휘관(팀장)인 대위를 비롯한 12명의 팀원으로 편성되어 실제 작전을 수행한다. ODA(A-Team)의 편제는,
18A - 팀장, 계급 대위
180A - 부팀장, 계급 준위
18Z - 지휘 주특기, 계급 상사(E8)
18F - 정보, 작전 주특기, 계급 중사(E7)
18B - 화기(Weapons) 주특기, 계급 중사(E7)
18B - 화기(Weapons) 주특기, 계급 하사(E6)
18C - 공병(Engineer) 주특기, 계급 중사(E7)
18C - 공병(Engineer) 주특기, 계급 하사(E6)
18D - 의무(Medic) 주특기, 계급 중사(E7)
18D - 의무(Medic) 주특기, 계급 하사(E6)
18E - 통신(Communications) 주특기, 계급 중사(E7)
18E - 통신(Communications) 주특기, 계급 하사(E6)
여기서 주특기 180A 부팀장인 준위 계급이 가장 고참급이고 경험이 많기 때문에 팀에서 최고 어르신, 아버지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의 특전사도 이런 미 특전사식 팀 편제를 그대로 본따와서 만들었다[30] . 이중에 Engineer 주특기는 한국 특전사에선 '폭파 주특기'라고 불린다. 그린 베레 Engineer 주특기의 양대 임무가 폭발물을 이용한 '파괴'(Demolition)와 '공사'(Construction)인데, 이중 공사는 민사 심리전 임무시 현지인들을 위한 시설 공사 및 보수를 해주기 위한 주특기라서 북한을 상대하는 한국군의 실정에선 이런 임무는 필요성이 그리 높지 않고 기술적인 교육의 번거로움 때문에 Engineer 주특기가 가진 양면적인 특성 중에서 파괴/사보타쥬 쪽에 치중하여 도입된 것.
이렇게 12명으로 구성된 A팀을 6개 관할하며 관리 및 지원해주는 '''특전지역대(Special Forces Company)''' 본부가 B분견대(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Bravo , 줄여서 SFOD-B, ODB 또는 B-team)이고, 소령이 지휘관(지역대장)이다.
그리고 특전지역대 3개를 관리 및 지원해주는 '''특전대대(Special Forces Battalion)''' 본부가 C분견대(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Charlie , 줄여서 SFOD-C, ODC 또는 C-team)이고, 중령이 지휘관(대대장)이다.
그리고 특전대대 4개를 관리 및 지원해주는 '''특전단(Special Forces Group)'''이 존재하고, 대령이 지휘관(특전단장)이다.
원래는 각 특전단마다 특전대대가 3개씩 존재했으나 테러와의 전쟁 이후 필요성에 의해 2012년까지 각 특전단에 4번째 특전대대가 신설되었다. 다만 주방위군인 제19, 제20특전단은 현재도 특전대대가 3개이다.
5.2. 각 특전단의 역사 및 임무
- 오늘 날 존재하는 특전단
- 제1특전단
- 제3특전단
- 제5특전단
- 제7특전단
- 제10특전단
- 제19특전단 (주방위군)
- 제20특전단 (주방위군)
- 해체되어 사라진 특전단
- 제6특전단 (1963년 ~ 1971년)
- 제8특전단 (1963년 ~ 1972년)
- 제11특전단 (1960년 ~ 1995년) - 미 육군 예비군
- 제12특전단 (1960년 ~ 1995년) - 미 육군 예비군
5.2.1. 오늘날 존재하는 특전단
'''제1특전단 (1st Special Forces Group(Airborne);1st S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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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워싱턴 주 루이스-맥초드 합동 기지에 제1특전단 본부와 제2, 3, 4특전대대가 주둔하고 있고, 제1특전대대는 일본의 오키나와 토리 역에 전방 배치되어 있다. 미합중국 인도-태평양 통합전투사령부(US INDOPACOM) 산하의 '''태평양 특수작전사령부(SOCPAC)''' 소속으로, 태평양과 동아시아를 담당한다.
1957년에 창설되었으며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였으며, 베트남 전쟁에서 첫 그린베레 전사자가 나오기도 했다(1957년 10월). 베트남 전쟁이 끝나자 1974년에 해체되었다가 1984년에 재창설되어 오늘 날에 이르고 있다. 1990년대로 넘어와서 1994년 아이티 군사 쿠데타 사태 당시 병력 일부가 파병되었고,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실시된 지뢰제거작전에 참가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도 군사고문단으로 파병되었고, 보스니아 내전 당시에도 지역 안정화를 위해 일부 병력들이 파병되었다. 2000년대로 넘어와서, 2001년에 9.11 테러가 일어나자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부터 병력들이 참전하였고, 아프가니스칸 전쟁 최초 미군 전사자가 나오기도 했다(2002년 1월). 2002년부터는 필리핀 남부 이슬람 반군 게릴라전에 특전대대가 로테이션으로 파병되었다. 2003년부터 이라크 전쟁에도 로테이션으로 전투 파병되었다. 2012년에 제4특전대대가 추가되었다. 2015년에 일본 오키나와에서 일본 대테러 특수부대 특수작전군과 합동 훈련 중 헬기가 추락하여 대원들이 부상을 입었는데, 일본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7년 필리핀 남부 마라위 전투에도 파견되었다. 오늘 날에도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시리아 내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 소탕전을 비롯한 중동 분쟁 지역에 로테이션으로 계속 전투 파병되고 있다. 이외에도 주기적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들을 순회 방문하며 각 나라의 특수부대들과 정기적으로 교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에 A팀 파견대를 두고 있다.
'''제3특전단 (3rd Special Forces Group(Airborne);3rd S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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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 캐롤라이나 주 포트 브래그에 주둔하고 있다. 미합중국 아프리카 통합전투사령부(US AFRICOM) 산하의 '''아프리카 특수작전사령부(SOCAFRICA)''' 소속으로, 동부 아프리카의 뿔를 제외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담당한다.
1963년에 창설되었으며, 60년대에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을 담당했었다. 이 시절 아프리카 말리, 에티오피아, 콩고와 중동의 이라크, 요르단의 특수작전 부대들을 훈련시켰다. 베트남 전쟁 시절에는 현지에 부대 전체가 주둔하면서 참전하였고, 1969년에 해체되었다.[31] 이후 1990년에 1개 특전대대 규모로 재창설되었으며, 그해에 걸프 전쟁 일어나자 사우디아라비아에 파병되어 접근거부지역에서 정찰과 사보타지 작전을, 쿠웨이트에서 미대사관 경호작전을 수행했다. 91년과 92년에 각각 제2, 3특전대대가 신설되었다. 1994년 아이티 쿠데타 사태 당시 병력 일부가 파병되었다. 이외에도 90년대에 세네갈, 우간다, 말라위, 말리, 에티오피아, 트리니다드 토바고 등의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의 특수작전 부대들을 훈련시켰다. 2000년부터는 Operation Focus Relief의 일환으로 서아프리카 니제르, 세네갈, 가나에 파병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는 휘하의 2개 특전대대가 6개월+ 단위로 각각 12회 이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로테이션 파병되었으며, 명예훈장(메달 오브 아너) 수훈자가 무려 3명이나 나왔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도 개전 초기부터 참가하였고, 이후에도 로테이션으로 계속 파병되었다. 2011년부터 시리아 내전에 참가하였다. 2012년에 제4특전대대가 추가되었다. 2017년 10월 4일, 서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적군의 매복습격을 받아 제3특전단 소속 특전대원 3명과 서포트대원 1명이 전사했다. 이슬람 반군들이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외에도 오늘 날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롯한 중동과 아프리카 내전 지역에 계속 로테이션 전투 파병 되고 있다.
'''제5특전단 (5th Special Forces Group(Airborne);5th S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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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키 주 포트 캠벨에 주둔하고 있다. 미합중국 중부 통합전투사령부(US CENTCOM) 산하의 '''중부 특수작전사령부(SOCCENT)''' 소속으로 중동, 페르시아 만,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의 뿔을 담당한다.
1961년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에서 창설 되었다. 1960년대 당시에는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였고, 베트남 전쟁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맹활약했다. 베트남 전쟁 시기에는 아예 베트남에 제5특전단 전체가 주둔하면서 MACV-SOG를 비롯하여 미군이 수행했던 각종 비밀 특수작전의 거의 대부분을 담당하였다. 이 시기 메달 오브 아너(명예 훈장) 수훈자 16명도 제5특전단 소속이다. 이들은 1975년 남베트남 사이공 정부가 패망하기 전까지 주둔하면서 특수 작전과 정보 수집 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1980년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어 무자헤딘 반군들을 훈련시켰고, 1995년 탈레반이 정권을 잡기 전까지 이 작전은 계속 되었다. 1990년 걸프 전쟁에 참가하여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이때 이라크에서 제5특전단 정찰팀의 탈출극 사례는 매우 유명하다.걸프전 당시 유프라테스 계곡의 그린베레 정찰팀의 일화(번역본 링크) 1992년에는 내전 중이던 소말리아에 병력들이 파병되었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자 중동 지역 담당인 제5특전단 소속 병력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선봉으로 바로 참가하였다. 이들은 현지 아프간 북부동맹 게릴라들과 함께 합동작전으로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는 기염을 토했고, 이는 훗날 영화 12 솔져스로 제작되었다. 이외에도 많은 제5특전단 소속 작전팀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에 맹활약했다. 2003년에 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초기에 제5특전단 소속 작전팀들이 선봉으로 침투하여 많은 특수작전을 수행하였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는 특전대대가 로테이션으로 오늘날까지 계속 파병되고 있다. 2011년부터는 리비아 내전, 시리아 내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 소탕전 등등 중동의 많은 분쟁 지역에 계속해서 파병되고 있으며, 오늘 날 가장 바쁜 특전단이다. 담당 지역인 중동 지역 우방 국가들을 순회 방문하며 각 나라의 특수부대들과 정기적으로 교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제7특전단(7th Special Forces Group(Airborne);7th S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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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주 이글린 공군 기지에 주둔하고 있다. 미합중국 남부 통합전투사령부(US SOUTHCOM) 산하의 '''남부 특수작전사령부(SOCSOUTH)'''소속으로 중, 남아메리카를 담당한다.
1953년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에서 약 200명의 규모로 '제77특전단'이라는 명칭으로 창설되었다. 1959년에 라오스에 파병되어 공산 게릴라군과 싸웠고, 1960년에는 남베트남에 파병되어 남베트남 육군 레인저와 육군 특수부대를 훈련시켰다. 이후 1960년에 '제7특전단'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60년대와 7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하였고(명예 훈장 수훈자도 1명 나왔음), 이외에도 라오스와 태국에서도 특수작전을 수행하였다. 동시에 중, 남아메리카 지역으로 임무를 확대하였는데, 1962년에 제7특전단의 D지역대가 파나마로 가서 제8특전단을 창설하게된다. 이후 1972년에 제8특전단은 해체되었고 휘하 병력들은 제7특전단으로 복귀한다.(제8특전단은 밑에서 후술) 이후 제7특전단은 본격적으로 중, 남아메리카를 담당하기 시작하였다. 80년대에 엘 살바도르 내전 당시 군사고문단으로 파병되었고, 온두라스와 니카라과에서도 대 게릴라전에 투입되었다. 또한 멕시코, 브라질,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그리고 볼리비아에 파병되어 대 마약 카르텔 작전(마약과의 전쟁)을 수행했다. 1983년에 그레나다 침공 작전에 병력들이 참가했다. 1989년 10월에 파나마에서 마누엘 노리에가에 반대하는 쿠데타가 일어나자 제7특전단 작전팀이 파나마에 잠입하여 정찰작전을 수행하였다. 이때 제7특전단 작전팀은 노리에가를 구금하고 미국인 인질인 커트 뮤즈 구출작전도 맡았으나 쿠데타의 실패로 작전은 실행되지 않았다.[32] 2달 뒤인 1989년 12월, 제7특전단 작전팀은 파나마 침공 작전에 참가하여 정찰작전과 직접타격 작전을 수행하였다. 2002년부터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오늘 날까지 계속 로테이션으로 전투 파병되고 있으며, 이라크 전쟁에도 아프가니스탄 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파병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 소탕전에도 참가중이며, 2001년도 테러와의 전쟁 이후 아프간, 이라크 지역에서 가장 많은 전사자가 나온 특전단이 바로 제7특전단이라고 한다. 오늘 날에도 중,남 아메리카 지역의 우방국가들을 순회 방문하며 각 나라의 특수부대들과 정기적으로 교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냉전시절 중,남미 지역의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의 중심에 제7특전단이 있었으며, 같은 남미지역 담당인 제8특전단(밑에서 후술)과 함께 남미 지역 친미 정권에 대한 군사 지원 및 좌파 게릴라 소탕에서 가장 주요 역할을 했던 부대이다.(한마디로 오늘 날 남미 국가들의 반미감정의 원인..)
2018년에 제7특전단의 제2특전대대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6개월간 로테이션 전투파병을 다녀왔는데, 이 한차례 전투파병에서의 무공으로 제2특전대대 대원들은 귀국 후에 50개가 넘는 무공훈장을 받았다. 은성훈장 3개와 동성훈장 7개, 육군공로훈장 17개를 받았으며, 이중에 'V'가 새겨진 것이 27개였다고 한다.[33] 그리고 전투 중 부상을 입은 군인들에게 수여하는 퍼플 하트도 21개나 받았다고 한다.영문기사
'''제10특전단(10th Special Forces Group(Airborne);10th S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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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주 포트 카슨에 특전단 본부가 있고, 제2, 제3 제4 특전대대가 주둔하고 있다. 제1특전대대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근처 버브린겐에 위치한 판처 막사(Panzer Kaserne)에 전방 배치되어 있다. 미합중국 유럽 통합전투사령부(US EUCOM) 산하의 '''유럽 특수작전사령부(SOCEUR)'''소속으로 유럽과 서아시아를 담당한다.
1952년 노스캐롤라이나 주 포트브래그에서 가장 처음으로 창설된 특전단으로, 초대 사령관은 2차대전의 전설인 아론 뱅크 대령이었다. 당시 규모는 122명의 인원으로 이중 많은 이들이 2차대전 당시 전략사무국(OSS), 레인저, 공수부대에서 활약한 베테랑들이었다. 1960년대 영국, 서독, 프랑스, 노르웨이,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의 특수부대들과 훈련하였다. 1960년 콩고 내전 당시 제10특전단 병력이 파병되어 미국인과 유럽인들을 사상자없이 대피시켰다. 베트남 전쟁 시기 제10특전단은 베트남에 파병된 적이 없었지만, 제10특전단 소속 일부 장교와 병사들은 베트남에 파병된 다른 특전단에 파견되는 형식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60년대에 제10특전단은 요르단에 첫 공수학교를 세워주었고, 1963년에는 예멘의 반정부 게릴라 부대를 훈련시켜 주었다. 또한 당시 친미 팔레비 정권의 이란군 특수부대들을 훈련시켰으며, 쿠르드족 특수부대도 훈련시켰다. 또한 이 시절에 터키군 특수부대와 파키스탄군 특수부대도 훈련시켰다. 1970년대에도 NATO 소속 유럽 각국 특수부대와 계속해서 합동 훈련을 실시하였다. 1983년부터 1985년에는 레바논군을 대량으로 훈련시켰다. 1985년에는 제10특전단의 독일 주둔 제1특전대대가 소말리아에 파병되었고, 1986년에는 니제르군 특수부대를 훈련시켰다. 1990년 걸프 전쟁 당시에는 쿠웨이트에 파병되어 사우디아라비아군을 훈련시켰고, 이들과 함께 이라크군과 직접 전투도 치루었다. 동시에 터키에도 파병되어 걸프 전쟁을 지원하였다. 1991년에 걸프 전쟁 종료 후에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내의 쿠르드족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제10특전단의 3개 특전대대가 모두 이라크-터키 국경선에 계속 파병되었다. 이 작전은 1996년까지 이어졌고, 50만명이 넘는 쿠르드인들의 목숨을 구해냈다. 1993년에는 내전 중이던 소말리아에 제10특전단의 작전팀이 파견되어 벨기에 육군 제1 파라코만도[34] 대대와 미 육군 제10산악사단을 지원하였다. 르완다 내전 당시에도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으로 제10특전단 소속 팀들이 파견되어 시민들의 탈출을 지원하였다. 2000년대로 넘어와서는 다른 특전단들과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계속 로테이션으로 전투 파병 되고 있다. 특히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본격적인 개전에 앞서 제10특전단 소속 작전팀과 CIA SAD 작전팀이 제일 먼저 이라크로 들어가서 쿠르드족 무장조직인 페쉬메르가와 합동작전으로 알카에다와 싸웠다. 2007년부터는 아프리카의 말리, 모리타니, 세네갈 등의 지역에서 군사 훈련도 시키고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와 전투도 치르고 있다. 2015년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사태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특수부대들을 훈련시켰고 이외에도 폴란드,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러시아 주변 국가들과의 연합훈련도 자주 하고 있다. 냉전시대 제10특전단의 베를린 주둔 분견대는 매우 유명하며, 독일 남부에 주둔하는 제1특전대대는 독일 대테러 특수부대 KSK의 창설에도 도움을 주었다. 현재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 소탕전에 계속 로테이션 파병되고 있다. 이외에도 오늘날 유럽 지역의 국가들을 순회 방문하며 각 나라의 특수부대들과 정기적으로 교류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제19특전단(19th Special Forces Group(Airborne);19th S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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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위군 부대로 유타 주 드라페에 본부를 두고 있다. 워싱턴 주, 웨스트버지니아 주, 오하이오 주, 로드아일랜드 주, 콜로라도 주, 캘리포니아 주, 그리고 텍사스 주에 있는 대대와 배속된 중대로 구성된다. 제5특전단과 함께 유럽과 서남아시아(중동) 지역을, 그리고 제1특전단과 함께 태평양 지역을 담당한다.
1960년에 제19특전단으로 창설되었다가 이듬해인 1961년부터 주방위군으로 전환되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참가하였고, 1~2개 작전팀(A팀) 단위로 육군 제3보병사단, 제101공수사단, 제1해병사단을 지원하였다.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로테이션으로 전투 파병되었다. 2014년에는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파병 되었다.
'''제20특전단(20th Special Forces Group(Airborne);20th S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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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위군 부대로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 본부를 두고 있다, 알라바마 주, 미시시피 주, 플로리다 주, 노스 캐롤라이나 주, 일리노이 주 시카고, 켄터키 주 루이스빌, 서부 메사추세츠와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있는 대대와 배속된 중대로 구성된다. 제7특전단과 함께 중, 남아메리카 지역을 담당한다.
베트남 전쟁과 걸프 전쟁(1990년)에 참가하였고, 2000년대 이후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로테이션으로 전투 파병되었다. 최근에는 시리아 내전을 비롯하여 중동지역에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 작전에도 참가하고 있다.
5.2.2. 해체되어 사라진 특전단
'''제6특전단 (6th Special Forces Group(Airborne);6th S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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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노스캐롤라이나 주 포트브래그에서 창설되어 1971년까지 존재하였다. 서남아시아(중동) 지역을 담당했었으며 베트남 전쟁에도 파병되었다. 1970년 손타이 포로 수용소 구출 작전 당시 지원자 대부분이 제6특전단 소속이었다.
'''제8특전단 (8th Special Forces Group(Airborne);8th S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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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당시 제7특전단의 일부 인원들이 중앙 아메리카의 파나마 운하 지역에 창설하였다. 제8특전단은 2개 특전대대로 이루어져 있었고, 특전대대는 다시 3개의 지역대로, 지역대는 5개의 A팀(12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960년대 후반에 제8특전단의 'A'특전대대에서는 고공강하(HALO) 학교를 운영했었는데, 이는 미국 본토의 JFK육군특수전학교를 제외하고 외국에 생긴 첫 고공강하(HALO) 학교였다. 이외에 스쿠바 팀도 운영하였다. 담당지역은 중, 남아메리카 지역이었으며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에서 대 게릴라전에 투입되어 체 게바라의 최측근 3명을 사살하였다. 1967년에는 볼리비아에 군사고문단으로 파병되어 볼리비아군 특수부대 레인저를 훈련시켜 체 게바라를 사살하게 하였다. 1962년부터 1970년까지는 아르헨티나에 군사고문단으로 파병되었다. 이외에도 베네수엘라에 공수학교를 세워주었고, 도미니카 공화국 산악 게릴라부대를 훈련 시켰으며, 과테말라 특수부대도 훈련시켰다. 1972년에 해체되었고 인원들은 제7특전단의 제3특전대대로 이동하였다.
'''제11특전단 (11th Special Forces Group(Airborne);11th S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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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부터 1995년까지 미 육군 예비군 소속으로 존재하였다.
'''제12특전단 (12th Special Forces Group(Airborne);12th S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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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에 창설되었고, 1969년에 미 육군 예비군 소속으로 전환되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과 1983년의 그레나다 침공, 1989년 파나마 침공, 1990년 걸프 전쟁에 병력의 일부가 참가하였다. 이후 1995년에 해체되었다.
6. CIF(CRF) 특임대
6.1. 간략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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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CIF특임대 대원들의 모습
'''CIF특임대'''는 그린베레의 현역 특전단(1, 3, 5, 7, 10)마다 존재하는 대테러 특수임무대로 직접타격 작전(Direct Action)과 인질구출 작전을 담당하는 대테러부대이다. 1970년대 유럽에서 좌익 계열 무장단체들의 항공기 납치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자 미 국방부에서도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 당시 베를린에 주둔하고 있던 그린베레 A분견대에게 항공기 대테러 임무를 맡겨서 베를린에서 발생하는 항공기 납치사건에 대비하게 하였다. 197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어서 (또 다른 그린베레 장교인) 찰스 베크위스 대령이 델타 포스를 창설하자 당시 존재했던 다른 대테러 부대였던 베를린의 A분견대와 미국 본토 제5특전단의 '블루라이트'는 결국 해체되게 된다. (블루라이트: 그린베레 측에서 델타 포스가 창설될때 이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그린베레 자체 대테러 부대이다.)
'''베를린 A 분견대'''에 관한 글(네이버 블로그)
Part 1 : 베를린에서 이란까지 이어지는 그린베레의 극비임무 파트1(번역 링크)
Part 2 : 공산권 공작원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그린베레 파트2(번역 링크)
Part 3 : 대테러 임무와 이글 클로 작전 파트3(번역 링크)
제5특전단 '''블루라이트'''에 관한 글(네이버 블로그)
Part 1 : 미 육군 특전사에서 시작된 미국 최초의 대테러부대 파트1(번역 링크)
Part 2 : 미국 최초의 대테러부대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맞서다 파트2(번역 링크)
Part 3 : 영국 SAS는 어떤 식으로 미국 특수부대에게 영향을 주었나 파트3(번역 링크)
Part 4 : 대테러 전술의 발전 파트4(번역 링크)
다시 돌아와서, 1980년대 접어들어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미 해병대기지 폭탄테러 사건(1983)이 발생하게 되자, 미 국방부에서는 독일에 있는 미 유럽 통합전투사령부(US EUCOM)에도 서유럽지역에서 발생할 항공기납치나 인질극에 대비한 대테러부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당시 미 유럽 통합전투사령부의 사령관이 델타 포스 측에게 1개 공격조 스쿼드론(Squadron)을 유럽지역 대테러 전용으로 배치해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델타 포스 측은 단칼에 거절하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 델타 포스에는 공격조 스쿼드론이 2개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 유럽 통합전투사령부에서는 독일에 배치되어 있는 그린베레 제10특전단의 제1특전대대에 그들(유럽 통합전투사령부)만의 대테러부대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해서 제10특전단 제1특전대대의 C지역대가 최초의 CIF특임대가 되었고, 이후 80년대에 각 특전단마다 CIF 특임대가 창설된다. (제5특전단은 90년대에 창설.)
6.2. 부대 소개 및 설명
CIF는 Combatant Commander’s In-extremis Force(전투사령관 최후의 수단)이라는 뜻이며, 여기서 '''Combatant Commander'''는 각 특전단이 소속되어 있는 지역별 미군 통합전투사령부(Unified Combatant Command)의 '''통합전투사령관(Combatant Commander -대장계급)'''을 의미한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밀리터리 사이트에서는 CIF특임대가 특전단장(대령)의 직할 부대로 잘못알려져 있었는데, 실제로는 통합전투사령관(대장)의 직할 부대이다.
CIF 특임대(CIF Company)는 1개 특전지역대(Special Forces Company) 규모이며, 각 현역 특전단마다 1개 지역대로 지정되어 있다. 미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 소속으로 예산과 임무를 하달받으며, 테러 사건이나 인질극 발생시에는 각 지역별로 특전단이 소속된 통합전투사령부(Unified Combatant Command) 사령관(대장)의 지휘를 받아 관할 지역 내 대테러 임무와 인질구출작전을 담당한다.
- 제1특전단 제1특전대대 C지역대 (C-1-1)
- 제3특전단 제2특전대대 B지역대 (B-2-3)
미 아프리카 통합전투사령부(US AFRICOM) 사령관. 미 노스캐롤라이나 주 포트브래그 위치.
- 제5특전단 제1특전대대 A지역대 (A-1-5)
미 중부 통합전투사령부(US CENTCOM)사령관. 미국 켄터키 주 포트캠벨에 위치.
- 제7특전단 제3특전대대 C지역대 (C-3-7)
- 제10특전단 제1특전대대 C지역대 (C-1-10)
- 제10특전단 제2특전대대 C지역대 (C-2-10)
미 유럽 통합전투사령부(US EUCOM) 사령관. 미 콜로라도주 포트 카슨에 위치. 나중에 추가된 CIF특임대.
1개 지역대(Company) 규모이지만 CIF특임지역대(CIF Company)는 기존 특전지역대(Special Forces Company)와는 편제가 다르다고 한다.기존 1개 특전지역대가 본부(ODB)와 7개의 특전팀(A팀 - 12명으로 구성)으로 구성되는 것 과는 달리 CIF특임대의 경우 총 40~50여명 정도의 인원이라고 추측된다.[35] 그러니까 5개 CIF특임대로 총 200~250명 정도의 CIF 오퍼레이터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리고 팀 편제 또한 기존 12명이 1개팀 편제가 아니라 JSOC 소속 대테러부대와 동일하게 4인 1조라고 하며, 실제 CIF특임대 출신 전술사격 강사들의 프로필을 보면 트룹(Troop), 팀(Team), 셀(Cell), 공격팀(Assault Team) 등의 명칭으로 편제가 이루어져 있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기밀이라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알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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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육군 티어1 대테러부대인 '''Fuerza Especial de Reacción'''과 제7특전단 CIF특임대'''(C-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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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군 대테러부대를 훈련시키는 제7특전단 CIF특임대'''(C-3-7)'''
CIF특임대에 가기 위해서는 JFK육군특수전센터에서 실시하는 '''SFARTAETC'''(Special Forces Advanced Reconnaissance, Target Analysis, and Exploitation Techniques Course)(9주) 교육을 통과해야 한다. 물론 '''SFARTAETC''' 교육 과정 이외에도 저격수 교육인 '''SFSC'''(Special Forces Sniper Course)(8주)도 받아야하며, 이후에도 교육은 계속 이어진다.
이제 막 그린베레 Q코스를 졸업하고 특전단에 배치된 신참도 CIF특임대로 갈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특전단에서 몇년 정도 복무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네이비 씰에서 무조건 최소 5년정도 복무해야 데브그루에 지원 가능한 것과는 다른 경우인데, 왜냐하면 그린베레의 경우 지원자들 중 많은 이들이 제82공수사단, 제101공수사단, 또는 제75레인저연대나 다른 보병사단에서 이미 수년간 복무하며 전투파병도 몇번 다녀온 베테랑들이기 때문. [36]
6.3. 기타 이야기
2010년대 넘어와서 부대 명칭이 CIF특임대에서 '''CRF특임대(Crisis Response Forces)'''로 바꾸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각 특전단의 5개 CIF특임대가 모두 몇 차례씩 파병되어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 소속으로 HVT(고가치목표물)에 대한 타격작전을 수행했다. 신생 이라크군 대테러 부대가 창설될 때에는 제3특전단 CIF특임대'''(B-2-3)'''가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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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되어 작전 중인 제5특전단 CIF특임대'''(A-1-5)'''. 이들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개전 초기부터 참가하였고, 이때 제5특전단 CIF특임대'''(A-1-5)'''는 뉴질랜드 특수부대 NZSAS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였다.
제1특전단 CIF특임대'''(C-1-1)'''의 영상. 2007년 이라크이다.(놀랍게도 유튜브에 영상이 있다.)
2020년 3월에 뉴스기사(영문기사)에 의하면 미 국방부에서 CIF(CRF)특임대를 모두 해체시키기로 하였다고 한다. 델타 포스, 데브그루와 임무가 겹치는데다, 부대 관리하는데 또 예산이 소비되기 때문이라고. 앞으로 러시아와 중국과의 군사적 마찰을 고려하여 특전단의 기존 임무인 FID 비정규전에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CIF특임대 해체와 관련하여 제75레인저연대-그린베레 출신인 잭 머피가 쓴 글(영문)이 있다. 대충 읽어보면,
해외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질극이 벌어졌을때, 델타포스가 미국 본토에서 사건현장으로 오는게 늦는다고 해서 각 지역별 관할 통합전투사령부 별로 CIF특임대를 만든것인데, 정작 제10특전단 CIF특임대(독일 주둔), 제1특전단 CIF특임대(일본 오키나와)를 제외하고 나머지 제3, 5, 7 특전단 CIF특임대는 미국 본토에 있다고 한다. 거기다 CIF특임대는 그들만의 자체 항공자원이 없다고 한다. 잭 머피 본인이 델타 포스 장교와 한번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태국에서 일이 생겨 급히 사령부의 호출을 받았을 때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제1특전단 CIF특임대보다 미국 본토 그것도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델타 포스 병력들이 태국에 더 일찍 도착했다고 한다.
외국 밀리터리 사이트의 전역자들이 쓴 글을 봐도, 애초에 그린베레 선발과정에서 CQC 교육은 모두가 다 배우며, 굳이 CIF특임지역대 소속이 아니더라도 '''SFARTAETC'''같은 고급 CQC 교육을 받은 특전대원들은 기존 특전지역대에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군생활을 하면서 계속 되는 훈련을 통해 서로에게 전수해주기 때문에 CIF특임대라고 해서 별로 특별한 것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CIF특임대는 대테러 작전/경호작전을 위해 그린베레의 고유 임무인 비정규전 FID임무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기존 특전지역대 인원들이 전투도 더 많이 치르고 각종 훈장도 수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도 CIF특임대의 매우 유용한 역할이 있었는데, 바로 해외 우방국가들의 대테러부대들을 훈련시키는 임무였다고 한다.(델타 포스는 별로 안 좋아하는 임무)
2012년 주 리비아 미국 대사관 습격 사건 당시 가까운 독일에 주둔하던 제10특전단 CIF특임대'''(C-1-10)'''가 긴급호출을 받았으나, 당시 크로아티아군 대테러부대와 함께 훈련 중이라 늦게 갔다고 한다. 훗날 2016년에 영화감독 마이클 베이가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13시간(2016)을 감독했는데, 거기에도 수송기에 탑승하는 제10특전단 CIF특임대'''(C-1-10)'''의 장면이 잠깐 나온다.
제82공수사단의 정찰대(LRSD)를 거쳐서 그린베레 제1특전단 CIF특임대'''(C-1-1)''' 그리고 나중에는 델타 포스에서 서포트로 복무하고 현재는 전술 사격 강사로 유명한 베트남계 미국인 '투람'이 제1특전단 CIF특임대'''(C-1-1)'''에 복무하던 시절(1997년~2004년)을 모아놓은 하이라이트 영상이 있다.
영상을 보면 중간쯤에 우리나라 제707특수임무단의 47교장도 나온다. 투람 본인의 SNS 글을 보면 제1특전단 CIF특임대'''(C-1-1)''' 시절(1997년~2004년)에 홍콩 경찰 대테러부대 비호대(SDU), 인도네시아 육군 특수부대 '코카서스', 태국 육군 대테러부대, 필리핀 육군/해군 특수부대, 싱가포르 육군/해군 특수부대, 인도 육군 특수부대 '파라', 한국 제707특수임무단, 일본 육군 특수부대 특수작전군, 말레이시아 해군 특수부대 '파스칼' 등등 많은 대테러 연합훈련 사진들이 있다. 투람 본인이 2004년에 창설된 필리핀 티어1 대테러부대 '''Light Reaction Regiment''' 창설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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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육군 대테러부대와 열차 인질구출 훈련을 수행중인 제1특전단 CIF특임대'''(C-1-1)''' 대원 투람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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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해상 대테러 훈련을 실시하는 제1특전단 CIF특임대'''(C-1-1)'''. 역시나 투람이 SNS에 올린 사진이다.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제1특전단 CIF특임대'''(C-1-1)'''은 우리나라에도 몇번 방문하여 제707특수임무단과 훈련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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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특전단 CIF특임대'''(C-1-1)'''와 제707특수임무단의 합동 훈련.(90년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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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특전단 CIF특임대'''(C-1-1)'''와 제707특수임무단의 합동 사격 훈련.(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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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 경호를 위해 한국에 온 제1특전단 CIF특임대'''(C-1-1)'''
톰 클랜시의 고스트 리콘 시리즈에 등장하는 특수부대 고스트(고스트 리콘)가 과거 제5특전단의 '''블루 라이트'''를 모티브로 하였다. 여기서는 제5특전단 제1특전대대 D지역대로 나온다.
7. 메달 오브 아너(명예 훈장) 수훈자
명예 훈장을 받게된 전투가 일어난 당시의 계급과 날짜, 지역임.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그린베레의 지원자 모집 방식이 현역에서의 선발과 신병 모집을 같이 실시했기 때문에 사병 계급이나 소위, 중위급 장교들도 있었음.)
- 베니 에킨스 중사 (제 5특전단)
1966년 3월 9일, Shau 골짜기 전투 (베트남)
- 유진 애쉴리 중사 (제 5특전단)
1968년 2월 7일, Lang Vei 전투 (베트남)
- 게리 베이커치 병장 (제 5특전단)
1970년 4월 1일, Dak Seang 캠프 전투 (베트남)
- 로이 베나비데즈 하사 (제 5특전단, MACV-SOG)
1968년 5월 2일, Loc Ninh (베트남)
- 윌리엄 M. 브라이언트 중사 (제 5특전단)
1969년 3월 24일, Long Khanh (베트남)
- 브라이언 L. 버커 병장 (제 5특전단)
1970년 4월 5일, Chaudoc (베트남)
- 존 R. 카바이아니 하사 (제 5특전단, MACV-SOG)
1971년 6월 4일 (베트남)
- 드류 D. 딕스 하사 (제 5특전단)
1968년 1월 31일 (캄보디아)
- 로저 H. C. 돈론 대위 (제 7특전단)
1964년 6월 6일, Nam Dong (베트남)
- 로렌 D. 하겐 중위 (제 5특전단, MACV-SOG)
1971년 8월 7일, Shau 계곡 (베트남)
- 찰스 E. 호스킹 중사 (제 5특전단, MACV-SOG)
1967년 3월 21일, Phuoc Long (베트남)
- 로버트 L. 하워드 중사 (제 5특전단, MACV-SOG)
1968년 12월 30일 (캄보디아)
- 존 J. 케덴버그 상병 (제 5특전단)
1968년 6월 13일 (라오스)
- 프랭클린 D. 밀러 하사 (제 5특전단, MACV-SOG)
1970년 1월 5일, Kon Tum (베트남)
- 멜빈 모리스 하사 (제 5특전단)
1969년 9월 17일, Chi Lang (베트남)
- 조세 로델라 중사 (제 5특전단)
1969년 9월 1일, Phuoc Long (베트남)
- 게리 M. 로즈 대위 (제 7특전단, MACV-SOG)
1970년 9월 11일 (라오스)
- 조지 K. 시슬러 중위 (제 5특전단)
1967년 2월 7일 (베트남)
- 찰스 Q. 윌리엄스 소위 (제 5특전단)
1965년 6월 9일, Dong Xoai (베트남)
- 고든 D. 인테마 병장 (제 5특전단)
1968년 1월 16일, Thang Binh (베트남)
- 프레드 W. 자비토스키 하사 (제 5특전단)
1968년 2월 19일 (라오스)
- 로버트 J. 밀러 하사 (제 3특전단)
2008년 1월 25일, 쿤나르 (아프가니스탄)
- 로날드 J. 슈러 하사 (제 3특전단)
2008년 4월 6일 Shok 골짜기 전투(아프가니스탄)
- 매튜 O. 윌리엄스 상사 (제 3특전단)
8. 출신 인물
8.1. 냉전시대(1950년~1990년대) 복무자들
그린베레의 경우 50~80년대 냉전시대 복무자들 중에 유명한 인물들이 많기 때문에 따로 언급한다. 이들 중 몇명은 1977년 델타 포스 창설 주역들이었기에 델타 포스 문서의 출신 인물 항목과 겹치는 사람도 몇 명 있다.
- 아론 뱅크 - 리조트에서 라이프 가드로 일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1942년 8월에 39세의 나이로 육군에 입대, 전략 사무국(OSS -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에 배치됨.[37] 1944년 6월에 프랑스로 공수 침투해서 레지스탕스들과 함께 사보타지 게릴라전 수행. 같은 해 8월, 연합군 프랑스 남부해안 상륙작전(작전명 'Dragoon') 당시 프랑스 빨치산들과 함께 남부지역 해안 도시에 먼저 침투해서 정규군 상륙전에 도시들을 해방시킴. 1944년 후반부터 45년 초에는 작전명 '아이언 크로스'라는 작전을 지휘함. 이작전은 독일군 전쟁포로, 탈영병, 독일 공산주의자들을 모아 OSS와 합동 특수작전부대를 편성해서 공수훈련과 친위대 군복을 입고 독일-오스트리아 국경선에서 아돌프 히틀러를 체포하는 작전이었음. 1945년 독일이 항복하자 OSS의 아론 뱅크는 아시아 인도차이나로 가서 베트남의 호치민과 만나 일본군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를 이끌었음.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역시나 같은 OSS 출신으로 필리핀에서 게릴라전을 이끌었던 러셀 볼크만 대령과 함께 특전단 창설을 주도함. 당시 소련에 점령당한 동유럽 국가에 침투하여 공산주의 '철의 장막' 뒤에서 반소련 레지스탕스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서였음. 1952년 그린베레 제10특전단이 최초로 창설되어 아론 뱅크가 초대 특전단장을 맡았고 1958년에 대령으로 군에서 은퇴하였음.
- 윌리엄 P. 야보로 - 그린베레의 대부. 1936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여 제57보병연대(필리핀 주둔), 제4사단 제29보병연대에서 복무. 이후 미 육군의 초기 공수부대 창설에 참여해서 제101공수사단의 제501공수연대에서 복무함.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1942년 '파라트룹 태스크 포스'의 일원으로 북아프리카 알제리, 튀니지에서 작전 수행. 1943년부터는 제82공수사단의 제504공수연대 제2대대장(중령)으로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침공작전에 참가. 이후 제509공수대대장을 맡아 1944년 1월에 이탈리아 안치오 상륙작전에 참가하였고, 이때 제75레인저연대#s3.1-제1레인저대대와 함께 선봉으로 침투해서 상륙지역 정찰작전 수행. 같은 해 8월에 연합군 프랑스 남부 상륙작전(작전명 'Dragoon')에서 공수부대 병력들이 선봉으로 공수하여 남부 산악지역을 장악하는데 그의 부대도 참가함. 1945년부터는 제92보병사단의 제473보병연대장(대령)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약. 종전 이후에도 유럽에 남아 미 제15군단의 헌병대장, 그리고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군 합동 헌병대를 창설함. 1947년부터 1949년까지는 미국 본토의 교육사령부에서 근무, 1950년에는 영국에 NATO 미 군사고문단 파견, 1952년에는 미 육군 전쟁 대학에 다니다가 1956년에는 캄보디아에 군사고문단으로 파견, 1958년에는 서독에 위치한 제66방첩국 대장을 맡음. 1961년부터 1965년까지 미 육군특수전학교의 교장을 맡아 이 시절에 특수전 교육을 정립하고 4개의 새로운 특전단을 신설하였으며,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초록색베레모(그린베레)를 특전단의 공식 상징으로 자리잡게 함. 1965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전회담 당시 유엔군, 한국군 측 대표로 참석하여 협상을 벌였고 이후에는 펜타곤에서 특수전, 심리전 참모, 몇년 뒤에는 육군 정보 참모부장 역임. 1968년에는 한국 주둔 제1군단장을, 1969년에는 미 태평양 육군 사령부 참모장과 부사령관 역임하고 1971년이 중장 계급으로 퇴역하였음. 영국 SAS의 명예 대원이었으며, 2012년에 그(야보로 중장)와 케네디 대통령의 동상이 JFK육군특수전학교에 세워짐.
- 아서 D. 시몬스 - 미주리대학교 ROTC 출신으로 1941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제98야전포병대대에 배치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태평양 전선 뉴기니에 배치됨. 이후 제6레인저대대 소속으로 태평양 전선 각지에서 활약. 카나바투안 포로수용소 구출작전에 참가하여 은성훈장을 받았고 전쟁이 끝나고 소령계급으로 퇴역함. 1951년에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서 레인저 교관, 터키 군사고문단, 미 육군 제18공수군단에서 근무하다가 1958년 그린베레 제7특전단에 배치됨. 1960년에는 육군 특수전학교에서 근무하였고 1961년에 중령으로 진급하여 1962년까지 내전 중이던 라오스에 파병되어 특전단 작전팀 지휘. 1962년부터 1964년까지 파나마에 신설된 제8특전단의 첫 특전단장 역임. 이후 MACV-SOG에 소속되어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 1970년에는 손타이 포로수용소 구출작전을 총 지휘하였음. 이 공로로 백악관에서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수훈 십자장[39] 을 받음. 1971년에 대령 계급으로 은퇴함. 1978년에 이란에 인질로 붙잡힌 미국인 회사 직원 2명을 구출하는 작전을 조직하여 석방시키기도 하였음. 그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오늘 날 JFK미육군특수전학교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음.
- 찰스 앨빈 베크위스 - 유명한 그린베레 장교이자 대테러부대인 델타 포스의 창설자. 찰스 앨빈 베크위스 부분 참조.
- 리처드 J. 메도우스 - 1947년 15살에 육군에 입대해서 제187공수연대 소속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 1953년에 그린베레에 지원해서 제77특전단[40] 과 제10특전단에서 복무. 1960년대 초반에 영국 SAS에 교환 장교로 파견되어 영국과 오만에서 SAS와 함께 복무함. 이후에 다시 제7특전단으로 돌아와서 라오스에 전투파병을 다녀옴. 이후 파나마에 제8특전단이 새롭게 창설되는걸 도와주게 되고 1965년부터는 MACV-SOG에 소속되어 베트남에 2차례 파병을 다녀오게 됨. 북베트남 지역에서 벌어졌던 그 유명한 손타이 포로수용소 구출작전에도 지휘관으로 참가했었음. 이후 레인저 훈련사령부에서도 근무하다가 1977년에 소령으로 퇴역함. 퇴역이후에도 민간 계약자 신분으로 고용되어 1977년 델타 포스 창설에 기여하였고 1980년 이란 대사관 인질구출작전에도 역시 민간 계약자 신분으로 참가함.
- 빌리 워프 - 1948년에 육군에 입대해서 제82공수사단에 배치.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제11공수사단의 제187공수연대로 옮겨가서 한국 전쟁에 참전. 전쟁이 끝난 후 서독에 주둔한 미 육군 제5보병사단에서 복무. 이때 그린베레에 지원하여 1958년에 서독에 위치한 제10특전단에 배치. 1961년에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남베트남에서 특수작전부대인 'CIDGs'[42] 에서 활동하였고 라오스에서도 작전 수행. 이후 계속 파병을 반복하였는데, 1965년 어느날에 그의 부대는 습격작전을 수행하다가 4,000명이 넘는 북베트남군과 중공군을 맞딱뜨리게 됨. 후퇴하는 도중에 빌리 워프는 다리에 총상, 머리에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채 쓰러지게 되고 북베트남 병사도 그가 죽은줄 알고 그냥 내버려 둠. 결국 동료들에게 구출되었고 병원에서 회복한 뒤 1965년 12월에 제7특전단으로 다시 복귀함. 그해(1966)에 또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고, Masher 작전에서의 무공으로 은성훈장과 퍼플하트(그에게는 6번째 였다.)를 받음. 이 시기에 그는 MACV-SOG의 CCN(북부 관할)에 소속되어 남베트남 특수부대와 캄보디아 병력과 함께 많은 게릴라전을 수행함. MACV-SOG에서 그는 원사 계급으로 최고참이었으며, 1970년에 군 역사상 처음으로 컴뱃 HALO 점프를 성공하기도 하였음. 그리고 1971년 6월 22일에 북베트남군 점령지역에 대한 마지막 HALO 점프도 성공하여 특수 정찰작전을 수행하였음. 무려 7년 6개월동안 베트남에 파병되어 있었던 그는 1971년에 미국으로 귀국하였고, 제10특전단에 있다가 1972년 2월 1일에 원사 계급으로 은퇴함. 은퇴 이후 우정공사에서 일하다가 1977년에 중앙정보국(CIA)으로 부터 연락을 받고 리비아에 가서 흑색작전을 수행함. 80년대에는 귀국해서 경찰관으로 일하다가 1992년에 다시 중앙정보국(CIA)의 연락을 받고 아프리카 수단에 파견되어 비밀작전 수행. 여기서 그는 카를로스 자칼, 오사마 빈 라덴을 감시함.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나고 그는 전직 특수부대 출신 용병들을 모아 CIA 특수활동부(CIA-SAD)와 그린베레 제5특전단 소속 작전팀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 북부 산악지대에서 활약함. 이때가 무려 72세 였음.
- 존 R. 카바이아니 - 1969년에 육군에 입대하였고 이듬해인 1970년 그린베레 제5특전단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됨. 1971년 6월 4일, 당시 MACV-SOG 소속으로 활동하던 그의 부대는 작전 도중 적군의 집중 공격을 받음. 카바이아니 하사(당시 계급)는 부대원들이 모두 헬기로 퇴출할 때 까지 혼자 남아서 엄호사격을 하였고 결국 북베트남군에게 생포당해 2년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지내게 됨. 1973년 3월에 협정을 통해 석방되었고 이듬해인 1974년 12월 12일에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게서 메달 오브 아너(명예훈장)을 받음. 이후에도 중동, 남미, 유럽, 동남아시아에 파병되어 복무함. 1980년부터 1983년까지는 서독에 주둔한 제10특전단에서 복무하였고, 1983년부터 1984년 여름까지는 제11특전단에서 복무함. 1984년부터 1989년까지 델타 포스에서 주임원사로 복무하다가 1990년에 은퇴함. 전세계 각지에서 free fall 과 static line 점프를 5,000회 이상이나 한 점프마스터 였음.
- 월터 L. 슈메이트 - 1952년에 미 육군에 입대하여 제11공수사단의 제187공수연대에 배치되어 한국전쟁에 참전. 이후에는 제11공수사단의 패스파인더 소대(Platoon)와 공수/점프 마스터 교관으로 근무. 그리고 이어서 제82공수사단의 제504공수연대에서 분대장으로 복무. 1962년 1월에 그린베레에 지원하여 선발과정인 Q코스를 통과하고 제1특전단의 일본 오키나와 주둔 부대에 배치되었고, 1964년까지 제1특전단에서 복무하며 베트남 전쟁에 2차례 전투파병을 다녀옴. 제1특전단에서 복무하던 시절인 1963년에 미 해군 수중폭파대(UDT)로 가서 스쿠버 다이버 교육을 받고 왔으며, 1964년에는 JFK육군특수전학교에서 고공교육(HALO)까지 받음. 1964년에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의 제7특전단으로 옮겼다가 얼마뒤 같은 곳에 위치한 JFK육군특수전학교의 특수전교육단(Special Warfare Training Group)에서 교관으로 근무. 이 시기에 그는 해군과의 협력을 통해 플로리다주 키웨스트 해군잠수학교에 육군 특전사 컴뱃 스쿠버 다이버 교육과정을 만들게 됨. 그후 1966년에 다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찰스 베크위스 대령 휘하의 '프로젝트 델타'에서 정찰팀장으로 활약. 1967년에 파병에서 돌아와 육군 특전사의 고공교육(HALO) 교관으로 2년간 근무. 1969년에는 특전단 제46태국파견대에서 근무하며 스쿠버 교육을 담당하였고, 이듬해인 1970년에는 다시 특수전교육단 교관으로 돌아와 플로리다주 키웨스트 해군잠수학교에 육군 특전사 전용 컴뱃 스쿠버 다이버 교육장 시설을 만들었음. 1971년에 다시 베트남에 파병되어 MACV-SOG 중부관할(CCC)에 1년간 소속되어 활약. 1972년부터는 다시 제1특전단의 일본 오키나와 주둔부대에 배치되었고 여기서 그는 스쿠버팀에 소속되어 오키나와 1특전단 부대내에서 자체적으로 스쿠버 교육을 실시함. 1974년에는 다시 제7특전단으로 돌아와서 복무했고 이때 계급이 육군 원사(SGM) 였음. 1977년에 찰스 베크위스 대령이 델타 포스를 만들때 초기 창설멤버 중 한명으로 참여하였고 델타 포스 OTC 선발훈련 교관을 맡음. 1979년 이란 대사관 인질 구출 작전에도 참가하였고 1982년도까지 델타 포스에서 복무하다가 육군에서 은퇴. 은퇴한 뒤에도 민간인 신분으로 델타 포스에서 1993년까지 계속 근무하였으며, 그가 사망한 다음해인 1994년에 육군 특전사 컴뱃 스쿠버 다이버 학교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기념타워를 건립하였음. 참고로 그의 아들인 앨런 슈메이트는 1989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82공수사단, 제75레인저연대, 제2보병사단(한국주둔)을 거쳐서 1997년부터 그린베레 장교로 제7특전단에서 2006년까지 복무하였고 이후에도 육군특수작전사령부(USASOC)와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에서 계속 복무하다가 2012년에 대령계급으로 전역함.(당연히 특전단 컴뱃 스쿠버 교육 이수자임.)
- 릭 램 -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후 1978년에 만18살의 나이로 육군에 입대하여 제75레인저연대 1대대에 배치됨. 레인저 시절 1980년에 있었던 이란 대사관 인질구출작전에 참가함. 1984년부터는 한국의 판문점 JSA에 위치한 UN군 사령부 지원단에서 근무하게됨. 이때 계급이 하사였음. 1984년 판문점 총격사건 당시 그는 미군 신속대응병력 소대를 이끌고 DMZ에서 40여명의 북한군과 교전을 벌여 수명을 사살함. 이 무공으로 그는 은성훈장과 미 육군 전투보병휘장을 받게 됨. 이후에 그는 그린베레에 지원하여 제7특전단에서 복무하게됨. 제7특전단 시절 1989년 파나마 침공작전에 참가하였고, 그의 작전팀은 188명의 포로를 잡았으며, 군사구역 한 곳의 완전한 항복을 받아냄. 또 그는 4명의 그린베레로 이루어진 공격팀을 이끌며 파나마 국립 라디오 방송국으로 침투하여 안테나와 트랜스미터기를 파괴하였고 이 무공으로 동성훈장을 받음. 이때 계급이 중사였음. 파나마 침공작전 이후에 그는 육군 특전사(그린베레)에서 제75레인저연대 3대대로 다시 발령이 나는데, 그린베레에서 다시 레인저로 간 사례는 미 육군 역사상 그가 처음이었다고 함.[43] 이후 1993년 모가디슈 전투에 참가하였고, 여기서 7시간째 교전을 치르다가 얼굴에 총상을 입게 되고 공로메달 'V'와 퍼플 하트를 받음. 병원에서 회복한 뒤에는 다시 그린베레 제3특전단으로 복귀,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복무. 1994년 아이티 쿠데타 사태 당시 파병되었고 이때 계급이 상사였음. 이후 제10특전단의 CIF 특임대에서 복무, 보스니아 내전때 파병되었으며 이때 계급이 원사였음. 2003년에는 제5특전단 제1특전대대 주임원사로써 이라크 전쟁에 참전. 군에서 전역한 뒤에는 민간계약자로 미 특수작전사령부(SOCOM)에서 정보 분석가로 일하기도 하였고, 2017년에는 주한미군특수전사령부에서 일하기도 하였음. 2017년에 미 국방부에서 선정하는 '코만도-명예의 전당', '레인저-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현재는 '글로벌 특수부대(SOF) 재단'의 스탭으로 일하고 있음.
- 마이클 테일러 - 2019년 일본에서 있었던 카를로스 곤 회장 탈출 사건의 기획자. 사설 군사업계에선 '캡틴 아메리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며 나름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함. 1960년에 군 정보장교였던 아버지와 웨이트리스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고교 졸업 후 육군에 입대하였고 이후 그린베레에 지원하여 제10특전단에 배치. 제10특전단(유럽 담당) 당시 HALO팀에 있었으며 전술 소형 핵배낭 침투팀에서도 복무함. 1982년 레바논 내전에 파병되었고, 그곳에서 레바논인 아내를 만남. 전역 이후 개인 회사를 설립하고 미 정부, 주로 FBI나 펜타곤, 마약단속국(DEA) 또는 개인고객들을 위해 용병, 군사훈련, 인질구출, 경호, 각종 심부름 등을 담당하며 건당 최소 2만달러에서 최대 2백만 달러 이상씩 벌어들였다함. 아내와 연고지가 있는 레바논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였는데[44] , 레바논에서 미국으로 밀수입되던 1억 달러 상당의 마약을 적발하여 몰수하기도 하였고 레바논에서 납치된 민간인을 구출하기도 하였음. 2001년 9.11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그의 회사의 직원들은 거의 2,000명이 넘었으며, 대부분이 그린베레 출신이거나 정보기관 출신이었음. 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매년 가을에는 메사추세츠주의 보딩스쿨에서 풋볼 코치를 맡기도 했음. 시리아에서는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숨겨놓은 황금을 찾는 일도 담당했음. 2019년에 과거 이라크에서 만나 친분이 있던 한 레바논 사업가(이 사람이 바로 카를로스 곤 회장의 친구)의 부탁으로 일본에서 카를로스 곤 회장의 탈출 사건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였음.
참고로 마이클 테일러가 과거 1970년대 후반에 그린베레 Q코스 선발훈련을 받을 당시, 지원자 169명 중에 3명이 최종적으로 통과하여 그린베레가 되었는데, 한명은 마이클 테일러(본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훗날 1993년에 모가디슈 전투에서 전사하여 명예 훈장을 받은 델타 포스 저격수인 '게리 고든'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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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회장 탈출사건 당시 공항 CCTV에 찍힌 마이클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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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회장 탈출사건 당시 공항 CCTV에 찍힌 마이클 테일러.
8.2. 2000년대 이후 복무자들
여기서는 2000년대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등 비교적 최근에 복무한 사람들을 언급한다. 최근 미국에는 특수부대 전역자들이 설립하여 운영하는 전술 사격 교육 회사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전부 다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몇몇 인물들만 소개한다.
(그린베레의 경우 전쟁터에 한번 파병되면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5개월 동안 머무르며 각종 특수작전을 수행한다. 따라서 3개월~4개월 단위로 전투파병되는 제75레인저연대나 델타 포스, 데브그루 전역자들에 비해 복무 기간이 같더라도 전투파병 횟수는 적을 수 밖에 없다.[45] )
- 마이크 글로버 -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1997년에 미 육군에 입대해서 제3미국보병연대(올드가드)로 군생활을 시작.[46] 이시절 공수교육과 레인저 스쿨 졸업. 2001년 9월 9일에 주방위군으로 전환하고 대학에 다니려고 했는데 이틀 뒤에 9.11 테러가 일어나서 다시 현역으로 전환, 그린베레 Q코스를 통과하고 2003년에 제3특전단에 배치됨. 이후 CIF 특임대에도 3년간 있었음. 2013년부터는 제19특전단(주방위군)으로 전환해서 파트 타임 복무하면서 정부 계약자로 일함. 1997년부터 2015년까지 총 18년간 복무하였고 원사로 은퇴. 이라크 전쟁에 5회,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2회, 리비아 내전에 1회, 아프리카 니제르에 1회 전투파병을 비롯하여 예멘, 파키스탄에도 다녀옴. 은퇴 이후에는 '필드크래프트 서바이벌'(사이트 링크)이라는 생존술 및 전술 사격 교육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 중. 사이트 링크를 클릭해보면 바로 회사 소속 교관들 프로필이 나오는데, 마이크 글로버 본인 이외에도 그린베레, 해병특전단(MARSOC) 출신과 이외에 타군 출신자들도 있음. 마이크 글로버 본인 개인 유튜브 채널도 있음.
마이크 글로버 인터뷰 영상
- 칼 에릭슨 - 총 25년간의 복무기간 중 18년간 그린베레에서 복무(제5특전단). 레인저 스쿨도 졸업했고 CIF특임대에서도 복무함. 은퇴 이후 현재는 '택티컬 라이플맨'(사이트 링크)이라는 전술 사격 교육 회사를 운영하고 있음. 사이트 링크를 클릭해보면 바로 회사 소속 교관들 프로필이 나오는데, 칼 에릭슨 본인 이외에도 그린베레, 네이비 씰, 해병특전단(MARSOC), 이스라엘 특수부대 출신자도 있으며 대부분이 20년 이상 복무한 베테랑들임.
칼 에릭슨의 간략한 소개영상
- 프랭키 맥래 - 제75레인저연대 1대대에서 군생활을 시작해서 그린베레 제1특전단의 1대대(오키나와)와 CIF특임대에서 복무. 이시절 필리핀 티어1 대테러부대인 'Light Reaction Regiment'[47] 의 창설에 기여함. 이후에는 CIF특임대 교육인 'SFARTAETC' 수석 교관을 맡음. 이후 제3특전단의 CIF특임대에서 복무하며 이라크 대테러부대 어드바이저도 맡고 함께 많은 작전도 수행함. 이스라엘 대테러 교육장에도 교관으로 파견다녀옴. 20년 넘게 복무하고 원사로 은퇴하였고 현재는 '레이돈 택틱스'(사이트 링크)라는 전술 사격 교육 회사를 설립하고 강사로도 활동 중. 사이트 링크를 클릭해보면 교관들 프로필이 바로 나오는데, 프랭키 맥래 본인 외에도 대부분이 그린베레 CIF특임대 출신자들임.
- 마이클 에보크 - 1988년에 입대해서 제82공수사단에서 4년간 복무한 뒤 1992년에 그린베레에 지원해서 1994년부터 제7특전단에서 2009년까지 복무하고 은퇴. 총 21년간 복무했고 최종 계급은 준위(CW3). 500회 이상 작전 수행. 복무 도중 헬기 충돌과 IED 폭발물 등 50회 이상의 부상을 당하고 PTSD까지 얻었지만 전역 이후 그린베레 자선 재단도 만들어 전우들을 돕고 있음. 현재 'F.H.F 택티컬 모빌리티'(사이트 링크)라는 전술 사격 교육 회사를 설립하고 CEO이자 강사로 활동 중. 사이트 링크를 클릭해보면 교관들과 회사 스탭들 프로필이 나오는데 대부분 그린베레나 제75레인저연대 출신자들임.
- 제본 더햄 - 육군에 입대해서 제101공수사단에서 6년간 복무하며 이 시절 코소보,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한 차례씩 파병을 다녀옴. 이후 그린베레에 지원해서 제5특전단에서 추가로 6회 전투파병을 더 다녀옴. CIF특임대에서도 복무했으며 상사 계급으로 은퇴. 현재는 '에쎗'(사이트 링크)이라는 전술 사격 교육 및 경호 회사의 부사장&사격술 교관을 맡고 있음. 사이트 링크를 클릭해보면 사격 교관들 프로필이 나오는데 대부분 그린베레 출신들임.
- 아론 바루가 - 필리핀계 미국인이며 제2차 세계 대전때 미 해군으로 참전한 할아버지를 따라 군입대. 2004년부터 그린베레 제1특전단에서 복무하다가 2013년에 은퇴하였음. '게릴라 어프로치'(사이트 링크)라는 전술 사격 교육 회사를 설립하고 총기 강사로 활동 중.
아론 바루가의 인터뷰 영상
- 존 허스 - 1985년에 입대해서 제82공수사단에서 복무. 1997년에 그린베레 선발 Q코스에 지원해서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제1특전단에서 복무하고 은퇴. 레인저 스쿨 졸업. 총 23년간 복무했고 현재는 'TYR 그룹'(사이트 링크)이라는 전술 사격 교육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중.
- 마이크 그린 - 15년간 그린베레에서 복무하였으며 CIF특임대, CQC 교관[48] 도 했음. 레인저 스쿨도 졸업. 이후 7년간 정부 계약자로 일했고, 10년간 국방부에서 스탭으로 일함. 현재는 '그린 옵스'(사이트 링크)라는 전술 사격 교육 회사를 설립하여 활동 중.
- 팀 케네디 - 현역(주방위군) 그린베레 대원이자 UFC 소속 MMA 격투기 선수. 2001년에 9월 12일에 입대해서 레인저 스쿨도 졸업하고 2004년부터 그린베레 제7특전단에서 복무. 2009년부터는 주방위군인 제19특전단과 제20특전단에서 복무하였음.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수차례 전투 파병 이외에도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에서도 복무함. 2006년 이라크에서 알카에다 두목인 알 자르카위 체포작전을 벌이던 '태스크포스 145'에도 참여함. '쉽 도그 리스폰스'(사이트 링크)라는 전술 사격 훈련 회사에서도 강사로 활동하고 있음. MMA 격투기 선수로써 팀 케네디의 전적은 팀 케네디 문서 참조.
- 잭 네빌스 - 총 25년간 복무하였고 첫 2년간은 제75레인저연대 1대대에서, 나머지 23년 동안은 그린베레 제3특전단과 제7특전단 그리고 JFK육군특수전학교에서 복무함. 2013년에 원사 계급으로 은퇴.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여러번 파병되어 수많은 작전을 수행하였고 이외에도 중남미,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도 다녀옴. '더 리디플로이드'(사이트 링크)라는 회사를 세워 운영하고 있음.
- 카와 모울레 - 미국 네바다 태생의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으로 대학교 졸업 후 더 넓은 세상을 보기위해 2000년에 미 해병대 보병으로 입대. 5년간 복무하며 이라크에 3차례 전투파병. 2003년 이라크 전쟁 개전 당시 초기 침공작전과 2004년 팔루자 전투에도 참가했었음. 전역 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좋은 회사에 잠시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다시 육군 재입대. 2006년에 그린베레 Q코스를 졸업하고 제5특전단에 배치. 수차례 전투파병을 다녀오고 나서 2017년에 중사로 은퇴함. 현재는 '무사 컨설팅'(사이트 링크)을 설립하고 각종 영화, 엔터테인먼트, 게임 그리고 기술 업계에 밀리터리 어드바이저로 활동하고 있음.
- 테리 샤퍼트 -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윌밍턴을 다니던 시절에 당시 ROTC였던 대학친구에게서 베트남 전쟁 시절 그린베레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빌려서 읽고 매료되어 대학을 졸업한 1988년에 미 육군 입대. OCS 장교에 지원이 가능했지만 그냥 거절하고 제82공수사단에 배치되어 레인저 스쿨을 졸업하고 정찰대에서 복무. 1990년 걸프 전쟁에 참가하였고 1991년에 전쟁이 끝난 직후 그린베레에 지원하여 의무주특기로 1997년까지 복무. 이 시절 보스니아 내전 참가. 잠시 배우로 일하다가 2001년에 9.11 테러가 일어나자 주방위군인 제19특전단으로 재입대하였고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여러 차례 파병을 다녀오고 2017년에 상사 계급으로 은퇴. 특전사 스쿠버 다이버 교육 이수자. 2009년 히스토리 채널의 밀리터리 역사물 '워리어스'의 진행자로 출연하였고, 2013년에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리얼리티 서바이벌 쇼 'Dude, You screwed up'에 교관으로, 2017년에는 영국 BBC 방송 '스페셜 포스 - 얼티메이트 헬 윅'에 교관으로도 출연하는 등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BBC 스페셜포스 얼티메이트 헬윅 교관 소개 페이지) 이외에도 히스토리 채널의 '테리 샤퍼트와 함께 하는 아시아의 특수부대들' 시리즈에도 출연하였다.
테리 샤퍼트와 함께 하는 아시아의 특수부대들 - 태국 해병대 수색대 에피소드
- 제이슨 에버맨 - 본래 기타리스트로 너바나의 음악에 매료되어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커트에게 1집 앨범 Bleach의 제작비로 빌려주고 밴드의 네 번째 멤버가 되었다. 고마움의 표시로 제이슨은 앨범 커버에도 같이 찍혔고 앨범 크레딧에도 적혀있지만 실제로 녹음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후 몇 달동안 너바나의 멤버로서 공연을 돌지만 몇달 안가 음악적 지향의 차이로 탈퇴하게 된다. 그 후 사운드가든 객원 맴버 등을 거치다가 갑자기 음악계를 떠나 1994년 미 육군에 입대, 제75레인저연대를 거쳐 2001년 그린베레에 전입하여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 전투파병을 다녀온 후 2006년 전역하였다. 최근에는 전역자들을 모은 밴드에서 음악활동을 다시 하고 있다고 한다.
제이슨 에버맨의 사진
8.3. 명예 임명자
9. 여담
멋있고 위용이 있지만, 역시 이는 모두 '''대가를 치르고''' 얻은 멋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전에 참전한 그린 베레들은 엄청나게 위험한 임무를 치뤘던 전쟁의 후유증으로 PTSD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어떤 그린 베레 전역자의 경우 아예 사람들 주위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가까이 오는 자들을 '''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한 베트남전 당시 일반 보병 장교들은 휘하 사병들에게 그린 베레 대원들에게 함부로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 이유는 그런 장난을 치면 그린 베레 대원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그들을 '''적으로''' 인식해서 그 자리에서 죽여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49] 참고로 영화 람보 시리즈의 주인공 존 람보가 그린 베레이며, 이 영화 1편을 보면 PTSD가 어떤 것인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50]
1966년에는 그린 베레의 훈련을 받아가며 그린 베레를 취재하고 책 '그린 베레(The Green Beret)'를 쓴 작가 로빈 무어와 그린 베레 하사관 출신인 가수 배리 새들러가 The Ballad of the Green Berets(그린 베레 연가)라는 노래를 쓰기도 했다. 이 곡은 무려 빌보드 차트 1위까지 올랐다!
배리 새들러의 공연 실황 영상
독일어판 개사곡도 존재한다. 곡명은 <Hundert Mann und ein Befehl(100명의 대원과 하나의 명령)>. 이 곡은 원곡 가사와는 동떨어진 '''반전가요'''다. 오스트리아 출신 가수 프레디 크빈(Freddy Quinn)이 곡을 개사하여 불렀는데, 이 곡은 베트남 전쟁 당시 형성된 반전 여론과 맞물려 독일어권 국가에서 그의 히트곡이 되었다.
그린 베레 : 네이버 캐스트
10. 대중매체 속의 그린 베레
베트남전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는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하고 대표적인 특수부대로 통했고 영화 등 대중매체에서도 특수부대의 대명사이자 대표격같은 위치를 점하며 가장 자주 등장했었다. 람보(영화)가 그 예이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 되어버린 게 최근 들어 같은 육군에서 보다 소수정예부대인 델타 포스나, 블랙 호크 다운으로 인지도가 올라간 제75레인저연대, 그리고 해군에서 1990년대부터 대중매체를 통한 부대 홍보에 적극적이었던 네이비 실[51] 에 밀려 예전보다는 등장이 뜸한 상황이다. 최근 들어 12 솔져스가 나오는 등 대중매체의 주목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 하다.
조용한 프로들이라는 그린 베레의 별명답게 뒤에서 눈에 안 띄게 은밀히 작전하는 경우가 많은 이 부대의 성격상, 보다 화끈하게 터트리며 대놓고 싸우는 제75레인저연대나 네이비 씰에 비하면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재미는 덜하다는 이유가 큰 듯 하다. 사실 예전에 그린 베레 출신 캐릭터가 액션영화에 많이 등장하던 시대에는, 이러한 부대의 구체적인 성격을 고려하기 보다는 단지 제일 대표적이고 저명한 특수부대라는 이유에서 단골로 등장시켰던 면도 있다.
America's Army 2에서는 레인저와 함께 미 육군 특전사이 등장한다. 미 육군 특전사이 등장하는 맵에서는 레인저와 함께 M4A1 SOPMOD 카빈이나 AT-4와 같은 화기를 사용할 수 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 영화 코만도에서 쿡과 싸울 때 "나는 그린 베레를 아침밥으로 먹지''라는 명대사를 날린다.[52]
이는 당시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액션배우계의 라이벌 관계에 있던 실베스터 스탤론이 영화 람보에서 그린 베레 출신 캐릭터로 나온 것을 의식한 고의적인 디스 유머가 깔려있는 대사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영화상에서 그렇게 그린 베레 디스를 한 아놀드가 아이러니하게도 코만도에 출연하고 고작 2년 뒤에 출현한 영화 프레데터에서 '''그린 베레 대원 역으로 나오게 된다'''(...)
군알못 기자나 번역가들이 Special Forces가 그린 베레를 통칭해야 하는 문맥에서 번역을 그냥 특수부대로 퉁쳐버리는 경우가 많아 한국 대중에게의 노출이 더 줄어든 것도 있다.
그린 베레 관련 서적으로는 2007년 국내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그린 베레' 소설이 있다. 내용은 존 웨인이 출연했던 1968년도 영화 그린 베레와 거의 비슷하다.
- 지옥의 묵시록 - 커츠 대령
- 람보 시리즈 - 존 람보 - 가장 유명한 그린 베레 출신 캐릭터, 트라우트만 대령
- 프레데터 1 - 앨런 '더치' 쉐퍼 소령
- 디어 헌터 - 마이클
- 영화 그린 베레 - 커비 대령을 비롯한 주인공들
- 미국 드라마 The A-Team - 한니발, 페이스맨, B.A, 하울링 매드[53]
-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 존 리스
- 레인보우 식스 - 호머 존스턴 중사, 조지 톰린슨 하사
- 레프트 4 데드 - 빌
- 게임 그린 베레
- 크레용 신짱 - 수잔 코유키
- 재기드 얼라이언스 2 - 렌
- 코만도 - 쿡
- 심슨 가족 -시모어 스키너[54]
- Happy Tree Friends - 플리피[55]
- 암살교실 - 크레이그 호죠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배드 컴퍼니[56]
- 메탈기어 시리즈-솔리드 스네이크[57] ,빅보스[58] [59]
- 12 솔져스 - 595분견대
[1] 원문은 '''Caedite eos. Novit enim Dominus qui sunt eius''' 에서 왔다. 직역하자면 '''"모조리 죽여라. 신이 가려낼 것이다."'''(...) 십자군이 무고한 신도와 이단을 어떻게 구분하냐고 묻자 교황 특사가 했던 말.[2] Mercenary를 Mercenery라고 오타를 낸 것.[3] 이런 류의 구호는 비공식적인 이른바 Badass적인 구호이다.[4] 영어로 미 해군 특수부대를 '네이비 씰' - Navy Seals(Sea, Air and Land)라고 부르듯이 미 육군 특수부대를 '아미 에스에프' - Army SF(Special Forces)라고 부른다.[5] 특정부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므로 영문 명칭에 대문자를 쓰지 않는다.[6] 근데 영어권에서도 별다른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이를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7] 서구권에선 'special operation forces' 외에도 'commando'라는 단어도 보통명사인 특수부대라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8] 이에 영향을 받은 과거 대한민국 특전사에서도 1960~70년대엔 산속에서 뱀 잡아서 먹는 생존훈련도 했었고, 시범을 보일 때도 생뱀 죽이고 잡아 먹는 게 주요 레파토리였다. 그러나 기생충 감염 등 부작용 문제 때문에 그 후론 하지 않고, 생존훈련 때도 뱀 대신 생닭 등을 잡아서 먹는 것으로 교육훈련 내용이 바뀌었다. 원조인 미 그린 베레도 뱀 먹기는 안한지 오래된 듯.[9] Army the 10th Special Forces Group (Airborne)[10] 이런 초창기 특수부대들은 대부분 전쟁중에 한시적으로 조직되어 운용되다가 종전 전후로 해체됐다. 이는 이들 부대뿐 아니라 레인저대대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나라들의 특수부대들도 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조직되어 활동하다가 종전 후엔 없어지거나 대폭 축소되는 길을 걸었다.[11] 그린 베레의 대부. 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 공수부대 창설을 주도했으며, 해당 부대에서 사용하는 여러 장구류 등을 직접 고안하기도 했다. 1965년경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전회담 남측 대표이기도 했으며, 당시 북측 장성과의 회담에서의 독설은 유명하다. 중장 예편, 2005년에 사망했다.[12] 훗날 SAS의 영향과 베트남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델타 포스를 창설한 인물이다.[13] 베트남전에서 그린 베레는 적지에서의 정찰 임무를 자주 수행하였는데 만일 적에게 발각되면 수적으로 매우 열세인 상황에서 추격을 뿌리치고 탈출해야 했기에 화력이 좋고 격발시점을 선택할 수 있는 클레이모어가 큰 도움이 되었다.[14] 이는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이 쿠르드족의 반이라크 감정을 이용해 먹은것과 같다.[15]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군사요원, 정치요원, 보급 담당자, 세금 징수원을 목표로 26369명을 살해한 이 작전은 지역 단위로 목표량을 할당하는 무리한 방식으로 이루어 졌기에 필연적으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구정 공세의 결과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는 애시당초 작전이 목표로 했던 주요 조직원이라 할만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전쟁범죄를 범한 것이다.[16] 공군 특수부대 CCT의 임무가 그린 베레나 네이비씰 작전팀에 소수가 배속되어 폭격 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PJ(Para Jumper:항공구조사)도 작전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무주특기로 조종사 구출, 간단한 야전수술 등 응급처치가 가능한 응급외과의 수준을 갖추고 있다.[17] 대표적인게 제5특전단장 로버트 롤트 대령이 남베트남군 정보장교 타이 칵 응웬이 배신자라는 확실한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부하들을 시켜 그를 살해한 사건이다. 격분한 주월미군 사령관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장군은 롤트 대령을 체포하라 명령했고 나중에 확실한 증거가 나와 롤트 대령의 혐의가 벗겨 졌지만 끝까지 그의 특전사 복귀를 반대할 정도로 지휘 체계를 무시하는 그린 베레에 대한 에이브럼스 장군의 반감은 컸다.[18] 반면 주 임무의 성격은 좀 다르지만 같은 육군의 특수부대인 레인저 중대들은 베트남전에서 인권유린 문제를 많이 일으키지도 않았고, 그린 베레처럼 독자적으로 움직인게 아니라 각 보병사단 예하에 소속되어 해당 보병사단의 명령대로 작전했기 때문에 육군 보병 지휘관들에게 크게 반감을 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육군은 각 보병사단에 산재해 있던 레인저 중대들을 베트남 철수 후에 2개의 레인저 대대로 통합시켰고, 더 나아가 1980년대에 이 레인저대대들도 통합시켜서 제75레인저연대를 창설하며 독자성을 크게 강화시키고 세를 키워주게 된다.[19] 그린 베레에 대한 숙청의 원인에는 베트남인에 대한 인권유린 사례들과, 육군의 전통적인 명령계통을 무시하고 지멋대로 움직이는 오만함 등 그린 베레의 잘못도 상당했다. 하지만 비정규전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했던 육군 수뇌부의 입장에서 안좋게 보인 그런 행동들은, 적진 깊숙히 들어가서 여러 변칙적인 공작 작전을 벌여야 하는 그린 베레의 임무 성격 자체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면도 있다. 그리고 미국 입장에선 명분도 실속도 없이 큰 손해만 입은채 끝나버렸던 베트남전에 대한 반성과 비난의 여론이 갈수록 팽배하던 70년대 중,후반의 사회 분위기에서 미국 정부로서는 구체적인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도 있다.[20] 참고로 냉전시대에는 소형 전술 핵배낭을 메고 후방에 침투하는 임무도 A분견대에서 담당했다. 한국 파견 분견대 역시 동일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21] 이때는 그린베레 뿐만이 아니라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CIA 소속 특수부대들 모두 인적 손실과 전투피로가 극에 달했던 시절이였다. 예를 들면 델타포스만 하더라도 OTC 양성 인원들 보다 전투 손실이 더 커져버려서 전역자들과 그린베레를 포함해서 타 특수부대에서 지원과 차출을 받아서 겨우 급한불을 껐다.[22] 육성기간이 걸리는 특수부대원이란 특성상 엄청난 피해였지만 반대로 이걸 자랑하기 위해 올린 무장세력 측은 이들을 죽이기 위해 알려진 것만 20여 명이 사살당했기 때문에 기막히게도 현지의 인간에 대한 가치가 어떤지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렇게 많이 죽고도 좋아한다는 조롱을 받게 되었다.[23] 참고로 이 부대는 구사일생으로 근처 프랑스 공군 소속 미라주 2000의 위협비행 덕에 살아남았다고 한다. 원래는 현지 무장세력을 폭탄으로 갈아버리려고 했으나, 특전사 요원들 및 니제르군과 무장세력 간의 거리가 워낙 가까워 위협비행으로 내쫓을 수밖에 없었다고. 사실 의외로 대 게릴라전과 같은 비정규전에서 위협비행이 효력을 상당히 발휘한다. 당장 SAS에서도 이라크에서 작전 끝내고 돌아가다가 1:10으로 매복에 걸려 죽을 뻔 했던 걸 미군 측 F-16이 소닉 붐까지 이용한 위압비행으로 현지 무장세력을 쫓아내서 살려낸 게 유명하다.# 애초에 대공망은 커녕 제대로 훈련 안된 비정규군이 상대고, 여차하면 폭격으로 뒤엎어버리겠다는 의사표시이니. 설사 급히 비상출격했다해도 기총으로 살짝 긁어주면 이런 비정규군들은 혼비백산할 가능성이 높다.[24]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post-Vietnam_War_Medal_of_Honor_recipients[25] 그린 베레 편제에는 사병 계급이 없다.[26] 델타 포스, 데브그루처럼 그린베레 역시 석/박사 학위자도 많다. 게다가 뛰어난 지능이 요구하는 바, 체력과 별개로 자체 필기 시험의 성적도 좋아야 한다.[27] Special Forces Detachment-Korea. 줄여서 SFD-K 혹은 Det-K라고 불렀다. 현재는 제39 특전사 파견대(39th Special Forces Detachment)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특전사의 부대 내에 있다. 존재 자체가 기밀이었는데 엉뚱하게도 위례신도시 개발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28] 쉽게 말해 엔진시동이 꺼진 차를 밀어 옮기는것이라고 보면된다. 차이점이라면 폐기된 지프를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중립으로 기어를 세우고 옮기는 일반 차량과는 다르다. 즉 순수하게 사람의 힘만을 이용해 옮기는것이다. 게다가 평지만 있는게 아닌 오르막길이나 굴곡이 심한 길도 이용해야 하므로 헬게이트가 따로 없다.[29] 참고로 이 육군 특수전 메딕과정(SOCM)에는 육군 제75레인저연대, 해군 네이비 씰의 의무 담당 주특기와 공군 파라레스큐, 특수해상수색 의무병(포스리콘 메딕)도 위탁 교육받기 위해 입교한다. 다만 타군 위탁 교육생은 24주 과정으로 받게된다.[30] 12명으로 이루어진 특전팀의 주특기부사관제 역시 그대로 들여왔다[31] 참고로 이때 제3특전단 장교 한명은 베트남에 계속 남아서 1970년 손타이 포로수용소 구출작전, 1975년에는 사이공 함락 당시 마지막 탈출 작전까지 참가했다.[32] 이 작전은 2달뒤 미국이 본격적으로 파나마를 침공할때 델타 포스가 맡게 된다.[33] 전투에서의 용맹행위로 훈장을 수여받았을 때, "V"(“Valor”의 머릿 글자)를 훈장에 착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음.[34] 쉽게 말해서 벨기에판 제75레인저연대에 해당하는 특수부대.[35] 영문기사https://foreignpolicy.com/2013/05/02/benghazi-ii-a-military-analysis-of-the-fox-mystery-mans-fantasy-rescue-plan/에 대략 40명이라고 나온다. 링크는 비록 유명 언론사이긴 해도 대개의 경우 밀리터리와 관련된 언론기사는 그다지 신빙성이..[36] 그러니까 그린베레 Q코스를 졸업하고 이제 막 특전단에 배치된 신참 그린베레대원이 자신의 특전단 부대 고참보다 군번이 더 빠를수도 있고, 이전부대에서 전투파병을 더 많이 다녀온 사람일수도 있다는 이야기. 애초에 민간인 입대자를 대상으로 특전부사관 기수를 부여하고 타부대에서 전입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특전사와는 완전히 다르다.[37] 입대 당시 나이가 39살이었지만 라이프가드 출신답게 운동 능력이 상당했다고 함.[38] JFK육군특수전학교에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함께 서있는 동상은 따로 있다.[39] Distinguished Service Cross[40] 오늘 날 제7특전단의 전신.[41] 스페셜포스(Special Force) 탭은 1980년대에 가서야 생긴 것임.[42] Civilian Irregular Defence Groups. CIA와 그린베레가 시행한 흑색작전의 일환으로 남베트남 민간인들을 비정규 게릴라 대원으로 훈련시키는 프로그램.[43] 원래는 불가능한데 릭 램과 평소에 친했던 육군 중장이 특별 명령으로 가능하게 해줬다고 한다. 75레인저연대에서 복무하다가 그린베레로 넘어간 사례는 무수히 많지만, 그린베레에서 복무하던 부사관 계급이 다시 제75레인저연대로 들어가는 것은 인사발령이 거부 되었다고 한다.[44] 그 당시 레바논은 여행금지 국가[45] 물론 이들부대라고 해서 무조건 3~4개월 단위로 파병되는건 아니고, 바쁜시기에는 6개월씩 파병되기도 한다. 어쨋건 그린베레에 비해 짧은 것은 사실이다.[46] 원래는 제75레인저연대로 갈려고 11h 주특기로 입대했는데, 신병훈련소와 심화 개별 교육(AIT)을 마치고 나니 레인저 교관이 와서 제75레인저연대에는 11h 주특기가 없다고 함. 결국 제25경보병사단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가기 싫어서 차라리 제3보병연대(올드가드)로 간 것.[47] 2004년에 창설된 필리핀군의 티어1 대테러부대.[48] CIF 특임대를 말하는게 아니라 그린베레 선발 Q코스 끝나고 받는 SFAUC교육의 CQC 교관을 말함.[49]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위험하다. 잊지말자. '''이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특전사'''들이다. 전장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고 어지간한 민간인들은 감당도 못하는 정신나간 훈련들을 버티고 또 밥먹듯 하는 이들이다. 이런 이들을 상대로 민간인 한둘이 달려든다고 뭐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며 진짜 맘만 먹으면 눈깜짝할 사이에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50] 뱀발로 해피 트리 프렌즈의 녹색 베레모를 쓴 플리피도 이 특수부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로 추정된다. 특히 자신에게 가까이오는 사람들을 적으로 인식하는 극심한 PTSD도 그린 베레 대원들이 겪는 후유증을 반영한 듯 하다.[51] 단, 네이비 씰은 헐리우드와 매스컴을 통해 지나치게 언플하는 성향 때문에 '''빅 마우스 허풍선'''이라며 많이 까이기도 한다.[52] 영화 코만도에서 매트릭스(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퇴역한 델타 포스 대령이라는 설정.[53] 극장판에서는 레인져+그린 베레 출신으로 바뀌었다.[54] 초기 시즌에서 학교 축제를 여는 데 디즈니에서 변호사와 떡대 2명이 찾아와 저작권을 가지고 협박을 했다. 이때 스키너는 당신은 그린 베레 출신을 건드렸다고 경고한 뒤 변호사와 자신보다 덩치가 큰 떡대 2명을 순식간에 때려눕혔다.[55] 설정상 전직 그린 베레 군인으로 전쟁터 유경험자이며 전장에서 얻은 심각한 PTSD로 인해 다중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데 이 탓에 정상적인 행동에서 전장의 참상을 기억하고 자주 폭주해 살인을 일삼는다.[56] 사람은 아니고 군인으로 이루어진 스탠드로 구성원 중에 그린 베레가 있다.[57] 10대때 입대 하여 걸프전에 참전 하였다.[58] 네이키드 스네이크[59] 10대 한국전쟁 참전이후 그린 베레 소속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