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쿠라 키타
片倉喜多
(1538년 ~ 1610년 7월)
일본 전국시대의 여성. 다테의 삼걸 중 두 사람, 카타쿠라 카게츠나, 오니니와 츠나모토의 누나[1] 이자 다테 마사무네의 유모.
원래 그녀의 친부는 다테 가의 중신인 오니니와 요시나오이다. 어머니 나오코는 딸인 키타 하나만 낳았을 뿐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에, 요시나오의 측실이 아들[2] 을 출산하여 정실로 지위가 올라가면서 이혼을 당했다. 이후 나오코는 키타를 데리고 오니니와 가를 떠나 카타쿠라 카게시게와 재혼했고, 이후 1557년에 카타쿠라 카게츠나를 낳았다.
여성임에도 문무 양도에 능했으며, 특히 병법서를 즐겨 읽었다고 전해진다. 동생 카게츠나도 키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했다고 알려지며, 후에 다테 마사무네가 태어나자 마사무네의 아버지 테루무네의 명으로 마사무네의 유모가 되었다. 다만 이 당시 키타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있었기 때문에, 유모라기보다는 사실상 보모에 가까운 역할을 맡게 되었고 실제로 당시의 기록에도 이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카게츠나와 마찬가지로 마사무네도 성장하면서 인격 형성에 있어 키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마사무네가 성장한 후에는 마사무네의 정실 메고히메를 모시게 되었으며, 메고히메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인질이 되어 교토로 상경했을 때도 따라가서 섬겼다. 이 때 히데요시를 알현한 적이 있었는데, 히데요시는 키타의 재주를 높이 사 '쇼나곤(少納言)'이라 칭했다고 한다.
1602년 시로이시 성주가 된 동생 카게츠나를 따라 거처를 옮겼으며, 1610년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카타쿠라 가문의 기지물[3] 로 쓰인 쿠로즈리가네(黒釣鐘) 문양은 키타가 고안한 것이라고 하며, 이 문양은 현재 시로이시 시의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로이시 시 문장 및 상징물 소개 페이지
실제 역사에서 문무를 겸비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창작물에서는 주로 여장부형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녀의 인지도를 전국적으로 상승시켜준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 독안룡 마사무네의 키타가 대표적인 사례로, 해당 드라마에서는 타케시타 케이코가 연기했다. 다른 전국시대 배경 창작물에서도 나기나타를 들고 있거나 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지는 편. 전국 바사라 시리즈에서는 아예 등장하지 않고 언급도 되지 않지만, 동생이 세습명인 카타쿠라 코쥬로로 나오기 때문에[4] 2차 창작에서 간혹 언급되곤 한다. 주로 아무리 극살모드의 코쥬로라도 키타 앞에서는 설설 긴다거나 하는 등의 동인설정이 많은 편. 한편 독안룡 마사무네 방영 당시에는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부터 카타쿠라 가문의 위패를 모신 절에 찾아오는 일부 참배객들이 키타처럼 되고 싶다면서 절에 모셔져 있는 그녀의 비석을 조금씩 깎아가는 짓을 하기도 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례도 있었다.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 등장.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에 와서 히메무장 모드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여성무장들 중 하나로 무력이 많이 낮지만 나머지 능력치들이 70대 초에서 후반까지 마크하는 쓸만한 수준이다. 특히 여성무장들 가운데 생년이 가장 빠른 축에 속하며, 초중반 시나리오부터 등장하기 때문에 요긴한 인재가 아닐 수 없다. 당장 통솔, 정치가 동생인 오니니와 츠나모토와 비벼볼 수 있는 정도라 마사무네나 다테 쌍벽들이 없는 시기에 활약 빈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1538년 ~ 1610년 7월)
1. 개요
일본 전국시대의 여성. 다테의 삼걸 중 두 사람, 카타쿠라 카게츠나, 오니니와 츠나모토의 누나[1] 이자 다테 마사무네의 유모.
2. 생애
원래 그녀의 친부는 다테 가의 중신인 오니니와 요시나오이다. 어머니 나오코는 딸인 키타 하나만 낳았을 뿐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에, 요시나오의 측실이 아들[2] 을 출산하여 정실로 지위가 올라가면서 이혼을 당했다. 이후 나오코는 키타를 데리고 오니니와 가를 떠나 카타쿠라 카게시게와 재혼했고, 이후 1557년에 카타쿠라 카게츠나를 낳았다.
여성임에도 문무 양도에 능했으며, 특히 병법서를 즐겨 읽었다고 전해진다. 동생 카게츠나도 키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했다고 알려지며, 후에 다테 마사무네가 태어나자 마사무네의 아버지 테루무네의 명으로 마사무네의 유모가 되었다. 다만 이 당시 키타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있었기 때문에, 유모라기보다는 사실상 보모에 가까운 역할을 맡게 되었고 실제로 당시의 기록에도 이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카게츠나와 마찬가지로 마사무네도 성장하면서 인격 형성에 있어 키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마사무네가 성장한 후에는 마사무네의 정실 메고히메를 모시게 되었으며, 메고히메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인질이 되어 교토로 상경했을 때도 따라가서 섬겼다. 이 때 히데요시를 알현한 적이 있었는데, 히데요시는 키타의 재주를 높이 사 '쇼나곤(少納言)'이라 칭했다고 한다.
1602년 시로이시 성주가 된 동생 카게츠나를 따라 거처를 옮겼으며, 1610년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3. 기타
카타쿠라 가문의 기지물[3] 로 쓰인 쿠로즈리가네(黒釣鐘) 문양은 키타가 고안한 것이라고 하며, 이 문양은 현재 시로이시 시의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로이시 시 문장 및 상징물 소개 페이지
4. 대중 매체에서
실제 역사에서 문무를 겸비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창작물에서는 주로 여장부형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녀의 인지도를 전국적으로 상승시켜준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 독안룡 마사무네의 키타가 대표적인 사례로, 해당 드라마에서는 타케시타 케이코가 연기했다. 다른 전국시대 배경 창작물에서도 나기나타를 들고 있거나 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지는 편. 전국 바사라 시리즈에서는 아예 등장하지 않고 언급도 되지 않지만, 동생이 세습명인 카타쿠라 코쥬로로 나오기 때문에[4] 2차 창작에서 간혹 언급되곤 한다. 주로 아무리 극살모드의 코쥬로라도 키타 앞에서는 설설 긴다거나 하는 등의 동인설정이 많은 편. 한편 독안룡 마사무네 방영 당시에는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부터 카타쿠라 가문의 위패를 모신 절에 찾아오는 일부 참배객들이 키타처럼 되고 싶다면서 절에 모셔져 있는 그녀의 비석을 조금씩 깎아가는 짓을 하기도 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례도 있었다.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 등장.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에 와서 히메무장 모드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여성무장들 중 하나로 무력이 많이 낮지만 나머지 능력치들이 70대 초에서 후반까지 마크하는 쓸만한 수준이다. 특히 여성무장들 가운데 생년이 가장 빠른 축에 속하며, 초중반 시나리오부터 등장하기 때문에 요긴한 인재가 아닐 수 없다. 당장 통솔, 정치가 동생인 오니니와 츠나모토와 비벼볼 수 있는 정도라 마사무네나 다테 쌍벽들이 없는 시기에 활약 빈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