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소 랜디스

 


Kenesaw Mountain Landis
1866년 11월 20일 ~ 194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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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 모습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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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소 랜디스'''
헌액 연도
1944년
헌액 방식
사후 특별투표
1. 소개
2. 야구계 입문 이전
3. 메이저리그의 초대 커미셔너
4. 사망과 이후


1. 소개


"'''야구는 미국의 소년들에게 단순한 게임 이상의 존재다. 인생의 훈련장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한 야구에 관한 신념, 정직을 파괴하는 것은 소년들에게 모든 것에 관한 의심을 심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Baseball is something more than a game to an American boy; it is his training field for life work. Destroy his faith in its squareness and honesty and you have destroyed something more; you have planted suspicion of all things in his hear.

미국의 법조인, 체육 행정가.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의 초대 커미셔너(즉, 연맹 총재)를 역임한 인물로서 야구 역사에 큰 존재감을 남긴 인물이자 그만큼 암도 뚜렷한 인물이다.

2. 야구계 입문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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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케네소 랜디스
1866년 11월 20일, 오하이오 주 밀빌에서, 6자녀 가운데 4남으로 출생했다.
1891년에 법대를 졸업하여 법조계 생활을 시작했다. 1905년부터는 시카고 소재 일리노이주 북구 연방법원 판사로 재직하게 되었다. 판사 재임 시절, 몇몇 중요 판결을 맡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07년 8월 당대 최고의 기업가였던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의 불공정 거래에 대해 2,924만 달러의 무거운 벌금형을 선고한 것.

3. 메이저리그의 초대 커미셔너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일부 선수들이 도박사들과 공모하여 상대팀 신시네티 레즈에 고의 패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그 유명한 블랙삭스 스캔들. 이 사건으로 메이저리그의 신뢰는 근본부터 위협받게 되었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행정은 내셔널리그, 아메리칸 리그 협회장을 포함하는 '3인 위원회'(three-man National Commission)에 최종 권한을 갖고 있었지만,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주요 구단의 구단주들을 비롯한 미국 프로야구계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양대 리그에 대한 총괄적 권한을 행사할 '연맹 총재'직의 신설을 결의했다. 당초 구단주들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전 대통령, 존 퍼싱 1차대전 미군 사령관 등의 인물들을 물색하기도 했지만, 결국 랜디스가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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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커미셔너에 취임하는 랜디스. 주요 구단의 구단주들과 함께
랜디스의 초대 커미셔너 취임은 1920년 11월 12일에 이루어졌다. 그는 리그 운영에 대한 전권 행사의 보장과 더불어, 종신 계약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들 요구가 모두 관철되면서, 명실상부한 메이저리그의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다. 판사 겸직이 논란을 빚자 취임 2년만인 1922년 판사직을 사임하면서 커미셔너 직책에만 전념한다.
취임 직후인 1920년, 랜디스는 조 잭슨 등 블랙삭스 스캔들에 연루된 8명의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을 영구 제명시켰다. 이후 그는 1944년까지 24년 동안 재직했다. 그의 커미셔너 재임 기간은 베이브 루스로 대표되는 메이저리그의 부흥, 성장기와 같이 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올스타전, 명예의 전당 건립도 그의 재임 중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독한 인종차별 주의자로서 조시 깁슨, 사첼 페이지 등 당대의 훌륭한 흑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것을 반대한 오점도 남겼다.[1] 이들 가운데 조시 깁슨은 끝내 생전에 메이저리그 진출이 좌절되었고, 사첼 페이지와 재키 로빈슨은 그의 사후 후임 커미셔너인 해피 챈들러의 승인으로 비로소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그리고 블랙삭스 스캔들 선수들에게 강경대응한 것과 달리, 로저스 혼스비의 경마도박 문제라거나, 타이 콥트리스 스피커가 같이 얽혔던 야구 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굉당히 관대하게 넘어가서 이중잣대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았다.
여러모로 공과 과가 명확하게 갈리는 인물.

4. 사망과 이후


1944년 11월 25일, 향년 78세로 타계했다. 그리고 사망 직후에 소집된 특별위원회 투표에 의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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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세인트루이즈 카디널스의 에이스 밥 깁슨에게 수여된 MVP 트로피 [3]
아울러 매년 수상되는 내셔널리그, 아메리칸리그 MVP는 그의 이름과 초상이 들어간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 상'으로 수여되어 왔다. 그러나 2020년 미국 내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대두되고, 과거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적 인물들의 동상이 철거, 훼손되면서 역시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그의 이름을 메이저리그 MVP 트로피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결국 공식적으로 2020년부터 MVP 상패에서 그의 초상과 이름이 제외되었다. 관련기사
[1] 생전 랜디스는 틈만나면 "야구판이 검둥이들에게 오염당하는걸 내가 막아냈다." 라며 자랑했다.[2] 초대 커미셔너라는 상징성이 컸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는 초대 각 리그 이사장, 랜디스를 포함해서 2,3,5대 커미셔너, 초기의 구단주들이 헌액되어 있는데, 공로보다는 상징성이 더 강하다.[3] 밥 깁슨은 '''흑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