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스 혼스비
1. 개요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상 최고의 2루수이자 최고의 우타자 중 한 명'''이다. 2루수들 중에선 냅 라조이나 에디 콜린스 정도가 로저스 혼스비와 비교될 수 있는 위대한 선수라고 평가받는데, 그나마도 로저스 혼스비 쪽이 한 수 위라는 의견이 매우 많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팬 Elo미터에서도 2016년 9월 현재 냅 라조이는 12위, 로저스 혼스비는 9위다. 우타자들 간의 비교 역시 그냥 최고의 우타자라 보아도 무방하다. 단적으로 wRC+ 지표에서 혼스비는 역대 공동 3위(173)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보다 같거나 높은 선수는 모두 좌타자다(베이스 루스, 테드 윌리엄스, 루 게릭). 최고의 우타자 논쟁에서 보통 비교되는 대상은 행크 아론인데, 누적 fWAR는 아론이 6 point 정도 앞서나가나, wRC+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아론의 wRC+는 153). OPS+의 경우도 비슷한데, 혼스비의 OPS+는 175지만 아론의 그것은 155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7명뿐인 통산 OPS 10할을 초과한 기록도 있다. 1위는 저 유명한 베이브 루스, 2위는 테드 윌리엄스, 3위는 루 게릭, 4위는 - 배리 본즈, 5위는 초기 라이브볼 시대의 레전드면서 베이브 루스 이후 최초로 50홈런 고지를 넘은 선수이자, 그의 아성에 도전하던 홈런왕 지미 폭스, 6위는 유대인 야구선수로서 디트로이트의 우승을 이끌었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영구결번과, 2차대전으로 자원입대를 해서 무려 4년(정확히 47개월. 역대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군복무 기간 1위)이나 군복무를 하고 돌아와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은퇴해서 누적기록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팬들의 사랑을 받은 걸로 유명한 레전드 행크 그린버그이다. 혼스비는 10할을 살짝 넘기는 7위이지만, 나머지 6명은 수비 부담이 적은 1루수와 코너 외야수 출신이고 혼스비는 이들보다 수비 부담도 많은 2루수였다.
그러나 한편으론 '''최악의 '인간''''이라는 평도 받는다.
2. 상세
통산 타율이 무려 .358(홈 .359, 원정 .358). 혼스비의 위에는 1명, 그 유명한 최초의 5인이자 당대 야구 황제였던 타이 콥(.366)뿐이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타율 10위권에 들어가는 야수들 중 우타자는 혼스비 뿐이다.''' 또한 콥(11회)과 토니 그윈-호너스 와그너(8회) 다음으로 많은 7번의 타격왕을 차지했으며 6회 이상 수상자 7명 중에서 우타자는 그와 와그너 단 두 명 뿐이다.
그럼 단순한 똑딱이였는가하면 그것도 아닌게 '''통산 장타율 .577, 순장타율 218, OPS는 1.010'''이다. 2루수 중 메이저리그 최초로 300홈런을 기록한 사람[2] 이 로저스 혼스비다. 배리 본즈와 함께 2000년대 초반 자이언츠의 살인타선을 이끌었던 역대급 공격형 2루수 제프 켄트의 커리어하이 성적과 통산성적이 비슷하다. 게다가 타율, 출루율 같은 건 제프 켄트 커리어하이조차 혼스비의 통산 성적에 비교도 못한다. 그야말로 역대 최강.
다만 초창기에는 장타 생산과는 거리가 있던 선수는 맞았다. 마른 체구에 몸쪽에 약점이 있었던 혼스비는 극단적으로 웅크린 채 타격을 했고 이로 인해 장타는 좀 적었다. 그러나 체구가 붙으면서 몸을 편 채로 타격하고, 몸쪽 약점을 해결하면서 장타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혼스비가 몸쪽 약점을 해결한 방법은 아주 간단했는데 배터 박스 바깥 쪽에 자리잡고서 마치 타격 의지가 없는 것처럼 있다가 몸쪽 공이 들어오면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럼 바깥쪽은 어떻게 하고?'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원래 바깥쪽 코스를 좋아한데다, 팔도 긴 편이고, 더군다나 초창기 웅크린 타격 폼과 달리 넓은 존을 커버할 수 있는 펴진 폼으로 바꿨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타자로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열 다섯명[3] 인데,[4] 이걸 '''두 번 해낸 사람은 테드 윌리엄스와 혼스비 뿐이다.''' 또한 4할 타율을 3번이나 달성해내면서[5] 1920년대의 내셔널리그를 지배했던 탑클레스 타자었다.
프로 정신도 상당했는데, 몸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했다. 신문, 책, 영화도 보지않고 하루 12시간을 잤다. 눈을 보호해 선구안을 키우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테드 윌리엄스에게도 있다고 알려진)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신인 투수가 3연속 볼 판정을 받고 항의하자 심판이 '''" 공이 스트라이크였으면 혼스비가 말해줬을걸?"'''이라고 일축해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치지 않으면 볼'''. 어느 정도의 선구안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6] 특이한 타격폼 또한 그 선구안에 한몫했는데, 홈플레이트 정 반대쪽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공을 기다렸다가 바깥쪽으로 공이 들어오는 족족 왼발을 앞으로 당겨버리며 모두 공략해냈다. 홈플레이트에서 멀찍이 떨어진 덕에 몸쪽 높은 공에 삼진을 당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공을 힘껏 잡아 당겨 장타를 양산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감독 겸 선수로도 뛰었는데 선수로만 뛸 때보다는 본인 성적은 안 나왔지만 팀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기는 등 활약하였다. 이 우승이 피트 알렉산더의 마지막 질주이자 베이브 루스의 그 유명한 끝내기 도루자가 나온 우승이었다.
3. 비판
선수로서는 위대했던 반면, '''야구장 바깥의 인간으로써는 그냥 쓰레기였다.''' 선수 겸 감독으로 뛰기 시작한 이후로, 연봉 문제로 떼쓰기[7] , 프런트 무시하기, 독단적인 작전에 황소고집에 기자들과는 언제나 최악의 사이였고, 이것 때문에 그토록 위대한 커리어에도 최초의 5인에서 밀려난 것[8] 이었다. 또한 뛰어난 커리어를 유지했음에도 저니맨 생활을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였고, 똑같이 거칠기로 유명했던 타이 콥과는 또 다르게 '''이 사람은 가족에게조차 폭력적이었고,[9] 은퇴 후 투자 실패와 알콜중독으로 본인과 가족의 인생을 망쳤다.''' 그 뿐만 아니라 도박중독으로 선수 은퇴시점에 이미 빚을 엄청나게 지고 있었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타이 콥은 선수시절 경기장 안에서는 거칠긴 했어도 인종차별은 커녕 다른 인종에게 관대했으며, 은퇴 후 속옷 사업, 껌 사업, 주식투자 등으로 엄청난 재산을 벌었고, 기부나 자선사업 등의 사회기여를 많이 한데다가 야구 후배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한 적도 있고, 너무 기대가 높아 엄하게 대했던 아들과의 갈등을 제외하면 가족들에게 늘 자상했으니 참으로 대비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대공황때 10만불을 잃기도 했으니... 어느 정도였냐면 오랜 시간이 흘러 알버트 푸홀스가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해 혼스비 같은 타자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그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됐을 정도였다.
그렇다 해도 남긴 기록이 기록인지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다만 그 시대에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아 영구결번은 없다.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 JAWS - Second Base (1st)
5. 연도별 성적
6. 여담
- 신인 시절의 테드 윌리엄스를 만나 타격에 대해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타격 이론적인 측면보다는 투수와의 수싸움과 심리전에 대한 가르침을 줬다고.
- 누군가가 자신의 타구를 쫓아가는 것을 좋아한 듯하다. 공을 쳐도 쫓아가는 사람이 없는 골프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고.
[1] 데뷔 초 2년 정도는 유격수였다.[2] 물론 2루수로 출전하지 않고 다른 포지션 출전 경기에서의 홈런도 포함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2루수 출전이다. 또한 그렇게 2루수로 분류되는 선수 중에 후대에 로저스 혼스비의 홈런 기록을 넘은 건, 제프 켄트와 로빈슨 카노 단 둘 뿐이다. 데드볼 시대에 데뷔하여 전성기 시작 후에야 라이브볼로 넘어간 그가 아직도 2루수 통산 홈런 3위라는 사실은 라이브볼 시대 후배들도 따라올 수 없는 대기록을 세웠다는 것이라 거의 공포 수준. 그야말로 2루수 세계의 괴물이라고 보면 된다.[3] 폴 히네스, 팁 오닐(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휴 더피, 냅 라조이, 타이 콥, 하이니 짐머맨, 로저스 혼스비, 지미 폭스, 척 클라인, 루 게릭, 조 메드윅, 테드 윌리엄스, 미키 맨틀, 프랭크 로빈슨, 칼 야스트렘스키, 미겔 카브레라까지 16명이지만, 팁 오닐이 아메리칸 리그 전신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선수라 빼서 15명인 것이다. 단, 내셔널 리그 출범 이후의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기록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인정하는 경우가 많아(아닐 때도 있다. 메이저리그 측 19세기 기록 관리에서 가장 애매한 부분이다.) 넣기도 한다.[4] 1967시즌 칼 야스트렘스키이후 45년간 나오지 않은 대기록이었으나 2012시즌 미겔 카브레라가 역대 15번째 3관왕의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5] 이건 에드 델라헌티, 타이 콥, 로저스 혼스비 단 3명만이 가지고 있는 대기록이다.[6] 우리나라 버전으론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 이 있다. 장효조 역시 KBO 역대 타격 1위[7] 사실 구단이 잘못한 부분이 더 크긴 하다만... 그는 '''감독'''이다. 감독이란 사람이 연봉 협상 질질 끄니 팀케미는 뭐..[8] 심지어 그 다음해 투표에서도 밀렸다. 당시 로저스 혼스비는 아직 은퇴하기 전이라 주목받던 시기였는데도 은퇴한 선배들에게 밀렸다. 당시 투표자들이던 기자들 중 상당수가 야구하는 걸 직접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그냥 전설로만 불리던 사이 영조차 뽑힌 해였다. 투수와 야수로 포지션이 다르지만 로저스 혼스비의 야구 선수로의 업적은 사이 영에 확실히 뒤진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타이 콥이나 베이브 루스에 비견되는 타격 성적에 외야수를 하면서 말년에 좌익수나 1루수로 수비부담을 줄여온 그들과 달리 2루수라는 수비부담이 항상 강하게 있는 포지션을 유지했기에, 역대 최고 유격수 호너스 와그너와도 비교될 선수였다. 수비부담은 와그너가 강하지만, 타격에서 혼스비가 우위다.[9] 사실 이건 콥에게도 있었다.(콥은 첫째 아들에게만 유독 엄했지 다른 자식, 손자들에겐 유순한 편이었다.) 역시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트리스 스피커와 함께 야구도박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케네소 랜디스 커미셔너가 사건을 더 파고들지 않고 덮으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하지만 이건 신고한 증인이 갑자기 신고 직후 청문회와 증언을 모두 거부하여 증거가 없던 것이 더 컸다.[10] 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11] 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12] 현 볼티모어 오리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