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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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는 미해군의 키어사지급 전함 제 2번함으로, 함명은 켄터키 주에서 기인한 것이다. 켄터키는 1896년 6월 30일에 버지니아주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 기공해 1898년 3월 24일에 진수 후 1900년 5월 16일에 초대함장으로 콜비 M. 체스터 대령의 지휘하에 취역했다.
뉴욕 해군공창에서 조정 후 켄터키는 1900년 10월 26일에 지브롤터와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여 극동으로 향했다. 1901년 2월에 마닐라에서 다른 함과 합류 후 6일 후에 홍콩으로 출항하여 3월 23일에 루이스 켐프 소장의 지휘하에 남방함대의 기함으로 임명되었다.
이듬 해까지 켄터키는 함대와 함께 중국과 일본의 항구들을 순방한 후 1902년 3월 1일에 켐프 소장은 와일드 소장과
교체되었는데 와일드 소장이 다시 <레인보우>로 기함을 변경했기에 대서양함대 사령관이던 에번스 소장이 11월 4일에
요코하마 항에서 켄터키를 기함으로 한 후 지휘를 맡았다.
1904년 3월 13일에 마닐라를 출항해 수에즈 운하와 지브롤터를 통과해 5월 23일에 뉴욕에 도착한 켄터키는 10월 26일에 뉴욕 해군조선소에서 오버휠 조정을 완료한 후 대서양 연안에서 함대훈련에 종사했다. 1905년 가을에는 메릴랜드 주의 애너폴리스 및 뉴욕에서 영국함대의 환영에 참가한 후 미 동해안의 순항을 실시했다.
쿠바에서 폭동이 발생하자 1906년 9월 23일에 전함 <메인>, <미주리>와 함께 해병대를 싣고 10월 1일에 미국의 권익 및 재산보호를 위해 부대를 아바나에 상륙시켰다. 켄터키는 지상부대 지원을 위해 10월 9일까지 쿠바 수역에 머무르다가 그 후 대서양으로 돌아와 전술후련에 참가했다.
1907년 4월 15일에 제임스다운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노포크를 방문한 켄터키는 뉴잉글랜드 해안에서 훈련을 실시한 후 햄턴 로즈에서 관함식에 참가했다. 켄터키는 다른 함정과 함께 1907년 12월 16일에 세계일주 항해에 나서 제 2전대의 일원으로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환영을 받았다.
트리니다드와 리우데 자네이로를 방문 후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여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와 발파라이소를 거친 켄터키는 페루이 카야오 항에 정박한 후 멕시코의 막달레나 만에서 한달 간 포술훈련을 실시했다. 함대는 1908년 4월 14일에 샌디에이고에 도착하여 5월 7일에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다. 2개월 후 켄터키는 금문교를 통과한 후 하와이로 향했다.
진주만을 거쳐 뉴질랜드에 8월 8일 도착한 켄터키는 8월 20일에 호주의 시드니에 도착하여 일주일 후에 다시 멜버른으로 향했다. 다시 필리핀, 일본, 중국, 실론을 방문 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1909년 1월 8일에 포트사이트, 트리폴리, 알제리를 거쳐 2월 22일에 햄턴 로즈에 도착한 함대는 다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환영을 받았다.
켄터키는 필라델피아 해군조선소에서 수리 후 1909년 8월 28일에 노포크에서 퇴역했지만 1912년 6월 4일에 제 2 예비함대에 편입되어 뉴욕으로 향한 후 1913년 5월 31일에 재취역하기까지 보수작업을 받았다. 1915년 6월 23일에 정식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재취역한 켄터키는 7월 3일에 뉴욕 시민병의 훈련을 위해 롱 아일랜드 및 뉴 잉글랜드 수역을 통과 후 8월 31일에 시민병의 훈련을 완료한 후 9월 11일에 정치불안이 이어진 멕시코로 향했다.
1915년 9월 28일에 베라크루즈에 도착한 켄터키는 멕시코 및 관타나모에서 미국의 권익보호를 위해 체류하다가 1916년 6월 2일에 멕시코를 떠나 18일에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연말까지 훈련과 보수가 이어진 켄터키는 1917년 1월에 뉴욕 해군조선소로 이동하여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5월 2일에 버지니아 주 요크타운에 도착한 켄터키는 훈련함으로서 신병교육을 담당했다. 1918년 11월 11일에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는데 그 동안 켄터키는 15차례의 신병교육훈련을 담당했다. 12월 20일에 오버휠을 위해 보스턴 해군공창에 입고된 켄터키는 1919년 3월 18일에 관타나모의 훈련을 위해 출항한 후 다시 노포크 및 뉴잉글랜드 수역에서 함대연습에 참가했다.
5월 29일에 메릴랜드 주 애너폴리스에 도착한 켄터키는 해군사관생도의 훈련함으로서 6월에 쿠바, 뉴욕, 보스턴 등을 순방 후 8월 27일에 애너폴리스로 귀환했다. 켄터키는 1920년 5월 29일에 퇴역하여 필리델피아에 계류된 뒤 1924년 1월 23일에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매각되었다.
이후 켄터키라는 이름은 아이오와급 전함 6번함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이 전함은 미완성 상태에서 건조가 중단된다. 문서 참고.
1. 제원
2. 개요
켄터키는 미해군의 키어사지급 전함 제 2번함으로, 함명은 켄터키 주에서 기인한 것이다. 켄터키는 1896년 6월 30일에 버지니아주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 기공해 1898년 3월 24일에 진수 후 1900년 5월 16일에 초대함장으로 콜비 M. 체스터 대령의 지휘하에 취역했다.
3. 활동
뉴욕 해군공창에서 조정 후 켄터키는 1900년 10월 26일에 지브롤터와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여 극동으로 향했다. 1901년 2월에 마닐라에서 다른 함과 합류 후 6일 후에 홍콩으로 출항하여 3월 23일에 루이스 켐프 소장의 지휘하에 남방함대의 기함으로 임명되었다.
이듬 해까지 켄터키는 함대와 함께 중국과 일본의 항구들을 순방한 후 1902년 3월 1일에 켐프 소장은 와일드 소장과
교체되었는데 와일드 소장이 다시 <레인보우>로 기함을 변경했기에 대서양함대 사령관이던 에번스 소장이 11월 4일에
요코하마 항에서 켄터키를 기함으로 한 후 지휘를 맡았다.
1904년 3월 13일에 마닐라를 출항해 수에즈 운하와 지브롤터를 통과해 5월 23일에 뉴욕에 도착한 켄터키는 10월 26일에 뉴욕 해군조선소에서 오버휠 조정을 완료한 후 대서양 연안에서 함대훈련에 종사했다. 1905년 가을에는 메릴랜드 주의 애너폴리스 및 뉴욕에서 영국함대의 환영에 참가한 후 미 동해안의 순항을 실시했다.
쿠바에서 폭동이 발생하자 1906년 9월 23일에 전함 <메인>, <미주리>와 함께 해병대를 싣고 10월 1일에 미국의 권익 및 재산보호를 위해 부대를 아바나에 상륙시켰다. 켄터키는 지상부대 지원을 위해 10월 9일까지 쿠바 수역에 머무르다가 그 후 대서양으로 돌아와 전술후련에 참가했다.
1907년 4월 15일에 제임스다운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노포크를 방문한 켄터키는 뉴잉글랜드 해안에서 훈련을 실시한 후 햄턴 로즈에서 관함식에 참가했다. 켄터키는 다른 함정과 함께 1907년 12월 16일에 세계일주 항해에 나서 제 2전대의 일원으로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환영을 받았다.
트리니다드와 리우데 자네이로를 방문 후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여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와 발파라이소를 거친 켄터키는 페루이 카야오 항에 정박한 후 멕시코의 막달레나 만에서 한달 간 포술훈련을 실시했다. 함대는 1908년 4월 14일에 샌디에이고에 도착하여 5월 7일에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다. 2개월 후 켄터키는 금문교를 통과한 후 하와이로 향했다.
진주만을 거쳐 뉴질랜드에 8월 8일 도착한 켄터키는 8월 20일에 호주의 시드니에 도착하여 일주일 후에 다시 멜버른으로 향했다. 다시 필리핀, 일본, 중국, 실론을 방문 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1909년 1월 8일에 포트사이트, 트리폴리, 알제리를 거쳐 2월 22일에 햄턴 로즈에 도착한 함대는 다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환영을 받았다.
켄터키는 필라델피아 해군조선소에서 수리 후 1909년 8월 28일에 노포크에서 퇴역했지만 1912년 6월 4일에 제 2 예비함대에 편입되어 뉴욕으로 향한 후 1913년 5월 31일에 재취역하기까지 보수작업을 받았다. 1915년 6월 23일에 정식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재취역한 켄터키는 7월 3일에 뉴욕 시민병의 훈련을 위해 롱 아일랜드 및 뉴 잉글랜드 수역을 통과 후 8월 31일에 시민병의 훈련을 완료한 후 9월 11일에 정치불안이 이어진 멕시코로 향했다.
1915년 9월 28일에 베라크루즈에 도착한 켄터키는 멕시코 및 관타나모에서 미국의 권익보호를 위해 체류하다가 1916년 6월 2일에 멕시코를 떠나 18일에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연말까지 훈련과 보수가 이어진 켄터키는 1917년 1월에 뉴욕 해군조선소로 이동하여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5월 2일에 버지니아 주 요크타운에 도착한 켄터키는 훈련함으로서 신병교육을 담당했다. 1918년 11월 11일에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는데 그 동안 켄터키는 15차례의 신병교육훈련을 담당했다. 12월 20일에 오버휠을 위해 보스턴 해군공창에 입고된 켄터키는 1919년 3월 18일에 관타나모의 훈련을 위해 출항한 후 다시 노포크 및 뉴잉글랜드 수역에서 함대연습에 참가했다.
5월 29일에 메릴랜드 주 애너폴리스에 도착한 켄터키는 해군사관생도의 훈련함으로서 6월에 쿠바, 뉴욕, 보스턴 등을 순방 후 8월 27일에 애너폴리스로 귀환했다. 켄터키는 1920년 5월 29일에 퇴역하여 필리델피아에 계류된 뒤 1924년 1월 23일에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매각되었다.
이후 켄터키라는 이름은 아이오와급 전함 6번함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이 전함은 미완성 상태에서 건조가 중단된다.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