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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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어사지급 전함
키어사지
켄터키

1. 제원
2. 개요
3. 활동


1. 제원


전장
114.38m
전폭
22.02m
높이
7.14m
기준배수량
11,540t
최대출력
불명
최대속력
16kt
항속력
불명
무장
33cm포 4문, 20.3cm포 4문, 15.2cm포 14문, 57mm포 20문, 37mm포 6문, 7.62mm 기총 4기, 45.7cm 어뢰발사관 4문
탑재기 수
없음
승원
554명
동형함
키어사지

2. 개요


켄터키는 미해군의 키어사지급 전함 제 2번함으로, 함명은 켄터키 주에서 기인한 것이다. 켄터키는 1896년 6월 30일에 버지니아주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 기공해 1898년 3월 24일에 진수 후 1900년 5월 16일에 초대함장으로 콜비 M. 체스터 대령의 지휘하에 취역했다.

3. 활동


뉴욕 해군공창에서 조정 후 켄터키는 1900년 10월 26일에 지브롤터와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여 극동으로 향했다. 1901년 2월에 마닐라에서 다른 함과 합류 후 6일 후에 홍콩으로 출항하여 3월 23일에 루이스 켐프 소장의 지휘하에 남방함대의 기함으로 임명되었다.

이듬 해까지 켄터키는 함대와 함께 중국과 일본의 항구들을 순방한 후 1902년 3월 1일에 켐프 소장은 와일드 소장과
교체되었는데 와일드 소장이 다시 <레인보우>로 기함을 변경했기에 대서양함대 사령관이던 에번스 소장이 11월 4일에
요코하마 항에서 켄터키를 기함으로 한 후 지휘를 맡았다.

1904년 3월 13일에 마닐라를 출항해 수에즈 운하와 지브롤터를 통과해 5월 23일에 뉴욕에 도착한 켄터키는 10월 26일에 뉴욕 해군조선소에서 오버휠 조정을 완료한 후 대서양 연안에서 함대훈련에 종사했다. 1905년 가을에는 메릴랜드 주의 애너폴리스 및 뉴욕에서 영국함대의 환영에 참가한 후 미 동해안의 순항을 실시했다.

쿠바에서 폭동이 발생하자 1906년 9월 23일에 전함 <메인>, <미주리>와 함께 해병대를 싣고 10월 1일에 미국의 권익 및 재산보호를 위해 부대를 아바나에 상륙시켰다. 켄터키는 지상부대 지원을 위해 10월 9일까지 쿠바 수역에 머무르다가 그 후 대서양으로 돌아와 전술후련에 참가했다.

1907년 4월 15일에 제임스다운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노포크를 방문한 켄터키는 뉴잉글랜드 해안에서 훈련을 실시한 후 햄턴 로즈에서 관함식에 참가했다. 켄터키는 다른 함정과 함께 1907년 12월 16일에 세계일주 항해에 나서 제 2전대의 일원으로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환영을 받았다.

트리니다드와 리우데 자네이로를 방문 후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여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와 발파라이소를 거친 켄터키는 페루이 카야오 항에 정박한 후 멕시코의 막달레나 만에서 한달 간 포술훈련을 실시했다. 함대는 1908년 4월 14일에 샌디에이고에 도착하여 5월 7일에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다. 2개월 후 켄터키는 금문교를 통과한 후 하와이로 향했다.

진주만을 거쳐 뉴질랜드에 8월 8일 도착한 켄터키는 8월 20일에 호주의 시드니에 도착하여 일주일 후에 다시 멜버른으로 향했다. 다시 필리핀, 일본, 중국, 실론을 방문 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1909년 1월 8일에 포트사이트, 트리폴리, 알제리를 거쳐 2월 22일에 햄턴 로즈에 도착한 함대는 다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환영을 받았다.

켄터키는 필라델피아 해군조선소에서 수리 후 1909년 8월 28일에 노포크에서 퇴역했지만 1912년 6월 4일에 제 2 예비함대에 편입되어 뉴욕으로 향한 후 1913년 5월 31일에 재취역하기까지 보수작업을 받았다. 1915년 6월 23일에 정식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재취역한 켄터키는 7월 3일에 뉴욕 시민병의 훈련을 위해 롱 아일랜드 및 뉴 잉글랜드 수역을 통과 후 8월 31일에 시민병의 훈련을 완료한 후 9월 11일에 정치불안이 이어진 멕시코로 향했다.

1915년 9월 28일에 베라크루즈에 도착한 켄터키는 멕시코 및 관타나모에서 미국의 권익보호를 위해 체류하다가 1916년 6월 2일에 멕시코를 떠나 18일에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연말까지 훈련과 보수가 이어진 켄터키는 1917년 1월에 뉴욕 해군조선소로 이동하여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5월 2일에 버지니아 주 요크타운에 도착한 켄터키는 훈련함으로서 신병교육을 담당했다. 1918년 11월 11일에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는데 그 동안 켄터키는 15차례의 신병교육훈련을 담당했다. 12월 20일에 오버휠을 위해 보스턴 해군공창에 입고된 켄터키는 1919년 3월 18일에 관타나모의 훈련을 위해 출항한 후 다시 노포크 및 뉴잉글랜드 수역에서 함대연습에 참가했다.

5월 29일에 메릴랜드 주 애너폴리스에 도착한 켄터키는 해군사관생도의 훈련함으로서 6월에 쿠바, 뉴욕, 보스턴 등을 순방 후 8월 27일에 애너폴리스로 귀환했다. 켄터키는 1920년 5월 29일에 퇴역하여 필리델피아에 계류된 뒤 1924년 1월 23일에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매각되었다.
이후 켄터키라는 이름은 아이오와급 전함 6번함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이 전함은 미완성 상태에서 건조가 중단된다.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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