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clearfix]I, (name), do solemnly swear (or affirm)[2] that I will faithfully execute the Office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and will to the best of my ability, preserve, protect and defend the 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3]
'''나 (이름)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내 능력의 최선을 다해 미합중국의 헌법을 보전하고 보호하며 수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또는 확약)합니다.'''
미합중국 대통령의 취임 선서문[4]
1. 개요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 POTUS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이며, 미국 헌법 제2조 2절에 의해서 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
현직 미국 대통령은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제46대 조 바이든으로, 2021년 1월 20일 공식 취임하였다.
2. 유래
독립전쟁 끝에 1783년의 파리 강화 조약으로 미국은 당시 대영제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제대로 된 정부 조직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어떠한 권력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원했고, 사실상 유일한 연방조직이었던 의회는 아직 충분한 권력과 재무적 권한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논의 끝에 당시 미국인들은 다양한 요구를 바탕으로 미국의 구심점이 되는 대통령직과 중앙연방정부제도를 모색했고 1788년 미국 헌법을 제정하면서 현재의 대통령직을 만들게 되었다. 원래는 영국처럼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는 것이 유력했으나, 만약 도입할 경우 국왕의 지위가 애매해져서, 그것을 대신할 '대통령'이라는 관직을 만들기로 결정해서 이른바 대통령제가 탄생했다. '''대통령(The President)'''이라는 관직을 제안한 것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연방당 알렉산더 해밀턴[5] 이다. 이후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이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여러 제도와 관습들이 생겨났다.
3. 권위
'''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수장으로서 현대 국제사회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오늘날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전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세계 질서가 영향을 받으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는 미국 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주요 관심사, 이슈가 되고 특히 미국 대선 시즌이 되면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항상 예의 주시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생각 의외로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제한적이다. 미국 의회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등 미국내 다른 정부 기관과 끊임없는 신경전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6]
또한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이나 민주당 양당을 상징하는 면도 크므로 양당이 가진 대외정책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아무래도 국제사회에서 민주당이 '비교적' 우호적인 대외정책들을 많이 내놓는 까닭이라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반대로 공화당은 보수적이고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표방하는 성향이 강해 국제사회에서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하는 편.
4. 권한
미국 대통령은 미국 헌법과 미국 상원과 하원으로부터 부여받은 직책과 권한을 헌법에 맞게 행사한다.
이 권한에는 국가원수로 미국 상원의 동의 하에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는 외교권, 마찬가지로 상원의 동의로 내각의 장관, 부장관, 차관의 임명할 권한, 상원의 동의를 받아 연방의 주요직, 대사, 연방대법원 · 고등법원 · 지방법원 판사를 임명할 인사권, 미국 상원, 미국 하원을 통과한 법률을 승인하거나 거부하고[7] , 헌법이 보장하는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그 외에도 비상조치, 의회에 연두교서를 보내 입법을 권고할 수 있는 권한, 이외에도 여러 가지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우리나라의 대통령령은 법률보다 하위에 있는 법으로 법률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세부사항에 대해 정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법률에서 '자세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고 되어있는데 대통령은 의회가 정해준 법률의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을 통해 행정권을 발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 행정명령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기 때문에 법률과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 링컨의 노예해방령도 행정명령으로 이루어진 사안이며, 오바마의 대표적인 정책인 이민개혁법 역시 행정명령으로 통과된 사안이다. 그러나 행정명령의 유효기간은 4년이기 때문에 재선에 실패하면 연장하는데 서명할 수 없게 된다. 4년이 꼭 지나지 않더라도 의회가 여소야대 구도가 되면 행정명령을 무력화하는 입법을 할 수 있고, 재선에 실패해 야당의 후보에게 백악관을 내준다면, 후임 대통령은 임기 첫날에도 전임자의 행정명령을 무력화 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들이 그렇게 8년 집권에 목매는 이유.
미국 대통령의 가장 핵심적인 권한은 바로 '''미군의 통수권'''이다. 미국 헌법 2조 2절에 따라 미국의 대통령은 모든 미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인 미군을 통솔할 권한을 가진다.[8] 미국 대통령의 권한을 규정하는 헌법 조항에 가장 먼저 나와있는 권한이 바로 이 군 통수권이다. 다만,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 국회의 사전 또는 포고하기 전에 상·하원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통수권을 행사해서 군에 명령을 내린 다음 국회에 동의 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건 해리 S. 트루먼이 한국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처음 쓴 꼼수이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미국 하원과 상원 양원에서 선전포고문을 작성해서 통과시키고, 미국 대통령이 선전포고문에 서명해야 법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었다. 조지 H. W. 부시때의 걸프 전쟁 때에는 정식 선전포고까지는 아니지만 원래 법도대로 미국 하원에서 전쟁 선포 결의문을 작성하고 하원과 상원의 과반수 통과를 받은 이후, 부시 대통령이 여기에 서명하는 식으로 미국 의회의 동의를 받고 시작했다.
미국이 지역강국에서 세계로 뻗어나가게 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의사결정과정에 시간이 드는 입법부의 승인 이전에 대통령이 단독으로 군사작전을 결정할 권한이 있었으나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초강대국인 미국이 1975년에 조금만한 북베트남 베트콩들에게 패배하자, 이러한 대통령의 군사작전 결정권한을 제한하는 전쟁 권한법을 1973년 의회가 통과시킨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60일간의 군사작전을 인가할 수 있고 30일을 추가할 수 있어 최장 90일간의 군사활동을 대통령이 승인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01년, 미국 본토에서 9.11 테러가 발생함에 따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는 의회에 테러세력에 대한 효과적이고 기민 대응을 위해 전쟁권한을 요청했고 의회는 무력사용권(AUMF)을 9.11 발생 3일만에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전쟁 권한법이 무력화되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전포고를 한 경우가 없다는 점에서 걸프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과 같은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행해왔고 의회의 선전포고 승인 절차가 신속함과 고도의 보안과 판단을 요구하는 현대 국제정세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게 되었지만 동시에 의회의 전쟁선포권을 무력화하여 현대 민주주의의 원칙이라 할 수 있는 삼권분립을 약화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단, 법률안 제출권이 없고, 의회해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헌법에 정해져 있다. 의회해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하원의 임기가 2년밖에 안 되는 탓도 있지만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국회가 모두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같은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날려 버릴 권한이 없다.''' 법률안을 못 내도록 한 것은 "권력의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키기 위함이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사면권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삼권분립과 연방을 구성하는 주들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미국답게 미국 대통령은 연방법을 어긴 경우에 대해서면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다. 주법을 어긴 경우는 주지사나 주 정부 특별위원회가 사면권을 행사한다.
5. 자격
35세 이상의 '태생적 미국 시민'(natural born citizen)으로 최소 14년 이상을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9] 이는 선거군주제를 채택한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외국 출신의 군주에 의해 나라를 말아먹다가 아예 증발해 버린 것을 멀리서 목격한 미국 건국 초기의 정치인들이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태생적 미국 시민"[10] 에게만 대통령 자격을 부여하자고 주장했기 때문에 미국 수정헌법에 이런 요건이 포함되었다.
이에 따라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신호범, 제니퍼 그랜홈 같이 타국에서 귀화해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데,[11] 문제는 속지주의를 원칙으로 하되 속인주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미국 국적법에서 '태생적 미국 시민'이라는 단어가 미국 본토에서 태어난 사람에만 한정되는지, 미국 50개 주나 워싱턴 D.C. 외에서 태어났어도 해외 미국인 자녀에게 적용되는 법령에 따라 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에게도 해당되는지에 대해서는 법학계나 정치권에서 의견이 갈리는 편이다.
그로 인해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가 주둔하고 있던 파나마 운하의 미군기지에서 태어난 존 매케인이나, 캐나다에서 쿠바계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를 따라 미국 국적을 선택한 테드 크루즈의 대선 출마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 하와이 주에서 태어났지만 "오바마가 하와이 태생이라는 것은 조작이고 사실 부친의 고향인 케냐에서 태어났으며 따라서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12] 사람이다"라고 우기는 음모론자[13] 들한테 임기 내내 시달렸다.
법적으로 보자면 '''원정출산 자녀들도 대통령 출마 자격이 있는 것이다'''.
6. 임기
미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4년이며, 수정헌법 제12조에 따라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는 분리해서 선발한다. 대통령은 일생에 최대 두 번까지만 연임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직의 연임은 관습상 현임자가 차기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중임(重任)의 형태로 실현하는 것이 보통이고, 한 번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난 사람이 다시 출마한 경우는 제22, 24대 대통령을 지낸 그로버 클리블랜드(1837-1908)가 유일하다.
수정헌법 제22조에서는 미국 대통령의 3선을 금지하였다. 대통령이 궐위가 되어 그 남은 임기 동안 2년 이상 대통령직에 있었거나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한 사람도 1회만 중임할 수 있다. 가령 전임 대통령이 1년 만에 면직, 사망, 사임해서 부통령이 나머지 3년 임기를 채웠을 경우, 이는 첫 번째 임기를 마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1회만 중임할 수 있다.[14] 반대로 말하면, 이론상으로는 전임 대통령이 딱 2년만 임기를 남기고 물러난 상태에서 대통령직을 승계했을 경우 1회 중임을 통해서 최대 10년에 가까운 임기(전임 대통령 임기 2년+본인 초선 4년+중임 4년)를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사례가 실제로 발생하지는 않았다. 22차 수정헌법 이후 시기에 이와 가장 비슷한 사례로는 존 F. 케네디가 사망한 후 승계한 린든 B. 존슨이 있었는데(전임 대통령 임기 1년+본인 초선 4년) 재선 출마를 포기하였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3선 이상을 재임한 대통령인데[15] , 그는 '미국발 전세계 경제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의 크나큰 위기 상황 속에서 지도력을 발휘해 4선(1932년, 1936년, 1940년, 1944년 대선에 잇따라 당선됨으로써 1933년 3월 4일부터 1945년 4월 12일까지 재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 이래 미국 대통령은 1회만 중임해 온 불문율을 깨뜨린 것으로써 그의 사망 뒤 22차 헌법 수정으로 대통령의 3선 금지가 성문화되었다.
수정헌법 22조 재정 이후 2018년 현재까지 재선에 성공해 8년간 재임했던 대통령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5명이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임기 도중 사임하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재임한 대통령은 제9대 대통령인 윌리엄 헨리 해리슨으로 취임 1달 만에 급사하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국 연방법에서 선거가 있는 해(1972년부터 4년마다 실시)의 11월 첫 번째 일요일 다음의 화요일에 실시하도록 정해져 있고, 대통령의 임기는 다음 해 1월 20일에 시작된다. 시간은 워싱턴 DC의 시간대인 미국동부표준시(EDT) 정오 낮 12:00시, 한국 시간으로는 1월 21일 새벽 2시부터 임기가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한국은 취임식에 관계없이 임기 시작일의 새벽 0시부터 시작하지만[16] (대통령의 궐위로 대통령 선거를 한 경우는 당선이 확정된 시각부터 임기 시작) 미국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정오부터 시작된다.[17]
7. 역대 미국 대통령
8. 선거
미국은 50개의 크고 작은 주가 하나로 연합한 형태의 '합중국'이며, 미국 대통령은 이 합중국의 최고 지도자이다. 따라서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주의 대표인 선거인단들이 4년마다 각각 선출한다.
보통 전국적으로 투표를 실시해 가장 많은 수의 표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미국 국민이 선출한 538명의 선거인단이 투표를 실시해 뽑는다. 그런데 보통 '비밀선거' 원칙에 따라 투표자가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밝히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의 선거인단은 대개 '나는 이 후보를 뽑겠다'는 의사가 알려져 있는 상태에서 투표를 실시한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미국 대통령 선거'라고 부르는 선거는 '미국의 대통령을 직접 뽑는 선거'가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을 직접 뽑을 선거인단을 뽑는 간선제 방식의 선거'를 말한다.
선거 방법은 50개 주에 할당된 숫자의 선거인단과 워싱턴 D.C의 선출 선거인단의 과반수를 획득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각 주 출신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의 합친 수가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 수가 되며, 여기에 수도 워싱턴 D.C에 배정된 수를 합해 총 538명의 선거인단이 이 선거에서 선출된다.
통상 대통령 선거일은 '슈퍼 화요일'이라고 부르는 11월 첫 번째 월요일이 지난 다음의 화요일이다. 따라서 2016년 미국 대선은 11월 1일이 아니라 11월 8일에 치러졌다.
각 주 별로 선거를 치르며, 통상 2개 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에서는 득표를 가장 많이 한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한다. 쉽게 말해 어느 주에서 공화당 선거인단 득표율이 51%, 민주당 선거인단 득표율이 49%가 나왔다면 그 주의 선거인단은 공화당 51%, 민주당 49% 이렇게 배분되는 게 아니라 공화당 선거인단만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권리가 생긴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 주의 99%에서 패배했다 하더라도 이 나머지 99%보다 인구가 많아 이들보다 많은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1개의 주에서 이겨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래서 이러한 간선제 방식 때문에 총 득표수에서 이기고도 선거인단 확보에 져서 낙선된 대통령 후보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패배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앨 고어와 힐러리 클린턴이다.
만약 선거인단 중 과반수를 확보하는 후보가 없을 경우에는 하원이 대통령을 결정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각 주별로 1표씩 행사한다. 만약 이 때도 동점이 발생하면 대통령이 결정될 때까지 계속 반복된다.
9. 승계
미국 헌법은 대통령이 임기 중에 면직, 사망 또는 사임하게 될 경우에는 부통령이 그 자리를 승계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그도 없으면 연방 의회가 법률로 정한 순서에 따라 하원의장 - 상원임시의장 순으로 승계한다. 단, 수정헌법에 따라 대통령 출마 자격(35세 이상의 태생적 미국 시민으로 최소 14년 이상을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20] )을 만족하지 못할 시 순위에서 제외되며 차순위 승계자로 넘어가게 된다. 1947년에 제정된 대통령직 계승법에 의하면 순위는 다음과 같다. 2020년까지는 아직 대통령 유고시 미국 부통령이 승계한 사례만 있으며, 그 아래의 계승 서열로 순서가 내려가서 승계한 적은 없다.
- 미국 대통령 승계 서열(United States presidential line of succession)
- 유고 후 승계의 경우 유고 즉시 부통령 등 계승권자가 취임선서를 하며 승계를 선언해야 하므로, 상황에 따라선 대통령 취임식과는 전혀 거리가 먼 시간과 장소에서 행하기도 한다. 한 예로 30대 캘빈 쿨리지는 부통령 시절 고향의 아버지 집에서 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워런 G. 하딩 대통령의 유고 소식을 듣고, 공증인 자격을 가진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 계산대 앞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고, 36대 린든 B. 존슨은 전임자 존 F. 케네디의 시신을 운구해가는 에어 포스 원 기내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 1974년 8월 9일, 37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했을 때에는 38대 제럴드 포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그런데 포드는 1973년에 사임한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의 후임으로 닉슨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어 연방의회 양원의 인준으로 취임한 부통령으로서 미국 역사상 선거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유일한 사례이다.[22]
-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 시 하원 의사당에 대통령, 부통령, 상하원의 모든 의원, 대법관, 각료 등의 미국 연방 정부의 최고위층이 모이게 된다. 이 때문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대통령 승계 순위에 포함되는 한 명의 각료를 지명하고 백악관 혹은 모처에 비밀리 대기시키는데, 이를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라고 부른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 드라마인 웨스트윙에서도 지정생존자에 관해 묘사된 적이 있으며, 2016년 9월에는 미국의 ABC 방송국에서 아예 지정생존자[23] 라는 이름의 드라마도 방송되었다.
10. 특권
'''백악관'''을 주거공간 및 사무실로 쓸 수 있는 특권을 지니며 이에 따라 필요한 전체 보좌관, 보좌 비용, 의료 지원, 취사, 가계 등의 지원 등을 국비로 받는다.[24] 또한 현직 대통령과 그 가족들은 미합중국의 국토안보부 산하 '''시크릿 서비스 경호요원들에 의해 경호를 받으며 철저히 보호된다.'''
해외 순방이나 여행을 할 경우 '''에어 포스 원'''이라는 대통령 전용기가 제공된다. 에어 포스 원은 날아다니는 백악관이라고 불릴 만큼 업무를 보기 편하도록 개조되어 있으며 안에서 군사명령이나 업무를 볼 수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 공군이 특별 관리한다.
'''마린 원'''이라는 미 해병대 소속의 헬리콥터를 에어 포스 원 처럼 사용할 수 있고 미국 시크릿 서비스에서 관리하는 대통령 공식 의전차량인 '''캐딜락 프레지덴셜 리무진'''[25] 을 이용 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의 경우 1997년까지는 모든 전직 대통령과 그들의 배우자를 전직 대통령의 사망 시까지 보호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는 평생 동안 경호가 지원됐었다. 하지만 이후의 대통령들인 조지 W. 부시 대통령부터는 현직에서 물러난 후 최대 10년까지만 보호받게 되어 있는데, 최근 테러에 대한 위협이 심각해지고 있어서 이 결정은 재고되고 있었으며, 이후 2013년에 전직 대통령은 평생경호로 전환되었다.
미국 대통령은 모든 미국 연방 공무원의 최선임이기에 봉급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2001년까지는 연 $200,000을 받았으나, 봉급 인상이 이루어져 버락 오바마는 연 $400,000(2016년 5월 현재 약 4억 7천만 원)을 수령했다.[26] 미국 대통령에 대한 처우는 법률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 월급을 올리려면 의회가 법을 개정해야 한다.
부동산 재벌 출신으로 2016년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연봉을 1달러만 받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것은 물론 당선 후 지키겠다는 서약까지 하면서 주목받았다. 재임 중 한 아이가 대통령이 백악관 세금을 못 낼 것 같다면서 트럼프에게 돈을 약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곧 바로 트럼프는 돌려줬고 그 돈은 그 아이가 기부했다는 듯.
11. 대선으로 보는 정당사
11.1. 미 건국부터 2차대전 이전
미 건국 초기에는 정당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정당 제도가 "국가를 분열시킨다"고 생각했던 건국 지도자들의 뜻과, 범국민적인 존경을 받았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정당을 갖지 않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이 퇴임하자마자, 연방의 권력을 늘려 강대한 국가를 이루고 싶어했던 알렉산더 해밀턴과 각 주들에게 최종권력을 주지 않으면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말소될 것을 우려한 토머스 제퍼슨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결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해밀턴의 추종자들이 만든 연방당, 그리고 3대 대통령 제퍼슨은 자신의 민주공화당에서 승리하여 당선되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현대적 정당의 체제가 정립되기 이전이라, 두 당 모두 실질적인 권력은 별로 없었고, 유권자들도 대체적으로 당보다는 후보의 자질을 보는 편이었다.
제퍼슨 대통령 아래 나라가 좀 잘 돌아가자, 애초부터 굳건한 기반이 없었던 연방당은 선거에서 계속 패배하다가 결국 와해되고, 매디슨, 먼로 등 민주공화당 계열 인사들이 연속으로 집권하는 '화합의 시대(Era of Good Feelings)'가 도래한다.
마땅한 야당이 없던 민주-공화당 28년(1801~1829) 이후 존 퀸시 애덤스에 반대한 앤드루 잭슨 지지세력이 탈당하여 민주당을 세우면서 잔당세력은 휘그당이 되었다. 휘그당은 이따금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승리한 대통령이 죄다 병으로 급서하는 안습함을 보이며 점차 몰락의 기미를 보인다. 결국 남북전쟁이 발발할 무렵, 휘그당이 몰락하고 새로 생긴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당선되어 지금의 양당제가 시작된다. 참고로 이때 승리한 공화당은 아직도 미 역사상 유일하게 신생당이 대선에서 승리한 경우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링컨으로 시작되는 공화당의 24년간의 장기집권(1861~1885)이 있었다.[27] 개혁적인 이미지로 민주당의 클리블랜드가 잠시 집권하여 이를 깨뜨렸으나(그나마도 이어진 임기가 아니었다) 이후 공화당이 다시 16년간(1897~1913) 장기 집권했다. 다만 링컨 이후 한동안 공화당과 민주당은 약간의 관세 정책 빼고는 정책차가 거의 없었으며, 공화당이 선거인단 덕에 당선된 케이스도 두번이나 된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는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한 예로 수차례나 대통령에 출마한 사회주의자 유진 뎁스는 1912년 선거에서 6%나 득표한다.[28] 또한 부패한 관료들과 자비없는 대기업들에 반발한 중서부 농부와 서민층이 주축이 된 인민당(people's party, 혹은 populist)을 결성했는데[29] , 1892년 선거에서 이 당의 후보로 나온 제임스 위버 후보는 8.5%, 약 백만 명의 지지를 받고 중서부 4개 주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권 연장을 꾀한 민주당이 윌리엄 J. 브라이언이라는 걸출한 웅변가를 대선후보로 내세운 다음 인민당과 손을 잡아 1896년도 대권에 도전했으나, 쇼미더머니 수준의 선거자금을 모은 공화당의 윌리엄 매킨리 후보에게 대패하고 만다. 중서부에서는 대승했으나 북부를 털려서 망했어요. 브라이언은 인민당과 연대를 해제한 1900년과 1908년에도 다시 도전하지만 역시 패배하게 된다. 일설에는 대통령이 됐으면 아마 지금 미국은 농경국가로 탈바꿈해 있을지도 모른다 카더라.
이런 정치적 변혁은 현실 정치적인 변화도 이끌었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반트러스트와 개혁을 옹호하는 혁신주의(progressivism) 경향이 두드러진 것. 공화당 역시 혁신주의를 주창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나왔다. 이런 경향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이하 테디), 윌리엄 태프트, 정권을 교체한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테디는 1912년 공화당을 탈당해 혁신당(progress party, 혹은 진보당)을 차리기까지 했다.[30] 이러한 공화당의 분열로 윌슨의 민주당이 8년을 집권했으나 외교정책 문제와 1차대전 참전 문제로 신임을 잃고, 대공황까지 다시 공화당이 12년(1921~1933) 집권한다. 다만 이시기의 공화당은 혁신주의 사조를 완전히 뺀 자유방임주의 보수정당이었다.
이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이하 ''''FDR'''')이 나타나 4선까지 하고 해리 트루먼까지 이어가면서 민주당이 20년(1933~1953)을 집권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레이건과 부시의 12년이 있긴 했지만, 대략적으로 8년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번갈아서 집권하는 구도가 되었다.[31]
11.2. 전후 미국 대선사: "뉴딜 동맹" 대 "남부 전략"
다만 실제 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1933년 이후 정국은 민주당의 기존 남부 지지 + 북부의 서민 중산층 + 흑인 등 소수민족을 바탕으로 하는 "뉴딜 동맹"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시기였다(아이젠하워 역시 뉴딜정책 자체는 거의 계승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과 인종문제가 불거진 1960년대 이후 민주당 텃밭이던 남부(딕시크랫)는 점차 이탈하여 독자출마나 팀킬행위를 벌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공화당은 극우 + 백인 우월주의를 내걸고 적극적으로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 남방 전략)"을 펼치게 된다.[32] 이후 닉슨을 거치면서 공화당은 남부에서 상당한 지지를 뽑아내게 되며, 1980년대 이후 남부는 명실 상부한 공화당의 텃밭이 되었다. 닉슨 이래로 레이건, 부시 부자는 남부 + 서부 + 기독교 근본주의 + 백인 중심 + 신자유주의로 연달아 대승을 거두는 등, 공화당은 이 전략으로 2000년대까지 미국정치를 좌지우지했다.
민주당이 이 시대에 대선에서 승리를 간간이 거두긴 했지만, 케네디 이후로 남부 출신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린든 존슨은 텍사스 출신, 지미 카터 역시 남부의 조지아 출신 독실한 개신교도였으며(개인의 깨끗한 이미지와 워터게이트 어드밴티지도 있었다), 빌 클린턴 역시 남부(아칸소) 출신이었다. 반면 낙선한 마이클 듀카키스는 매사추세츠 출신 동방정교도였고, 앨 고어의 경우 2000년 대선에서 자신의 선거구인 테네시(남부)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민주당은 캘리포니아 등 서부 해안지대의 지지를 얻어냈으며, 결국 부시의 실정크리와 함께 오바마는 케네디 이후 최초의 북부(일리노이)에 지역구를 둔 대통령이 되며 남방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또한 인구 3위의 플로리다에서도 두번 모두 승리하면서 고어 vs 부시 때의 설욕을 확실히 했다. 재선에도 인디애나와 노스 캐롤라이나만을 내주며 비교적 여유롭게 성공.
하지만 민주당도 3연승을 달성하진 못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위세는 오바마 재임기간 내내 압도적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득표에서는 2.1% 패배했음에도 오하이오를 비롯해 민주당의 오랜 텃밭인 "러스트 벨트"(미시건과 위스콘신),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와 아이오와에 메인주 일부 선거인단까지 승리하면서 충격적인 선거인단 승리를 거두게 된다.
12. 기타 정보
- 미국 대통령의 공식 예우곡의 제목은 헤일 투 더 치프(Hail to the Chief)로 이 노래의 기원은 1810년 영국의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월터 스콧이 쓴 호숫가의 여인이란 작품속에서 나온 개선행진을 하는 족장을 위한 찬가에 작곡가인 제임스 샌더슨이 곡을 붙인데서 유래했다. 급속도로 인기를 얻은 호숫가의 여인은 1812년 5월 8일 뉴욕에서 첫 데뷔를 했고 미국 대통령의 찬가로 쓰인 것은 1815년 미영전쟁이 끝난 것을 기념하면서 처음으로 연주되었으며 당시 대통령이었던 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첫번째로 이 찬가를 받은 대통령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Hail to the Chief 항목 참조
- 역대 미국 대통령의 성별을 보자면, 전부 남성이다. 남북전쟁 기간 일시 분리 독립했던 남부연맹의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까지 포함해도 성립한다. 다만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최초의 (양대 정당 소속)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된 적은 있다.[34]
- 조 바이든을 포함, 현재까지 총 45명의 미국 대통령 중 공화당 출신 대통령은 19명, 민주당 출신 대통령은 16명으로, 대통령 배출에 있어서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다소 우위에 있다.[36]
- 1946년 생만 3명이나 나왔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도널드 트럼프. 그것도 버락 오바마가 중간에 낀 걸 제외하면 셋이 연속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 결과 전부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은 굉장히 젊은 나이인 47살에, 부시 Jr.는 그럭저럭 적당한 나이인 55살에, 트럼프는 늦은 나이인 71살에 각각 대통령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노무현도 이들과 동갑내기인 1946년 생이다.[37]
- 미국 매체에서는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의 두문자어로 POTUS라고 줄여 부른다. 공식 트위터의 아이디 역시 POTUS. 영부인의 경우 FLOTUS(First Lady Of The United States)라고 줄인다.
- 2016년 이후 한국 인터넷에서 천조국 황제/황상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생겼다. 한국민들과 친숙하거나 상당히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에 한해서 '형'이나 '형님'으로 칭하는 경우는 그 전부터 있었다.
- WASP(백인, 앵글로색슨(잉글랜드계), 개신교도)들만 선출된다고 오해를 받는데, 비앵글로색슨 혈통의 조상을 가진 대통령도 많았다. 대표적인 차별 받는 혈통이었던 아일랜드계 대통령이 적지 않은 것도 포인트. 앤드루 잭슨(양친), 제임스 K. 포크(양친), 제임스 뷰캐넌(부계 직계), 체스터 A. 아서, 그로버 클리블랜드, 벤저민 해리슨[38] , 윌리엄 매킨리(스코티시 아일랜드계 혈통), 우드로 윌슨(양친 모두), 존 F. 케네디[39] , 조 바이든[40] 이 그들이다. 특히 민주당 출신이 많다는 것이 흥미롭다. 빌 클린턴은 물론 심지어 버락 오바마도 아일랜드 혈통이 섞여있다[41] . 현대의 대통령이 유독 많아 보이는 것은 물론 차별이 사라진 탓도 있지만, 피가 하도 섞이고 섞인 탓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1980년대는 물론 21세기 초까지도 인구 통계에서 백인 조상의 출신마저 따지던 미국으로서는 눈에 띄는 것은 사실.
- 독일계 이민자의 직계 후손으로 대통령이 된 케이스는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
-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아이젠하워/Eisenhauer → Eisenhower)
- 허버트 클라크 후버(후퍼/Huver → Hoover)
- 리처드 밀하우스 닉슨(모계 성씨인 밀허스가 독일계 성씨다. 멜하우젠/Melhausen → Milhous).
- 도널드 존 트럼프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모두 독일 바이에른 왕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 마틴 밴 뷰런(판뷔런, Van Buren)은 전형적인 네덜란드계 출신으로, 그의 제1언어 역시 네덜란드어였다.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정치 명가 루스벨트(Roosevelt) 역시 판로저벨트(Van Rosevelt)이라는 네덜란드 성씨였다. 제임스 먼로의 먼로(Monroe)는 스코트계 성씨(그의 혈통에는 웨일스계도 섞여있다). 반면 프랑스계 이민자를 직계 조상으로 둔 경우는 없다. 드물게 그리스계 후보가 유력 후보가 된 적이 있으나, 그가 바로 현대 미국의 대표적 역전패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
- 사실 미국 최초의 President는 조지 워싱턴이 아니었다. 워싱턴 앞에도 독립(1781) 이후 연방조약이 비준되면서 탄생한 연방의회는 만장일치로 메릴랜드 주의 존 핸슨을 "대륙 회의 연방 의장"으로 선출하였다. 핸슨은 '미국 의회의 총의를 모은 연방 의장'이라는 직함을 받았고, 정부기관을 만들고 조약에도 서명하였다. 임기는 1년이었다. (핸슨 등 2회 역임 포함) 그렇게 7대가 지나고 연방 헌법이 비준된 1789년에 대통령이 된 것이 워싱턴이다. 때문에 엄밀하게 따지면 워싱턴은 8대 대통령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 미국 대통령은 임기수를 세지 않고,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댓수를 높인다. 대한민국이 2017년 현재 19대인 문재인 정부까지 12명의 대통령이 있었던 것[42] 과 다르다. 다만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경우 원래는 한 대로 치다가 두 대로 나누어 세게 된 것은 20세기 중후반의 최근의 일이다.
- 제7대 앤드루 잭슨 이후로 제16대 링컨까지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한 명도 없다. 그나마도 링컨은 재선 후 암살당했으며 8년 임기를 연속으로 제대로 치룬 인물은 우드로 윌슨이 나올 때까지 율리시스 S. 그랜트가 유일하다(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경우에는 윌리엄 매킨리의 암살로 승계했음). 이후 공화당에서 8년 임기를 제대로 마친 대통령은 거의 90년 후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현재는 위와 반대로 로널드 레이건 이후 조지 H. W. 부시와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실패를 제외하고 계속 재선에 성공하는 대통령이 늘어났다.
- 제15대 대통령인 제임스 뷰캐넌은 유일한 독신 대통령이다.[43] 제22대·24대 대통령인 그로버 클리블랜드도 취임식 때까지는 독신이었으나 대통령 재임시에 결혼했고, 체스터 A. 아서는 기혼자지만 대통령이 되기 전에 배우자가 죽어 대통령 재임 시에는 독신이었다.
- 미국 대통령들은 46대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신자인 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46대 조 바이든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신교도들이었다. 물론 종파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리고 개신교라고 해도 몇몇은 이신론에 가까운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대통령이 바로 토머스 제퍼슨이다.[53] 정교회 신자였던 사람이 대통령은 아니지만 유력후보가 된 적이 있기는 한데 바로 위에서 언급한 마이클 듀카키스(...). 모르몬 신도인 밋 롬니도 유력 후보가 된 적 있으니(...). 종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성공회 - 조지 워싱턴(초대), 제임스 매디슨(4대),[44] 제임스 먼로(5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9대), 존 타일러(10대), 재커리 테일러(12대), 프랭클린 피어스(14대), 체스터 아서(21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32대), 제럴드 포드(38대), 조지 H. W. 부시(41대). 11명.
- 장로회 - 앤드루 잭슨(7대), 제임스 뷰캐넌(15대), 그로버 클리블랜드(22, 24대), 벤저민 해리슨(23대), 우드로 윌슨(28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 로널드 레이건(40대)[45] , 도널드 트럼프(45대). 8명.
- 침례회 - 에이브러햄 링컨(16대), 워런 G. 하딩(29대), 캘빈 쿨리지(30대), 해리 S. 트루먼(33대), 지미 카터(39대), 빌 클린턴(42대), 버락 오바마(44대). 7명.[46]
- 감리회 - 제임스 포크(11대), 율리시스 그랜트(18대), 러더퍼드 헤이스(19대), 윌리엄 매킨리(25대), 조지 W. 부시(43대).[47] 5명.[48]
- 유니테리언 - 존 애덤스(2대), 존 퀸시 애덤스(6대),[49] 밀러드 필모어(13대), 윌리엄 태프트(27대). 4명.
- 네덜란드 개혁교회 - 마틴 밴 뷰런(8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2명.
- 그리스도의 교회 - 제임스 가필드(20대), 린든 B. 존슨(36대). 2명.
- 퀘이커교 - 허버트 후버(31대), 리처드 닉슨(37대). 2명.[50]
- 가톨릭 - 존 F. 케네디(35대), 조 바이든(46대). 2명.[51]
- 기타 - 토머스 제퍼슨(이신론적인 기독교[52] , 3대), 앤드루 존슨(초교파, 17대).
-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국의 여러 출판사에서 쓸데없이 ~리더십이라는 책을 앞다투어 낸다. 클린턴 리더십, 부시 리더십 오바마 리더십, 트럼프 리더십등이다. 사실 몇몇 대통령을 제외하면 전부 불쏘시개가 되는데, 미국 대통령 정도의 권력이면 아무리 리더십이 개차반이어도 자기가 하는 말에 전 세계의 지도자나 독재자는 물론 세계 재벌들과 심지어는 유엔과 IMF, WB조차 따르게 된다. 굳이 리더십 따위는 하등 쓸모가 없는 셈.[54] 다만 트럼프에 관해서는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트럼프를 다룬 책들이 많이 발행되어 애매하다. 마냥 리더십을 찬양하기 보다는 예상외의 돌풍을 경계하는 듯한 서적이 많이 나온 것도 사실.
- 미국 대통령 중 독립기념일(7월 4일)에 사망한 대통령은 모두 셋으로,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2대 존 애덤스와 3대 토머스 제퍼슨이 1826년에(제퍼슨이 몇시간 먼저 사망), 또 5대 제임스 먼로가 1831년 같은 날에 사망했다. 독립기념일에 태어난 대통령으로는 캘빈 쿨리지(1872년)가 있다.
- 미국 대통령의 별명과 애칭은 여기(#)를 참고할 것.
- 매년 2월 셋째 주 월요일은 바로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로 지정되어 있어서 그날에는 '역대 대통령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이때 제정된 이유는 미국의 국부인 조지 워싱턴과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인 링컨의 생일이 모두 2월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대통령 취임선서를 할 때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성경에 올려놓고 선서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들은 선서할 때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사용한 성서를 사용했으며 선서 때 성경을 사용하지 않은 사례는 1901년 취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사례가 유일하다. 42대 대통령인 클린턴은 자신의 할머니가 사용한 성경을 사용하여 선서했으며, 44대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의 성경을 사용하여 선서를 했다. 36대 린든 존슨은 에어포스 원 기내에서 취임선서를 하느라 정식 성경이 아니라 기내에 있던 가톨릭 기도서를 사용했다.
- 왼손잡이였던 대통령은 제20대 제임스 A. 가필드, 제31대 허버트 후버, 제33대 해리 S. 트루먼, 제38대 제럴드 포드, 제40대 로널드 레이건, 제41대 조지 H. W. 부시, 제42대 빌 클린턴, 제44대 버락 오바마로 총 8명이다. 재미있게도 20세기 후반기의 대통령들은 연달아 왼손잡이 대통령이 나왔다. 가필드와 트루먼, 레이건은 양손잡이이다.
- 사진은 미 대륙에서 1840년대부터 즐겨 찍기 시작했기 때문에, 최초로 사진에 담겨진 대통령은 존 퀸시 애덤스이다. 다르게 말하면 '건국의 아버지들' 세대인 조지 워싱턴부터 제임스 먼로까지는 모두 초상화만 남겼다. 한편, 최초로 재임 중에 사진을 찍고 남긴 대통령은 1841년에 취임한 역사상 최단임기의 윌리엄 해리슨 대통령이다. 다행히 취임 직후 사진을 남겼기 때문.[55]
- 이미지 정치를 즐겨 활용한 존 F. 케네디 대통령 이후로, 백악관 사진 보좌관(Chief Official White House Photographer)이란 직위가 신설되었다. 대통령의 임기 내내 1명의 보좌관을 두는 것이 관례였는데, 지미 카터만 예외적으로 사진 보좌관을 두지 않았다. 또 빌 클린턴은 임기 중 2명의 사진 보좌관을 두었는데, 1998년까지 재직 중이던 밥 맥닐리 보좌관이 르윈스키 스캔들의 충격으로 사직하면서 첫 흑인 여성인 사진 보좌관으로 샤론 파머가 지명되어 클린턴의 남은 임기를 재직했다.[56]
- 컬러 사진의 경우 기술은 20세기 초 부터 있었지만, 신문지면 등에 풀컬러 인쇄가 시작된 것은 1980년부터이다. 그래서 풀칼라 사진을 대통령 이미지로 즐겨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로널드 레이건을 기점으로 본다. 이는 레이건의 전속 사진사이자 백악관 사진 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에반스[57] 가 처음으로 공식 사진에서도 흑백 사진 대신 컬러 사진을 즐겨 사용했던 까닭도 있다. 이를테면 마이클 에반스의 대표작이 카우보이 모자를 쓴 레이건의 공식 컬러 사진이다.[58] 물론 컬러 사진은 19세기 말부터 단계적으로 꾸준히 발전한 기술이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컬러 사진으로 찍힌 대통령'을 정하는 건 의외로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초대 백악관 사진 보좌관으로 케네디를 촬영했던 세실 W. 스토우톤도 당연히 종종 컬러 인화를 했다.
12.1. 미국 대통령의 체격
-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뚱뚱한 순위 1위는 175kg(332lb)의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60] , 2위는 22대, 24대의 125kg(275lb)의 그로버 클리블랜드, 3위는 112kg(사망시, 238lb)의 21대 체스터 A. 아서이다. (4번째는 26대 말년의 시어도어 루스벨트로 108kg(237lb)이다.) # 기록 하지만 세월이 가면서 뚱뚱한 몸은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는지 최근의 대통령들은 뚱뚱한 사람이 거의 없다. 거구의 도널드 트럼프 조차도 236파운드(107kg) 정도다.# 그의 몸무게가 사실은 267파운드(121kg)라는 설도 있었고, 본인도 정치 활동 이후 살을 15파운드(7kg)가량 감량했다고 말한 적도 있지만 공식 몸무게는 여하간 236파운드이다.[61]
- 키와 체중으로 계산한 BMI 비만 지수로도 1위는 42.3의 태프트, 2위는 34.6의 그로버 클리블랜드이다. 다만 체스터 A. 아서와 시어도어 루스벨트, 도널드 트럼프는 키가 매우 커서 그런지 순위권밖이며 3위와 4위는 233파운드(105kg)의 25대 윌리엄 매킨리와 230파운드(104kg)의 12대 재커리 테일러이다.
- 키
-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키는 188cm였다.
- 미국 대통령 중 가장 키가 큰 대통령은 16대 에이브러햄 링컨(6' 4" = 193cm)[62] , 두 번째는 36대 린든 B. 존슨 대통령(6' 3.5" = 192cm)과 45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6' 3.5" = 192cm), 가장 키가 작은 대통령은 4대 제임스 메디슨(5' 4" = 163cm)이고 그 다음으로 작은 대통령은 8대 마틴 밴 뷰런과 23대 벤저민 해리슨(5' 6" =168cm). "작은 거인(Little Big man)"이라는 칭호를 받은 해리 S. 트루먼은 172cm이다. 창작물에서 작게 묘사되는 170cm의 존 애덤스도 당시 미국인 남성 평균키보다 컸다.
- 33대 해리 S. 트루먼의 2기 대선 상대인 공화당의 토머스 E. 듀이는 172cm로 트루먼과 키가 똑같았다. 이 선거는 트루먼이 항상 열세였고, 민주당 탈당 세력(월리스, 서몬드)이 두 명이나 출마했으며, 심지어 트루먼 본인도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으나 트루먼이 이겼다. (최후의 순간에도 듀이의 승리를 알리는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지의 역사적인 오보가 나올 정도였다) [63]
- 39대 지미 카터 이래 미국 대통령은 40대 로널드 레이건(6' 1" = 185cm)과 41대 조지 H. W. 부시(6' 2" = 188cm), 43대 빌 클린턴(6' 2" = 188cm), 43대 조지 W. 부시(5' 11.5" = 182cm), 44대 버락 오바마(6' 1.5" = 187cm), 45대 도널드 트럼프(6' 3.5" = 192cm) 등 미국 백인 남성 평균인 175cm보다 훨씬 크다. 모두 여러모로 "위너". 키는 정말로 권력인 모양이다...[64]
- 실제로도 1900년대 이전까지는 상대보다 키가 작은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경우가 더 많지만(예외가 링컨 정도), 1900년 이후로는 상대보다 키가 큰 후보의 승리가 압도적이다. 참고로 1900년 이후 이런 핸디캡(?)을 두 번 연속으로 극복한 유일한 인물이 조지 W. 부시(…). 그 역시 180cm을 넘는 182cm다. 그리고 오바마도 재선에선 자신보다 약간 큰 밋 롬니(6' 2" = 188cm)[65] 에게 승리하였다. 역대 후보 간 키 차이로는 압도적인 트럼프[66] 역시 득표에선 패배했지만 선거인단에서 승리. 2020년 대선의 맞상대 바이든도 6피트(183cm)의 키로 트럼프보다 3인치 작다.
- 대표적으로 6대 존 퀸시 애덤스는 1824년 대선에서 171cm의 키로 191cm의 윌리엄 H. 크로퍼드, 185cm의 앤드루 잭슨, 185cm의 헨리 클레이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하지만 재선에 나섰을 때는 7대 앤드루 잭슨에게 패했다.
- 가장 극적인 승리는 1812년 4대 제임스 매디슨이 차지했는데, 163cm의 키로 191cm의 드윗 클린턴을 상대로 승리했다.
- 지금까지 대통령 43명의 평균 키는 5' 11"(180cm)이다. 좀더 자세한 사항은 영어 위키백과의 여기 참조(#)
- 그 외의 외모 특징으론 수염이 있다. 초대 조지 워싱턴부터 15대 제임스 뷰캐넌까진 면도를 했으나, 17대 앤드루 존슨과 25대 윌리엄 매킨리를 제외하고 16대 에이브러햄 링컨부터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까지는 연속으로 수염을 길렀다. 특히 19대 러더퍼드 B. 헤이스, 20대 제임스 A. 가필드, 21대 체스터 A. 아서, 23대 벤저민 해리슨은 제법 돋보였다. 22, 24대 그로버 클리블랜드,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콧수염으로 길렀으며, 아서도 같은 콧수염이지만 특이하게 구레나룻도 기른 터라 두 부분이 이어진 모양새. 이후로 말끔하게 면도한 우드로 윌슨이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태프트 모두를 꺾으면서 이후로는 모두 면도한 대통령만이 당선되고 있다.[67]
- 역대 미국 대통령은 모두 안경을 착용한 적이 있지만, 대중들에게 안경을 낀 대표 이미지로 남은 인물은 단 4명 뿐이다. 바로 28대 우드로 윌슨과 33대 해리 트루먼, 그리고 안경을 낀 이미지와 벗은 이미지가 공존하는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이다. 엄밀히 말하면 FDR의 백악관 공식 초상화는 안경을 벗고 있으니 3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FDR을 제외한 3명은 어린 시절부터 안경을 쓴 터라 더욱.
12.2. 승리의 여신 오하이오 - 대통령의 출신 주
오하이오 주는 당시 동부, 서부, 남부, 북부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으며 인구가 상당하여 지금도 미국의 인구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역이기 때문에 대표적인 경합주(swing state)로 '''"오하이오 주를 제압하는 자가 대선을 제압한다"'''는 거의 정설화 되어있다. 1896년부터 빗나간 적은 단 세 번.[68] 사실 오하이오는 애초에 22,24대 그로버 클리블랜드를 빼면 1860년 링컨 선거 이후 항상 대선의 승부처였다.[69] 44대 버락 오바마도 두 번 모두 오하이오 주에서 이겼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생각해 볼 때, 오랜 역사나 득표 비율과 실제 대선결과가 가장 잘 들어맞는다는 점, 무엇보다 인구가 많다는 점(50개 주 중 7위, 선거인단 21→20명)에서 오하이오 주가 제일 낫다.
출신 주는 건국 초기에는 버지니아 주 출신이 7명이 나왔고, 그랜트 이후로 하딩까지 55년간 모두 7명의 오하이오주 출신 대통령이 나왔다. 오하이오 출신 대통령들은 죄다 공화당이다(…). 이후에는 다양해졌다. 오바마는 하와이 출신으로 미국 최초의 비본토지역 출신 대통령이기도 하다.
12.3. 총득표수에서 패하고 선거인단 수로 승리한 대통령
선거에서 총득표수에선 패했지만 선거인단에서 승리하여 한 경우는 역대 5번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로 인해 승리한 쪽은 모두 '''공화당'''이라는 것.[70]
- 1824년, 6대 존 퀸시 애덤스(84 대 99, 4만 표 뒤짐), 앤드루 잭슨을 꺾고 승리. 애덤스는 사실 득표도 선거인도 모두 밀렸지만 잭슨이 선거인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다. 미국 헌법에 따르면 이 경우 하원 의원이 선거인단이 되어 대통령 후보를 뽑게 되는데, 거기서 애덤스가 헨리 클레이 담합을 성공시키면서 당선되었다. 미국은 양당제 국가인지라 그 이후로는 과반 후보가 나오지 않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다.
- 1876년, 19대 러더퍼드 B. 헤이스(185 대 184, 25만 표 뒤짐), 새뮤얼 J. 틸던을 꺾고 승리. 오레건주의 선거 결과가 재검표를 할 때마다 다르게 나와서(...) 개표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거기서 표결을 날치기해서 승리했다.
- 2000년, 43대 조지 W. 부시(271대 267, 50만 표 뒤짐) 앨 고어를 꺾고 승리. 플로리다주 재검표 문제가 주대법원 재판까지 올라갔으나 결국 기각되어서 부시가 이겼다. 당시 플로리다주의 주지사가 부시의 둘째 동생이라서 재판이 편파적이라는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112년만에 제도의 불합리성이 다시 드러나 많은 미국인들이 충격을 받았으나, 현재까지 제도가 달라지지는 않았다.[71]
- 2016년, 45대 도널드 트럼프(306 대 232, 300만 표 뒤짐)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승리. 역대 사례 중 뒤진 표 수가 가장 많으면서, 동시에 선거인단 수 차이 또한 가장 많은 케이스. 힐러리 클린턴이 러스트 벨트의 주들을 다 잡은 물고기로 생각하다 불의의 일격을 맞았다.
12.4. 가족으로서 대통령이 된 경우
- 부자 대통령은 제2대 존 애덤스 대통령과 제6대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 41대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있다.
- 제9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과 제23대 벤저민 해리슨 대통령은 조손 관계이다.
- 제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제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먼 친척 형제 지간. 흔히 당숙과 조카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처삼촌과 조카사위 관계이다(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내인 엘리너 루즈벨트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조카). 부계로도 이어져있지만 12촌 지간. 사적으로 두 사람이 매우 가까운 사이이기는 했다.
12.5. 임기/취임시 나이/사망시 나이
- 가장 젊은 나이에 취임한 대통령은 암살당한 25대 윌리엄 매킨리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을 승계했던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1901년 9월, 당시 42세 11개월). 당선된 대통령으로 가장 젊은 나이에 취임한 대통령은 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1961년 1월, 당시 43세 6개월).
- 가장 노년에 취임한 대통령은 46대 조 바이든 대통령(취임일 기준 만 78세 2개월), 그 다음은 45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취임일 기준 만 70세 7개월), 그 다음은 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81년 1월, 당시 만 69세 11개월), 그리고 9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1841년 3월, 당시 만 68세 1개월) 순이다.
- 가장 단명한 대통령은 1963년 11월 22일 35대 암살당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 당시 46세 6개월(177일)), 2번째로 단명한 대통령으로는 역시 암살당한 49세 10개월(304일)의 20대 제임스 A. 가필드 대통령이다. 임기를 다 마쳤으며, 암살당하지 않고 병사한 대통령만 치면 11대 제임스 K. 포크 대통령이 53년 7개월(225일)로 가장 단명했다(전체적으로는 3위).[72][73]
- 가장 장수한 대통령은 2020년 10월 1일 자로 96세가 된 39대 지미 카터 대통령.[74] 2번째는 2018년 11월 30일 사망한 41대 조지 H. W. 부시 대통령(94세 5개월), 그 다음이 2006년 12월 26일 사망한 38대 제럴드 포드 대통령(93세 5개월)이고, 4번째는 간발의 차이로 2004년 6월 5일 알츠하이머로 사망한 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당만 93세 4개월). 참고로 81세로 사망한 37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이후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각각 93세 졸) 대통령도 90대를 넘겼다.[75] 이 외에는 2대 존 애덤스 대통령과 31대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90세로 각각 5, 6번째로 오래 살았다(애덤스가 후버보다 2개월 더 살았다).
- 임기가 가장 길었던 대통령은 단연 12년 1개월의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4선 대통령이었으나 4기가 시작되자마자 사망). 이후 1951년 헌법이 개정되면서 누구도 깰 수 없는 기록이 되었다. 반면 가장 짧은 대통령은 딱 1개월의 9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76] 그 다음은 5개월 반 만에 암살당한 가필드가 뒤를 따른다.
- FDR 이전까지는 승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당선 다음해 3월 4일이 취임식이었는데[77] , 1933년에 비준된 수정헌법 20조에 의거 FDR 재선 이후로는 1월 20일로 바뀌었다.
12.6. 생존 중인 전직 미국 대통령
2021년 현재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은 39대 지미 카터, 42대 빌 클린턴, 43대 조지 W. 부시, 44대 버락 오바마, 45대 도널드 트럼프까지 총 5명이다.
- 지미 카터 (1977년 ~ 1981년 재임, 1924년 10월 1일 출생, 100세)
- 빌 클린턴 (1993년 ~ 2001년 재임, 1946년 8월 19일 출생, 78세)
- 조지 W. 부시 (2001년 ~ 2009년 재임, 1946년 7월 6일 출생, 78세)
- 버락 오바마 (2009년 ~ 2017년 재임, 1961년 8월 4일 출생, 63세)
- 도널드 트럼프 (2017년 ~ 2021년 재임, 1946년 6월 14일 출생, 78세)
13. 인기 순위
- 16대 에이브러햄 링컨이 거의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2위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3위는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4위는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5위는 3대 토머스 제퍼슨이 자주 차지한다. 쉽게 말해서 정치적 견해나 설문조사 기관, 학자 등의 전문가나 일반 시민들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러시모어 산에 얼굴이 새겨진 4명의 대통령과 프랭클린 루스벨트까지 합쳐서 5명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5명으로 인정받는다고 보면 된다.
- 그 뒤를 이어 34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와 전임자인 33대 해리 S. 트루먼, 35대 존 F. 케네디, 40대 로널드 레이건, 28대 우드로 윌슨, 36대 린든 B. 존슨이 주로 10위권 이내에 꾸준히 드는 편이며 7대 앤드루 잭슨과 11대 제임스 K. 포크의 평도 좋은 편. 2대 존 애덤스나 6대 존 퀸시 애덤스, 4대 제임스 메디슨, 42대 빌 클린턴은 중상위권에서 등락이 심하다.
- 1982년의 로버트 머리와 팀 블레싱의 조사에 따르면 정치 성향마다 순위가 다른데 리버럴 성향에서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2위, 조지 워싱턴이 3위고 보수 성향에서는 그 반대라고 한다. 이 경우는 리버럴과 보수 할 것 없이 토머스 제퍼슨이 4위,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5위 였다. 마찬가지로 정치색 상관없이 꼴찌는 29대 워런 G. 하딩.
- 주로 남북전쟁 직전 남북 갈등기의 대통령들이 하위권을 차지하는 경향이 큰 편이다. 꼴찌의 경우에는 링컨의 전임자인 15대 제임스 뷰캐넌이 단연 1위, 가끔 링컨의 후임자인 17대 앤드루 존슨이 1위를 탈환하기도 한다. 그외의 꼴찌 그룹으로는 29대 워런 G. 하딩, 9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 10대 존 타일러, 14대 프랭클린 피어스, 13대 밀러드 필모어 등이 있다. 1위인 링컨의 그늘이 작용한 것이 큰 이유인듯.
- 앞에서 말했듯 임기가 짧았던 대통령들은 조사에 안 끼워 줄 때가 많은데 그래도 해리슨을 빼면 중위권은 한다.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경우엔 대부분의 조사에서 딱 중간에 있는 위엄을 보인다. 이런 "중간은 가는" 대통령으로는 41대 조지 H. W. 부시와 후임자인 42대 빌 클린턴 등이 사이좋게 있으며, 25대 윌리엄 매킨리나 8대 마틴 밴 뷰런도 정중앙 순위 근처에서 모습을 보인다.
- 그 외의 꼴찌 그룹 대통령중 한명이었던 18대 율리시스 S. 그랜트의 경우는 꼴찌 그룹 멤버였으나 이후 조사에선 상승세를 타고 있다.
- 43대 조지 W. 부시는 재직 중이던 2002년과 2005년에는 각각 23위, 19위로 중위권이었지만, 퇴임 직후인 2009년 CSPAN[80] 조사에서 (사임 직후의 닉슨에는 못 미치지만) 43명 중 36위를 차지하는 업적(?)을 남겼다. 2008년 재직 중 조사에도 37위였다. 10대 존 타일러보다도 순위가 낮아 앞으로의 꼴찌 그룹의 신생 돌풍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 2017년 퇴임한 44대 버락 오바마는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은 편인데, 재임 중인 2010년 시에나 대학 조사에서는 15위, 퇴임 직후인 2017년 CSPAN 조사에서는 12위를 차지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생존한 정치인들이 대개 그렇듯 정치적 견해에 따라 찬사와 비판이 엇갈리지만, 각종 설문조사나 업적 평가에서는 10위권 초중반대를 차지하고 있는 편. 오바마는 태생부터 흑인인지라 당연히 서민들로 이루어진 지지층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 새로운 하위권 멤버가 나타났는데 바로 오바마의 후임인 45대 도널드 트럼프다. 2018년 현역 대통령으로서 처음 명단에 올랐던 APSA, 시에나 조사에서 45명 중 44위, 42위를 기록하며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워런 G. 하딩, 제임스 뷰캐넌, 앤드루 존슨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아직 국민들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기 때문에 퇴임 후의 평가를 더 지켜봐야 할듯하다.
14. 해군 함명으로서의 미국 대통령
2차대전을 전후로 미국 해군은 항공모함, 전략원잠 등 최중요 함선에 역대 미국 대통령 함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59년 취역한 조지 워싱턴급 SSBN이 그 효시이다. 이후 함명에 사용된 미국 대통령들은 다음과 같다.
- 조지 워싱턴 (2번)
- 조지 워싱턴급 전략원잠 1번함 조지 워싱턴:1959년 취역, 1985년 퇴역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6번함 조지 워싱턴: 1992년 취역, 현역함
- 토머스 제퍼슨 (1번)
- 이튼 앨런급 전략원잠 5번함 토머스 제퍼슨: 1963년 취역, 1985년 퇴역
- 제임스 K. 포크 (1번)
- 벤자민 프랭클린급 전략원잠 6번함 제임스 K. 포크: 1965년 취역, 1992년 퇴역
- 에이브러햄 링컨 (2번)
- 조지 워싱턴급 전략원잠 5번함 에이브러햄 링컨: 1960년 취역, 1981년 퇴역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5번함 에이브러햄 링컨: 1989년 취역, 현역함
- 시어도어 루스벨트 (2번)
- 조지 워싱턴급 전략원잠 3번함 시어도어 루스벨트: 1961년 취역, 1982년 퇴역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4번함 시어도어 루스벨트: 1986년 취역, 현역함
- 프랭클린 루스벨트 (2번)
- 미드웨이급 항공모함 2번함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945년 취역, 1977년 퇴역
-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방공 구축함 30번함 루스벨트: 2000년 취역, 현역함
- 루스벨트의 경우 프랭클린 루스벨트 개인만을 기리는게 아니라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까지 기리기에 함명이 루스벨트다.
- 해리 S. 트루먼 (1번)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8번함 해리 S. 트루먼: 1998년 취역, 현역함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1번)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2번함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1977년 취역, 현역함
- 존 F. 케네디 (2번)
- 키티호크급 항공모함 4번함 존 F. 케네디: 1967년 취역, 2007년 퇴역
- 제럴드 R. 포드급 핵추진 항공모함 2번함 존 F. 케네디: 건조예정
- 린든 B. 존슨 (1번)
- 줌왈트급 구축함 3번함: 린든 B. 존슨: 건조예정
- 제럴드 R. 포드 (1번)
- 제럴드 R. 포드급 핵추진 항공모함 1번함 제럴드 R. 포드: 2017년 취역, 현역함
- 지미 카터 (1번)
- 시울프급 공격원잠 3번함 지미 카터: 2005년 취역, 현역함
- 로널드 레이건 (1번)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9번함 로널드 레이건: 2003년 취역, 현역함
- 조지 H. W. 부시 (1번)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10번함 조지 H. W. 부시: 2009년 취역, 현역함
반대로 루스벨트 이후 현임 트럼프까지의 대통령 중 함명에 쓰이지 않은 것은 비교적 최근에 퇴임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와 현직인 조 바이든과 함께 리처드 닉슨까지 6명뿐이다. 상술한 6명은 현직이거나 퇴임한지 얼마 안되어서이기도 하고, 리처드 닉슨은 이미지가 워낙 안 좋아서...[81]
[1] 미국 대통령의 문장은 제19대 러더퍼드 B. 헤이스 대통령에 의해서 1880년부터 쓰이기 시작했으며, 미국 대통령기는 1960년 하와이 주를 상징하는 50번째 별을 추가한 마지막 형태가 현재 쓰이고 있다.[2] 미국에서 선서를 하는 것(to swear)은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한 행동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혹은 개인적인 신념으로 인해 선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대신 확약(to affirm)을 할 수 있다. 이는 미국 헌법에 직접적으로 기재되어 있는 권리. 다만 역대 대통령 중 확약(affirm)을 한 대통령은 프랭클린 피어스 한 명 뿐이다.[3] 일반적으로 취임 선서 뒤에 '''"So help me God."'''(하나님 나를 도우소서.)을 붙여서 말하며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들이 선서 뒤에 이 말을 붙였다.[4] 대통령 권한 행사 이전에 필수적으로 본 선언을 완독해야 한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의 취임 선서 영상.[5] 해밀턴은 대통령이라는 관직 창설 아이디어가 관철되자 주 정부의 자치권도 박탈하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추진했으나 이것은 민주공화당 쪽 정치인들에 의해 부결되었다.[6] 특히 의회가 여소야대일 경우 더욱 심하다.[7]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서 '대통령 서명' 이라는 게 있는데 이게 아주 골때린다. 입법권과 사법권을 동시에 침해할 수 있는 괴랄한 권한이다. 자세한 것은 거부권 문서 참조.[8] 다만, 주방위군은 주지사의 지휘를 받고 미국 연방의 모든 군 지휘는 미국 대통령이 총 지휘하고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9] 제14차 수정헌법에 따라 '''정부 관리로 취임한 미국민이 반란이나 반역에 참여하면 다시는 정부에 진출할 수 없다.''' 정부 관직에 재진출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10] 즉, 이주해서 시민권을 얻은 사람은 안되지만 이주해서 시민권을 얻은 사람의 자녀가 태생적으로 미국에서 태어나면, 대통령 자격을 비롯해 미국의 정부 주요 관직에 진출 할 수 있는 것이다.[11]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서 큰 인기를 끌고,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섹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임기 말 지지율이 준수하자 "미국 헌법을 개정해서 귀화자의 대선 출마를 허용하고 대통령의 3선 금지를 철폐해서 귀화자 아놀드 슈워제네거 vs 3선 도전 빌 클린턴의 빅 매치를 성사시키자"는 말도 나왔다. 물론 헌법 개정은 인기 투표를 위한 도구가 아니므로 현실화되지 않았다.[12] 하지만 오바마가 설령 케냐에서 태어났어도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전제부터 애초에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태생적 미국 시민의 범위에 미국인 자녀가 포함된다고 해석할 경우 '''버락 오바마의 모친이 미국인이므로 오바마가 설령 케냐에서 태어났더라도 태생적 미국 시민이 된다.'''[13] 이 음모론을 믿는 사람을 birther라고 부른다.[14] 제럴드 포드는 1974년 사임한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직을 승계 받아 2년 165일 동안 임기를 수행했고, 1976년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출마하여 재선을 노렸으나 떨어지고 말았다. 1980년 선거에서 다시 한번 도전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출마하지 않았다.[15]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1912년 3선 출마를 하였지만 낙선했다. 1920년에도 출마를 결심했으나 1919년 사망했다.[16] 새벽 0시(자정)에 임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북한의 도발과 같은) 긴급상황에 대응하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어 한국도 미국처럼 정오에 임기를 마치게 하자는 논의도 제기된다.[17] 이는 미국 수정헌법 20조 1항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임기가 끝나는 해 1월 20일 정오에 끝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1월 20일 정오가 지나고 시작되는 것.[18] 왼쪽부터 조지 H. W. 부시,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지미 카터.[19] 이 사진이 찍힌 시점이 2009년 1월 초로,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이다.[20]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내무부 장관인 Sally Jewell이 이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여 계승 순위에 들지 못하였고 그 뒤의 계승권자들의 순번이 하나씩 올라가 있다.[21] 상원 임시의장이라고 번역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상원의장과 다름없는 직위이다. 미국 수정헌법에서 상원의장은 부통령이 겸직하게 되어 있지만, 부통령은 표결이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기에 실질적으로 상원에 출석하는 경우가 적은 편이다. 그렇기에 임시의장을 두고 실질적으로 하원의장과 비슷한 역할을 정해둔 것이다. 임시의장은 다수당의 최다선 의원이 맡는 게 관례로 되어 있다.[22] 원칙적으로 부통령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러닝메이트제로 함께 출마하고 같은 선거인단에게 투표를 받으므로 33대 해리 S. 트루먼 등의 경우에는 선거를 거친 대통령으로 판단된다.[23] 주인공이 대통령 계승 서열 13위인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인데, 의회에서 폭탄이 터져 대통령과 계승 서열 1~12위가 모두 사망했다.[24] 단, 공식 만찬이 아니라 가족 식비와 같이 사적인 목적이 명백해 보이는 항목의 지출에 대해서는 대통령 사비를 지출해야 한다.[25] 보통 캐딜락 원(Cadilac One)이나 더 비스트(The Beast)라는 호칭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26] 2016년 현재 행정부의 경우 부통령의 연봉은 $230,700, 장관 및 그에 준하는 공무원(Level 1) $207,500, 백악관 비서실장을 비롯한 핵심참모급 $176,461 정도 받는다. 사법부의 경우 연방 대법원장은 $255,500, 대법관은 $244,400, 입법부의 상/하원 의원의 연봉은 $174,000이다.[27] 사실 링컨의 후임자인 존슨은 민주당이다. 다만 내각은 공화당이 장악한 형태.[28] 이 시대의 정치사를 사회주의자의 시각으로 본 것이 소설 <강철군화>이다. 강철군화는 인민당이 주지사 권한을 넘겨받지 못할 것이고, 선거 역시 그럴 것이라는 대단히 냉소적인 시각을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물론 지금도 미국의 급진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이 시대는 "사회주의 혁명을 의회 쿠데타에 가까운 보수 양당의 선거제도 개악으로 저지시킨 시기"로 이해되고 있다. 실제로 선거인단 제도 등 미국 선거제도 자체가 소수당을 사표로 몰아 붙이는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29] 포퓰리스트, 포퓰리즘의 어원이 되는 정당이라고 하나, 포퓰리즘의 진짜 어원은 로마의 평민파에서 출발한다.[30] 흔히 "진보 정치사조"로 해석되는 "progress"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국민참여당 정도가 "혁신진보" 사조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의 사조는 "사회/사민"사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진보"란 단어 자체는 조봉암의 진보당에서 시작되었지만, progress의 의미는 이렇게 조금 복잡하다. 링컨의 반트러스트적 면모를 두고 혁신주의 사조를 링컨대까지 끌어올리는 시각도 있다. 이후에도 혁신주의는 1924년, 1948년(이 경우는, 민주당의 전직 부통령 월리스가 탈당한 경우) 대선 등에서 독자 출마로 상당한 득표력을 보인다.[31] 번외로 우리나라도 민주화가 된 이후인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지금까지 민주당계 정당과 보수정당이 10년간 번갈아가며 집권을 하고 있다.[32] 남부 극우파인 골드워터에 대한 존슨의 대승으로 끝난 1964년 선거에서 공화당은 여섯 주에서만 승리했는데, 모두 남부였다.[33] 미국 대통령의 공식 예우곡으로 공식 행사등에서 미국 대통령이 등장할때는 항상 이 곡이 나온다.한국의 봉황과도 비슷하지만 봉황은 군 행사에서만 연주하고 저 노래는 어느 행사에나 쓰인다는 차이점이 있다.[34] 사실 미국에서는 페미니즘이나 성평등 관련 논쟁보다는 인종 관련 논쟁이 더 뜨겁게 달궈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있는 것도 있다.[35] 정확히는 루오족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 여기에 대해서도 논란이 좀 있다.[36] 다만 이것은 민주당이 남북전쟁이라는 과오로 인해 내전 이후 당분간 찍혀있었던 탓도 있다.[37] 이전의 같은 연도 생 대통령으론 지미 카터와 조지 H. W. 부시가 있다. 둘 다 1924년 생.[38] 미국 제9대 대통령이자 그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헨리 해리슨은 앵글로색슨계지만 어머니 쪽이 아일랜드 혈통.[39] 심지어 케네디는 아일랜드계의 전형적 종교인 가톨릭(구교)까지 믿었다![40] 모계쪽은 100% 부계쪽은 50%가 아일랜드계 혈통이라고 본인이 밝혔다.[41] 클린턴은 정확히는 본인이 그렇게 주장한 케이스. 앤드루 존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해리 S. 트루먼, 린든 B. 존슨,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도 부분적으로 아일랜드 혈통.[42] 이승만(제1~3대), 박정희(제5~9대), 전두환(제11·12대)처럼 2번 이상 역임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43] 대신 제일 친하게 지낸 사람은 있었는데 바로 전임 프랭클린 피어스의 최단임 부통령이었던 윌리엄 루퍼스 킹. 뷰캐넌은 그와 동거한 적도 있었고 주변 정치인들도 킹을 뷰캐넌의 배우자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것 때문에 뷰캐넌을 동성애자로 추측하기도 한다.[44] 원래는 이신론이었다.[45] 그리스도의 교회였으나 이후 장로회로 개종.[46] 쿨리지까지는 공화당이었다가 트루먼부터 쭉 민주당이다.[47] 원래는 성공회였으나 1977년부터 감리회로 개종.[48] 포크만 민주당이고 나머지는 다 공화당이다.[49] 앞에 나온 존 애덤스와 부자지간이다.[50] 전부 다 공화당 소속이다.[51] 전부 다 민주당 소속이다.[52] 본인만의 성경을 만들기도 했는데,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교훈에만 집중하였다.[53] 이전에는 무신론으로 되어있었으나 사실은 이신론에 가깝다.[54] 이 때문에 포클랜드 전쟁도 사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이길지를 결정하는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칠레부터 미국의 눈치를 봤기 때문에 영국에게 자국 영공을 개방한 것이다.[55] 재임기간을 봐도 알 수 있지만, 퀸시 애덤스와 앤드루 잭슨 등은 모두 퇴임 후 말년에 사진을 남겼다.[56] 그 불륜이 벌어진 당일 직후에 클린턴의 요청을 받고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영문도 모르고 평소처럼 사진을 찍었던 맥닐리는 후일 스캔들이 드러나자 큰 충격에 휩싸여, 켄 스타 특별검사가 증인으로 세울까봐 두려워하며 변호사와의 접견조차 거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해프닝으로 샤론 파머가 보좌관으로 영전하게 된 것도 흥미로운 점. 여담으로 밥 맥닐리는 흑백사진을 주력으로 사용한 마지막 사진 보좌관이기도 하다.[57] 타임지의 사진 기자로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였던 레이건을 1976년부터 쫓아다녔고, 취임 후 4년간 사진 보좌관으로 재직했다. '레이건의 자석 같은 힘을 이길 수 없었다'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1985년 레이건의 2기 임기가 시작되면서 물러나 타임지로 복귀. 사진 보좌관 자리는 레이건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공석이 되었다.[58] 엄밀히 따지면 해당 사진은 취임 전인 1976년의 작품이지만, 워낙 유명한 에반스의 대표작이고 컬러 사진이라 같은 시기 흑백 사진들 사이에서 눈에 띈다.[59] 제임스, 존, 리처드, 허버트, 해리, 로널드, 드와이트, 프랭클린[60]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태프트 대통령이 그 살 때문에 그대로 욕조에 끼었다고 한다(…). 백악관 관리 여러 명도 모자라 버터 한 통을 부은 다음 간신히 꺼낼 수 있었고, 이후 욕조를 교체해 현재까지도 백악관 욕조는 미 전국에서 가장 사이즈가 크다고 한다(…). 당시 성인 남성 3명이 들어갈 크기다.[61] 앞의 링크에는 245파운드라고 되어있지만 일단 공식 기록을 따른다.[62] 링컨은 키는 가장 크지만, 반대로 체중에서는 마른 편에 속한다.[63] 듀이는 FDR과 대결한 1944년 대선에서 오하이오에서 승리했음에도 징크스가 빗나가며 크게 패했다. 물론 FDR의 상대로 나온 네 명 가운데는 가장 선전했다.[64] 사람들은 대체로 무의식 중에 키가 큰 사람들을 더 친절하고 능력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같이 선 상대보다 키가 월등히 크면 상대에게 말 못 할 압박을 주면서도 보는 이들에겐 상대보다 더 긍정적인 첫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65] [image][66] 6피트 3.5인치(192cm)로 5피트 5인치(165cm, 2008년 대선 당시 프로필)의 힐러리 클린턴보다 8인치(25cm)나 컸다. 그야말로 머리 하나 차이. 힐러리는 2016년 대선에서 5피트 7인치로 자그마치 5cm나 크게 프로필을 수정했지만, 실제로는 8년간 나이를 먹은 만큼 5피트 5인치보다도 살짝 작아졌다는 평가다.[67] 여담이지만 윌슨의 키는 5피트 11인치로 6피트인 태프트와 5피트 10인치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딱 중간이었다.[68] 닉슨을 이긴 35대 존 F. 케네디(1960년)와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4기 선거(1944년),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를 이긴 조 바이든(2020년).[69] 클리블랜드는 주지사를 지낸 뉴욕을 지지기반으로 승리하는 특이한 경우로, 약점인 뉴욕 주에서 패해 중간에 한 번 쉬었다가 대통령 임기를 나누어 두 번 수행한 케이스다.[70] 존 퀸시 애덤스가 속한 민주공화당은 공화당의 전신쯤 되는 당이기도 하다.[71] 부시가 테쿰세의 저주를 피한 것이 이것 때문이다란 말이 나올 정도.[72] 반면 역대 영부인 중 현 기준까지의 요절 최고봉은 바로 10대 존 타일러의 배우자 러티샤 타일러.(생몰 1790 ~ 1842) 그 다음으로 28대 우드로 윌슨의 영부인인 엘런 윌슨.[73] 여담으로 미국 역대 영부인 중의 인물들이 아닌 이미 남편의 대통령 재임 이전에 요절 만년 1위는 바로 3대 토머스 제퍼슨의 영부인 마사 제퍼슨(1748 ~ 1782) 이 다음으론 8대 마틴 밴 뷰런의 영부인 한나 밴 뷰런.[74] 2번째로 장수한 41대 조지 H. W. 부시보다 4개월 늦게 태어났지만, 부시 사망 이후에도 생존.[75] 번외로 미국 역대 영부인 중 2020년 현재 기준까지 최장수 영부인 타이틀을 유지 중인 인물은 바로 33대 해리 S. 트루먼의 영부인 베스 트루먼. 97세에 죽었다.[76] 취임년 4월 4일에 사망. 취임식 날 비를 철철 맞으면서 연설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특히 트럼프와 레이건을 제외하면 역대 대통령 중에 취임 최고령자였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거전으로 승리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런 노력이 모두 무색하게 되었다.[77] 단, 조지 워싱턴은 4월 30일 취임.[78] 왼쪽부터 초대 조지 워싱턴, 3대 토머스 제퍼슨,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1927년 시작되어 1941년 완성된 이 조각은 당시 재임 중이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제외한 최고의 인기를 누린 대통령인 링컨, 워싱턴, 시어도어 루스벨트, 제퍼슨이 새겨졌다.[79] 재미있는 것은 등수의 등락 방향이 FDR과는 같고, 워싱턴과는 반대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도리어 그를 인정하기 시작한 쪽은 리버럴 쪽일지도.[80] 미국 국내 유선 종편채널 중 하나로 미 상,하원 의정활동 실황 및 미 정책연구기관이 주체하는 미 국내외 정책현안 관련 토론회 등을 방송한다.[81] 하지만 닉슨은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가 올라가고 있어서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