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라쿠엔 홀
1. 개요
주식회사 도쿄돔이 운영하고 있는 일본의 다목적 체육관.
1962년 4월 16일에 개장했으며, 도쿄돔 시티 내부에 위치해 있어 도쿄 메트로 코라쿠엔역에서 내리면 도보로 1분 거리에 위치해 있을 정도로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경기장의 용도로 쓰이는 곳은 코라쿠엔 홀 5층인데, 이 곳에서는 격투기, 복싱, 프로레슬링 등이 열리며 이외에도 주요 세미나나 회의장으로도 이용되며, 일본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인 쇼텐도 열린다.
최대 수용 인원은 2,005명이며 이 중 좌석 수용 인원수는 1,403석이다.
2. 일본 프로레슬링의 성지
프로레슬링 팬들, 특히나 일본 프로레슬링 팬들에게는 이 곳이 프로레슬링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단체가, 아니 거의 모든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가 이 곳에서 흥행을 가지고, 주요한 경기들이 많이 열리는 편이다.
제일 처음 프로레슬링 경기가 열린 것은 1966년 11월 25일에 자이언트 바바 vs. 루이스 에르난데스의 경기였고, 이후로는 일본 프로레슬링[1] 이 코라쿠엔 홀 흥행을 독점하다가 1972년이 되어서야 전일본 프로레슬링이 코라쿠엔 홀 진출에 성공하였고 일본 프로레슬링(단체명)이 무너진 1973년 이후에는 모든 일본 내 단체들이 코라쿠엔 홀에서 대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과거 일본 내의 프로레슬링 인기가 높을 때에는 코라쿠엔 홀에서는 말그대로 지나가는 대회만 개최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경기장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2000년대로 넘어오며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시들해진 이후에는 코라쿠엔 홀을 채울 수 있느냐 없느냐가 그 단체의 현재 처한 상황을 나타내주는 주요한 척도가 되고 있다. 가장 많이 비교를 당하는 게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프로레슬링 NOAH.
신일본의 경우에는 부시로드 체제 이후 오카다 카즈치카를 필두로 한, 신진 선수들의 약진으로 흥행 최고가를 달리며 웬만한 코라쿠엔 홀 흥행은 매진, 혹은 매진에 상응하는 관중몰이를 하는 반면, NOAH의 경우 미사와 미츠하루 사망 이후 단체 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데에 이어, 이렇다 할 스토리라인의 부재와 그로인한 선수들의 성장 침체 등이 결합되어 최근 들어서는 흥행에 저조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메이저 단체의 경우 코라쿠엔 홀에서의 흥행을 축으로하여 외부에서의 흥행도 하는 등의 1년 일정이 짜여지는 반면 일본 내 인디 단체의 경우에는 코라쿠엔 홀을 빅 매치를 여는 용도로 쓰고 있기 때문에 코라쿠엔 흥행에서의 성공이 단체의 흥망을 내다본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2018년 4월 들어서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이 신일본 프로레슬링보다 대회를 하나 적게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라쿠엔 홀 4월 평균 관중수에서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며 최악의 위기 이후 괄목할만한 성장을 다시금 하고 있다고 평가 받기도 한다.번역본[2]
일본 여성 프로레슬링 단체 스타덤이나 WAVE 등도 이 곳에서 흥행을 여는데 평균 600~700명 정도의 관중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공식 유튜브에 코라쿠엔 홀을 안내하는 동영상이 올라와 있으니 혹시 방문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참고하도록 하자.
또한, 일본의 모 블로그에 올라온 관전팁을 국내의 블로그에서 번역한 글도 있으니 같이 참고를 해도 좋다.번역본
3. 기타
화면으로 볼 때 상당히 경기장으로 쓰이는 공간이 협소하게 보이는데, 이 때문에 말그대로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다. 덕분에 엔트런스와 관중석간의 간격이 얼마 되지 않아 엔트런스 부근에 앉아있는 관중들 같은 경우에는 등장하는 선수들을 엄청나게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과 운이 좋으면 선수들과 교감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통하기도 한다.
복싱 만화 더 화이팅에서 벌어지는 경기의 대부분이 여기서 연출되고 있다. 국기관이나 도쿄돔 같은 곳은 세계전에만 동원되고 있기 때문. 한국 복싱이 몰락하기 이전에는 여기서 원정경기를 치른 한국 복서들도 많았다.
[1] 과거에 존재했던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이며 1973년 붕괴 되었다.[2] 다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본문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신일본의 경우는 주요 대회 이전 전초전 양상의 시리즈가 주요로 열렸고 전일본의 경우 단체의 주요한 대회의 클라이맥스 경기들이 열린 것이기 때문에 대회의 질적인 차이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전일본은 앞서 서술된 것처럼 이시점이 최악의 위기를 딛고 서서히 부활하는 시점이기에 이 수치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치라고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