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에콰도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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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에콰도르'''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2.2. 19세기
2.3. 21세기
3. 관련 문서


1. 개요


콜롬비아에콰도르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스페인 제국의 누에바 그라나다 식민지 역사 및 독립운동사를 공유하며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스페인의 남미 정복 이전 에콰도르 남부 일부는 잉카 문명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여러 토착민들을 중심으로 고유 문명이 존재했고 잉카 문명의 영향이 조금씩 콜롬비아 일대의 원주민들에게도 전파되었다. 케추아어도 널리 쓰였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는 일부 케추아어 화자가 존재한다.
16세기 스페인이 남미 일대를 정복하면서 에콰도르와 콜롬비아를 아우르는 누에바 그라나다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오늘날 콜롬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건설된 식민도시 카르타헤나는 누에바 그라나다 식민지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으며 오늘날의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아우르는 지역의 생산물들이 카르테헤나로 집결되어 스페인 본국으로 혹은 아카풀코 항구를 통해 필리핀과 명나라로 수출되었다. 양 지역은 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스페인어가 보급되고 스페인인 남성과 원주민 여성과의 통혼으로 메스티소 인구가 증가하였다. 스페인은 스페인인 군인과 관료들을 주둔, 정착시킨 것 외에도 플랜테이션 개발을 위해 서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을 해당 지역으로 이주시켰는데, 이렇게 정착한 흑인들 역시 스페인인 백인들이나 원주민들과 통혼하며 물라토, 삼보 등 혼혈인이 되었다.

2.2. 19세기


19세기부터 스페인이 다스리던 남미 각지에서 독립열기가 높아졌다. 순혈주의가 강조되던 스페인 제국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파견된 백인 페닌술라르들이 남미 현지 태생 '''백인'''인 크리오요들보다 더 높은 계급으로 지정되었는데, 19세기 이후 스페인 본토에서 이주하는 인구가 증가하자 여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크리오요들이 시몬 볼리바르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스페인군은 처음에는 시몬 볼리바르의 반란군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으나 크리오요들은 계속해서 시몬 볼리바르를 지원하였고 결국 이후에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지역은 그란 콜롬비아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그란 콜롬비아는 시몬 볼리바르가 사망한 이후,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로 나뉘어졌다. 대 콜롬비아가 해체되면서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도 대 콜롬비아에서 분리되어 각각 독립국이 되었다. 하지만 독립 이후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는 영토 분쟁이 일어났고 콜롬비아 측에서 페루와 함께 에콰도르의 영토 일부를 점령했다.

2.3. 21세기


양국은 공통적으로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스페인인 선교사들과 군인, 관료들이 이주 정착하였던 이유로 언어, 문화, 종교 상당 부분을 공유한다. 두 나라 스페인어가 공용어이고 천주교가 지배적인 종교이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중남미쪽의 스페인어에 속하지만, 양국(특히 콜롬비아의 경우)의 스페인어는 스페인 본토와는 차이가 크지 않은 편이다. 천주교도 토착화되었다. 양국은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의 회원국이고 교류가 존재한다.
19세기에 일어난 영토 분쟁으로 콜롬비아가 에콰도르의 영토 일부를 차지하면서 양국간의 갈등이 일부 존재한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양국은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3.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