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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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upp, Friedrich Krupp AG (1903년 ~ 1999년)
크루프 사는 독일 에센 지방에 자리잡았으며 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크루프 가문이 창립한 기업이다. 철강, 병기 회사로 유명했다. 1999년 티센(Thyssen AG)과 합병하여 대규모 다국적 기업집단인 티센크루프(ThyssenKrupp AG)로 거듭났다.
18세기 말, 영국에서는 최초로 주강(鑄鋼) 기술이 발명되었으나 산업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제조법은 비밀에 부쳐졌다. 1810년, 프리드리히 크루프(Friedrich Krupp; 1787년 ~1826년)는 영국이 독점하고 있던 주강 기술을 밝히는 것에 뜻을 두었고, 에센에서 강철 주물(鑄物) 공장을 새우면서 크루프 가문의 금속 관련 사업을 시작하였다.
아들인 알프레트 크루프(Alfred Krupp; 1812년 ~ 1887년)는 마침내 독자적으로 주강 제조기술을 개발하였고 강철 롤러, 철도용 강철차륜의 주요 생산자로 떠올랐다.[1] 그는 유동상(流動床, fluidized bed) 공법에 투자하였고, 독일과 프랑스에 있는 많은 광산들을 인수했다. 그 시대의 기업으로서는 드물게도, 크루프 사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주택, 의료, 퇴직금 등의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였다.[2]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크루프는 1840년대부터 강철 포신 대포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였다. 그리고 이 제품을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에 전시하여 대영제국에게 한 방 먹이기도 했다.[3] 서멧도 이 회사에서 1926년에 개발한 금속이다. 특히, 러시아, 터키, 프로이센의 군대가 주요 고객이었다. 미국의 철강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주요 생산품이있던 철도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게 된 회사 상황, 그리고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이라는 2가지 요소는 크루프가 점점 더 무기 산업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1880년대 후반에 이르면, 병기 제조가 크루프 사의 전체 생산량 중 약 50%의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알프레드가 회사를 시작할 당시 크루프의 종업원은 5명이었다. 그가 사망할 즈음에서 20,000명이 크루프에서 일하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공업 기업, 독일 제국 최대의 개인기업이었다. 1903년에는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전시관을 세우고 대포를 전시한다. 또한 같은 해에 정식으로 기업법인을 설립하여 주식합명회사(Aktiengesellschaft; AG)가 되었다.
20세기 전반에는 구스타프 크루프 폰 볼렌 운트 할바흐(Gustav Krupp von Bohlen und Halbach; 1870년 ~ 1950년)가 회사를 이끌었다. 그는 크루프의 상속자인 베르타 크루프(Bertha Krupp; 1886년 ~ 1957년)와 결혼하면서 부인 쪽의 성(姓)인 '크루프'도 썼다.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뒤 크루프는 독일 재무장의 중심적 역할을 맡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 개발, 생산 무기로는 1호 전차, 88mm 대공포(Flak 18), 4호 전차, 티거 2의 포탑, 구스타프 열차포, 7호 전차로 계획된 뢰베가 있다. 크루프 산하의 조선소에는 유보트도 131척 제조하였다. 1943년, 히틀러의 특별 지시에 따라 크루프는 개인 회사로 전환되었다. 구스타프와 베르타의 장남인 알프리트 크루프 폰 볼렌 운트 할바흐(Alfried Krupp von Bohlen und Halbach; 1907–67)가 소유주가 되었다.
독일의 패전 후, 구스타프는 치매를 앓고 있었고 재판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뉘른베르크 계속재판 법정은 '크루프 재판(Krupp Trial)'에서 '약탈' 및 크루프사의 다음에 대한 죄를 물어 알프리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징역 12년 선고와 함께 소유 지분의 75%를 매각할 것을 명령한다.
1. 평화에 반한 죄: 침략전쟁을 획책하고 국제 조약을 위반하는 데 참여한 죄.
2.인도에 반한 죄: 점령국에 대한 약탈, 파괴, 착취에 참여한 죄
3.인도에 반한 죄: 독일이 점령한 지역의 민간인, 독일인, 전쟁포로들을 모살, 멸절, 노예화, 강제이주, 감금, 고문, 노예노동에 동원하는 데 참여한 죄
4.평화에 반한 죄를 저지르기 위한 계획 또는 음모 일체에 가담한 죄
하지만 냉전이 심화되고 인수자도 나서지 않자 1951년에 미국 점령군 당국은 그를 석방하였고, 알프리드는 1953년에 회사 경영을 재개하였다.
1968년, 크루프는 주식회사가 되었다. 1999년, 크루프는 가장 큰 경쟁 상대였던 티센과 합병한다. 이를 통해 탄생한 티센크루프는 독일 기업 규모 5위에 오르는 한편, 세계 최대급의 철강 생산 기업이 되었다.
한국하고는 별 상관이 없어보이는 회사 같지만 산하 회사 한국지사인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가 있다.
Krupp, Friedrich Krupp AG (1903년 ~ 1999년)
1. 개요
크루프 사는 독일 에센 지방에 자리잡았으며 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크루프 가문이 창립한 기업이다. 철강, 병기 회사로 유명했다. 1999년 티센(Thyssen AG)과 합병하여 대규모 다국적 기업집단인 티센크루프(ThyssenKrupp AG)로 거듭났다.
2. 역사
18세기 말, 영국에서는 최초로 주강(鑄鋼) 기술이 발명되었으나 산업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제조법은 비밀에 부쳐졌다. 1810년, 프리드리히 크루프(Friedrich Krupp; 1787년 ~1826년)는 영국이 독점하고 있던 주강 기술을 밝히는 것에 뜻을 두었고, 에센에서 강철 주물(鑄物) 공장을 새우면서 크루프 가문의 금속 관련 사업을 시작하였다.
아들인 알프레트 크루프(Alfred Krupp; 1812년 ~ 1887년)는 마침내 독자적으로 주강 제조기술을 개발하였고 강철 롤러, 철도용 강철차륜의 주요 생산자로 떠올랐다.[1] 그는 유동상(流動床, fluidized bed) 공법에 투자하였고, 독일과 프랑스에 있는 많은 광산들을 인수했다. 그 시대의 기업으로서는 드물게도, 크루프 사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주택, 의료, 퇴직금 등의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였다.[2]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크루프는 1840년대부터 강철 포신 대포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였다. 그리고 이 제품을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에 전시하여 대영제국에게 한 방 먹이기도 했다.[3] 서멧도 이 회사에서 1926년에 개발한 금속이다. 특히, 러시아, 터키, 프로이센의 군대가 주요 고객이었다. 미국의 철강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주요 생산품이있던 철도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게 된 회사 상황, 그리고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이라는 2가지 요소는 크루프가 점점 더 무기 산업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1880년대 후반에 이르면, 병기 제조가 크루프 사의 전체 생산량 중 약 50%의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알프레드가 회사를 시작할 당시 크루프의 종업원은 5명이었다. 그가 사망할 즈음에서 20,000명이 크루프에서 일하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공업 기업, 독일 제국 최대의 개인기업이었다. 1903년에는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전시관을 세우고 대포를 전시한다. 또한 같은 해에 정식으로 기업법인을 설립하여 주식합명회사(Aktiengesellschaft; AG)가 되었다.
20세기 전반에는 구스타프 크루프 폰 볼렌 운트 할바흐(Gustav Krupp von Bohlen und Halbach; 1870년 ~ 1950년)가 회사를 이끌었다. 그는 크루프의 상속자인 베르타 크루프(Bertha Krupp; 1886년 ~ 1957년)와 결혼하면서 부인 쪽의 성(姓)인 '크루프'도 썼다.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뒤 크루프는 독일 재무장의 중심적 역할을 맡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 개발, 생산 무기로는 1호 전차, 88mm 대공포(Flak 18), 4호 전차, 티거 2의 포탑, 구스타프 열차포, 7호 전차로 계획된 뢰베가 있다. 크루프 산하의 조선소에는 유보트도 131척 제조하였다. 1943년, 히틀러의 특별 지시에 따라 크루프는 개인 회사로 전환되었다. 구스타프와 베르타의 장남인 알프리트 크루프 폰 볼렌 운트 할바흐(Alfried Krupp von Bohlen und Halbach; 1907–67)가 소유주가 되었다.
2.1. 크루프 재판
독일의 패전 후, 구스타프는 치매를 앓고 있었고 재판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뉘른베르크 계속재판 법정은 '크루프 재판(Krupp Trial)'에서 '약탈' 및 크루프사의 다음에 대한 죄를 물어 알프리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징역 12년 선고와 함께 소유 지분의 75%를 매각할 것을 명령한다.
1. 평화에 반한 죄: 침략전쟁을 획책하고 국제 조약을 위반하는 데 참여한 죄.
2.인도에 반한 죄: 점령국에 대한 약탈, 파괴, 착취에 참여한 죄
3.인도에 반한 죄: 독일이 점령한 지역의 민간인, 독일인, 전쟁포로들을 모살, 멸절, 노예화, 강제이주, 감금, 고문, 노예노동에 동원하는 데 참여한 죄
4.평화에 반한 죄를 저지르기 위한 계획 또는 음모 일체에 가담한 죄
하지만 냉전이 심화되고 인수자도 나서지 않자 1951년에 미국 점령군 당국은 그를 석방하였고, 알프리드는 1953년에 회사 경영을 재개하였다.
2.2. 티센과 합병
1968년, 크루프는 주식회사가 되었다. 1999년, 크루프는 가장 큰 경쟁 상대였던 티센과 합병한다. 이를 통해 탄생한 티센크루프는 독일 기업 규모 5위에 오르는 한편, 세계 최대급의 철강 생산 기업이 되었다.
한국하고는 별 상관이 없어보이는 회사 같지만 산하 회사 한국지사인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