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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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Panzerkampfwagen IV''' (Pz.Kpfw IV)/(Pz. IV) (기갑전투차량 4호)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개발한 중형전차.
제 2차 세계 대전부터 6일 전쟁까지 사용되었다.
2. 상세
주력으로 상정된 3호 전차를 보조하면서 중화력이 필요할 경우 화력지원할 용도로 설계되었다.[1] 고속에 적합한 토션바 서스펜션을 가진 3호 전차와는 다르게 유보수에 편하고 가격이 저렴한 판스프링을 장착 하였고, 3호 전차와 다르게 전면 커버를 벗겨 변속기를 교체할 수 있게하면서 생산성, 유보수성에 신경 쓴 전차였다.
실질적으로 2차 세계 대전 시기 독일 육군의 주력으로 활약한 전차였는데 정작 주력으로 삼으려 했던 3호 전차가 너무 작아서 개량의 한계가 왔기 때문이였다. 물론 후반에 가서는 5호 전차 판터가 주력으로 양산되고 4호전차가 점차적으로 생산량이 줄어들게 되면서 자리를 물려주게 되지만, 2차대전 초기부터 후반까지 독일 기갑부대의 주력으로 활약했으며 독일군의 실질적 주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표준적인 중형전차의 체급으로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M4 셔먼이나 T-34, 크롬웰과 비교된다. 이들 연합군 전차가 곧잘 중전차급인 6호 전차 티거나 판터와 비교되는데 억울한 처사라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미군의 경우 생산성과 운송의 용이함을 위해 품종 단일화와 규격화로 셔먼 이상의 체급을 가진 전차를 전장에 투입하는 게 너무 늦어져서 셔먼이 비교 대상일 수 밖에 없다.
셔먼과 비교하자면 장갑도 빈약하고 대전차 능력이 열악한 4호전차 초기형은 절대적으로 열세하지만, 장포신 F2형에서는 75mm 셔먼에 비해 화력에서 다소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고, G형에서 장갑까지 강화되어 대등한 양상을 보였다.[2] 그러나 셔먼의 후기형인 M4A3E8이 등장함에 따라 4호전차는 300마력에 불과한 엔진 출력의 강화 없이 추가장갑과 기타 이유로 인해 중량은 계속 증가하여 기동성이 저하되었으나, 셔먼의 경우 350마력의 초기형에 비해 450마력으로 강화되어 기동성에서 우세를 점하게 되고, 76mm를 장착한 시점에서는 화력의 우위도 빼앗기게 된다.
T-34와 비교하자면 시야가 불량하고 비좁은 2인 포탑의 T-34/76 초기형이라 할지라도 장갑과 대전차 능력이 열악한 4호 전차 초기형보다는 우세했다. T-34-85가 등장하자 수치상으론 전반적으로 4호 전차 이상으로 향상되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스펙에선 여전히 T-34가 열세였다.
어쨋든 비슷한 체급이라고는 해도 설계 당시 불과 18톤급을 기준으로 설계되었으나 갈수록 불어나 구동계의 한계까지 잡아 째 25톤까지 늘어난 것이기에 억울한 비교라고 할 수 있다. 구동계를 개선하려고 해도 내부용적의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 3호전차와 같이 토션 바 현가장치로 갈아타려 했으나 내부 용적 문제로 기각되었다.[3] 덕분에 강화된 전면장갑에 비해 대전차 소총에도 위협받는 처지의 측면장갑을 위해 쉬르첸이라고 하는 추가장갑을 장착해야 했으며 여전히 겨우 300마력밖에 불과한 낮은 엔진 출력으로 인해 갈수록 IS 전차만큼이나 느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셔먼이나 T-34와는 펀치를 여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었기에 현역에서 싸울 수 있었다. 4호 전차의 전면장갑이 티거의 100mm에 비해 80mm로 고작 20mm 부족하여 압도하지 못했다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티거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전면장갑이 조금 더 두꺼워서가 아니라 연합군 주력 대전차포에 대해 상당한 내성을 가진 측후면 장갑과 우수한 기동성, 강력한 주포를 갖췄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탑 장갑은 여전히 50mm에 불과했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독일군이 바보가 아닌 이상 무슨 짓을 해서라도 20mm 정도야 강화했을 것이다. 훨씬 무거운 80mm 경사장갑을 가진 4호 구축전차를 보면 부담이야 심해지지만 못할것도 없었을 것이다.
셔먼과 T-34만 해도 각각 4만 대 이상이나 쏟아져 나온 연합군에 비교하면 초라하지만 4호 전차의 생산량은 순수한 전차 형식으로 8,500대, 돌격포와 자주포를 포함해서 최대 11,000대로 추산된다. 변형을 포함한 총 생산량은 3호 전차/3호 돌격포가 합계 15,000여 대로 제일 많으나, 전차 형식에서는 4호 전차가 3호 전차(4,000여 대)의 2배 이상이다. 어쨌건 꾸준한 개량으로 종전 이후까지도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이 때문에 독일군 사이에서는 '군마'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사랑받았다.
최초로 독립된 인터컴이 사용되었다. 이전에는 무전기를 이용해서 승무원끼리 인터컴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인터컴(전차 내부)과 무전기(전차 외부)를 동시에 사용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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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기별 구분
3.1. 초기(A형, B형, C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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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대트랙터를 시작으로 75mm급 중형전차개발을 시도했던 독일군은 37mm급과 75mm급을 합치려한 신축차량이 실패하자 1934년 1월 3,7cm 주포를 탑재한 주력전차와 7,5cm 주포를 탑재한 지원전차의 분류를 정립하고 그 개발을 추진했다. 전자는 소대장차량(Zugführerwagen, Z.W.)이라는 이름이 붙어 3호 전차의 설계로 이어졌고 후자는 호위차량(Begleitwagen, B.W.)이라는 이름이 붙어 크루프사와 노이바우파초이크를 제작한 라인메탈사가 참여했다. 양사의 설계 모두 노이바우파초이크의 설계를 기반으로 시작하여 많은 부품이 유용되었고, 노이바우파초이크의 다포탑형식을 따라 차체 전면에 기관총포탑을 탑재하였고 이에 따라 탑승원도 6명이었으나, 1936년 4월에 나온 크루프사의 시제차량에는 부포탑이 없는 상태였다. 반면 부포탑을 포기하지않은 라인메탈사의 설계는 여전히 노이바우파초이크의 연장선상에 있었고 5월에 시제차량이 나왔으나, 7월 크루프사의 차량이 선택되고 경합이 종료되면서 기술시험 및 실증차량으로 전용되었다.
이때 크루프사는 리프스프링 현가장치을 장착한 B.W. 1과 토션 바 현가장치를 장착한 B.W. 2 두개의 설계를 가지고 시제차량을 제작하였는데, 시험주행에서 B.W. 1과 리프스프링 현가장치가 더 우수한 주행성능을 보여주면서 이후 4호 전차에는 리프스프링 현가장치가 채택되었고 1936년 12월 35량의 생산이 주문되었다. 한편 B.W. 2 설계는 이후 10,5cm 포를 탑재한 연막발사차량(Rauchwagen, R.W.)개발에 사용되었으나, 이 차량의 주목적은 연막차장을 쳐서 적의 시야를 가리고 아군을 지원하는것이었고, 비록 해당포의 대전차화력이 확인되기는 하지만 빠른 기동을 요구하는 전투차량과는 거리가 있었다. 해당차량은 1938년에 개발이 종료되었다.
독일군이 4호 전차 A형의 수령을 시작한 것은 주문 1년 뒤인 1937년 11월이었는데, 이 차량은 또 B.W. 1과는 전체적인 형태만 비슷할뿐 2호 전차의 관측창과 3호 전차의 큐폴라가 설치되는 등 많은 부품이 개량되고 교체되면서 B.W. 1에서 그대로 남은 내부부품이 단 7품종에 불과했고, 1938년 5월부터 수령한 B형부터는 차체 기관총을 삭제하고 전투실의 형태를 육각면체로 수정하였다.[5] 대신 장갑이 14.5mm에서 30mm로 강화되었으며 이후로 계속 탑재될 SSG 76 수동변속기와 특히 3호 전차에도 채용되는 마이바흐사 HL 120 엔진이 탑재되었고 여기에서 큰 변화가 없이 후속형인 C형이 1938년 10월부터 출고되었다.
4호 전차의 개발과 성능이 매우 안정적이었고, 3호 전차처럼 차체설계를 4번씩이나 갈아치우는 사태도 없었으나, 독일군은 놀랍게도 4호 전차를 단종시키면서 그 말많고 탈많은 3호 전차에서도 최악의 결함품인 E형의 차체로 통합시킬 궁리를 했으니, 4호 전차의 포탑이 호환되도록 3호 전차 E형을 개수한 다임러-벤츠표준차체(Daimler-Benz Einheitsfahrgestell)를 개발하고, 4호 전차 B형의 생산이 종료되면 그 자리를 대신해 3호 전차 E형(정확하게는 다임러-벤츠표준차체)에 4호 전차 포탑을 탑재한 전차가 나오도록 예정하였다. 그러나 3호 전차 항목에 간략하게 설명되었듯 E형 차체는 대전차지뢰였으며, 3호 전차 대참사로 벌어진 전력공백을 메꾸도록 4호 전차의 단종은 포기되었고 B형과 큰 차이가 없는 C형이 장기간 양산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개전순간에는 오히려 3호 전차와 4호 전차의 숫자가 각기 98량과 211량으로 4호 쪽이 2배 이상 더 많았다.
그러나 여전히 4호 전차의 분류는 지원전차였다. 강력한 7,5cm 전차포의 화력으로 보병과 아군전차를 지원하고 특히 3호 전차의 화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프랑스군의 기병전차들이나 중전차들을 상대하는것이 주목적이었다. 요컨대 3호 전차의 37mm급 주포로는 상대가 어려운 보병진지나 토치카 뿐만이 아니라 전차도 4호 전차가 대적할 대상 중 하나였다는 얘기이며, "보병지원전차로 개발되어 대전차화력은 고려되지 않았다" 등의 얘기는 일체가 낭설이다. 따라서 4호 전차는 그 편제도 제한적이었다. 1939년 9월 독일군의 기갑사단은 2개 기갑연대로 편제되었고, 이 연대들은 다시 각각 2개 기갑대대로 편제되었다. 1개 기갑대대는 4개 경전차중대로 편제되었는데, 여기서 제1중대에만 4호 전차가 집중편제되었고 나머지 중대에는 1호 전차, 2호 전차, 그리고 3호 전차등이 배속되었다. 이 제1중대는 이후 중형전차중대로 이름이 개명된다.
3.2. 중기
3.2.1. '''D형과 E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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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10월부터 출고된 4호 전차 D형은 본격적인 생산형식이며, 앞서 기관총을 삭제하고 육각화시켰던 전투실이 다시 A형처럼 한쪽이 파인 형태로 복귀하고 그 자리에 기관총도 재설치되었다. 측후면장갑도 14.5mm에서 20mm로 증가되었고, E형부터는 차량전면장갑이 30mm에서 50mm로 대폭증가했다.
동시기 3호 전차가 전측후 4면에 모두 30mm의 장갑을 둘렀던 점을 고려하면 4호 전차의 방어력이 3호 전차와 큰 차이가 없었으며 오히려 E형에 들어서면 훨씬 더 나았음을 알 수 있다. 4호 전차는 대전차전력으로서 3호 전차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일선에 투입되어 프랑스군의 전차와 직접 교전하는 것이 고려된 전차였다. 특히 7,5cm 24구경장 전차포는 본디 3호 전차가 탑재하였던 3,7cm 45구경장 전차포는 물론이고 프랑스 침공 후에야 탑재가 시작된 5cm 42구경장 전차포와도 엇비슷한 관통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프랑스군의 중전차전력에 어떻게든 비벼볼 만한 매우 귀중한 전력으로 평가되었다. 실전에서의 투입은 이를 뒷받침하는데 1940년 6월 4일 제3기갑사단 예하 제3기갑여단장은 프랑스군의 전차에 효과적인 병기는 오로지 7,5cm 전차포의 철갑탄뿐으로 관통력이 확실한 4호 전차에만 대전차전의 주역할을 맡길 수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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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랑스 침공 도중 양주력전차의 방어력부족을 절실히 깨달은 독일군은 1940년 6월 당시에 생산 중이었던 3호 전차(F, G, H형)와 4호 전차(D, E형)의 30mm 전투실장갑에 30mm 추가장갑판을 설치하였고, 특별히 4호 전차에는 측면에 20mm의 추가장갑판을 설치하였다. 이 장갑판설치는 과거생산분에도 차례차례 적용되었고, 특히 D형의 이후 생산분은 차량전면장갑이 50mm로 통일되었다.
주포의 교체시도도 이어졌다. 3호 전차에 5cm Pak 38 대전차포를 탑재하여 그 화력을 강화하려던 히틀러의 지시가 탑재불가능을 이유로 독일군과 산업계에 의해 묵살되자, 1941년 2월 히틀러는 3호 전차에 5cm Pak 38 대전차포를 탑재하여 시험차량을 내놓을것과 함께, 3호 전차에 탑재가 불가능하다면 4호 전차에라도 탑재시키겠다는 의도였는지 4호 전차에도 해당 대전차포를 탑재시켜 시험차량을 내놓도록 명령했다. 결과적으로 독일군과 산업계의 주장과는 달리 3호 전차에 5cm Pak 38 대전차포의 탑재가 가능하다는게 밝혀지면서 4호 전차에 5cm 대전차포를 탑재하여 80량 생산한다는 계획은 취소되었다. 한편, 1941년 3월에는 크루프사가 3호 돌격포용으로 개발했던 7,5cm KwK40 43구경장 주포를 4호 전차에 탑재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독일군으로부터 차체의 길이보다 포신이 길면 안 된다는 이유로 34.5구경장으로 줄이도록 요구받아 12월에 가서야 34.5구경장 주포 1문을 완성한다.
3.2.2. '''F1형'''
E형의 후속형인 F형에서는 무장강화는 없고 다만 포탑과 전투실장갑을 50mm로 통일하고 측면장갑을 30mm로 증강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1941년 독소전쟁의 발발로 동부전선의 개전되던 당시의 4호 전차는 여전히 7,5cm 24구경장 전차포를 탑재한 상태였으며, 소련의 T-34나 KV-1 전차 등을 맞아 고전할 수 밖에 없었으나, 대부분의 대전차화기가 37mm 수준이었던 당시 독일군의 여건상 4호 전차는 제한되는 화력을 가지고 대전차화력의 주력으로 활동하여야만 하였다.
3.2.3. '''F2(G)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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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 쇼크가 있은 후인 1941년 11월, 7,5cm Pak 40(당시 Pak 44) 대전차포를 4호 전차에 탑재하는 작업이 시작되어 1942년 3월부터 7,5cm 43구경장 전차포를 탑재한 4호 전차 F형, 흔히 F2라고 부르는 차량이 출고되었고, 이 F2형은 T-34와 화력 측면에서 우세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 동부전선의 한 중대에서는 4호 전차 장포신형을 인도받은 뒤로의 시간을 "HAPPY TIME"이라 썼을 정도. 1942년 5월부터는 아프리카 전선에도 투입되었는데, 단 1개 중대 규모에 불과했음에도 당시 영국군의 M3 리 전차에 대해 상당한 우위를 점하면서 맹활약했다. 다만 당초 육군에서 우려했던 대로 차체에 상당한 무리가 가기 시작했고, 화력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크게 개선된 부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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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6월에는 모든 7,5cm 43구경장 전차포를 탑재한 F형이 G형으로 분류되었다. 즉 F2형이 G형으로 이름이 바뀐것. 비슷한 시기인 5월 생산분부터는 30mm 추가장갑판의 추가가 시작되어 전면장갑이 80mm로 증강되었으며, 약 1년뒤인 1943년 4월 생산분부터는 대전차 소총 대응을 위해 포탑과 차체 측면에 쉬르첸(Schürzen)을 도입했다. 주포도 7,5cm 48구경장 전차포로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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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르첸은 상당한 중량 증가를 불렀는데, 안 그래도 4호 전차는 중량에 비해 엔진 출력이 부족한 편이어서 상당한 문제가 되었다. 때문에 1944년 시점이 되면 일선에서는 차체 쉬르첸을 제거하고 운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다. 그래서 전쟁 최후반에는 무거운 철판으로 만들어졌던 기존의 쉬르첸을 대신하여 새롭게 철망형 쉬르첸이 만들어졌다.
또한 이렇게 포를 강력한 것으로 교체하고 장갑을 강화함에 따라 현가장치에 큰 무리를 주었다. 1942년 12월 50mm 경사전면장갑의 채택 등 대규모 개량을 시도한 후속형 개발이 시작되었으나, 4호 전차의 한계점이 왔다는 점만 확인되었다. 개량의 여지가 없어지면서, 독일군은 4호 전차를 퇴출시킬 준비를 하게 된다.
3.3. 말기
3.3.1. '''H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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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2월 후속형의 개발은 공식적으로 중지되었고, 생산성 유지를 위해 종전에 생산중이던 G형을 최종구동장치와 구동스프로킷의 교체와 포탑천정장갑을 16mm로 늘리는 변경만 하고 그대로 H형으로 계속 생산하도록 결정되었다. 또한 6월 생산분부터는 생산성강화를 위해 측면관측창이 사라지고 30mm 추가장갑판도 제거되었으며 대신 생산시부터 80mm 전면장갑인 채로 출고되었다, 9월부터는 자기식 흡착지뢰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자성 차단 코팅(일명 치메리트, Zimmerit)이 적용되기 시작했고, 기타 여러 부분에서도 사소한 개선이 이루어졌다.
이 H형은 사실상 4호 전차의 최종진화형이었다. 4호 전차에는 더이상 무장을 보강하거나 장갑을 증강할 여지가 없었고,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판터 전차와 어두워지는 전황의 영향으로 H형의 생산이 시작된 1943년 4월부터의 개선사항은 대부분 생산성강화와 연결되어있다.
3.3.2. '''J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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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2월부터 생산된 J형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포탑구동용 모터를 폐지한 것으로, 4호 전차의 퇴출이 초읽기를 앞둔 상황에서 구리를 비롯한 생산물자의 절약과 생산 시간 단축을 위해 이루어진 조치로 보인다. 다만, 방어전 추세에서 미리 조준하는 매복공격과 티타임 각도로 차체조준하는 전술의 변화로 볼 수 있다. 모터폐지후 7월 생산분부터 200L 연료탱크가 장착되었으나, 누유문제가 생기면서 삭제되고 9월분부터 다시 장착되었다(증가연료탱크가 없는 차량도 있다).
이후의 생산은 물자절약과 관련되어있으며 아래와 같다.
1. H형 후기부터 사이드 비전 블럭, 리턴롤러 고무림 폐지.
2. 조종수, 무전수 해치 가드모양 ㄷ으로 변경.
3. 포탑측면 해치 바이저(관측창) 폐지 5월이후.
4. 표면경화대신 압연강판으로 대체 6월이후.
5. 간소화된 배기 파이프는 8월 이후.
6. 치메리트 코팅폐지 및 Thoma shields는 9월 이후.
7. 옆으로 여는 전차장해치는 10월이후.
8. 후면중앙 하단 견인용 대형후크는 11월이후.
9. 차체상부 리턴롤러 3개로 축소는 12월이후.
10. 최후기형 트랙(홈이 파여있는 형태), 크레인용 후크가 단순한 철근형태, 머즐브레이크가 원형으로 변경. 시기는 불명.
H형은 J형과 함께 병행생산되어 1944년 7월까지 생산되었으며 J형은 종전으로 공정이 멈출 때까지 생산되었다.
4. 4호 전차의 형식들과 파생형들
2차대전 독일의 무기들이 대개 다양한 각종 형식과 파생형, 프로토타입, 페이퍼플랜을 가지고 있었으나 4호 전차는 개량의 여지가 많았던 주력전차라서 특별히 더 다양한 형식의 파생차량을 갖고 있다.
초기 실전투입 이후 발견된 미비사항들, 특히 장갑의 지속적인 증강이 이루어졌던 까닭에 동부전선 개전 이전에만 이미 A에서 F까지 6개의 차량형식이 존재했다. 그러나 독소전의 개전 후에는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고자 대대적인 형식변경을 피하고 월 단위로 생산선에 오른 차량에 지속적인 개량과 보완을 하는 것으로 대체했으므로 형식별로 구분하는 것에 큰 의미가 없어졌다. 같은 G형 차량 2대라도 생산년월도에 따라 서로 세세한 차이가 생기는 까닭인데, 이렇게 생산성 향상에 기를 쓴 덕택에 기존 전차의 차체를 이용해서 다른 용도의 차량을 만들 때도 당장 차대가 부족한 판터나 티거같은 물건들보다는 생산선이 비교적 넉넉하고 독일이 보유한 구형 전차중 가장 큰 몸집을 가져서 개조의 폭이 넓은 4호 전차를 개조하여 만들려고 노력한 것이 많았다. 특히 크루프사는 본디 H형으로 명명되었던 후속형 4호 전차 설계가 43년에 취소된 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44년에는 4호 전차에 판터용 슈말트룸 포탑을 올리는 계획을 독일군에 제안했으나 4호 전차의 생산 자체가 이미 중단될 예정이었으므로 특별한 고려없이 폐기되었다.
4.1. 형식별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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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호 전차 H형 제원
4.3. 4호 돌격포
Sd.Kfz 167 4호 돌격포. 해당 항목 참조.
4.4. 4호 구축전차
Sd.Kfz 162 4호 구축전차. 해당 항목 참조.
4.5. 4호 돌격전차
Sd.Kfz. 166 4호 돌격전차 문서 참조.
4.6. 훔멜
Sd.Kfz 165 훔멜 자주포. 해당 항목 참조.
4.7. 4호 전차 H형(경사장갑)
43년 취소된 4호전차 후속 설계형으로 경사장갑을 도입하여 차체의 정면과 측면의 방어력을 높이려는 설게안이다. 원래 H형으로 명명될 예정이었으나 설계안이 취소되어 H형은 다른 설계안으로 넘어간다.
4.8. 4호 교량 전차
포탑이 제거된 4호전차에 교량을 설치한 공병 전차이다.
4.9. 4호 로켓 전차
4.10. 4호 화염 방사 전차
3호 전차와 마찬가지로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전차 후방에 화염방사기용 용액을 을 담은 통을 장착한 리어카를 달고 다녔다. 독소전 초기에 등장하였다. E형을 베이스로 제작되었으며 정식명칭은 Pz.Kpfw. IV Ausf, E Tauchpanzer 이다.
4.11. 4호 탄약 운반 전차
Karl 자주박격포의 540mm, 600mm 대구경 탄환을 운반하기 위해 제작된 차량으로 Karl 자주박격포 1대당 1대가 배정 받아 총 7대가 제작되었다.
4.12. 4호 전차 8,8 Flak 36 장착 차량
2가지 형식이 있으며 포탑을 제거하고 장착한 전고가 높은 형식과 포탑 아래 운전수와 무전병의 전투실을 제외한 모든 전투실을 제거한뒤 장착한 낮은 전고의 형식이 있다. H형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4.13. 나스호른
Sd.Kfz 164 나스호른 대전차 자주포. 해당 항목 참조.
4.14. 수중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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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사자 작전에 투입되기 위해서 3호전차와 함께 '''15m'''정도 잠수할 수 있도록 개조된 잠수도하전차로 42대의 D형 전차에 개조가 이루어졌다. 역시 작전 취소로 인해 독소전쟁에서 하천 도하용으로 사용되었다.
4.15. 대공전차
4호 대공전차문서로
4.16. 4호 하이브리드 전차
파괴된 4호 전차중 재생 가능한 부분을 모아 재생한 전차 이다. 최소 2대에서 5대의 파괴된 4호전차중 재생 가능한 부분을 합쳐 탄생 시켰다. 그렇기에 다양한 형식의 부품을 장착한 전차들이 있었다.
4.17. 4호 전차 정수압식
정식 명칭은 Pz.kpfw.IV hydrostatischer 이다. 다른 4호 전차의 차이점은 엔진 부분에 집중된 었으며 그 덕분에 전방도 스프로켓 후방도 스프로켓이 장착되었다. 후방 엔진실은 둥근 거북이 등딱지 처럼 생겼다. 1대가 제작되었으며 전후 미군에게 노획되어 미국으로 보내졌다. 지금은 박물관 야외 전시실에 전시되었으나 박물관이 문을 닫았다.
4.18. 4호 전차 7,5/5,5cm Waffe 0725 장착형
3호 전차와 동시에 진행된 구경감소포(7,5/5,5cm Waffe 0725)를 장착하는 실험에서 제작된 프로토 타입 전차로 우수한 관통령을 보이나 제작비용과 제작 난위도가 너무 높은 나머지 취소된 프로젝트이다.
차체는 D형을 베이스로 제작되었으며 1대가 생산되었다.
4.19. 4호 전차 판터 슈말튜름 포탑 장착형
43년 경사장갑 H형이 취소된이후 44년 등장한 설게안으로 당시 제작중이던 판터 F형의 슈말튜름 포탑을 4호전차 J형에 장착하여 공격력과 방어력을 높이려는 시도 중 나온 설계안으로 정식 형식명은 부여받지 못하고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4.20. 기갑 자주포 계열
원래는 독일이 마지노선을 돌파하기 위해 벙커 공략용으로 고안된 자주포 프로젝트였으나 이내 폐기되었고 개발된 기간 동안 나왔던 차량이나 전차들 중 일부만이 전쟁에 쓰이기 위해 개조되어서 투입, 나머지들은 전량 폐기되었다.
- Pz.Sfl. IVa 기갑 자주포 4호 A형 "Dicker Max(디커 막스, 뚱보 막스)"
10.5 cm K (gp.Sfl.)(장갑 자주포)라고도 불린다. 단 2대만이 만들어졌다.
- Pz.Sfl. IVb 기갑 자주포 4호 B형
10.5cm 곡사포를 탑재한 자주포 시제 차량이다. 1939년에 크룹사에서 개발을 진행하여, 총 10대의 시제 차량을 생산해서 동부 전선에 시험 투입되었으나 대량 생산되지는 않았다.
호이슈레케(Heuschrecke) 계열 자주포와 자주 혼동되는데 이쪽은 그릴레(Grille)와 경쟁하던 다른 자주포다.
- Pz.Sfl. IVc 기갑 자주포 4호 C형
- Pz.Sfl. IVd 기갑 자주포 4호 D형
기갑 자주포 항목을 참조.
4.21. 4호 바펜트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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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펜트레거형 4호 전차(Waffenträger auf Pz. IV)
참조
4호 전차에 포탑을 제거하고 다수 개조를 가해 대구경의 중포를 올려 다목적 자주포 차대로 써먹으려던 계획안이다.
1943년 후순부터 1944년 초순까지 개발되었다. 149mm(15cm) sFH 18 야포를 단 형식과 128mm(12,8cm) Kanone 81 대전차포를 단 형식 2가지가 있었으나, 둘 모두 시제 차량 제작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왜냐면 1944년즈음에 전차 개발자들은 이 무겁기 짝이 없는 중포들을 4호보다도 가벼운 차대[7] 에 올리려고 했던데다 4호는 이 포들을 감당하기에 맞지 않았다. 다른 계획안들이 1944년 경에 있었지만, 1944년에는 이미 구형 전차로 전락한 4호 전차는 생산 중단을 계획한 상태였고, 당연하게도 바펜트레거 4호는 시제 차량조차 만들어지지 못한 채로 끝이 났다.
5. 활약상
2차 대전 나치 독일의 전차 중 가장 많이 생산된 전차다. 사실상 2차 대전기의 독일군의 주력전차로 봐도 무방하다. 판터나 티거가 유명하지만 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아 끝내 4호 전차를 완전히 대체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8] 전쟁 초기에 생산이 곤란해진 3호전차를 대신하여 2호전차와 같이 전쟁 초기에 활약했다. 이후 3호 전차의 5cm 주포가 T-34와 M3리/그랜트를 상대로 한계를 보이자, 3호 전차보다 포탑링이 넓은 4호 전차에 장포신 7.5cm 주포를 장착하여 원래 주력전차로 상정되었던 3호전차를 대신해 주력전차로 사용하였다.
성능도 준수한 편으로 F2형부터는 M4 셔먼 초중기형, T-34/76과 비교하면 '''최대''' 동급이었다. 둘과 비교시 일단 관통력은 우위였으나 처음부터 경량으로 상정되었기 때문에 기동력이 300마력의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얇은 전,측면 장갑은 끝까지 해결되지 못하다 판터와 4호구축전차로 대체되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3호, 5호, 6호 전차와 비교해서 신뢰성과 유지보수성이 가장 나았다는 점이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의 아들인 루돌프 폰 리벤트로프는 4호전차 전차병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 그는 1943년 쿠르스크 전투 당시 4호 전차 H형에 탑승하여 첫 전차 중대장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했는데, 그는 T-34 1개 대대를 동반한 소련군의 공격을 여러번 격퇴시킨 것으로 기록된다. 그는 서부전선의 노르망디 전투와 아르덴 공세에도 종군하였으며 1945년 5월 8일 미군에게 항복했다. 전쟁 기간 동안 총 5번의 부상을 입었으며 14대의 전차를 격파했다.[9]
2017년 현재까지도 살아있으며 자신의 아버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의 전기를 출판했다. 최근엔 우리나라 서코의 동인지 판처 데블스에서 오토 카리우스, 루트비히 바우어 등과 더불어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1943년 쿠르스크 전투에서 토텐코프 사단 소속 4호 전차 1개 중대가 T-34 40대와 조우하여 아무 피해없이 15대를 격파했다.[10]
1944년 7월 노르망디 전투에서 히틀러 유겐트 사단의 쿠르트 마이어가 이끄는 4호전차 중대가 길가에 정지하여 휴식을 취하던 캐나다군 중대를 기습하여 셔먼 22대와 차량 전부를 격파한 기록이 있다. 이 에피소드는 다큐 지상 최대의 전차전에서 실제 참전자에 의해 소개된 실화이다.
1944년 8월 폴란드 전선에서 비킹 사단 소속 4호 전차 중대의 기록이 특기할만 한데, 압도적인 병력차에도 불구하고 4호 전차 7대와 75mm 대전차포 4문으로 T-34 13대와 차량 5대를 격파하고 반격을 감행하여 152mm 돌격포 2대와 IS-2 4대를 추가로 격파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중대는 전차 3대를 더 지급받은 후 한달간의 격전에서 보유한 모든 전차를 상실했지만 적 전차 30여대와 차량, 화포 40대를 파괴한 것으로 추정된다.[11]
1945년 2월 동프로이센에서 4호 전차 H형 1대가 ISU-152 2대와 KV-85 1대를 격파하고 기지로 복귀한 적이 있었다. 이튿날 불과 4대뿐이던 중대에 2대가 추가로 증원되어 전투에 나섰고 방심하고 있던 소련군 전투부대를 털어 IS-2 5대를 추가로 격파하고 복귀한다. 중대엔 피해가 없었다.[12]
1944년 11월 폴란드에선 4호 전차 4대가 소련 중전차 소대의 IS-2 7대와 교전하여 2대를 파괴하고 1대를 손상시켜 소련군이 전차를 자폭시키게 만들었다. 물론 독일군도 피해가 있어서 1대가 완파되고 1대는 전투불능에 빠져 승무원들이 자폭시켰다. 다시 벌여진 교전에서 IS-2 1대를 더 격파하고 증원에 나섰던 T-34 2대와 SU-100 1대를 더 격파하였는데 여기서 4호 전차 1대가 궤도가 파괴되고 포탑링이 고장나 회전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왔지만 승무원들은 이후로도 전차를 버리지 않고 수동으로 돌리면서까지 분전하였고, 소련군 차량 2대를 더 파괴한 후에서야 전차를 파괴하고 철수했다. 살아남은 것은 1대가 전부였지만 어찌되었든 엄청난 활약인 셈.[13]
토텐코프의 3호 돌격포 에이스였던 에르빈 마이어드레스 소령은 자신의 전차를 포함한 전차 3대를 이끌고 T-34 6대를 격파, 적 보병 1개 중대를 휩쓴 후 다시 아군 보병들과 헝가리군을 이끌고 마을을 재점령했다. 마을에 방어선을 형성한 후 소련군의 공격을 4번이나 저지시켰으며 위의 활약으로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1945년 1월 다시 전선으로 복귀한 그는 전투에서 소련군 전차 2대를 더 격파했지만 적에게 피격당해 전사했다.
셔먼 및 T-34와 대등하다는 건 대전차전에 한정된 성능일 뿐으로 대보병전에서는 대전차소총에도 쉽게 뚫리는 등 취약한 면을 보여 T-34나 셔먼의 대보병전 성능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셔먼이나 T-34가 지속적인 개량과 차체 활용으로 한국전쟁 이후까지도 활발하게 쓰인 반면, 4호 전차는 대전 중반부터 이미 성능상의 한계로 추가적인 개량이 중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치 독일이 아주 망해버렸기 때문에 나치 독일 전차 전반을 포함하여 4호 전차의 설계나 기술을 이어받거나 본격적으로 개량된 경우는 없다. 그래도 생산량이 많아 2차 대전 종전 이후에도 남아있는 차량들 역시 많았기 때문에 남아있던 4호 전차들을 다른 나라에서 구해다가 한동안 운용된 사례가 꽤 있기는 하다.헝가리의 전차 에이스 에르빈 타르차이가 마지막으로 탑승했던 전차이기도 하다. 그는 4호 전차 1개 중대를 이끌고 소련군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나섰으나 피격당해 전사한 것으로 추정. 다만 그의 부대는 압도적인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분전하여 헝가리군 후미의 철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에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핀란드처럼 독일 전차를 공급받았던 나라들이나 노르웨이 등이 한동안 사용했다. 대부분 1950년대 초반에 퇴역했지만 잠시 동안 자국군용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러시아는 독일군에게서 노획한 차량들을 수출까지 했는데, 앞에 언급된 나라들, 즉 종전 전에 이미 4호 전차를 사용하고 있던 소련 위성국들에 대한 조치였다.
대전 후에는 시리아군의 사용이 특히 유명한데 시리아는 4호 전차와 더불어 3호 돌격포와 4호 구축전차, 험멜, 바이슨 등의 독일 기갑차량들도 다수 사들여 운영했다. 시리아군이 보유했던 4호 전차의 경우 정확한 수량은 알 수 없으나 대부분 버려지거나 격파된 차량을 재생한 것이었는데, 프랑스군에서 4호 전차 40여 대 정도를 공여받았으며, 재생공장을 갖추고 200대가 넘는 4호 전차를 재생해 보유하고 있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다수를 사들였고 스페인에서도 구입을 했다. 이 전차들은 1940년대 후반부터 1967년까지 사용되었고 이스라엘군과 격돌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구식 설계의 전차인 것은 어쩔 수 없고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였는데, 상대는 이스라엘군의 개량형 셔먼 및 센츄리온이라 화력이건 방어력이건 상대가 되지 않아 별 활약은 하지 못했다. 4호 전차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군 전차는 없으나, 1965년 국경분쟁에서는 센츄리온에게 4호 전차 2대가 바로 파괴당하고 나머지는 유기되었다. 1967년경에는 4호 전차를 약 35대 가량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6일 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군이 이 중 10대 이상을 파괴하고 6대를 노획했다. 마지막으로 격파된 4호 전차는 1967년에 수송 임무 행렬에 있었던 어느 한 이스라엘군의 M4 셔먼 전차(프랑스제 105mm 포를 장비)에 의해 격파당했다. 2차 세계 대전부터 내려오던 저 둘의 악연이 종전 20년 후에야 끝난 것이다. 이스라엘군에 노획된 일부 4호 전차들은 현재 이스라엘 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데 차체 기관총을 폐지하거나 러시아제 기관총을 장착하는 등의 약간의 개량이 되어 있었다. 시리아군은 남은 전차를 70년대에 한 대만 남기고 모두 스크랩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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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동급 기갑차량과의 비교
제2차 세계대전 중, 양산된 전차중 4호와 체급이 비슷한 전차 4대를 뽑아 보았다.(스펙은 초기 양산기/후기 양산기 기준)[37] 보면 알겠지만 4호 전차는 태생부터 가장 가벼운 축에 속한다. 4중 크롬웰 혼자 43년이란는 늦은 시기에 개발돼서 처음부터 스펙이 높으며, 4호 - T-34 - M4 - 크롬웰 순으로 개발시기가 차이가 난다. 4호 전차는 H형이 되어서도 25톤 수준이었으며 M4A3E8이 33.4톤, T-34-85가 32톤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4호의 개량에 한계가 온 것은 어쩌면 당연 할 지도 모른다.[38] 4호 전차자체는 확실히 우수한 전차였으나, 다른 동급 차량보다 등장이 빨랐으며[39] 서스펜션과 엔진의 여유가 적어 한계에 빨리 도달 했다. 독일은 대대적인 개량보다는 5호 전차 판터로 4호 전차를 대체하기로 하였다.
그렇다고 4호의 개량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당장 쓸 전차가 없는 독일에게는 현가장치의 한계까지 가더라도 가장 튼튼하고 신뢰성이 좋은 전차가 4호였다. 그에 반면 셔먼은 포탑과 포, M2 전차에서 이어져온 구식 현가장치[40][41] , 차체형상과 두께를 후기형에서 대대적으로 교체해서[42] 외형만 비슷한 수준이며 T-34는 T-34-85로 개량하면서 포탑을 3인용으로 교체하고 대구경의 포를 달았다.
4호는 장갑을 두껍게 하고 장포신의 주포로 교체한 것이 전부다.'라고 표현 할 수는 있다. 위의 문단을 보면 확실히 4호의 개량은 셔먼이나 T-34와 비교하면 적은 편이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맞는 말이지만 '언제 개량이 완료되었는가?'또한 중요한 점이다. 4호는 42년 중순부터 G형이 등장했고, H형이 43년 봄에 나왔다. 한편 M4A3(75)W가 44년 2월, M4A3E8은 44년 8월부터 등장했으며[43] , T-34-85는 43년에 일단 나오긴 했는데, 실질적으로는 44년 여름이라고 본다.[44] 조금이라도 개량이나 후속작이 늦게 나오면 전선자체가 위험해지는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타전차와 비교해 1년 정도 빠르게 나온 후기형 4호의 성능은 괜찮았다.
그렇기 때문에 4호의 성능은 화력을 제외한 기동성이나 장갑에서는 상대적으로 뒤쳐지며, 특히 300마력이라는 출력의 엔진은 끝까지 개량되지 않았으며, 4호가 저 넷중에서 기동에 가장 에로사항이 많았다.[45] 근본적으로 4호의 개량이 빨랐던 이유는 기본 설계안에서 빠르게 개량 할 수 있는 부분만 손을 봤기 때문이다. 독일의 기술력 정도면 4호를 완전히 개량할 수 있었고 50mm 경사장갑 개량안과 같은 구체적인 방법도 고려했다. 그러나 독일은 4호를 현가장치, 엔진교체, 경사장갑 등 단점을 해결하는 대대적인 개량이 결과적으로는 투자 대비 효율이 나쁘다고 보고 후속 전차를 생산하기로 결정 하면서 4호의 가능성은 끝나 버린다. [46] 생산댓수에 민감한 독일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는데, 소련은 겨우 T-34-76에서 T-34-85로 교체되는 동안 전차 손실을 감당하기 힘들어 랜드리스로 온 셔먼을 대신 충원했는데 만약 독일이 4호 개량안을 생산하기 위해 기존 4호의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면 전선에서 전차 손실에 대한 공백을 매꿀 길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4호는 M4A3E8처럼 현가부터 시작해 근본적으로 다 교체해야하며 그 결과물인 4호 개량안은 기존의 4호하고는 비슷하면서 다른 물건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미국은 기존의 셔먼이 넘쳐났기 때문에 M4A3E8 계열 셔먼을 생산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 이후의 4호는 일단 '4호 전차'라고 불리는 구축전차가 되었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4호 구축전차 항목을 참조하자.
7. 대중매체 속의 4호 전차
- Men of War 시리즈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전쟁 극화인 흑기사 이야기에서는 초기 흑기사 중대의 주력 차량으로 등장한다. 이후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중대 주력 차량이 5호 전차 판터로 전량 교체됨에 따라 리타이어.
소련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인 스탈린그라드에서 등장. 그중에서 볼가강으로 향하던 7대의 4호 전차부대가 소련군에 계속 고전하는 독일군의 요청에 따라 선두에 나서며 포격지원을 하는 모습은 거의 압도적인 포스를 자랑한다. 해당 장면 영화에 등장한 전차는 T-44를 H형으로 레플리카한 것이다.
- Dnieper line
- 모스크바 공방전(1985)
소련의 T-55를 허접하게 개조한 전차가 나온다. 포탑도 괴상하지만 가장 먼저 현가장치가 토션바 현가장치이다. 괴상한 포탑이 크루프 사의 4호 전차를 떠오르게도 한다.
- 프라하의 독립
- 탱크 브리게이드
현립 오아라이 여학원 소속으로 본작의 주인공 기체. 별별 데서 발견된 다른 전차들과 달리 창고 안에서 발견되었을 당시엔 D형 사양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일군이 4호 전차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과정과 동일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튜토리얼에서는 직접 미끼가 되어 세이그로의 처칠 전차와 마틸다 전차들을 유인하지만 팀원들의 미숙으로 놓치고 오아라이 시가지로 도주한 후 마틸다 전차 3대를 때려눕히고 다사마의 처칠 전차와 직접 맞짱을 뜨지만 실패한다. 선더스전에서는 나오미의 셔먼 파이어플라이를 격파하며 안치오전에서는 엑스트라 CV-33을 하나 날려버린 다음 안자이 치요미의 P26/40을 격파한다. 안치오전이 끝난 후 누군가 빨랫줄로 쓰던 장포신을 발견, G형으로 개수해 프라우다전에서 T-34 여러 대와 KV-2를 격파했다. 그 후에 H형으로 개수해 쿠로모리미네전에서는 이츠미 에리카의 티거 2에게 쫓기다가 시가지 전투에서 다른 팀원들과의 협동으로 8호 전차를 잡았다(!!). 그 후 언니야의 6호 전차 E형 티거 1 초기형 북아프리카 사양 2중대 1소대 2번 차량과 1대 1 대결에서 승리한다. 대회 우승 기념으로 치뤄진 익시비전 매치에서는 골프장에서 마틸다 전차 하나를 잡고 시가지로 이동한 후에는 세이그로의 크루세이더 전차 특공대를 로즈힙을 제외하고 전량 격파한 후 클라라의 T-34/85에 쫓기다가 다시 다사마의 처칠 전차와 1대 1 대결을 벌이다가 다즐링과 카츄샤의 협동 작전에 격파당한다. 오아라이 여학원 폐교 완전 철회를 위한 대학선발전에도 참가, M26 퍼싱 2대와[49] 시마다 아리스의 안센추 Mk.1을 격파한다. 겨울 대회인 무한궤도배에서의 BC자유학원과 치뤄진 1회전에서는 나무 다리 위에 포위되었다가 상어팀의 MK 전차를 이용해 빠져나온다. 또한 쿠로모리미네 여학원에서 4호 구축전차[50] 를 운용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독일군 6티어 전차로 등장한다.
7.1. 워 썬더
모든 4호 전차들은 빠른 기동성과 적당한 포탑 회전 속도(J형 제외), 티어 대비 적당한 관통력과 강한 편인 펀치력을 지녀 중형전차다운 활약을 하기에 모자람이 없지만 딱 하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바로 없는 거나 다름없는 장갑. 고증대로의 사항이긴 하지만, 티타임 준 전면장갑이고 뭐고 거의 모든 각도에서 동티어의 아무 탄이나 맞으면 반드시 죽거나 뭔가가 크게 손상된다. .50 BMG급 이상의 기관총/포로 측후방도 따인다. 따라서 기동성을 살려서 신나게 내달리며 옆구리나 뒤통수를 후리는 기동전이나, 저격으로 킬을 딴 뒤 숨는 식으로 적에게 노출되는 시간 자체를 최소화하는 플레이가 요구된다.
7.2. 월드 오브 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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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의 밀리터리 게임 개발업체인 워게이밍넷의 전차 MMO 게임 월드 오브 탱크에서 독일군의 3~6단계를 담당하는 차량으로 등장한다. 5단계인 4호 전차와 H형 차체를 기반으로한 구축전차가 6단계 정규 구축전차로, J형을 기반으로 설계된 계획안이 6단계 프리미엄 전차로 배정되어 등장한다. 이후 9.0 패치를 통해 4호 전차는 쉬르첸을 받으면서 H형으로 자리잡았고 기존 라인업에서 3단계에 시작형인 A형이, 그리고 4단계에는 최초 양산형인 D형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또다른 바리에이션으로 G형에 정수압식 구동장치를 장착한 시험 모델이 존재한다.
초기형 4호 전차 라인은 3호 전차 라인에서 옆그레이드 통해 넘어가야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으나 그 단계 대에서는 꽤나 준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다만 장갑판을 추가한 형식들이 아니기 때문에 방어력이 같은 단계 경전차만도 못하다는 아쉬움이 존재한다. 반면 최종 완성형인 5단계 4호 H형은 공수주가 적절하게 섞인 적절한 전차로, 특별히 모난 부분 없이 적당적당한 전차다. 이 H형 이후로는 포르셰[51] 나 헨셸 / 아들러[52] 의 중전차 라인업으로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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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기형이자 개악형이었던 J형은 H형에 비해 나은 것이 없기 때문인지 기본형으로 나오지는 않았고 페이퍼플랜 전차의 형태로만 등장한다. 4호 전차 J형에 판터 F형 용으로 개발된 슈말트룸(Schmalturm) 포탑과 70구경장 7,5cm 전차포를 탑재한 차량이 바로 그것으로, 전쟁 말기에 4호 전차 제작이 중단되고 판터 F형조차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면 상으로만 남은 물건이다. 본래는 8.0 패치 이전의 4호 전차의 최종 업그레이드형이었으나 5단계 중형전차 치고 너무 강력한 화력을 가졌다고 판단했는지 8.0 패치를 기점으로 5단계 정규전차에서 6단계 프리미엄 전차로 빠져나왔다. 9.8 패치로 판매 종료.
4호 전차 포탑을 5호전차 판터 차체에 탑재된 Pz.Kpfv.4/5호전차와 알파테스트형 4/5호 전차가 프리미엄 한정 전차로 등장한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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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로 등장한 정수압식 모델(Hydrostat.)은 4호 전차 계열의 또다른 프리미엄 전차로 전체적으로 8.11까지의 4호 전차와 비슷한 성능이며 최대 6탑까지만 배치된다. 허나 105mm을 달 수 있는 4호 전차 H형보다는 성능이 조금 딸리고 같은 단계의 T-25보다도 많이 모자란다. 그냥 구매할 수는 없고 레이저 데스애더 마우스(월드 오브 탱크 에디션)를 구매하면 거기에 딸려나온다.
밀폐형 전투실 구축전차 트리 6단계에 위치해있는 4호 구축전차는 한 때 J형 차체를 기반으로한 포마크(Vomag) 社 버전으로 등장했으나, 9.10 패치에서 HD 텍스쳐와 새 모델링을 받으면서 H형 차체로 변경되었다. 적당한 기동력과 훌륭한 위장력, 믿음직한 전투실 방어력이란 강점을 가져가나, 구축전차 계통의 생명줄과도 같은 주포가 어정쩡한 성능으로 발목을 잡는 아쉬운 차량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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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4호 전차와 3호 전차의 부품을 섞어 쓴 훔멜 자주포와 나스호른 대전차 자주포가 각각 자주포 트리, 개방형 전투실 구축전차 트리 6단계에 배정되어 있으며, 4호 전차 차체를 이용한 화포 운반차량인 바펜트레거형 4호 전차(Waffenträger auf Pz. IV)가 개방형 전투실 구축전차 트리 9단계에 배정되어 있다.
7.3. 레드 오케스트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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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저에게 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차맵인 굼락을 제외하면 꼼지락거리며 전차에 기어오는 거지같은 대전차 보병이나 폭약을 들고 기어오는 소총병들에게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시야가 잘보이는 전차장-포수-탄약수 3명 포지션에 큐폴라까지 달려있는 4호전차는 포수가 전차장까지 해야하는 T-34보다 훨씬 편하다.
원래는 보병들이 전차와 함께 움직이면서 엄호해주고 보병이 전차의 눈을 대신해주며 전차는 보병을 보호하는 포와 기관총을 장착한 움직이는 강철의 토치카로서 작용해 시야가 제한되는 T-34도 딱히 문제 없어야 하는게 맞지만, 이 게임에서 전차가 해야 하는 일은 보병들이나 한가하게 기관총으로 썰어버리다가 공격하는 쪽의 전차가 우리쪽 지역을 점령하러 왔다던가, 아니면 내가 공격하는 측인데 방어쪽 전차가 계속 아군을 쓸어버리고 있고, 대전차무기가 별 소용이 없을때 출동해서 대전차전을 치루는게 다인데, 그때 저렇게 넓은 시야는 적을 먼저 발견해 선빵을 날리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다만 넒은 시야에 비해 T-34보다 약점이 너무 많다. 승무원 사살지점도 여러군데 있고. [54]
8. 모형화
유명한 전차인 만큼 여러모형사에서 모형화 했다. 티거도 그렇고 판터도 그렇지만 실물보다 많은 양이 생산되었다. 드래곤, 이탈레리, 아카데미 등.
구판의 경우 타미야 구금형 카피품으로 오류까지 그대로 따라왔다. 저렴한 것 외에는 딱히 메리트가 없고 연습용 키트로 적당하다. 가공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는 모델러라면 차체 측면 쉬르첸 정도는 플라판으로 재단하여 자작해주면 싼 가격에 그럭저럭 만족스러워 지니 고증에 아주 신경쓰지 않는다면 적당히 손봐서 만들어 주면 좋다.
2018년 1월에 발매될 신판은 카피 금형의 오류들을 거의 고쳤고 신금형답게 디테일이 선명하고 조립성은 타미야 H/J형 수준으로 좋아졌다. 그러나 포탑 장갑판 접합부의 단차와 차체상면의 분할로 인한 단차가 거슬릴정도이며 차체하부 좌우가 뻥 뚫려있어 엄청난 숫자의 밑핀이 다 보인다. 아이들러휠 부분은 접합부분의 강도가 약해서 각도가 외측으로 틀어지며 포탑링 부분은 설계미스인지 매우 뻑뻑해서 차체 결합부와 같이 갈아 주어야한다. 찌메리트 데칼을 넣어주었으나 전면하부장갑부분이 없어 제대로 재현하려면 별매품을 구매하여야한다. 전면 스커트의 길이 오류와 두리뭉실한 디테일, 차체 외측으로 나온 밑핀이 주로 지적된다. 파생형으로 돌격포, 브룸베어가 있으며 H후기/J초기형이 2020년 발매예정이고 추후 H초기형도 발매예정이다. H중기/후기/J초기에 한정했으면 완성도가 높아졌을것인데 돌격포 바리에이션전개를 위해 차체상면을 두부분으로 분할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브룸베어나 4호돌격포는 드래곤과 타미야에서 거의 악성재고수준으로 판매량이 처참한데 상품기획에 의문점이 든다.
- 트라이스타(하비보스)
- 페이퍼 크래프트
9. 여담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한국이 체코를 통해 H형과 J형을 혼합해 들여오려 했으나 무산되었다는 루머가 간혹 도는데, 당연하게도 이 루머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 이 루머는 소설가 윤민혁이 과거 구상했던 대체역사소설의 설정이 진짜인 것처럼 네티즌들에게 와전되는 바람에 퍼진 것이라 한다.
한국전쟁 발발 이전의 시기라면 한국에 대해 미국이 군사원조를 그다지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서 한국 측에서 돈 줄테니 무기를 팔라고 해도 되려 미국 측에서 거절하던 그런 시기였기에[56] , 그러한 시대상을 어느 정도 반영한 설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작가가 독일군 매니아라서 그런것도 있을 것이다. 2차 대전 직후의 시기라면 M4 셔먼과 T-34도 아직 당당한 현역 장비였던 시기였으니 만큼 당시 한국의 재정상황이 개판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는다면 대체역사물의 설정으로서 개연성이 그렇게까지 떨어지는 설정은 아니긴 하다. 다만,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면 해당 시기의 한국의 열악한 국력에 대한 문제를 제외하고 본다 해도 어떻게 4호 전차를 유럽에서 한반도 땅으로 수송해올 것인가에 대한 문제나 부품 수급과 정비 인프라 등은 과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등 여러 과제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차피 현실과는 역사가 다르게 흘러가는 대체역사물의 설정이므로 어찌되었든 추가설정으로 메꾸면 되는 일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