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거 2
[image]
사진의 전차는 포탑 전면의 장갑판이 수직으로 된 양산형 포탑을 장착한 후기생산형.[1]
[clearfix]
1. 개요
Panzerkampfwagen VI Ausf. B '''Tiger II''', 제2차 세계 대전 후반에 등장한 독일군의 중전차이다. 티거 2라는 본명보다도 쾨니히스티거(Königstiger) 또는 킹타이거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아돌프 히틀러의 1944년 2월 명령으로 티거 I과 함께 티거 II는 독일 병기 중 별명이 공인받은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이다.킹 타이거는 2차 대전에 참가했던 마지막 독일 전차였다. 주포로는 더욱 강력한 71구경장 88mm포를 장착하여 거의 무적의 화력을 갖추었다. 킹 타이거는 약 500대 이상가량이 생산되었는데, 사방에서 몰려드는 연합군을 격파하고 전세를 뒤집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였다. 전쟁 후반에 독일이 이처럼 손이 많이 가는 중전차를 만든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킹 타이거는 무게가 무거워서 교량을 건너는 데도 힘이 들었고, 특히 연료 소비량이 대단했는데 당시 독일은 연료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 독일전차의 완성, 타이거 편
[image]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 중인 실물 티거 2. 사진의 전차(PzKpfw.Tiger Ausf.B(Fgst. Nr.V2))는 영국군이 전후에 하우스텐벡에 위치한 헨셀사의 테스트장에서 입수한 물건으로, 테스트용으로만 쓰인 시험제작형이다. 자세히 보면 양안식 조준경을 탑재한 것을 볼 수 있다.[2] 참고로 저 티거 2는 전 세계에 전시 중인 모든 티거 2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된 포르셰 포탑 장착형 티거 2이다. 포르셰 포탑형 티거는 극초기 생산분이기에 모두 예외없이 치메리트 코팅이 적용되었는데 저 전차는 테스트용 전차였기에 치메리트 코팅을 하지 않았다. 또한 초기형 트랙과 스프로켓휠 등 보존가치가 높다. 동부전선에는 초기형이 투입되지 않았기에 쿠빙카 전차 박물관에도 없으며 상태가 좋다.
[image]
같은 박물관에 전시 중인 실물 티거 2. '헨셸형 포탑'을 장착하고 치메리트 코팅을 한 익히 알고 있는 그 티거 2 이다. 위 사진의 프로토타입 바로 반대편에 전시되어 있다.
참고로 이 전차는 한동안 영국 Royal Military College of Science에 전시되었었던 차량이며 한때 주행 가능하게 복원할 계획이 있었고 자금까지 확보했었으나 엔진과 기어박스가 매각 처리되는 통에 재생되지 못한 차량이다.
2. 개발사
독소전쟁 개전 이후 동부전선에서 T-34를 비롯한 소련 전차와 조우한 독일군은 큰 충격을 받는다.[3] T-34는 경사장갑을 대폭적으로 채용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경사장갑을 채용했기에 장갑판의 방어력이 실질적으로 직면 장갑에 비해 월등했고, 이는 기존의 독일군의 주력 전차였던 3호 전차나 4호 전차 단포신형으로는 상대하기 난감한 것이었다.
독일군에 있어서 이는 크나큰 충격이었고, 이에 독일은 주력인 4호 전차를 장포신으로 개량하고, 추가 장갑판을 덧붙이는가 하면, 보병 지원용 돌격포인 3호 돌격포에 장포신포를 탑재해 대전차 전력으로 쓰는 등 기존의 전력 강화에 사력을 다했고, 이어서는 판터와 티거를 비롯한 강력한 후속 전차의 개발과 도입을 서둘렀다.
판터보다 더 먼저 개발되고 있던 티거[4] 는 외형이나 설계사상이나 사실상 T-34의 영향을 그렇게 받지 않은, 기존 독일 전차의 강화형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판터는 경사장갑과 곡면(포방패)을 대폭 채용한 외형에서 볼 수 있듯이 T-34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받은 전차였으며, 티거의 후속 전차인 티거 2 또한 경사장갑을 차용하는 등 외형상에 있어서 중(中)전차인 판터와 중(重)전차인 티거 2의 유사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독일군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전차 수리, 보급, 정비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판터 2의 부품을 다수 공유/호환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도 한몫했다.
티거 때와 동일하게, 개발은 포르셰 사와 헨셸 사의 경합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포르셰 사는 자신들의 설계안을 제시하지만, 티거 때와 동일한 이유로 퇴짜를 맞고 헨셸사의 안이었던 VK 45.03(H)가 채택되게 된다.[5]
VK 45.02(P)는 포르셰 박사가 개발한 다른 전차들처럼 전기+가솔린 구동식 하이브리드 엔진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이때의 하이브리드 엔진이란게 워낙에 신뢰성이 모자란 결함품이었고, 불태우지 않으려 조심조심 몰아도 자기가 알아서 타오르는 건 다수요,[6] 티거 2가 경합하고 양산될 시기로 들어가면 전황이 점점 악화되면서 하이브리드 엔진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전기 모터 제작에 필요한 구리 수급에 차질[7] 을 겪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퇴짜를 맞고 말았다.[8] 시대를 앞서나간 하이브리드 기관과 그에 따른 여러가지 난제를 해결하지 못한 포르셰사는 차체의 완성에 실패, 헨셸사의 차체를 약간 개수해 포르세 설계안의 크룹사제 포탑을 얹어 티거2의 시제 차량이 완성된다.
VK 45.02(P) 용으로 개발되어 티거 2 극초기형에 탑재되었던 크룹 사의 포르셰 차체용 포탑은 포탑 전면 장갑이 곡면 설계를 감안하더라도 110mm밖에 되지 않았던데다 과도한 곡면 설계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곡면 설계 탓에 내부 공간 활용에도 역시 문제가 있었고, 무엇보다 포탑 전면의 곡면 하부에 포탄이 피격될 시 미끄러진 포탄이 얇은 차체 상면을 직격하는 샷 트랩(Shot trap) 현상이 발생하는 바람에 전차가 무력화 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되었기에 미리 생산해둔 분량을 50량에만 탑재하였고, 후속 양산형은 수직 장갑을 지닌 신형 포탑[9] 으로 교체되었다.
초기형부터 중기형까지는 흡착지뢰를 차단하기 위해 자기장을 차단하는 특수한 재질를 칠하는 치메리트 코팅을 채용했으나 희소자원을 소모하고, 100kg~150kg 정도 추가되어 현가장치에 조금이라도 더욱 무리를 줄 뿐만 아니라 정작 연합군은 흡착지뢰를 쓰지 않았기에 1944년 9월을 전후하여 폐지된다. 그래서 후기생산형은 치메리트 코팅이 되어 있지 않다.
3. 명칭
쾨니히스티거(Königstiger)라는 이름은 사실 독일 전쟁성이 붙인 별칭. 애초에 독일 전쟁성은 병기를 명명할 권한 따위는 없었고, 그 권한은 육군 병기국에 주어져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정식 명칭 티거 2가 아닌 쾨니히스티거로 더 유명하다. 이것은 연합군 정보부의 삽질. 전쟁성의 생산 보고서만 봤지 전쟁성에게 병기 명명권이 없다는 것을 몰랐던 연합군 정보부는 별 생각 없이 쾨니히스티거라는 이름이 티거 2의 정식 명칭인 것으로 착각한 것. 그리고 이후 연합군 정보부의 보고서가 널리 인용되면서 티거 2는 어느새 쾨니히스티거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버렸다.
미군이나 한국에선 독일어 원어를 직역한 '킹 타이거(King Tiger)'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영국에서는 '로열 타이거(Royal Tiger)'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만 독일어의 쾨니히스티거가 가지는 실제 의미는 왕호랑이가 아닌 벵골 호랑이(Bengaltiger)다. 뭐 어쨌건 쾨니히스티거는 공식 명칭이 절대 아니다. 정식으로 부르려면 6호전차 B형 티거 2(Tiger zwei)라고 불러야 한다.[10] 현재도 티거 2가 정식으로 나오는 외국 게임에선 킹 타이거 아니면 쾨니히스티거란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티거 II라고 불리워지는 것들 또한 사실은 공식 명칭이 Panzerkampfwagen VI Ausf.B이므로, 형식적으로는 티거 II도 6호 전차 티거의 파생형, 그러니깐 B형이라고 볼 수 있다. 설계 자체가 다르니깐 아예 다른 전차로 구분하는 것이다.
3.1. 포르셰 포탑, 헨셸 포탑
[image]
보통 초기형 포탑을 포르셰 포탑, 후기형 포탑을 헨셸 포탑이라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두 포탑의 생산회사는 모두 크룹이다. 애초에 두 포탑은 탑재하기로 예정된 차체가 각각 VK 45.02(P)와 VK 45.03(H)[11] 로 달랐다. 속칭 포르셰 포탑은 포르셰 설계안 티거 2 용, 속칭 헨셸 포탑은 헨셸 설계안 티거 2 용의 포탑이다. 포르셰는 자신들이 계획한 포탑을 크룹사에 주문했으나 이 포탑들은 위에서 말한 포르셰형 프로토타입의 퇴짜와 구리나 니켈등의 금속문제로 선행 50대분만 생산후 생산이 중단되고 결국 헨셸사 안에 맞춰 크룹사가 디자인을 변경, 헨셸 포탑이라 불려지는 후기형 포탑이 등장했다.[12]
그러나 헨셸 차체용 포탑이 생산되는 것을 기다리기에는 당시의 전황이 워낙 급박했던 데다가 마침 포르셰 설계안이나 헨셸 설계안이나 포탑링의 규격은 동일하였으므로 급한대로 마침 생산해둬서 재고도 있고, 같은 주포를 탑재 가능한데다 그대로 놔두면 활용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포르셰 차체용 포탑을 그대로 탑재하여 출고하게 되었다. 일종의 선행양산형이다.
여태껏 헨셸 포탑, 포르셰 포탑이라 불리던 포탑들은 사실 모두 크룹사가 제작한 포탑이며 헨셸형이라 알려져있는 후기형 포탑은 디자인까지 크룹이 맡아 해왔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초기형 포탑"/"양산형 포탑"이라고 딱딱하게 말하는 것보다 "포르셰 포탑(Porsche-Turm)" / "헨셸 포탑(Henschel-Turm)"이라고 지칭하는 쪽이 더 직관적으로 와닿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불리고 있다. 물론 관련 서적에서는 양산형 포탑(Production Turret)이라고 정확하게 지칭한다.
4. 상세
4.1. 티거 2의 위용
제2차 세계 대전 지상전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인 6호 전차 티거의 계보를 잇는 중전차로서 티거 중전차만큼은 아니지만 독일제 전차 중에선 티거 다음이라 할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첫 번째로 강력한 8.8cm 71구경장 전차포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포탄 기준으로 최강 전차포 리스트 상위권에 꼭 들어가는 포로 71구경장, 포신 길이만 약 6.24m의 대단한 장포신이기에 단순 구경상으로는 34mm나 차이나는 스탈린 전차의 122mm D-25T 전차포[13] 를 압도하는 관통력을 발휘했다. 대충 등장 당시의 모든 연합군 전차의 정면장갑을 1.8~2km 거리에서 관통 가능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포구초속이 1000m/s.였다. 그것도 평범한 철갑탄으로 달성한 것이다. 고속철갑탄은 1130m/s.[14]
다만 탄약 적재량이 우월하다는 떡밥은 사실과 거리가 멀어서 체급에 비해 지나치게 대구경 주포를 장착한 IS-2를 제외하고는 탄약 적재량은 다들 거기서 거기였다. 더군다나 티거 2가 T-34-85의 매복 공격을 당했을 때 포탑 측면이 관통당하며 내부의 탄약이 유폭하는 문제가 드러나면서 포탑내 탄약 적재가 금지되었기에 오히려 탄 숫자가 줄었다.
두 번째로 우수한 방호력이다. 방호력은 당대 최고 수준으로, 장갑 질이 낮아지기 전까지는 서부전선에서 티거 2의 전면 장갑이 전차나 대전차포에 의해 관통된 사례는 없다.[15]
장갑 두께는 차체정면 150mm, 하부장갑 100mm, 포탑정면 180mm으로 많은 서적 및 인터넷 사이트에서 티거 2는 정면관통이 불가능 하다고 되어있는데 사실 M36 잭슨, M26 퍼싱에 장착된 90mm나 심지어 76mm나 영국의 17파운더일 경우 텅스텐 포탄을 쓸 경우 완전 불가능은 아니었다. IS-2, ISU-122에도 탑재된 122mm는 200m에서 차체 정면 하부를 노려야 관통, 포탑정면은 100m 이내에서 관통이 가능했다. 쿠빙카 실험에서는 1000~1500m에서 122mm 철갑탄이 포탑 정면을 관통시킨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당시 소련에서는 티거 2를 많이 노획하지 못한 때에 진행한 테스트라서 티거 2 에게 많은 양의 포탄을 쏟아부었고, 그 때문에 심각하게 방어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포탑이 관통 된 경우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측면과 후면장갑은 시기를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티거 1과 별 차이가 없었다.[16]
하여간 연합군 전차가 뭘 쏘든지 다 튕겨내고 혼자서 그냥 아군 1개 중대는 다 격파하는 압도적인 공포를 동부전선, 서부전선 가릴 것 없이 연합군 전차병들에게 안겨주었다. 이는 중전차인 IS-2도 예외는 아니었다. 티거 2는 IS-2 1943년형의 정면 상부를 2100m, 포방패는 1800m부터 관통이 가능했다. 소련에서 실험한 테스트에서 나스호른으로 IS-2의 포탑 전면을 2600m에서 관통했으니 동일한 주포를 가진 티거 2도 가능했을 것이다.
덕분에 티거와 더불어 화려한 전과를 자랑했다.
티거2 에이스인 카를 쾨르너 SS원사는 200m 거리에서 IS 전차 2대를 격파하고, 연료보충을 위해 집결해있던 소련 전차부대를 급습하여 11대의 IS 전차와 39대의 전차를 격파했다. 4월 29일까지 쾨르너의 티거 2는 100대가 넘는 소련군 전차와 돌격포, 26문의 대전차포와 다량의 야포를 격파하여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친위대 토텐코프 사단 소속의 카를 브롬만은 1945년 1월 27일부터 종전때까지 동부전선에서 활약하며 2월 18일까지 65대의 전차와 44대의 자주포,15대의 장갑 차량을 격파하여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친위대 소속 티거 2 3대가 T-34와 셔먼[17]
을 각각 15대, 12대를 격파하고 탈출했다.
헝가리의 한 마을에선 두 대의 티거 2가 T-34와 IS, ISU-152를 포함, 소련군 전차 40여 대를 격파했다.
동프로이센에서 친위대의 티거 2 1개 중대[18]
가 4대까지 남을 동안 적 전차 78대를 격파한 전적이 있다.
베를린 공방전 당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두 대의 티거 2는 각각 30여 대의 소련군 전차를 날려버렸고 이후 자폭했다. 이중 한 대는 밑에선 언급할 게오르그 디어스 하사이고 다른 한 대는 위에서 언급한 카를 쾨르너이다.
벌지 전투의 국방군의 티거 2 1대는 적 셔먼과 울버린의 포탄 각각 18발과 5발을 얻어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적전차 7대를 격파하고 기지로 무사귀환 했다.
베를린 근교에서 티거와 티거 2 각각 한 대씩 남아있는 상황에서 소련군과 조우하여 장갑척탄병들의 호위 아래 소련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약 30대가 넘는 소련군 전차와 대전차포 10문을 격파했다.
제509 중전차대대는 봄의 새싹 작전 당시 약 20일 동안 손해 10량에 대해서 전차와 돌격포 203량, 야포 145문, 항공기 5기를 격추 했다.
헝가리에서 2대의 티거2가 소련군의 대전차 포망을 뚫고 고지를 점령하여 76mm, 152mm 포대와 IS 중전차와 ISU-152 다수를 격파 했다.
SS 501 중전차대대 소속의 티거 2 1대가 벌지 대전투 당시 미군 기갑 부대와 조우하여 셔먼 12대, 울버린, 잭슨 7대와 지휘 장갑차 4대, 대전차포 6문을 격파했다. 미군은 다시 공격에 나서 이 티거 2 1대에 집중포화를 퍼부었으나 다시 전차 5대를 추가로 상실하고 말았다. 이 티거 2의 손실은 궤도 피탄과 조준기 파손이 전부 였다.
1945년 3월 SS 502 중전차대대의 티거 2 3대가 소련군 1개 여단을 맞아 4일 간의 격투를 벌였다. 이틀째에 1대는 연료 부족과 기계 고장으로 승무원이 자폭시켰고 나머지 2대의 경우 마지막 날에 1대는 포신 손상과 승무원 부상, 남은 차량도 연료 부족으로 자폭 시켰다. 그 4일 동안 소련군 보병 400여명 이상과 적 전차 50대, 화포 20문을 파괴하고 심지어 항공기 1대를 격추하기까지 했다.
SS 503 중전차대대 소속의 티거 2 4대가 베를린으로 향하는 소련군 사단의 진격을 10일 동안이나 저지하며 자그마치 수백 대의 전차를 격파했다.
바이스 전투단의 티거 2 1대가 IS-2 8대와 자주포 10대를 격파하고 기계 고장으로 자폭 했다.
서부전선에서 티거 2 1대가 매복하여 미군의 셔먼 18대를 격파하고 무사히 철수한 경우가 있었다.
1945년 2월 동프로이센에서 티거 2 5대가 T-34 40대, IS-2 12대, 돌격포 14대와 야포 30문을 격파하고 2대가 연료 부족으로 자폭 했다.
"볼러스도르프에서 스트라스부르크로 가는 길에서 11대 이상의 IS 전차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을 가장자리에 적 전차 120~150여대의 전차가 보급과 급유를 하고 있었다. 나는 포격을 지시하여 IS 전차 전부를 격파하였으며 아군과 연합하여 마을에서 적을 격퇴하였다. 이번 전투에서 난 39대의 전차를 격파하였다." 카를 쾨르너 원사, SS 503중전차대대, 1945년 4월 독일 동부에서
507 중전차대대의 티거 2 3대가 셔먼 20대와 울버린 10대를 격파했다. 적 항공기의 공습으로 1대가 전소되고 나머지 2대도 피해를 입었으나 전투는 가능했고 다시 격전을 치뤄 다시 기갑차량 15대를 추가로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쿠르트 크니스펠의 티거 2는 최후의 전투 당시 격파될 때까지 10대가 넘는 소련군 전차를 격파했으며 100여 발이 넘는 포탄을 뒤집어 썼으나 무사했다.
4.2. 한계
4.2.1. 수적 열세와 낮은 신뢰성
이토록 유명하고 인기도 많은 이 우수한 전차는 1944년에 등장했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겨우 500대이상 남짓 생산되는 데 그쳤다. 게다가 이 없는 물량으로 확고히 전과를 내기 위해 분산배치가 아닌 전부 배치해서 운용했고, 군단급 이상 직할 부대인 중전차대대로 편성해 운용했지만 상대인 연합군은 티거 중전차는 물론, 자체 생산, 노획한 모든 전차들을 포함하더라도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준수한 성능의 전차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연히 티거2 전차 부대가 배치된 전투에서 엄청난 교전비를 내며 승리해도 티거2 중전차가 없는 나머지 전선이 다 뚫려버려 티거2 전차 부대가 포위당하게 되고 한심한 구동계 신뢰성으로 도망 자체가 불가능한 티거2인지라 결국 구동계 손상 등으로 자폭시키던가 해서 비전투손실을 내면서 전차병이라도 겨우 탈출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아무리 서류상으로 교전비가 잘 나와도 실질적으로 티거2는 T-34 전차의 전략기동을 따라가지 못하여 스스로 부서지는 형편이었고 도저히 동부, 서부전선의 연합군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현대의 시점으로 보면 최신형 전차를 490여 대나 만든 것이 대단해 보이지만[19] 그건 전차의 역할이 제한적인데다[20] 무기 값이 전반적으로 비싸진 현대니까 가능한 것이다.[21] T-34 계열과 M4 셔먼 계열 전차만 합쳐서 10만 대를 훌쩍넘게 생산되었던 게 제2차 세계 대전이었다. 티거 중전차랑 합쳐도 채 2,000대가 안 되는 초라한 생산량은 정말 치명적인 문제였다. 예시로 든 저 전차들 이외에도 각종 전차 또한 많은 물량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화력 면에선 티거 2에 필적하던 소련의 IS-2, 스탈린 전차가 3,000대 이상이 나왔다. 이 초라한 생산량은 애초부터 높은 공업력을 가진 미국과 비록 초기에 공업지대를 완전히 뺏겼음에도 동부전선 중반 이후 주어지는 랜드리스의 도움과 함께 규모의 경제가 최대로 발휘 될 수 있는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의 산업시스템, 투입=산출의 공산주의 체제로 압도적인 효율로 T-34 전차를 생산해내는 대전 후반 소련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기본 공업력 규모와 함께 애초부터 생산효율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게 당연한 나치 독일의 구시대적 생산 시스템, 여전히 중간에서 챙겨 먹으려는 군수업체들의 이권 다툼 같은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생산 시점' 이었다. 티거 2가 양산에 돌입할 때쯤엔 연합군이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슈바인푸르트 대공습 등 독일 전역의 군사 시설에 맹렬한 공격을 가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상황에서는 뭘 많이 만들고 싶어도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물론 독일군도 소련과 미국의 생산량은 알고 있었으므로 실제 계획은 2000대 이상이 되었지만 그 중에 생산된 물량은 492대에 그쳤다. 공습으로 인한 주요 부품의 생산 정지, 시설의 분산 등으로 인한 간접적인 피해가 생산량을 25%대로 줄인 것이다. 게다가 생산량을 맞췄다고 쳐도 티거가 한대당 연합군 전차 100대쯤 잡는 교환비를 보이지 않으면 애초에 승산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정도 교환비는 베를린 전투 같은 방어전 상황에서나 가능했다.[22] 독일군은 소수 정예를 지향했지만 애초에 제2차 세계 대전의 넓이는 소수 정예로 커버가 되는 전장 넓이가 아니다. 게다가 60톤 후반에서 70톤에 육박하는 티거 2는 단순 재료 무게로만 계산해도 퍼싱이나 IS-2의 두 배가 필요하고 제작 난이도는 두 배를 훨씬 상회한다.
[image][23]
이러한 대전 후반의 상황상 티거 2 중전차는 거의 일당백을 강요 당해야만 했다. 이 시점에 이르면 독일군 전차 중에 그나마 연합군 전차를 상대로 맞상대해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판터, 티거 1, 2밖에 없었다. 그리고 총 생산량은 고작 8,000여 대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연합군의 전차 전력은 양 전선에서 10만 대가 넘었다. 압도적인 적 전차들의 물량을 생각해보면 중전차 한 대가 적군 전차 10대 가량을 격파해야만 교환비가 맞는 셈인데 물론 실제 전장에서 티거는 미군이나 소련군이나 할 것 없이 최소한 20대 정도는 파괴하고 다녔고, 판터도 최소한 5대 이상은 보장했다, 문제는 그 이상으로 끌고 온다는 데 있었다. 게다가 연합군이 전차로만 전투를 벌인 것도 아니라 온갖 곳에서 자주포와 포병대의 포화, 보병의 대전차화기, 공중에서의 폭격이 날라들었다. 또 티거 시리즈는 고질적인 잔고장과 비전투 손실, 연료 부족등으로 주저앉는데 대전 말은 어제는 독일 점령지, 오늘은 전장, 내일은 연합군 점령지가 돼서 견인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폭파되는 경우도 많았다.
티거 2나 판터 등으로 이루어진 중전차 부대는 보통 한 전투에서 수십대씩 잡는 것이 보통이었고, 전투가 길어지면 전차사단 하나 정도는 쌈싸먹는 전과를 올렸다. 문제는 사단 하나를 쓸어버려도 다른 전차사단이 그 중전차가 없는 나머지 전장을 휩쓸어 버리고 즉각적으로 포위를 시도하며 구동계통 신뢰성이 구리다고 비판을 받는 T-34보다도 훨신 더 한심한 구동계통 신뢰성과 여기에 더해 한심한 연비와 보급줄을 가진 독일 육군의 중전차들은 이렇게 포위될 경우 퇴각도 못하고 아군 뒤를 지켜주다가 파괴되거나 아니면 전차를 자폭시킨 후 탈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독일군도 이 문제점을 알고 있었으므로 3호와 4호 전차를 충분히 배치하였으나, 문제는 이것들은 본격적으로 미국과 소련이 M4 셔먼과 T-34를 배치 및 개량하면서부터는 사실상 전차 외 타겟에 쓰는 것 말고는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티거와 판터의 손실 사유 중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는 게 전차전이 아니라 대전차무기의 공격과 공습이었는데, 여기서 상당한 피해를 보고 편제에 비해 줄어든 전차로 건재한 연합군 전차를 상대해야 했다. 1944년 중반 이후 소련군과 독일군의 전투는 항상 잘 싸우고 패퇴 하는 독일군과 한 전장에서는 졌으나 나머지 전장에서 몰아쳐 독일군을 포위하는 소련군의 싸움이었는데, 이 경우 아무리 교전비가 잘 나와서 전투에 이겨봤자 전차는 계속 비전투 손실이 생겨버리고 땅은 밀려나고 전쟁에서는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산품의 신뢰성과 공정과 부품의 표준화, 정비 용이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4.2.2. 제공권 상실
이 전차가 배치된 1944년에는 미군의 군용기들이 대부분의 유럽의 제공권을 장악해 버렸다. 물론 공격기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전차를 파괴하기는 힘들고[24][25] 걸어가는 보병, 차량 대열을 파괴하고 보급 시설을 파괴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하지만 전차는 보급이 없으면 가동을 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전투기들이 접전 보고를 올리면서 실시간으로 위치가 노출되는 것도 문제였다. 덕분에 이동, 보급, 심지어 전장에서 마저 안심하고 기동하기가 힘든 상태가 되었다. 나타났다 하면 당장 하늘에 잠자리 떼처럼 새까맣게 떠 있는 연합군 전투기들이 독일군을 보이는 대로 격파했으며 공군은 출격하면 압도적인 항공 우세에 도망다니느라 그나마 있던 연료도 소모하고 좋은 전투위치 다 잃고 불리한 여건에 몰리는 것이 1944년 가을 이후의 독일군이었다. 덕분에 그 위용에 걸맞지 않게 실전 배치 초기 부터 종전 때까지 대체적으로 안습한 나날을 보냈다.
4.2.3. 심각한 불균형
티거보다 무려 12~13톤이나 더 나가는 괴물임에도 불구하고 엔진 출력은 티거 후기형[26] 과 똑같았다. 이해가 안 간다면 간단하게 현재 미군의 주력 전차인 M1 에이브람스 계열과 동등하거나 더 무거운 중량에 엔진 출력은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고장을 그나마 덜 내고 조종하려면 숙련된 조종수가 반드시 필요했던 티거는 그래도 평소에 철도에 싣고 다니다 전선에서의 짧은 거리만 자력 주행하면 나름 중전차 치곤 기동 성능이 양호 했지만, 티거 2에 이르러서는 버틸 수가 없는 출력 이었기에 연비와 기동성이 심각하게 떨어졌으며, 구동 계통에 심한 부담을 준 탓에 툭하면 퍼지기 일수 였다. [27] 이것은 1944년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되어,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가장 많은 티거 계열을 투입했으나 숫적 우세와 신뢰성 모두에서 앞서는 T-34부대 앞에 포위당해서 쌈 싸 먹히거나 아군의 뒤에 남아서 시간을 벌다가 박살나는 결과를 낳는다.
이 문제는 비단 기동력이 떨어지거나 잘 퍼진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방어 기동을 위해 차체를 회전시키는 것부터 어렵게 만들었다. 반면 티거는 전술적으론 비교적 우수한 구동계통을 기반으로 하여, 적 전차의 포신 방향으로 탄 방향을 가늠해 차체를 이리 저리 회전시켜 포탄을 튕겨내는 기동을 할 수 있었다. 독일측도 이걸 알고 있었기에 출력을 향상시킨 신형 엔진인 HL234를 개발하던 중이었으나 전쟁 중에는 끝내 완성하지 못했고, 설령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대전 말의 상황상 양산체계를 구축할 상황이 도저히 되질 못했을 것이다. 또 다른 독일의 전차 였던 판터 역시 구동 계통의 신뢰성 문제로 시작부터 끝까지 독일군을 고통스럽게 했다.[28]
뿐만 아니라 티거 2는 티거나 판터와 마찬가지로 자력 주행하면 얼마 못가서 퍼지기 때문에 전략 이동 시 반드시 철도 수송을 해야 했는데 티거와 마찬가지로 폭이 너무 넓어 철로용으로 마련된 공간을 넘어가기 때문에 철로 수송 시 작은 전용 궤도로 교체를 해줘야만 했고 이 때문에 배치하는 데 추가적으로 시간이 걸렸다. 안 그래도 무거운 전차 일수록 다루기 어려운 마당에 이런 사소한 점 하나 마저 배려가 되어있지 않은 티거 2를 몇몇 현지 지휘관들은 좋게 보지 않았고, 아예 배치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4.2.4. 부족한 연료와 재료
가장 큰 문제점에 해당이 된다.[29]
어마어마한 중량 때문에 건너갈 만한 다리도 별로 없고, 연비가 나빠 연료 소비량이 무지막지한데 그 연료를 실어나르는 모든 도로와 철도가 연합군 공군한테 밤낮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는 데다가, 이 무렵의 독일군은 유전 지대 대부분을 연합군에게 빼앗겼기에, 이미 독일의 연료 비축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적의 연료를 노획해서 사용한다는 발상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노획하는 과정 자체가 엘리트 인원을 데리고 엄청난 혈전을 치뤄야 가능하다는 것은 둘째로 치고라도 소련은 전차가 디젤엔진을 사용하는 터라 전차 연료를 빼앗아도 사용이 불가능하며, 미국 같은 다른 연합군의 경우에도 독일이 연료 없는 것은 잘 알기에 후퇴하기 전에 연료 창고에 불을 지르고 튀었다. 그래서 아르덴 대공세 때 망한 것이다.
덕분에 티거 2의 손실은 전투 손실보다 연료 부족과 엔진, 변속기, 궤도 등의 사소한 기관 고장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이 훨씬 많았다. 이미 독일군의 연료 보급은 끝장 났고, 중전차가 없는 전장은 소련군의 기갑 공세에 간단히 뚫려버렸으며 기갑 부대가 자기 전투에서 아무리 잘 싸워봤자 결국은 간단히 포위 되며 한심한 구동계 신뢰도로 자력 주행으로 퇴각을 시도하면 금방 고장나버려서 티거 2를 견인, 회수해 수리할 여건이 되지 않아 독일군들 자신이 버리거나 자폭 시킨 게 부지기수였다는 말이다. 이래서야 전투에서 아무리 교전비가 좋아 봤자 결론은 자폭 유기며 전쟁에서 절대 이길 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1944년 중반 이후에는 독일도 니켈이나 몰리브데넘같은 특수강을 만들 때 필요한 희귀금속이 크게 부족했다.[30] 일본처럼 연철을 쓰는 처참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희귀 금속을 사용한 특수강을 써야 하는 부품에도 대체품이나 그냥 강철을 사용할 수 밖에 없어서 전차들의 실제 방어력이 설계 시 방어력보다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 했다.[31] 문제는 티거 2는 이렇게 특수강을 사용 하기 힘든 시절에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소련군에서 같은 종류의 독일군 전차를 상대로 할 때 이상하게도 최근 생산품으로 보이는 녀석이 구형보다 빨리 격파되거나 고장나는 현상을 목격했을 정도다. 그래서 ISU-152 같은 152mm 야포를 갖춘 무기에게 근거리에서 포탄이 명중 당할 경우, 예상과는 다르게 격파 당하기도 했다.
4.3. 개발, 생산한 이유
티거 1 전차를 1944년에 단종시켜버리고 티거 2를 후속작으로 제작할 이유가 있었다.
티거, 티거2 전차를 생산하지 않고 그 자원으로 4호 전차나 판터를 만들 경우 몇 대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전장에 나가면 T-34 수십 대를 상대해야 한다. 잘 처줘야 M4 셔먼과 T-34와 동등한 수준인 4호 전차로는 동등하게 싸우는 것 이상을 요구하는 건 무리이며 말기형인 J형은 아예 개악형이 되어버렸다. 판터 역시 강하긴 하지만 같은 중형 전차[32] 이기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티거나 티거 2는 제대로 운용하면 T-34, M4를 수십 대 씩 상대할 수 있다. GD사단 소속의 티거 전차 2대를 앞뒤로 포위했던 T-34 수십 대가 패퇴한 적도 있는데 하물며 티거 2 전차라면 더 말이 필요 없다.
더욱이 티거 2가 나오는 시점에선 연합군 전차들의 공격력과 장갑이 강화되었기에, 티거와 판터가 그 이전 만큼 활약 하기 힘들어졌다. 티거가 나올 때 당시인 1943년에는 미군은 57mm 포도 아직 다 보급하지 못한 상황[33] 인지라 M3 37mm 대전차포 따위를 대량으로 굴리는 상황이었으며, M4 셔먼의 75mm 주포는 3, 4호는 상대할 수 있지만 티거는 상대하기 힘들었다. 소련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KV-1이나 T-34 초기형의 76mm 주포로는 티거와 정면 상대하기 힘들었다.[34] 이렇듯 티거 자체의 카탈로그 제원이 강력했고 티거와 판터가 무쌍을 찍을 수 있었다.
1944년 중후반 미군이든 소련군이든 연합군의 대전차 능력이 서서히 강화된지라 티거 전차의 능력만으론 더이상 무쌍을 찍기 힘들어졌다. 그 원거리 명중률 낮은 17파운더만 해도 제대로 맞으면 티거가 터지는데 영국은 그걸 중형 전차 주포로 달고 다녔다. 미군 역시 한동안 삽질을 하긴 했지만 셔먼의 주포를 1944년부터 76mm M1A1 대전차포로 교체하고[35] 76mm 포용 고속철갑탄을 1945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보급하는 한편 티거를 맞상대할 목적으로 M26 퍼싱의 배치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소련군은 개개의 대전차전 성능[36] 은 티거보다 밀리지만 약점을 제외한 전면에서 티거의 56구경장 8,8cm 포를 튕겨낼 수 있고 측면도 1km에서 티거의 88mm포를 튕겨내는데다가 숫자도 많은 IS-2를 투입한데다, 44년 중반이후에는 SU-100, ISU-152[37] 같은 대구경 자주포들을 대량으로 운영하고 있었다.[38] 게다가 중형전차인 T-34는 43년 늦가을에 개량이 끝나서 44년 1월부터는 주포가 85mm로 강화되어 1km 내에서 티거 전면이 관통 가능한[39] T-34-85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며 티거 2가 등장하는 44년 8월에는 만단위로 찍혀나온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티거가 셔먼과 T-34 몇 대 잡는다 한들 이정도 전력차이는 수지가 맞을 수가 없고 예전 같이 티타임을 잡고 공격하는 순간 명중률과 화력 둘 다 좋은 17파운드나 90mm, 100mm, 122mm로 그 자리에서 격파가 될 뿐더러 동부전선에는 전면에서 티거의 포를 튕겨내는 중전차가 쏟아지게 된다. 그래서 티거 보다 더 강한 전차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티거 2가 등장하고 나서 1944년에 티거 생산라인은 폐지 되고 티거 2 전차에 올인하게 된다.
중전차는 본래 공세 지향적인 병기다.[40] 수세에 몰린 독일군으로서는 다른 쪽에 무게를 싣는 편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주 생산 공장인 헨셸 공장은 티거 패밀리만 생산 했으므로 생산을 중단 한다고 해서 다른 전차의 생산량이 늘어날 일이 없었다. 억지로 생산을 줄이고 다른 전차를 생산하려 해도 공통되는 부품이 로드휠만 판터중 일부 기종과 호환가능일 정도로 거의 없는데다가 애초에 요구되는 기술적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장을 다른 전차를 생산할 목적으로 재배치하는 동안 연합군의 물량에 남아있는 전차들이 전멸할 판국이었다. 연합군 공군의 폭격을 생각하지 않은 이상적인 상황에서 이런 지경이다. 만약 생산을 안 했으면 오히려 독일은 공장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채 남은 전차가 없어서 더 빨리 패배를 맞았을 것이다.
서부전선에서 정면 관통 샷으로 파괴된 티거 2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포탑 전면이 관통당한 티거 2의 사진이 웹상에 돌아다니기도 한다. 자세한 관련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긴 하지만 17파운더 대전차포로 APDS탄을 발사할 경우 약 1000미터 거리에서 경사각 20도의 190mm의 균질압연강판을 관통 시킬수 있으므로, 180mm의 두께를 가진 티거 2의 포탑전면도 충분히 관통 가능하긴 하다. 문제는 포탑 전면에서도 포방패에 가려지지 않은 극히 일부의 좁은 공간에 명중률이 좋지 않은 APDS탄을 발사해서 관통한다는 점이지만 퍼싱이나 M36 잭슨 GMC의 90mm포로도 800m 이내의 거리에서 해당 부위에 명중 시키기만 한다면 관통 시킬수 있긴하다. 실제 기록사진으로 남아있는 전장에 방치된 티거 2의 사진 중에선 대전차포나 전차포의 피격에 격파된 사진보다는 승무원이 유기하거나 자폭한 경우 아니면 근접한 보병의 바주카에 당한 사진이 많은 걸 보면 정면에서 관통하기 힘들었다.
4.4. 흑역사
이런 상당한 능력을 가진 중전차였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안습한 데뷔전을 가지고 있다. 동부전선에서 이루어졌던 데뷔 전, 티거 2전차 3대가 매복한 T-34-85[41] '''단 한 대'''에 격파당했던 것이다. 1944년 8월 11일. 501 중전차대대가 티거 2를 처음 수령받고 투입하던 중에 저런 참사가 일어났다. 격파의 원인이 아직 해당 전차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포탑 측면과 포탑링을 근거리에서 강타 당한 탓에 내부포탄 유폭으로 격파당한 것이라 그 이후로 티거 2의 포탑 측면의 예비탄 보관소를 더이상 사용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휴행탄수가 68발로 줄어들었다. 세무 공무원 출신인 알렉산드르 오스킨 소위 후보생이 이와 같은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42] 다만 이것은 티거 2의 약한 측면 방호력의 영향력도 있는데, 티거와 비교일 경우 전면장갑은 대폭상승 하였으나 측면은 80mm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살짝 경사를 주기는 했지만 큰 차이가 없었다. 이 때문에 셔먼에게 격파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티거 2의 중장갑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오스킨의 전차가 첫 티거 2 포탑 측면에 지근거리에서 3발을 명중시켰으나 모두 튕겼다.
물론 티거 2 중전차 외에 티거, 판터 전차도 데뷔전이 안습하기로 유명했다. 차후에 미친듯이 활약해서 오명을 덮었단 점도 동일하다. 다만 티거 2는 등장 시기가 너무나도 늦었기에 상대적으로 활약할 기회가 형제들에 비해 적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4.5. 맞수들?
이렇듯 여러가지로 강한 이미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이 보유한 전차중 티거 2 중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프로토타입들을 제외하면 20여대가 투입된 M26 퍼싱, 티거 2를 잡기 위해 단 2대가 투입된 T26E4 슈퍼 퍼싱 정도지만 어디까지나 티거나 판터와 대등, 혹은 이상이었지 티거 2와는 차이가 나는 데다가 그나마도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진 않았다고 한다. 소련의 경우 ISU-152나 IS-2가 티거2를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격파할 수는 있다는 것이었지 결코 대등하지는 않았다. 대전차전에 한해서는 티거 2랑 같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다.[43] 1945년부터 본격적인 운용이 들어간 SU-100도 당시 소련이 개발중이었던 차기 주력전차인 T-54 수준의 주포를 장착하고 있었으므로 어떻게 보면 대전차전에 있어선 IS-2나 ISU-152보다 위협적이었다. 그래서 한 방 전투를 할 수 있었지만 SU-100 역시 태생적으로 자주포고 공세 임무에는 적절한 전차가 아니었기에 대등하다고는 할 수 없다. 티거 2가 공세적으로 밀고 들어오고 SU-100이 수비 임무를 맡았다면 모를까, 두 전차 모두 소련이 공세를 펼치고 독일이 수세에 몰렸을 때 나온 전차들이라 그런 광경은 볼 수가 없었다.
엄밀히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정상적으로 운용된 전차 중 대전차전에서는 동일한 스펙을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상 독일군을 제외한 그 어떤 국가의 군대도 티거 2는커녕 티거 체급의 전차조차도 운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게가 늘어나고 덩치가 커질수록 단순한 공방 성능과 승무원 거주성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극단적으로 대전차전에 특화된 초장포신 주포는 122mm 같은 다목적 주포에 비해 대전차전에 유리하다.
티거가 처음 등장한 1942년 말엽에는 서방 연합군의 75mm, 소련군의 76mm 전차포로는 500미터 거리에서도 티거의 전면장갑을 관통시키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티거 2가 등장한 1944년 중반 이후에는 이미 주도권을 연합군이 장악했으며 양 군의 주력전차들 역시도 화력이 개선되어[44] 측후면을 노리면 관통 가능할 정도로 기본 화력도 대폭 상승했기에 넘치는 지원 화력과 수적 우세를 활용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양산되어 투입된 신예 중전차인 M26 퍼싱, IS-2 등 또한 티거 2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여겨지지만, 실상은 양국의 교리 특성상 만날 기회 자체가 별로없었다. 소련의 IS-2 전차는 대전차전보다는 철저히 적 방어선에 돌파구를 내는 용도에 투입되었고 탄약 적재량이 부족하여 초기 돌파 이후 뒤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 별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또한 이 122mm 주포는 구경은 컸지만 야포 특성 상 관통력이 상당히 부족했던 물건이었다. 판터 수준의 상대적으로 작은 차체에 티거 이상의 화력과 방어력을 쑤셔넣다보니 나오게 된 안습한 발사 속도는 덤이다.
퍼싱은 쾰른에서 티거와 대결해 이긴 적이 있지만, 티거 2는 조우한 적이 없어서 대결했을 때 어떻게 될지 알 리가 없다. 작정하고 대 킹타 병기로 만든 T26E4 슈퍼 퍼싱의 경우 유일한 교전에서 승리하였다는 증언이 있긴 한데, 교전 자체는 사실이지만 4호 전차나 판터를 티거 2로 착각한 것이거나 아예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자세한 것은 M26 퍼싱 문서에서 데사우 조우전 참고.
퍼싱을 티거의 맞수로 내놓았지만 미군 내에서도 체급의 차이와 그에 따른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티거 2와 대등한 70톤급 체급의 T29가 1944년부터 개발에 들어갔으며, T30을 거쳐 T34로 개량되었고 연구가 완료되었으나 전쟁의 종결로 생산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자 퍼싱은 결국 체급의 한계 때문에 중전차 타이틀을 내주고 중형전차로 강판되었다.
소련군에서 티거 2 중전차를 상대할 전차는 88/71는 물론 128mm도 이빨조차 들어가지 않는 IS-3와 IS-4였는데 실전투입 직전에 독소전쟁이 끝나버린다.[45] 1946년에는 88/71을 튕겨내는 어이없는 방어력의 30톤급 중형전차인 T-54까지 배치하지만 이미 냉전기라서, 이 신형 전차들의 티거 2보다 우월함은 직접 교전해 보지 않은 만큼 의미 없는 이야기다.
소련의 경우 제련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던 점까지 감안해야 한다. 특히 APCR 같은 특수탄약은 85mm를 초과하는 포에서는 종전 때까지 생산할 능력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크고 단단한 텅스텐 탄자를 성형할 기술이 없었던 탓이다. 이것은 사실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고 독일도 88mm 이상에서는 하기 어려웠다.[46]
이처럼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도 상당한 활약을 하며 동부전선 기간 중 제2차 세계 대전 최강의 전차가 된다.[47]
4.6. 최후
베를린 전투 문서 참조.
4월 30일, 314호 티거 2 전차의 SS 기갑하사(SS-Unterscharführer) 게오르그 디어스(Georg Diers)와 그의 부하들은 제국의사당 근처에 방어 진지를 잡도록 명령받았다. 314호 전차의 승무원은 전차장 게오르그 디어스 하사, 포수 볼프-디에터 코테, 탄약수 알렉스 소머와 무전수 보도 함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것은 SS 503 중전차 대대에 속하는 베를린에 남은 단 두 대의 티거 2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티거 2는 그날 전투 중에만 30대 가량의 T-34를 격파했고, 그 다음 날엔 제국의사당 정 반대편에 위치해있는 크롤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성공적인 반격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들의 분투는 피할 수 없는 종말을 단지 잠시동안 미룬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무렵엔 방어 진지를 포기하고 베를린으로부터의 탈출을 준비하도록 명령받았다.
디어스 하사가 직접 쓴 회고록에 의하면, SS 503 중전차 대대의 티거 2 6대는 4월 말에 제11 무장 SS 기갑척탄병 사단에 배속되었고, 4월 30일에 이르러서는 단지 두 대의 쾨니히스티거만이 남아있었다. 하나는 디어스 본인의 차량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그 전날 전투에서 100대가 넘는 소련 전차와 29대 이상의 기타 기갑 차량을 격파한 카를 쾨르너의 차량이었다. 디어스는 5월 1일에 성공적인 반격을 가하여 크롤 오페라하우스를 일시적으로 재점령했으나 당일 저녁 7시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디어스는 최소 39대의 소련 전차 격파 전과를 공인받았으며, 베를린 방어전 최후의 날 며칠 동안 격파한 소련군 전차와 기갑차량의 수는 정확한 추산조차 불가능했다고 한다. 당시 방어전 상황에서 티거는 비록 열악한 상황이라지만 전투에는 충분한 지원을 받고 시가전의 특성을 이용해 은엄폐를 잘 하면서 공격해 오는 소련군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구조였는데, 그 덕택에 엄청난 피해를 강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련군의 공격을 방어하는 동안 그는 제국의사당 내에 다수의 소련 보병과 전차가 침입하여 전투를 벌이는 것을 목격하였다.[48] 결국 디어스 하사와 승무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티거 2를 쇤하우저 알레(Schönhauser Allee) 근처에서 지뢰를 이용하여 자폭시켰다. 독일이 전쟁에서 졌고 SS는 전공조차 공식적으로는 부정됐기에 디어스는 그의 전과에 대해 당연히 보상받지 못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한다.
베를린 전투가 종료된 직후 펼쳐진 엘베 강 도하작전에서 동포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소련군은 베를린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피난민과 9군 패잔병들을 추격했고, 이에 베를린에서 살아남은 티거2의 마지막 5대가 엘베 강으로 향하는 길목을 며칠간 막고 버텨냈다. 결국 모두 파괴되긴 했지만 소련군은 피난민과 패잔병의 대부분을 붙잡는 데 실패했고, 이들은 서부 전선으로 넘어가 미군에 항복할 수 있었다. 그 뒤에야 독일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링크)
가히 제2차 세계 대전 최강의 중전차다운 마지막 최후이자 투지라고 할 수 있다.
5. 파생형, 업그레이드형, 페이퍼플랜
- VK 45.02(P) (Tiger(P))계통 전차
- 6호 중구축전차 야크트티거
- Tiger II 조준경 위치 변경 포탑 장착형
- Tiger II with Stereo-Entfernungsmesser
- Tiger II mit 10,5cm Kw.K. L/68
스테레오 거리측정기를 장착하고 주포를 10,5cm 68구경장으로 바꾼 티거 2. 흔히 1945년 7월 생산형이라는 별칭이 통용된다. 허나 주포가 퇴짜맞아서 설계도면상과 후일 월드 오브 탱크와 워 썬더에만 존재한다. 다만 워 썬더의 경우에는 업데이트로 인해 이미 연구한 유저만 사용 가능하다.
- 돌격포 Bär
- 자주포 게쉬츠바겐 티거
6. 전쟁 이후
전후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재미난 건, 생산수는 미미했지만 멀쩡하게 기관 고장으로 방기된 차량이 많았던 만큼 기본적으로 버리고 간 독일군이 폭파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연합국 각국의 전쟁박물관 등지에 의외로 한 대씩은 있는 모양.
벨기에의 경우 아르덴 대공세 당시 무장친위대 제 6 기갑군의 주요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 501 SS 중전차대대의 상당수 티거 2들이 유기되거나 자폭처리 되었다. 스타벨롯과 라 글레즈(La Gleize)가 주요 격전지였던 데다가 위의 213호차 차량도 라 글레즈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포신이 부러진 걸 복원시킨 것이다.[51]
프랑스의 경우 전선의 급격한 붕괴로 멀쩡한 티거 2를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버려진 경우가 제일 많았던 탓에, 엉뚱하게도 국내 마을들을 뒤지다가 가동 가능한 티거 2를 찾아낸 사례도 있다. 현재는 프랑스의 Musée des Blindés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전후 스웨덴이 이 티거 2에 관심을 가져 프랑스에 특별히 요청해[52] , 멀쩡한 티거2가 발견되면 보내달라는 요구를 하였고, 프랑스는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앞서 스웨덴은 프랑스로부터 판터를 가져가기도 했다.
당시 스웨덴이 수입한 티거 2.
이후 결국 1947년 8월, 프랑스의 작은 마을 기엥에서 거의 온전하게 유지된 316 원격조종전차중대의 티거 2가 발견되었다. 해당 중대는 무인전차를 사용하는 중대로, 공병폭파작업용 무인전차의 조종은 중전차가 맡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단 발견된 것은 1대로 중대의 12호차[53] 가 발견되었다. 극초기형[54] 이자 노르망디 상륙 직후 버려진 이 티거는 곧 스웨덴으로 보내졌다.
1947년 11월 27일 스톡홀롬에 도착한 티거 2는 수리와 함께 테스트가 진행 되었는데, 이 티거를 시험 사격장으로 옮겨 놓는 데만 해도 셔먼 1대, 견인용 M26 트랙터 1대, 수리용 트럭 1대, 연료트럭 1대, 승용차 2대에 오토바이 4대라는 총길이 60m에 이르는 대행렬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시험과 시험을 거듭하면서 걸었던 기대감은 차츰 실망감 으로 변해가는데, 그 이유는 바로 너무나도 잦은 잔고장과 끔찍한 연비었다. 거기다 차고나 격납고 같은 밀폐된 곳도 아닌 야지에 몇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니 없던 고장도 속출할 지경 이었던 것. 게다가 이 거대한 행렬은 움직이는 데만도 너무나도 많은 예산을 잡아먹었기에, 결국 전차는 해체 처분되었고 포신만 각종 테스트용으로 사용한 후 박물관에 들어갔다.
7. 매체
운용되는 상태로 등장한다면 '''그 어떤 전차보다 무서운 최종보스급'''의 포스를 풍기며 등장하는 경우가 잦지만 대부분은 잔해로 등장하는 편이 많다.
소련군의 스탈린그라드 미션 중 잔해로 등장한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1942년에 일어났으나 정작 티거2는 1944년에 정식배치되었다. 당연히 고증오류. 그리고 나서 소련군 주인공이 전차를 끌고 나서는 미션에서 판터와 함께 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소련군의 T-34-85의 포에 2방이면 격파된다.
부수 피해, 493 고지 공략 미션에서 등장 한다. 특히 493 고지 미션에서는 저 큰 몸집으로 참호를 마주 짖밟으며 깽판을 부리는 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다. 주인공 분대에게 대전차 화기가 없어서 테르밋 수류탄을 들고 육탄 공격을 해서 잡아야 하는데 한번 공격해서는 엔진부가 조금 녹는 정도고 두 번째 공격을 해야 멈춘다. 그러고도 페레즈 하사의 이지에잇 셔먼에게 지근거리에서 관통까지 당하지만 오히려 역으로 셔먼을 개박살 내버린다.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
-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설트
티거 2를 몰아볼 수 있다. 미션 중 독일군의 비밀병기 전차를 포획하는 미션이 존재하는데 여기서 직접 몰아서 다른 독일군 전차들(판터/티거)을 관광시키며 티거무쌍을 찍는다.
- 91 패치로 105mm 킹타이거는 제외 되었다.
- 불과 얼음
- 판처 88
[image]
리얼리즘 모드의 서로 다른 위장을 한 티거 2
[image]
게임 매인화면의 배경
[image]
멘오브워 어썰트 스쿼드1편과 2편 티거2 비교
- 멘 오브 워 시리즈
엑스트라 티거 2는 89식 전차에게 영거리 사격을 얻어맞지만 끄떡도 안 하고 도리어 그 89식을 처참하게 박살내버린다.
나머지 한 대에 부대장 이츠미 에리카가 탑승하여 에리카가 BGM으로 깔리는 가운데 아귀팀의 4호 전차를 노리고 발포했지만 그 사이에 개미핥기팀의 치누가 조종수 모모가의 변속기 조작 미숙으로 둘 사이에 끼어드는 바람에 아귀팀 격파 실패, 이후에도 아귀팀을 쫓아다니다가 궤도가 나가 버리기도 했다. 에리카는 그 이후로 89식이 도발한다고 쫄래쫄래 쫓아다니다가 레오폰팀의 포르쉐 티거가 대장님과 전직 부대장이 일기토를 벌이고 있는 건물 입구를 막아서자 야크트판터, 판터 전차, 4호 구축전차 떼와 함께 포르쉐 티거에 몰빵을 퍼붓는다. 그러나 격파한 포르쉐 티거가 장애물이 되자 4호 구축전차를 이용해 포르쉐 티거를 타고 넘어가 건물 안으로 진입하지만 대장님이 계신 곳에 에리카가 다다랐을 때는 이미 결판은 난 후였다. 극장판에서는 유원지 남문에서 M26 퍼싱 1대, 레오폰팀의 슬립스트림을 타고 M26 퍼싱 1대[55] 를 격파 후 리타이어. 최종장에서는 독일로 간 대장님이 타던 티거 전차에 이어 대장차를 맡은 듯하다.
8. 모형화
- 최후기형을 재현했으며 일부 오류[56] 와 지나친 회치기를 제외하면 잘 만들어졌다는 평을 듣는다.[57] 물론 부품이 600개를 넘는 것은 감안하고. 토션바까지 재현되어있으며 가공만 조금 해주면 가동식 서스펜션이 된다.[58] 단, 수송형 궤도를 장착하였으므로 널찍한 궤도를 좋아한다면 교체를 추천. 스프로켓 톱니가 18개인 녀석이 들어있어 후기형 궤도가 아닌 일반적인 궤도를 사용하려면 별도의 가공이 필요하다.
- 4호 전차, 티거보다 수는 적지만 드래곤 아니랄까봐 상당한 수작이다. 드래곤이 중국의 군소 메이커에서 메이저 메이커로 급부상 하던 시기에 발매된 키트라 당시에는 구성품도 풍부했고, 타미야 외에는 별다른 답이 없던 티거2에 혜성 같은 존재였다. 포르셰 포탑, 헨셸 포탑 둘 다 있고 각종 형식, 수송용 궤도 버전 등등을 다양하게 재현했다. 그리고 보병 피규어와 메탈포신, 황동포탄 등을 끼워넣어준 아르덴 대공세판은 결정판으로 인정받는다. 또한 하비보스와 더불어 포르셰의 시제품인 VK 45.02(P) 전방/후방 포탑형도 재현하였다.
- 1/35: 포르셰 포탑, 헨셀 포탑, 헨셀 포탑 아르덴 대공세판 3가지를 발매 하였으며, 타미야답게 간편하면서 준수한 퀄리티로 내놓았다. 자사 메이커에서 별매궤도를 발매하였으므로 이를 사용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드래곤에 비해 가성비 메리트가 별로 없었는데, 요즘처럼 드래곤제 가격이 하늘끝까지 치솟아 버린 상황에서는 도리어 대안이 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아르덴 대공세판은 바이크가 들어있다.
- 정확히는 티거 2의 포르셰의 시제품인 VK.45.02(P) 전방/후방 포탑형을 재현. 연결식 궤도를 넣었으며 트럼페터의 1/16 스케일의 포탑을 그대로 축소하여 높은 퀄리티를 보여준다. 단 그다지 좋지 못한 조립성과 장난감 스러운 차체 디테일이 흠이다.
신규 출시로 포르쉐 포탑, 헨셀 포탑(3종류. 1944년형, 1945년 2월, 45년 7월형) 두 버전으로 총 4가지의 제품을 출시하였다, 포르쉐 포탑은 2종류 포신이 포함되어 있다. 두 모델의 차이는 포탑뿐이며(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1945/7월형 티거 2는 엔진룸 덮개가 E-75 덮개이며 차체후방에 거대한 연결 고리가 추가로있다.), 포르쉐 포탑 티거 2 와 1944년 헨셸 티거 2는 찌메리트 코팅지가 포함되어있고 1945/7 헨셸 티거 2는 레진 방수포와 메탈 포신이 포함되어있다. 몰드로 새겨진 얇은 프라판을 접착하는 방식인데 접착성이 나쁘지는 않으나 찌메리트 몰드가 양면에 모두 새겨져 있어 접착면이 평평하지 않아 곡선을 작업시는 주의를 요함. 자사 옵션 별매품으로 메탈 포신이 판매되고 있음. 포탑에 고정핀이 없고 드랴곤 스마트킷처럼 그냥 차체에 올려두는 방식이다.
- 최근 즈베즈다에서도 판터 D형, 티거 등 독일군 아이템을 의욕적으로 내놓고 있는데, 드래곤 구 금형을 인수하여 헨셸 포탑과 포르셰 포탑을 발매하였다. 기본적인 연결식 궤도가 뻑뻑하게 연결되므로 궤도 연결시 주의하고 에칭 대신 타미야처럼 나일론 메쉬를 넣어주므로 참고.
- 현용위주, 일부 1차대전 아이템만 내던 Meng model 이 2015년 말에 티거 2 발매를 예고 하였으며 초회한정으로 메탈포신이 들어간다. 내부재현은 별매. 항상 넣어주던 연결식 트랙대신 세미연결식 트랙으로 넣어준다. 가격이 멩치곤 싸게 책정되었지만 별매인 연결식트랙을 같이 구매한다면 일반적인 멩의 가격이 된다. 지적되는 문제점은 차체 동축기관총 볼마운트가 실차보다 크고 넓직하게 나온 것과 포방패의 형상, 일부 부품의 묘사왜곡 등이 있다. 이 부분을 제외하곤 상당히 쓸만한 키트라는 것이 중론.
- 2016년 6월 초에 뜬금없이 런너샷을 공개했는데, 몇몇 해외 유저들은 차체 뒷면 형상을 보고 판터를 예상했었으나. 몇일뒤 다시 올라온 게시물을 통해 티거 2 임이 공개 되었다. 게다가 내부 재현형. 두 메이커의 관계를 볼 때, 멩모델의 티거 2를 누를 생각으로 발매하는 것 같은데 과연 실제 뚜껑을 따보면 품질은 어떨지 지켜 볼 일. Takom 도 아이템 선정이나 전반적인 퀄리티는 괜찮으나 한두 군데씩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Takom의 경우는 런너샷도 이미 공개된 상태라 발매가 예상보다 더 빠를 것으로 추측된다. 출시 후엔, 적어도 내부재현 모델을 완성해 본 사람들에게선 매우 실망스러운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내부재현을 한 상태에서는 조립이 똑바로 안 된다는 골때리는 결함이 나왔기 때문이다. 리뷰를 절대 런너샷만 보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 못 믿겠다면 타콤 킹타 내부 재현 모델을 뚜껑 씌워서 완성한 작례가 얼마나 있는지 찾아보자. 타콤 공식 페이스북에서도 부분조립된 사진을 작례로 내놓고 있다. 최근엔 도료업체 mig의 도료를 패키지로 내놓은 King tiger 1945를 내놓았는데 최후기형 포탑+트랙 또는 if버젼으로 1945년 7월 생산예정분으로 조립이 가능하다. 화전에서 수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