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센
Essen /ˈɛsn̩/ [1]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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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핵심 도시로, 오늘날에도 약 59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독일 내 9번째 대도시이다. 뒤셀도르프와 함께 루르 공업 지대의 경제력을 책임지는 도시로, 원래는 피츠버그처럼 탄광과 제철소로 먹고살던 전형적인 공업도시였으나 지금은 그런 것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도시 내 산업은 1970년대의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3차산업과 관광 위주로 완전히 재편되었고, 티센크루프나 알디 등 기업 본사들이 많다.
2. 역사
여담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Essen이라는 단어는 독일어에서 먹다, 또는 음식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간혹 이 지역이 먹을 것이 풍부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나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언어학적으로는 전혀 관계가 없다. 에센 지역을 지칭하는 가장 오래된 표현은 프랑크 왕국 시절의 Astnide인데,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변화하다가 최종적으로 Essen으로 정착한 것.[2]
에센의 발전은 유럽 내 많은 도시들처럼 가톨릭 수도원에 의해서였다.[3] 서기 9세기 무렵 힐데스하임 주교에 의하여 이 곳에 베네딕토회 수녀원이 건설됐고, 이 수녀원에서 주변 영주들의 부인과 딸들의 교육 및 복지를 담당하면서 점차 그 규모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971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오토 2세의 손녀였던 마틸다가 수녀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에센은 황제로부터 각종 혜택[4] 을 듬뿍듬뿍 받으면서 빠르게 성장해나가게 된다.
1377년에는 황제 카를 4세에게 자유시의 권한까지 넘겨받았지만 16세기 종교 개혁의 광풍이 그대로 에센을 덮치고 만다. 시민들은 프로테스탄트를, 수도원은 가톨릭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30년 전쟁이 발발하면서 네덜란드 군과 바이에른 군대가 개입했고 이들이 뒤죽박죽 싸우는 통에 망했어요.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의 모든 수도원령들이 세속화되면서 1802년에 마지막 에센 수녀원령의 통치자였던 작센의 마리아 쿠니군데[5] 가 퇴위하면서 958년간의 수녀원령 역사의 막을 내리고 프로이센 왕국 땅이 된다. 이 시절만 해도 인구 4천명도 안 되는 조그만 동네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는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미 15세기 무렵부터 각종 광업과 무기 제조업이 활발히 발전해나갔던 에센은 산업혁명과 동시에 폭발적으로 성장해나가기 시작했던 것. 이미 16세기부터 이 일대에 거주하고 있던 크루프 가문의 프리드리히 크루프가 1811년 에센에서 독일 최초의 제철소를 세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루프 제철소가 세계 최고의 철강업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에센 역시 발전을 거듭한다.[6] 1852년에 인구 1만을 돌파했으며, 독일 제국의 수립 이후에도 에센과 크루프의 위상은 오르면 올랐지, 내려갈 줄은 몰랐고 1896년에는 인구 10만을 돌파했으며 1916년에는 인구 40만을 돌파, 에센은 독일 내에서도 주요한 대도시 중 하나로 확고부동한 자리를 점하게 된다. 하지만 독일이 1차대전에서 패배하며 연합군의 루르 점령으로 1923년부터 2년간 프랑스군과 벨기에군이 점령하기도 했다.
1차대전 당시에도 독일군의 가장 중요한 전시물자 생산 기지였던 에센은 2차대전에서도 그 역할을 반복하고, 그 덕에 독일 본토 항공전 기간 내내 연합군 공군에게 신나게 폭격을 당하는 운명을 맞이하고 만다. 종전까지 연합국은 270회 이상의 공습을 통하여 3만6천톤 이상의 폭탄을 이 일대에 투하했고 그 덕에 도심의 90%, 교외의 60%가 쑥대밭이 되어버린다.[7] 이후 1945년 4월 영국군에 의하여 에센은 연합군에게 점령됐다. 패전 후에도 티센크루프를 비롯하여 철강업과 광산업을 비롯한 중공업 위주의 산업이 주력이었던 에센이지만, 1970년대 석탄 산업이 완전히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발빠르게 산업구조를 서비스업과 관광 위주로 재편했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3. 전시장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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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해 10월, 세계 최대의 보드 게임 컨벤션인 Spiel이 열리는 보덕들의 선망의 도시이기도 하다. 전시장인 에센 전시장에서 개최된다. 보통 줄여서 그냥 'Spiel'이라고 많이들 부른다. 에센에서 열리는 보드 게임 컨벤션은 전세계적 단위로 열리는 보드 게임 컨벤션으로 거의 유일하다. 이 때문에 유명한 보드 게임 디자이너/리뷰어들은 대부분 참가한다. 독일까지 가는 항공료가 비싸고, 디자이너로서 참가할 때 판매할 보드 게임은 부피가 상당하기 때문에 국내 보드게임 디자이너가 에센에 출품하는 것은 드물다. 그러나 피스크래프트와 둥둥(본명은 김기웅) 작가가 개발한 '잘그락 왕국(King's Pouch)'가 에센에 나가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 졸페어라인 광산, 레드 닷 박물관, 빌라 휴겔, 그루가 공원 등 볼 것이 의외로 많다.
- 이름이 독일어로 <먹다>라는 동사인 essen과 같다. 음식이라는 단어도 das Essen이라 말장난 치기 딱 좋다.
- 현재 4부리그인 레기오날리가 서부지구에서 활동중인 로트바이스 에센이 이 도시를 연고로 하고있다.
- 롯데햄에서 내놓은 소세지 제품중에 이 도시의 이름을 차용한 제품군이 있다. 에센뽀득이라고.
- 워 썬더에서 독일 공군 시험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에센/뮐하임 공항이 있다.
- 보드게임 티켓 투 라이드:유럽은 유럽 각지를 열차로 연결하는 보드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에센은 독일의 도시중 하나로 나왔다! 해당 보드 게임에서 나오는 독일 도시는 베를린과 에센 뿐임을 감안하면 그만큼 에센이 보드 게임계에 큰 영향을 끼침을 알 수 있다.
[1] 실제 현지발음은 애슨 또는 애쓴에 가깝다. 참고로 IPA에서 ɛ발음은 ㅐ와 동일하다.[2] 여담이지만 Astnide가 어떤 어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 다르다. 어떤 학자들은 고대 고지 독일어로 물푸레나무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하고, 어떤 학자들은 (프랑크 왕국의) 동쪽 지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3] 당장 독일 3대 도시 중 하나인 뮌헨 역시 수도원들의 도시에서 출발했다. Muenchen이라는 이름 자체가 독일어로 수도자를 뜻하는 Monch가 변형된 것.[4] 예를 들어보자면 하나의 독립적인 도시로 승인을 받는다던지, 혹은 시장을 개최할 권리라던지 등등[5] 폴란드-리투아니아 왕을 겸했던 아우구스트 3세의 딸이다.[6] 19세기 당시에는 크루프 가문이 에센을 먹여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였다. 크루프 제철소로 취직하려고 오는 노동자들이 에센의 인구 유입 요인 중 90% 이상이었으며, 리즈 시절에는 하청업체를 제외하고 크루프 제철소가 고용한 노동자만 수 만 명에 달했으니...[7] 1944년에는 격추된 영국군 폭격기 승무원이 분노한 에센 시민들에게 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린치에 가담한 시민들은 1년 뒤 에센을 점령한 영국군에게 그대로 교수형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