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토이버

 

Klaus Te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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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특징
4. 대표작


1. 개요


'''카탄의 개발자'''
'''2017년 기준 Deutscher Spiele Preis 최다 수상자(4회 + 어린이 부문 2회)'''[1]
독일보드 게임 개발자로 카탄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카탄 이전에도 테마성이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내놓으며 볼프강 크라머와 80~90년대 유로게임 시장을 양분하던 유명 제작자였다.
Spiel des Jahres 4회 수상, Deutscher Spiele Preis 4회 + 어린이 부문 2회 수상에 달하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2. 생애


1952년 독일의 라이-브라이텐바흐(Rai-Breitenbach)[2]에서 태어났다. 치과기공사였던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아 본인도 치기공사로 활동했다. 치기공사로 일을 하면서 보드 게임에 관심을 가졌고, 1988년 첫 번째 작품인 바르바로사(Barbarossa)가 바로 Spiel des Jahres를 차지한다. 그리고 뒤이어 출판한 노블리스 오블리제(Hoity Toity; Adel Verpflichtet)는 1990년 SDJ를 수상하고 Deutscher Spiele Preis의 첫 수상작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 이듬해에는 드룬터 운트 드뤼버(Drunter und Drüber)가 SDJ 수상, 그 다음 해에는 플라잉 더치맨(Der fliegende Holländer)가 DSP 수상. 한 해가 멀다 하고 보드게임의 양대 상을 쓸어담았다.[3] 이미 일찌감치 보드게임 작가로 대성할 것이 보인 셈.
하지만 1992년에 들어서며 그의 다음 작품인 개막식(Vernissage)의 출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작품이 당시 기준으로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려웠기 때문. 이 작품의 출판에 나서는 출판사가 없자 토이버는 자신의 보드게임 편집자 역할을 해주던 동료 라이너 뮐러(Rainer Müller)와 TM-Spiele[4]라는 합자회사를 설립하고 작품 출판을 강행한다. 하지만 그의 전작들과 달리 '개막식'은 SDJ 후보에도 랭크되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고, Deutscher Spiele Preis에서는 3위에 랭크되는데,[5] 이는 DSP가 SDJ와 차별화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의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결국 어느 정도 출혈을 감수하고 직접 세운 TM에서의 성적표가 그다지 시원치 않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고, 2년 정도 극심한 정체기를 거치던 TM에 심바 토이즈(Simba Toys)의 인수합병 제의가 들어온다. 심바 토이즈는 완구류 회사로서는 입지를 다지고 있었지만 체계화된 놀이를 만드는 데에는 한계를 겪던 중이었고, 게임 개발 역할을 해줄 인력이 필요했던 것. 결국 TM은 심바의 산하로 편입되어 골트지버(Goldsieber)의 이름으로 보드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골트지버 체제에서는 갈롭 로얄(Galopp Royal) 등의 작품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토이버는 TM과 심바의 계약에 불만을 가진 상태였고, 인수 협상은 골트지버 라인업이 개발되는 중에도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결국 토이버는 여기서 자신의 인생과 보드게임의 역사를 바꾸는 독단적인 결정을 내린다. 다음 작품을 코스모스(Kosmos) 사에서 처음 공개하기로 한 것. 하지만 이 결정은 결코 현명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 토이버는 이후 두 회사 사이에서 치이게 된다. 심바는 인수 협상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게임 출판을 거부했고, 코스모스는 자신들이 기존에 만들던 게임 기조[6]와 맞지 않는 게임에 대해 테마 자체를 수정해서 가지고 올 것을 요구했기 때문.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게임은 결국 코스모스에서 출판되고, 그것이 두 회사와 토이버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메가톤급 히트로 이어진다. 바로 1995년작인 '''카탄의 개척자'''.
카탄의 성공은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코스모스 사를 순식간에 메이저 출판사로 격상시켰지만, 심바와의 인수 협상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던 토이버의 입장에서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본업은 그 당시까지도 엄연히 치기공사였다. 골트지버와 코스모스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던 토이버는 결국 코스모스 내에서의 모든 TM 라인업을 처분하고 독립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이어온 가업 역시 모두 처분하고 본격적으로 보드게임 개발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로는 카탄의 확장판을 꾸준히 발매하기 시작했는데, 골트지버-코스모스 사이에서 겪은 갑을관계의 고충을 워낙 제대로 겪었던 그였는지라, 아들인 귀도와 함께 Catan GmbH를 설립하고 그가 개발하는 모든 게임의 저작권을 일임하고 있다. 아들인 귀도와 벤야민도 게임 개발 및 편집, 출판 등을 담당하면서 어느샌가 가업은 치기공사에서 보드게임 개발로 바뀌어버린 지 오래. 카탄의 성공 때문에 화려한 인생을 사셨을 것만 같지만, 출판사와 개발자와의 시스템이 지금처럼 정립되어있지 않았던 시절의 고충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겪은 개발자 중 하나이다.

3. 특징


대표작인 카탄을 보면 마치 토이버의 작품은 쉽고 직관적인 메커니즘을 통한 가족게임 내지 파티게임일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카탄은 위에 서술했듯이 두 회사의 갈등 사이에서 출판되었던 작품이라, 토이버의 색깔이 상당히 많이 희석된 작품이다. 카탄이 너무 히트를 친 나머지 국내에서는 거의 원 히트 원더 수준으로 취급받지만, 다년 간의 SDJ 및 DSP 수상 경력이 말해주듯 보드게임의 한 시대를 다양한 작품으로 풍미하던 개발자.[7]
오히려 토이버의 이상이 가장 잘 드러나있는 작품은 그의 첫 작품인 바르바로사. 토이버는 항상 미국의 판타지 및 SF 작가인 패트리시아 맥킬립의 작품을 즐겨 읽었고, 자신의 게임에 '''역사 및 판타지'''의 느낌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것을 선호했다. 역사 및 판타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게임에서 게이머들에게 '''탐험'''이라는 과제를 안겨주고 싶었다는 것이 토이버의 이상.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막연한 소망과 상상만 있죠. 안개 속에 덮인 성, 그리고 가는 것입니다.

전 아직도 최대한 본능적으로, 육감에 의존하여 작업하죠. 사전제작도, 정해진 틀도 없어요. 무한한 융통성만이 존재하죠.

-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인터뷰(독일어)

역사와 판타지적 요소를 구현하기 위해 게임을 정형화된 룰에 묶어두는 걸 극도로 꺼렸는데, 이게 쉽고 대중성이 있는 게임으로 갈 때도 있는 반면, 극악의 복잡성을 가진 게임으로 가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게 토이버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메커니즘보다는 게임의 테마성을 훨씬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미국의 게임 개발자들과 통하는 부분이 더 많은 편. 같은 시대의 유로게임을 양분했던 볼프강 크라머, 그리고 유럽식 추상전략게임을 대표하는 라이너 크니지아와는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기도 하다.[8] 만약 토이버의 시대가 이들의 시대보다 오래 유지됐더라면 '''유로게임'''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고, 있었더라도 의미가 많이 변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
참 역설적이지만 토이버가 자신의 이상을 마음껏 펼쳐보이며 하나의 보드게임 카테고리를 만들어가는 것을 막은 것은 바로 그의 가장 큰 히트작인 카탄이었다. 카탄의 팬이 아닌 클라우스 토이버라는 작가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카탄의 대성공과 대중화에 대해 아쉬움울 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카탄의 성공 이후 이 상품성을 가진 작품의 확장판을 만들어야 하는 요구사항은 끊임없이 늘어났고, 토이버의 자유로운 열정이 카탄 확장판에 지나치게 많이 소모되었다는 것. 토이버의 팬들은 1997년 카탄의 후속작으로 내놓은 라이언하트(Löwenherz)가 토이버 라인업의 마지막 불꽃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토이버도 카탄 확장판을 통해서 원래 본인이 카탄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역사 및 판타지 테마를 더 보완해가고자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간혹 나오는 라이언하트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카탄 우려내기인 것이 현실.

4. 대표작


  • 갈롭 로얄
  • 개막식(Vernissage)
  • 노블리스 오블리제
  • 드룬터 운트 드뤼버
  • 라이언하트
  • 바르바로사
  • 반지의 제왕
  • 박쉬쉬
  • 브루미
  • 빛과 그림자
  • 아스테릭스와 로마
  • 안녕 오소리
  • 카탄
  • 팀버랜드
  • 플라잉 더치맨
  • 헤즐넛 기사

[1] 공동 최다 수상자는 라이너 크니지아이지만 크니지아는 어린이 부문 수상은 한 번에 그친다. 그 다음으로 많은 수상을 한 개발자는 Spiel des Jahres 5회 수상에 빛나는 볼프강 크라머로 3회(+어린이 부문 1회) 수상했다.[2]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동남쪽에 있는 조그만 소도시인 브로이베르크(Breuberg)에 있는 마을이다.[3] International Gamers Award가 없던 시절이다[4] 토이버의 T, 뮐러의 M을 땄다[5] 당시 SDJ 수상작은 블러프, DSP 수상작은 모던 아트[6] 코스모스의 전신인 프랑크-코스모스는 셜록 홈즈-사설 탐정 등 추리물에 가까운 게임을 만들던 회사였다[7] 보드게임 업계의 진정한 원 히트 원더를 꼽자면, 카르카손의 제작자인 클라우스-위르겐 브레데가 대표적이다. [8] 크라머는 게임 메커니즘에 대해 결벽에 가까울 정도의 치밀함을 보이며, 크니지아는 게임성을 위해서라면 테마는 어찌 되든 상관 없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토이버의 작품은 이들 둘의 작품들에 비해 상당한 자유도를 보인다. 카탄만 하더라도 교역이라는 요소가 들어가서 자유도가 상당히 높은 게임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