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히트 원더

 


1. 설명
2. 정의
3. 원 히트 원더인 경우와 원 히트 원더가 아닌 경우
3.1. 짧은 기간 동안에 복수의 히트곡(혹은 복수의 앨범)을 화끈하게 내고 사라진 경우
3.2. 한 곡의 메가 히트곡과 함께 다수의 인기곡을 가진 경우
3.3. 하나의 메가 히트곡 이후 조용한 경우
3.4. 한 곡의 중박 또는 소박의 히트곡을 낸 경우
3.5. 기준이 되는 차트에 따라 여부가 바뀌는 경우
3.6. 해외 가수들의 경우
3.7. 옛날 가수들
3.8. 여담
4. 오해
5. 대표곡(signature song)에 따른 분류
5.1. 대표곡(signature song)
7. 원 히트 원더의 확장
7.1. 음악 외의 예술에서
7.1.1.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7.2. 스포츠에서
7.3. 성우계
7.4. 원 히트 원더라는 명칭만 쓰이는 경우
8. 여담
9. 참고할만한 페이지
10. 같이보기


1. 설명


one-hit wonder, nine-day's wonder. 일본에서는 "잇파츠야"라는 표현을 쓰며,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곡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 히트 원더는 대중 음악에서 한 개의 싱글(혹은 곡)만 큰 흥행을 거둔 아티스트를 의미하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반짝 흥행하고 잊히는 아티스트.
종종 퇴물처럼 멸칭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팀이 명멸하는 음악계에서 '''한 곡이라도 히트를 기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히트곡이 하나라도 있는 아티스트는 꽤 상위권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0곡갑"을 생각해보자.
오래전에 대박을 쳤던 원 히트 원더들의 이름을 주변사람에게 물을 경우 누군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들의 히트곡을 들려주는 순간 "아 이 노래!" 하는 반응을 높은 확률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원 히트 원더들은 팝 음악 역사 전반에 걸쳐 등장하지만 대부분 디스코, 뉴 웨이브, 그런지 등 유행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던 장르가 유행했던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2. 정의


어떤 아티스트를 원 히트 원더라고 칭하기 전에 정의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음악 산업 종사자들은 빌보드의 핫 100 차트의 40위 안에 든 것을 "흥행"(hit)이라 간주한다. 따라서 이러한 점만 본다면, 원 히트 원더는 '''핫 100 차트 40위 안에 한 번만 진입했던 아티스트'''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강남스타일로 일약 유명해진[1] 싸이는 원 히트 원더가 아니다. 다음 싱글 GENTLEMAN과 HANGOVER가 각각 빌보드 핫 100 5, 26위까지 올랐기 때문.
웨인 잰식의 《The Billboard Book of One-Hit Wonders》(1998년)라는 책에서는 원 히트 원더를 좀 더 보수적으로 정의하는데, 이에 따르면 '''"원 히트 원더는 빌보드의 전국 톱 40 팝 차트에 딱 한번만 진입한 그룹(act)"'''이다. 따라서 그는 지미 헨드릭스재니스 조플린 등을 원 히트 원더 가수의 범주에 넣었다.
영국에서 원 히트 원더는 '''영국 싱글 차트의 20위 안에 딱 한번만 진입'''했던 가수나 밴드를 지칭한다. 이 용어는 기네스 북의 "히트 싱글 편"(Guinness Book of Hit Singles)에서 1970년대부터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정의는 훨씬 엄격하여, '''"단 하나의 싱글 차트 1위"'''만 낸 가수로 정의 내렸다.
위의 원 히트 원더의 정의와 비슷하게 국내 차트를 기준으로 쓸 수도 있다. 음악계의 규모가 미국이 크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미국 빌보드의 40위 이내와 적절히 대응되는 건 '''한국 음악 차트 10위 이내'''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에도 가요톱'''텐'''의 영향으로 10위 안에 1번이라도 들어야 히트곡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멜론 차트 실시간 10위 안에 잠깐 들었다고 해서 히트곡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기준들과는 다르게, 대중들은 보통 '''어느 한 싱글의 인기가 넘사벽'''인 경우를 칭한다. 나머지 싱글이 상업적으로 성과를 냈어도 인기가 충분히 엇비슷하지 않다면 원 히트 원더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는 조영남이나 김흥국이 대표적인 사례.
딱 1곡이 인기를 끈 것은 맞지만 충분히 히트하지 못했으면, 원 히트 원더가 아니라 반짝 가수, 중박 가수 등으로 부르는 게 맞다. hit도 아니고 wonder도 아니니까.

3. 원 히트 원더인 경우와 원 히트 원더가 아닌 경우



3.1. 짧은 기간 동안에 복수의 히트곡(혹은 복수의 앨범)을 화끈하게 내고 사라진 경우


이들은 원 히트 원더라고 볼 수는 없다. 사례를 둘로 나눌 수 있긴 한데, 몇 년에 걸친 짧은 기간에 복수의 앨범으로 여러 히트곡을 낸 경우와, 한 앨범으로 여러 히트곡을 낸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몇 년에 걸친 짧은 기간 동안 복수의 앨범으로 여러 히트곡을 낸 경우로는, 외국에서는 처비 체커, 데비 깁슨, 티파니, MC 해머가 있고, 국내에서는 투투, 미스터투, 이정현(1966)[2]이 있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들은 분명히 히트곡이 여러 개이고 적어도 그 시기는 충분히 한 획을 그으며 풍미했다.
한 장의 앨범으로 화끈하게 여러 히트곡을 낸 예로는 김민우가 좋은 예시이다. 하지만 김민우는 단순한 히트곡이 아니라, 메가 히트곡이 다수인 경우라서 원 히트 원더로 볼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이들에게 시비를 붙이자면 전성기의 기간이 짧으므로 반짝 가수 정도라고는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딱 한 앨범에서 히트곡이 여러 개인 경우, 짧은 기간에 다수의 앨범을 집중적으로 내었고 거기에서 히트곡이 여러 개인 경우가 있기는 한데, 후자의 경우라면 몰라도 전자의 경우에는 반짝 가수라고 하기도 참 뭣하다. 심지어 MC 해머는 다이아몬드 앨범(1천만장 이상 판매)이 2장이 있기 때문이다. MC 해머가 음악적인 평이 그렇게 좋지 않게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 시기를 완전 풍미했던 가수라는 것 자체는 절대 부인할 수 없다. 어쨋든 한장의 앨범에서 다수 메가히트곡을 낸 김민우에 원 히트 원더라는 단어는 상당히 실례되는 단어라는 것이다.

3.2. 한 곡의 메가 히트곡과 함께 다수의 인기곡을 가진 경우


역시 원 히트 원더로 볼 수 없다. 김흥국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호랑나비는 분명히 메가 히트곡이지만 59년 왕십리 역시 인기가 높았고 인기가 1년 내내 꾸준했다. 다른 인기곡들이 메가히트곡처럼 대박을 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성과를 폄하할 수 없다. 다른 예시로는 "뿌요뿌요"의 UP가 있는데, 데뷔곡 1024도 엄연히 가요 차트 프로그램에선 10위권의 노래였으며 상당히 오래 버틴 노래다. 특히 경쟁이 치열했던 1996년 가요계 때 나온 것도 감안해야 한다.

3.3. '''하나의 메가 히트곡 이후 조용한 경우'''


'''원 히트 원더다.''' "What is Love"로 빌보드 차트 11위에 오르고 전세계 차트를 휩쓸어버린 해더웨이, 1991년 "옛이야기"로 메가히트를 달성하면서 가요톱텐 1위 후보에 오른 국내의 김규민을 예로 들 수 있다.[3]

3.4. 한 곡의 중박 또는 소박의 히트곡을 낸 경우


"원 히트"는 만족하지만 "원더(wonder)"에는 도달하지 못한 경우다.

3.5. 기준이 되는 차트에 따라 여부가 바뀌는 경우


해외의 곡들은 빌보드에서 중박이더라도 전 세계적으로는 히트 친 경우가 존재하므로 빌보드 40위 밑이라고 천편일률적으로 wonder가 아니라 중박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 예로 해더웨이나 스핀 닥터스가 여기에 해당되며 해더웨이의 What is love는 빌보드 싱글차트 11위, 스핀 닥터스의 Two princess는 빌보드 싱글차트 7위에 머물렀지만 그 당시 세계적으로는 거의 씹어먹었다.
국내에서는 가요프로그램에서 30~40위권의 노래 달랑 한 곡을 낸 것을 원 히트 원더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고 차호석의 내 안의 눈물이 본 문서의 사례에 올라와 있다. 하지만 이 노래는 그야말로 처참하게 망한 수준이며 방송 3사 차트에서는 30위 이내에 든 적이 없었고 음반은 더 처참하다.

3.6. 해외 가수들의 경우


  • 90년대 이후로 국내 팝 시장은 가요시장에 역전당하면서, 현재 팝 관심도는 현저히 떨어져있다. MC 해머나 데비 깁슨은 둘째치고 알 켈리(!)[4]가 이 항목에서 존재하는 이유이다. 한두곡의 히트곡만 기억하는 현 대한민국의 팝 시장으로 볼 때 이 항목 근처에도 오지 말아야할 가수들이 어이없게 제시되는 경우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특히 2010년대 들어 유튜브 지수가 반영되면서 빌보드 상위권에 올랐다가 고속으로 광탈하는 곡들이 많기 때문에 국내에서 보는 해외 가수들의 기준이 더욱 애매하게 되었다.

3.7. 옛날 가수들


음반 녹음 및 제작 기술과 여건이 좋지 않고 시장이 좁던 과거, 대략 국내 기준 1950년대 이전, 해외 기준 40년대 이전에는 어떤 가수가 여러 곡을 내는 것이 어려웠다. 원통형 레코드를 쓰던 축음기 시절은 단 한 곡, 디스크형으로 바뀐 후에도 LP나 CD 이전에는 양면으로 해도 두 곡밖에 싣지 못했으니, 히트곡을 단 한 곡만 남긴 가수가 수두룩했다. 그리고 이런 1910년대~50년대까지의 음악 산업 발전기에 해외나 국내나 대규모 전쟁이라는 엄청난 단절 요소가 있었다. 그래서 바닷가에서를 부른 안다성, 빈대떡 신사의 한복남, 눈물 젖은 두만강의 김정구 같은 과거의 가수를 원 히트 원더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3.8. 여담


  • 미쿠 레이카(未来玲可) -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발매한 데뷔 싱글 '바다와 너의 이야기'(海とあなたの物語)은 90년대 J-POP의 황제 코무로 테츠야가 프로듀스한 곡으로 일본 황금시간대 드라마 게츠쿠의 라인업이자, 아다치 미츠루 원작 진베의 메인타이틀 오프닝 곡으로 타이업되면서 312,830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렸다. 이에 유명 음악방송 뮤직 스테이션에 나가는 영예를 얻었다.[5] 문제는 처음 나간 방송 무대에서 심히 불안하고 듣는 사람도 불안하게 만드는 무대를 선보였다는 것이다. MC 타모리가 열심히 실드를 쳐줬지만 본인도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음악 소비자들 사이에서 굉장한 화제가 되었으며, 그 후로 이 싱글이 수록된 앨범 한 장을 내고 은퇴했다.

4. 오해


80~90년대에 활동하며 엄연한 멀티히트곡을 남겼던 레전드나 준레전드 가수들까지 도매금으로 억울하게 원 히트 원더라고 오해받는 경우가 있다.
김흥국은 호랑나비[6]가 너무 국민적 유행을 끌어서 그렇지 59년 왕십리, 정아, 흔들흔들 같은 히트곡이 있고 육각수도 다시, 명동별곡, Mr.건망증 같은 히트곡들이 많다. 이용의 경우 조용필을 상대로 1위를 했던 노래가 여러 곡 있고, 심지어 10월만 되면 다시 재생되는 노래도 있다.

5. 대표곡(signature song)에 따른 분류


대표곡(signature song)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원 히트 원더를 분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유일하게 하나의 히트곡만을 가진 엄밀한 경우, 즉 아주 좁은 의미에서 협의(狹義)의 원 히트 원더만을 원 히트 원더로 분류하고, 그 이외의 경우 즉 광의(廣義)의 원 히트 원더는 가수의 '''대표곡'''으로 보면 된다. 근거는 다음의 세 가지다.
① '원 히트 원더'라는 표현 자체가 멸시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해당 아티스트나 유족들에게 모욕적일 수 있다.
② 무엇이 '히트'인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하다.
③ 아무리 히트곡이었어도 극소수를 빼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잊혀지는 게 자연스럽다.
즉, 이 글과 하위 문서에서 계속 싸우고 수정전쟁이 벌어지듯, 무엇이 원 히트 원더이냐, 이 곡이 히트곡이었네 아니었네, 이 가수가 히트 가수였네 아니네 따위로 논쟁할 것 없이, 정말 문자 그대로 '원' '히트' '원더'인 경우만 원 히트 원더로 보고, 나머지는 퉁쳐서 '''이 가수의 대표곡'''으로 보면 가수와 유가족들에게도 기분나쁘지 않고 논쟁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위의 '오해'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5.1. 대표곡(signature song)


'''가수를 상징하는 곡'''으로, 보통 팬들이 가장 좋아하고, 음반판매량도 가장 높으며, 가수의 콘서트에서 마지막 곡으로(혹은 앵콜 송으로) 불려지는 노래다. 여러 곡인 경우도 있지만 보통 한 곡인 경우가 많고, 가수가 슈퍼스타였는지 원 히트 원더였는지 무관하게 가수에게는 한 곡의 대표곡은 있는 것이 보통이다. (단 한 곡의 대표곡도 없는 가수라면 무명인 채로 잊혀질 것이므로) 압도적인 수준에서 한 곡의 대표곡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무엇이 대표곡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갈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엑소의 대표곡은 누가 뭐래도 '으르렁'이겠지만 BTS의 대표곡에 대해서는 팬들마다 의견이 엇갈리며, 소녀시대의 'Gee', 원더걸스의 'Tell Me'와 달리 카라의 대표곡은 꽤 의견이 갈린다.
예를 들어 마이클 잭슨이 원 히트 원더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의 대표곡이라 하면 누구나 Billie Jean을 뽑을 것이다. 굵직한 가수 인생을 보낸 노사연에게 '만남'으로 원 히트 원더라고 말하면 무례한 표현이 되겠지만, '노사연의 대표곡은 만남이다'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배우의 경우 초히트작을 만나면 그 히트작에서의 캐릭터에 갖혀 이후의 연기 인생이 내리막을 타는 씁쓸한 경우도 많은데, 가수의 경우 배우처럼 노래의 인기가 가수를 묻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 반대의 경우 즉 대표곡을 통해 절대 잊혀지지 않는 가수로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가수마다 다르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곡만 불러주기를 요청한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기계처럼 계속 부르게 된 자신의 대표곡을 진절머리내며 싫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마돈나는 'Like A Virgin'을 거의 10년이 넘게 안 불렀었고, 라디오헤드도 'Creep'을 죽어도 안 부르다가 2010년대 들어서 조금씩 부르고 있다. 셀린 디옹의 경우 'My Heart Will Go On'을 정말로 소름끼치게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매 공연마다 팬들을 위해 꼭 부르고 있다.

6. 사례




7. 원 히트 원더의 확장



7.1. 음악 외의 예술에서


특정 작품으로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후에 별 달리 눈에 띄는 활동이 없는 예술인 또한 원 히트 원더라 칭할 수 있다.
문학의 경우, 인종 차별을 다룬 걸작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쓴 미국의 작가 하퍼 리, 누구나 적어도 이름은 들어본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미국의 소설가 마거렛 미첼, 그리고 뒤늦게 재평가된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쓴 프랑스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딱 앞서 언급한 대표작 하나만 집필한 후 절필했기 때문에''' 원 히트 원더라 할 수 있다.[7]
영화의 경우,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연기한 톰 헐스[8] 등을 들 수 있다. 연상호 감독 이후 부산행 이후 내놓는 실사영화들이 계속해서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원히트원더에 든다고 볼 수 있다.[9]
보드게임의 경우에도 카르카손의 작가 클라우스-위르겐 브레데를 들 수 있다. 카르카손이 메가 히트작이긴 하지만 그 외의 작품들은 공기 라인이다.
일본어로는 잇파츠야(一発屋)라고 하는데[10], 이 경우 게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7.1.1.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코너나 혹은 캐릭터가 크게 인기를 끌었지만 그 이후 활동이 없거나 예전의 인기를 얻지 못한 코미디언도 다수 존재한다.
KBS 개그콘서트의 사례를 보자면 우비 삼남매김다래, 출산드라김현숙[11], 현대생활백수고혜성강일구, 우격다짐이정수, 황해정찬민 등을 뽑을 수 있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사례는 리마리오와 택아의 윤택, 흔한남매정다운한으뜸을 꼽을 수 있다.
기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블랑카정철규, 죄민수의 조원석을 꼽을 수 있다.
음악계처럼 원히트원더로 오해받는 사례로 종종 있다. 예시로 김병만, 김미려 등을 뽑을 수 있다. 김병만의 경우 달인이 메가 히트 코너라서 원히트원더로 오해 받을 수 있으나 풀옵션, 불청객들, 김병만의 역사스페셜도 대박 친 코너였으며, 김미려는 사모님 외에 '이런 면접'과 '세 여인들'이라는 대박 코너가 있다.

7.2. 스포츠에서


스포츠의 경우 평생의 커리어 동안 단 한번의 이벤트 동안만 스포츠 팬들의 주목을 받은 선수들을 원 히트 원더라 부른다.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그저 그런 커리어를 보낸 댈러스 브레이든, 필립 험버가 예시이다. 끝판왕은 무려 '''월드 시리즈'''에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돈 라슨이 있다.
KBO에서는 1군 데뷔 첫 타석에서 대타로 나와 초구 9회말 2사 끝내기 만루홈런을 치고 사라져버린 송원국이 유명하다. 그 외에는 914 대첩을 만들어낸 황정립, 초대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만루홈런을 때리며 MVP를 땄던 김유동, KBO 최초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방수원이 예시이다.

7.3. 성우계


드물지만 성우계에서도 사용된다. 대표 배역은 있긴 한데 팬층이 매우 얇거나 커리어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경우. 대표적인 예시로 리비아의 게롤트 역을 맡은 더그 코클이 있다.

7.4. 원 히트 원더라는 명칭만 쓰이는 경우


웹 애널리틱스 분야에서는 '검색 엔진을 타고 어느 페이지에 접속하여 자신이 필요한 컨텐츠만 확인하고 기타 상호작용(광고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은 채 휙 떠나버리는 유저'들을 원 히트 원더라고 일컫는다. 약쟁이들 사이에서는 '''한방에 훅 가버리도록''' 강하게 제조한 약물들을 원 히트 원더라고 부른다 카더라. 이름만 빌렸을 뿐 상관이 없다.

8. 여담


톰 행크스가 주연, 감독한 'That Thing You Do'는 바로 이런 원 히트 원더 그룹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로 영화명과 동명의 주제곡이 매우 유명한 작품. 인터넷에 보면 작품 내의 원더스 자체를 원 히트 원더 그룹으로 알고 찾는 문의가 쇄도하는데... 실화가 아니라 가상 인물이다.

9. 참고할만한 페이지


원 히트 원더 센트럴
Ultimate One hit wonder page 약 800여개의 원 히트 원더에 대한 평가와 샘플을 보유하고 있다.
원 히트 원더스 웹진 izm의 연재물. 다만 izm이 언제나 그래왔듯이, 영미권 락 음악 이외의 음악(특히 댄스음악)을 하거나 한국 가수인 경우에는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글도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10. 같이보기



[1] 물론 대한민국 밖에서의 기준으로.[2] "와"로 유명한 이정현와 동명이인의 남자 가수.[3] 데비 분의 경우에는 "you light up my life"가 10주 연속 차트 1위를 했고 이후 컨트리 뮤직과 CCM으로 2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므로 해당 사항이 없다.[4] 알 켈리 본인의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90년대, 00년대, 10년대에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한 가수이다. 단지 I Believe I Can Fly만 주야장천 대한민국에 알려졌을 뿐이다.[5] '데뷔 무대'라는 표현은 부적절한 것이,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음악 방송으로 데뷔한다는 개념이 뚜렷하지가 않다. 대신 메이저 싱글 발매일을 더 중시한다.[6] 참고로 이 곡은 리메이크 곡이다.[7] 2015년 앵무새 죽이기의 속편 파수꾼(소설)이 발간되긴 했으나 망했으니 여전히 원 히트 원더이다.[8] 다만 톰 헐스는 대신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주로 활동했다.[9] 그나마 기존의 애니메이션들 중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도 몇 있었지만 현재에 와서는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아예 내지 않기에 더욱 대비되는 부분이다.[10] 실제로 원히트원더는 일본어 위키백과의 一発屋로 인터위키된다.[11] 단 이 사람은 공채로 들어온 적이 없으며, 연극배우 출신이기 때문에 코미디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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