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 리핀스키
1. 소개
미국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ISU의 올림픽 출전 연령 규정이 변경되지 않는 이상, 사실상 불멸로 남을 여자 싱글 최연소 금메달리스트이다.[1] 그랑프리 파이널, 세계선수권, 올림픽에서 모두 우승한 최초의 여자선수이다.
2. 선수 경력
2.1. 노비스 시절
1994 전미선수권 노비스 부문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2. 1994-95 시즌
만 12세의 나이로 1994년 미국 올림픽 페스티벌에서 최연소 챔피언이 되었고, 첫 번째 국제 대회인 Blue Swords에서도 1위를 차지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5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프리 스케이팅에서 6개의 트리플 점프를 기록하며 4위를 했고, 1995년 전미선수권 주니어 부문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2.3. 1995-96 시즌
1996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5위를 했다. 1996 전미선수권 시니어 부문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국제적인 주목을 받으며 출전한 1996 세계선수권 쇼트에서 22위에 그쳤으나 프리에서 7번의 트리플 점프를 뛰며 최종 15위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2.4. 1996-97 시즌
본격적인 시니어 시즌을 맞아 리핀스키는 발레 수업에 등록하였고 산드라 베직에게 안무를 받아 좀더 성숙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챔피언 시리즈[2]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2위, 트로피 랄리크에서 3위, 나치온스 컵에서 2위를 기록했고, 상위 2개 대회의 결과로 파이널에 진출했다. 1996년 후반에 트리플 룹-트리플 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구성하여 프로그램을 더 기술적으로 향상시켰다.
1996-97 챔피언 시리즈 파이널에서 성공적인 점프들을 바탕으로 디펜딩 챔피언 미셸 콴을 꺾고 금메달을 땄다.
1997 전미선수권에서, 그녀의 시그니처인 3Lo+3Lo 점프로, 디펜딩 챔피언인 콴을 꺾고 만 14세의 나이로 미국 내셔널 타이틀을 획득한 최연소 선수가 되었다. 이로써 1951 전미선수권 우승자인 소냐 클로퍼(당시 15세)의 기록을 경신하였다.[3] 이때부터 콴-리핀스키의 라이벌 경쟁이 시작되었다.
1997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면서, 역시 최연소 여자 챔피언이 되었다. 1927 세계선수권에서의 소냐 헤니보다 한 달이 더 어린 나이였다. 또한 은메달을 획득한 미셸 콴과 함께, 1992 세계선수권에서 크리스티 야마구치가 금메달을 획득하고 낸시 케리건이 은메달을 획득한 이후 처음으로 미국이 1위와 2위를 차지한 사례가 되었다.
2.5. 1997-98 시즌
이번 시즌을 앞두고 리핀스키는 키가 2인치 자랐고 15세가 되었다.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계속 발레 수업을 들었고 쇼트/프리 안무는 산드라 베직이 맡았다.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지난 3번의 맞대결 이후 콴에게 처음으로 패배하며 은메달을 땄다. 트로피 랄리크에서도 은메달을 따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1997-98 챔피언 시리즈 파이널에서 우승하며 2연패를 달성했다.[4]
1998 전미선수권에서는 콴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다. 쇼트에서 트리플 플립에서 넘어져 크게 뒤쳐졌지만, 프리에서 3Lo+3Lo과 3T+1Lo+3T 시퀀스 점프를 성공하며 만회하였다. 이로써 콴과 함께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에서 콴에 이어 2위를 기록했지만, 프리에서는 3Lo+3Lo과 3T+3S 시퀀스를 포함한 7트리플을 클린하며, 콴을 꺾고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다. 리핀스키의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은 당시 올림픽 역사상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운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피겨 스케이팅 역사상 가장 어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다. 그리고 미국 여자 선수로는 6번째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같은 나라의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딴 것은 1956년 올림픽에서 미국의 텐리 올브라이트와 캐롤 하이스 이래 처음이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3월에 열리는 1998 세계선수권은 기권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4월, 투데이 쇼에서 은퇴와 함께 프로 스케이터로 전향할 것을 밝혔다.
3. 은퇴 이후
리핀스키는 스포츠 해설위원 테리 개넌, 동료 피겨 스케이터이자 친구인 조니 위어와 함께 두 번의 올림픽에서 피겨 스케이팅 경기 해설을 맡았다. 그들은 2014년 NBC의 피겨 스케이팅 해설위원이 되었다.
4. 평가
1990년대임에도 7개의 트리플 점프, 빠른 스피드, 다양한 포지션의 스핀을 구사한 밸런스 타입 선수였다.[5] 코치진도 말렸을 정도로 무리한 연습으로 인하여 고관절 부상을 입게 되었고,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 은퇴를 하게 되었다.[6] 구성점에서 콴에게 밀리는 이리나 슬루츠카야와 리핀스키는 공통적으로 기술점과 쇼트 컨시에서 승부를 걸었다.[7] 또한 프리에서는 3Lo+3Lo 콤비네이션과 3T+3S 시퀀스를 내세워 콴을 누르고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남자 선수들도 3-3 두 번은 드물었다. 그녀가 고관절 부상 없이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면, 미셸 콴의 입지가 줄어들었을 것이다.
5. 기록
- 여자 싱글 최초로 3Lo+3Lo 컴비네이션 점프 성공
- 여자 싱글 최초로 올림픽에서 3-3 컴비네이션 점프 2번 성공
- 여자 싱글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15세 257일)
-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6번째 미국 여자 선수
- 그랑프리 파이널(1996-97), 세계선수권(1997), 동계올림픽 우승(98)으로, 최초의 그랜드 슬래머[8]
- 그랑프리 파이널 개최 이후 최초의 2연패(1996-97시즌, 1997-98 시즌)
6. 수상 기록
[1] 두번째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는 알리나 자기토바로 5월 18일생이다.[2] 현 그랑프리 시리즈의 초창기 이름이다.[3] 이후 2019 전미선수권에서 알리사 리우가 만 13세의 나이로 우승하며 경신하였다.[4] 그러나 몇몇 심판들에게서 잘못된 엣지, 즉 인엣지로 수행하는 러츠에 대하여 지적을 받았고 그들은 낮은 기술점수를 주기도 했다. 코치도 리핀스키가 항상 잘못된 러츠를 뛴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이 낮은 기술점수에 대해서 미국 내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5] 그 당시 5개 트리플만 뛰어도 정상급 선수였다.[6] 다만, 금메달만 갑툭튀하게 획득하고 먹튀한 케이스는 아니다.[7] 콴이 유독 쇼트에 약했고, 3-3 컴비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8] 사대륙선수권은 그녀가 은퇴한 후 1999년 창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