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노노 니이가사

 

1. 개요
2. 생애
3. 가계


1. 개요


高野 新笠(たかの の にいがさ)
간무 덴노의 어머니. 원래 코닌 덴노의 후궁이었으나, 아들이 황태자가 되면서 황태부인(천황의 생모)이 되었다. 사후 황태후태황태후로 추존.
원래 야마토(和)씨였기 때문에 원래 이름은 카바네(姓)와 합쳐서 '야마토노후히토 니이가사(和 新笠)'였으나 아버지인 '야마토노후히토 오토츠구(和史 乙継)'와 함께 우지(氏)로 타카노(高野), 카바네(姓)로 아손(朝臣)을 사성받아 정식명칭으로 '타카노노아손 니이가사(高野朝臣 新笠)'가 되었다. 어머니는 '하지노스쿠네 마이모(土師宿禰 真妹)'. 마이모는 후에 정1위의 관등과 오오에(大枝)의 우지(氏)와 아손(朝臣)의 카바네(姓)를 받아 '오오에노아손 마이모(大枝朝臣 真妹)'가 된다.
화풍(和風) 시호는 '아메타카시루히노히메노미코토(天高知日之子姫尊, あめたかしるひのこひめのみこと)'.

2. 생애


壬午, 葬於大枝山陵. 皇太后, 姓和氏, 諱新笠. 和氏, 百濟武寧王之子-純陁太子之裔也. 居大和國城下郡大和鄉, 因地制姓也. 贈正一位-乙繼之女也. 母-贈正一位-大枝朝臣-真妹. 后, 先出自百濟武寧王之子-純陀太子. 皇后, 容德淑茂, 夙著聲譽. 天宗高紹天皇龍潛之日, 娉而納焉. 生今上桓武帝、早良親王、能登內親王. 寶龜年中, 改姓為-高野朝臣. 今上即位, 尊為皇太夫人. 九年, 追上尊號, 曰-皇太后. 其百濟遠祖-都慕王者, 河伯之女感日精而所生. 皇太后, 即其後也. 因以奉諡焉.

백제를 중흥시킨 명군 무령왕(25대)의 10세손으로 무령왕 - 순타태자(純陀太子) - 법사군(法師君) - 웅소리기군(雄蘇利紀君, 신찬성씨록에는 백제국주 웅소리기왕으로 등장) - 야마토노후히토 우나라(和史 宇奈羅)[1] - 야마토노후히토 속승[2](和史 粟勝) - 야마토노후히토 정족[3](和史 浄足) - 야마토노후히토 무조[4](和史 武助) - 타카노노아손 오토츠구(高野朝臣 乙継/弟嗣)[5] - 타카노노아손 니이가사(高野朝臣 新笠) 순으로 계보가 이어진다.그러나 이 계보는 특정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신찬성씨록>에서만 나오는 내용이다. <속일본기>에 따르면 무령왕의 아들 순타태자의 후손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다만 <삼국사기>에는 순타태자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은 없고, 당대 백제에서 일본으로 왕자 1명씩을 보내 관계를 지속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령왕의 왕자 중 하나가 일본에 가서 정착했고, 후대에 '순타태자'라는 존칭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백제 왕자 부여사아(斯我)와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도래인 가계로 이들 집안은 5대까지의 직계를 신사에서 섬겼다고 한다.
<속일본기>에 따르면 코닌 덴노가 즉위하기 전에 혼인했다고 하며, 용모가 덕스럽고 정숙하여 일찍부터 명성을 드러냈다고 한다. 코닌 덴노는 본래 할아버지 대에 계승권 다툼에서 패배해 천황 계승이 어려울 것이라 여겨졌는데, 그 시기에 만난 게 니이가사였다. 정황상 니이가사가 백제계 도래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코닌 덴노의 즉위를 도왔을 것으로 보인다.
코닌 덴노는 61세라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즉위한 고령의 덴노로 황후인 이노우에 내친왕(쇼무 덴노의 딸)을 폐위하고, 타카노노 니이가사의 아들 야마노베 친왕을 황태자로 삼았다. 후지와라 집안이 야마노베 친왕을 밀었기 때문인데, 도래인 출신인 것 때문에 반대가 많았지만 타카노노 니이가사가 백제 부여씨 왕실의 후손 출신이기 때문에 격이 높았다는 것과 당대에 권력을 쥐고 있던 후지와라 가문이 밀어붙였다는 점 때문에 가능했다. 처음엔 후궁인 '부인(夫人)'이었으나 이때부터 '황태부인(皇太夫人)'으로 격상되었는데 사실상의 정실임에도 황후는 되지 못한 애매한 처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간무 덴노는 치세 기간 동안 백제 부여씨 왕족의 후손들을 찾아가 제사를 지내고, 이들에게 5위 이상의 관위를 내리거나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직에 임용하였다. 이는 간무 덴노의 혼인관계에서 후지와라 씨족 못지않게 백제계 도래인들이 많은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즉위 후 간무 덴노는 도래계 혈통 때문에 출신 문제에 민감했다. 그는 <일본서기>의 천손강림 신화와 비슷한 고구려 및 백제 건국 신화까지 거론하면서 이들도 하늘의 자손이니 문제 없다는 왕권신수설을 내세웠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백제계 도래인이라는 설이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긍정으로 수정되었다.

3. 가계


남편: 코닌 덴노(光仁 天皇)
장녀: 노토 내친왕(能登 內親王 , 733 ~ 781)
장남: 야마노베 친왕(山部 親王)
차남: 사와라 친왕(早良 親王 , 750 ~ 785)

[1] 우지(氏)로 야마토(和), 카바네(姓)로 후히토(史)를 사성.[2] 아와카츠?[3] 키요타리?[4] 부스케?[5] 우지(氏)로 타카노(高野), 카바네(姓)로 아손(朝臣)을 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