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손누트 C-5 추락 사고
1975 Tân Sơn Nhứt C-5 accident
1. 개요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철수할 당시 동원되었던 C-5가 추락한 사건이다. 정확히는 민간인 대피 작전에 동원되었던 C-5의 추락.
프리퀀트 윈드 작전의 일환으로 기획된 베이비리프트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사상자 대부분은 아기들과 어린아이들이었다.
2. 사고기
사고기는 록히드 C-5A로 테일넘버는 68-0218(c/n 500-0021)이다.
1970년 인도되었으며 사고 당시 기령은 5년이었고, 기체 손실로는 2번째였다.[1]
3. 사고
3.1. 배경: 베이비리프트 작전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군의 사이공 진격으로 인해 미군이 철수할 당시 기획했던 작전. 프리퀀트 윈드 작전의 일부로, 베이비리프트는 전쟁으로 발생한 고아들과 아메라시안[2] 을 미국으로 수송할 목적으로 입안되어 4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정확히는 남베트남에 남은 전쟁고아들을 수송기로 안전지대(주로 필리핀이나 괌 등 미군 기지가 있는 곳)까지 옮기고, 각 항공사들에서 차출한 비행기편으로 안전지대의 전쟁고아들을 호주나 미국 본토까지 수송하는 것이었다.
이 작전으로 2천 5백여 명의 전쟁고아들이 미국 본토로 수송, 입양되었다.
사고 당시 기체에는 145명의 유아와 140여명의 어린아이가 탑승했었다.
3.2. 사고
1975년 4월 4일, 탄손누트(떤선녓) 공군 기지[3] 에서 C-5A 수송기가 250여명의 어린아이들과 군인, 간호사, 종군기자 등 총 328명을 태우고 이륙한다.[4] 당시 C-5는 일부 화물까지 적재하고 있었다.
당시 항공기는 베이비리프트 작전에서 처음 투입되었으며, 어린아이들의 여정은 C-5를 타고 필리핀까지 갔다가 민항사 차터편으로 샌디에이고까지 수송될 예정이었다.
격추 위험으로 인해 C-5는 급상승을 해야 했고, 이륙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후 4시 15분, 남중국해 해상 고도 2만 3천 피트 지점에서 뒤쪽 카고 도어가 잠금장치 결함으로 열려버리고 만다. 이로 인해 감압이 발생했고 1/2번 유압계통과 미익 제어 케이블이 끊어져 버리면서 기체 조종이 거의 불가능해지게 된다.
한편 객실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기체가 감압되고 있었기 때문에 산소마스크를 써야 하는데 영유아들의 키가 너무 작아서 마스크를 쓸 수 없던 것이다. 결국 객실에 탑승한 대사관 직원들이 일일이 아이들을 들고 마스크를 씌워줬다가, 다른 아이가 기절할 것 같으면 또 다른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씌워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기장 데니스 "버드" 트레이너 대위와 조종사들은 비행기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탄손누트 공군기지로 회항하기 위해 180도 회전을 시도하고, 부족한 산소 확보를 위해 불안한 기체를 엔진 출력만으로 조작해가며 일단 4천 피트로까지 하강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활주로 정렬을 위해 엔진을 조정하다가 균형을 잃어 강하율이 급속히 올라가면서, 조종사들은 강하율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4시 45분 결국 추락하고 만다.
C-5는 탄손누트 공군기지 주변의 논에 불시착한 다음 미끄러져 잠깐 날아올랐다가 사이공 강의 제방에 부딪쳐 4조각으로 동강났다.
소방대가 출동했으나 가까운 도로가 사고지점에서 1.6km 떨어져 있을 정도로 외진 곳에 있어 현장에 진입하지 못했고, 헬기를 투입했으나 화재 진화는 어려웠고 생존자 후송에만 집중했다.
최종적으로는 173명이 살아남았고, 사망자 155명 중 78명은 영유아, 35명은 대사관 직원들이었고 11명은 공군이었다. 그 외에도 종군기자, 시민 등이 여럿 사망하였다. 사망자 대부분은 화물칸에서 발생했으며, 살아남은 고아들은 결국 계획대로 미국으로 옮겨졌으며, 죽은 고아들은 성 니콜라스 가톨릭교회 묘지에 화장되어 안치되었다.
3.3. 조사와 원인
여러 부품들과 승객/승무원들의 물건들이 현지 주민들에 의해 현장에서 약탈당해 미 공군 조사단은 애를 먹었고, 심지어는 현지 주민들에게 부품들을 찾아오면 현상금을 주겠다고 할 정도로 차질이 있었다. 또한 근처의 베트콩들 때문에 밤에는 조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테러나 격추가 의심되었으나 폭발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이후 후방 카고도어의 이탈로 사고가 발생했음을 알게 된 조사단은 후방 카고도어를 찾는 데 주력했고, 카고도어는 바다에서 회수되었다. 분석한 결과 카고도어에서도 폭발의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데, 잠금장치가 제대로 잠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선천적인 설계 미스에 잘못된 수리가 겹쳐 잠금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상황으로, 당시 사고기의 잠금장치 7개 중 3개는 제대로 잠기지 않거나 비행 중 열린 상태였다. 이 때문에 항공기 내부와 외부의 기압 차를 버티지 못하고 열렸으며, 제대로 작동하던 4개의 잠금장치에 하중 부담이 가중되면서 버틸 수가 없었고 결국 남은 장치들이 떨어져나가면서 문이 열린 것이다.
문제의 잠금장치는 원래 다른 비행기에 있던 것을 수리하면서 떼어내어 온 것이었으며, 잠김 로크가 연결되는 고정봉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미 공군의 부품난 때문이었다. 부품이 없어서 돌려쓰기를 자주 했으며, 고정봉 또한 돌려쓰기를 위해 떼어내었다가 다시 장착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4. 여담
재발 방지책으로 미 공군에서는 잠금장치에 안전핀을 넣어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하게 했다.
사고로 인해 C-5가 운항 중지되면서 베이비리프트 작전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결국은 C-141과 C-130 등 여러 수송기를 투입해 최종적으로는 종전 이전까지 2천 명이 넘는 고아들이 탈출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조종사들은 훈장을 수여받았다.
항공 사고 수사대 시즌 7에서 다루어졌다. 제목은 작전명 베이비리프트(Operation: Babylift). 약간의 고증오류가 있는데 도색이 현재 미 공군기 도색이다.
탄손누트 공군기지는 전후 국제공항으로 개항하였다. 탄손누트 국제공항이라고도 불리지만 정식명칭은 떤선녓 국제공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