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인 세인
1. 소개
미얀마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전 대통령.
2. 생애
응아푸두에서 마웅 표와 힌 뉸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2명의 형제가 있으며, 본인은 집안의 막내다.
어린 시절 그의 집안 사정이 좋지는 않았다. 부모는 농부였지만 땅이 없어서, 타인의 농지에서 일해야만 했다. 심지어 강을 건널 때도 대나무로 만든 DIY 보트를 이용했다고... 거기다가 어머니를 여의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이후로 죽을 때까지 승려로 살았다고 한다.
3. 경력
1968년 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가 되었다. 이후로 약 40여년 간 군인으로서 일했지만, 테인 세인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총들고 싸우는 그런 군인이 아닌, 단순 관료로서 일했다. 88항쟁 전후로 미얀마 북서부의 사가잉 주로 배치되었으나, 이후 양곤으로 돌아왔다. 이후로 군 내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람으로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2007년 4월 소 윈 총리가 백혈병으로 더 이상 근무를 할 수 없게 되자, 테인 세인은 잠시 그 자리를 대행하게 되었다. 대리이므로 소 윈이 완치되어 복귀하면 테인 세인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으나, 10월 소 윈은 끝내 먼 곳으로 떠나게 되었고, 결국 테인 세인이 정식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1년 총리직은 폐지되는데, 결과적으로 테인 세인은 군사 정권의 마지막 총리가 되었다.
당시 민심은 장기 독재에 크게 분노하고 있었고, 테인 세인은 곧바로 이러한 점을 직면하게 되었다. 초기 그가 총리에 오를 때만 해도 온건파로 여겨졌으며 이에 대한 기대도 일부 있었지만, 여느 군사 독재자들이 다 그렇듯이(...) 그도 독재를 일삼았다. 특히 2008년 사이클론으로 이재민이 대량 발생했을 때도, 이를 지원하기 위해 온 해외 지원단체들과 그 물조들을 차단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자, 결국 이를 이기지 못하고 수용해야만 했다. 이에 따라 미얀마 연방은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전환되었고, 테인 세인은 기존의 군사 정권 조직인 통합단결발전협회를 개편한 통합단결발전당(USDP)을 창당하고 당수에 오른다. 그리고 2010년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총선이 치러지게 되었고, 테인 세인은 여기에 출마를 선언한다.
4. 대통령
하지만 국민민주연맹(NLD) 등 재야 세력을 배제한 어용 선거나 다름 없었고, 결국 야권이 보이콧하면서 USDP의 압승으로 끝난다. 이후 국회 간선을 통해 테인 세인은 대통령직에 오른다.
그의 총리 시절 행적과 당선 과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지 않았으나,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며 과감히 민주화를 추진한다. 이에 따라 NLD를 다시 합법화하고, 그의 수장인 아웅 산 수지를 석방한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허락하며 미얀마는 점진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물론 독재자는 독재자인지라, 여전히 정치 공작 등이 만연했으며, 2012년 보궐선거 당시 NLD의 압승이 우려되자 노골적인 선거 방해를 저지르면서까지 이를 막으려고 했다. 또한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탄압으로 일관했으며, 결과적으로 군부 인사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표현의 자유 또한 여전히 제약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2013년 USDP의 당수직을 사임했으며, 2015년 총선 결과 NLD의 압승으로 끝났다. 신임 대통령으로 흐틴 캬우가 선출됨에 따라, 테인 세인은 2016년 물러났다.
5. 이후
퇴임 직후인 2016년 4월 1일 승려가 되었다. 비록 현재는 권력을 내려 놓았지만, 진작에 만들어 놓은 선거법[1] 덕에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현재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1] 군부가 원내 25%를 기본으로 차지하게 하는 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