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팍 아마루

 


1. 잉카 제국의 황제
2. 페루의 원주민 독립운동가
3. 페루의 반정부 무장단체


1. 잉카 제국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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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úpac Amaru / 1545 ~ 1572
잉카 제국의 마지막 황제. 스페인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켰던 망코 잉카(1516~1544)의 손자이며 티투 쿠시(1529–1571)[1]의 아들이다. 그가 즉위했을 당시 잉카 제국은 프란시스코 피사로 형제디에고 데 알마그로를 시작으로 한 스페인의 침략을 받고 점령당한 상태였으며 망코 잉카가 쿠스코를 떠나 빌카밤바에 세운 망명 정권이 스페인인들에게 저항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투팍 아마루는 부황인 티투 쿠시가 사망하자 황위를 이어받았지만,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 군대가 쳐들어왔고(...)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여 쿠스코로 끌려와 처형당했다. 그리고 그가 처형되면서 잉카 제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그의 처형에 대해 원주민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인들도 달가워 하지 않았다고 한다[2]. 실제 그를 처형시킨 총독은 스페인 국왕에게 해임되었다. 이는 투팍의 죽음이 식민지 원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 페루의 원주민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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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úpac Amaru II / 1742~1781
18세기에 활동한 페루의 원주민 독립운동가. 본명은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캉키(José Gabriel Condorcanqui).
원주민 유력자 출신이었으나 1780년에 스페인의 식민 통치에 대항하여 봉기, 총독인 안토니오 데 아리아가를 처형하고 스스로 '''투팍 아마루 2세'''라는 이름을 칭하며 잉카 제국의 부흥 및 아메리카 원주민, 메스티소, 흑인의 차별 철폐를 선언하였으나 투팍 아마루 2세와 봉기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열을 정비한 스페인군에게 진압되었으며, 투팍 아마루 2세 자신은 능지형으로 처형당했고 가족들까지 모두 살해당했다. 하지만 페루를 포함한 스페인령 중남미 식민지의 독립운동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50년도 지나지 않은 1820년대에 스페인은 쿠바, 푸에르토리코를 제외한 모든 중남미 식민지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후 결국 남아있던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미국에게 패전하면서 상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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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페루가 잉티화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500잉티의 인물이었다.
미국래퍼투팍의 이름은 이 사람에게 유래된 것이다.


3. 페루의 반정부 무장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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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 결성된 페루의 공산주의 계열 반정부 무장단체. 약어는 MRTA(Movimiento Revolucionario Túpac Amaru)이며 조직명의 유래는 2번. 페루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며 마오쩌둥주의 계열 무장단체인 센데로 루미노소(Sendero Luminoso)와 함께 반정부 무장투쟁, 요인 암살과 같은 테러 활동을 벌였으며, 1996년에는 일본 대사관을 점거하고 700여 명을 인질로 삼아 체포된 단원들의 석방 및 몸값 지불을 요구했으나 당시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던 알베르토 후지모리에 의해 진압되었으며[3], 이후 살아남은 잔당들은 밀림으로 도주해 무장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1] 망코 잉카의 둘째아들이며 형인 사이리 투팍(1535–1561)이 죽자 그의 뒤를 이었다.[2] 여기에 투팍은 젊은 데다 미남이었고, 왕족다운 당당한 품위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잉카인을 야만인이라 멸시하던 스페인인들도 그에게 호감과 동정을 갖고 있었다.[3] 후지모리가 직접 방탄복을 입고 진압부대를 지휘해 구출작전을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