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팍 샤커

 


[image]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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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투팍 샤커
TUPAC SHAKUR
'''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2017년'''
'''후보자격 연도'''
'''2017년'''
'''}}}#ffd700 후보선정 연도}}}'''
'''}}}#ffd700 2017년}}}'''

'''롤링 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100명'''
''' 85위 '''

''' 86위 '''

''' 87위 '''
블랙 사바스

'''투팍 샤커'''

그램 파슨스

[image]
'''본명'''
'''Tupac Amaru Shakur (투팍 아마루 샤커)'''[2]
'''예명'''
'''2Pac, Makaveli'''
'''출생'''
'''1971년 6월 16일'''
'''뉴욕 주 이스트할렘[3]'''
'''사망'''
'''1996년 9월 13일 (향년 25세)'''
'''네바다라스베이거스'''
'''국적'''
'''미국''' [image]
'''신장'''
'''176 cm'''
'''직업'''
'''래퍼, 배우'''
'''정당'''
'''미국 공산당'''
'''활동시기'''
'''1987년 ~ 1996년(사망)'''
'''링크'''
'''공식사이트 '''
1. 개요
3. 앨범 리스트
3.1. 정규 앨범
3.1.1. 2pacalypse Now
3.1.2. 2집 Strictly 4 My N.I.G.G.A.Z...
3.1.3. 3집 Me Against the World
3.2. 사후 앨범
4. 출연영화
4.1. 1992년 "Juice" 국내명:갱스터 랩
4.2. 1993년 "Poetic Justice" 국내명:포이틱 저스티스
4.3. 1994년 "Above the Rim" 국내명:할렘덩크
4.4. 1996년 "Bullet" 국내명:블렛
4.5. 1996년 "Gridlock'd" 국내미개봉작
4.6. 1996년 "Gang Related" 국내명:갱릴레이션
5.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5.1. 2003: Tupac: Resurrection
5.2. 2007: Tupac: Assassination
6. 싱글
6.2. 빌보드 핫 100 3위~10위
6.3. 빌보드 핫 100 11위~20위
6.4. 빌보드 핫 100 21위~50위
8. 여담


1. 개요



'''"How many brothas fell victim to tha streetz'''

얼마나 많은 형제들이 이 거리 위에서 희생되었나

'''Rest in peace young nigga, there's a Heaven for a 'G' '''

편히 잠들길 어린 친구여, 갱스터를 위한 천국도 있을테니

'''be a lie, If I told ya that I never thought of death '''

만약 내가 죽음에 대해서 생각 해본 적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my niggas, we tha last ones left but life goes on..."'''

'''친구들아, 이제 우리만 남았구나, 하지만 삶은 계속 돼..."'''

'''2Pac - Life Goes On[4]

中'''

'''"I shall not fear no man but God '''

나는 신 외에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겠다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death" '''

죽음의 계곡을 걷게 된다고 해도

'''2Pac - So Many Tears[5]

中'''

미국의 래퍼이자 배우. 예명인 '2Pac'으로 활동했지만 뉴스같은 공식 석상에서는 그냥 본명인 '투팍 샤커'로 불렸다.
'''노토리어스 B.I.G.와 더불어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있는 아티스트'''다. 후술할 드라마틱한 인생사와 그만의 철학, 가치관을 제외하더라도 힙합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의 투팍만큼 영향력과 파급력과 인기를 대체할 아티스트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6][7]
커리어 내내 예술성과 상업적 성공 두 마리의 토끼를 전부 잡은 아티스트였으며 25살도 채 안된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2장의 다이아몬드 앨범을 달성할 정도의 앨범 판매량과 같은 기록은 2000년대의 에미넴을 제외하면 여전히 그와 견줄 래퍼가 없다. 한 마디로 1990년대의 본토 힙합씬을 대표하는 래퍼 한 명을 뽑으라면 비기와 함께 가장 첫 손가락에 뽑히는 인물이다.
아티스트 개인의 역량으로 봤을 때 가장 크게 인정받는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가사'''. 과언이 아니라 Nas, Mos Def, Common, Eminem, Big L, Big Pun, MF DOOM 그리고 The Notorious B.I.G.와 같이 힙합 역사상 최고의 리릭시스트를 뽑으라 하면 항상 최상위권에 놓인다. 하류층 흑인의 삶과 현실을 본인만의 철학을 담아 시적으로 작사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으며 인권과 사회적 메시지와 같은 컨셔스한 랩 작사에도 역대 최고라 불리운다.[8] 그 외에도 갱스터 랩이나 파티 음악처럼 거칠고 화려한 힙합음악까지도 커버할 정도로 작사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고 넓은 것이 특징이다.
투팍은 현 시점에서도 안정적인 랩 메이킹으로 빠르고 흥겨운 파티곡부터 느릿하면서 안정적인 느낌의 자전적인 곡까지 어떤 비트에서도 잘 녹아드는 랩 스타일이 특징이다. 또 투팍의 대표곡들을 보면 대부분 템포가 느리고 투팍 역시 느릿하게 그루브를 타는 곡들이 많아 타이트하게는 못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있는데, Above the Law의 Call It What You Want나 투팍의 Holler If Ya Hear Me, Digital Underground 시절의 Same Song을 들어보면 타이트하고 빠르게도 랩을 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음색과 발성이 상당히 뛰어난데, 라이벌인 비기 역시 묵직한 랩 톤이지만 음색적으론 허스키하고 거친 느낌이라면 투팍은 웬만한 배우나 성우에 버금가는 굵직하고 깔끔한 목소리 톤이 매력으로 손꼽힌다. 투팍의 랩을 현 시대에 활동하는 아티스트들과 리믹스했을 때도 목소리가 가장 귀에 탁 들어오는 느낌을 준다.
보통 본토의 서부 힙합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꼽히며, 동부 힙합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는 노토리어스 B.I.G.가 꼽힌다.[9][10]
그의 이름은 페루의 원주민 독립운동가였던 투팍 아마루 2세에서 따왔다. 예명도 본명의 Tupac을 변형시킨 것이다. 본토에서는 아직도 Tupac이라고 불린다. 더불어 '마카벨리'(Makaveli)라는 예명도 있다. 이 예명은 그가 데스 로우에 영입된 후 마키아벨리즘에 심취하여 지은 예명이다. 뉴욕에서 랩하던 시절엔 MC New York이란 예명으로 활동했다.[11]
래퍼와 프로듀서 및 영화배우를 겸함으로서 7편의 영화와 한 편의 시트콤에 출연했었다. 그중 대부분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데뷔작 Juice는 '''힙합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존 레논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 삶이 파란만장했으며, 자신이 만든 노래에 사상과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등 마치 '''사회운동가'''와도 같은 음악 활동으로 대중의 반향을 불렀고, 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긴 뒤 이른 나이에 총격 사고로 사망한다.
투팍비기커트 코베인을 동시기에 잃은 미국 음악계는 당시에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던 시기였다.

2. 생애




3. 앨범 리스트


2pacalypse Now'부터 'All eyez on me'까지는 투팍이 생전이 발매한 스튜디오 정규 앨범이고 그 다음부터 나오는 앨범은 거의 미수록곡을 짜깁기해서 나온 곡이다. 2006년 이후 사후 앨범도 나오지 않고 있다. 2016년 현재까지는 이제껏 존재한 모든 래퍼 들중 에미넴과 더불어 총 2장의 다이아몬드 앨범[12]을 가지고 있는 단 2명의 래퍼 중 한 명이다.[13] 참고로 전세계적으로 음반 시장은 계속 줄어들고 음원 시장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니, 아마도 다이아몬드 앨범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달성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3.1. 정규 앨범



3.1.1. 2pacalyps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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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2pacalypse Now''' (1991년)
투팍의 데뷔 앨범이며 약 5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사회 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노래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여성이나 경찰을 비꼬는 가사가 나온다. 이 앨범을 들은 한명이 경찰을 쏘거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할 정도. 실제로 한 소년이 경찰에게 총을 쏜 후 3번 트랙곡인 'soulja's story'가 그에게 '경찰을 쏘게할 동기를 주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로 인하여 일부 정치가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당시 부통령이였던 댄 퀘일은 공중파방송에서 투팍을 비난했다. 심지어 불매운동까지 벌일 정도로 사회의 파장을 일으킨 앨범이다. 그리고 1년 뒤...전설이 된 그의 데뷔작이긴 하지만 사회적 파장에 묻혀 대중의 인지도는 적은 편이었다. 그래도 이 앨범이 알앤비 차트 13위에 오른 적 있으며 싱글인 'BRENDA'S GOT A BABY'이 3위를 차지한 적 있다. 대부분 국내 리스너들에게도 별로 언급되지 않는 앨범이기도 하지만 매니아에서는 호평을 받는 앨범이기도 한다.

3.1.2. 2집 Strictly 4 My N.I.G.G.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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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Strictly 4 My N.I.G.G.A.Z...''' (1993년)
1집보다 더 과격하게 변해서 돌아온 노래. 1집의 노래들이 경찰과 백인들을 비판하는 한편 '흑인들이 이대로 가난하고 무식하게만 살 수 없다. 우리 스스로 변하자.' 같은 메세지를 전하는 것에도 초점이 맞춰진 것과 달리 2집의 노래들은 사회를 까는 과격한 가사 자체에 중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도 어느 부분에서는 1집보다는 많이 순해진 앨범. 수록곡 중에선 1집의 메시지가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흑인 여성들에게 힘을 내라고 전하는 'Keep Ya Head Up'과 파티송인 'I Get Around'[14]가 가장 유명하며 두 곡 각각 빌보드 싱글차트 12위, 11위까지 올라가는 큰 성공을 했다.

3.1.3. 3집 Me Against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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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 '''Me Against the World''' (1995년)
'All Eyez on Me'와 함께 투팍의 최고 명반으로 꼽힌다. 투팍이 가진 서정성을 가장 잘 표현한 앨범으로 1집과 2집이 사회적인 분노를 담았다면 3집의 경우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Dear Mama' 같이 시적인 내용이 주가 되고 있다. 특징이라면 앨범의 전곡에 샘플링이 사용되었다. 앨범은 차트에서 장기간 머무르며 수백만장을 팔았지만 정작 투팍은 앨범이 나올 쯤에는 감옥에 있었다. 별다른 활동 없이 앨범만 수백만장을 판 것이다.

3.1.4. All Eyez O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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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 All Eyez On Me (1996년)
'''투팍의 첫 다이아몬드 앨범'''
데스 로우 레코드보석금을 내고 투팍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투팍과 계약한 뒤 투팍이 그곳으로 소속사를 옮기면서 발매한 앨범이다. 힙합 앨범 사상 최초의 더블시디로 제작되었다.[15] 톱스타 반열에 올라선 당시 투팍의 위치를 대변해주는 앨범으로 닥터 드레 같은 최고의 프로듀서가 만든 비트와 조지 클린턴이나 로저 트루먼 같은 전설적인 뮤지션들까지 참여해서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피쳐링진도 스눕 독독 파운드 같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서부 힙합 뮤지션과 더불어 메소드 맨 & 레드맨 같은 동부 힙합을 대표하는 래퍼들까지 참여하였다. 상업성과 작품성 모두를 겸비한 명작 앨범으로 극찬을 받았으며 지금도 최고의 힙합 앨범을 꼽을 때 베스트 10~20 정도 안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앨범이기도 하다. 투팍의 앨범 중 2000년에 와서 재발매되는 앨범이기도 하다.

3.2. 사후 앨범


'2pacalypse Now'부터 'All eyez on me'까지는 투팍이 생전에 발매하여 투팍이 프로듀싱하여 완성도가 높으나
투팍 사망 및 suge 마저 구속된 상태에서 Deathrow Records는 당시 아비규환 및 붕괴되어 도산 직전이었고
이때 뭐라도 챙겨야겠다는 이기적인 내부 관계자들의 의해 투팍의 마스터링 레코딩을 많이 도난되어 이는 해적판으로 많이 유출되게된다 (덕분에 현재 유튜브로 투팍이 생전 녹음해둔 높은 퀄리티의 오리지날 버젼을 손쉽게 들을수 있게된 장점은 있다)
makaveli 앨범이 그나마 투팍 프로듀싱이 그나마 유지된 앨범이고 이후에는
노래가 만들어진 제작 당시 참여했던 프로듀서 및 랩퍼 개개인의 저작권의 동의를 얻기힘들뿐더러 여러 이해관계가 섞여있어서 2pac의 목소리의 저작권만 가지고있던 Afeni shakur(투팍 엄마)는 곡을 완전히 새로 프로듀싱해야했고
이로 인해 사후앨범의 곡들은 퀄리티가 손상되어 가사 외에는 도무지 들을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Until The End Of Time , Better dayz, pacs life 등등)
유튜브의 떡상으로 인해 2pac 생존 당시 녹음한 마스터링 원곡이 OG라는 이름으로 다 올라왔으니 그쪽을 이용하는게 좋다 원래 버전은 하나같이 훌륭한 퀄리티를 가지고있다 (미발표곡들은 대략 100여곡 가량 넘으며 이 곡들은 투팍이 가석방 된이후 dre가 떠난 이후 96년 3월~8월에 거의 대부분 작업되었다) 2021년 현재 아직도 세간에 알려지지않은 미발표곡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youtube에서만 들을수있는곡도있지만 (did it 4 all b4, reinconation, dont stop the music 등등이 대표)
아예 세상에 오픈되지않은 곡들도 다수 존재한다 (aint livin, too tight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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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n Killuminati: The 7 Day Theory (1996년) as Makaveli
이미 만들어져 있었으나 갑작스런 투팍 사망으로 96년 10월에 발매된 앨범이다. 앨범명에 적혀있는 7 Day는 이 앨범을 만드는데 걸린 시간을 뜻한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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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U Still Down? (1997년)
투팍이 데스로우로 소속을 옮기기 전에 녹음해뒀던 미발표곡 모음집이다. 저작권 관계로 투팍 목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이 재작업된채로 발매되었으며, 그 중엔 Do for Love처럼 잘 살린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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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est Hits (1998년)
'''투팍의 두번째 다이아몬드 앨범'''
사후에 나온 베스트 앨범 미발표곡 중 하나였던 'Changes'가 대히트를 쳤다. 아마 투팍의 대박을 친 곡들은 여기에 다 수록되어 있으니 베스트 앨범 중에서 입문자에게나 매니아에게도 소장가치가 상당히 있는 편이다. 또한 그 유명한 'California Love'의 오리지널 버전이 수록되어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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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ac & Outlawz - Still I Rise (1999년)
그의 크루인 'Outlaws'와 함께 합작한 앨범. 투팍의 전담 프로듀서나 다름없는 Johnny J가 대부분을 프로듀싱하였다. 이 중에서 'Keep Ya Head Up'의 후속곡 격인 'Bady Don't Cry' 수록되었다. 사후 앨범 중 그나마 제일 리 프로듀싱이 잘되었다 허나 Black Jesus와 U Can Touch 등은 원곡을 망친 곡들도 존재해 여러모로 아쉬운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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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l The End Of Time(2001년)
역시 미발표곡 모음집. 평가는 그저 그렇고 프로듀싱을 전부 다시 했지만 사람들의 평가는 이전곡들이 더 좋았다고... 그러나 투팍의 이 사후 앨범은 계속해서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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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 Dayz (2003년)
미발표곡 중 이때부터 음악 퀄리티가 하락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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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ixx Klazzics (2003년)
투팍의 리믹스 앨범. 그러나 원곡을 너무 망치고 리믹스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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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urrection (2003년)
영화 투팍의 OST라고 하지만 투팍의 목소리를 갖다 붙인 곡도 있다. 평판은 좋지 못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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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ac Live (2004년)
투팍의 라이브 앨범. 정식 라이브도 아닌데 짜깁기로 발매한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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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yal to the Game (2004년)
미발표곡. 에미넴이 프로듀싱을 했지만 투팍이 랩한 것에 그냥 음악 덧붙인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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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s Life (2006년)
미발표곡 모음 앨범. 투팍의 열렬한 팬이 아니라면 듣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4. 출연영화



4.1. 1992년 "Juice" 국내명:갱스터 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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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993년 "Poetic Justice" 국내명:포이틱 저스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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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팍 샤커, 자넷 잭슨 주연 영화로 당시 엄청난 라인업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4.3. 1994년 "Above the Rim" 국내명:할렘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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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1996년 "Bullet" 국내명:블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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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1996년 "Gridlock'd" 국내미개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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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1996년 "Gang Related" 국내명:갱릴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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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1997: Tupac Shakur: Thug Immortal
1997: Tupac Shakur: Words Never Die (TV)
2001: Tupac Shakur: Before I Wake...
2001: Welcome to Deathrow
2002: Tupac Shakur: Thug Angel
2002: Biggie & Tupac
2002: Tha Westside
2003: 2Pac 4 Ever

5.1. 2003: Tupac: Resur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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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투팍 본인이 나래이션을 하는 영화로, 과거 그의 인터뷰 녹음들에서 적절한 구절을 따와 입혔다. 다큐멘터리 영화중 가장 유명하다. 완성도 또한 높아서, 2005년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2004: Tupac vs.
2004: Tupac: The Hip Hop Genius (TV)
2006: So Many Years, So Many Tears

5.2. 2007: Tupac: Assassination


그의 사망사건에 대해 진실을 폭로함으로서 세계적인 이슈를 몰고온 다큐멘터리
2009: Tupac: Assassination II: Reckoning

5.3. 2017: All Eyez on Me


2016년 9월 15일 현재까지는 밑에 영상 3개 정도가 나와있는 듯 하다.
트레일러#1 #2 #3
드디어 국내 개봉이 확정 되었다. 허나 평이 영 좋지 못하다. 그래도 투팍을 좋아하는 힙합 리스너라면 한번쯤 볼 만하다.
올 아이즈 온 미(영화) 문서로.

6. 싱글



6.1. 빌보드 핫 100 1위



6.2. 빌보드 핫 100 3위~10위


  • Dear Mama (1995)

6.3. 빌보드 핫 100 11위~20위


  • I Get Around (1993)
  • Keep Ya Head Up (1993)
  • Thugz Mansion (2002)
  • Runnin' (Dying to Live) (2003)

6.4. 빌보드 핫 100 21위~50위


  • Do For Love (1998)
  • Changes#s-4 (1999)
  • So Many Tears (1998)

7. 그러니까 남자들은 여자를 멀리하고 자위행위를 하는 게 낫습니다


2Pac의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짤방 및 발언. 해당 문서로.

8. 여담


  • 이 시대, 그리고 서부 힙합이 늘 그래왔듯이 가사에는 폭력마약 그리고 섹스에 대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흑인의 인권에 대한 내용, 여성 보호에 대한 내용들을 다뤘다. 실제로, 투팍의 무덤에는 "I'm not saying i'm gonna change the world. But I guarantee that I will spark the brain that will change the world."라는 글귀가 적혀있는데 이를 해석해보면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세상을 바꾸는 생각에 불을 붙일 수는 있다고 장담한다."라고 적혀있는데, 투팍이 살아있을 때뿐만 아니라 투팍이 죽은 후부터 지금까지도 래퍼뿐만이 아니라, 이 문서의 상단에 적혀있듯이 사회운동가와도 같은 평가 역시도 받는다는 걸 생각해 봤을 떄, 투팍은 결국 자신의 말을 지킨 셈이 되었다.
  • 그의 슬로건인 '깡패 같은 삶(Thug life)'라는 말 자체가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자신 같은 사람을 일컫는다. 말 그대로 깡패같이 살겠다는 말이 아니라, 깡패취급 당하는 소외된 비주류들의 삶을 의미한다. 험난한 인생을 살았음에도 상당히 시적인 가사를 써서 이 분야에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평을 받는다.
  • 사후에도 앨범이 계속 나오고 있다. 살아있을 적 이미 수백 곡을 녹음해놨기 때문에 죽은 뒤에도 계속 앨범이 나오고 있다는 것. 이쯤 되면 생존설이 생길 만도 하다. 미스터리 갤러리의 유명한 꾸준글 중에는 '투팍은 살아있다'라는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꾸준글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곡들은 앨범에 발매되지 않을 만한 퀄리티라는 점, 같이 껴서 나오는 기존 곡들의 리믹스가 개판이라는 점 등에 의해 사후 앨범은 계속해서 까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래퍼라는 위상에는 변함이 없을 듯하다. 애초에 투팍이 자의적으로 낸 앨범이 아니기에 본토에서도 이를 그의 커리어로 인정하지 않으며 그저 그를 추억하기 위한 노래 모음집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한다. 만약 정말로 살아있는 상태로 앨범을 계속 냈다면 현역 시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작업물들을 계속 보여줬을 것이다.
  • 생전에 다큐멘터리를 통해 책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손무의 <손자병법>, 조지 오웰의 <1984>,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 말콤 X의 자서전 등 다양한 책들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앞서 서술하였듯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특히 좋아하여, 마키아벨리의 이름을 조금 바꾼 마카벨리(Makaveli)를 자신의 별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독서광으로서의 면모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원점 수사>에도 나온다. 투팍이 읽은 책을 정리해놓은 목록도 있으니 투팍의 철학을 이해하고 싶다면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런 감수성 때문인지 직접 시를 쓰기도 했고 1999년에는 투팍이 직접 쓴 시를 모아 'The Rose That Grew from Concrete'라는 시집이 발간되기도 했다.
  • 아웃로우즈의 멤버이자 투팍의 절친이었던 야키 카다피도 투팍이 죽고 2달 후 살해당했다.또 투팍이 1994년 총격을 당하고 정확히 1년 후에 Thug Life의 멤버 스트레치가 사망했다.
  • 죽어서도 비기이지 이와 더불어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다. 더 게임 같은 베테랑이나 켄드릭 라마, 스쿨보이 Q 등 2013년도 즈음 확 뜬 신인래퍼들에게도 상당한 리스펙을 받으며[18], 극단적인 경우는 이분의 스타일을 말 그대로 벤치마킹한 소위 짝퉁 투팍 래퍼도 있을 정도. 대표적으로 자 룰 등이 있다. 이 작자는 아예 뻔뻔하게 팍의 랩 자체를 모창했다. 심지어는 인터뷰에서 자기가 투팍이랜다.
  • 이걸 투피에이씨로 혹은 투팩으로 투팍으로 읽느냐에 따라서 힙덕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골라낼 수 있다.[19] 일단 본인이 자기 이름을 '투팍'으로 읽었으니 그렇게 불러주는 게 맞지만, JAY-Z도 지적한 것처럼 미국에서도 '투팩'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많다. 일단 'tupac' 이라는 스펠링을 보면 '투팩'이 자연스럽고, '투팍'이라고 읽는 것은 서부식 미국 흑인 영어 발음이다. 그러니 헷갈릴 수밖에. 사실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름 읽는 사람이 없는 리아나도 그렇고 비욘세도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비욘스'라고 불렸다. 문제는 한국 리스너들에게 '투팍을 투팩이라고 발음하는 건 힙알못'이라는 일종의 밈이 생겨버린 것. 더 콰이엇의 '그것은 힙합 혹은 발라드'라는 곡에도 '2PAC 그건 투팩으로 읽지'라는 구절이 있다. 참고로 이 곡은 음악으로 부심부리며 X문가질 하는 사람들을 까는 곡이다. 허나,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힙합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 조차도 '투팍'이라는 이름에 대해선 익숙해졌기에 사실상 사라진 밈이나 다름없어졌다. 그리고 해당 인물이 실제로 불리는 방식으로 이름을 불러줘야 하는 것이 일종의 예의이기에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 사실 투팍과 비기가 살아생전 나온 앨범의 라이센스 버전에는 100에 99는 평론가들의 짤막한 평론이 담겨있었는데, [20] 당당하게 투이라고 적혀있는 버전이 투팍이라고 적혀있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힙찔이들의 논리대로 본다면 힙알못들이 앨범 리뷰와 평론을 했다는 말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물론 투팍의 이름이 친숙해진 현 시점에선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일이 되었다.
  • [21]
  • 투팍의 사망사건이 타임지에서 선정한 미해결 힙합 살인사건 탑 10중 1위에 올랐다.
  • 그가 생전 직접 찍은 마지막 뮤비는 Toss it Up이다.
  • 2016년 03월 30일에 투팍의 전기인 '투팍 샤커'가 출판사 1984에서 출간되었다. 번역자은 국내 1세대 힙합 래퍼인 UMC/UW이다.
  • 네이버 웹툰인 연애의 정령 75화에서 힙제이가 주인공에게 방해되는 사람들을 쓰러트리면서 "투팍의 곁으로!"라고 한다. 캐릭터 이름이랑 위 말을 보면 알겠지만, 약간 힙찔이스러운 면이 좀 있다.
  • 데프콘이 힙합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투팍의 음악을 듣고나서부터였다고 한다.[22]
  • 미국 시간으로 2016년 12월 20일, 투팍의 이름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이 결정났다고 한다.
  •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과도 꽤 깊은 우정을 주고받은 사이였다. 타이슨의 경기에 참석하기도 하고 타이슨은 투팍을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투팍이 살해당한 후 타이슨은 그를 추모하면서, 투팍을 죽인 사람과 딱 5초만이라도 링에서 만날 시간을 달라고 하며 분노하기도 했다.
  • 현재 활동하고 있는 래퍼 중에서는 프레디 깁스가 투팍과 닮은 외모로 잘 알려져 있다. 외모와 중저음톤의 래핑, 현재 래퍼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아티스트라는 점에서 팬들이 종종 '투팍의 재림'이라고 부르는데, 정작 깁스는 "투팍은 내가 아는 최고의 래퍼이며, 그 옆에 내 이름이 끼는 것 조차 말이 안된다."라며 오히려 이 별명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 인터뷰를 했다.[23]
  • 에미넴이 투팍의 어머니에게 자필로 편지를 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편지 내용에는 "아드님은 힙합의 세계뿐만 아니라 제 음악에 큰 영감을 주었으며, 커리어 전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며 투팍에 대한 리스펙을 보였다.
  • 그가 사망하고 6개월 후 그와 힙합계 양대산맥이었던 The Notorious B.I.G.도 역시나 총격으로 인해 뒤이어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해 동부와 서부의 거장들을 고작 반년만에 모두 떠나보낸 힙합 음악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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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팍의 회원증.
나이롱 회원도 아니라서 지역 내 사회운동도 활발히 했고 심지어 볼티모어에 있는 공산당 지부장 딸이랑 사귀기도 했다고 한다. 친모와 양아버지가 마오주의의 영향을 받은 흑표당 당원이었던 것은 덤. 이름부터가 페루의 원주민 출신 독립운동가 투팍 아마루 2세이다.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한다.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한다.[2] 출생 당시의 이름은 Lesane Parish Crooks였지만, 이듬해에 개명되었다.[3] 미국 서부힙합의 전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출생지는 뉴욕이다.[4] 훅 부분이다.[5] 인트로 부분이다.[6] 당시 투팍과 어깨를 나란히 할 90년대 힙합 아티스트를 딱 한 명을 꼽으라면 노토리어스 B.I.G. 정도이며 상업적인 성공, 당시 인기와 씬에서의 비중은 둘이 비슷했지만 컨셔스 랩을 잘 하지 않는 비기와는 달리 투팍은 사회적인 문제를 제대로 꼬집고 비판하는 랩을 자주 했기에 사회적 영향력과 전반적인 파급력을 놓고 비교하면 투팍이 우위에 있다. 또한 투팍은 당시 4장의 앨범이 있던 베테랑이지만 비기는 1장의 앨범밖에 없었다.[7] 단적인 예로 투팍이 동부 힙합을 디스하면서 나스도 싸잡아 깐적이 있는데 이후 나스의 반응이 '투팍이 내가 그를 먼저 디스한 것으로 오해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 같다. 난 여전히 그를 존경하며 이미 당시에 단 둘이 만나서 오해를 풀었다' 인터뷰에서 말할 정도*. 즉 나스가 본인을 비난함을 알게 되었어도 맞디스를 하기는 커녕 점잖게 대화 시간을 가지는 걸로 수습함과 동시에 여전히 투팍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라고 대놓고 밝힐 정도로 당시 그의 위상과 존재감이 어땠는지를 보여준다. 참고로 나스는 JAY-Z와의 디스전에서 살벌한 모습을 보일 정도로 자기 소신과 성격이 매우 강한 래퍼이다.[8] 철학적인 가사는 'Me Against the World'의 4절 가사에서, 컨셔스 랩 가사는 'Changes'와 'Keep Your Head Up'의 가사에서 잘 드러나고 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가사 해석을 보며 듣는 것을 추천한다.[9] '동부와 서부를 대표한다'는 말은 언론들이 먼저 시작했고, 결국 기획사들 간의 수입을 위한 피튀기는 경쟁의 수단, 희생자들이었다 보면 된다. 결국 모든건 인기와 돈이 원인이기 때문에 투팍도 1, 2집때의 순수한 언더그라운드 스타일에서 화려한 서부 갱스터랩으로 색깔을 조금 바꾸면서 동부, 서부간의 음악적인 색깔 대립으로 더 유명해진 케이스이다. 비기도 길거리에서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이후 사업가이자 프로듀서인 퍼프대디가 비기를 보고 돈냄새를 맡았는지 서부 힙합계와 투팍에 견줄 동부 힙합의 스타로 앨범 데뷔한 케이스이다. 물론, 투팍과 비기는 둘 다 어마어마하게 랩을 잘하기는 한다.[10] 비록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고 장르도 다르지만,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대서양 건너편에서도 언론과 지역사회가 주도한 같은 장르 안의 아티스트들 간의 살벌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확히 따지자면 브릿팝 전쟁은, 미국으로 따지면 힙합 씬이 아니라 그런지 록 씬에 가깝다.[11] 이후 투팍이 뉴욕을 기점으로 활동하던 동부 래퍼들을 싸잡아 디스한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이 때문에 해외 힙합 골수 팬들은 "서부의 왕이 사실 동부의 래퍼"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12] 미국 내 앨범 판매량 천만장 이상이 다이아몬드 앨범의 조건이다.[13] 다이아몬드 앨범을 한장 가지고 있는 래퍼는 찾아보면 좀 있지만 다이아몬드 앨범을 두장 가지고 있는 래퍼는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까지는 에미넴과 투팍뿐이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디지털 음원이 강세가 된 지금 시점에선 앞으로 나오기가 매우 힘든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14] 디지털 언더그라운드 멤버들이 피처링해줬다.[15] 이로 인하여 더블앨범 제작이 유행이 되기도 했다.[16] 1996년 8월 1일부터 8월 8일까지 7일만에 모든 곡의 가사 및 레코딩, 프로듀싱을 끝내는 괴물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 앨범 말고도 당시 투팍은 기계처럼 한달에 몇 십곡씩 만들던 때였다.[17] 그 전에는 오리지널 버전이 싱글로만 발매가 되었고 All Eyez On Me에 수록된 버전은 리믹스 버전인데 오리지널 버전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에 이 곡의 수록된 것이 더더욱 의미가 있다.[18] 그래서인지, 투팍을 보고 '래퍼들의 래퍼'라고 하기도 한다.[19] 이와 비슷하게 한국에선 2Pac을 '투팍'으로 읽냐 아니면 '팍'으로 읽냐로 구분하기도 한다.[20] 라이센스 버전 해외음반들은 거의 다 앨범 리뷰가 첨부되어 나온다. 이는 라이센스 버전만의 묘미[21] 코난 쇼에 나온 케빈 하트와 아이스 큐브가 카쉐어링을 하게 되면서 차에 탓다가 케빈이 Thug life라면서 벨트를 안 매자, 큐브가 "2Pac은 내가 만난 최고의 상남자(Thug guy)였지. 그리고 그는 항상 벨트를 차고 다녔지."라고 말하자 닥치고 맨다. 물론 농담이다.[22] 여담으로, 투팍이 죽은 건 당시에 워낙 큰 이슈여서 한국의 라디오에도 투팍이 죽었다는 소식이 간간히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데프콘은 알바를 하다가 투팍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었다고 한다.[23] 사실 닮은 외모 때문에 생긴 별명일 뿐이지, 둘의 음악 스타일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프레디 깁스를 '투팍의 재림'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느 정도 무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