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루 2세(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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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노년의 모습
Pedro II do Brasil
생애 : 1825년 12월 2일 ~ 1891년 12월 5일(만 66세)
재위기간 : 1831년 4월 7일 ~ 1889년 11월 15일
1. 개요
2. 가족관계
3. 창작물


1. 개요


브라질 제국의 제2대 황제. 관대왕(o Magnânimo)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포르투갈페드루 4세(겸 브라질의 페드루 1세)가 포르투갈 국왕 뿐만 아니라 브라질의 황제을 겸임하면서 브라질 국민들이 포르투갈과 통합될 것을 우려해 정쟁이 일어나자, 페드루 1세가 사임하면서 5살에 황제가 되었고, 포르투갈 왕위는 페드루 2세의 누나인 마리아 2세에게 넘겼다.
그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3명의 섭정들이 정치를 했으며, 섭정 기간 동안에는 여러 반란이 일어나는 등 혼란했다. 1840년부터 친정 정치를 시작했고, 1841년에 중앙 집권화를 시도하다가 반발을 사자 의회를 해산했다. 1842년에 상파울루, 미나스제라이스 등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1843년에 양시칠리아 왕국의 공주 테레사 크리스티나와 결혼해 2남 2녀를 두었으나, 아들들은 모두 일찍 죽었기에 장녀 이자베우(Isabel)가 후계자가 됐다. 페드루 2세의 외유 기간 중에 3번 섭정을 맡았으며, 3번째 섭정 기간에 노예제를 폐지하였다.
1864년에 파라과이 전쟁이 일어나자 1865년에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 동맹 조약을 체결했으며, 이후 승전으로 엄청난 국민의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1년 후 1871년에 페드로 2세에게 반대하는 공화당이 결성됐는데, 군부의 지도자들은 공화제를 원했지만 1889년의 쿠데타 이전까지 공화주의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1872년에 파라과이와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브라질 사람들은 빈부를 막론하고 노예 소유가 일반화되어 있었으나, 페드루 2세와 후계자 이자베우 공주는 노예제 폐지를 추진했고, 1886년에 사라이바 코테지피 법을 통해 60세 이상의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뒤이어 1888년에 노예제를 완전 폐지했는데, 노예제 폐지에 불만을 품은 대지주들이 군부를 사주, 1889년 11월 15일 데오도로 다 폰세카가 쿠데타를 일으켜 강제로 퇴위한 후 브라질에서 추방당했다. 당연히 군부와 대지주 이외에 대다수 민중들로부터는 지지받지 못한 쿠데타였으며, 쿠데타에 참가한 세력도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황제의 측근들이 쿠데타 세력을 그냥 밀어버릴 것을 간언했으나 페드루 2세는 브라질을 분열시킬 결정이라며 이를 거절하고 군부의 요구를 수용하여 자발적으로 브라질을 떠났다. 그 후 황제는 사위의 나라인 프랑스로 망명하여 호텔을 전전하며 살다가 지병을 얻어 사망한다.
장례는 프랑스 정부에서 대신 국장으로 치루어주었는데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군주를 강제로 쫓아낸 후 망명지에서 객사시킨 행위에 대한 후폭풍이 두려운 나머지 공화 정부는 황제의 국장에 조문단을 보내지 않고 장례식에 대한 언급도 금지시켰다. 하지만 황제의 공적은 황제를 쫓아낸 공화 정부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고 또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성군이었기 때문에 사후에 국민 여론이 황제의 유해를 브라질로 가져오는 것을 원하여 결국 1921년 황제의 유해를 유해가 묻혀있던 포르투갈에서 가져와 현재는 브라질에 묻혀 있다. 훌륭한 정치를 펼쳐 다수의 지지를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훌륭한 정치로 인해 피해 본 소수에게 쿠데타로 인해 쫓겨난 비운의 명군이다. 마지막 유언이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브라질의 평화와 번영을 빈다는 것이었는데 자신을 내쫓아낸 조국에 대한 원망을 가지지도 않은 채 마지막까지 조국을 사랑한 군주였다.
반면 파라과이에서는 최악의 인간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삼국 동맹 전쟁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겠다고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와 파라과이의 파멸을 끝까지 밀어붙여 마침내 그 소원을 이뤄내, 이후 파라과이가 150년이 넘도록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
공교롭게도 누나 마리아 2세의 죽음부터 시작해, 외조카 페드루 5세루이스 1세의 죽음과 외종조카 카를루스 1세의 즉위까지 보고 누나의 증손자인 마누엘 2세의 출생까지 모두 보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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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데자네이루 외곽의 페트로폴리스는 페드로 2세의 이름을 따온 도시이다. 상파울루 지하철 3호선에 페드로 2세 역이 있다.

2. 가족관계


황후 테레사 크리스티나와의 사이에서 2남 2녀를 두었으나 왕자인 아폰수와 페드루는 모두 2세로 단명하였다.
  • 이사베우 공주
  • 레오폴지나 공주

3. 창작물


문명 5문명 6에서 브라질의 지도자로 등장하는데, 이 시리즈에서 브라질이라는 문명은 5편에서 처음 나오므로 아직까지 브라질의 유일한 지도자인 셈이다. 그가 등장하는 창작물은 이게 유일하지만 이 악마의 게임 덕에 브라질 외의 나라에서는 인지도가 없는 훌륭한 성군이 타국에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5에서의 모습는 말년의 초상화에서 따왔고 6에서는 젊은 시절의 모습인데 5의 모습 과 달리 머리는 길고 어깨는 좁아져 동화에나 나올 법한 꼴이 되었다. 그래도 전작에 비해서는 훨씬 강한 문명을 이끌게 되었다는 점이 다행일까.
문명 6에서, 페드루 2세의 패배 시 대사는 "하느님께서 내게 마지막 소원을 허락하신다면, 브라질의 평화와 번영을 빌겠소." 인데, 이는 그의 실제 유언이다. 왕위에서 부당하게 쫓겨나 망명을 할 정도면 모국에게 원한을 품을만도 했지만 그는 그런 브라질을 끝까지 사랑한 군주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