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2세
마리아 2세는 포르투갈의 여왕으로, 부왕 페드루 4세가 1826년 5월 28일 포르투갈 국왕에서 퇴위함에 따라 포르투갈의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녀가 즉위한 지 2년이 지난 1828년, 삼촌 미겔 1세가 왕위를 찬탈하고 나서 1834년 복위하였다.
재위기간동안 공공 보건과 교육에 힘썼고 자상한 어머니로서 "교육자(a Educadora)"와 "좋은 어머니(a Boa Mãe)"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녀는 1835년 1월 26일 외젠 드 보아르네의 장남인 오귀스트와 결혼하였으나 두 달 만인 3월 28일에 자녀 없이 사별했고,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 출신의 페르난두 2세와 1836년 4월 9일 재혼하였으며, 막내아들인 에우제니오를 낳다가 1853년 11월 15일 사망했다.
여왕은 아이를 낳을 때마다 심한 난산으로 고생했다. 여왕이 18세일 때 낳은 셋째 아이는 32시간의 진통 끝에 사산되었고 의사들은 더 이상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을 권했다. 그러나 많은 자식을 낳는게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여왕은 이후로도 치세의 대부분을 임신 상태로 있었다. 계속된 임신과 출산으로 건강이 심각하게 상했고 다섯째 아이부터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왕은 자신이 죽는다면 그것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 말했고 자녀 계획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여왕은 사산과 유산을 반복하다가 1853년 11월 15일에 13시간의 진통 끝에 아이와 함께 서거했다.
첫째 페드루 : 1837년 9월 16일 ~ 1861년 11월 11일
둘째 루이스 : 1838년 10월 31일 ~ 1889년 10월 19일
셋째(1840년), 아홉째(1849년), 열째(1851년), 막내 에우제니오(1853년)는 사산되었다.
포르투갈에도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투우가 있고 마지막에 소를 찔러 죽이는 것도 같았지만, 마리아 2세가 소를 경기장에서 죽이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포르투갈에서는 소를 죽이지 않고 끝내는 투우 경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