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아로요
1. 소개
前 MLB 선수, 전 롯데 자이언츠 투수코치.
1.1. 선수 경력
1970년 MLB 신인 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10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하지만 빠르게 기량이 늘면서 입단 5년 만인 1975년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었고, 1977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맡게 된다. 그러나 당시 호랑이는 스파키 앤더슨 부임 이전의 암흑기였고, 이 때문에 38경기에서 209이닝을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8승 18패'''(...). 이 1977시즌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데미지를 입었는지 이듬해부터 다시 AAAA급 투수로 돌아갔고, 1979년 방출된 것을 시작으로 여러 팀을 떠돌아다니다가 1986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이 후 마이너리그 여러 팀에서 코칭스태프를 맡으면서 제리 로이스터와 친분을 쌓게 되는데...
1.2. 롯데 자이언츠 투수코치 시절
2008년, 그의 죽마고우인 제리 로이스터가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영입되면서 투수코치로 함께 롯데에 입단한다. 로이스터는 김무관을 대신할 타격코치를 비롯해 코치진 전반의 교체를 원했던 것으로 보이나 롯데 인사가 워낙 철밥통이다 보니 이는 불가능했다.
08년 FA로이드 흡입한 손민한과 07년 겨울 들여온 송승준, 수년간의 선발수업 끝에 불안정하게 나마 완성된 장원준 등 선발 투수진이 자리를 잡으며 봄데라는 비아냥을 털어내고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하는 등 좋은 결과[1] 를 냈지만 2009년 시즌 종료후 로이스터 감독의 1년 재계약이 어렵사리 이뤄지는 가운데 아로요 코치는 은퇴를 선언하고 야구인생을 끝내게 된다. 이후 공석이 된 롯데의 투수코치는 로이스터가 앞서의 타격코치의 경우처럼 구단에 새로운 외국인 코치를 요구하였으나 롯데구단의 의견에 따라 양상문 2군 감독이 1군 투수코치로 승격되었다.
2010년 양상문 투수코치의 부임 이후 거짓말처럼 불펜진이 완전히 망가지면서 투수진이 나락.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가지고도 '''역사에 길이 남을 다이너마이트 투수진 덕에''' 간신히 5할승률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리버스 스윕을 당하고 말았다. 이전부터 양상문과 철밥통에 치를 떨었던 수많은 롯빠들은 아로요 투수코치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아로요 매직 참조.
현재는 플로리다 주에서 안락한 노년을 보내시는 것으로 추정된다.페이스북
가장 큰 업적은 포크볼을 필두로 한 종변화구를 롯데 구단에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는 것이다. 이전에 포크볼러 이상목이 있었다지만 FA로 영입된 자원이었고 롯데 코치들이 제대로 못 가르쳐 정착에 실패했다. 이를 확실하게 퍼뜨린 것은 아로요의 공이다. 후임자인 양상문은 횡 슬라이더 외의 변화구를 전혀 가르치지 못했으니 아로요마저 없었다면....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라서 장원준의 변화구를 다듬는 데는 실패했고[2] 배장호, 나승현같은 옆구리 투수는 아예 못 만졌다.
2019년 8월 25일부로 투수 육성 총괄 코디네이터로 롯데에 다시 복귀했다. 네이버 기사
2. 관련 문서
[1] 로이스터 시절 롯데하면 흔히 강한 타격을 떠올리지만 '''2009년 롯데 자이언츠의 팀 득점은 8개구단중 최하위였다.''' 그럼에도 승률 5할을 유지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은 투수진의 힘이었다.[2] 체인지업과 커브를 끝끝내 못 가르쳐 변화구가 슬라이더 하나만 남은 투피처가 되어서 안 긁히는 날엔 무조건 터졌다. 장원준은 2011년에 접어들어서야 커브와 써클 체인지업을 능숙하게 활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