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목

 

'''이상목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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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1번'''
결번

'''이상목(1990~1993)'''

김경호(1995~1997)
'''한화 이글스 등번호 14번'''
박선일(1989~1993)

'''이상목(1993~1998)'''

최호원
'''한화 이글스 등번호 1번'''
정경훈(1996~1997)

'''이상목(1998~2002)'''

조규수(2003~2004)
'''한화 이글스 등번호 18번'''
조규수(2002)

'''이상목(2003)'''

박정진(2004)
<color=#373a3c>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1번'''
김영수(2000~2003)

'''이상목(2004)'''

이정민(2005~2006)
<color=#373a3c>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8번'''
변인재(2004)

'''이상목(2005~2007)'''

이웅한(2008~200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9번'''
제이미 브라운(2006~2007)

'''이상목(2008)'''

백정현(2009~)


[image]
이름
이상목(李相睦)
생년월일
1971년 4월 25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대구 수창초 - 경복중 - 성광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0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0~1993)
'''빙그레-한화 이글스 (1993~2003)'''
롯데 자이언츠 (2004~2007)
삼성 라이온즈 (2008)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연도별 주요 성적
5. 기타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투수.
현역 시절 대표적인 별명은 포크볼의 황태자[1] 이다.


2. 선수 경력



2.1. 삼성 라이온즈 1기 시절


[image]
당시 빼빼마른 프로 데뷔시절 얼핏보면 왕년의 에이스인 김시진의 얼굴이 흡사 비슷하게 보인다.[2]
원래는 삼성 출신(1990년 삼성 데뷔)이며 1993년에 포수 박선일을 상대로 빙그레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삼성에서의 성적은 승패없이 23이닝 소화, ERA 4.70을 기록하였다.

2.2. 한화 이글스 시절


[image]
또 다른 무관의 투수왕
이후 빙그레-한화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1993년 트레이드 직후, 그의 포크볼을 눈여겨본 코칭스태프에 의해 꾸준히 계투로 기회를 부여받았던 이상목은 빠른 성장세를 보였고, 1994년 중순부터는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하며 마운드의 주축이 되었음을 천하에 알렸다. 1996년에는 아쉽게 9승으로 10승은 실패하였지만 탈삼진 TOP 5에 랭크되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당시 하락세를 타던 한용덕을 밀어내고 3선발로 등극하는 데까지 성공하였다.
1999년에는 한화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해 성적은 14승 8패 ERA 4.20.이때 한화의 3선발로 활약했다. 비록 승리는 못했지만, 롯데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도 선발투수로 나섰다.
한화의 그 해 우승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1선발로 데뷔 후 최다승인 18승을 올린 정민철(18승), 2선발로 부활한 송진우(15승), 그리고 이상목 이렇게 강력한 3선발이 등판했을 때는 전력을 다하고, 나머지 두 자리는 돌려막았다. 당시 마무리 구대성 외에는 선발 외 투수들이 별로였다. 나머지 중간계투들은 ERA 5점대는 기본이요 일부는 6~7점대까지 기록해서 전혀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그나마 믿을 사람이라면 팀 사정상 선발 중간계투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출장해 91이닝을 던진 '''25세의 영건, 김해님''' 정도(4.87).그래서 앞의 3선발이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 믿음직스럽지 못한 불펜진들이 실점을 불사하며 1~2이닝쯤을 버티고, 구대성이 남은 이닝을 처리하는 식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제이 데이비스, 댄 로마이어, 장종훈, 이영우, 송지만 등을 포함한 강타선의 역할도 컸다. 어쨌든 그렇게 승률 6할이면 우승도 넘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일명 3승 2패 전략으로 결국 우승. 그러나 이 시즌 승률은 .554였고, 승률 6할을 넘긴 팀은 한 팀도 없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0년 4월 어깨부상으로 마운드를 이탈했고, 이는 한화의 부진에 한 원인이 되었다.[3] 절치부심해서 회복한 2001년 이상목은 5연승을 달리는 등 한화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일익을 담당했지만, 중간에 팔꿈치 부상을 당하는 등 부침이 있었다. 2002년에는 중간이 부실했던 마운드 사정으로 인해 시즌 초 잠시 계투로 뛰기도 했다.
2003년 이상목은 15승과 평균자책점 3.55를 기록, 정민태와 다승 경쟁을 하기도 했으나, 17승과 선발 21연승의 대기록을 기록한 정민태에게 골든 글러브와 다승왕 모두 빼앗긴다. 이 때가 '''커리어 하이'''였다.#
한화에서의 최종성적은 '''72승[4] 88패 ERA 4.43'''을 기록하면서 롯데로 이적했다.

2.3. 롯데 자이언츠 시절


[image]
2003 시즌 종료 뒤 4년 총액 22억 원의 FA 계약으로 큰 연봉을 받고 정수근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지만,[5] FA 이적 첫 시즌인 2004년 3승 9패로 시원하게 시즌 말아먹고 향후 밑에 서술할 DDSM이란 별명을 얻게 된다. 2005년과 2006년에는 몸값에는 못 미쳐도 나름대로의 활약을 보여 주지만(특히 2006년은 12승) FA계약 마지막 해인 2007년 1승으로 정말로 시원하게 말아먹는다. FA계약 4년 동안 22승 28패로 승당 1억 꼴. 믿기지 않겠지만, 이게 2014년까지 '''역대 외부 영입 투수 FA 가운데 가장 성공작이다.''' 진짜다. 2013년 FA 시장부터 낀 어마어마한 거품 탓에 꼴랑 1억만으로 1승씩이나 해줄 수 있는 외부영입 투수 FA는 더 이상 없을 지 모른다 결국 손승락이 와서야 투수 FA 잔혹사를 해결한다.
당연히 롯데 자이언츠는 재계약 포기. 결국 자신의 고향 팀이자 친정 팀인 삼성 라이온즈로 연봉 1억원에 이적했다.

2.4. 삼성 라이온즈 2기 시절


[image]
은퇴직전 마지막 시즌.[6]
2008년 8월 26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5⅓이닝 2실점으로 막아 타선의 도움 덕에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7]
사실 통산 99승, 2008 시즌 5승[8]을 하기 까지만 하더라도 100승을 눈앞에 뒀으나 몇번의 아홉수에 무릎을 끓었지만 선동열 감독의 믿음으로 2008 후반기에서 시작된 첫 경기인 히어로즈전에서 승리해 8전 9기 끝에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 참으로 눈물나는 노력의 결실인지, 성준이 못다 한 100승을 그가 올렸다. 만일 히어로즈전마저 승리하지 못했다면 평생 100승을 거두지 못했을지도 모른다.[9] 이것으로 인해 삼성은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한 또 하나의 반전을 쓰며 조건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8시즌 종료 후 삼성에서 방출당하며 은퇴했다. 그래서 더 이상 그의 포크볼을 볼 수 없다.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1회에 5실점했었는데, 시즌 종료 후 그것 때문에 방출한 데다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피칭을 할 수 없어서 은퇴했다는 점이 기정사실일 듯. 다행인 점은 친정 팀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것과, 그 시즌을 6승으로 장식한 점.[10] 무엇보다 '''100승'''을 찍었다는 것.
통산 성적은 439경기 100승 122패 25세이브 1,830⅔이닝 1,231K ERA 4.30. 그럼에도 먹튀 이미지 때문에 통산 성적에 비해 그 동안 굉장히 저평가가 심했던 편이다. 사실 100승 투수는 2020년 8월 현재 프로야구 40여년 동안 31명 밖에 없을 정도로 쉽지 않은 기록이고,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에서 투수 28위에 해당할 정도로 좋은 성적이다.

3. 플레이 스타일


그의 주무기는 바로 낙차 큰 포크볼이다. '''포크의 왕자''', '''KBO 최강의 포크볼러''' 로 불릴 만큼 대한민국에서 포크볼 활용을 잘 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 전까지 '동양인은 포크볼을 던지지 못한다'라는 야구계의 속설이 있었는데[11], 그 속설을 일본에서 타파한 선수는 노모 히데오였으며, 대한민국에서 타파한 선수는 이상목이었다.[12]
이상목의 포크볼은 롯데 시절 손민한, 이용훈 등에 전수되었는데 리그 최고의 포크볼로 불렸던 조정훈의 포크볼도 손민한의 영향을 받았고 이용훈은 롯데 투수 코치가 되면서 롯데 젊은 투수들이 포크볼을 전수하고 있다. 롯데가 포크볼 선수가 많은 데에는 송승준의 영향(박세웅 등)과 더불어 이상목의 나비효과가 있는 셈이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약 145km/h에 포크 외에도 싱커, 체인지업, 슬라이더 등등 다양한 구종을 던졌다.
통산 BB/9이 2.0개로, 이는 KBO 역대 4위 기록에 해당하는데 제구력이 뛰어나다기보다 투구 스타일이 볼넷 내주느니 안타 맞는다는 식으로 공격적이다 보니 볼넷 허용이 적었다. 구종 자체는 다양했지만 포크볼 외 구종들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서 소위 공이 긁히는 날에는 1,2선발 안 부러운 이닝이터였지만, 포크볼 커맨드가 안 되는 날에는 끝도 없이 연타를 허용하는 등 피칭의 기복이 있었다. 시즌 피안타 1위를 두번 한것을 보면...

4. 연도별 주요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 투수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0
삼성
9
23
0
0
0
-
-
4.70
21
1
15
6
15
12
1.57
1991
1군 기록 없음
199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3
빙그레
16
46⅔
0
2
2
-
0.000
4.82
50
5
16
22
26
25
1.37
1994
한화
37
128
5
8
5
-
0.385
4.01
127
14
34
77
60
57
1.23
1995
32
134⅓
7
8
5
-
0.467
3.75
129
12
40
112
60
56
1.24
1996
33
174⅔
9
13
2
-
0.409
3.97
176
10
46
'''156'''
(5위)
'''92'''
(1위)
'''77'''
(4위)
1.24
1997
38
138
6
10
0
-
0.375
4.30
150
'''19'''
(4위)
41
101
76
66
1.35
1998
38
174⅔
9
17
2
-
0.346
4.84
'''198'''
(1위)
'''23'''
(1위)
41
145
'''104'''
(1위)
'''94'''
(1위)
1.35
1999
31
172
14
8
2
-
0.636
4.29
161
'''26'''
(4위)
37
140
86
82
1.11
2000
1
1
0
0
0
0
-
0.00
2
0
0
1
0
0
2.00
2001
40
101
7
8
5
3
0.467
4.90
125
12
34
69
69
55
1.53
2002
30
62
0
7
3
2
0.000
6.10
70
13
16
47
43
42
1.32
2003
33
'''185⅓'''
(3위)
'''15'''
(2위)
7
1
1
0.682
'''3.54'''
(5위)
'''203'''
(1위)
'''18'''
(공동 4위)
33
118
78
73
1.25
<color=#373a3c> 연도
<color=#373a3c> 소속팀
<color=#373a3c> 경기수
<color=#373a3c> 이닝
<color=#373a3c> 승
<color=#373a3c> 패
<color=#373a3c> 세
<color=#373a3c> 홀
<color=#373a3c> 승률
<color=#373a3c> ERA
<color=#373a3c> 피안타
<color=#373a3c> 피홈런
<color=#373a3c> 4사구
<color=#373a3c> 탈삼진
<color=#373a3c> 실점
<color=#373a3c> 자책점
<color=#373a3c> WHIP
2004
롯데
19
87⅔
3
9
0
0
0.250
5.03
112
16
23
51
58
49
1.46
2005
17
101⅓
6
7
0
0
0.462
3.02
88
8
23
69
35
34
1.03
2006
23
138⅔
12
8
0
0
0.600
3.25
132
'''17'''
(공동 4위)
28
50
63
50
1.12
2007
11
37⅔
1
4
0
0
0.200
6.69
56
4
14
14
30
28
1.8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삼성
31
124⅔
6
6
0
1
0.500
5.34
152
8
38
53
79
74
1.45
<color=#373a3c> '''KBO 통산'''
(17시즌)
<color=#373a3c> 439
<color=#373a3c> 1830⅔
<color=#373a3c> 100
<color=#373a3c> 122
<color=#373a3c> 27
<color=#373a3c> 7
<color=#373a3c> 0.450
<color=#373a3c> 4.30
<color=#373a3c> 1952
<color=#373a3c> '''206'''
(공동 5위)
<color=#373a3c> 479
<color=#373a3c> 1231
<color=#373a3c> 974
<color=#373a3c> 874
<color=#373a3c> 1.29
  • 타자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한화 이글스
1
1
.000
0
0
0
0
0
0
0
.000
.000
<color=#373a3c> '''KBO 통산'''
(1시즌)
<color=#373a3c> 1
<color=#373a3c> 1
<color=#373a3c> .000
<color=#373a3c> 0
<color=#373a3c> 0
<color=#373a3c> 0
<color=#373a3c> 0
<color=#373a3c> 0
<color=#373a3c> 0
<color=#373a3c> 0
<color=#373a3c> .000
<color=#373a3c> .000

5. 기타


  • 별명은 DDSM, 대런 드라이포트 상목이다. 즉, 롯데에서의 먹튀를 뜻하는 별명. 2008시즌에는 투수 내에서의 고참을 뜻하는 '상목이 형님', 모기햄이 있으며 상목신 혹은 상먹신, 디디상목이 있다.
  • 삼성에서 마지막으로 뛸 때의 29번은 김시진(전 롯데 감독)의 선수 시절에 쓴 것이다. 이상목이 은퇴한 2009년부터 백정현이 사용하고 있다.
  • 2009년 김현욱 코치가 운영 중인 카페에서 김현욱의 댓글을 보면, 은퇴 당시에 무엇을 할 지 결정하지 못했다. 이후 신문 기사로 들린 소식으로는 사회인 야구 쪽에 몸담고 있다고 한다. 정경훈의 소개로 탑건설 마에스트로에서 사회인 야구 선수로 뛰면서 동작구 대방동에 야구 교실을 열어 사회인야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야구 지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리그의 압도적인 에이스로 거듭났다.#
  • 이후엔 다시 사회인 야구 동호회인 <호투맹타> 팀을 새롭게 창단, 2010년 첫 모임을 가졌다.
IB Sports 해설위원으로 활동중인 이여상과 회사원,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 들이 활동하는 모임이다. 관련기사
  • 영화 해운대에서 이대호설경구에게 돼지새끼라고 욕먹은 그 경기에서 1루 견제구를 던지는 모습으로 짤막하게 한 컷 나왔다.

[1] 아래에 서술된 내용이지만 포크볼을 잘던져 '''슬라이더는 선동열, 커브는 최동원, 포크는 이상목'''이라는 말이 있다.[2] 김시진도 선수 시절에는 그렇게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았었다.[3] 당시 정민철의 해외진출과 이상목의 부상으로 인해 송진우, 구대성, 송지만 등이 분전했음에도 한화는 7위를 하고 만다.[4] 개인 통산 100승중 72%를 한화서 기록한셈.[5] 여담으로 이 때 보상선수가 지금 KIA 타이거즈에 있는 신종길이다. 신종길이 한화로 보상선수 이적했던 시즌에 사이클링히트까지 치면서 롯팬들은 뒷 목을 잡게 되었다.[6] 사진 상황이 당시 선동열 감독이 조진호와 이상목을 후보로 두고 결국 이상목을 4선발로 낙점하였는데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상황이었다.[7] 이는 프로 데뷔 19시즌 만에 100승을 달성한 것으로, '''최다 시즌 100승 달성자'''라는 기록을 세운다. 그래도 달성한 게 어디야... 성준처럼 딱 3승 남겨놓고 은퇴한 케이스도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달성하지 못한 거보단 나았다.[8] 이 5승을 할 때까지는 사실상 팀 내 에이스였다.[9] 물론 그가 한화에 있었을 때에는 한화의 암흑기였던지라 승수 손해를 본 적이 많았다.[10] 2007 시즌 시원하게 말아먹었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감동적이다.[11] 포크볼 등은 손가락이 길어야 유리한데,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손가락이 짧아서라는 이유.[12] 이상목의 손가락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사실 포크볼이라는 구종 자체가 미국에서 유래했지만 가다듬고 발전시킨 곳은 일본이다. 미국 쪽에서는 포크볼은 잘 안던지고 스플리터를 주로 구사하는데, 이쪽 역시 손가락이 잘 벌어지고 길수록 구사가 쉽고 무브먼트도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