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로이스터

 


2015년 티그레스 데 킨타나로오 입단식
'''이름'''
제론 케니스 로이스터
(Jeron Kennis Royster)
'''생년월일'''
1952년 10월 18일
'''국적'''
[image]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새크라멘토
'''신체'''
183cm, 85kg
'''학력'''
새크라멘토 고등학교
'''포지션'''
'''내야수'''[1], 좌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7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LAD)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73~1975)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76~1984)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85~1986)
시카고 화이트삭스 (1987)
뉴욕 양키스 (1987~1988)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88)
'''지도자'''
콜로라도 로키스 3루코치 (1993)
밀워키 브루어스 코치 (2000~2002)
밀워키 브루어스 감독대행 (200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 수비 코디네이터 (2003~2004)
라스베가스 51s 감독 (2005~2006)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08~2010)'''
보스턴 레드삭스 3루 주루코치 (2012)
티그레스 데 킨타나 루 감독 (2015)
1. 개요
2. 선수 시절
3. 롯데 자이언츠 감독
4. 2010년대의 행보
5. 감독 성적
6. 평가
7. 매니저 스타일
7.1. 멘탈 개선
7.2. 닥치고 공격
7.3. 선발 투수 위주
7.4. 선수 개개인을 배려하는 운영
7.5. 선수 기용 및 코칭
7.5.1. 빛
7.5.2. 그림자
7.5.3. 고려해야 할 사항
7.6. 단기전에만 오면 약해진다?
7.7. 기타
8. 인기
9. 별명
10. 여담
11.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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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긴 암흑기에 빠져 있던 롯데를 되살린 롯데 팬들 마음 속의 영원한 영웅'''
前 메이저리그 선수이자 前 롯데 자이언츠 감독.

2. 선수 시절


[image]
1973년부터 1988년까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3루수2루수를 많이 맡았지만 외야 수비도 가능했는데, 선수 커리어 마지막 해에도 포수와 1루수를 제외한 내외야 전 포지션을 돌아가면서 봤다. 선수 시절 대체적인 평가는 2할 중반의 타격과 꽤 괜찮은 주루능력, 안정적인 수비로 먹고사는 내야 유틸리티 정도. 아마 KBO 역대 감독중에서는 선수시절 가장 수비를 잘했던 축에 속할 것이다. 김재박 정도가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 그런데 롯데 자이언츠가 로이스터 부임 이전이나 이후나 수비 못하는 팀이란 소리를 듣는 걸 보면 아이러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수비 원툴로 먹고 살았을 정도면 크보 야수들은 그냥 발라버린다(...). 수비 원툴이라 평가 받은 용병이 발데스, 브리또, 번즈이다.
비록 백업이었지만 뉴욕 양키스에서 뛰기도 했다. MLB 16시즌 통산 1428경기 4208타수 1049안타 40홈런 352타점 189도루 타율 .249를 기록했다.
MLB '''역대 최악의 단일시즌 fWAR 2위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의 보유자다. 1977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시절 기록한 fWAR이 자그마치 '''-3.8(...).'''
은퇴후 마이너와 메이저를 오가며 코치를 하다가 2002년에 밀워키 브루어스의 임시 감독을 역임한 바 있고, 2005~2006년에는 LA 다저스 산하 트리플A 팀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3. 롯데 자이언츠 감독


[image]
롯데 자이언츠 No.3
제리 로이스터 (Jerry Royster)
2007년 말,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부임. KBO 리그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2]이 되었다. 로이스터가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오는 과정에서는 그의 친구인 바비 발렌타인과 연관이 돼 있다.
당시 자이언츠 구단의 모기업인 롯데그룹신동빈 부회장[3]은 자신이 구단주 대행을 맡고 있는 치바 롯데 마린스의 감독이던 바비 발렌타인에게 후임 자이언츠 감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고 발렌타인은 자신의 친구인 로이스터를 신 부회장에게 추천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첫 시즌인 2008년, 8888577 찍던 롯데 자이언츠를 시즌 최종 3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리는 '''로이스터 매직'''을 발휘했다. 2008년 9월 28일 사직 야구장에서 부산 갈매기를 부른 뒤 허남식부산광역시장으로부터 명예 부산시민증을 받았다. 이 해 최종 성적은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한테 3패로 탈락했지만 두산이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이겼기 때문에 페넌트레이스 성적인 3위가 되었다.
2009년에도 역시 롯데 자이언츠를 포스트시즌에 올려놨지만, 시즌이 끝난 뒤 재계약에 대해 온갖 설왕설래가 많았다. 본인은 계속 팀을 맡고싶어 했지만 구단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고, 준플레이오프에서 2년 연속으로 처참하게 패배한 것과 4차전이 패배로 끝났음에도 한복을 입고 웃으며 팬들에게 인사를 했던 것에 대해서 언론의 집중 폭격까지 받은 것이 걸림돌이 됐다. 물론 반대 의견도 상당히 있으며, 반대가 아니더라도 대안이 없기에 로이스터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히 많다.
결과적으론 2010년 1년 재계약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애매모호한 이 계약 자체가 로이스터 체제에 대한 극단적인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10년, 시즌 초반부터 여러 선수가 부상 악재로 인해서 전력 유출이 많이 되었으며, 불펜진이 불을 저지르는 일이 많아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대호의 지속적이면서도 엄청난 기록 행진, 전년도와 비교해 괄목상대한 팀 타자들[4]의 활약에 힘입어 또다시 4강에 올랐다. 옆동네 FC 기탈리아의 연패를 비롯한 호조와 특히나 팀의 핵심 타자가 2명이나 큰 부상을 당하는 상황속에도 자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굳건해지는 팀 분위기 쇄신을 이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덕분에 롯데 팬들에게 로이스터의 지지도는 매우 높았다. 재계약 서명에 대한 반응이 꽤나 뜨거울 정도. 인기가 어느 정도였나면 위와 같이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를 중심으로 롯데 팬들이 조금씩 성금을 모아 신문에 연임 지지 광고를 냈을 정도.
[image]
이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갈매기 마당에서는 '망할 흑인' 취급을 받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갈마는 롯데를 좀먹고 있는 부산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남고등학교, 용마고등학교 등의 학연지연의 총본산이다. 애시당초 그걸 용납하는 팬들이 없다면 구단 혼자서 그렇게 맹목적으로 학연지연 연줄 인사를 할수 있겠는가? 장성우가 갈마돌이 되고 강민호가 미친듯이 까이는 것은 장성우가 성골 경남고, 강민호는 아무런 연줄 없는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도 있으며, 외국인, 그것도 흑인인 로이스터는 당연히 배척받는다.
2010년 9월 16일, SK 와이번스와의 시즌 마지막 2연전을 이기면서 3시즌 만에 통산 200승을 이루었다. 롯데 감독 통산 4번째고 최단. 승률도 1시즌을 맡은 성기영 전 감독을 제외하면 가장 높고 유일한 5할이다(...).
2010 시즌 후 다시 재계약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았는데, 재계약 조건이 최소 한국시리즈 진출이었다는 기사가 떴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는 마치 약속을 지키는 것 마냥 2010년 10월 13일 부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준플레이오프 5차전이 끝나고 있었던 그룹 고위층과의 만찬회에서 커티스 정의 초대가 배제되고 분위기가 20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것에 대한 추궁으로 흘러갔을 정도로, 준플 탈락과 동시에 해임은 결정되어 있었다.
일단 본인은 한국의 다른 팀의 감독을 맡고 싶어했으나 좋지 못한 결과를 남긴 포스트시즌 성적으로 인해 우승을 노리는 팀들과는 이렇다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리빌딩에 나선 팀이나 새롭게 창단된 신생구단에서 감독 후보를 거론할 때는 후보군의 한 자리에 거론되었으나 결실을 맺지는 못하고 있다.

3.1. 락라인


그런데 2008년에는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3:0의 폭풍 탈락(…). 2009년에는 준PO 1차전에서 승리를 챙기며 플레이오프 진출의 희망을 심어주지만 이후 3연패로 3:1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2010년에는 두산을 상대로 2연승 뒤 3연패하며 3:2로 탈락. 이로써 '''락라인''' 가입 확정. 부산의 거스 히딩크로 불리며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놨지만, 거스 히딩크처럼 4강이 한계인 듯하다.
그러나 한국축구가 4강 올라간 것처럼 롯데가 그 전력에 4강 올라간게 기적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로이스터 부임 이전까지 수년간 연속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 한번 못했다. 강병철이 이대호에게 트리플 크라운을 안겨 주긴 했지만 그게 팀의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나머지 감독들이야 뭐...이러한 배경 탓인지 로이스터를 싫어하는 사람을 두고 '첫술에 배부른 사람들' 취급을 하는 경향도 있다.
롯데의 전력으로 3년 연속 4강안에 들어가게 만든 것 자체가 이미 나쁜 감독은 아니라는 증거. 더군다나 롯데의 무능력 코치진들을 생각한다면 그걸 뚫고 어떻게든 3년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것은 나름의 업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사실 로이스터가 부임하면서 데려온 자기사람은 아로요 투수코치 단 1명 뿐이었고...그나마도 아로요 투수코치가 고령을 이유로 은퇴하자 구단은 로이스터의 요청을 깨끗히 무시하고 양상문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낸다. 사실상 로이스터의 임기내에 구단의 지원은 사실상 없었던 셈.

4. 2010년대의 행보


"창원 제9구단의 감독으로 어떨까?" 하고 NC의 높으신 분이 사석에서 말했다고 한다. 물론 관심도 있는 듯. 다만, NC에서는 김경문 감독을 선택하면서 무산. 그러나 2011년, KIA 타이거즈가 준PO에서 탈락하고 조범현 감독이 이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 책임 소재에 따른 퇴진 요구가 강해졌는데, 만일 조감독이 구단의 조기 해임 결정에 따라[5] 남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날 경우 기아 감독으로 갈 가능성도 있었으나, 선동열 체제로 갔으니 끝.
2011년에 로이스터는 FREE 상태. 메이저리그 캐스터를 맡을 거라는 발언을 했다. # 결국 보스턴 레드삭스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된 바비 발렌타인의 부름을 받고 보스턴의 3루 주루 코치로서 현장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런데 캐스터 때 보스턴 선수들을 너무 씹어서 선수들이 자기를 잘 안 따라준다고 한다(...). 다만 이건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 선수단을 너무 강하게 휘어잡으려다가 오히려 역풍으로 선수단과 싸워서 그런 것도 있으니...
2012년 8월에는 한화 이글스한대화 감독이 중도사퇴 함에 따라 후보로도 거론되고는 있으나...
2012 시즌이 끝나고 보스턴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바비 발렌타인 감독을 경질하면서 같이 따라온 로이스터 주루코치도 같이 잘랐다. 그 후임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11년간 코치직을 했던 브라이언 버터필드 코치. # 2013년 6월 경, 류현진 경기를 관람하러 LA 다저스 경기장을 찾은 장면이 어느 기자에게 포착되어 기사에 소개되기도 했다. # 기사에 의하면 2013년 한해는 통째로 소속없이 휴식을 취한 듯.
2014년 멕시칸 리그의 티그레스 데 킨타나로오 팀의 감독이 되었으나, 2015년 5월 시즌 도중 경질되었다. 2015년 9월 기준 무적 상태.
2015년 9월 15일, OSEN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복귀행을 강하게 시사하는 인터뷰를 했다. 단, 아직까지 롯데 자이언츠 측에서는 어떠한 인터뷰도 진행한 적이 없다고 한다.
2015년 10월 8일, 이종운이 해고되고 조원우를 새 감독으로 선임할 때이라는 말로 팬들의 염통을 불살라버리고 있다(...). 김시진 경질하고 이종운 선임할 때도 같은 소리를 한지라 팬들은 대격노 중.
2016년 10월 18일, 뜬금없이 넥센 히어로즈에서 염경엽 감독의 후임자로 고려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일단 넥센 구단 측에서는 고려한 바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기사. 그러나 이 기사를 쓴 사람이 넥센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OSEN의 고유라 기자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넥센빠들은 로이스터 감독의 임명설을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넥센은 장정석을 신임 감독으로 뽑으면서 이는 최종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정황상 넥센이 염경엽 감독이 시즌 중반 시즌 후 사퇴 의사를 밝힌 후 로이스터를 고려해 본 것은 사실이나, 팀의 컬러가 바뀌며 생각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19년 8월 27일에는 난데없이 공석인 롯데 자이언츠 단장직에 후보군으로 거론됐다는 기사가 떴다. 팬들은 대체로 환영한다는 반응이었으나, 감독도 아니고 외국인 단장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존재했다. 애초에 롯데 프런트가 이미 특정인을 내정해놓고 언플하기 위해 로이스터의 이름을 꺼냈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다.
2019 시즌, 롯데 자이언츠꼴찌로 시즌을 마치자 구단에서 다음 시즌 감독을 외국인 감독으로 정하고 후보군으로 그를 포함했다. 로이스터 외에도 스캇 쿨바, 래리 서튼을 감독 후보군으로 공개했다. 오랫동안 현장 지휘봉을 놓은 탓인지 쿨바와 서튼에 밀려 유력 후보로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9월 30일 극비 입국해 롯데그룹 관계자와 독대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롯데 감독으로 복귀가 유력한 상황이거나 감독은 아니라도 구단 고위직에 내정된게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하다. #
2019년 10월 3일 새벽, 롯데 자이언츠의 1군 감독이 아닌, 2군 감독으로 부임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다만, 롯데구단은 낭설이라면서 소문을 일축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래리 서튼이 취임하게 되면서 위 기사는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많은 롯데빠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현장을 너무나 오랜 기간 떠난 것이 마이너스로 작용한 듯 하다.
한편, 롯데의 새 감독으로는 허문회가 선임되었다.
2020년 현재는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Sierra Canyon School이라는 12년제 사립 초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을 맡고 있다.#

5.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color=#373a3c> 연도
<color=#373a3c> 팀
<color=#373a3c> 경기
<color=#373a3c> 승
<color=#373a3c> 패
<color=#373a3c> 무
<color=#373a3c> 정규리그
<color=#373a3c> 포스트시즌
2008
'''롯데 자이언츠'''
126
69
57
0
3위
3위
2009
133
66
67
0
4위
4위
2010
133
69
61
3
4위
4위
<color=#373a3c> '''통산'''
<color=#373a3c> 392
<color=#373a3c> 204
<color=#373a3c> 185
<color=#373a3c> 3
<color=#373a3c> ­

6. 평가


[image]
강민호와 기쁨을 나누던 한때
[image]
2008년 포스트시즌에서 패배한 후
롯데 자이언츠 팬들 그리고 선수들의 거스 히딩크이자 가장 사랑받는 감독으로, 카림 가르시아는 진정한 리더로 평가했으며 조성환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은인이자 신같은 존재라고 말했고 은퇴식 때 "저에게 야구와 기쁨과 모든 것을 알려주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대호는 자신의 멘토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꼽았다. 황재균도 당시 넥센 히어로즈에서 유구골 부상으로 1군과 2군을 오가며 마음고생을 하다가 롯데로 트레이드 된 후, 로이스터와의 첫 만남에서 '앞으로 너에게 마이너리그는 없다'라는 믿음을 주는 한 마디에 눈물이 났다며, 감독님을 위해 잘 해보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한다. #
또한 롯데 자이언츠와 한국 야구계에 '''스타일리쉬'''한 유산을 남긴 감독으로, 염경엽 감독은 취임 당시 "김시진 전 감독과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나의 멘토"라고 밝혔고 류중일 감독 또한 로이스터 감독과 김경문의 야구를 선호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야구계의 중흥기로 평가받는 2008~2012 시즌 동안 가장 색깔이 뚜렷한 감독으로 김성근과 로이스터를 뽑는 경우가 많다. 팀 컬러 실종 사건 그리고 로이스터 감독 이후 롯데가 부진할 때마다 언급되는 것이 바로 로이스터 감독과 그의 야구 지론인 No Fear이다.
그리고 롯데가 KBO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않는 이상 롯데 감독들에게 계속 존재할 가장 커다란 벽이다. 아래에 후술되어 있지만 비록 프런트와는 사이가 안 좋았을지언정, 로이스터에 대한 팬들 그리고 선수들의 애정만큼은 진심이고 이는 로이스터가 한국 야구를 떠난지 9년이 지난 2019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로이스터 이후 롯데는 양승호, 김시진, 이종운, 조원우, 양상문, 허문회 여섯 명의 사령탑을 거쳤는데, 이들 중 구단 역사상 첫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 직행의 성적을 거둔 양승호 감독을 제외하면 성적 부진으로 비참하게 떠나거나 비판을 받고 있으며, 성적뿐만 아니라 경기 외적인 부분에도 항상 로이스터와 비교되어 왔다[6]. 사실 로이스터 시절의 팀 컬러는 비단 롯데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만큼, 후임자들이 계속 비교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긴 하다. 실제로 로이스터 이후, 특히 김시진, 이종운 시절의 롯데는 팬들뿐만 아니라 다른 야구 팬들에게도 재미없다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하였으며, 이는 결국 같은 경남권에 NC 다이노스가 창단된 것과 맞물려 급격한 관중 감소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그 명과 암이 극명하게 가려지는 감독. 진정 팬들을 위하는 야구를 했고, 팀의 오랜 패배의식을 그가 나간 후에도 5년 가까이 떨쳐내는데는 성공했으며[7] 오랫동안 한국 야구계가 잊고 지낸 야구의 기본들을 상기시켜준 귀중한 지도자였다. 선발 중심 야구,[8]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는 과감함,[9] 프로로서 자율적인 훈련과 자기관리, 팬에 대한 서비스. 모두가 지극히 당연하지만 한국 야구계가 지키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는 이 단순한 진리들을 누구보다 강조했고 이를 한국 야구계에 적용시키려 했다.
단기전에서의 전술 부족 등의 암이 있었긴 했지만, 적어도 그가 성공했다면 보수적이고 꽉막힌 한국 야구계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했고, 주어진 환경은 언제나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러한 것들이 겹쳐져 극복하지 못한 그의 단점이 결국 발목을 잡았고, 그는 롯데 프런트의 푸대접을 받으며 쓸쓸히 퇴장했다.
하지만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프로 야구 본연의 진리들을 추구하며 굳어있던 한국 야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만으로도 그가 한국 야구 역사에 남긴 족적은 결코 적지 않다. 몇 가지 리스크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분리해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2008년에 로이스터 혼자 밀어붙였던 방식이 현재는 야빠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순리가 되었고, 거기에 반했던 구시대의 야신은 숱한 논란 끝에 의 현재도 미래도 모조리 망가뜨리고는 자신의 제자의 손에 경질당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김시진이 이대호만 빼면 갖출 거 다 갖춘 전력으로도 팀을 말아먹고, 그 과정에서 꼴런트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남에 따라 로이스터와 양승호 두 사람에 대한 무한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두 감독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지만, 상대한 프런트가 프런트이니만큼 엄청난 프리미엄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

7. 매니저 스타일


한국 프로야구 감독 역사상 가장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다. 로이스터 감독의 팀 운영방식
사실 말을 바로 하자면 어쩔 수 없이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감독이란 게 더 옳겠다. 외국인 감독이라는 점만으로도 행동 하나하나가 튀는데다가 애초에 과거 국내 감독들이 보여주던 그 나물에 그 밥식 운영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그 결과 역시 극단적으로 평가가 갈리게 되는데, 누구도 보여줄 수 없는 고차원, 고수준의 능력을 펼쳤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본 항목에 서술된 대로 다른 단점들과 더불어 작전능력, 관리능력 등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로이스터 매직로이스터 매직/논란 항목도 같이 참조할 것.
헌데 흔히 생각하는 노피어와 다르게 미국에서는 빡빡한 데이터 야구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롯데 선수들이 작전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서 매니저 스타일을 바꿨다는 이야기.

7.1. 멘탈 개선


"No Fear"라는 한마디로 롯데 자이언츠 감독시절을 말할 수 있다. 선수들 살리기로 소위 말하는 '''꼴데근성'''을 떨쳐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이 가장 눈에 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타자가 폭풍삼진을 당하고 덕아웃으로 돌아오든, 안타 후 오버런을 해서 주루사를 당하든, 결과에 개의치 않고 과감히 도전했다는 거에 의의를 두고 기를 살려준다. 반대로 뭔가 소심한 플레이를 보여주면 결과는 뒤로 제껴두고 "이봐 이건 아니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이건 좀 극단적인 비유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렇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로이스터는 일본과 그 영향을 받은 한국 야구에서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야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초구를 타격하여 아웃당하는 경우 아웃카운트도 하나 늘고 투수의 투구수까지 아껴주어 타자 입장에서는 큰 실패이기 때문에 초구는 웬만하면 그냥 흘려보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한 삼진을 두려워하여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갖다맞추기 급급한 타격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병살을 피하기 위한 의도로 상황에 따른 밀어치기 당겨치기를 강조한다. 투수의 경우 데드볼을 우려하여 안쪽 승부를 잘 하려 하지 않는 현상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들이 큰 실패는 줄일 지 모르나 성공의 가능성 또한 같이 줄인다는 것이다. 초구를 그냥 흘려보낼 경우 투수에게 귀중한 원 스트라이크를 거저 주게 된다. 0-1 이후의 타율이 0-0에서보다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라고 해서 컨택에만 신경을 쓰면 장타가 나오지 않게 되며 이는 큰 손실이다. 병살위험이 있다고 해서 스윙을 바꾸는 것은 타자에게 자기 스윙을 하게 하는 것보다 안타 및 장타가 나올 확률을 떨어뜨린다. 안쪽 승부를 기피하는 것은 단조로운 바깥쪽 승부로 이어져 피안타율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로이스터는 과감한 초구 스윙,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서의 풀스윙, 승부처에서의 몸쪽 공 승부 등을 주문하였는데, 이 것이 바로 노 피어 정신이다.
다만 이러한 노 피어를 실천하다가 실패하는 경우엔 타 팀 팬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주루를 잘못하거나 멀지도 않은 플라이에 태그업을 한다거나 하면 노피어주루[10]라는 우스개가 생겼다. 가장 자주 우스개가 되는 선수는 바로 김주찬. 또한 이대호, 가르시아, 강민호는 파괴적인 중심타선임에 틀림없지만 많은 삼진과 병살로 롯데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노피어 정신으로 롯데 선수들의 멘탈을 개선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잘 된 셈.

7.2. 닥치고 공격


뻥야구를 넘어서 상당한 닥공마인드의 소유자이다.
수비력이 나쁘다고 평가받아도 타격이 좋은 강민호, 김주찬, 손아섭, 정보명등의 선수들을 중용하는 편이고, 공격력 강화를 위해 이대호3루수 고정도 불사하는 편. 단 이대호 3루수는 로이스터의 의견이라기보다는 타격코치 김무관의 주장이라는 말도 있고, 이대호의 그 3루 수비가 당시 롯데 내야수 중에서는 가장 좋은 축에 속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대호 3루 기용은 당장의 필요와 효율성을 떠나 이대호의 무릎과 허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다. 결국 황재균을 사와서 구멍을 메꿨다. 그 황재균이 2012, 2013시즌 망가진 타격에도 불구하고 백업이 없어 살인적인 혹사를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 롯데 자이언츠의 선수층이 얼마나 얇은지 알 수 있다. 박기혁같은 예외도 있지만 이건 박기혁 빼고 쓸만한 유격수가 별로 없는 탓도 있다.
여기에도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나뉜다. 한국 야구 역사에 김응룡,김인식 감독같이 이른바 뻥야구 스타일의 타선을 잘 만드는 감독은 있어도, 거의 닥공에 가까울 정도로 로스터 운용에서 타선에 무게를 두고 갔던 감독이 없었던 것.
장점으로는 롯데의 팀컬러를 확연하게 하면서 최강의 공격력을 갖추게 된 것. 조성환, 홍성흔, 이대호, 가르시아, 강민호가 이끄는 타선은 언제라도 점수를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상대팀에게는 위협적인 일.
단점으로는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팀의 수비가 불안정해진 것과 이로 인해 피를 보는 선수들이 꽤 있다는 것. 특히 라이언 사도스키는 상대적으로 불안해진 수비로 피를 많이 봤다. 사도스키는 주로 땅볼과 파울볼을 유도하는 하드싱커 를 위주로 플레이하는 스타일이었는데, 3루수가 이대호(...)가 되며 엄청나게 피를 봤다. 본인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벌크를 키우고 구속을 늘이며(!) 극복법을 모색했지만, 결국 투수들이 빠른공 못던져서 안던지는게 아니란것만 증명해버렸다. 사실 한국에 와서 인생은 풀렸어도 선수 커리어는 꼬인 경우.

7.3. 선발 투수 위주


위의 닥공과 연결되어 투수진 운영도 선이 굵었다.
투수 라인업은 철저하게 선발 투수 위주의 라인업을 짠다. 선발 투수로서는 아주 크게 말아 먹지 않는 한 6이닝 이상은 책임지게 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중간계투의 혹사는 다른 팀에 비해서는 덜한 편. 혹사가 덜할 수밖에 없는 게 불펜 중에 제대로 된 승리조라고 부를 수 있는 불펜 투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이건 로이스터의 매니징에 대한 편견도 크다. 2009년의 경우 불펜 굴려서 성적낸 시즌이다. 선발 위주로 전략을 짠 건 맞지만, 당시의 송승준, 장원준, 조정훈, 손민한이 있는데 선발 야구를 하는 게 정상이다.

7.4. 선수 개개인을 배려하는 운영


  • 선수의 공적을 가로채려고 하지 않는다. 선수들의 기량이 발전한 걸 감독들이나 코치들이 자신이 키워주었기에 가능한 거라며 자랑하고 거들먹거리는 행위 자체를 지양하는 편이며, 선수의 기량 발전을 순전히 그 선수의 노력과 재능때문에 가능했다는 식으로 말을 자주 한다.
  • 그외에도 국내 감독이라면 꺼릴 직접적인 감정 표현 선수에 대한 애정을 거리낌없이 보여준다. 정말 국내 야구 역사상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감독이 로이스터 감독을 제외하면 트레이 힐만밖에 없으며, 힐만 역시 외국인 감독임을 생각하면 국내 감독 기준으로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11] 그렇다고 해도 화날때는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며 욕을 남발하는데, 2010시즌 막판 카림 가르시아가 심판과 마찰이 생기자 로이스터가 튀어나와서는 가르시아보다 더 흥분했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겹쳐 롯데 선수들은 진정으로 로이스터 감독을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한다. 이런 경우가 국내 현직 감독중엔 별로 없다는 걸 생각하면 선수 장악력은 엄청난 걸 알 수 있다.
  • 로이스터의 인품을 요약하는 일화가 있는데 10시즌 김주찬이대형이 한창 도루왕경쟁을 하던 때 이대호가 발목염좌로 팀의 주전에서 빠지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날 로이스터 감독이 김주찬은 다치면 안된다고 목동경기 가지말라고 부산으로 가라고 했는데 김주찬은 도루왕 경쟁 때문에 목동경기를 뛰어야 하는 상황, 그러나 로감독 스타일상 개인기록 때문에 경기 뛰겠다고 하면 씨알도 안먹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주찬은 머리를 짜내 로감독의 약점을 공략했는데, "감독님 저 서울에서 선보기로 해서..."(물론 거짓말) 그리고 감독님의 대답은 예상대로 "오 그래? 그런 일이라면 인생에 중요한 일이니 서울에 가야지"라고 말하면서 부산으로 보내려던 계획을 바꿔서 김주찬은 목동으로 고고싱. 그런데 폭우가 쏟아져서 목동경기 취소. 김주찬은 도루왕을 놓쳤다는 훈훈한 이야기.
  • 한국프로야구에서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고[12] 선수들의 기록보다는 선수들의 상태 내지는 인생을 주의깊게 돌보는 감독은 한국야구에 거의 없었다. 조범현 같은 경우는 송은범이 부모님이 이혼하고 자기를 혼자 키우다시피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발인날 마침 비가 와서 게임 취소되었으니 참석하고 싶다고 요청했으나, 딱 잘라 거절했을 정도. 이 일로 인해 둘의 사이는 뭐... 이것이 그가 팬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9년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패색이 짙은 가운데 조정훈이 감독에게 몸을 풀고 싶다고 하자 "이번 시즌만 야구할 거냐?" 며 거절했다. 이미 경기 시작전에 조정훈의 4차전 등판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도 선수 보호를 이유로 들며, 등판 가능성 0%라고 일축했었다. 이 장면은 2015년 손아섭의 부친상과 관련된 이종운 롯데감독의 비판점이기도 하다. 박동희의 칼럼에 따르면, 로이스터와 함께 생활했던 한 롯데 선수는 “제리 감독 시절엔 부모가 위독하거나 아이가 출산할 때 구단에 이야기하지 않으면 더 크게 혼이 났다”며 “제리 감독은 ‘야구보다 중요한 게 가족이다.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팀원과 팬을 돌보려 하느냐’며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고 속으로 끙끙 앓던 선수를 향해 불같이 화를 냈다”고 회상했다.

7.5. 선수 기용 및 코칭



7.5.1. 빛


2010시즌 들어 로이스터 감독의 야구에 익숙해진 선수들이 저마다 기량이 급상승하면서 상당한 칭송을 받고 있다.
스프링 캠프 및 시즌 내내 일단 기본적으로 무리한 강훈보단 선수들에게 자율적으로 훈련양을 조절하는 방식을 추구하며 그 방식이 2010년에 와서 선수들 몸과 마음으로 정착하고 있다. 이는 본인의 임기 내에서만이 아니라 이후 한국 야구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넥센의 염경엽 감독의 야구 스타일에 도움을 준 것이다. 김성근과 로이스터 두 사람의 야구 스타일을 접목한 야구를 추구한다는 인터뷰로 잘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삼성의 류중일 감독의 경우에는 일화로만 알려져 있는데, 두 사람의 운영의 유사점이 많기 때문에 벤치마킹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결과로 국내감독이었으면 변화없이 우월한 똑딱이 타자로 남았을 홍성흔이 장타력마저 겸비한 완벽한 타자로 변신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고, 수비에서도 내야수 출신이던 전준우를 꾸준히 중견수로 기용해 주전으로 성장시켰다.
수비력 향상에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 사실 수비력의 향상에 가장 중요한 책임자는 수비코치지만, 오랜 기간동안 수비코치로 재임하면서 제대로된 결과물을 내본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공필성이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로이스터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수비코치가 바뀌지 않은걸 생각하면 로이스터는 할만큼 했다는 평도 있다. 당시 롯데는 타구처리 및 중계 포메이션조차 제대로 짜여있지 않았기에 로이스터가 전부 처음부터 재조직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당시 롯데 외야는 거의 무주공산의 상태였으나 손아섭과 전준우의 수비 포텐셜에 주목하고 이들의 포지션 변경을 이끌었다. 전준우는 빠른 시간 내에 중견수 자리를 꿰차며 롯데의 센터 라인을 완성해줬지만 손아섭의 경우에는 눈물나는 수비를 보여준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기에 로이스터 임기 내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로이스터가 물러난 바로 다음 시즌 부임한 조원우가 손아섭의 수비력을 놀라울 정도로 향상시키며 로이스터의 눈이 정확했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공필성이 월급도둑이었음을 새삼스럽게 재확인시켜주었는데, 외야수 글러브를 내야수 글러브처럼 사용하게 했는데, 갓 부임한 조원우깜짝 놀랄 정도. 수비가 너무 형편없어서 1루수와 외야수를 오가야했던 김주찬도 조원우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사람같은 수비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투수코치 양상문이 무능력한 가운데 이재곤김수완이라는 괜찮은 투수를 발견한 것은 명백한 로이스터의 공.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베스트 멤버에 집착했다고 까는데 들여다보면 그런 의견은 사실과 다르다.
로이스터가 부임 이후 롯데 자이언츠 2군에서 올린 선수는 '''손아섭''', '''전준우''', '''문규현''', '''김민성''', '''박종윤''', '''이재곤''', '''김수완''', '''정훈'''[13]이다. 이 중에서 손아섭, 전준우, 문규현, 정훈 4명이 로이스터가 떠난 2011시즌 롯데 주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타팀에 비해 작게 올린 건 아니고 롯데 백업의 부실함은 상동 이전 부실한 신인관리로 인해 29~32살 정도의 중견급 선수를 전혀 배출하지 못했다는 점과 애당초 2군 육성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가령 2011년 양모 감독이 비주전에게 기회를 많이 주겠다고 공언했지만 로이스터 3년간 2군에서 절차부심한 선수 중 자기 몫을 해 주는 선수는 이인구 하나 뿐일 정도이고 이른바 '소통이 안되어 1군 기회를 얻지 못했다'라고 언플한 박진환 같은 경우는 전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다시 쫒겨갔다.
2018년 기준으로 봐도, 롯데 라인업에서 '''제리 로이스터 감독 시기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후에''' 주전 혹은 그에 근접한 자리를 차지한 롯데 야수는 딱 2명 밖에 없다. 사실상 중복자원인 민병헌을 영입하지 않았으면 주전 좌익수였을 김문호와 유격수 후보로 꼽히는 신본기. 이중 신본기는 2017년까지 자의든 타의든 문규현의 백업을 보다 그 다음해 3할에 가까운 성적을 내고 2019년 문규현을 고려장 시키는데 성공했지만 2012년 데뷔이고, 김문호는 2008년 데뷔이지만 09/10을 군대에서 보냈고 당시 롯데 외야라인이 김주찬-전준우-손아섭이라서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던 것에 가깝다. 김문호는 젊은 야수 좋아했던 강병철 감독 시절부터 기회를 받았지만 콧대 높아서 감독, 코치들 말 제대로 안듣는다고 팬들에게 욕 얻어먹던 시절이었다. 08년에 공수 뭐 하나 내세월 게 없던 김문호를 김주찬 대신 썼다면 로이스터는 돌 맞았어도 할 말 없다. 그 외의 포지션은 직전해 주전 선수가 떠나서 무주공산으로 꼽히는 포수[14]와 3루수[15]이고, 또한 외국인 선수[16], 그것도 아니면 외부 FA[17]이다. 롯데가 얼마나 선수 키우는 능력이 없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롯데의 형편없는 육성 실력은 로이스터가 끌어올려 키웠던 선수들의 말로만 봐도 알 수 있다. 로이스터 재임기에 규정타석 3할 타자 대열에 합류한 손아섭을 제외하면 만개한 선수가 없다. 문규현, 박종윤이야 원래 가진 자질이 그 정도였으니 넘어간다지만 전준우는 컨택과 파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끝내 툴을 개화하지 못한채 20대를 다 보내다 겨우 30대에 와서야 공격력을 확보했고 이재곤, 김수완은 10시즌 원 히트 원더로 끝났으며 정훈은 2014년에 3할을 치며 안착하나 싶었지만 결국 2루수 포지션에서 쫓겨났고 중견수와 1루에서 간신히 밥값을 하고 있다.

7.5.2. 그림자


하지만 이런 로이스터에게도 기용상의 문제가 있다.
  • 임경완: 도저히 마무리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을 2009시즌 빼고 마무리에 배치함. 임경완 말고는 이렇다 할 만한 마무리가 없다는 이유로 이해할 수 있지만 몇 번의 대사건으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선수를 주구장창 기용했던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 No fear!항목에서처럼 "괜찮아 언젠가는 잘 마무리하겠지"라며 언론과 팬들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우리팀의 마무리는 임경완이다"라며 끝까지 믿고 기용하였으나 결국 임경완은 잘 던지지 못했다. 2011년 마무리 부담을 벗고 임천사 모드를 발동해 필승계투진의 한 축이 된 임경완을 생각하면 아쉬운 대목.
  • 박기혁: 2008시즌 내내 이대호 3루를 커버하고 WBC까지 뛰느라 체력이 현격하게 떨어진 상태에서 전혀 휴식을 주지 않고 굴리다가 성적은 성적대로 까먹고 부상으로 쓰러지게 만들었다. 결국 사상 최초의 미필 FA가 되었고 구단에서도 사실상 포기했다. 이로 인해 피를 본 다른 선수는 다름아닌 김민성.
사실 김민성은 넥센에서도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박기혁은 아시안게임 병역특례를 노리는 탓에 자신이 '모아니면 도'식의 출장을 감행하기도 했다. 더불어 장성우도 이후 강민호의 부상 공백이 있을 때 나오지만 이승화에 버금가는 방망이 수준을 보여주었다. 2012~13시즌 장성우가 경찰청 입대 후 2군 본즈가 된것 보면 그냥 당시 롯데 2군 육성 시스템이 문제라고 보면 될 것 같다...근데 2014시즌 노답 빠따를 보여주며 그냥 벽제 야구장 빨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리고 장성우도 트레이드 이후에는 뭐....

7.5.3. 고려해야 할 사항


롯데의 불안한 수비도 그렇고 로이스터의 코칭 능력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은 편이지만, 여기서 롯데의 코치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비 : 화약고[18] 공필성[19]
수석 : 불사조 박영태
주루 : 관중 이철성
투수 : 상치 양상문[20]
2군도 만만치 않아서 검증된 무능력자 이강돈에 포수 수비 못해서 외야 알바 뛰었던 양용모, 부산고 프리미엄으로 특채된 주형광과 염종석이다. 이런 코치진들을 끼고 제대로 된 선수 코칭이 이루어진다면 그건 감독이 엄청나게 쩌는 거다.
더군다나 로이스터는 제대로 된 자기 코치진을 가져본 적이 없다. 페르난도 아로요 투수코치만이 로이스터가 선임할 수 있었고[21] 재계약 때에도 코칭스탭 선임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롯데 구단이 주는 걸 운용해야 할 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인구, 이원석, 이승화, 정보명 등이 제대로 성장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7.6. 단기전에만 오면 약해진다?


준플레이오프에서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어 단기전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이저리그에서 포스트 시즌에 매년 나가는 팀인데도 단기전 운영 능력 때문에 까이는 감독은 메이저리그에 의외로 많은 편이다. 대표적 사례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바비 콕스. 14년 연속 지구 우승할 동안 월드시리즈 딱 한 번 우승할 정도면, 한국 야구에선 5년을 못 버텼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3년 연속을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 2010 시즌 2연승을 거두는 호조에도 불구하고 리버스 스윕을 당했다는 점에서 In Game 운영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확정.
실제로 2010 시즌의 포스트 시즌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2연승 후 2연패를 당하고 난 뒤에도 계속 라인업이라든가 타순 조정 같은 것을 전혀 하지 않는 점이 2연패 후 타순 조정과 대타 및 라인업 조정을 통해 리버스 스윕에 성공한 김경문 감독에 비춰 극대화 된다. 쉽게 말하면 '''아직도 정규 시즌 하는 중인거다.''' 단적인 예로, 박종윤, 정보명, 이승화는 5차전 막판에서나 겨우 대타로 나왔으며, 문규현은 아예 나오지도 못했다. 이 정도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지?
특히 아직 감을 못 찾고 병살을 치며 기회를 날려먹은 홍성흔을 꾸준히 쓰고 부상이 있는 이대호를 3루수로 기용하는 이해 못할 기용은 확실한 문제. 홍성흔과 이대호 두명이 합쳐서 삼진 8개 병살 2개를 기록했다. 타점은... 2명이 합쳐서 겨우 7타점. 그나마 이대호는 끝내기성 쓰리런 홈런이라도 쳤지 홍성흔은...
혹자는 이에 대해 '장기전의 마술사'라고 평한다. 장기전인 정규 시즌에는 강하지만, 단기전인 포스트 시즌에는 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SK의 조직력에 막혀 3년간 그 벽을 끝까지 넘지 못했고[22] 공수에서의 엇박자로 한화, LG, 넥센 등의 하위권 팀을 때려눕혀 5할 승률을 간신히(2009년에는 5할 미만) 맞춰 4강 턱걸이한게 롯데의 정규리그였다. SK전 7승 12패. 하지만 삼성에게 9승 1무 9패로 대등 그리고 두산을 상대로는 12승 7패로 의외로 준수한 성적.] 하지만 약팀을 확실히 잡아내는 것이 안정화된 팀의 전력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다. 이후 롯데는 잦은 전력 누수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4강 진출, 심지어 탈락한 2013 시즌에도 하위 팀들을 확실하게 잡아내며 희망 고문을 했는데 이것을 4강DNA라고 볼수도...
상기한 극명한 그림자에 페넌트레이스 4위팀 감독에게 장기전의 마술사라는 호칭은 과분하다. 그나마 이게 좀 개선된게 롯데의 타력이 극대화되고 두산과 삼성의 투수력이 불펜 야구 후유증으로 약화된 2010 시즌. 단기전 가선 얄짤없이 털렸지만. 그런데 불펜 야구로 색채가 바뀐 2012, 2013 시즌 모두 시즌 막판 불펜 혹사의 누적과 함께 뚜렷하게 힘이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선발진과 타선 위주의 로이스터 야구를 단기전보다 장기전에 적합한 야구라고 부르는 것이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인다.
애초에 감독 생활 10년 하면서 단 한번도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해 본 일이 없는 김경문 감독도 비슷한 별명으로 불리는걸 생각하면 장기전의 마술사라는 별명이 그저 정규시즌 우승자에게만 붙을 칭호가 아니란걸 알 수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재임기간 가장 비교되던 감독인 김성근을 가져다 놓으면, 김성근은 총경기수가 100경기 혹은 그 이하로 줄어들면 그 성적이 가장 빛날 사람이고, 144경기 체제가 되자 그 부작용이 크게 나오면서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60경기를 뛰던 메이저리그 감독 출신 로이스터라면 144경기 체제에서 오히려 성적이 더 좋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이런거 저런거 다 집어치우고 로이스터 감독은 '''그 병맛같은 꼴무원들과 함께 하며 8888577 팀을 데리고 344를 찍어낸''' 인물이다.

7.7. 기타


  • 한국 야구에 대해서도 상당히 겸손한 태도를 갖추며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 대해서 비하성 발언이나 비꼬는 말을 안한다. 이 10대1 인터뷰를 보면 질문을 한 선수들 한명 한명에게 전부 칭찬을 빼놓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팀 이야기를 할때도 칭찬만 하지 나쁜 말은 안하는 타입. 바꿔 말하면 립서비스가 많다는 얘기도 되지만. 팬들에게도 큰 사랑받고 선수에게도 존경받는 등 국내 감독들 중에서 인화(人和)에 뛰어나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 2010년 9월 8일 삼성과의 시합이 끝나고 삼성의 덕아웃쪽으로 가서 양준혁을 불러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양준혁에게 인사를 건넸다. 통역관인 커티스 정을 통해 양준혁에게 로이스터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레전드라 불리는 고참선수들에게 존경심을 갖고 있다. 수십 년 간 땀흘리며 한국야구를 풍성하게 만든 선수들은 그에 맞는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줄곧 이야기해왔다. 로이스터 감독은 고참 선수들이 마지막 경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곤 했다.
  • 3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는 진출했지만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면서 롯데와의 재계약은 물 건너가버리고 말았다. 결국 재계약은 결렬되었고, 그 와중에 롯데 프론트가 로이스터 감독에게 엄청난 망나니짓을 한 게 들켰다. 참고로 역대 감독 중 플레이오프를 3회 이상 연속 진출시킨 감독은 총 9명. 그 중 재계약을 하지 않은 감독은 로이스터 감독이 유일. 다른 감독들은 다음 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거나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잘린 경우, 시즌 종료 후 다른 팀으로 이적한 경우 등이 존재하지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팬들이 감독 연임 지지를 선언한 신기한 일의 주역이다. 다만 이것은 팬들이 이렇게라도 안하면 팀 최초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감독이 짤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 또한 사실. 팬들이 느낀 위기감 그대로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로이스터는 잘렸다. 로이스터보다 뛰어난 감독을 찾아낼 능력이나 코치진의 대안도 없으면서 한국시리즈 진출한 감독을 짜른 의 케이스도 있고, 로이스터가 잘린 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더 심한 사태도 일으키는 것이 롯데 프론트이다.
  • 이와 같이 로이스터 감독은 한국 야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야구를 추구하며 이는 야구 발전에 보기 좋은 현상이다. 승리와 패배를 떠나서 야구의 다양성 확립은 한국 야구에겐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으며, 야구 팬에게는 색다른 야구를 봄으로써 즐거운 경험이 될 수도 있기에 말이다.
  • 역대 롯데 자이언츠 감독 중 통산승률 52.4%로 해임 당시에는 1위였으나 양승호 전 감독이 롯데 역사상 첫 패넌트레이스 2위를 기록하는 등 53.8%[23]의 승률을 기록해 현재는 2위. 3위 성기영 감독과 동률이지만, 성기영 감독은 1987년뿐이다. 강병철, 김용희, 양상문 등 다른 감독들은 모두 50%이하이며 특히 백인천 감독은 2시즌 동안 25%이다.
  • 2018 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 KBO 리그에서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에 성공한 13명의 감독 중 한 사람이다. 로이스터가 퇴임하던 시점에선 9명이었는데 이후 삼성 류중일 감독과 넥센 염경엽 감독, 두산 김태형 감독과 KIA 김기태 감독이 추가되었다. 현재까지 롯데 감독, 그리고 외국인 감독으로는 유일하다.
김응용
9시즌
해태
1986~1994[24]
4시즌
삼성
2001~2004
김영덕
5시즌
빙그레
1988~1992
이광환
3시즌
LG
1993~1995
김인식
4시즌
두산(OB 시절 포함)
1998~2001
3시즌
한화
2005~2007
김재박
5시즌
현대
2000~2004
선동렬
4시즌
삼성
2005~2008
김경문
4시즌
두산
2007~2010
NC
2014~2017
김성근
4시즌
SK
2007~2010
로이스터
3시즌
롯데
2008~2010
류중일
5시즌
삼성
2011~2015
염경엽
4시즌
넥센
2013~2016[25]
김태형
6시즌
두산
2015~2020[26]
김기태
3시즌
KIA
2016~2018
  • 로이스터 감독의 후임자인 양승호 감독은 롯데 팬들의 미움을 한몸에 받아서 인터뷰 하나, 훈련 내용 하나까지 까였다. 성적이 올라가니 까임도 줄어들었지만.

8. 인기


올드팬들은 2회 우승을 일궈낸 강병철이나 1999년의 감동을 안겨준 김명성을 떠올리는데 2008년 이후 폭발적으로 유입된 팬들의 경우에는 '''제리 로이스터가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성적이 더 잘나온 양승호의 경우에는 학원 야구 지도자 시절 돈을 챙긴 혐의로 감옥님이 되어 흑역사로 치부하게 되었고 김시진은 로이스터와는 비교도 안되는 투수 혹사와 자기 학연 챙기기, 그와 동시에 추락한 팀 성적과 이를 가리기 위한 언플로 평가가 바닥이다. 선수들도 2010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차기 감독으로 내정된 양승호가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수상 소감으로 "로이스터 감독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로이스터는 갔지만, 골든글러브에 추억 남았다
특히 2008년 암흑기를 깬 최초의 4강 진출[27]과 2009년 드라마틱한 4강 진출,[28] 그리고 역대급 타선으로 평가받는 2010년의 불방망이등 그가 지휘봉을 잡은 모든 시즌이 컨셉이 있었으며 특히 2010년의 불방망이는 이후 감독들이 부진할 때마다 롯데팬들이 "차라리 시원시원한 로이스터의 노피어 야구가 좋았지..."라는 추억팔이의 대상이 되는 시즌이기도 하다. 정작 성적은 투수로 조지던 양승호 체제 때 성적이 더 좋았다는 점.
이는 조성환의 은퇴 당시 아이스 버킷 챌린지 지목자로 조진웅, 김주찬을 거론한 후 "저한테 많은 배움과 기쁨과 정말 모든 것을 주셨던 미국에 계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님!"이라고 하자 팬들의 반응이 이전 2명을 거론했을 때보다 훨씬 폭발적이었다는 것 만으로도 알 수가 있다.
2010년에는 사퇴 반대 광고를 팬들이 직접 모금해가며 신문사에 기재할 정도였으며, 앞으로 롯데 자이언츠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는 감독이 나오기 전까지는 가장 인기있는 감독으로 남아있을 듯 하다.
2014 시즌 종료 후 로이스터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하자 보여준 댓글들의 반응이 그의 인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9. 별명


성적이 좋을때는 '로중달', 성적이 나쁠때는 '로꼴통', '흑인천'[29] 톰과 제리의 제리에서 따온 '쥐' 등의 별명이 있다. 심판과의 언쟁을 자주 하면서 보여준 폭풍 항의를 보면서 '로미넴'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그 밖에도 포스트시즌 탈락 최다 기록에서 롯데를 구한 명장이라며 '로순신'이란 별명도 있었는데, 거의 잊혀졌다가 후임 감독이 그야말로 '''원균과 같은 행보'''를 보이면서 '양원균'에 대조되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별명은 아니지만, 허구연의 발음을 따르면 '''쮀리 로이슈톼''' 감독.

10. 여담


  • 을 무지 잘한다. 그래서 야구팬들은 에미넴+로이스터 합성어로 로미넴이라고 부른다.
  •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카라를 대단히 좋아했다고 한다. 차녀의 이름이 '카라 로이스터'로 스펠링까지 같아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며 특히 멤버인 니콜과 친분이 강했다고 한다.
  • 롯데 자이언츠 감독시절 인기가 좋아서 롯데 후불교통카드 광고를 찍었는데, 니 아직도 충전하나?라는 대사를 남겼다. 그리고 같이 출연한 김아중의 싸인을 받아갔다고 한다.
  • 유니세프 회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유니세프가 롯데 스폰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참고로 유니세프는 전세계 단 4개팀만 후원하고 있으며 이중 아시아 클럽은 롯데 자이언츠가 유일하다.
  • 같은 부산이 연고지인 K리그 부산 아이파크의 홈구장인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에 방문해서 시축을 한 적이 있다.[30] 또한 비시즌에는 부산 KTF의 홈경기에 2차례 시투한 적도 있었다.
[image]
  • 영화 해운대에서, 설경구에게 디스 걸려서 뚜껑 열린 이대호를 'Calm down, Take it easy'라며 말리는 잠깐 단역으로 나온다.
  • 김성근 당시 SK 와이번스 감독의 투수 교체[31]흉내 낸 적이 있었다.
  • 정수근이 푼 로이스터썰.

  • 현재 골프와 개인 사업을 하며 미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 독이 든 성배(...)로 불리는 한화 이글스 차기 감독 후보군에 있다는 설이 있었으나, 이상학 담당 기자에 의하면 구단에서 아예 외국인 감독은 고려하지 않는 상태라고 한다.

11. 명언


외국인 감독이어서 그런지 립서비스가 굉장히 좋았다. 오죽하면 로이스터 명언 봇마저 나왔을 정도다.
[image]

'''No Fear.(두려워 하지 마라).'''

'''내 모든 관심사는 이 팀이 조금 더 강해지게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이 팀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많은 팬들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게끔 하는 일뿐이다.'''

2008년 6월, "4강에 가지 못하면 경질 될 수도 있다."라는 기자의 질문에.기사.

''' '''[32]

[33]

'''야구는 열정이다.선수들은 무엇보다 많이 뛰고 많이 즐기는 야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2007년 구단 상견례 중에서.

'''팬들이 팀의 일부라고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2007년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인터뷰##.

'''좋은 팀들이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팀은 우리 팀이다. 롯데가 최고다.'''

2008년 개막전을 앞두고.

'''그렇게 생각하라고 해라. 우리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2008년 개막전 4연승이후 반짝돌풍이 아니냐는 지적에.

'''Just Do It What You Do(네가 하고싶은 대로 해봐)'''

2008시즌 4월 12일 경기에서 4:3으로 앞서고 있는 무사 1루에서 투수 강영식에게 직접 올라가 전해준 말.

'''"우리가 뭘 해야하는 지 집중해! 너희들 모두 돈받고 운동하는 거잖아. 이기는 경기를 해! 지지도 말고! 비기지도 마! 제대로 하라고!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두려워 하거나 긴장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팀을 위해 너희 자신을 희생해. 우린 롯데 자이언츠야! 최고가 돼야 해!"'''

영화 <나는 갈매기(2009)> 중.[34]

'''경기가 끝날 때까지 졌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여러분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작년에 그런 성적이 난 것이다. 진다는 두려움을 버리고 끝까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경기에 임하라.'''

2008년 4월 25일. 조성환오승환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치며 승리한 경기 후 인터뷰

'''져도 괜찮다. 내일 이길수 있다.'''[35]

'''도루를 시도하다가 혹은 1루에서 3루로 과감히 진루하려다가 아웃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저는 오히려 과감한 플레이를 해야 할 때 두려움 때문에 시도를 주저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08년 9월 30일 인터뷰중

'''난 7위나 하려고 태평양을 건너온게 아니다. 과거의 롯데는 중요하지 않다.'''

2008년, 롯데의 감독으로 선임되고 나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발언. 참고로 이때 2007시즌 DVD를 롯데 측으로 부터 받았는데 보지 않았다고 한다.

'''Who were the good players? Every single one of them.(누가 좋은 선수냐고? 우리 선수들 하나하나가 다 좋은 선수다.)'''

2008년 9월 15일, kbs 단박인터뷰 중 어떤 선수가 좋은 선수냐는 질문에.

'''The Best is yet to come.(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2010년, 홍성흔의 부상등으로 5위 기아와의 승차가 1경기 반까지 좁혀진 상황에서 맞이한 문학야구장 SK 와이번스전을 앞두고 한말. 이말 이후 기적같은 연승을 달리며 승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당시 기사 특히나 당시 SK상대로는 1승 8패를 기록하는등 천적중의 천적이었던 팀이었는데 그 누구도 스윕을 예상하지 못했다.

'''Have Faith and Trust That the team will get better(팀이 나아질 것이라는 신뢰와 믿음을 가져라.)[36]

'''

2011년, 양승호 감독 부임 이후 시즌 초반 부진을 겪고 있지 롯데 팬들이 로이스터 감독 페이스북에다 부정적인 글을 남기자.

'''얻어맞을 생각부터 하지말고, 자신있게 결정구를 던져라.'''

'''아웃 당하더라도 한 베이스를 더 달려라.'''

'''삼진을 두려워 하지마라 어설프게 스윙하지말고 자신있게 스윙해라'''

'''Something New Just for You!'''

'''사직 야구장의 롯데자이언츠 글자가 안보이게 팬들이 많이 와 줬으면 좋겠다.'''[37]

'''부산의 열기를 알고 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컵스 팬들도 정열적이고 팀을 사랑한다. 그러나 롯데 팬은 다르다.(크게 웃음) 컵스 팬도 여기 오면 인정을 할 것이다. 과연 비교할 대상이 있을까. 우리 팬들은 야구와 함께 사는 팬들이다.'''

'''오늘 경기의 승패만큼 중요한 것은 단 한 명의 팬이라도 즐겁게 경기를 보다가 귀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것이 내가 연봉을 받는 이유다."'''

2008년 준PO 3차전을 앞두고 그물망 사이로 팬들에게 사인을 하며 오늘 같이 중요한 날 사인을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

'''결과는 미리 알 수 없지만 그 목표를 이루는 것은 정말 특별하고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큰 가족이다. 우리는 모두 함께 그 목표를 향해 갈 것이다.'''

'''우리 팀이 최고다.'''

'''제 가족 하나 건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팀과 팬들을 돌보겠다는 말이냐??'''


[1] 내야 유틸리티.[2] 로이스터의 감독 선임 시점보다 16년이 빠른 1991년에 KBO리그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이 롯데에서 탄생할 '''뻔'''한 적도 있다. 롯데에서 코치로 뛰었던 도위창이 주인공. 자세한 것은 도위창 항목 참조.[3] 2011년에 회장으로 승진했다.[4] 똑딱이에서 완전체 타자로 변신한 홍성흔, 올해에 더욱 더 정확도를 높인 타격을 하는 조성환, 롯데의 약점이던 중견수 포지션에서 공수 대활약을 펼친 전준우 등.[5] 구단 측의 공식 발표는 남은 계약기간 1년을 더 지켜보고 결정한다는 것이지만, 현재 조감독에 대한 비난 및 퇴진 요구 관련 기사를 막지는 않고 있어 여론을 보고 결정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6] 단, 허문회는 아직 첫 시즌이므로 일단 논외로 치며, 2020 시즌 종료 이후 평가해도 늦지 않다.[7] 뭐,정수근이나 송승준의 사건을 보면 혼자서 열심히 하는 성실한 선수들 외에 나태한 선수들은 자율이란 이름 아래 또 열심히 놀아제낀 모양이지만... 역시나 정수근은 개인방송을 하며 로이스터를 거의 신 수준으로 칭찬하고 김성근 등 일부 노감독들의 견제를 받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8]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바람에 빛이 바랬지만. 그리고 이는 역으로 그만큼 롯데 자이언츠의 불펜이 얼마나 허술했는가를 보여주는지를 보여주준다.[9] 몸쪽 승부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무조건 몸쪽으로 던지라는 게 아니라 몸쪽 승부가 필요할 때 기죽지 말고 과감하게 가라는 것.[10] 보통 이런 경우 뇌가 없는 플레이를 한다는 뜻에서 '''뇌'''피어라고 하기도 한다.[11] 그나마 찾자면 한대화 정도. 선수 와이프가 한대화 감독에게 전화를 해서 부부싸움 고민상담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12] 당장 김주찬이 다른 한국감독들한테 저런 이야기를 하면 대번에 처맞는다. 아니 김재박 감독이라면...[13] 김수완은 스트라이크 존에 꽂아 넣는 다는 이유로, 정훈은 스윙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콜업했다.[14] 강민호가 FA로 떠나면서 무주공산이 되었다. 김사훈은 롯데팬들도 사람 취급 안하고, 나종덕나원탁의 소위 나나랜드는 실질적으로 프로 1년차 선수들이다.[15] 황재균이 메이저리그 노크한 이후로 롯데의 주전 3루수는 증발했다.[16] 앤디 번즈, 사실 로이스터 감독 시기에는 타자 외국인 선수 한명을 강제하고 전체 외국인선수 3명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 외국인 타자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였다. 카림 가르시아를 기용했던 로이스터가 특이한 사례이다. 만일 로이스터 감독이 있던 시기와 이후 추세처럼 외국인 타자를 쓰지 않았다면, 롯데 2루수는 정훈이거나, 혹은 여전히 무주공산이었을 것이다.[17] 민병헌과 지명타자 후보인 채태인.[18] 혹은 안타제조기. 절대 공격과 관련된 별명이 아니다. 오히려 수비로 인해 얻은 별명인데 이게 무슨 뜻인지는 다 알거다.[19] 2011 시즌 조원우 외야 수비코치 부임 이후로 재앙급 수비로 이름 높던 김주찬, 손아섭이 수비에서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이건 빼도박도 못하는 무능이다.[20] 논란이 있는 코치로는 김무관이 있다. 팀 타격이 첫번째 최악일때도, 최고일때도, 두번째 최악일때도 타코였던 사람이라(...)[21] 그 아로요도 삽을 좀 푸긴 했지만, 표본이 부족해서 로이스터에게 코치진 선임권을 준다고 안 줬을 때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확신할 수 없다.[22] 그러나 선수들의 힘이 빠지는 여름에는 탈탈 털었다.[23] 반올림한 수치. 반올림을 하지 않는다면 .5375[24] 95시즌은 4위였으나 당시 규정상 준플레이오프를 치르지 않았음.[25] 현재 진행형...이었으나 준플레이오프 탈락 이후 자진 사퇴했다.[26] 현재 진행형, '''역대 최초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기록'''도 성공.[27] 조성환의 오승환 상대 마무리 브레이킹, 디펜딩 챔피언 SK 스윕 등 명장면 도 많았다.[28] 초반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승차 -14로 꼴지를 기록했으나 6월부터 불펜의 말도 안되는 각성으로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가져가며 극적인 4강 티켓을 거머쥐었다.[29] 밀워키 브루어스 감독 대행 시절 2할 승률을 기록, 02년 백인천의 2할 승률과 비교하며 나온 별명. 공교롭게도 골프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다.[30] 답례로 황선홍 감독과 안정환 선수가 사직 야구장을 방문해 시구를 했다.[31] 2009년 7월 19일 문학원정경기에서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나승현을 내리고 이정훈을 올리는 퍼포먼스를 보였다.[32] 후술하겠지만, 영화 해운대#s-2에서 화난 이대호를 말리는 장면에서 나온 유일한 대사다.[33] 당연히 실제로 한 말은 아니다. 07시즌 취임 당시 상동구장에서 가졌던 연설 장면을 가지고 당시 비밀번호 끝자락이던 꼴데의 현시창스러운 경기력을 자학하던 짤. 여기에 추가드립으로 '''X같은 새키들아 난 롯데라고 해서 지바롯덴줄 알았는데 낚을게 없어서 이딴걸로 낚냐 X발''' 도 존재한다(...). [34] 로이스터는 이 말을 할 때 다섯 번의 F-word를 썼다. 그만큼 빡친 상태..[35] 위의 두 명언과 상반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각각 경기 전/경기 중/경기 후의 마음가짐이라 보면 자연스럽다. 어차피 진 경기는 돌이킬 수 없으니...[36] '신뢰와 믿음을 가져라. 그것이 팀을 나아지게 할 것이다.'라는 버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오역이다. [37] 사직야구장 외야석 의자에는 롯데 자이언츠 글자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