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라르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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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largir
곤도르의 항구도시. 안두인 대하의 하구 쪽에 위치하고 있다.
1시대 벨레리안드에 살던 팔라스림들 중 일부가 세 척의 배를 타고 모르고스를 피해 당시 벨레리안드에서 더 먼 지역인 펠라르기르에 에델론드(Edhellond)라는 이름의 항구를 건설한 것이 첫 시초이다.
제2시대 2350년 누메노르인이 안두인 강 하구에 건설하면서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1]
곤도르가 아칼라베스 이후 현지에서 독립한 누메노르의 식민지들을 통합하는 전쟁을 벌일때 움바르에 밀리는 해군력을 보강하기 위해 13대 국왕인 에아르닐 1세가 이 도시를 대대적으로 보수, 해군기지로 변모시켰고, 3시대 933년에 움바르를 점령할 수 있게 되었다.
펠라르기르의 영주들은 곤도르를 건국한 엘렌딜파에 협조한 덕에 아노리엔과 이실리엔을 제외하면 인구가 가장 많은 레벤닌 지방을 통치할수 있었으며, 해군 사령관 직과 곤도르에서 몇 되지 않는 백작 위를 하사받는 등 곤도르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었다.
1437년 곤도르의 해군 사령관 카스타미르가 펠라르기르를 거점으로 삼아 엘다카르에게 동족분쟁 반란을 일으켜 남곤도르를 세웠다가 끝내 패배해 죽고, 카스타미르의 자식들이 지지세력을 모두 거느리고 움바르로 도주하면서 엘다카르에게 점령된다.
1634년 남곤도르의 공격을 받아 25대 왕 미나르딜이 전사한다.
1810년 해군기지로 다시 재건된다.
2885년 하라드의 침략으로 펠라르기르가 함락될뻔 했으나 다행히 방어에 성공한다.
3019년 반지전쟁 당시 해적들에게 포위되어 펠렌노르 평원 전투에 지원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아라고른이 죽은 자들의 군대를 앞세워 레벤닌의 군사들을 규합해 해적들을 물리치고 포위를 푼다. 이후 아라고른 일행과 펠라르기르군은 해적선을 그대로 탈취 후 그대로 펠렌노르 평원에 상륙,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 큰 활약을 한다. 또한 마지막 절대반지의 파괴를 건 모란논 전투에서도 2000명의 보병으로서 참전하여 큰 기여를 한다.
모르도르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황폐화되고 이후 영영 버려진 오스길리아스와 달리 전후에 다시 복구되고 항구도시로서 기능을 충실히 한 것으로 보인다.
Pelargir
곤도르의 항구도시. 안두인 대하의 하구 쪽에 위치하고 있다.
1시대 벨레리안드에 살던 팔라스림들 중 일부가 세 척의 배를 타고 모르고스를 피해 당시 벨레리안드에서 더 먼 지역인 펠라르기르에 에델론드(Edhellond)라는 이름의 항구를 건설한 것이 첫 시초이다.
제2시대 2350년 누메노르인이 안두인 강 하구에 건설하면서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1]
곤도르가 아칼라베스 이후 현지에서 독립한 누메노르의 식민지들을 통합하는 전쟁을 벌일때 움바르에 밀리는 해군력을 보강하기 위해 13대 국왕인 에아르닐 1세가 이 도시를 대대적으로 보수, 해군기지로 변모시켰고, 3시대 933년에 움바르를 점령할 수 있게 되었다.
펠라르기르의 영주들은 곤도르를 건국한 엘렌딜파에 협조한 덕에 아노리엔과 이실리엔을 제외하면 인구가 가장 많은 레벤닌 지방을 통치할수 있었으며, 해군 사령관 직과 곤도르에서 몇 되지 않는 백작 위를 하사받는 등 곤도르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었다.
1437년 곤도르의 해군 사령관 카스타미르가 펠라르기르를 거점으로 삼아 엘다카르에게 동족분쟁 반란을 일으켜 남곤도르를 세웠다가 끝내 패배해 죽고, 카스타미르의 자식들이 지지세력을 모두 거느리고 움바르로 도주하면서 엘다카르에게 점령된다.
1634년 남곤도르의 공격을 받아 25대 왕 미나르딜이 전사한다.
1810년 해군기지로 다시 재건된다.
2885년 하라드의 침략으로 펠라르기르가 함락될뻔 했으나 다행히 방어에 성공한다.
3019년 반지전쟁 당시 해적들에게 포위되어 펠렌노르 평원 전투에 지원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아라고른이 죽은 자들의 군대를 앞세워 레벤닌의 군사들을 규합해 해적들을 물리치고 포위를 푼다. 이후 아라고른 일행과 펠라르기르군은 해적선을 그대로 탈취 후 그대로 펠렌노르 평원에 상륙,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 큰 활약을 한다. 또한 마지막 절대반지의 파괴를 건 모란논 전투에서도 2000명의 보병으로서 참전하여 큰 기여를 한다.
모르도르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황폐화되고 이후 영영 버려진 오스길리아스와 달리 전후에 다시 복구되고 항구도시로서 기능을 충실히 한 것으로 보인다.
[1] 아칼라베스 당시 누메노르는 가운데땅 곳곳에 항구를 세워 식민지로 삼았다. 움바르, 펠라르기르, 돌암로스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