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다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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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dacar
1. 소개
2. 동족 분쟁
2.1. 1432년
2.2. 1437년
2.3. 1438~1446
2.4. 1447년
2.5. 1448년
3. 동족 분쟁의 결과


1. 소개


곤도르의 제 21대 국왕인 엘다카르는 제3시대 1255년 로바니온에서 발라카르와 비두마비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은 로바니온의 말로 '''비니샤라'''였다. 그는 나중에 퀘냐로 '''요정 투구'''라는 의미인 '''엘다카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곤도르 건국 이후, 처음으로 국외에서 태어난 왕이었다.[1]뿐만 아니라 그는 순수한 두네다인이 아닌 혼혈이었고[2], 이것은 후술할 동족 분쟁의 원인이 되어 재위 기간 내내 그를 괴롭혔다.[3]엘다카르는 1432년 부터 1437년까지 재위하였고, 1447년 다시 왕위를 되찾아 1490년에 235세의 나이로 서거할 때까지 도합 48년간 재위하였다[4].

2. 동족 분쟁


'''곤도르의 첫 번째 시련'''


2.1. 1432년


부왕 발라카르가 서거하자 왕세자인 그가 즉위했지만 전국에서 반대파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특히 작은할아버지 칼리메흐타르의 손자인 6촌 동생 해군 사령관 카스타미르(가운데땅 세계관)이 이끄는 반란군의 세가 가장 강하였고, 나머지 반군도 그들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엘다카르를 꺾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이 드러났다. 그에게는 위대한 누메노르인의 피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는 북부인의 기백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반군이 반란 시작 후, 수도인 오스길리아스를 포위하는데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5]

2.2. 1437년


반군은 수도 오스길리아스를 포위하였고, 치열한 전투 끝에 오스길리아스는 함락되었다[6]. 엘다카르는 차남 알다미르와 함께 간신히 수도를 탈출하였지만 장남 오르넨딜은 반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하고 말았다. 또한 카스타미르는 전쟁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약탈과 학살을 필요 이상으로 자행하였고 이로 인해 이실리엔아노리엔지역의 백성들의 인심이 카스타미르에게서 떠났다.

2.3. 1438~1446


외가가 있는 로바니온으로 망명한 엘다카르는 북부인과 부근의 두네다인을 모아 반격을 준비하였다. 그동안 카스타미르는 수도를 자신의 본거지인 펠라르기르로 옮기려하여 수도권 주민들의 인심을 잃게 되었다.

2.4. 1447년


엘다카르가 군사를 이끌고 카스타미르를 응징하러 오니, 이실리엔과 아노리엔, 칼레나르돈도 이에 호응하였다. 마침내 에루이 여울목에서 엘다카르와 카스타미르의 큰 전투가 벌어지니, 이를 '''에루이 여울목 전투(Battle of the Crossings of Erui)'''라 하였다. 결국 엘다카르가 카스타미르를 죽이고 승리, 왕권을 회복하였다. 카스타미르의 아들은 펠라르기르로 달아나고, 엘다카르는 펠라르기르를 포위하였으나.....

2.5. 1448년


엘다카르 측에는 제해권이 없었다. 카스타미르가 왕이 되기 전 직업이 해군 사령관이었고, 카스타미르가 죽었음에도 해군의 대부분은 그의 아들을 지지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반군은 바다를 통해 움바르로 달아나 그 곳에서 분조를 세우고 곤도르와 대립하게 되었다.

3. 동족 분쟁의 결과


동족분쟁의 결과 곤도르는 움바르를 다시 빼앗김으로써 남쪽영토를 많이 상실하고, 다시 해적과 하라드림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과거 아르파라존사우론을 사로잡은 상징적인 지역을 잃었다는 점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7]. 비록 동족분쟁으로 곤도르의 인구는 많이 감소했지만, 엘다카르와 함께 온 북부인들이 이곳에 많이 머물면서 어느 정도 보충이 되었다. 북부인들이 곤도르의 주민으로 편입되면서 누메노르와 북부인의 피는 점점 섞이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누메노르인의 지혜와 수명이 북부인의 피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누메노르인의 권능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이는 축복의 땅이었던 옛 누메노르를 잃은 누메노르인에게서 발라의 축복이 서서히 떠나갔기 때문이었다.[8]
넘사벽이었던 곤도르의 국력은 이 내전에서, 그리고 그 다음 역병에서 팍팍 깎여나가며 '반지의 제왕' 본편에서 묘사되는 다 망해가는 수준으로 열화된다.

[1] 제 1대 엘렌딜부터 제 3대 메넬딜까지의 왕들은 누메노르에서 태어났다.[2] 누메노르인이 발라들에게서 받은 사기적인 능력을 생각하면 반대파들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반란 행위를 정당화 시키진 않는다.[3] 따라서 아래 항목의 이름을 '재위 기간'이 아닌 '동족 분쟁'으로 기재한다.[4] 망명 기간은 제외한다.[5] 반지의 제왕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많은 곤도르인들이 새 왕 엘다카르가 비록 정통성은 부족할 수 있어도 인간적인 면이나 지도자적 측면에서 뛰어났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6] 전투 도중 오스길리아스에 보관되어있던 팔란티르안두인 대하에 빠져 소실되었는데 이 돌은 미나스 아노르미나스 이실의 팔란티르를 도청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곤도르 측에서는 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끝내 찾지 못하였다.[7] 비록 텔루메흐타르 움바르다킬이 되찾았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다시 잃어버린다.[8] 누메노르의 망명왕국인 아르노르곤도르의 왕들의 수명을 헤아려보면 대가 내려갈 수록 1~2년씩 미세하게 줄어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