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 아톰즈/1993년
1. 개요
포항제철 아톰즈의 1993 시즌에 대한 문서.
2. 드래프트
- 1993시즌부터 리그 참가가 예정되어 있던 완산 푸마에게 1순위 지명권이 돌아갔다.[1]
- 당시 4순위 지명은 연고지명이라 하여, 각 구단이 후원하는 대학의 졸업 선수를 우선 지명할 수 있게 하였다.
2.1. 선발 결과
2.1.1. 선발 이 후
독일 부퍼탈 SV에서 2년동안 뛰고 복귀한 황선홍은, 92시즌 홍명보의 선례에 맞춰 드래프트 시장에 나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황선홍을 데려오길 원했던 포철 측은, 그 해 황선홍을 지명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완산 푸마와 접촉했고, 가뜩이나 선수단 부족에 시달리던 푸마 측은, 포철의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였다. 완산 푸마는 팀의 분위기를 다잡아줄 주전급 선수를 원했고, 포철은 어떤 선수라도 내어줄 기세였다. 심지어, 완산 푸마 측은 포항제철이 93시즌 드래프트 1순위를 누구로 지명해 완산으로 넘겨달라고 사정까지 했다고 한다. (완산 푸마 측은 당시 실업팀에서 상당한 경험을 쌓았던 김기남을 포철이 1순위로 지명케 해, 완산 푸마로 입단시킬 의도였다. 불발되긴 했지만) 결국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드래프트 지명 직후, 1:4 초대형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아직도 역대 K-리그 이적시장에서 1:4 트레이드는 이것 외에는 전례가 없다.[2]
그러나 완산 푸마는 1993 시즌 리그 불참이 확정되면서 선수단이 와해되어버렸고, 그대로 다시 포철에 재입단[3] , 결국 포항제철만 좋은 일이 돼버렸다.[4]
3. 외국인 선수
4. 한국프로축구대회
4.1. 대회 개요
- 리그 방식은 단일 리그 제도로 진행되고, 6 라운드 로빈으로 총 6개 구단이 팀당 30경기씩 총 90경기를 치렀다.
- 이번 시즌부터 무승부제도가 없어지고 정규시간 이후에는 승부차기를 통해 승부를 가리도록 규정이 변경되었다.
- 승리시 4점, PK 승리 2점, PK 패배 1점, 패배 0점으로 승점을 계산한다.
4.2. 경기 결과
4.3. 결과
- 30경기 14승 16패(승점 52점)로 4위를 기록했다.
- 차상해가 23경기 10득점 2도움을 기록하며 득점상을 수상했다.
- 라데가 25경기 8득점 4도움을 기록하여 득점순위 3위 도움순위 6위를 차지하며 맹활약했다.
5. 리그컵
5.1. 대회 개요
- 정규시즌 종료 후인 10월과 11월에 대회가 개최되었다.
- 정규시간 내 무승부 시 골든골을 적용하여 연장전 30분을 진행하는 일명 '서든데스제'를 도입하였다.
- 전체 6개팀이 참가, 단일 풀리그로 1라운드씩을 치룬 뒤 우승을 가린다.
- 승점 계산은 승리 2점, 패배시 0점이다.
5.2. 경기 결과
5.3. 결과
- 5경기 4승 1패(승점 8)로 2위인 현대 호랑이와 동률을 기록했으나, 득실차(+5)로 우승을 차지했다.
[1] 완산 푸마는 당시 전라도에 프로축구팀이 없었던 상황에서 리그 수뇌부가 다소 무리하게 창단을 밀어붙여 재정적으로 부실했기 때문에 선수들은 완산 푸마에 지명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로 인해 노정윤, 정재권 등의 선수가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일본행 또는 실업 구단행을 택했다.[2] 단, 황선홍 선수와 포항 스틸러스 측은 1:8 트레이드로 기억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는 완산 푸마가 1:4로 황선홍을 영입한 것 외에 포항제철 2군에 있던 이태형, 김종록, 백태현, 강영호 4명을 추가로 영입했기 때문에 의미에 혼선이 벌어진 듯하다.[3] 완산 푸마에 2순위로 지명된 김일진도 와해된 후 포항에 입단.[4] 단, 이흥실 선수는 완산 푸마가 해체되자, 포철 복귀가 아니라 은퇴를 선언했다. 이 선수도 애초에는 1992년 시즌 종료 후 은퇴할 생각이었으나, 완산 푸마가 창단되자 플레잉코치나 뛸 요량으로 완산 푸마 입단을 희망했던 것. 결국 완산이 해체되자 별 미련없이 은퇴했다.